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딸기의 맛 (3/183)

딸기의 맛

“사장님, 이건 뭐예요?”

“어, 상추야. 수정 씨도 자취한다면서. 싱싱한 거니까 가져가서 먹어. 상추 먹으면, 잠도 잘 오고 좋다더라고.”

“어디서 사 오신 거예요? 아까는 못 봤는데?”

“아, 뭐, 시골에서 부모님이 보내 주신 거야. 비닐하우스 그런 걸 하시거든.”

“그래요? 아무튼, 잘 먹겠습니다. 사장님, 그럼, 가 봐도 되는 거죠?”

“그래, 가서 공부 열심히 하고.”

수정은 진석이 건네준 상추가 한가득 들어 있는 비닐 봉투를 들고는 서둘러, 카페를 떠났다. 오후에 수업이 있는 모양이었다.

점심시간은 한가한 편이었다. 카페에는 한 명의 손님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이렇게 장사가 안돼서야.

지금은 그래도 여유 자금이 있는 편이었지만, 돈은 언젠가는 떨어지게 마련이었다.

거기다, 시간 포인트를 모은다고 북카페를 만들어 책 읽으러 오는 손님들만 많아졌지, 매출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그래, 공간에서 상추도 키웠으니까, 다른 것도 재배해서 키울 수 있을 거 아냐. 뭐가 좋지? 겨울이니까? 딸기?

딸기는 언제나 가격이 비싼 편이다.

물론 맛있기는 하지만, 공간에서 딸기를 키워서 카페에서 팔거나, 스무디 같은 걸 만들면 괜찮지 않을까?

무엇보다 딸기는 진석이 좋아하는 과일이었다. 그리고 시골에 계시는 엄마도 좋아하시고.

엄마가 딸기를 좋아하시는데, 돈이 없어서 자주 사 드리지도 못하고, 그런 기억도 있어서, 기왕이면 딸기를 키워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려면 일단, 모종부터 사야겠지…….

*   *   *

“사장님?”

“어, 왜?”

“혹시 태닝하셨어요?”

“무슨 소리야? 태닝이라니…….”

공간은 자꾸 늘어가고 있었다. 처음에 30평 정도로 시작했던, 공간은, 이제는 천 평 규모로 커져 있었다.

그리고, 상추는 물론이고, 딸기와 토마토 같은 과일과 채소류들을 키우고 있었다.

덕분에, 진석은 도심 속의 빌딩에 살면서도 귀농이라도 한 기분이었다.

“피부가 좀 구릿빛이 되신 것 같아서요. 제가 알기로는 외출도 잘 안 하시는 걸로 아는데.”

“아, 외출을 내가 왜 안 해? 요즘 자전거도 타러 다니고 그런다고. 그래서 그런 모양이지. 조금 피부가 탄 것 같기도 하고.”

진석은 거울을 슬쩍 바라보았다. 농사를 짓다 보니, 자연스럽게, 피부의 색도 좀 변한 모양이었다.

“그건 그렇고, 딸기가 좀 생겼는데, 이걸로 뭘 좀 만들어서 팔아 보자고.”

“딸기요?”

현실의 시간으로는 딸기 모종을 사 오고 하루 만에 수확한 딸기였다.

물론 진석이 공간의 시간을 조정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와, 딸기네. 음, 이거 진짜 맛있는데요. 이거, 다른 거 할 필요 없이 그냥 먹어도 되게 달아요. 음……. 진짜 맛있네.”

진석이 가져온 딸기는 유난히 크고 탐스러웠다.

진석의 공간은 병충해도 없고, 토질도 훌륭한 최고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수확한 딸기도, 열매의 크기나 모양도 좋고, 무엇보다 맛이 기가 막혔다.

진석도 몇 개 먹어 보니, 수정의 말대로 그냥 먹는 게 제일 맛있을 것 같았다.

“나, 지방에 좀 갔다 와야 하니까, 6시에는 문 닫고 퇴근하면 돼.”

“지방요? 어디 가시는데요?”

“어, 부모님이 시골에서 과수원 하시거든. 딸기도 좀 갖다 드리고 겸사겸사 다녀오려고.”

“그러세요. 카페는 제가 문 닫고 정리할게요.”

카페는 수정에게 맡기고, 시골에 다녀올 생각이었다.

그동안 가는 걸 미루어 두었던, 부모님이 귀농하신 시골은 어떤 모습일까?

*   *   *

멀리 언덕 위에, 눈이 조금 쌓여 있었다. 언제 눈이 왔던 걸까?

부모님의 과수원은 언덕 중간쯤에 비스듬히 기울어진 땅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사과나무들도, 약간 지형에 맞추어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모습이었다.

“땅에 따라서 나무들도 모양이 바뀌죠. 생각을 해 보세요. 같은 사람이라도, 시골 농부가 키우느냐, 도시에서 재벌 집에서 키우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거 아닙니까?”

