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인생
“뭐든 말해 보라고.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
일꾼들은 머뭇거리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뭐지? 말할 수 있게 된 거 아니었나?”
-언어 능력은 추가된 상태입니다. 언어 능력을 보다 자연스럽게 구현하기 위해, 입의 구조도 만들었습니다. 보시죠.
상태창의 설명대로였다. 진흙 일꾼들의 얼굴 아랫부분이 조금 떨어져 나가는 듯하더니, 투박하기는 하지만, 입의 모양이 생겨났다. 하지만, 아직 아무도 말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건축 자재가 필요합니다.”
뒤쪽에서 한 일꾼이 처음으로 말을 꺼냈다.
“오, 그래? 어떤 자재 말이지?”
“철근도 필요하고, 합판도 있어야 하고, 단열재에 목재도 방부목이 필요합니다.”
“음, 철근도 있어야 하는 건가?”
“타카 같은 공구도 필요합니다.”
“타카라니?”
“못을 박는 공구입니다. 총처럼 못을 쏴서 박는 거죠. 목조 주택은 못을 박을 일이 많으니까, 타카는 필수입니다.”
“자자, 듣고 보니 필요한 게 많아 보이는데, 말로 하지 말고 좀 목록을 만들어 보자고.”
언어 능력이 생긴 후에, 일꾼 중의 한 명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고, 그의 입을 통해 목조 주택을 짓는 데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자재들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진석은 가장 먼저 입을 연 일꾼에게 사령관이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다.
“네가 여기 일꾼들 중에서 가장 똑똑한 것 같으니까, 너를 사령관으로 임명하겠어. 일꾼들의 대장 말이야. 네가 일꾼들을 지휘하라는 의미야.”
“제가 필요한 건, 건축 자재와 기본적인 공구들입니다.”
“그래. 그건 내가 구해 볼게.”
선택할 수 있는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여기 있는 목재들을 가지고 오두막이라도 만들어 보는 것과, 외부에서 필요한 자재들을 구해 와서 좀 더 그럴듯한 목조 주택을 짓는 것이었다.
* * *
“서울 경제 뉴스의 이루라 기자입니다.”
“서울 경제 뉴스요?”
가로수길의 북카페 오아시스 3호점이 비로소 개점을 하게 되었다. 개업 기념으로 걸그룹의 축하 공연도 있었고 경품 추첨까지 마치고 나자, 겨우 북카페가 조용해지고 있었다. 그때쯤 여기자 한 명이 진석에게 인터뷰를 신청했다.
“이곳 북카페 점장님 나이가 굉장히 어린 걸로 아는데, 나이 어린 여성 점장을 기용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이유랄 게 있나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죠. 남녀든 나이든 큰 의미는 없습니다.”
“하지만, 성별은 그렇다고 해도 사회 경험이라거나 하는 것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데요. 유민지 점장님은 나이도 나이지만, 대학 4학년 휴학 중이고 별다른 경력도 없다고 들었는데. 좀 파격 아닌가요?”
“하하. 유민지 점장은, 저희 북카페 오아시스의 초기부터 쭉 같이 일해 왔던, 창립 멤버죠. 북카페 업무를 잘 알고 그거면 최고의 경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음, 최고의 경력은 업무에 대한 이해도이다, 이렇게 이해해도 될까요?”
“그렇습니다. 자기 분야에 대해 잘 알면 되는 거죠.”
“다음 질문은, 북카페 오아시스만의 장점은 뭘까요?”
“맛있는 음료와, 여유로운 시간이죠. 특히 저는 후자가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인들은 항상 시간에 쫓기며 살죠.”
“음, 책과 함께 하는 여유로운 도시의 시간이라는 건가요?”
“책과, 달콤한 음료, 그리고 향기로운 꽃들, 나른한 오후의 낮잠 같은 여유가 제가 추구하는 북카페 오아시스의 컨셉입니다.”
“그러고 보니까, 어딘지 상쾌한 향기가 나는데, 이게 무슨 향이죠? 향수인가요? 방향제?”
“하하. 주위를 한번 보시죠. 저건 찔레장미라는 신품종 장미입니다. 제가 북카페 외에도 바이오 회사, 그러니까 식물 품종 같은 걸 개발하는 생명 공학 사업을 하고 있거든요.”
“그러고 보니, 장미꽃들이 여기저기 많이 보이네요. 화분에도 있고 꽃병에도. 그러니까 이진석 사장님이 개발하신 신품종 장미라는 건가요?”
“향기가 독특하죠. 한번 맡아 보세요.”
진석이 권유를 하자, 이루라 기자는 옆자리의 화분에 피어 있는 장미에 코를 가져다 대며 향기를 맡아 보았다.
“와, 장미 향이 굉장히 프레시하네요.”
“맘에 드시나요?”
“예. 이곳 북카페 오아시스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모던하고 도시적이고, 너무 섹시하지 않고 세련된 그런 느낌이에요.”
“하하. 유럽에는 이번에 꽤 수출을 했지만 국내는 아직인데, 이루라 기자님이 기사를 잘 써 주시면 찔레장미가 더 인기를 끌겠네요.”
* * *
“이걸 다 뭐 하시게요?”
“시골에 집을 지어 보려고 하는데. 필요해서요.”
