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120억요?”
“그만한 가치가 있는 빌딩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가격이 엄청나네요.”
100억이 넘는 건물을 사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진석의 제이에스 바이오는 그동안 딸기 모종 사업으로 꾸준히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거기에 부동산 중개업자의 말대로, 은행에서 대출까지 받으면, 그다지 부담이 되는 금액은 아니었다.
“좋습니다. 이 건물로 하죠. 계약하겠습니다.”
새로 산, 빌딩은, 진석이 처음으로 산, 꼬마 빌딩과, 도보로, 15분 정도 거리였다.
하지만, 조용한 주택가 뒤편인 꼬마 빌딩과 달리, 화려한 홍대 번화가 중심에 있는 건물이었다.
진석이 원하던 빌딩이었다. 무엇보다 유동 인구가 많고,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그런 화려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북카페를 만들기에는 좋은 곳이었다.
요새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이 줄기는 했지만, 북카페는 성업 중이었다.
꼭 책을 읽으러 왔다기보다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책을 보는 사람들이 많다.
책이나 읽을거리가 넘치는 세상이라, 이런 틈새시장이 오히려 주류가 되는 느낌이었다.
* * *
건물의 1층과 2층은 기본적인 북카페로, 음료를 마시며,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고, 3층은 개방형 무료 도서관으로 누구나 책을 읽고 자율적으로 책을 빌릴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들었다.
4층과 5층은, 제이에스 바이오의 사무실 등으로 사용하고, 6층의 펜트하우스는 진석의 개인 사무실과 직원 휴게실을 만들었다.
지하 공간은 창고 겸, 서고, 그리고 건물 앞쪽에는 24시간 운영되는 도서 반납함도 만들어 두었다.
“사장님, 역시 새 건물이라, 냄새부터 좋은데요.”
“완전히 새 건물은 아니고, 전 주인 리모델링을 했다고는 하더라고.”
어찌 되었든, 서울 시내, 홍대 거리에 이런 빌딩을 소유하게 되다니, 진석은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이래서 건물주, 건물주 하는구나.”
“건물주가 되니까, 좋으세요? 사장님.”
이수정과 유민지는 사무실 정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뭐랄까? 나만의 성이 하나 생긴 기분이라고, 마치 중세의 영주가 된 기분이랄까.”
“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빌딩과 성은 어딘지 비슷하잖아요. 그리고 나름 부와 권력을 상징이기도 하고요.”
“하하, 뭐, 그 정도까지야.”
“그나저나, 여기 빌딩 이름은 뭘로 하실 거예요?”
“빌딩 이름?”
“이제 사장님이 이 빌딩 주인이잖아요. 진석 빌딩? 아니면 제이에스 빌딩?”
“음, 오아시스 어때?”
“뜬금없이 오아시스는 왜요?”
“난, 이 빌딩에 말하자면, 삭막한 도심에 뭔가 힐링과 여유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거지.”
“북카페를 말하는 거죠?”
“그런 셈이지.”
유민지의 말대로, 빌딩의 주인이 되는 것은, 뭔가 권력을 얻은 기분이었다.
특히 6층의 펜트하우스에서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두렵게만 느껴졌던 세상이 내 발아래에 있는 묘한 쾌감 같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빌딩을 산 덕분에, 그동안 벌어둔 돈은 거의 다 바닥이 나고 있었다.
뭐 돈이 될 만한 게 없을까?
진석이 가진 공간을 이용하면, 여러 가지 작물을 단기간에 재배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걸 판매하면, 뭔가 돈벌이가 될 것 같기는 했다.
* * *
“매번, 김밥을 많이 사 가시네요.”
자주 가는 편의점 알바생은 진석을 알아보고 미소를 지었다.
“아, 뭐, 김밥을 좋아해서요. 매번, 제가 다 쓸어가는 것 같네요.”
“뭐, 저희는 잘 팔리면 좋은 거죠.”
진석은 공간에 가기 전에, 김밥이나 샌드위치, 음료수 같은 것들을 잔뜩 사 들고 들어가고는 했다.
현실에서는 잠깐, 몇 분의 시간이 흐를 뿐이었지만, 진석이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은 며칠이나 몇 주가 되는 경우도 있어서, 충분한 식량을 준비해야 했다.
아직 공간에는 딸기와 쌈 채소, 야자열매 정도를 제외하면, 먹을 만한 것은 별로 없었다.
공간으로 향하는 출입구는 두 군데뿐이었다. 파주의 임대 창고와 꼬마 빌딩의 거실 두 곳. 출입구를 더 만들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공간의 출입구에서 진석이 나오는 것을 누군가 보게 되면 문제가 될 것이 분명했다.
진석을 외계인이나 신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출입구의 수는 필요 이상으로 늘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이고, 힘들다. 이놈의 계단.”
꼬마 빌딩은 이제 온전히 진석의 차지였다.
카페와, 제이에스 사무실은 새로운 빌딩으로 이사를 했고, 이 꼬마 빌딩은, 진석 혼자 사용하는 개인 공간이 되어 버렸다.
