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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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홀로 서서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스’를 연주하는 1부, 세션과 함께 올라 편곡곡과 자작곡을 연주하는 2부, 그렇게 무려 세 시간에 걸친 「대니얼 도 내한공연」이 끝이 났다. 하지만 객석은 아니었다. 일제히 일어나 손을 들고 “대니얼! 대니얼!”을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6만6천여 명이 들어찬 <서울 월드컵 경기장>이 들썩거리자 하늘의 별들도 진동하는 듯했다.
핀 조명이 다시 켜지고 들끓어 오르는 함성 속에서 대니얼이 다시 등장했다. 가톨릭 신부의 평상복 수단을 연상시키는 검은색의 기다란 상의에 검은 바지 차림, ‘섹시 파더’라 일컬어지는 대니얼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섹시 파더Sexy Father란 사제를 가리키는 홀리 파더Holy Father의 응용이었다. 한 마디로 ‘야한 신부님’이랄까. 그도 그럴 것이 외모는 ‘술 빨고 약 빨게’ 생겼음에도 사생활이 엄청 깨끗한 데다, 언뜻 보면 딱 가톨릭 신부님이니 말이다.
대니얼이 허리를 90도로 굽혀 공손하게 인사하자 객석이 일시에 조용해졌다. 앙코르곡, 공연의 진짜 마지막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대니얼이 반듯하게 선 후 고개를 돌려 옆을 보자 무대 옆 가림막 뒤에서 온정이 환하게 웃어주었다. 대니얼이 마주 웃고는 바이올린을,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렉트릭 바이올린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My Lady」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일렉트릭 바이올린으로 낼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소리의 엄청나게 빠른 곡이었다.
…댄. 우리 일렉트릭으로 가요.
그 말 한마디가 대니얼의 인생을 180도로 바꿔버린 터였다. 물론 처음에는 당황했고 난감했다. 하지만 일렉트릭 바이올린을 잡은 지 며칠 안 돼서 대니얼은 금세 악기와 하나가 되었다. 뿐이랴. 대니얼이 풍기는 전체적인 분위기와 일렉트릭 바이올린의 분위기가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고, 온정이 주도한 ‘야한 신부님’ 컨셉은 그냥 딱 대니얼의 것이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이기는 해도 파가니니 한정이었고, 그마저도 나이가 들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확실하게 구축함과 동시에, 늘 파가니니 뒤에 붙어 다니던 ‘대니얼 도’라는 이름을 파가니니보다 앞에 등장시키게 된 것이다. 초반에 펄펄 뛰던 도준수 회장도 입을 못 다물 정도의 성공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공연 규모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냥 바이올리니스트였을 때 한국에서 가장 크게 치렀던 공연이 2,500석 규모의 실내 콘서트홀 공연이었는데, 일렉트릭으로 전향하고 나서는 실외가 아니면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대니얼의 공연을 찾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6만6천여 석이 꽉 찬 이번처럼 말이다.
대니얼의 「My Lady」 연주가 계속되었다. 7분 7초짜리 곡으로 대니얼이 세션을 구성한 후 가장 처음 작곡한 곡이었다. 주변에서 예상했던 대로 My Lady는 온정이었다. 부드럽고 깔끔하고 현란하면서 호흡이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로 빠른, 그런 곡이었다.
「My Lady」를 완성하던 날, 두 사람은 밤을 새워 섹스했다. 세다가 포기한 터럭들이 맞닿아 비벼지고 비벼지는 동안 여러 가닥이 매트리스에 떨어졌고, 다음 날 한 올씩 발견될 적마다 이게 누구 거냐고 서로의 중심에 대보며 깔깔거렸었다.
온정이 가슴을 부풀려 숨을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뱉었다.
“들을 때마다 좋으십니까?”
제이슨이었다. 대니얼과 관련된 대외업무 담당이었다. 무엇보다도 대니얼이 웬만해선 하지 않는 인터뷰를 제이슨이 도맡고 있었다. 대니얼의 한국 팬들이 붙여준 ‘순이 형’이라는 별명을 굉장히 좋아하기도 했다.
“네. 들을수록 좋네요.”
“저도 그렇습니다.”
“고마워요.”
제이슨이 빙긋 웃고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대니얼이 온정을 요란하게 끌어안을 때를 대비한 일종의 피난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곡을 마친 대니얼이 무대 뒤로 오자마자 온정부터 껴안고는 빙글빙글 돌았다.
“고생했어요.”
“정말 신났어.”
온정이 환하게 웃었다. 자신도 아는 바였다. 대니얼은 점잖은 관객 몇천으로는 갈증이 가시지 않는 사람이었다. 지금처럼 몇만은 되어야만 에너지가 충족되는 사람이었다.
온정은 자신의 안목이 정확했다는 사실이 새삼 또 뿌듯했다. 그래서 그 뿌듯함을 진한 키스로 표현했다.
마지못해 입술을 뗀 대니얼이 온정의 귀에 속삭였다.
“가자.”
온정이 웃었다. 대니얼은 그 어떤 파티도 참석하는 법이 없었다. 세션도 다 알고 이해하는 부분이었다.
그때 제이슨이 다가왔다.
“기사 뜨기 시작했습니다.”
온정이 눈을 반짝였다.
“벌써요?”
“공연 전에 헬기가 찍은 사진은 이미 풀렸고, 지금은 언론사 공식 기사들입니다. 오늘 밤에 SNS 폭발할 겁니다.”
“네. 알았어요.”
제이슨이 손짓하자 보디가드들이 두 사람을 에워쌌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니얼은 온정을 껴안다시피 하고 걸음을 옮겼다.
“누나.”
온정이 대니얼을 쳐다보자 대니얼이 팔에 힘을 주었다.
“나 흥분 가라앉혀야 하는데.”
“알았어요. 금방 가요.”
“응.”
희한했다. 대니얼을 흥분시키는 사람도 온정, 그 흥분에서 빼내오는 사람도 온정이니 말이다.
두 사람의 걸음이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