건축 자재상은 진석이 정리한 자재 리스트를 받아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건설 회사를 하시는 건 아니죠?”
“아, 전문 사업가는 아니고, 지인이 건축 경험이 있어서, 목조 주택을 지어보려고요.”
“음, 알겠습니다. 철근부터, 단열재, 배관, 전선, 방부목과 공구들, 석고 보드 이런 것들이군요. 어디로 배송해 드리면 되나요?”
“파주에 물류 창고 주소입니다. 여기로 배송만 해 주시면 됩니다.”
“결제는?”
“배송이 완료되면 바로 결제해 드리죠.”
“준비되는 대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 * *
“사장님, 시골에 갔다 오시는 거예요?”
“그래, 수정 씨. 부모님 과수원에 장미사과 묘목 좀 심어 보시라고 가져다드리고 왔어.”
“그런데, 사장님, 난리예요. 장미사과 5백 상자 다 완판이고, 추가 주문하고 싶다고 지금 사무실로 계속 전화가 와요.”
“그래?”
시골에 갔다 온 사이, 사무실로 장미사과를 주문하고 싶다는 전화가 계속 걸려오고 있었다. 역시나 아토피에 효과가 탁월한 모양이었다.
“큰일이군. 사과는 묘목을 심어도, 육성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딸기와 달리, 농가에 묘목을 나누어 주어도 자라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장미사과는 공간에서 가져오는 것 외에는 공급을 늘리기는 어려웠다.
“일단은, 주문은 받지 말고 추가 공급까지 시간이 걸린다고 공지를 걸어놔.”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리고 찔레장미도 주문이 막 들어오고 있어요.”
“찔레장미?”
“예. 사장님이 인터뷰하신 거 있죠? 신문사하고요.”
“아, 그 이루라 기자 말인가?”
여기자라 그런지, 상당히 세련된 미모가 인상적이었던 기자였다.
“예, SNS 쪽에 찔레장미 향기가 좋다고 입소문이 퍼지면서, 꽃가게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은가 봐요.”
“그래?”
“자연스럽게 꽃가게에서 도매상으로, 도매상에서 화훼 농가로 문의가 오고, 그쪽에서는 우리 쪽으로 문의를 하는 거죠.”
“그거라면, 은하수 농장으로 연결해 줘. 찔레장미라면, 서은주 사장이 내 대리인이니까.”
“알겠습니다. 은하수 농장과 협의하라는 거죠?”
“그리고, 파주에 무슨 자재가 도착했다는데요.”
“아, 건축 자재들이 말이군. 알았어. 내가 지금 파주로 가 볼게.”
* * *
창고 안에는 건축 자재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진석이 공간의 출입구를 개방하자, 공간 안쪽에서 일꾼들이 쏟아져 나왔다.
“공간주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언어 능력을 추가한, 일꾼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입을 갖게 되고 말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석에게 말을 걸어오는 일꾼은 단 한 명뿐이었다.
“그래, 사령관. 지난번에 부탁한 자재들이야 모두 공간으로 옮기도록 해.”
“알겠습니다.”
“일꾼들은 10분 이상은 공간 밖으로 나올 수 없으니까, 그 점 유의하고.”
“안전사고가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일꾼들에게 언어 능력이 생긴 거 맞아? 왜 한 녀석만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거지?”
-그건 공간주님의 아우라 때문입니다.
“아우라라니?”
-마치 거대한 산을 바라보는 인간의 감상처럼,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압도적인 위압감을 느끼는 거죠. 공간주님은 그들의 조물주, 창조자인 절대적인 신이니까요.
“뭐야? 그런 거였나? 그런데, 저 녀석은 잘만 말을 하던데.”
-그는 진흙과 모래 인간들 중에서 가장 용기를 가진 한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그들의 영웅이죠. 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감히 말을 걸어올 용기를 가진 영웅 말입니다.
“영웅이라고? 다른 일꾼들이 그를 영웅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지?”
-물론입니다. 그리고 그건, 공간주님 때문입니다.
“내가 왜?”
-말을 걸어오는 일꾼과 대화를 하고, 그의 말을 들어 주고, 그리고 그에게 사령관이라는 별명도 지어 주었죠. 그걸로, 그 사령관이라 불리는 일꾼은 일꾼들의 세계에서 특별한 지위를 갖게 되었습니다.
“신과 대화가 가능한 그런 존재 말인가?”
-그렇습니다. 다른 일꾼들도 이제 그를 사령관이라 부르며 따르고 있죠. 그들의 대장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한 녀석이라도 대화가 통하니 대행이네. 작업이 더 수월해질 테니 말이야.”
사령관이라고 진석이 부르는, 특별한 일꾼의 출현으로 여러 가지 작업들은 좀 더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이건, 철근이니까, 건설 현장 뒤쪽에 좀 정리해 두고. 이건, 공구함이야. 필요한 장비들이 많으니까 잘 챙겨 두라고.”
진석이 몇 가지 명령을 내리면, 사령관이 따라와서 세부적인 지시를 하는 방식이었다.
옆에서 슬쩍 엿들어 보니, 다른 일꾼들도 사령관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일꾼들은 모두 언어 능력을 얻어서 말을 할 수 있게 된 모양이었다.
