소설리스트

신선한 복숭아(3) (12/183)

29화. 신선한 복숭아(3)

“자동차면 세단을 찾으시나요? 아니면, suv?”

“픽업트럭이 좋을 것 같은데요.”

“픽업트럭요?”

진석은 수입차 매장을 찾았다. 신차도 있고, 다양한 중고 수입차를 거래하는 곳이었다.

자동차 딜러는 30대 중반 정도의 통통한 남자였다.

“사실, 픽업트럭을 찾는 분은 흔치 않죠.”

“예, 농업 관련된 일을 하고 있어서, 산에도 좀 올라가야 하고 말이죠.”

“그런 용도라면 픽업트럭이 좋죠. 사실, 미국에서는 픽업트럭이 엄청 인기거든요.”

“이쪽으로 오시죠.”

***

“포클레인 말입니까?”

“도시라도 건설하시려고요?”

“예?”

“하하, 농담입니다. 건축자재를 많이 사가셔서 말이죠. 거기에 이제는 중장비까지 찾으시고, 전원주택 단지를 조성하시나 해서요.”

“아, 그런 건, 아니고 창고도 짓고 여러 가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재미 삼아서요.”

“와, 재미 삼아서요. 돈도 장난이 아닐 텐데.”

“하하, 뭐, 그러게 말입니다.”

건축 자재상은 포클레인 이야기를 꺼내자,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 공간에 필요한 건물들을 짓다 보니 여러 가지 필요한 것들이 많았다. 포클레인 그중에 하나였다.

수영장을 만들 때, 진흙으로 포클레인을 출력해서 사용해 봤는데, 아무래도, 진흙 재질이라, 성능이 떨어지고, 세밀한 작업이 어려웠다. 그래서 그보다 좀 더 정교한 진짜 포클레인을 구매해서 공간으로 가져갈 생각이었다.

자주 가던 건축 자재상에는 포클레인은 없었지만, 다행히, 포클레인 대여와 판매를 하는 중장비 업체를 소개해 주었다.

그래서 일단, 중고 포클레인 3대와 덤프트럭 2대를 구매했다.

공간의 문을 열자, 사령관이 마중을 나왔다.

“공간주님, 이건 뭡니까? 진자 포클레인이군요.”

“그래, 사령관, 아무래도 내가 지난번에 진흙으로 만들었던 건, 조금 허접해서 말이야.”

“트럭도 있고, 저건 픽업트럭이군요.”

“그래, 픽업트럭은 내가 타고 다니려고.”

공간의 면적은 꾸준히 증가해, 70만 평 가까운 크기로 성장해 있었다. 여의도보다도 조금 작은 크기였지만, 막상 걸어다니려면, 시간도 걸리고 힘이 들어서, 공간을 돌아다닐, 픽업트럭을 산 것이다.

아직, 공간에는 포장도로라는 것이 없고 황무지와 야산으로 이루어진 지형이라, 오프로드에 적합한 픽업트럭은 공간에서 타고 다니기에는 딱 좋은 차였다. 뒤에 화물칸에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들도 싣고 다닐 수도 있고.

진석은 픽업트럭을 타고, 공간을 한 번 쭉 돌아보기로 했다. 일종의 영지 순찰이라고나 할까?

건조한 기후라 자동차가 흙길을 달릴 때마다,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진석은 공간을 신나게 달리며, 공간 한가운데 우뚝 솟은 산을 바라보았다. 공간은 작물을 재배하는 몇몇 지역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는 황무지 같은 모습이었지만, 산은 나무와 꽃들로 뒤덮인 푸른색이었다.

예전부터 픽업트럭 하나를 사서 산이나 들을 돌아다녀 보고 싶었었는데 이제야 꿈을 이룬 셈이었다.

오아시스로 돌아와 식사를 하고, 한숨 잠부터 늘어지게 잔 후에,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진석이 잠에서 깨었을 때는, 포클레인들이 땅파기 작업을 하고 있었다. 공간에서 사용하는 자동차들이 늘어나면서, 주유소도 필요했다. 일단은 1000리터짜리 자동 주유기 몇 개를 설치해 놓기는 했는데, 앞으로 더 수요가 늘어날 것에 대비해서, 유류 저장고를 만들기로 했다.

“사령관 작업은 잘 되고 있나?”

“예, 공간주님이 가져오신 포클레인이 성능이 우수합니다.”

“그래? 잘 됐군.”

포클레인 운전석에는 진흙 일꾼들이 들어가서 조작을 하고 있었다. 직사각형의 구덩이를 파고 있었는데, 중장비에 대한 지식은 없었지만, 반듯하게 잘 파고 있는 것 같았다.

“포클레인 운전을 잘하는데.”

“예, 굴착기 관련 특별 교육을 받은 일꾼들입니다.”