편의점에서 사 온, 먹거리 봉투를 양손에 들고, 공간의 문을 열었다.
* * *
눈부신 햇살, 언제나 이곳은 낮이 계속되는 세계였다. 그러고 보니, 주변의 풍경은 오아시스와 비슷했다. 차이라면, 보통 오아시스에서 볼 수 있는 호수가 없다는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작은 샘들뿐이고, 큰 호수는 없네.”
-호수를 원하십니까?
“여기서 호수가 있으면, 어딘지 진짜 오아시스 분위기가 날 것 같은데, 호수를 만들 수도 있는 건가?”
-호수라는 건, 크기가 큰 샘이니까요. 지하에서 물이 나오게 하는 통로 역할이죠. 통로의 크기에 제한은 없습니다.
“그래?”
-커다란 샘, 그러니까, 호수를 원하시면 가능합니다.
“그럼, 내가 필요한 건, 지름이 한 150미터 정도의 호수면 좋겠는데, 약간 타원형으로.”
-타원형이라면, 길이를 150미터로 하고, 폭을 100미터 정도로 조정하겠습니다. 전체적으로 길쭉한 타원형을 말입니다.
“맞아, 내가 원하던 게 그런 거라고.”
-그럼, 호수를 만들 위치를 지정해 주십쇼.
진석은 잠시 고민하다가, 아직, 아무런 작물도 자라지 않고 있는 황무지 쪽을 가리켰다. 저기에 새롭게 오아시스를 개발할 생각이었다.
진석이 위치를 지정하자, 황무지 주위로, 기가 모이기 시작하더니, 땅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땅이 흔들리며 아래로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땅이 갈라진 사이로, 물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와, 대단한데. 땅이 갈라지고 있어.”
-곧 공간주님이 원하시는 호수의 형태가 나올 겁니다.
상태창의 말대로, 지반이 붕괴하며 거대한 웅덩이가 만들어지고, 그 웅덩이는 지하에서 솟아오른 물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흙과 물이 뒤섞여, 흙탕물이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천히 잠잠해지는 느낌이었다.
“뭐야? 다 된 건가?”
진석은 새로 생긴 호수를 바라보았다. 진석이 원한 길이 150미터 정도의 아담한 호수였다. 하지만 진석이 생각했던, 에메럴드빛의 아름다운 오아시스는 아니었다. 온통 걸쭉한 흙탕물이었다.
“뭐야? 이건, 무슨 동물에 왕국에 나오는 지저분한 물울덩이잖아?”
-지금 막, 만들어져서 흙탕물이기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흙이 개이고 맑은 호수가 될 겁니다.
“그래.”
진석은 기다리기 지루해서, 호수 주위의 시간을 가속시켰다. 1주일 정도 시간을 가속시키자, 정말, 호수는 흙빛이 사라지고 맑은 호수로 변해 있었다.
“오, 내가 원하던 오아시스는 이런 거지.”
그다음은, 오아시스 주위에, 야자수를 심는 일이었다. 진석은 일꾼들을 동원해, 새로 생긴 오아시스 호스 주위에, 야자수를 심기 시작했다. 역시 시간을 가속해서, 야자수들은 금세 호수 주위로 자라났다.
“그리고, 뭐가 더 있으면 좋을까? 그래, 장미도 심고…… 그리고 이 주위에 건물도 지어야겠군.”
오아시스 주위에 나무와 꽃을 어느 정도 심어서 가꾸고 나자, 멋진 휴양지에라도 온 느낌이었다.
거기에 진석은 진흙으로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진흙 건물을 원하시면 짓고 싶은 건물의 이미지를 떠올려 주십쇼.
지난번에 지은 건물은 단순한 사각형이었지만, 그후로, 진석은 건축에 관한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나름 건물의 구조에 대해서 연구를 했다. 특히, 고대에 흙으로 지은 중동의 건물들을 많이 찾아보았다.
진석은 머릿속으로 고대의 흙으로 만든 건축물들을 참조해서, 진흙으로 지을 건물의 이미지를 상상해 보았다.
-이미지 스캔을 완료했습니다. 건물을 출력하시겠습니까?
“그래, 건물을 출력.”
진석이 명령을 내리자,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작은 지진이 일어나는 느낌이었다. 진석이 떠올린 건물은, 이번에 홍대에 산, 오아시스 빌딩과 거의 비슷한 면적의 3층 건물이었다. 크기가 커서인지, 땅속에 지진이 나며 메마른 땅이 갈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갈라진 땅속에서, 커다란 진흙 건물이 위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옥상부터 모습을 드러낸 건물은, 천천히 위로 올라오며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아래에서부터, 젖어 있던 흙이 마르기 시작하며, 단단한 구조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건물이 다 마르고 나자, 진석은 입구로 들어가 보았다. 역시나 진석이 상상한 이미지와 완전히 같은 모습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홀이 나오고, 그 뒤로 계단이 있어서,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구조였다. 그렇게 계단을 올라, 3층까지 올라가 보았다.