하지만, 공간 안에서 신적인 존재, 그리고 그들의 창조자인 진석에게 두려움 내지는 경외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사령관이라고 불리는 그들의 영웅을 제외하고는 신적인 존재인 진석의 아우라에 감히 말을 걸지 못하는 것이었다.
지난번에 만들어 양생해 둔, 버팀 콘크리트 위에 단열재를 깔고 그 위에 철근을 올린 후 콘크리트 타설을 했다.
다시 양생을 하자, 이제 기초 바닥 작업은 완료…….
이제는 목재를 이용해, 목구조 작업을 진행……. 구조를 세우고, 합판과 단열재 작업, 그리고 외장 작업까지 일꾼들을 이용해, 스피디하게 진행했다.
상황을 봐 가며, 시간을 가속해서 단순 작업을 빨리 진행시키기도 했고, 디테일한 작업은 직접 확인해 보기도 하며 목조 건축 작업이 계속되었다.
* * *
“공간주님, 이제 외벽까지 다 완료된 것 같습니다.”
“음, 그래, 대충 모양이 나오는 것 같은데.”
집은 2층 규모의 목구조 주택이지만, 외장재는 베이지색의 스타코플렉스와 파벽돌로 마감을 해서 세련되고 깔끔한 지중해풍의 집이 되어 있었다. 지붕은 연한 붉은색의 점토 기와를 올려, 유럽의 어느 휴양지에 와 있는 그런 느낌의 집이 완성된 것이다.
“수고했어, 사령관. 일단 외관은 합격인데. 생각보다 너무 훌륭해. 내부는 어떨까?”
진석은 잘 지어진 목조 주택에 만족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인테리어는 아직인가?”
깔끔하고 세련된 유럽 스타일의 외관과는 달리, 안쪽은 아직 어수선한 모습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인테리어 자재가 더 필요합니다. 창호도 필요하고요.”
“그래, 그런 것 같군. 아무튼 수고했어, 이 정도면 큰 공사는 다 된 거잖아.”
* * *
공간을 나와 다시 꼬마 빌딩의 거실이었다.
“아, 진짜 좁구나.”
거의 일주일 만에 돌아오는 거실, 공간은 25만 평이 넘게 확장되어 있었다. 이제는 산도 있고, 오아시스에 수영장, 체육관과, 침실로 쓰는 건물, 식당 등의 건물 외에도 목조로 신축한 집도 있고, 새로 짓고 있는 목조 주택도 1층과 2층을 합해서 150평 규모로 혼자 살기에는 넓은 규모였다.
그에 비해, 여전히 좁은 꼬마 빌딩의 거실…….
처음 이사 왔을 때도 그리 넓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넓고 독립적인 공간의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이 꼬마 빌딩의 방과 거실은 점점 더 좁게 느껴졌다.
* * *
“새집요?”
“그래, 뭐, 사업도 잘되고 있잖아, 장미 수출도 잘되고, 단미 딸기 로열티도 좀 늘었지?”
“그렇기는 하죠. 회사에 여유 자금이 있기는 해요. 지난번에 가로수길 빌딩 사느라 돈이 많이 빠지기는 했지만, 인삼에서 수익이 많이 나서 다 복구된 것 같아요.”
“그래. 이번에는 서울에 괜찮은 집을 하나 사려고. 내 개인 공간으로 쓸 집 말이야.”
“뭐, 사장님 마음이죠. 주식 공개를 한 것도 아니고, 사장님 개인 사업체잖아요.”
수정 씨의 말대로, 회사라고는 하지만 주식 공개를 한 것은 아니었다. 진석이 주식 전부를 가지고 있는 1인 개인 회사로 등록되어 있는 상태였다.
회사가 더 커지면 모르지만, 당분간은 이런 상태를 유지할 생각이었다. 대규모 투자나 설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따로 외부 자금은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인 회사라도 횡령은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진석은 회사의 수익을 주주에게 배당하기로 했다. 그렇게 새집을 구매할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 * *
“준공된 날짜는 2011년이고요. 85평형에, 네 개의 룸과 세 개의 욕실이 있어요.”
“펜트하우스치고는 그리 높지는 않네요?”
“고층 아파트는 아니니까요. 대신에 보안도 좋은 편이고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아니기 때문에, 입주민 외에는 출입 제한이 잘되는 편이에요.”
“프라이버시 보호가 잘된다는 말인가요?”
“맞아요.”
송지은이라는 여자는 30대 초반 정도의 모델 같은 늘씬한 몸매를 하고 있었다. 얼핏 듣기로는 전에 레이싱 모델 출신이라는 것 같았다. 지금은 모델 일은 은퇴를 하고, 주로 강남의 고급 아파트를 관리하는 부동산 매니저였다.
“여기에 연예인들도 제법 많이 살 거든요.”
“그래요?”
“연예인이나, 재벌 2세, 3세들도 많이 살고요.”
“재벌들도 아파트에 사나요? 전, 재벌이라면, 으리으리한 단독주택에 살 줄 알았는데.”
“연세가 있으신 회장님들은 그런 곳들이 괜찮겠지만, 젊은 재벌가의 자제분들은 오히려 이런 곳을 더 선호해요. 집 안에만 있는 것보다, 아파트 단지에서 산책도 할 수 있고 커뮤니티 시설도 활성화돼서, 체육관이나 식당, 카페 등을 이용하기도 좋고.”
