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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복숭아(2) (11/183)

28화. 신선한 복숭아(2)

“안녕하세요.”

진석은 입주민 전용 로비에 들어서며 먼저 인사를 건냈다. 고급 아파트라, 스카이 캐슬 입주민 전용 로비가 따로 구비되어 있었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바로 올라갈 수 있는 구조였다.

로비에는 보안 요원들이 일일이 출입자들을 체크하고 있어서 진석도 이사온 첫날은 보안요원들에게 제지를 당하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안면이 생겼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뒤에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로 입주한 분이시죠?”

“아, 서태준 씨군요.”

뒤를 돌아보자, 185cm 정도의 큰 키에 잘생긴 호남형의 얼굴이 진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식당에서 한 번 뵌 것 같은데.”

“아, 저도 그런 기억이 있네요.”

둘 다 목적지는 42층이었다. 이수정이 지난 번에 사인을 받아 달라고 한 것 같은데, 그렇다고 엘리베이터안에서 사인을 부탁하기도 애매하고, 진석은 사인은 받는 것은 포기했다.

“사업가신가요?”

“아, 뭐, 그런셈이죠.”

“왠지 그럴 것 같더군요.”

“하하, 제가 사업가처럼 생겼나 보죠.?”

“일단, 연예인은 아니시고, 그렇다고 소위 말하는 금수저도 아닌 것 같고, 자수성가한 청년 사업가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뭐, 맞기는 합니다만, 연예인이 아니라는 건 그렇다 쳐도, 금수저가 아니라는 건 어떻게 아신 건가요?”

“로비에서 보안요원들에게 인사를 건내더군요. 금수저들은 이런 호텔 직원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내는 경우가 없죠. 연예인이라면 몰라도, 우리들이야 인사하데는 익숙하죠. 하지만 연예인도 아니시고 나이를 봤을 때, 벤처기업으로 성공하신 청년 사업가가 아닐까 추측을 해 본 거죠.”

“하하, 재밌는 분이군요. 사업가가 아니더라도 다른 직업은 많이 있지 않나요?”

“직업이야 많이 있겠지만, 어떤 직업이든 물려받은 재산이 없는 사람이라면, 따로 사업으로 큰 돈을 벌지 않고는 이 스카이 캐슬 레지던스에 들어올 수는 없죠.”

“영화배우인 줄 알았는데, 추리하시는 건 어디서 배운 건가요?”

“영화배역 중에 형사를 맡은 적이 있었죠. 소거법이라는 겁니다. 가능한 요소 중에서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방법이죠.”

“명함이라도 드릴까요?”

진석은 지갑에서 명함을 꺼냈다.

“제이에스 바이오? 뭐하는 곳이죠?”

“생명공학 계열의 벤처 회사입니다. 농업이나 신품종 개발, 그런 일들을 하죠.”

“오, 특이한 사업을 하시는군요. 하지만, 그쪽도 제법 돈이 되는 모양이군요.”

“하하, 수익성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이곳 스카이 캐슬 레지던스 주민이라면 다들 성공한 사람들이죠. 알아두면 나중에 도움이 되더군요. 제 명함은 따로 필요없으시겠죠?”

“뭐, 얼굴이 명함이신 분이니.”

진석의 말에, 서태준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명함을 지갑에 끼워 넣었다.

***

은하수 장미 농장...

“떡까지 보내주실 줄은 몰랐어요?”

“어르신들 드리는 건데, 복숭아만 보내기는 그래서요. 급하게 떡집에서 맞춘 건데, 괜찮던가요?”

“예, 맛있던데요.”

서은주와 이번에는 노인정을 같이 방문하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어르신들, 이진석이라고 합니다.”

“지난번에 떡하고 복숭아를 보내주신 그 사장님이에요.”

“오, 저런, 이렇게 고마울 때가 있나, 덕분에 잘 먹었어요.”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작은 노인정이었다.

“신선복숭아라고 이번에 새로 개발한 품종인데, 어르신들 드시기에는 어떠시던가요?”

“아, 맞아. 그게 새로 나온 복숭아라면서, 무슨 신선이 되는 복숭아라고?”

“하하, 예, 신선하기도 하고, 먹으면 신선처럼 건강해지는 그런 복숭아입니다. 맞은 괜찮으신거죠?”

“그거 맛있지, 내가 나이가 올해 여든 하나인데 내 평생에 그렇게 희한한 복숭아는 처음 먹어봤어.”

“그러세요? 어르신.”

“그래, 맛도 좋고. 먹으니까, 기운도 나는 것 같고. 그 누구야, 이발사 최 씨는 그거먹고 당뇨가 많이 좋아졌다고 하더라고.”

“이발사요?”

