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2/12)

“헉!”

지윤은 이불을 걷어 내며 튕기듯 일어났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심장이 터지도록 두근거렸다. 아직도 물속에 잠겨 있는 듯 호흡이 갑갑했다. 가슴팍에서 어지럽게 흔들거리는 목걸이를 손에 쥔 채 숨을 몰아쉬었다.

“윤, 일어났어요?”

이반의 목소리다. 1층에서 커피 전문점을 운영하는 그는 맨 처음 내린 아메리카노를 매일 아침마다 그녀에게 가져다주는 다정한 연인이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안도감이 느껴짐과 동시에 조금 조급해졌다. 지윤은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어 식은땀을 서둘러 닦았다.

아침부터 악몽에 사로잡혀 볼품없이 허덕거리는 모습은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하루걸러 한 번씩 벌어지는 일이라 해도.

“아….”

마구잡이로 닦다 보니 입술에 피가 솟았다. 지윤은 유별날 정도로 입술 표면이 약하고 건조해서 자주 찢어지곤 했다.

‘이반이 또 잔소리하겠네.’

이반은 지윤의 입술에 핏기만 보여도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에게는 평범한 일상과 같은 일인데 유독 이반은 과민하게 반응했다. 지윤은 티셔츠로 입술을 꾹꾹 눌러 핏기를 없앴다.

“윤?”

“응, 지금 일어났어.”

커피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그가 침대로 다가왔다. 옆에 앉아 가만히 지윤을 응시하다 젖은 머리카락을 천천히 넘겨 주었다.

“땀을 많이 흘렸네.”

“날이 많이 더워졌잖아.”

저도 모르게 눈을 피했던가. 이반이 지윤의 턱을 살며시 잡고 눈을 맞췄다.

“또 입술에 피 났어요?”

“하품하다가.”

“하, 진짜. 조심하라니까.”

입술을 조심스레 만지는 손길이 어쩐지 뜨겁다. 깊이를 알 수 없는 회색빛 동공은 입술의 주름을 세려는 듯 집요했다.

“샤워, 같이 할래요?”

불현듯 그에게서 욕망의 냄새가 진하게 풍겨 왔다. 항상 나른하고 부드럽던 눈빛이 무겁고 끈적끈적하게 변해 온몸에 달라붙었다. 지윤은 금방 씻고 나온 듯 아직 물기가 남아 있는 그의 흑발을 흘낏 쳐다보았다.

“…씻고 나온 거 아니야?”

“그럼 씻겨 줄게요. 하고 싶어졌어.”

씻겨 주고 싶다는 건지, 아니면 다른 걸 하고 싶다는 건지. 이반은 가끔 모호하게 말할 때가 있었다. 특히 섹스를 하기 전에는 유독 심했다.

지윤이 대답하지 않자 이반이 고개를 숙였다. 귀 끝에서부터 쇄골까지 이어진 물기를 느른하게 핥아 올렸다. 솜털이 일어나면서 예민해진 피부에 그의 숨결이 느껴졌다.

“하지 마. 더러워.”

“그럴 리가. 당신은 땀도 달아요.”

“…….”

“못 믿겠으면 맛 한번 볼래요?”

그가 혀를 살짝 내밀었다. 고르고 하얀 치아 사이에서 나온 붉은 혀가 입술을 쓸었다. 이 남자는 이럴 때 보면 타고난 요부 같다.

어느덧 악몽의 여운은 사라지고 아래가 젖기 시작했다.

“씻겨 줄게요. 아래도.”

“거긴… 괜찮은데.”

“젖었잖아요. 빨리 와요. 나 급해.”

이반에게 손목을 잡혀 샤워실로 끌려 들어갔다. 황급히 치약을 짜고 양치질을 하는데 그새를 못 참고 그가 몸을 붙여 왔다. 뻣뻣하게 서 있는 페니스가 허리춤을 눌렀다.

“자, 잠깐. 양치만 하고.”

“응, 양치해요.”

그가 지윤의 목걸이를 살짝 잡아당기며 목덜미를 덥석 물었다. 살갗을 짓누르는 치아가 느껴진다. 이반은 다정하고 금욕적인 외모와는 다르게 섹스는 다소 거칠었다.

“으음….”

“아, 아파!”

“미안. 당신 냄새가 너무 좋아서. 물어뜯고 싶어.”

그의 숨결이 목을 데웠다. 얇은 팬티는어느새 벗겨져 무릎 아래에 걸려 있었다. 목을 빨면서 가슴을 움켜쥐는 그의 모습이 거울에 비쳤다. 젖꼭지를 꼬집어 비트는 모습까지도 적나라하게.