“부자들이 사는 아파트 단지라, 서로에 대해서는 적당히 무심하기도 하고 말이죠?”
“그렇죠. 여기에 들어올 정도면 상당한 재력이 있다 보니 남들 일에는 그리 큰 관심은 없는 경우가 많아요.”
진석은 제이에스 바이오에서 배당받은 돈으로 서울 시내에 고급 아파트나 빌라 등을 보러 다니고 있었다.
오늘 찾은 곳은 한남 블루힐…….
송지은의 말대로, 돈 많은 유명인들이라면, 나름 메리트가 있는 아파트였다. 층수가 낮은 소규모 고급 아파트 단지라 외부의 시선을 피해 조용하고 프라이빗한 생활을 원하는 부자들에는 괜찮은 곳이었다.
“단점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단점이라면, 가격이 비교적 비싸고, 소규모 아파트 단지다 보니, 나중에 환금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있죠.”
“아무래도, 무난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매매가 활발할 테니 그렇겠군요?”
“맞아요. 보통 그런 아파트 단지들이 학군이나 부대 시설들 좋고. 거래도 잘 되죠.”
“가격은 어느 정도인가요?”
“이곳은 한남 블루힐에서는 고층이고, 평수도 넓은 편이라, 시세가 60억 정도죠.”
“유…… 육십억이나요?”
“싼 가격은 아니죠.”
진석은 아파트를 둘러보았다. 단지가 아담하고 성공한 사람들만이 사는 고급 빌리지, 외부와는 차단된 그들만의 섬 같은 곳이었다.
“여기 말고, 다른 곳도 보고 싶은데…….”
* * *
두 번째로 송지은이 소개한 곳은, 초고층 건물의 레지던스형 아파트.
차를 타고 가며, 진석은 우뚝 솟은 거대한 건물을 바라보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는 스카이캐슬 타워. 진석이 가는 곳은 스카이캐슬 타워 레지던스였다.
지하 1층의 전용 로비를 거치자, 역시 레지던스 전용의 엘리베이터가 나왔다.
“일단 42층까지 올라가야 해요. 이건 스카이캐슬 레지던스 키를 가진 사람만 사용할 수 있죠.”
송지은은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거기서 또 엘리베이터를 갈아타야 하는 거죠? 보안이 완벽하네요.”
층수가 엄청난 빌딩이라, 초고속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42층까지 불과 수십 초 만에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다시 로비가 나오고, 우편함의 모습도 보였다. 여기서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스카이캐슬 레지던스에 갈 수 있는 것이다.
구조적으로 완벽하게 외부가 차단된, 마치 하늘 위의 성 같은 느낌이었다.
“블루힐도 그렇고, 최고급 아파트들의 특징은 보안이군요. 아니, 분리라고 해야 하나요.”
“그렇죠. 특권이라는 건, 그걸 갖지 못한 사람들을 배제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거니까요. 자, 다 왔네요.”
송지은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멋진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거실 자체가 멋지다기보다는 거실 창으로 보이는 한강의 아름다운 모습…….
“날씨도 화창하고, 와, 한강이 한눈에 들어오네요.”
서울 토박이인 진석도 스카이캐슬 레지던스의 거실에서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한강 전망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 멋지죠. 여기는 공급면적은 100평, 전용 면적은 75평이에요. 방이 4개 욕실이 3개고요.”
블루힐과의 차이라면, 면적보다도 그 높이에 있었다. 압도적인 고층의 위치에서 내려다보이는 한강의 전망.
“서울 하면, 한강이고. 한강이 한눈에 보이는 한강 뷰가 서울의 아파트라면 최고의 전망 아닐까요?”
“그렇겠군요. 여기는 가격이 어느 정도인가요?”
“이건 90억 정도예요.”
“엄청나군요. 어딘지 비현실적인 숫자네요.”
“하지만, 상징성과 희소성이 있는 곳이라, 그만한 가치는 있는 곳이죠. 이런 위치에 이런 건물은 다시 들어서지 못할 거라고 하니까요. 가격이 엄청나지만 더 오르면 올랐지, 떨어지지는 않을 거라고들 하죠.”
내부 인테리어가 훌륭하기는 하지만, 블루힐이나 다른 아파트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비싼 가격이었다. 과연 이 정도 가격의 아파트에 살 가치가 있는 걸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
하지만 동시에 거실이나 방에서 내려다보이는 압도적인 한강의 조망은, 말 그대로 신의 세계에 올라와 있는 그런 기분이었다.
“어떠세요? 여기보다, 저렴한 고급 아파트들도 많이 있어요.”
“결정하기가 좀 어렵네요. 조금 생각할 시간을 주시죠.”
“후후. 얼마든지요. 그렇게 쉬운 결정은 아니죠.”
* * *
공간에 짓고 있는 목조 주택에 필요한 인테리어 자재들의 양도 상당했다. 전구나 벽지, 문과, 창호까지 신경 쓸 것들이 어마어마했다.
“이래서, 전문 시공 업체에 맡기는 거군.”
건축 작업은 일꾼들이 다 하고 있고, 진석은 자재들을 구매하는 일만 하는데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하지만, 하나하나 리스트를 만들어가며 필요한 자재를 사고, 새로 지은 집에 들어갈 냉장고나 소파 등의 가구도 구매했다.
새로 사들인 물건들은 파주 물류 창고를 통해 공간으로 차곡차곡 옮겨지고 있었다.