“아, 그런가요?”

최성민이라는 남자는 얼굴은 동안이었는데, 나이는 30대 중반 정도라고 했다. 얼핏 봐서는 진석 또래 정도로 보였는데 말이다.

부모님이 귀농한 시골집에 처음으로 온 길이었다.

과수원은 겨울이라, 엄마가 그렇게 예쁘다고 칭찬하던, 사과나무들의 모습은 조금 앙상하고 쓸쓸해 보였지만, 여름이라고 상상해 보면, 꽤, 멋진 풍경일 것 같았다.

그리고, 엄마, 아빠도 딸기를 좋아하셨다.

꼭, 아들이 가져온 딸기라 그런 게 아니라, 딸기가 진짜 싱싱하고 맛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이 동네에서 아버님 일을 많이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고 가 보라고 했다. 딸기도 좀 가지고 말이다.

“딸기는 아빠나 많이 드시죠. 뭘 나눠 줘요.”

“신기해서 그래. 이런 딸기는 처음 보거든. 너도 품종이 뭔지 모른다고 그러고. 이렇게 알이 굵고 맛있는 딸기는 진짜 처음 본다. 최성민이 그런 쪽 전문가야. 대학에서 농업 쪽으로 전공한 사람이야. 그러니 가져가서 맛도 좀 보라고 하고, 품종이 뭔지도 알아봐라.”

“품종을 알아서, 뭐 하시게요?”

“하우스에서 좀 키워 보려고.”

“과수원 일만 해도 힘든데, 뭘 또 하세요.”

“힘들기는 과수원이 뭐가 힘들어. 그나저나, 넌, 장가 안 가냐?”

“예? 여자가 있어야 가죠.”

“그럼, 아빠, 소개 좀 시켜 줄까? 근처에 농협에서 일하는 아가씨가…….”

“저, 그 딸기 좀 갖다주고 올게요. 최성민이라고 했죠. 집이 어디예요?”

*   *   *

최성민이 사는 집은 동네에서 좀 외떨어진 곳이었는데, 집도 시골집치고는 꽤 잘 지어진 전원주택풍의 집이었고, 하우스와 유리 온실까지 있는 꽤 넓은 땅을 가지고 있었다.

“아, 사과 과수원집에서 오셨군요. 그 집 아드님?”

“예. 아버지가 신세 많이 졌다고, 선물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딸기가 맛있어서 좀 가져왔습니다.”

“신기하네요. 처음 보는 딸기네.”

어라? 이 사람도 아버지랑 똑같은 말이네.

시골 사람들이라 그런가. 딸기를 먹을 생각은 안 하고 품종 타령이야.

최성민은 딸기를 신기한 듯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한 입 베어 물었다.

“음, 와……. 과육이 단단하네요. 무르지 않고, 식감이 좋아요. 당도도 높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겉은 좀 단단한데, 속은 또 부드럽고, 즙이 많고. 음, 맛있네요.”

“하하, 저도 딸기가 좀 맛있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이거 품종이 뭔가요?”

“품종요?”

“아, 그건 잘 모르겠네요. 아는 지인이 준 거라.”

“그래요? 신품종인가? 딸기라면, 어지간한 품종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연구소에 좀 확인해 봐야겠네.”

“연구소요?”

“예, 농업연구소 말입니다. 저희 농장도 농업연구소랑 연구 협력을 하고 있어서, 품종 개량 쪽으로 정보 교환이 됩니다.”

“와, 그러시구나. 그러고 보니, 뭔가, 보통 농가 같지 않고, 유리 온실도 있고. 이곳에서 연구도 하시나 봐요?”

“예, 품종 개량 쪽이죠. 농업에 좀 관심이 있으십니까?”

“농업요? 아니, 뭐, 그런 건 아닌데.”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쭉 살아온 내가 무슨 농업에 관심이 있겠어.

그냥, 텃밭에서 쌈 채소나 키우고, 토마토, 딸기 정도 키우면 된 거지.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산업이 뭔지 아십니까?”

어라?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산업요? 자동차, 반도체 그런 거 아닌가요?”

“반도체보다는 자동차가 조금 더 크죠. 하지만 자동차보다 더 큰 게, 군수 산업입니다.”

“오, 무기 만드는 거 말이군요? 미사일이나 전투기, 그런 거 비싸겠죠.”

“하지만, 군수 산업보다 규모가 더 큰 건, 매춘 산업이죠.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아, 그것도 이해는 가네요. 전체적으로 보면, 규모가 상당하겠죠.”

“그런데, 그 매춘 산업보다 규모가 더 큰 것이 있습니다. 뭔지 아시겠습니까?”

“음, 농업인가요?”

“맞습니다. 세계 최대의 산업은 바로 농업입니다. 우리는 아직, 농경 시대에 살고 있죠.”