산이 없는 평지만 있는 이 공간에서 3층의 건물은 가장 높은 위치였다.
유리창은 없지만, 창이 난 곳으로 얼굴을 내밀어 밖을 내려다보자, 진석이 이제 막 개발하기 시작한 오아시스 일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에메랄드빛의 맑은 호수와 그 주위의 둘러싼 무성하게 열매를 맺은 야자수들, 그리고 그 아래로 자라난 장미를 비롯한 여러 가지 꽃들까지.
오아시스는, 진석의 눈을 즐겁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와, 이건 한 폭의 그림이잖아.”
진석은 휴대폰으로 오아시스의 아름다운 풍광을 찍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십니까?
“기대 이상인데…….”
사실, 이 모든 게 진석의 상상력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전체는 언제나 부분 이상이라고 했던가?
하나하나의 부분들은 진석의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와 이미지들이었지만, 그것들이 모두 조합된 전체의 모습은 진석이 처음에 상상했던 그 이상의 것이 되어 있었다.
* * *
“사장님, 은하수 농장에서 전화 좀 해 달라고 하던데요.”
“어, 그래?”
공간에 있는 동안은 휴대폰 연결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공간에 간 사이, 회사 사무실로 연락해 달라는 메시지가 오는 일들이 많았다.
“여보세요. 이진석입니다.”
-서은주예요. 아까는 전화 안 받으시던데요.
“아, 잠깐, 자고 있었나 봐요.”
-이 시간에요?
“낮잠을 자주 자요. 낮잠이 몸에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요? 하긴, 스페인 같은 곳에서는 낮잠 자는 시간이 따로 있다고 하더라고요.
“하하, 그렇죠. 그나저나 지난번 찔레장미는 잘 자라고 있죠?”
-예,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찔레장미를 출시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아요.
“그래요?”
-예, 다른 농장에서도 이거 어디서 구한 거냐고 막 물어보고요.
“좋은 소식이네요.”
-그래서, 제가 모종을 구해 주겠다고 했는데, 그래도 되는 거죠?
“물론입니다. 그러면 더 좋죠.”
찔레장미는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했다. 특유의 찔레 향기가 신선하다는 반응이라는 것이었다. 아직은 시작 단계지만, 이 정도 반응이면, 본격적으로 장미 모종을 출하해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였다.
-참, 그리고. 제가 선물 하나 보냈어요.
“선물요?”
-예, 그냥, 제 취향으로 골랐는데, 사장님이 낮잠을 잔다고 하니까, 제가 잘 보낸 것 같네요.
“예?”
-택배가 도착했을 텐데……. 한번 확인해 보세요.
“그래요? 수정 씨, 혹시, 나한테 택배 온 거 있어? 은하수 농장에서 보냈다는데.”
-아, 그거요. 저기 책상 위에 있는 상자요. 한번 열어 보세요.
“선물이라? 서은주가 대체 뭘 보낸 거지?”
“뭐지? 인삼이잖아.”
서은주가 보낸, 상자에는 뜻밖에도 인삼이 들어 있었다.
“뭐야? 이게…….”
“음, 인삼이네. 몸에 좋은 거네요. 사장님, 원기 회복하라고 보낸 거 같은데.”
“하하, 인삼이라……. 내가 그렇게 빌빌해 보였나.”
“아무렴 어때요? 인삼 먹어서 나쁠 건 없잖아요. 이거 면역력 강화에도 좋다던데요. 무슨 사포닌인가 그런 게 있다잖아요.”
“그래? 수정 씨, 인삼에 대해 좀 아나 보지?”
“예전에, 시골에 살 때 아버지가 삼포밭을 하셨거든요.”
“삼포밭? 인삼 키우는 밭 말이지?”
“예. 그게 제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 딱, 인삼을 심었는데 제가 졸업할 때 수확을 했어요. 아시죠? 인삼은 6년근이 좋은 거라고요.”
“와, 6년이나 키워야 한다는 거야? 오래 키워야 하는구나. 요새도 아버님이 삼포밭을 하시나?”
“아뇨, 딱 한 번 인삼을 키워 본 건데, 은근히 신경 쓸 것도 많고, 6년이나 키워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요. 태풍이라도 한 번 맞으면, 4년, 5년 키운 인삼 농사를 한 번에 망치기도 하고.”
“그렇겠네. 1년 동안 키우는 작물도, 그해의 기후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 6년이나 키우려면, 보통 일이 아니겠는데. 거기다, 인삼은 하우스에서 키우는 게 아니잖아?”
“맞아요. 그래서, 인삼 농사는 힘들다고 요새는 거의 안 하는 분위기예요.”
“그래도, 이렇게 인삼이 있는 걸 보니, 누군가는 키우겠지.”
“아버지 말로는 요새는 화기삼이 많다고 하던데.”
“화기삼은 또 뭐야?”
“예전에는 중국에서 미국 국기를 성화기라도 부른 거 아세요?”
“성화기?”