공간에 도착하자, 사령관이 마중을 나왔다. 공간의 시간은 진석이 나가 있는 동안은 멈추어 있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진석은 신인 동시에 시간 그 차제인 것이다.
진석이 공간에 들어가자, 다시 시간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부 인테리어 작업이 진행되고 목조 주택 앞에는 널찍한 데크도 시공되었다. 데크 위에는 테이블과 의자, 파라솔까지 설치해서 더 여유 있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인테리어는 잘돼 가고 있는 거지?”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지시를 하고 있는 사령관에 진석이 말을 걸었다.
“거의 다 완료되어 가고 있습니다.”
진석은 데크 위의 의자에 앉아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일꾼들의 감독 역할을 하는 사령관 덕분에 진석의 일은 많이 줄어들었고 이렇게 작업을 지시하고 쉬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래, 잘하고 있어. 이제 마무리만 하면 될 것 같아.”
“저, 공간주님,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또? 인테리어에 필요한 자재에 가구랑 가전제품도 다 가지고 왔는데?”
“전기가 문제입니다.”
“전기?”
“아무래도, 집 앞에 설치한 가로등도 있고, 가전제품 숫자도 많아지고, 전력 사용량이 많아져서 전기가 부족할 것 같습니다.”
“그거라면, 발전기를 더 사 와야겠군.”
지금까지는 양수기를 돌린다든가, 냉장고 등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전기는 가솔린 발전기를 돌려 그럭저럭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새로 집도 짓고, 체육관에 에어컨도 더 늘리고, 식자재를 저장할 저온 창고도 짓고 했더니 전기가 부족해진 모양이었다.
소형 발전기를 더 사서 돌리면 되는 일이기도 했지만 앞으로 공간에 건물이나 시설을 늘리다 보면 전기는 점점 더 부족해질 것이 분명했다.
“음, 전기를 자체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전기 말씀이십니까?”
“그래, 작은 발전기를 돌리는 건, 좀 난잡한 것 같아. 커다란 발전기 하나로 해결하면 좋잖아.”
이참에 발전소를 하나 만들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못 할 것도 없었다. 좀 복잡하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발전소를 만들게 된다면, 어떤 종류를 만들어야 하는 거지? 화력은 좀 그렇고, 역시 태양열을 이용하는 편이 좋으려나? 수력 발전은 강이 없으니 불가능…….
아니지. 진석은 멀리 보이는 산을 바라보았다.
공간에서 가장 높은 그리고 유일한 산의 모습이 진석의 눈에 들어왔다. 산 위에서 물이 흘러내린다면, 자연스럽게 댐처럼 물의 위치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걸로 터빈을 돌리면 전기가 생산되는 가장 기본적인 발전소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산 위쪽에서 물이 샘솟게 할 수 있는냐, 하는 것이다. 진석은 상태창을 불렀다.
“샘을 산 위에도 만들 수 있는 건가?”
-산 위에서 말입니까? 물론 가능합니다. 샘이라는 건, 지하수가 내부 압력으로 지표면으로 분출하는 현상일 뿐이니까요. 전체 지표면에서 산의 높이라는 건 그다지 큰 차이는 아닙니다.
“그래, 지하수. 그러니까 산 위에서도 샘물이 솟아오르게 할 수 있다는 거지?”
-가능합니다. 새로운 샘을 만드시겠습니까?
일단은 산 위에서 샘이 흐를 일종의 계곡을 만들어야 했다. 위쪽에서 물이 흘러내려 아래로 내려가면서 자연스럽게 작은 강을 만든다. 그리고, 그 강의 흐름을 막아 댐을 만들고 그걸로 수력 발전소를 돌리는 것이다.
“사령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예? 어떤 아이디어 말입니까?”
“수력 발전소를 만드는 거야.”
“수력 발전소 말입니까, 하지만, 그러려면 강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물론이지. 강이야 만들면 되는 거고, 일단 발전소를 만들 계획을 세워 보자고. 그리고 강물을 수로를 통해 필요한 곳으로 보내야 하니까, 수로도 새로 만들어야 하고, 할 일이 엄청 많아졌다고.”
“알겠습니다. 새로운 작업을 수행할 준비를 하겠습니다. 명령만 내려주십쇼.”
“좋아. 그 태도 마음에 들어. 일단은 좀 계획을 세워서 준비를 하자고. 괜히 엉뚱하게 일을 벌일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먼저, 집부터 완성을 해야겠지.”
* * *
“그래서, 정말, 그 90억짜리 아파트를 사시기로 한 거예요?”
이수정은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
“나도 좀 알아봤는데, 나중에 아파트 되팔 때 가격을 생각해도 스카이캐슬 타워 레지던스가 더 메리트가 있다고 하더라고.”
“왜요?”
“아무래도, 희소성이 있다는 거지. 앞으로 수십 년 동안은 그 정도 고층 빌딩 허가가 서울에서 날 일은 없다고 하니까.”
“음, 그렇기는 하겠네요. 당분간은 서울에서 가장 높은 아파트가 되겠군요?”
“그 정도 전망을 가진 아파트는 아마 나오기 힘들 거야. 그거 하나만으로 희소성이 생기는 거고, 가격도 유지될 거라는 거지. 뭐, 물론, 워낙 고가라 거래가 활발하지는 않겠지만 가치는 유지될 거라는 말이야.”