지윤은 벌겋게 변한 얼굴을 재빨리 숙였다. 대충 양치를 끝내고 입 안을 헹구기 위해 허리를 숙이려는 그때, 그의 손이 엉덩이 골을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 젖은 살덩이 사이를 가르고 들어온 손가락이 클리토리스를 찾아 느리게 문질렀다.

“흣!”

“젖었어요. 바닥에 떨어질 정도로.”

“그, 그만… 으… 거긴 그만….”

“좋아하잖아. 여기 만져 주는 거.”

부드럽게 움직이던 손가락이 클리토리스를 집요하게 비볐다. 거기서부터 시작된 아찔한 쾌감이 등골을 타고 올라갔다.

이반이 무릎을 꿇고 엉덩이를 잔뜩 벌렸다. 잔뜩 빼어 문 혀로 항문부터 아래까지 길게 핥았다.

“다리, 세면대 위에 올려요.”

존대임에도 꼭 명령처럼 들렸다. 흥분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그는 항상 말투가 서늘하게 바뀌었다.

지윤은 세면대에 한쪽 다리를 올린 채 허리를 구부렸다. 그의 혀가 더 안쪽으로 들어왔다. 클리토리스를 문지르던 혀를 뾰족하게 세워서 구멍 안으로 집어넣었다. 마치 페니스처럼 왕복하는 혀의 감촉에 지윤이 입을 크게 벌렸다.

“아, 아흣! 아, 아!”

예고도 없이 손가락이 안으로 파고 들어왔다. 정확한 지점을 짓누르고 긁다가 빠르게 빠져나간다. 허전함을 느낄 새도 없이 두 개로 늘어난 손가락이 내벽을 벌렸다. 안을 들쑤시고 후벼 파더니 진동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아, 아, 너무 빨, 라….”

몸이 덜덜 떨렸다. 감은 눈에서 하얀빛이 번쩍거렸다. 등골이 오싹하면서 발가락이 바짝 오므라졌다. 지윤이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무는 순간, 손가락이 단번에 빠져나갔다. 구멍이 오물어지기도 전에 훨씬 굵고 긴 것이 꾸역꾸역 밀며 침입했다.

“흐읏, 으으….”

“하… 좋아.”

귓가에 그의 낮은 음성이 들렸다. 눈을 살짝 떠 보니 거울에 눈을 내리뜬 그의 아름다운 얼굴이 보였다. 처마처럼 드리워져 회색 눈동자를 가린 기다란 속눈썹과 높고 우아한 콧날. 젖어서 더 붉어 보이는 입술까지.

그가 시선을 들어 지윤과 눈을 맞췄다. 동시에 허리를 크게 빼고는 빠르게 쳐올렸다. 지탱하고 있는 발이 들썩일 정도로 거친 행위였다.

“하, 혀 내밀어요.”

“…….”

“더.”

이반이 지윤의 고개를 돌려 혀를 빨았다. 거울에 보일 정도로 서로의 혀가 음란하게 얽혔다. 다시 그의 페니스가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박혔다.

“하읏!”

지윤이 가슴이 세면대에 짓눌릴 정도로 허리를 구부리며 신음했다. 끝까지 밀고 들어온 귀두 끝이 자궁 입구를 짓누르는지 둔통이 느껴졌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약한 통증마저도 들끓는 쾌감 속으로 흡수되었다. 세면대를 부여잡은 그녀의 손에 관절이 하얗게 일어섰다.

“조이지 마요. 지금도 쌀 것 같아.”

“아, 안 조였… 으응….”

“하.”

쾌감을 억누르기 위해 이반이 미간을 접었다. 미칠 것 같은 쾌감은 언제나 낯설었다. 말초 신경이 타 버리는 것 같은 감각. 통증과 비슷한 그것은 할 때마다 커지는 것 같다. 몇 번을 해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이반은 입술을 핥으며 허리를 크게 쳐올렸다. 물결처럼 흔들리는 지윤의 엉덩이를 손자국 나도록 움켜잡고 허리를 빠르게 움직였다.

퍽퍽! 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아래로 손을 내려 클리토리스를 만져 주자 지윤이 흐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아! 으응! 하으…!”

“지금 이 안이, 어떤지 알아요? 흣, 자지를, 빨아 먹는 것 같아.”

