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prologue (1/13)

[목차]

prologue

1. D-3

2. D-2

3. D-1

4. D-day

5. D+1

6. D+2

7. D+3

8. D+4

epilogue

외전

★니콜로 파가니니Niccolo Paganini

1782.10.27~1840.5.27

이탈리아 제노바 출생,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불렸을 정도로 현란한 기교를 선보인 천재 음악가,

「24개의 카프리스」와 「바이올린협주곡」 등이 있다.

★내용에 등장하는 「Daniel Do Niccolo Paganini 24 Caprices」는 가상의 음반임을 밝혀둡니다.

prologue

Niccolo Paganini 24 Caprices

No.1 E major Andante

마장조 느리게

내내 눈을 감고 있던 대니얼이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바람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한국형 토네이도, 뭐 그런 건가?’

차창 너머가 난리도 아니었다. 나무마다 요동에, 흩날리는 나뭇잎에, 그 위로 바람에 끌려가다시피 빠르게 사라지는 구름에, 요란 뻑적지근했다.

대니얼이 시선을 정면으로 옮기자 구불구불한 오르막에 흙먼지가 가득했다.

“젠장!”

빌어먹을, 제기랄, 젠장! 비도 눈도 없이 바람만 요란한 날씨는 딱 질색인데 말이다.

순간 백미러로 강 실장과 눈이 마주쳤다. 쉰 정도 됐을까?

…저는 <오디세이 호텔 앤 리조트> 홍보실의 강두식 실장이라고 합니다.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미국에서 계약서를 작성할 때 공항 마중 건에 대해 특별히 언급했었다. 이 사람 저 사람 섞어 보내서 시끄럽게 만들 생각 말고 한 사람으로 통일하라고 말이다. 그랬더니 정말 딱 맞춤한 인물을 보냈기에 <오디세이 호텔 앤 리조트> 측의 감각에 긴장을 풀었는데, 날씨 때문인지 아무 잘못도 없는 강 실장에게까지 신경질이 뻗치고 있었다.

‘왜 쳐다봐? 내 발음이 그렇게나 좋았나?’

속말이 겉으로 들리기라도 한 듯이 강 실장의 시선이 바로 전방으로 돌아갔다.

대니얼이 짜증 섞인 한숨을 흘렸다.

‘설마 연주회 날도 이러지는 않겠지?’

<오디세이 아트홀>에서의 연주회가 나흘 뒤였다.

‘그나저나 이거 사기인데.’

그랬다. 이런 산 속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예전에 묵었던 서울 한복판의 거대한 <오디세이 호텔> 정도로만 생각했고, 사진으로 확인했을 때도 작은 도시나 다름없기에 도시에서 도시로의 이동으로만 여겼었다. 그런데 가는 길이 뜻밖도 아주 뜻밖이었다. 구불구불, 꼬불꼬불.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고.’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실랑이 자체가 귀찮았다. 순간적으로 결국 에이전시를 구해야 하나, 했지만 바로 고개를 저었다. 에이전시는 더 질색이었다.

‘나 대니얼 도를 묶어? 그럴 수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 없어.’

구불구불, 꼬불꼬불.

조금씩 심해지는 멀미감에 대니얼이 입을 열었다.

“얼마나 더 가야 하죠?”

“40분 정도 남았습니다.”

40분? 입이 벌어졌다.

“하!”

강 실장이 백미러로 대니얼을 쳐다보았다.

“잠시 멈췄다 갈까요?”

대니얼이 오만상을 찡그렸다.

“어디에 멈추게요? 여기 길바닥에? 이 바람통에?”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대니얼이 바로 짜증을 이어갔다.

“그럼 바람 피해서 가면 되는 거 아닌가? 굳이 오늘 가야 하는 이유라도 있나?”

이건 뭐 반말인지 혼잣말인지. 한국 놈 아니니 감안해 듣겠지, 하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내질렀다.

“도착하시고 나서 사흘 정도는 연주회장 옆에 풀로 계셔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러니까 내 탓이다?”

“그런 뜻은 아닙니다.”

“융통성은 뒀다 뭐에 쓰지?”

“죄송합니다.”

대니얼이 시트에 몸을 파묻었다.

“절벽 아래로 떨어뜨리지나 마세요.”

“예.”

그도 그럴 것이 길 오른쪽이 거의 벼랑이었다. 난간이 세워져 있기는 하지만, 만약 충돌이라도 할 경우 버텨낼 수 있을까 싶었다.

그때였다.

차에서 덜컥덜컥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또 뭐야!’

강 실장이 조용하게 분주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덜컥덜컥’은 더 빨라졌고 차는 이내 멈춰버리고야 말았다. 눈을 살벌하게 뜨고 강 실장의 뒤통수를 노려보자 그가 고개를 돌려 대니얼을 쳐다보았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대니얼이 짜증이 듬뿍, 아주 듬뿍 담긴 손짓으로 허락했다. 허락을 안 하면 또 어쩔 것인가.