다소 무리하는 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진석이 그 정도 아파트를 살 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진석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그것은 스카이캐슬 레지던스를 계약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 * *
눈을 뜨자, 포근한 침대 위였다. 이불의 감촉도 부드럽고 잠을 잘 잤는지 몸도 아주 개운했다. 침실의 창으로 어느덧 아침 햇살이 기분 좋게 들어오고 있었다.
기지개를 켜고 거실로 나가자 비로소 새 아파트로 이사 온 것이 실감이 났다.
커피 한 잔을 들고, 거실 창가로 나가자 초여름의 아침 햇살이 한강을 타고 빛나고 있었다. 눈앞에 들어오는 것은 한강과 다리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환상적인 전망…….
커피가 입 안으로 들어오며 카페인이 뇌를 깨우고 있었다. 하지만, 각성되고 있는 뇌와는 달리 진석은 마치 점점 더 깊은 꿈의 세계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압도적이고 아름다운 전망이었다.
“서울에 그렇게 살면서도 한강이 이런 모습이라는 건, 이제야 알게 되는군.”
진석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 * *
“새집은 마음에 드세요?”
“물론이지. 민지 씨는 어때? 3호점은 할 만해?”
“예. 보시다시피, 사람들로 늘 붐비고 바빠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겠어요.”
유민지의 말대로 가로수길에 새로 오픈한 가게는 연일 사람들로 가득찬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사람이 이렇게 많아도, 돈을 내고, 뭐라도 시키는 사람은 적어요. 대부분은 여기서 책이나 보면서, 누굴 기다리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요.”
유민지는 약간 불만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상관없어. 어차피 돈이 목적은 아니었다고. 민지 씨도 잘 알잖아.”
“정말요? 진짜 사장님은 돈은 상관없어요? 전,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사실, 돈이라면, 북카페가 아니라도 벌 곳은 많았다. 장미와 딸기 모종도 잘되고 있고, 인삼 수확도 짭짤한 캐시 카우 역할을 하고 있었다.
“북카페야, 적자만 안 나면 되지. 난, 이렇게 책 읽는 사람들 보는 게 제일 좋더라고.”
“정말요?”
“그래. 그러니까 민지 씨도 맘 편하게 일하라고.”
* * *
“이번엔 또 뭘 만드실 건가요?”
공간에 들어가기 전에, 건축 자재상을 찾아, 필요한 것들을 고르고 있었다. 이번에 공간에서 건설하려는 것은 소형 댐이었다.
공간의 산 위에 샘을 흐르게 만들고, 그 물을 이용해서 수력 발전소를 만들 생각이었다.
“프란시스 터빈이라? 사실, 이런 건 저도 처음 들어 보네요.”
건축 자재상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진석이 부탁한 프란시스 터빈을 구해 주었다.
“이 터빈이라면, 소규모 수력 발전용으로 쓴다는데, 설마 수력 발전소를 세울 생각인가요?”
“예. 시골에 땅이 좀 있는데 계곡에 흐르는 물로 작은 댐을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발전기도 돌리고 말이죠?”
공간의 문이 열렸다. 일단 일꾼들을 데리고 산으로 향했다. 일단은 샘을 치솟게 만든 후에 물이 흘러갈 수 있는 수로를 만들 생각이었다.
“공간주님, 수력 발전소를 만드실 겁니까?”
“그래, 사령관. 일단은 좀 단순하게 전기를 생산할 시설을 만들어야겠어.”
“명령만 내려주십쇼.”
수력 발전은 기본적으로 물의 위치 에너지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산에서 흐르는 물의 경우 낙차가 큰 상류에서 물의 속도와 위치 에너지를 직접 이용해서 전기를 생산할 수도 있고, 중하류에 댐을 쌓아 물을 가두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전기 발전용으로 사용하는 방식도 있었다.
비교적 상류 쪽에 낙차를 이용하는 방식은 기술적으로 어려운 편이었다. 그보다는 물을 자연스럽게 오아시스 쪽으로 흘러 들어가게 만든 후에, 중간에 댐을 설치해서 안정적으로 물을 이용한 발전을 하는 쪽을 선택했다.
“여기 정도가 좋겠는데.”
진석은 상태창을 불렀다.
“여기에서 물이 흘러나와서, 이쪽 방향으로 내려가면 될 것 같아.”
-물이 솟는 샘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산 위에 평평한 공간에서 땅으로 에너지가 모이는가 싶더니, 굉음과 함께 땅속에서 샘이 치솟기 시작했다.
물은 제멋대로 흘러내려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오아시스까지 물이 온전하게 흐를 것 같지가 않았다.
산 위에서 정확하게 오아시스로 물이 흘러내려 가려면 물길이 필요했다.
“이봐, 사령관. 일꾼들을 동원해서 수로를 파야겠어.”
“알겠습니다, 공간주님.”
먼저 일꾼들이 땅을 파서 물길을 오아시스 쪽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이번에 생로 생긴 샘은 이전에 만든 샘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수량이 풍부했다.