“하하, 농경 시대라?”

“아직, 인류는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농업으로 먹거리를 만드는 일은, 아직도, 가장 중요한 일이죠.”

“농업인으로서 자부심이 대단하시겠네요?”

자기 부대가 제일 빡세다는 이야기의 다른 버전인가?

하긴, 자기 하는 일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기는 하지…….

최성민은 진석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게 바로 품종 개량입니다. 아시다시피, 농업은 오래된 산업이고, 기술적으로 더 발전할 여지도 많지 않습니다. 농업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건, 토질과 기후 이런 거죠.”

“그렇겠군요. 땅이나, 기후는 어쩔 수 없으니까, 품종을 개량하는 게 핵심기술이겠네요?”

“맞습니다. 농업이란 건, 거대한 산업이면서도, 아주 영세한 측면도 있죠. 보통 사람들이 농업을 하찮게 여기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거대한 자동차 공장이나, 엄청난 수익을 내는 반도체 회사처럼, 엄청난 외관을 가진 건 아니거든요.”

“여기서, 품종 개량 연구를 하시나 보군요?”

“그럼 셈이죠.”

“혹시, 이게 뭔지 아시겠습니까?”

최성민은 진석에게 강아지풀 같이 생긴 것을 내밀었다.

“뭐죠? 먹는 건가?”

얼핏 보니, 열매 같은 게 있는 것 같았는데 아주 작아서, 별로 먹을 건 없어 보였다.

“테오신테입니다.”

테오신테? 첨 들어 보네……. 약초인가?

“처음 보시는 것 같군요? 이건, 야생 옥수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옥수수요?”

최성민의 말에, 진석은 다시, 그 강아지풀 같이 생긴 것을 살펴보았다. 자세히 보니, 옥수수 같은 느낌도 있었다.

“옥수수치고는 굉장히 작네요. 옥수수는 자라면, 엄청 크던데, 사람보다 더 크게 자라죠?”

“옥수수는 대도, 크게 자라고, 옥수수도 이, 테오신테에 비하면 수십 배는 더 크죠.”

“말하자면, 이건, 옥수수 조상님이네요. 하하…….”

“이 테오신테에서 개량한 옥수수야말로,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최고의 발명품이죠.”

“최고의 발명품? 옥수수를 누가 발명한 건가요? 그런 표현은 익숙하지 않은데.”

“하하. 야생의 테오신테를 품종 개량을 통해, 지금의 옥수수로 만든 건, 남아메리카에 살던 인디오들이죠.”

“오, 그런 의미군요. 아니, 그 시절에도 품종 개량을 하는 기술이 있었나요?”

“품종 개량이라는 게 그렇게 복잡한 기술은 아닙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선택법과, 교잡법이죠.”

“선택법은 좋은 품종을 선택한다, 그런 의미인가요?”

“맞습니다. 가장 단순하고 기본이지만, 가장 효과적이고 안정적인 방법이죠. 작물을 재배하다 보면, 기후나 토질 등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변종이 생겨납니다. 일종의 환경 적응의 산물이죠. 그렇게 자연적으로 생겨난 변종을 돌연변이라고 하는데, 보통은 다음 대에 이어지지 못하지만, 일부는 후대에도 살아남아, 새로운 종이 되는 겁니다.”

“아, 어디서 읽은 기억이 있네요.”

“그렇게 새롭게 생긴, 품종 중에서 좋은 특성이 있는 걸 선택해서 육성하는 게 선택법입니다. 그리고, 교잡법은 서로 다른 품종을 교접시켜서, 인위적으로 돌연변이를 만드는 거죠. 역시 우성 품종을 선택하는 건 선택법과 같습니다.”

“오, 그렇군요. 전 실험실에서 막, 화학 약품으로 어떻게 처리하고 그런 건 줄 알았는데.”

“물론, 요즘은, 기술이 더 발전해서, 실험실에서 그런 작업들을 하기도 하죠. 유전자를 변형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아직,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변종보다는 안정성이 떨어지죠. 아직은 신의 기술에 도달하지 못한 겁니다.”

“신의 기술요?”

“예, 가장 완벽한 품종 개량 사례인 옥수수는 신의 기술로 만들어진 겁니다. 테오신테라는 야생의 옥수수를 우수 품종을 육성하는 방법으로 1만 년 이상의 시간이 걸려 인디오들이 품종 개량에 성공한 거죠. 시간의 힘으로 한 일이니까, 인간의 힘이라기보다는 신의 힘, 신의 기술로 개량한 최고의 품종인 겁니다.”

“아, 그런 의미였군요. 하하. 신의 기술이라? 그나저나, 아버지가 이 딸기, 품종을 궁금해하시던데, 혹시 아시나요?”