“예, 미국 국기가 그렇게 생겼잖아요. 주를 상징하는 별들이 동그랗게 모여 있잖아요. 이게 중국 사람들은, 별들이 꽃처럼 무리 지었다고 이걸 성화기라고 부르고, 미국은 화기국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요.”
“화기국이라? 별꽃 깃발을 가진 나라라는 말인가? 와, 수정 씨, 그런 건 다 어디서 들은 거야?”
“말했잖아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인삼 농사를 하셨다고. 아무튼, 중국 삼이 미국으로 건너간 걸 화기삼이라고 해요.”
“미국에서 인삼을 재배한다는 말이지.”
“예, 화기삼은, 원래 중국 삼 품종이고, 미국 토양에서 잘 자라서, 보통 3년이면, 다 자라거든요.”
“우리나라 고려인삼은 보통 6년이잖아. 더 빨리 수확하는 거네?”
“그렇죠. 하지만, 삼이나 도라지 같은 것들은 수확을 빨리하는 게 좋은 건 아니에요.”
“그건 왜?”
“인삼, 산삼, 장뇌삼, 도라지…… 이런 것들 다, 비슷한 종류들이거든요. 몸에 좋다고들 하잖아요. 그 몸에 좋다는 게, 이런 삼류에 들어 있는 사포닌 성분 때문이라고요.”
“사포닌? 그거라면, 많이 들어 본 것 같은데.”
“사포닌은 대표적으로 면역력 강화에 좋다고 알려져 있어요. 쉽게 말해서 만병통치약이라고.”
“특정 질환에 좋은 건 아니지만, 면역력이 좋아지니까, 두루두루 좋다는 말이겠군.”
“맞아요. 그런데, 사포닌은 식물에 체내에서 오래 머물수록 그 기능이 더 좋아진다고 알려져 있다고요.”
“식물의 체내에서 오래 머물수록?”
“예. 그러니까, 1년 된 도라지보다는 2년 근이 더 좋고, 그거보다는 10년 근, 도라지가 사포닌의 효능이 더 좋아진다는 거죠.”
“나이를 먹을수록, 레벌 업을 하는 사포닌이라는 건가?”
“후후. 맞아요. 그런데 문제는 도라지도 그렇고 인삼도 그렇고, 10년 이상 키우기가 어렵다는 거죠.”
“기후 때문에?”
“그런 것도 있고, 생장 기간이 오래되면, 뿌리가 썩거나, 나무같이 되는 목질화가 일어나요.”
“오, 그러면, 사포닌 효능이 레벨 업을 해도, 소용없는 거잖아?”
“그러니까요. 원래, 시골에서 10년 묵은 도라지는 산삼보다 좋다는 말이 있거든요.”
“도라지가 10년쯤 되기 전에 뿌리가 썩으니까, 10년 묵은 도라지는 산삼보다 더 귀하다는 거군?”
“예. 산삼은 좀 특이한 케이스인데, 원래, 산삼이나 인삼이나 같은 종류라고요. 단지, 산삼은 야생에서 안 좋은 환경에서 초기 성장이 더디게 진행된 거죠.”
“사람으로 치면, 어렸을 때, 잘 못 먹고 자라서 키가 작은 그런 건가?”
“그런 셈이죠. 대신에, 체구는 작은데, 작은 체구 덕분에, 노화가 더디게 진행돼서 장수한 케이스라고 할까? 아무튼, 인삼도 10년 정도 생장하면, 뿌리가 목질화가 생기는데. 산삼은 인삼보다 훨씬 크기는 작지만, 대신에, 100년 이상도 잘 자라거든요.”
“사포닌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레벨 업을 하니까, 산삼의 사포닌은 효능이 최고등급이겠군.”
“그렇죠. 인삼도 고려인삼은 6년 정도는 무난하게 자라거든요. 그래서 6년근이 최고라는 거예요.”
“화기삼은 어떤데?”
“화기삼은 3년 정도 생장시키는 게 적당해요. 고려인삼보다 빨리 자라는 대신, 더 키우면 뿌리가 썩거나 하거든요.”
“사포닌 효능도 떨어지고?”
“예. 그런데 얼핏 봐서는 6년근 고려인삼이나, 3년근 화기삼이나 구분이 안 된다는 거죠. 차이는 내부의 사포닌의 숙성 정도의 차이인데, 그건, 눈으로 봐서는 알 수 없는 거고.”
“시장에서는 화기삼이 더 유리하겠네. 키우는 기간은 절반이고 고려인삼과 외견상으로는 별 차이도 없고.”
“예. 그래서, 국내에서도 고려인삼을 6년 키우기보다는 화기삼을 심는 농가가 늘어나는 거죠. 오히려 고려인삼의 씨들은 외국에서 더 인기예요.”
“고려인삼 씨들은 외국으로 팔려나간다고?”
“예, 사포닌의 효능이 고려인삼이 좋으니까, 고급 제품을 찾는 수요를 맞추려고 우리 고려인삼 종자들을 외국인들이 쓸어간다고요.”
“반대로 우리 농가에는, 저급한 화기삼 씨들이 퍼져서, 결과적으로 질 낮은 인삼들이 유통되고 말이야.”