유류 저장고를 만들어서 공간 내에 주유소를 만들 생각이었다.

***

주유소 작업은 한 팀에 맡기고 다른 팀은, 목주주택 주위에 잔디를 깔기 시작했다. 공간은 전반적으로 건조한 기후에 비가 오지 않는 곳이라 건조한 토지는 먼지가 많이 날리는 단점이 있었다. 집 주위와 진석이 생활하는 오아시스 주위만이라도 잔디를 심어서, 잔디밭을 만들어 놓을 생각이었다.

일단, 잔디 모종을 여기저기 심고, 시간을 가속해서 잔디를 증식시켰다. 그리고 잔디가 어느 정도 성장하자 집 앞부터 잔디를 식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프링클러를 잔디밭 주위로 설치해서 충분한 물을 공급할 시설을 마련했다.

“사령관, 잔디 깍기 작업을 해야겠는데.”

진석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잔디밭을 바라보며 말했다. 식재한 잔디 주위의 시간을 가속해 심어놓은 잔디들은, 어느새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잔디밭 가운데에는 분수대도 설치했다. 집의 경계에는 벽돌로 어른 허리 정도의 낮은 담장도 빙 둘러서 만들어 놓았다. 공간에는 인간은 진석뿐이었고 나머지는 진석의 명령에 따르는 일꾼들뿐이라 특별히 담장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평소에 진석이 만들고 싶던 이미지를 참조해서 만든 것이었다.

일꾼들이 잔디깍기로 잔디를 깔끔하게 깍아 놓자, 생각보다 훨씬 보기 좋은 느낌의 잔디밭이 완성되었다.

잔디밭이 조성관 진석의 집 안마당과 그 바깥쪽의 황토 지대는 완전히 다른 세계 같은 느낌이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공간주님.”

“그래, 아주 보기 좋은데. 기왕 하는 거 말이야. 잔디를 좀 더 심자고.”

“좀 더 말입니까?”

“그래, 담장 너머에도 잔디를 충분히 심고 저기 오아시스 주위도 빙 둘러서 잔디를 깔고, 체육관 앞에도 더 심어서, 테니스 코트를 만들어야겠어.”

“오, 좋은 계획입니다. 당장,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령관은 일거리가 늘어나는 게 어쩐지 신나는 모습이었다.

일꾼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푸른 잔디의 범위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다. 집 앞마당에서 시작한 잔디의 영토는 오아시스를 집어삼키고, 체육관 앞까지 진출한 상태였다.

자동차를 가지고 왔으니 주차 공간도 필요했다. 비가 오지는 않는 곳이지만, 먼지가 좀 많은 편이라 실내 주차장도 하나 만들고 그리고 전부터 꼭 하나 갖고 싶었던, 진석의 전용 극장도 하나 짓기 시작했다.

뭐, 엄청난 대극장을 지을 생각은 없었고, 진석이 혼자서 영화 감상할 그런 공간을 만들 생각이었다.

“홈시어터 전용룸을 만드시려고요?”

“그래, 인터넷에서 찾아봤는데, 요런 걸로, 하나 만들려고.”

작업을 설명하기 위해, 홈시어터 전용룸의 제작 과정을 정리한 블로그를 사령관에게 보여주었다.

“문제없습니다. 바로 작업을 준비하겠습니다.”

오디오와 160인치 액자형 스크린을 설치한 프로젝터를 이용한 홈시어터를 시공한 곳인데, 약간 동굴 같은 분위기가 나면서 오디오 사운드가 괜찮다는 평이었다.

“저런 것과 같은 걸 만들 수 있는 거지?”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 보겠습니다.”

***

공간에서 나와 샤워를 하고, 잠시 거실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진석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도성준입니다.”

“아, 도 사장님, 생각은 해보신 겁니까?”

“예, 저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결론을 내리셨나요?”

“음, 회사 경영이 어려워진 이유가 뭘까 생각을 해봤죠. 아무래도, 제가 연구자로는 능력이 있지만 경영자로서는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럼?”

“예. 이 사장님의 제안을 받아들이죠. 저는 연구를 할 때가 가장 행복한 것 같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이제는 같은 배를 타게 됐군요.”

“그렇게 됐네요.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일단, 같이 일하게 된 거 환영하고 축하드립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다시 만나서 나누도록 하죠.”

새로운 사업으로 상당한 자금이 들어가게 생겼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딸기 모종 사업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면서, 로열티 수익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확실히 농업은 주기가 긴 사업이라, 신품종이 퍼져 나가는 데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어느 순간이 되자, 계절이 변하듯, 단번에 단미 딸기가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단미 품종을 재배하는 농가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연간 2조 원이 넘는 딸기 산업에서 제이에스가 로열티로 챙기는 수익도 연간 천억이 넘어서고 있었다.