“아, 딸기요? 글쎄요. 아까도 말했지만, 이렇게 크고 달고, 식감도 좋고, 더구나 바깥은 단단하고 안쪽은 수분이 많은 이런 품종은 처음이네요. 아무래도 신품종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굉장하네요. 이런 품종 하나만 개발해도 돈을 엄청 벌죠.”

“돈요? 얼마나 버나요? 이런 딸기 품종이면?”

“뭐, 좋은 품종의 딸기라면, 300평 정도 크기의 밭의 로열티로, 100만 원은 받을 수 있습니다.”

“300평에 100만 원요?”

“전국에 딸기 재배 면적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에서만 일 년에 수백억은 받을 수 있죠. 딸기 모종 하나가, 500원 정도 하는데, 품종 개발자가 50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50원이면 얼마 안 되는 것 같지만, 일 년에 우리나라 딸기 시장이 1조 원을 넘어 2조를 바라보는 수준입니다. 진짜, 좋은 품종이라면, 농가에서도 많이 구매할 테니, 엄청난 돈이 되죠. 그리고 진짜는 해외 시장입니다. 해외 시장이 국내의 수십 배 이상은 되니까요.”

“헐, 그럼, 딸기 품종 개발만 성공해도, 수천억은 번다는 말이네요. 와, 사람들이 로또, 로또 하는데, 진짜 로또는 따로 있었네. 로또 1등이라 봐야, 25억인데 말입니다.”

“25억요? 로또 1등 당첨되신 적이 있나요? 하하…….”

“아, 물론 아니죠. 기사를 본 적이 있어서……. 하하…… 하하하……. 제가 무슨 로또를……. 그나저나, 이게 정말 신품종인가요?”

“맞을 겁니다. 저도 딸기 재배를 해 봐서 잘 아는데, 그런 품종은 없었어요. 딸기 품종 개발은 좀 어렵죠. 딸기는 뿌리 식물인데, 한 1,000뿌리 중에서, 키워 봐서, 좋은 걸로, 10개 정도 뽑는 겁니다. 그걸 또 1,000뿌리로 불려서, 다시 10개를 뽑고 뭐 그런 식이죠. 그렇게 한 7년에서 10년 정도 반복해서, 좋은 거 하나 나오면 다행이죠.”

“안 나오면요?”

“안 나오면 꽝이고요. 그러니, 딸기 품종 개량이 어려운 거고, 좋은 품종이면 로열티를 주고서라도 농가에서 쓰려고 하는 거죠. 그러고 보니, 로또랑 많이 비슷하네요.”

*   *   *

최성민의 집을 나오면서, 머릿속에는 온통 딸기 품종 생각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돈을 더 벌 방법이 없을까 생각을 했는데, 의외로 딸기 품종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그나저나, 이 딸기가 신품종이라고? 종묘상에서 살 때, 듣기로는 제일 무난하다고 해서 산, 딸기 모종이었는데……. 잘못 들은 거였나?”

일단은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엄마는 오랜만에 진석이 좋아하는 김치찌개도 끓여 주시고, 아버지도 과수원 자랑을 하시며 간만에 가족들끼리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냈다.

*   *   *

다음 날, 아침 일찍 진석은 서울로 올라갈 준비를 했다.

“벌써 가게?”

“일이 있어서요. 그리고 이거 받으세요.”

“뭐니? 이게?”

“천만 원이에요.”

“천만 원? 진석이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지난번에도 5백만 원 보냈던데.”

“요즘, 돈 좀 벌고 있어요. 걱정할 거 없어요. 받아요.”

자꾸 싫다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억지로 천만 원이 든 봉투를 드리고는, 서둘러, 집을 빠져나왔다.

그래도, 그동안 궁금했던, 과수원도 와 보고, 용돈이라도 드리고 나니, 사람 노릇을 하는 것 같아서 조금은 기분이 편해졌다.

“서울에 가면 종묘상부터 가 봐야겠는데. 딸기 모종에 대해서 물어봐야겠어.”

*   *   *

“딸기요? 딸기가 왜?”

종묘상회 아저씨는 모르겠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품종이 뭔가 해서요.”

“그건, 설향이지. 왜요? 문제가 있나요?”

“아니, 그건 아니고, 그게, 이런 딸기인가요?”

진석은 공간에서 수확한 딸기를 내밀었다.

“아닌데. 설향은 이 정도로 크게 자라지는 않아요. 킹스베리보다 더 크네. 모양은 설향이랑 비슷하고. 이건 못 보던 건데…….”

역시 진석이 생각한 대로였다……. 뭔가 변종이 된 모양이었다.

하긴, 공간이라는 곳이, 특이한 환경이기는 했다.

토질도 좀 다를 거고, 기후도 그렇고. 무엇보다, 공간에는 밤이라는 것이 없다.

하루 종일 해가 비치는 낮의 세계였다.