내벽이 좁아지면서 페니스를 쥐어짰다. 굳이 밀어 넣지 않아도 페니스가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이반은 절정에 다다른 지윤의 몸을 끌어안으며 틀어막고 있던 사정감을 풀어 버렸다. 페니스를 거의 빼지 않고 안에 끼워 넣은 채 빠르게 털었다.

찌꺽찌꺽, 음란한 소리와 함께 비어져 나온 애액이 그의 음모에 거미줄처럼 엉겨 붙었다. 고삐 풀린 짐승처럼 쾌감이 단숨에 정수리까지 치고 올라왔다. 그가 마지막 순간에 페니스를 단번에 잡아 뺐다.

“으읏!”

손으로 훑기도 전에 뿌연 정액이 솟구쳐 올라 지윤의 엉덩이에 고루 뿌려졌다. 이반의 억눌린 신음 소리가 욕실을 울렸다.

“하….”

“하아, 하아!”

격렬하게 들썩이는 지윤의 등골을 이반이 느릿하게 훑었다. 정액이 묻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가 지윤의 등에 몸을 겹쳤다.

“부족해요.”

“…가게 열어야지.”

“내가 주인인데 뭘.”

“이러니까 매일 지각이지. 어서 비켜.”

“선생님, 고민 좀 들어 주세요. 내 애인이 좀 차가운 것 같아요.”

지윤은 한인 타운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이반은 그녀의 직업을 알고 나서부터 불만이 생기면 저런 식으로 드러내곤 했다.

‘귀엽게.’

저도 모르게 피식 웃다가 천천히 미소를 지웠다. 이반을 알게 된 건 1년 전쯤, 그가 지윤이 사는 건물 1층에 커피숍을 열면서부터였다.

잘생긴 데다가 다정다감하고 상냥한 성격인 그는 누구에게나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고, 지윤도 처음부터 그에게 끌렸다.

다만, 자신의 마음이 누군가와 정상적으로 사랑을 나누기에는 이미 비틀리고 병들어 버렸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다가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먼저 손을 내민 건 이반이었다. 그는 자신을 거부하는 그녀에게 끈질기게도 호감을 표현했다. 어디 모자랄 것 없어 보이는 그가 왜 하필 자신에게 이러는지, 지윤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놀리는 건가, 싶어서 피하기도 했지만 결국엔 그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체온이 간절하게 필요했고, 그게 이반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에.

그래서 그에게 좋은 면만 보여 주고 싶었다.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다가 땀에 흠뻑 젖은 채 깨어나는 모습을 보여 주기 싫어서 같이 잠드는 것도, 동거도 거절했다. 정기적으로 상담사를 찾아가는 것도 알리기 싫었다. 열 명 중 아홉 명이 상담을 받는 나라에서 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차가운 게 아니라 공과 사가 분명하다고 하는 거야.”

“섭섭해라. 일하지 말고 나랑 같이 있자고 조르는 게 더 좋은데.”

“…….”

“알았어요. 그런 표정 하지 말아요. 씻겨 주기만 하고 갈 테니까.”

이반이 지윤을 샤워 부스에 밀어 넣고 비누칠을 해 주었다. 간질간질한 거품이 몸을 덮었다가 물줄기에 쓸려 내려갔다. 하수구에 빨려 들어가는 비누 거품을 보니 무거운 마음도 덜어지는 것 같다.

“욕조는 왜 안 써요? 사용하는 걸 한 번도 못 본 것 같은데.”

“…물에 몸 담그는 거 안 좋아해. 답답해서.”

“그러고 보니 비도 싫어하고, 바다도 안 가고. 수영도 싫어요?”

“응.”

지윤이 여상히 대답했지만 안색은 그렇지 않았다. 뭔가 피하려고 하는 기색을 읽은 이반이 말을 돌렸다.

“오늘 스케줄은 어때요? 크루아상을 아주 맛있게 구울 예정인데, 와서 매상 좀 올려 주지 않을래요?”

오늘은 상담이 예정된 날이다. 지윤은 미안한 듯 입매를 늘어뜨렸다.

“약속이 있어서. 늦게라도 들를게.”

“무슨 약속? 오늘 수업도 없잖아요.”

“…….”

“선생님, 고민이 있어요. 내 애인은 비밀이 너무 많아요.”

우스갯소리만은 아닌 듯 이반의 눈매가 조금 굳었다. 머리를 감겨 주고 물기까지 싹 말려 줄 때까지 그는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이따 볼 수 있으면 봐요.”

짧은 시간 안에 생각을 정리했는지, 이반이 예의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며 가볍게 키스했다. 지윤은 돌아서 나가는 그를 잡기 위해 들어 올린 손을 가만히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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