“그래, 요 앞에 가면, 승리 이발소라고 있거든,. 그 집 아들 이름이 최승리야, 지금은 군인이라고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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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입대 했나 보죠?”

“입대는 무슨, 그 녀석 육사 나와서 지금은 연대장일껄..”

아들이 군입대 했다는 말인줄 알았는데, 육사 출신으로 연대장이라면, 그 이발사라는 분도 나이가 꽤 많을 것 같았다.

“그분 말고, 다른 분들은 복숭아 드시고, 아픈 곳이 좋아지신 분 없나요?”

“뭐, 글쎄. 아, 그 태식이 동생도 당뇨 있었는데 수치가 내렸갔다고 그랬던 것 같은데.”

태식이 동생이라는 사람도, 70대의 노인이라고 했다. 연세들이 있어서 당 수치가 높으신 분들이 꽤 있는데, 공통적으로 당뇨 수치가 내려갔다는 증언들이 이어졌다.

“어르신들, 제가 신선복숭아를 더 가져왔는데 많이들 드세요. 그리고 혹시 당뇨가 있으신 분들은 당수치가 달라졌는지 나중에 말씀해 주시고요.”

“하하, 그래. 이거 먹고 정말 당뇨가 좋아지면 좋은 거지.”

***

북카페 오아시스 가로수길점

“사장님, 무슨 고민 있으세요?”

“어, 왜?”

“뭔가 고민이 있는 표정처럼 보여서요.”

“하하, 민지 씨, 아니, 유민지 점장님. 내가 무슨 고민이 있겠어.”

창가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진석의 옆으로 유민지가 소리없이 다가와 있었다.

사실, 진석에게 고민 같은 것은 없었다. 단지, 앞으로의 사업 방향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을 해보고 있었다.

서은주의 소개로 알게 된, 은하수 농장 근처의 노인정에 꾸준히 신선복숭아를 보내 준 결과, 5명 이상의 당뇨 질환을 가진 노인들에게서 당 수치가 크게 개선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렇다는 것은, 공간에서 재배한 신선복숭아에 뭔가 특별한 효능이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래서 전에 장미사과처럼, 과일을 판매하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이번에는 신선복숭아에서 당뇨 개선 효과를 내는 물질을 찾아내 신약, 즉, 당뇨 치료제를 개발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신선복숭아를 과일로 먹는 것으로도 당수치 개선 효과가 나타나고 있었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진석은 신선복숭아의 여러 물질들을 추출해서 그 중에서 당뇨 치료에 효과가 있는 신물질을 찾아, 새로운 당뇨 치료제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물질을 실험할 수 있는 실험실과 연구인력이 필요했다.

***

“도성준 사장님이신가요?”

테헤란로에 자리잡은 오피스 빌딩이었다. 엔시스 테크는 신약개발에 필요한 신물질 추출하는 신기술을 개발한 회사였다.

“초분자학이라, 좀 생소한 분야네요.”

“화학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단위가 바로 분자입니다. 물리학에서는 분자를 넘어 원자 그리고 더 작은 미시세계까지도 관찰하지만, 화학분야에서는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기본적 단위를 분자로 보고 연구하는 거죠. 저는 그 중에서도 분자들의 관계, 특히 자기조립을 연구하던 사람입니다.”

“자기조립이라고요? 어떤 의미인가요? 자기조립이라는 게?”

“쉽게 말하면 신학입니다.”

“신학? 종교 그런쪽 말입니까? 아니면 신학문이라는 의미인가요?”

“후후, 신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죠. 자연계에 무질서한 분자들이 존재하는데 그 분자들이 어떤 외부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 구성요소들의 상호작용만으로 자기조립이 일어납니다.”

“자연적으로 분자들이 조립을 해서 물질들이 생성된다는 말인가요?”

“예, 굉장히 믿기 힘든 일이죠, 아무런 이유도 없이, 분자들간의 상호작용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그 연쇄과정의 우연적인 일치가 반복되며, 복잡한 생명체가 만드어지는 거죠.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복잡계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죠.”

“박사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런 자기조립 현상이 가능한 건가요?”

“물론, 신을 대입하면, 다른 설명도 가능하죠, 초월적 존재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그의 의지에 의해서 분자들의 연결이 일어나고 그런 과정을 거쳐, 분자들의 조립이 일어난다고 말입니다.”

“신을 믿으시나요?”

“과학자에게 신이란 빅뱅 같은 거죠.”

“사고의 지평 너머라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신이 있다고 해도 과학의 연구 범위는 아닙니다. 과학이라는 건, 신이 존재하든 말든, 자연계의 일반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이죠. 그 법칙을 누가 만들었느냐 아니면, 그저 우연적 현상이냐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진화론과 비슷하네요.”