*   *   *

종묘상에 갔다가 돌아온 진석은 공간으로 다시 돌아왔다.

심어 놓은 딸기밭을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여기심은 딸기는 설향이 분명한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진석은 딸기를 키울 때 일을 되돌려 보았다.

“아, 그거였나?”

생각해 보니, 처음에 심은 딸기가, 시간을 가속했더니, 중간에 거의 대부분이 죽었던 일이 있었다.

가속된 시간 속에서 일어난 일이라, 잠깐 사이에 잘 자라던 녀석들이 죽어서, 깜짝 놀라, 시간을 멈추었던 적이 있었다.

겨우 살아남은 녀석들을 다시 포기나누기로 수를 늘렸었던 기억인데, 최성민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려 보니, 그게 일종의 우성 선택을 통한, 육묘가 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역시, 이 공간에서 변종된, 새로운 딸기였던 건가?

진석은 탐스럽게 자라고 있는 딸기들을 바라보았다.

만일, 이게, 새로운 딸기 품종이라면, 그건 엄청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진석도 여러 번 먹어 보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먹여 보았지만, 공통적으로 전에 먹어 본 적이 없는 최고의 딸기라는 평가였다.

“와우, 이건 대박인데. 로또로 대박인 줄 알았는데, 딸기로도 대박인가?”

아마도, 이곳의 특이한 환경 때문인 것 같았다. 가장 특이한 점은 이곳은 밤이 없다는 것.

어라? 그러고 보니, 진짜 왜 밤이 없는 거지? 상태창에게 물어볼까?

“그런데, 왜 여기는 밤이 없는 거냐?”

-밤이 존재한다는 것은, 행성급 공간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행성급?”

-지구처럼, 행성 수준의 공간이라면, 구조의 안정성을 위해서, 원형의 구 모양을 갖추게 됩니다. 그리고, 피조물들의 지적 수준이 발달하게 되면서, 태양과 달 등의 천체를 설명하기 위해, 천체의 운행과, 그에 따른 행성과 항성들의 존재가 필요하게 되고, 그래서 공전과 자전 등의 천체 현상이 만들어집니다. 그 결과 낮과 밤도 나타나게 되는 거죠.

“자…… 잠깐……. 뭔가 이야기가 이상하잖아? 반대로 설명하는 거 아냐? 천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행성과 항성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행성과 항성이 존재하니까, 천체 현상이 나타나는 거잖아?”

-그건 피조물의 관점, 즉 인간의 관점이죠. 신이 우주를 어떻게 창조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우주? 그건, 빅뱅으로 만들어진 거 아니냐?”

-빅뱅요? 그냥 뻥 하고 우주가 생겼다고요? 그럼 그 이전은요?

“그…… 그거야? 빅뱅 이론이란 게, 그 이전이라는 건 없는 건데……. 그러니까, 그 이론 자체가 빅뱅 이전은 사건의 지평 너머로 알 수 없다고 가정하고, 빅뱅부터 생각해 보자는 거지.”

-그러니까, 빅뱅 이전은 아무런 설명도 없다는 말이군요. 이론의 구조적으로 말입니다.

“흠, 내가 만든 이론도 아닌데, 왜 나한테 따지는 거야?”

-따지는 게 아니라, 차근차근 생각해 보자는 겁니다. 공간주님도 공간을 가지고 있으니까, 아실 겁니다. 처음부터, 우주 같은 거대한 공간을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말입니다.

그건 그랬다. 겨우 천 평 남짓한 공간을 가지고 있는 진석이었다.

여기다가 텃밭 하나 만드는 것도 엄청 힘든 일. 그런데 우주라고? 그것도 시작과 동시에 우주 공간을 창조한다?

역시 신도, 처음에는 아주 작은 공간부터 시작한 것이었던 것인가?

지금의 진석이 가지고 있는 작은 공간처럼 말이다.

“아니, 그럼, 그 이야기는 우주가 만들어지고, 지구가 탄생한 게 아니라, 지구가 만들어진 후에 우주가 생겼다는 말이야? 그게 말이 되냐?”

-아날로그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불가능해 보이죠. 하지만, 디지털적인 사고를 해 보십쇼.

“그게 무슨 말이야? 아날로그와 디지털이라니?”

-게임이라고 생각해 보라는 겁니다. 게임 개발자가, 행성을 만들고, 태양계를 만들었다고 해서, 그게 현실 세계에 실존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거야, 게임이니까. 그렇지. 아니, 그럼, 우리의 우주라는 것도, 어떤 신, 그러니까, 나 같은 공간주가 만들어 낸 일종의 게임이라는 거냐?”

-신의 창조 과정에 대해서는 피조물들에게는 비밀입니다. 그게 규정이죠.

“그건 알겠는데, 아무튼, 피조물이라고 하는 거 보니, 신이 있기는 한 모양이네?”

