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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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대니얼 도와 세션의 이름이 걸린 음반이 CD와 LP 양쪽으로 모두 제작되었다. LP는 소량제작이었기 때문에 경쟁률이 치열해서 소소한 사건들이 여러 건 발생했다. 제값에 사서 부풀려 재판매한다던가, 가족과 지인을 동원해 여러 장을 구매한다던가, 그런 일들이었다. 하지만 곧 팬들에 의해 자체적으로 해결이 되었다.

대니얼의 유명세가 높아지면서 덩달아 온정도 이목을 집중 받았다. 대니얼과 함께 있는 모습이 사진에 찍혀 돌아다니기도 했다. 온정에 대한 스킨십이 워낙 진한 대니얼이다 보니, 사진들마다 그야말로 ‘핫’했다.

그 과정에서 지용이 예전의 그 사실혼 부부를 수소문해 지켜보기도 했었다. 혹시 이상한 소리라도 지껄일까 염려한 까닭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두 사람은 각각 새로운 배우자를 만나 안정적으로 살고 있었고, 여자의 경우에는 보상금을 도로 토해내게 될까 두려웠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대니얼은 이제 연주 여행을 전세기로 이동했다. 가족에 세션에 스태프에 다 타고 돌아다니려면 일반 여객기보다 그게 훨씬 이득이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대니얼과 온정은 아들과 함께 전세기 안에서 곤하게 잠든 상황이었다.

셋 중에서 가장 먼저 눈을 뜬 사람은 아들 버니였다. 꼭 끌어안고 잠든 아빠와 엄마를 가만히 들여다보던 버니가 조용조용 엉덩이를 밀어 침대 밖으로 내려선 뒤꿈치를 들고 방을 빠져나갔다. 허리까지 반으로 접고 살금살금 다섯 발짝 쯤 걸어갔을 즈음이었다.

“베르나르 도.”

“힉!”

제이슨이었다.

“어디 가죠?”

버니가 손가락을 꼼질거렸다.

“어제 먹다 남은 꿀떡 먹을라고요.”

“허락은 받았나요?”

버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베르나르 도. 알다시피 허락부터 받아야 해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버니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제이슨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왜 울죠?”

버니가 오른손을 얼굴 옆까지 들고는 살짝 나풀거렸다. 제이슨이 허리를 숙여 버니에게 눈을 맞추는 순간, 버니가 제이슨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제이슨은 당황했다.

“아빠랑 엄마랑 이렇게 자요.”

“아! 그래서요?”

“그럴 땐 깨우면 안 돼요.”

“그럴 땐 깨우면 안 된다고 누가 그러던가요?”

“아무도 안 그랬어요.”

“아! 그럼 베르나르 도의 생각인가요?”

“눼.”

“왜 그렇게 생각하죠?”

“그래야 동생이 생겨요.”

“아!”

“그치만 꿀떡이 너무 먹고 싶어요. 훌쩍!”

제이슨이 고개를 끄덕했다.

“좋아요. 그럼 이번만 봐주죠.”

“고맙습니다. 순이 형.”

제이슨이 움찔했다. 그러곤 버니를 조심스럽게 안아 품에 담았다. 납작 붙어오는 네 살짜리 사내아이의 체취가 제이슨의 속을 울렁거리게 만들었다.

“베르나르 도. 그럼 나한테는 뭘 해줄 건가요?”

버니가 제이슨의 귀에 입술을 댔다.

“소원 들어줄라고요.”

“아! 소원.”

“눼.”

“좋아요. 생각해서 말하죠.”

“눼.”

버니를 안고 꿀떡이 있는 곳을 향해 가면서 제이슨이 한숨을 내쉬었다. 평생 독신으로 살 계획이었는데, 버니가 자꾸 흔들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흔들림의 연속이었다. 대니얼을 처음 봤을 때도, 온정을 처음 봤을 때도 사정없이 흔들렸으니까 말이다.

제이슨이 우뚝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빠랑 엄마랑 이렇게 자요.

두 사람의 스킨십을 하루 이틀 목격한 게 아니었다. 거의 섹스 직전의 모습도 봤었다. 하지만 민망한 적 없었다. 그냥 지나쳤을 뿐이었다. 흔들렸다고 해서 그 두 사람을 성적 대상으로 본 건 아니니까 말이다. 그런데 네 살짜리 아이가 한 말이 가슴에 폭풍을 일으켰다. 자신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욕구랄까, 욕망이랄까.

“순이 형.”

제이슨이 정신을 환기했다.

“예. 베르나르 도.”

“같이 먹어요.”

제이슨이 표시 안 나게 웃었다. 그 귀한 꿀떡을 나눠 먹을 생각을 하다니. 버니의 애정이 느껴졌다. 제이슨이 자신도 모르게 커다란 손으로 버니의 작은 뒤통수를 가만가만 어루만졌다. 그러곤 꿀떡을 향해 다시 걸음을 놓았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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