“맞아요. 그러다 보니 인삼 전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서 정직하게 농사짓는 분들만 손해를 보는 거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그 말이군. 후후…….”
“어머, 사장님, 그렇게 웃을 일이 아니라고요. 사장님이 선물 받은 그 고려인삼도, 사실은 3년짜리, 화기삼일지 모른다고요.”
“하하, 그래? 그건 그렇고. 수정 씨가, 인삼 재배 농가를 좀 알아봐 줘.”
“인삼 재배 농가요?”
“그래, 우리 회사에서, 인삼에 대해서 연구를 좀 해 보려고. 고려인삼 순종 품종을 구할 수 있는지 말이야. 할 수 있겠지?”
“음, 뭐, 여기저기 문의해 보면 되겠죠.”
“그래, 좀 부탁해.”
수정 씨의 말을 듣고 보니, 인삼을 재배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고려인삼은 6년을 재배해야 고품질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인데, 한 가지 작물을 6년이나 키운다는 일이 진짜 어려운 일이다.
한마디로 작물의 재배 주기가 가장 큰 난관이라는 말. 하지만 진석의 공간에서 고려인삼을 재배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6년의 재배 주기라는 건,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긴 재배 주기 때문에, 진입이 어려운 시장에 무혈입성이 가능하다. 거기다, 인삼은 세계적으로 수요가 늘어가고 있는 고부가 가치 작물, 이것은 엄청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 * *
새로 구입한 빌딩은, 오아시스 빌딩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진석 빌딩이라고 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처음부터, 진석이 생각했던, 마치 도심 속의 오아시스 같은 공간을 만들려고 했던 그 초심을 떠올리며 그렇게 이름을 정했다.
그리고 북카페 역시도 오아시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오아시스 빌딩의 북카페 오아시스…….
처음부터 북카페는 돈을 벌려고 만든 것이 아니었다. 진석의 진짜 목적인 책으로 위장한 시간 포집기를 널리 퍼뜨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게 만들어, 그들의 시간 포인트를 포집하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음료의 가격도 저렴하게 하고, 사람들이 책을 읽기 편한 환경을 조성하고, 무료로 책을 대여하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진석의 숨겨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준비를 해 나갔다.
그런 노력 때문인지, 진석의 북카페 오아시스는 금세 입소문을 타고 홍대 주변을 찾는 젊은이들의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대부분은 책에 관심이 있어서 오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저, 화려한 밤을 보내기 위해 저녁부터 주변을 서성이는 친구들이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곳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곳에 비치된, 시간 포집기들은 최신 서적이나 흥미로운 책들로 위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들어온 사람들도 책들을 읽으며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시간을 포집당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포집된 시간들은 모두 진석의 시간 포인트가 되어 저장되고 있었다.
“저거, 소설가, 양지훈이잖아?”
“저기는 가수 샘 윤도 있네.”
위치가 홍대 근처여서 그런 건지 가끔, 북카페 오아시스에는 셀럽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의 모습도 종종 보였다. 그리고 여러 경로를 통해 분위기 좋은 북카페라고 소문이 나면서 진석과 북카페 오아시스를 취재하려는 기자들도 찾아왔다.
* * *
“서울문화 신문, 장연우 기자입니다.”
“하하. 반갑습니다. 북카페를 취재하고 싶다고요?”
제이에스 바이오의 사무실로, 먼저 문의 전화가 왔고, 진석도 나쁘지 않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다.
“카페가 예쁘네요. 공간도 꽤 넓고요.”
“어렸을 때, 이런 북카페를 창업해 보는 게 꿈이었어요.”
“그래요?”
“예. 사실은, 이렇게 큰 건 아니었고 그때 상상해 보았던 건, 아주 작은 카페였죠. 헌책방 같은 걸 사서, 앞에 테이블 몇 개를 내놓은 노천카페 같은 거요.”
“꿈보다 훨씬 더 성공하셨네요.”
장연우는 20대 중반 정도로, 키가 크고 늘씬한 여자였다. 약간 서구적인 체형에 얼굴도 시원시원하고 몸매가 좋고 다리가 길어서 입고 있는 청바지가 무척 잘 어울렸다.
“그런 셈이죠.”
“북카페 오아시스가 요즘 홍대 일대에서 핫플레이스가 되었는데, 비결이 있을까요?”
“비결요? 뭐, 일단은 원래 여기가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이고요. 그동안은 위치가 좋은 곳이라 대부분 상업성이 짙은 그런 매장이 많이 있던 곳이죠. 화장품이나, 휴대폰 매장이라거나 단기간에 빨리 판매할 수 있는 그런 상가들요.”
“그런데, 이진석 사장님은 북카페를 여셨어요. 음료나 케이크 가격도 저렴하고.”
“돈이 목적은 아니니까요.”
“그럼, 목적이 뭔가요?”
“아, 그건…….”
물론 진석의 목적은 시간 포인트를 얻는 것이다. 그걸로 공간을 더 확장하고 여러 가지 관리 능력을 얻어서 공간을 더 풍요로운 곳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제 목적은, 사람들이 좀 더 힐링하고, 자유로운 상상력을 갖게 하는 거죠.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요.”