생각해 보니,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는 것이 정말 엄청난 일이었다.

진석처럼, 그저 작은 공간을 가진 공간주부터 시작해서, 지금의 우주를 창조했다고?

전지전능한 신의 존재보다 더 믿기 힘든 일이었다. 그게 가능하기는 한 건가?

하지만, 상태창이 말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런 식으로 창조가 이루어졌다면, 순서상, 지구를 만들고, 우주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아니, 가능성이 아니라, 지구를 만들고 우주를 만들어야 정상이지…….

정상? 그게 정상인가?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생각해 보니 이상하다. 마치, 독자와 작가의 차이인가?

하긴, 코난 도일이 ‘셜록 홈스 시리즈’를 만들던 방법은 사건이 아니라, 해결 방법을 만들고, 그다음은 거기까지 안내해 줄 단서, 그리고 마지막에 사건을 만들기는 했지.

그 유명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첫 장면, 스칼렛 오하라의 외모를 묘사하는 장면도, 사실은, 작가가 맨 마지막에 쓴 장면이고.

인간의 관점과 달리, 신의 관점으로 본다면, 창조의 순서는 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

*   *   *

우선 공간에서 재배한 딸기를 새로운 품종으로 인정받는 것이 중요했다.

최성민의 말대로, 로열티만으로 수백억에서 수천억을 벌 수 있는 기회였다.

일단, 농업진흥청을 찾아, 새로운 품종으로 등록 신청을 하기로 했다.

*   *   *

“새로운 품종이라고요?”

“예, 등록을 하려고 하는데요.”

“일단, 개인 자격으로는 어려운데. 본인이 직접 개발한 품종입니까?”

“예, 맞습니다. 개발이라기보다, 취미로 딸기를 키웠는데, 뭔가 새로운 종류인 것 같아서요. 이런 쪽으로 아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돌연변이라더군요. 하지만, 그다음 해에도 같은 딸기가 나와서 말이죠. 이게 이번에 수확한 딸기입니다.”

농업진흥청 산하의 농업연구소의 연구원은 진석이 내민, 딸기를 받더니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딸기 모양이나, 색, 그리고, 맛 좀 봐도 되죠?”

“물론이죠.”

“음, 맛도 훌륭하네요. 식감도 좋고, 원래는 어떤 품종을 심었던 겁니까?”

“설향요.”

“설향? 그러고 보니, 열매 모양이 설향이기는 하네요. 훨씬 더 크지만. 설향이면 흔한 품종인데, 거기서 변종이 나왔다는 말인데. 와, 이거 놀라운데요.”

“변종이 나오는 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요?”

“그럼요. 변종, 즉, 돌연변이는 흔하지만, 이렇게 좋은 품질을 가진 돌연변이가 나오기는 확률적으로 아주 어려운 일이죠.”

“그렇겠죠. 마치, 로또에 당첨되는 확률처럼 말이죠.”

“로또요? 로또 확률이 800만 분의 1 정도죠? 자연 상태에서 돌연변이가 우성 형질을 가지고, 이렇게 완벽하게 다음 대까지 이어질 확률은 억 단위 확률입니다.”

“억 단위요?”

“그렇죠. 복권으로 치면, 로또 1등 정도가 아니라, 슈퍼볼에 당첨될 확률이죠. 그리고 그런 확률이 다시, 딸기처럼 상업성이 높은 작물에서 우연히 발견될 확률은 그 슈퍼볼에서 다시 로또에 당첨되는 확률이죠.”

“설마요? 그 정도는 아니겠죠. 그건, 계산도 잘 안 되는 숫자인데…….”

“하하, 아무튼, 엄청 희귀한 일이라는 겁니다.”

“아무튼, 확률이 적다는 거지, 아주 없는 건 아니겠죠? 저처럼 말입니다.”

“그러게요. 아무튼 확률과 무관하게 이렇게 새로운 변종 딸기를 발견하신 분이 있으니까요.”

“그럼, 이 품종을 새롭게 등록할 수 있는 거죠? 제 이름으로요.”

“뭐, 행정적인 절차가 필요하지만, 요건만 갖추면 어렵지 않을 겁니다. 어쨌든 대단하시네요. 이 딸기 품종이, 이런 품질이 계속 유지되는 신품종이라면, 가치가 엄청날 겁니다.”

“그 정도인가요?”

농업진흥청 직원은 스스로도 약간 신이 난 말투로 계속 이야기를 이어 가고 있었다.

“물론이죠. 딸기는 꽤 잘나가는 과일입니다. 그리고, 품종 개량이 어려워서, 일단 성공만 하면, 농가에서 수요가 엄청날 겁니다. 그리고 10년 전쯤에, 설향이나 킹스베리가 나온 후로는 신품종이 거의 없었어요. 있어도 그 두 가지 품종에 가려서 별로 성공하지 못했죠.”