강 실장이 잽싸게 내려선 보닛을 열었다. 그러면서 대니얼의 시야가 온통 가로막혀버렸다.

“젠장!”

새카만 보닛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자니 강 실장이 나타났다.

차창을 살짝 내리자 강 실장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미스터 대니얼 도. 죄송합니다. 잠시 안에 계시면 바로 해결하겠습니다.”

고개를 까딱했다. 안 까딱하면 또 어쩔 것인가.

강 실장이 휴대폰을 들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예. 본부장님.”

‘본부장?’

“차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정비를 마친 것으로 아는데 갑자기…….”

대니얼이 고개를 저었다. 억 소리 나는 차도 차라고 문제가 생긴다는 게 우스웠다. 하긴 대니얼도 억 소리 나는 사람이지만 자타공인의 하자가 수두룩한 터였다.

“미스터 대니얼 도께서는 차 안에 계십니다. 예? 예, 바이올린도 무사합니다.”

대니얼이 피식, 했다. 바이올린 걱정을 다 해주고, 누군지 몰라도 그거 하난 기특했다.

“예? 어디요? 거긴 왜 계십니까?”

대니얼의 한쪽 눈썹이 꿈틀했다. 또 뭔데? 그 뜻이었다.

“아, 예. 알겠습니다.”

휴대폰을 내린 강 실장이 대니얼에게 다가왔다.

“미스터 대니얼 도. 저희 본부장님께서 모시러 오신답니다.”

본부장이 직접이라. 마음이 살짝 풀렸지만 여전히 퉁명스럽게 물었다.

“얼마나 걸리는데요?”

“20분이면 오신답니다. 근처에 계신답니다.”

그 말에 방금 전에 들은 통화내용이 떠올랐다.

…예? 어디요? 거긴 왜 계십니까?

“근처에 뭐가 있는데요?”

“패러글라이딩 캠프장이 있습니다.”

대니얼은 진심으로 놀랐다. 설마 지금 그걸 한다고? 아니면 그냥 일?

그때 강 실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저, 미스터 대니얼 도. 한 가지 양해를 구해도 되겠습니까?”

‘하!’

어이없다는 표정을 읽었는지 강 실장이 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본부장님 차가 오프로더입니다.”

와락, 인상이 써졌다. 오프로더면 그 군용 트럭처럼 생긴, 우락부락한 그런 차를 말하는 거 아닌가.

“승차감이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미스터 대니얼 도께 약속드린 리무진이 아니기 때문에…….”

“알았어요.”

“정 안 내키시면 다른 리무진으로…….”

“알았다고 했잖아요. 다른 리무진 타려면 또 기다려야 한다는 건데, 누구 죽일 생각이에요?”

“죄송합니다.”

“죄송할 말을 왜 해요?”

강 실장이 입을 다물었다.

대니얼이 성질을 억눌렀다.

“20분?”

“최장 20분입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강 실장이 물러서자마자 “젠장!” 했다. 얌전히 있다가 돌아가려고 했는데, 인성 개차반 소리를 또 듣게 생겼으니 열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시트에 몸을 묻고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그 거센 바람 속에서도 새가 날고 있었다.

‘나는 게 아니라 날리는 건가?’

그렇게 눈으로 새를 따라다니고 있자니 이내 묵직한 엔진음이 들려왔다. 생각보다 빨랐다. 자신 때문에 서둘렀나 싶은 것이 마음이 살짝 더 풀렸다.

‘오프로더인지 온로더인지, 아무튼 뭐가 드디어 왔군.’

시선을 돌렸지만 하늘로 치켜져있는 보닛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대니얼은 그냥 있었다.

잠시 후 자박자박 발소리에 이어 차창에 사람이 나타났다. 고개를 돌리니 초콜릿색의 야상이 보였다. 남자치고는 대단히 가느다란 몸매에 의아해하는데, 그 사람이 허리를 굽혀 차창에 얼굴을 들이댔다.

“안녕하세요, 미스터 대니얼 도.”

대니얼은 진심으로 놀랐다. 당연히 성인 남자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는데 짧은 머리의 곱상한 소년이었다. 어안이 벙벙한 틈을 비집고 상대가 차 문을 열고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저는 예온정이라고 해요. 남들은 본부장이라고 부르더군요.”

자신도 모르게 홀린 듯 손을 맞잡자 곱상한 소년, 아니 젊은 여자, 아니 온정이 부드럽게 흔들고는 대니얼의 손을 놓아주었다.

“그럼 저하고 가실까요?”

군말 없이 바이올린을 챙겨선 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차 밖으로 몸을 빼자 바람이 와르르 밀려와선 그의 기다란 머리카락을 마구 흩날렸다.

***

차에 오르자마자 명함부터 내밀었다. 거창한 직함을 달고 있는 이상, 그 직함이 싫건 좋건 간에 그건 기본이었다.