“책을 많이 읽게 해서 말이죠?”
“뭐, 책 속에 해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책을 읽는 일은 현실로부터 좀 벗어나는 시간을 갖는 거니까요. 그것만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좋은 일, 하고 싶은 일 하시는 건 부러운데, 이런 빌딩 수백억 하지 않나요?”
“뭐, 그렇습니다.”
“나이도 젊으신 것 같은데. 빌딩을 구입하는 비용이나 카페를 창업하는 비용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혹시 재벌 3세나 아니면, 비트 코인으로 대박 난 갑부라거나?”
“하하. 뭐. 그런 종류는 아니고요. 농업에 관련된 회사를 하고 있습니다.”
“농업요?”
“제이에스 바이오라고, 생명 공학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고 종자를 개발하거나 모종을 만드는 그런 일을 하는 회사죠. 농업 회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단미 딸기라는 걸 만드신 회사죠?”
“예. 알고 계시는군요. 먹어 보셨나요?”
“그럼요. 딸기를 원래 좋아하는데, 요즘은 그 딸기가 제일 맛있더라고요. 마트에 가면, 제일 비싸게 팔더라고요.”
“하하. 좀 딸기가 비싸기는 하죠.”
“흠, 딸기로 대박이 나셔서, 이런 빌딩도 사고 취미 삼아 어릴 적 꿈인 북카페도 창업했다. 이렇게 생각해도 될까요?”
“뭐, 대충 비슷합니다. 하하…….”
* * *
“수정 씨, 부탁한 고려인삼 종자는 알아봤어?”
“예, 아주 어렵게 구했다고요.”
수정은 금산까지 찾아가, 고려인삼 씨앗을 구해 왔다고 했다.
“씨앗 구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인터넷으로 구매해도 되지만, 기왕이면, 진짜 고려인삼 씨앗인지 확인도 할 겸, 인삼 재배하는 농가를 직접 찾아가서 씨앗을 얻어 왔다는 거죠. 최상품으로요.”
어쨌든, 믿을 만한 종자를 구해 온 모양이었다.
그다음은, 삼포밭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자재들을 구하는 일이었다. 다행히 이수정이 씨앗을 구해 온, 금산의 인삼농장에 연락처가 있었고, 그쪽에 문의해 보기로 했다.
-제이에스요? 삼포밭을 만드시려고요?
“예, 제이에스 바이오라고, 얼마 전에 고려인삼 종자를 구매한 곳입니다.”
-음, 삼포밭은 어느 정도 규모로 하실 생각인가요?
“1만 평 정도로 계획하고 있는데. 필요한 자재들을 구매할 수 있을까요?”
-1만 평이요? 필요한 자재들은 제가 거래처를 소개시켜 드리죠.
“감사합니다. 조만간 제가 직접 찾아뵈러 금산에 가겠습니다.”
다행히, 인삼 씨앗을 구한, 농장에서 삼포밭에 필요한 자재들을 구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삼포밭을 만들고 인삼을 재배하는 방법도 배울 수가 있었다.
필요한 자재들은, 일단, 파주의 물류 창고로 이동시켰다.
“사장님, 이 자재들을 창고로 옮기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그래요. 창고까지만 옮겨 놓으면 다음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파주의 창고까지 삼포밭 자재들을 운송해 준 직원들을 다 보내고서, 진석은 홀로 창고에 가득 찬 자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는 공간의 문을 열 시간이었다.
“공간을 열어 줘.”
-알겠습니다. 공간의 문을 개방합니다.
창고 밖은 어두운 밤이었지만, 공간의 출입구가 열리자, 환한 빛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안쪽에서 진흙과 모래 일꾼들이 진석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창고까지 와서, 이것들을 공간으로 옮기자고.”
일꾼들은 진석의 명령에, 순서대로 나와서, 삼포밭을 만들 자재들을 공간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북카페 오아시스를 개업한 후로, 포집되는 시간 포인트도 크게 늘어났다. 이제는 하루에 2천 시간 포인트 이상이 포집되고 있었다. 하루에 600평 정도는 공간을 늘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공간은 이제 5만 평 이상으로 확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계속 더 공간의 크기는 커지는 중이었다.
일단은 새로 생긴 황무지 일대를 개간하기 시작했다. 일꾼들은 생명체가 아니라 그런지, 지치거나 쉴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인삼밭을 개간하는 일은 쉬지 않고 계속 진행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밭에, 인삼 씨앗을 파종하고, 그 위에 지주대를 설치하고, 차양막을 설치했다.
차양막까지 설치하고 나자, 외관상 그럴듯한 삼포밭이 만들어졌다.
그다음은, 시간을 가속하는 일이었다. 진석은 삼포밭 일대의 시간을 가속했다. 6년이라는 시간이 단, 10여 분의 시간 동안 가속되어 진행되었다. 그사이, 삼포밭 위로, 고려인삼들의 잎과 줄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6년이나 걸리는 일인데, 단 10분 만에 끝나는군.”