“그런가요?”

“시중에 유통되는 딸기는 그 두 가지가 대부분이에요. 동그랗고 작으면서 새콤한 게, 보통 딸기, 설향이고요. 크고 길쭉하고 단맛이 강한 게 킹스베리죠. 그런데, 맛이나 식감이 약간씩은 아쉬운 게 있죠.”

“그런 딸기보다, 상업적으로 가치가 있을 거라는 말이죠?”

“물론입니다. 이렇게 맛있는 딸기는 처음이에요. 그런데 등록을 하려면, 이름이 있어야 하는데 이름은 지으셨습니까?”

“이름요?”

처음 맛보는 새로운 맛의 딸기, 뭔가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다.

이 딸기의 경쟁자가 될 딸기는 설향과, 킹스베리. 하나는 한자식 이름, 하나는 아예 영어다.

그렇다면, 나는 순 한글 이름을 써보면 어떨까?

달콤하면서도 무르지 않고, 신선한 식감이 장점인 이 딸기에 어떤 이름이 좋을까?

뭔가 달콤한 순우리말이 없을까? 핸드폰으로 여기저기 검색을 해 보자 이런 문장이 나왔다.

‘나의 단미 희선에게……. 너의 그린비가……. ’

뭐야? 이런 말도 있었나? 어원을 보니, 순우리말이고,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국어학자 최현배 선생이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표현을 썼다는 것이었다.

단미는 달콤한 여자, 혹은 사랑스러운 여자라는 의미. 그린비는 그리워하는 선비, 혹은 남자라는 의미라는데…….

단미? 괜찮은데. ‘미’라는 발음은, 맛과 풍미라는 발음과 비슷하고, 단은 달다는 의미니까.

원래는 사랑스럽고 달콤한 여자라는 뜻이지만, 어감상, 달콤한 딸기와도 잘 어울렸다.

딸기 품종으로는 괜찮은 것 같았다.

*   *   *

농업진흥청을 통해서, 몇 가지 서류를 제출하고, 품종으로 인증까지 받고, 국립종자원에 등록을 마쳤다.

그리고 그다음은 본격적으로 농가에 판매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진석이 사업을 준비하기 시작하자, 어떻게 알았는지 정부 기관에에서도 연락이 왔다.

“농림부요?”

신품종 딸기에 대한 소문이 농업계에 퍼진 모양이었다.

그리고 딸기 맛이 상당히 훌륭하다. 상업성이 있고 가치가 엄청날 거라는 소문이 돌자, 여기저기서 연락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농업 관련 바이오 기업들이 대부분이었고, 더러는 사기꾼 같은 사람들도 있었다.

자기들이 도와줄 테니, 신품종 딸기의 권리를 넘기라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말로는 투자니 어떠니 그런 말들을 했지만, 결국 그들이 노리는 것은 뻔했다.

그리고, 이미 상품성 있는 딸기 품종을 등록까지 마친 상황.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었다.

“딸기 모종 사업은 혼자 하기는 어려워요. 그러지 말고, 우리 회사에 권리를 넘기고 로열티 수익만 내도, 큰돈이 될 겁니다.”

“돈은 크게 상관없습니다. 아직 젊으니까요. 경험 삼아 제 사업을 해 보고 싶어요. 누구의 도움이나 간섭도 받지 않고요.”

몇몇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고, 당장은 힘들어도, 혼자서 사업을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진석은 그렇게 사업 등록을 하고, 본격적으로 종묘 사업, 아니, 바이오사업에 진출했다.

일단, 창업을 하려고 마음먹자, 도움을 주는 곳이 많았다.

아직 20대 중반이라, 청년 창업 지원도 받을 수 있었고, 농업 관련 기술에 대해 지원해 주는 정부 지원도 있었다.

거기에 농림부에서도 진수의 딸기, 단미의 가치가 높다는 판단하에,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자…… 창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   *   *

“사장님, 카페 말고, 또 창업하신 거예요?”

수정은 꼬마 빌딩, 2층에 제이에스 바이오라는 회사 간판이 올라가는 걸 보며, 감탄을 하고 있었다.

제이에스는 진석의 이니셜에서 따온 것이었다.

“대단하세요. 바이오면, 무슨 생명 공학 그런 거 아니에요?”

“뭐, 별건 아냐. 농업 쪽에 관련된 회사인데, 일단은 아직은 초창기니까. 여기서 작은 사무실로 시작하려고.”

“그럼, 나중에 잘되면, 사원도 뽑고 그럴 거 아니에요?”

“뭐, 그럴 수도 있지. 그건 왜?”

“저, 얼마 후면 졸업이잖아요. 카페 알바를 졸업하고도 할 수는 없고. 저, 그 제이에스에 들어가면 안 돼요?”

“수정 씨가?”