그 물들이 산의 계곡을 타고,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어느덧, 강이라고 하기에 좀 작지만, 작은 강이 만들어졌다. 진석이 만든 강은 가파르게 산을 내려가더니, 점점 완만해지며 유유히 오아시스까지 물을 전달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사령관이 일꾼들을 통제하면서 본격적으로 댐을 건설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진석이 어렵게 구해온 것은 프란시스 터빈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수차형 발전 장치였다.
미국에서 1890년대에 개발된 것으로 구조가 아주 심플했다. 일단 일정한 물의 흐름만 있으면, 그걸로 간단하게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일종의 물레방아 같은 것이었다.
먼저 사전 작업으로 산에서부터 한참 내려와 이제는 완만한 평지를 달리는 강의 앞길을 막고 댐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소형 댐이 만들어지고, 강의 물줄기를 통제할 수 있게 되자, 댐 앞쪽에 터빈을 달고 물을 방류하기 시작했다.
“터빈이 돌아가는군요.”
작업을 지휘하던, 사령관은 수차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감탄을 했다. 진석이 생각한대로 아주 심플한 초기 버전의 수력 발전 장치가 만들어진 것이다.
소형의 수력 발전소는 500㎾ 규모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었다. 보통 일반적인 가정에서 한 달에 300에서 500㎾를 쓴다고 하니까, 시간당, 500㎾ 한 달이면, 720가구 정도가 쓸 수 있는 전력 생산이 가능한 셈이었다.
하지만, 총생산량이 그 정도라는 것이고, 전기는 창고에 저장할 수 있는 성질의 에너지는 아니었다. 대신 진석은 생산한 전력을 최대한 저장하기 위해, 리튬 이온 배터리를 이용한 2,000㎾짜리 전력 저장 장치를 설치했다.
“이 정도면, 당분간 전기 걱정은 없을 거야.”
진석의 말에 사령관도 고개를 끄덕였다.
수력 발전소가 가동되고, 전기 공급도 충분하고, 진석의 목조 주택도 내부까지 모두 완성이 되었다. 수력 발전으로 얻은 전기로, 에어컨이나 냉장고도 충분히 가동할 수 있었고, 필요한 전기는 모두 충당할 수 있었다.
* * *
진석은 새로 이사 온 스카이캐슬 레지던스에도 추가로 공간으로 연결되는 출입구를 만들었다. 공간에서 돌아오자, 넓고 전망 좋은 아파트가 진석을 맞아주고 있었다.
거기에 이곳 스카이캐슬 레지던스는 호텔식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는 시스템이라, 사실상 호텔에 거주하는 느낌이었다. 그런 점이 독신인 진석에게는 여러모로 편리한 곳이었다.
진석은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레지던스 전용 레스토랑을 찾았다. 조식 메뉴는 간단한 샐러드와 토스트, 커피를 주문했다. 단출한 식사지만, 전망이 좋은 위치와 레지던스 주민들만 이용하는 특권을 누리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게 식사로 토스트를 반쯤 먹었을 때쯤이었다.
옆자리에 누군가 앉는 것 같아 힐끔 쳐다보았는데, 서태준이잖아.
옆자리에 아무렇지 않게 역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은 한류 스타 서태준이었다.
영화배우 겸, 가수로 아시아 전역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말 그대로 한류스타였다.
이곳 스카이캐슬 레지던스의 가격이 평균 100억 이상이라고 하니, 입주민들도 사회에서 성공한 엘리트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적어도 돈이라는 측면에서는 그랬다.
연예인 중에는 서태준 같은 한류 스타급이 되어야 이런 곳에 살 수 있는 셈이었다.
* * *
“그래서, 사인은요?”
“사인?”
“서태준 오빠를 만났다면서요? 당연히 사인을 받아 오셨어야죠. 아니, 저, 사장님 집에 집들이 갈래요.”
입주민 전용 식당에서 아침에 서태준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자, 이수정은 대뜸 집으로 찾아오겠다는 것이었다.
“하하. 집들이는 됐고. 이번에 장미사과 1천 상자를 가져왔으니까, 아토피 커뮤니티에 통보 좀 해 줘. 필요한 사람들 있으면 구매하라고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사장님.”
“난, 시골에 좀 갔다 올게.”
“부모님 댁에요?”
“그래. 아주 급한 일 아니면 연락하지 말고.”
* * *
“잔디가 잘 자랐네요.”
부모님 집을 지으면서 마당에 깔아 놓은 잔디가 여름을 맞아 파릇파릇하게 돋아나고 있었다. 새로 잔디를 깎았는지, 잔디들은 일정하게 높이를 맞추어 깔끔한 모습이었다.
“오늘은 하루 자고 가는 거지?”
“하하. 저녁 먹고 올라가 봐야죠.”
“일은 잘되는 거냐?”
“예. 이번에 새로 좋은 아파트도 하나 샀어요.”
“그래?”
“아마 보시면 깜짝 놀라실 거예요. 언제 한번 놀러 오세요.”
“뭐, 나는 서울은 이제 별로다. 시골이 더 좋아.”
“참, 지난번에 제가 가져다 드린 사과나무 묘목은 잘 자라죠?”
아버지 과수원에 심어 보시라고, 장미사과 10그루를 드렸던 적이 있었다.
“잘 자라기는 하는데, 사과나무라는 게 크려면 오래 걸리지.”
“하긴, 그렇죠.”