“일종의 진화론의 다른 버전이죠, 화학 버전요. 사실, 인간의 몸이라는 건 분자에서 세포, 그리고 조직, 장기로 이어지는 여러단계의 자기조립과정을 거친, 고도의 복잡성을 가진 자기복합체라고 할 수 있죠. 그게 바로 인간입니다. 후후, 너무 이상한 얘기를 했군요.”

“아닙니다. 흥미로운데요.”

“아무튼, 대학에서는 분자들의 자기조립 문제를 연구하던 교수였죠. 그래서 초분자학자라는 타이틀도 있었고. 아무튼, 지금은 다 망한 벤처 회사 사장이죠.”

“망하기는요? 신기술을 보유한 유망한 회사라고 하던데.”

“선택적 분자추출 기술을 개발하기는 했죠.”

“음, 그러니까. 특정 단백질 효소만 추출하는 기술이라고 하던데?”

“그렇습니다. 기존의 정제법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죠. 일종의 낚시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낚시요?”

“예, 정제법이라는게 말 그대로, 순수하게 추출한다는 의미죠. 여러 분자 화합물 중에서 서로 얽혀 있는 것들 중에 하나를 떼어내어서 그 분자의 역할과 기능이 무엇인지 확인해 보는 거죠.”

“솔직히 말하자면, 화학분야는 문외한이라 잘 모르겠네요.”

“우리회사에 개발한 쿠거비투릴은 쿠거비투타세라는 호박의 학명에서 따온 겁니다.”

“호박이라?”

“예, 예전에 시골에서는 박 열매를 잘라서, 그릇처럼 사용했죠. 바가지 말입니다. 원래 바가지란 말이 박을 둘로 갈라서 쪽박을 내서 뭔가를 담는다는 의미죠. 강아지처럼, 아지는 작다는 의미거든요. 쪽박이 나서 작아졌다는 의미죠.”

“하하, 그렇군요.”

“아무튼, 쿠거비투릴은 일종의 바구니 같은 겁니다. 원하는 분자에 따라 여러형태로 변형이 가능한데, 이 분자 바구니를 낚시에 걸어서 그 모양에 꼭 맞는 분자만 바구니에 담기게 하는 거죠.”

“대충 감은 오네요. 선택적으로 분자를 추출하는 신기술이군요?”

“그렇습니다.”

“과일에서 특정 질병에 효과를 주는 물질을 추출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진석은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제이에스 바이오라? 아, 그 딸기 품종을 만드는 회사죠? 저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신품종 개발로 요즘 로열티 수익이 엄청나다고 하던데.”

“하하, 뭐, 약간 수익이 나고 있는 정도죠.”

“그럼, 이번에 어떤 작물에 도전하시려는 겁니까?”

“복숭아입니다. 새로 개발한 품종의 천도복숭아인데. 당뇨 질환에도 효과가 있는 것 같아서요.”

“음, 천도복숭아에서 신물질을 추출해 보자는 말씀이시군요.”

“그래서 말인데. 엔시스 테크를 인수하고 싶습니다.”

“예? 신물질 분석 의뢰를 하려는 게 아니고 말입니까?”

“회사 전체를 통째로 사고 싶습니다.”

도성준은 서울대 출신의 분자화학자였다. 초분자학의 권위자로 명성을 날리다가, 벤처 기업을 창업한 인물, 하지만 연구자로서의 명성과는 달리 사업에서는 처참한 실패를 했다.

“회사를 인수하고 싶다고요?”

“제 생각에, 도 박사님은, 경영보다는 연구를 하실 분입니다. 저는 과일에서 추출한 천연물질로 당뇨를 치료하는 신약을 개발할 생각이고요. 투자와 경영은 제가 하고, 박사님은 연구개발을 맡아주시죠.”

“흠, 하지만 신약개발이라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신물질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그 이후에도 비임상 실험, 그리고 단계별 임상실험 등, 인체에 무해한 천연물질이라도 검증 받는데만 몇 년이 걸리죠. 그 기간에도 실험을 진행하려면, 비용이 엄청 들어가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막대한 연구비와 시간을 쓰고도 아무것도 못 얻을 수도 있고요. 아니 확률적으로 더 높죠.”

“그렇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필요한 자금조달 계획도 가지고 있고요. 어떻습니까. 엔시스 테크 주식, 100%를 2백 5십억에 인수하고, 도성준 박사님의 연구도 지원할 생각입니다. 괜찮은 제안 아닌가요?”

도성준은 잠시 고민에 빠진 얼굴이었다. 이미 엔시스 테크는 각종 연구투자에 과도한 투자를 하다가, 자금이 다 소진된 상태였다.

“한 번 생각해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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