듣고 보니 나쁠 건 없었다. 아직 창업 초기라, 사무실에서 특별히 할 일은 없지만, 그래도 전화 정도는 받을 사람도 필요하고, 카페 알바야 다시 더 어린 여대생을 뽑으면 될 테고.

“그래, 그러지, 뭐. 일단, 그래도 이력서 정도는 써 가지고 와.”

“이력서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당장 써올게요.”

아무튼, 창업을 하긴 한 거군, 직원도 생기고. 사업이 잘돼야 할 텐데.

진석은 일말의 불안감은 있었지만, 왠지 모든 일이 잘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농업 기술로 사업을 하려면 여러 가지 신품종을 개발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진석의 공간에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해야 했다.

그리고 공간을 더 넓히고, 자유롭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공간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에너지인 시간 포인트가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말이다.

진석의 카페에서, 책으로 위장한 시간 포집기를 이용해서, 하루에 50시간 이상을 포집하고 있었지만, 그걸로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이봐, 지난번에, 시간 포집기를 더 늘릴 수 있다고 하지 않았어?”

-물론입니다. 시간 포인트를 추가로 사용하시면, 포집기를 더 추가할 수 있습니다. 시간 포집기를 추가하는 데는 포집기 100개당 100시간 포인트가 사용됩니다. 포집기를 추가하시겠습니까?

“그래, 책들이 더 필요하다고. 그것도 아주 많이 말이야.”

*   *   *

“사장님 카페 앞에, 이건 뭐예요? 무인 도서관? 자유롭게 빌려 가고, 원할 때, 반납하세요?”

무인 도서관이라고 해도, 특별한 것은 아니고, 대형 책장을 카페 앞에 설치하고, 새로 추가한 수백 권의 책들.

그러니까. 시간 포집기를 자유롭게 대여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냥, 카페 이용객이 아니더라도, 자유롭게 책을 빌릴 수도 있고, 볼 수도 있고 말이야. 그런 개념이야.”

“다 훔쳐 가면요?”

“원래,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말 몰라? 수정 씨.”

“흠, 그렇기는 한데, 설마 저렇게 잠금장치도 없이, 밤에도 책장을 열어 놓으려고요? 보니까, 다들 새 책들이고, 이런 거 훔쳐다가 팔면 돈 좀 될 텐데.”

“훔쳐 가면 할 수 없지.”

훔쳐 가든 뭘 하든 상관은 없었다.

책이 완전히 망가져서 읽을 수 없게 되기 전까지는 시간 포집기는 원래의 기능을 하며, 책을 읽을 때마다, 나에게 시간 포인트를 보내 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책과 나의 물리학적 거리와는 무관한 그런 것이었다.

“사장님은 너무 순진하세요.”

“후후. 그렇게 생각해?”

“그럼요. 대부분은 양심적인 사람들이겠지만, 아무튼 이런 건 오래는 못 간다고요.”

“괜찮아, 내가 해 보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   *   *

수정 씨의 말대로, 더러 없어지는 책들도 있었지만, 무료 도서관은 제법 성공적이었다.

카페에서 책을 빌려줄 때는 하루에 많아야, 50시간 포인트를 채우기도 어려웠는데, 무료 도서관을 만들어 놓자, 이제 하루에 200에서 300포인트가 들어올 때도 있었다.

300포인트를 이용하면, 나의 공간에, 100평 정도의 새로운 공간을 창조할 수 있었다.

그걸로 진석은 매일매일, 공간의 땅을 넓혀 나가기 시작했다.

*   *   *

-공간의 면적이, 2만 제곱미터를 넘어섰습니다.

“그래, 평수로는 얼마나 되는 거지?”

-평수로는 대략 6천 평쯤 됩니다.

진석은 만족스러운 듯이 넓어진 공간을 바라보았다. 이제 진석의 공간은 제법 큰 섬이 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별다른 나무도 없고, 있는 거라고는 진석이 품종 개량을 위해, 심어 둔, 딸기와 식용 상추, 토마토 정도였다.

여기저기 진석이 만든 샘이 있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황량한 6천 평짜리 흙덩어리에 불과했다.

“나무도 심고 그러면 좋을 텐데. 그렇기는 한데, 시간은 많지만, 몸이 힘들어서 하기가 싫단 말이야.”

공간에서 진석이 보내는 시간은 현실 세계의 시간과는 단절된 곳이라, 얼마든지 이곳에서 작업을 하고, 나무도 심고,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땅 파고 심고 하는 모든 일들이 고된 육체 노동이라, 힘이 들어서 별로 하고 싶은 의욕은 생기지 않았다.

-공간이 확장되면서, 공간주님의 레벨도 이제 많이 상승했습니다.

“레벨? 얼마나 올랐는데?”

-이제 레벨 10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창조의 스킬을 사용하실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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