“사과나무라는 게 묘목 심고, 3년 차가 되어야 꽃이 피고, 사과 수확은 4년 차에나 가능한 거란다. 그리고 열매가 맺혀도 양이 적어서, 7년 차는 되어야 제대로 수확이 가능해.”
“하하. 기본이 7년이네요.”
아버지 말씀대로, 정상적인 과정을 거치면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얻는 데 7년의 세월이 걸리는 것이다. 농업이라는 것이 생산 주기가 긴 사업인데, 그중에서도 사과 과수 농업은 특히 그 주기가 길다.
장미사과 나무는 잘 자라고는 있었지만, 공간에서처럼 시간을 가속하기 전에는 당분간 열매를 맺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진석은 아버지 과수원을 한번 둘러보았다. 전에는 몰랐는데, 여기저기 손이 많이 가고 관리가 잘된 느낌이었다.
“과수원 일 힘들지 않으세요? 이제 그만하셔도 되는데, 돈이라면 제가 충분히 벌잖아요.”
“돈 때문에 하는 게 아니야. 이제는 이 나이에 직장 다닐 곳도 없고 여기서 과수원 일을 하면 운동도 되고 시간도 잘 가서 나 같은 노년에게는 이만한 곳이 없다. 여기 아니면 노인정이나 가야 돼.”
“아직 젊으신데요. 노인정은 좀 아니죠. 여행이라도 다니시면 좋잖아요. 유럽이라든가? 아버지 아직 유럽 여행 안 가 보셨잖아요.”
“난, 이런 시골이 더 편해. 지금 하는 과수원 일이 힘도 안 들고, 심심하지도 않아서 딱이고. 그나저나 너 이거나 좀 먹어 봐라.”
아버지는 과수원 한편으로 가시더니, 뭔가를 따 오셨다.
“복숭아네요.”
“그래, 천도복숭아야. 전에 이웃 사람이 맛있는 복숭아라고 묘목을 준 걸 심어놨는데 올해 제대로 열렸더구나. 한번 먹어 봐.”
진석은 아버지가 내미신 천도복숭아를 한 입 베어 물었다.
“흠. 약간 새콤한 게 맛있네요.”
“괜찮지? 나도 이렇게 맛있는 천도복숭아는 처음이더라고. 너 오늘 올라갈 거면, 좀 따가지고 가.”
어느새, 아버지는 바구니를 가져와 복숭아를 따서 담고 계셨다.
* * *
스카이캐슬 타워 레지던스 전용 로비로 들어서자, 경비원들이 진석에게 인사를 했다. 진석은 시골에서 받아온 복숭아 상자를 들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아파트로 들어가자 거실 밖으로 멋진 한강의 전망이 진석을 맞아 줬다.
“여기는 들어올 때, 기분이 좋다는 말이야.”
진석은 옷을 갈아입고, 공간의 출입구를 열었다.
수력 발전소는 잘 작동하고 있었다. 진석의 목조 주택의 에어컨도 잘 가동되고 있었다. 진석은 시원한 거실 소파에 누워 천도복숭아를 먹기 시작했다.
약간 새콤하고 달콤한 맛이 나는 복숭아는 씨는 모아서, 산으로 가져가 심을 생각이었다.
공간의 면적은 꾸준히 확장되어서 이제는 32만 평 규모까지 커져 있었다. 공간을 돌아다니려면, 이제는 걸어서 다니기는 좀 먼 거리들이어서, 진석은 자전거를 가져와 이용하고 있었다.
진석은 일꾼들이 탈 자전거도 100대 정도 들여왔다. 같이 일꾼들과 이동하기 위해서였다.
“어디로 가십니까?”
진석이 자전거를 꺼내 타고 나오자, 사령관도 자전거를 준비하며 물었다.
“어, 산에. 복숭아나무를 좀 심어 보려고.”
“알겠습니다. 곧 준비하겠습니다.”
진석이 먼저 산 쪽으로 자전거를 타고 출발하자, 뒤이어 역시 자전거를 탄 수십 명이 따라붙었다.
산까지 가는 길은 이제 오아시스까지 작은 강으로 이어져 있었다. 강을 따라, 쭉 가다 보면, 수력 발전소로 쓰는 소형 댐이 나오고 산까지 강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얼핏 봐서는 한적한 시골 풍경이었다. 야트막한 산은 입구부터 장미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진석이 심어 놓은 흑판수와 그 위쪽으로 사과나무들, 그리고 토종벌 집 수백 개를 만들어 놓아서인지, 여기저기 윙윙거리는 벌들의 소리도 들려오고 있었다.
야트막한 산은 말 그대로 꽃과 나무들의 천국 같은 곳이었다.
“공간주님, 천도복숭아는 어디에 심으실 생각이십니까?”
“그러게. 이렇게 보니까, 산이 너무 좁은데…….”
복숭아나무 하나 정도가 아니라, 증식 작업을 거쳐 수백 그루를 심을 거라 여기저기 나무들과 벌통들이 들어차 있는 산이라는 공간은 여유가 없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평지에 심으면, 공간 에너지의 영향으로 신비한 힘이 생기는 산과 달리, 특별한 특성은 생기지 않을 것 같고. 지금 심으려는 천도복숭아는 산에 심어서 특별한 열매를 얻고 싶은데 뭔가 곤란한 느낌이었다.
진석은 상태창을 불렀다.
<『로또 1등 농업재벌』 2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