진석의 공간이 가진 장점이 최대한으로 극대화되는 순간이었다. 인삼처럼 생육 주기가 긴 작물을 키우기에는 진석이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이 공간은 그야말로 최적의 조건을 가진 곳이었다.
불과, 10분 동안, 6년근의 훌륭한 고려인삼들이, 완벽하게 성장해 있었다.
“대단한데, 이 정도면, 수확해도 좋겠지.”
진석은 인삼 한 뿌리를 조심스럽게 캐내어 보았다. 금산의 농장에서 배운 지식으로 진석은 인삼이 6년근으로 완벽하게 자라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좋아, 이제는 인삼 수확을 하자고.”
진석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일꾼들이, 삼포밭을 해체하고, 인삼을 수확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고려인삼 수확이었다.
1만 평에서 수확한 인삼들을 분류를 해 보니, 대략 무게로 30톤 정도가 나왔다.
수확을 마친 삼포밭에는 보리를 심었다. 녹비 작물이라고 해서, 다음번 인삼 농사를 위해서 토양 회복을 위한, 거름이 되는 작물로 인삼을 수확한 땅은 이제 앞으로 몇 년간 회복기에 들어가는 것이다.
* * *
금산, 인삼 도매 센터.
“와, 이건, 어디서 재배한 건가요?”
“강원도에 농장이 있어서요.”
“그래요?”
인삼 도매상은 진수가 가져온 삼들을 여기저기 살펴보고, 향도 맡고, 잘라서 직접 먹어 보기도 했다.
“음, 향도 좋고, 완벽한 고려인삼이네요.”
“품질은 어느 정도인가요?”
“최상급입니다. 잘 키우셨네요.”
처음에는 조금 의심스러운 눈초리였지만, 품질을 확인하고는 도매상의 태도도 달라졌다. 거기에 제이에스 바이오 사장이라는 명함까지 건네자, 인삼 도매상들의 태도는 더 부드러워졌다.
“이 정도 품질이라면, 언제라도 환영입니다. 고려인삼이 더 있으면, 얼마든지 가져오세요.”
30톤 정도의 고려인삼을 도매상들과 거래하고 받은 금액은 25억이 조금 넘었다. 괜찮은 수익인 셈이었다.
* * *
“사장님, 금산에서 전화 왔었어요.”
“인삼 도매 센터 말이지?”
공간에서 키우는 고려인삼은 품질 면에서 최고였다. 거기에, 최근에 농가의 인삼 재배 면적이 줄고 있어서 진석의 고려인삼은 도매 상인들에게 인기였다.
그렇다고 공간의 재배되는 인삼의 양을 더 늘리지는 않았다. 돈만 생각한다면, 재배 면적을 늘리고, 인삼 수확 횟수도 늘려서, 큰돈을 단기간에 벌 수도 있었지만 수요와 공급을 생각해서 적당히 생산량을 조절하고 있었다.
그래도 한 번에, 30톤 정도를 생산해서 25억 정도를 벌어들이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벌써, 300억이 넘는 수익을 내고 있었다.
현금에 여유가 생기자, 시골에 계신 부모님에게도 돈을 더 보내 드릴 수 있었다. 최근에도 차도 사 드리고 과수원 주변에 땅도 더 사서, 새로 전원주택을 짓고 있었다.
직원들에게도 보너스도 주고, 카페에서 일할 알바 여대생들도 더 뽑았다. 제이에스 사무실에도 사무직 여직원을 더 뽑고, 물류 창고나 트럭 배송을 할 남자 직원들도 더 뽑았다.
“와, 사장님, 보너스 주시는 거예요?”
이수정은 진석이 특별히 준비한 보너스 봉투를 받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수정도 어느덧 제이에스에는 최고참 직원이었다. 아직도 진석은 수정 씨라고 부르고 있었지만, 형식상 직급은 총괄부장이었다.
“그나저나, 사장님은 어찌 된 게 다 여직원만 뽑는 거죠?”
이수정의 말대로, 제이에스나 카페 오아시스의 직원들은 젊은 여직원들뿐이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홈페이지 관리나, 전화 응대하는 업무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다.
거기에 카페 쪽을 관리하는 유민지나 제이에스에서 최고참인 이수정의 나이를 고려해서, 그보다 어린 쪽을 뽑다 보니, 자연스럽게 20대 여성들로 직원들이 구성되게 되었다.
대신, 파주의 물류 창고를 담당하는 배송 기사들은 모두 남자 직원들이었다. 그렇게 약간은 언밸런스한 직원들의 성비가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
“하하. 특별히 여직원을 더 뽑는 건 아니야. 그리고 아직은 규모가 작아서 직원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고. 수정 씨도 여직원들이 더 편하지 않아?”
“뭐, 그건 그렇기는 해요.”
* * *
공간의 면적은 계속 확장되고 있었다. 이제는 대략 8만 평 수준의 면적이 되었다. 오아시스 주위에는 몇 개의 건물을 더 지었다. 공간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필요한 물건들도 많아졌다.