거기에 장미와, 인삼 재배로도 상당한 현금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걸로 엔시스 테크를 인수하고 새로운 신물질 개발에 투자할 자금은 충당할 수 있었다.

***

“4호점하고 5호점요?”

“그래, 가로수점도 이제는 안정된 것 같으니까, 또, 카페를 늘려야지.”

“사장님은 점포 늘리는 게 재미있으신가봐요?”

“하하, 당연한 거 아닌가, 원래 땅따먹기가 재밌는 거잖아.”

“땅따먹기요”

“그래, 내 영토를 야금야금 늘려나가는 거지. 인류사라는 게 전쟁사라고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자신의 영토를 늘려나가는 영토 늘리기 게임 같은 거지. 그러다가 전쟁도 생기는 거고.”

“그런 논리라면 현대에도 그 영토 게임은 계속되는 거네요?”

“총칼 대신, 자본으로 전쟁을 하는 거지, 목표는 도시나 요새가 아니라, 건물과 부동산, 호텔, 아파트 이런 것들로 바뀌기는 했지만 말이야.”

“그럼, 4호점과 5호점은 어디에 내시게요?”

“익선동 쪽이 어떨까?”

“익선동요? 거긴 한옥거리 그런 곳 아닌가요?”

“그래 거기가 요즘 유동인구도 많고 분위기가 독특해서 북카페를 내면 손님들이 많이 몰릴 것 같은데.”

“하긴, 거기가 핫하다고 하더라고요.”

“주말에 한번 가보자고.”

***

익선동 한옥 골목..

“와, 이런 분위기군.”

인사동은 몇 번 와 본 적이 있었지만, 익선동이라는 곳은 좀 낯선 곳이었다. 하지만, 한옥을 개조해서 만든 카페나 식당들 분위기가 제법 독특하고 마음에 들었다.

“길도 좁고, 사람이 너무 많은데.”

주말에 사람이 얼마나 되나 보려고 온 거기는 하지만 워낙 좁은 지역에 사람이 많이 몰리다보니, 너무 번잡한 느낌이었다.

“사장님, 이런 곳에, 북카페가 될까요?”

“음, 지금은 주말이고, 평일에는 좀 다르지 않을까? 이런 한옥골목에 사람이 좀 덜 하면 책 읽기에 딱 좋을 것 같은데.”

일단, 괜찮은 건물이 있다고 했던 부동산 업체에 전화를 걸어 보았다.

부동산을 통해 알아보니, 50평 규모의 카페를 매매하려는 사람이 있었다. 원하는 가격은 30억 수준...

“아, 이곳인가요?”

진석의 전화를 받고 부동산 직원은 주말인데도 바로 나와 주었다.

“한옥을 개조한 곳이군요?”

“원래 한옥은 아니고, 일반적인 건물인데, 인테리어로 한옥 느낌을 살린 건물입니다.”

약간 통통한 체격의 안경을 낀 부동산 직원은 여기저기 주변 부동산 시세에 대해서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몇 년 전만 해도 평당 3천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6천 수준으로 올랐으니까요. 30억 수준이면, 괜찮은 가격이죠.”

“민지 씨 보기에는 어때?”

“레트로 감성이라고 하나요? 독특해서 좋기는 해요. 여기에 북카페를 만들면 헌책방에서 책 읽는 느낌이 나지 않을까요?”

“아, 맞아, 나도 그 생각했어. 거기에 비까지 내리면, 딱 좋겠는데.”

“비요?”

“그래, 이런 좀 낡은 느낌의 거리에는 비까지 와서 더 우중충해지면 잘 어울리지 않겠어? 진짜 옛날 느낌도 나고 말이야.”

“북카페를 하시려는 건가요? 음, 부동산 일을 하는 입장에서는 별로 추천해 드리고 싶지는 않는데요.”

“왜죠?”

“이렇게 유동인구가 많고, 집객 효과가 좋은 곳에서 북카페는 사람만 많이 몰리고 매출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거든요.”

“뭐,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별 상관은 없습니다. 돈을 벌려고 하는 일은 아니니까요.”

“예? 그럼 왜?”

“뭐, 저에게는 사람들이 책을 읽게 하는 게 곧 돈을 버는 일이라고 할 수 있죠.”

“와, 일종의 문화사업을 하시는 건가요? 재산의 사회환원 차원에서 말입니다.”

“하하, 뭐, 그런 건 아니고 말 그대로입니다. 누군가가 어떤 책이든 읽고 상상하게 하는 시간이 저에게는 큰 자산이 된다는 말이죠. 하하. 그나저나, 이 건물 마음에 드네요. 계약하고 싶은데요.”

“아, 그러십니까, 그러시면 저야 그보다 좋은 일이 없죠,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