침대도 새로 구매해서 공간의 건물에 침실을 만들기도 하고, 갈아입을 옷들도 있어야 했다. 그 외에 주방과 조리 기구들, 일꾼들이 일하는 동안 읽을 책도 준비했고. 틈틈이 건강 관리를 하기 위해서 운동 기구들도 있어야 했다.
-건물을 출력하시겠습니까?
“그래, 이번에는 체육관으로 쓸 건물이야.”
100평 정도의 면적의 단층 건물이 흙 속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일일이 돈을 주고 땅을 사고, 건물을 사야 하는 서울과 달리 이곳 공간에서는 모든 땅은 진석의 소유, 아니, 그의 창조물이었다.
건물을 신축하는 일도 자유롭고, 어떤 허가도 필요가 없었다. 그저 원하는 건물을 상상하기만 하면, 새로운 건물이 땅에서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약이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뭐? 무슨 제약이 있다는 거야? 여기서는 모든 땅이 내 거고, 건물 짓는 것도 내 마음이잖아?”
-그렇기는 하지만, 지금 지으신 체육관처럼, 모든 건축물의 재료가 진흙이라, 일정 수준 이상의 고층 건물이라면 구조적으로 안정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높은 건물은 흙으로는 지을 수 없다는 말인가?”
-진흙이라는 재료의 특성도 그렇고, 뭔가 무게를 지탱하기 어려운 구조라, 5층 이상의 건물이라면 피라미드 구조를 추천해 드립니다.
“피라미드 구조?”
-그렇습니다. 아래쪽의 면적은 크게 하고, 위쪽의 면적은 상대적으로 작게 하는 식으로 전체적으로 삼각형 구조로 무게를 분산하면 진흙으로 지어도 고층 건물이 가능합니다.
“오, 피라미드 구조가 안정적이라는 말이지. 뭐, 당장은 그렇게 높은 건물은 필요 없지만, 참고해 두지.”
일단, 새로 지은 체육관에 운동 기구를 가져와야 했다. 외부에서 필요한 물건을 가져오는 방법은 간단했다.
파주의 물류 창고에 물건을 보관하고 있다가, 야간 시간을 이용해 공간의 문을 열고 일꾼들을 동원해 물건을 공간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체육관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운동 기구와 자전거, 에어컨, 냉장고, 선풍기 같은 것들도 이미 모두 구매해서 창고에 보관 중이었다.
딸기 모종과 장미 그리고 최근에 시작한 인삼 재배로 상당한 돈이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전기도 필요했다.
이동용 가솔린 발전기를 여러 개를 구매해서, 당장 필요한 전기는 충당할 수 있었다.
그걸로, 선풍기나 에어컨도 돌릴 수가 있었고 냉장고도 사용이 가능했다.
냉장고가 생기면서, 과일과, 생선, 육류, 냉동식품, 캔 맥주와 콜라 등 간단한 식재료를 냉장고에 채워 넣을 수가 있었다.
간단한 요리가 가능해지면서, 공간에서의 생활은 점점 안정을 찾아가는 느낌이다.
먹고, 쉴 공간, 운동할 넓은 개인용 체육관도 있고. 거기에 날씨는 항상, 적당히 건조한 초여름 날씨여서, 마치 지중해의 그리스의 휴양지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 * *
공간에서 체육관과 식당 건물을 만들고 나오니, 아버지에게 전화해 달라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얼른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세요? 아버지.”
-어, 진석이구나, 아까는 전화가 안 되더라고. 너 집에는 언제 올 거냐?
“집에요?”
-그래, 진석이 네가 땅도 사 주고 집도 지어 주고 했잖아. 새로 지은 집이 거의 완성된 모양인데, 너도 한번 와 봐야지.
“아, 그랬었죠. 그러고 보니, 전원주택이 완공될 때가 됐네요. 이번 주말에 한 번 가볼게요.”
서울에서 하는 사업 때문에 부모님이 계신 시골에는 자주 찾지를 못하고 있었다.
주말에 시골에 내려가자, 지난번에 왔을 때, 막, 기초 공사를 하고 있던, 전원주택은 거의 완성된 모습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내부 인테리어도 말끔하게 마친 후였다.
“와, 집 잘 지었는데요.”
“그렇지. 내가 봐도, 고급스럽게 잘 지었어. 다 진석이 네 덕분이다.”
“하하, 뭘요? 아들이 돈 잘 벌고 있는데, 이 정도는 해 드려야죠.”
확실히 돈을 충분히 들여 지은 집이라, 내장재도 고급스럽고, 전반적으로 잘 지어졌다는 느낌이었다.
공간에 있는 집보다 훨씬 좋은데…….
물론, 단순 비교하기는 어려웠다. 공간에 있는 건물들은 모양은 투박해도, 기본적으로 면적이 수백 평이 넘는 건물들이 여러 개가 있고, 진석 혼자서 넓은 건물들을 자유롭게 쓰고 있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진석은 아버지에게 새로 지어 드린 집을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