대니얼이 받아들고는 중얼거렸다.

“오디세이 호텔 앤 리조트 곤돌라 사업본부 본부장 예온정.”

온정이 싱긋, 웃었다.

“네. 그게 저네요.”

대니얼이 온정을 빤히 쳐다보았다. 온정이 한 번 더 싱긋, 하고는 입을 열었다.

“추측하시는 대로 낙하산이에요.”

대니얼이 고개를 갸웃했다.

“계약서에는 CEO가 문…….”

뒤를 채우지 못하는 대니얼을 대신해 온정이 대답했다.

“문희경.”

“아! 문희경. 그분하고는 무슨 사이인데요?”

“엄마요.”

“아! 엄마. 그러니까 엄마가 펴준 낙하산!”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버지가 펴주신 낙하산이에요. 엄마는 그런 거 신경 안 쓰거든요.”

온정의 아버지 예지용은 <오디세이 호텔 앤 리조트> 부사장으로 문 씨 집안의 데릴사위였다. <오디세이 호텔 앤 리조트>를 문 씨가 아닌 예 씨로 꽉꽉 채우는 것이 삶의 목표인 열혈 사내이기도 했다.

온정이 속으로 ‘괜한 말 했나?’ 하는데, 대니얼이 명함을 재킷 속주머니에 집어넣고는 시트에 느슨하게 앉았다. 인상을 그렇게나 썼던 데 비하면 승차감이 꽤 괜찮았다. 리무진보다는 못해도 있을 만했다.

온정이 그런 대니얼을 힐긋하고는 운전에 집중했다. 바람이 강렬해서 모처럼 패러글라이딩 캠프장까지 올라가 적극적으로 전신거풍 좀 하려 했더니, 한 시간도 안 돼 끌려내려 온 터였다. 아쉽고 또 아쉬웠다.

하지만 온정은 가장 먼저 자신을 찾은 강 실장을 이해했다. 차가 중간에 퍼져버렸다는 사실이 아버지 지용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했다가는 여러 사람 입에서 단내 날 일이 벌어질 게 불을 보듯 뻔한 까닭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더 강퍅해지는 지용이 온정은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강 실장님 표정 보니까 이 남자가 벌써 한바탕 퍼부은 것 같던데.’

안 그래도 까다롭고 까칠하기가 말도 못 한 바이올리니스트라는 말을 들었다. 그렇다 해도 ‘천재’ 자 붙은 아티스트니 유별나기야 하겠지 하고 흘려 넘기기도 했고, 자신이 따로 상대할 일이 생길 것도 아니어서 관심조차 두지 않았는데, 갑자기 직접 상대하려니 난감했다.

게다가 막상 코앞에서 확인한 외모는 까다로움이나 까칠함보다는 퇴폐적이라는 인상이 더 짙었다. 노골적인 양아치는 봤어도 적나라한 퇴폐적 인물은 33년을 살아오는 동안 진실로 처음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음반이라도 들어보는 건데.’

그랬다. 대니얼 도라는 사람이 어떻게 연주를 하는 사람인지만 알아도 갈피가 잡힐 것 같은데 정보가 너무 없었다. 암담함 그 자체였다.

「Daniel Do Niccolo Paganini 24 Caprices」

우리말로 옮기자면 ‘대니얼 도 파가니니 24개의 카프리스’가 되는 음반이 가장 유명하다고 했다. 파가니니가 살아있었다면 대니얼 도를 양아들 삼았을 거라는 극찬도 끼어 다닌다고 했다. 궁금할 법도 했지만 온정은 무시했었다. 바이올린 소리를 딱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연주회에 갈 것도 아닌데 굳이 뭐 하러 공들여 그렇게까지 하나 말이다.

‘제발 음반 얘기는 안 나왔으면 좋겠네. 괜히 심기 거슬렀다가 일이라도 터지면 어떡해.’

일단 무슨 말이라도 걸어야지 싶어 입을 뗐다.

“바람이 심해서 오늘 안 오시는 줄 알았어요. 헬기 뜨면 금방인데 공항에서 여기까지 차로 오실 거라고는 생각 못 했거든요.”

그도 그럴 것이 VVIP의 경우에는 <오디세이 호텔 앤 리조트> 공식 헬리콥터가 운행을 하니까 말이다.

“나 헬기 안 타요.”

‘아!’

간혹 있었다. 시간이 아무리 걸려도 헬리콥터는 죽어도 타지 않겠다는 부류.

그때였다.

“이거 일부러 달았어요?”

대니얼이 하얗고 기다란 손가락으로 CD플레이어를 가리켰다.

“아니요. 내장형이에요.”

대니얼이 눈을 가늘게 뜨고 CD플레이어를 쳐다보았다.

“안에 CD 들어있어요?”

“네.”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니얼이 손가락으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온정이 속으로 ‘헉!’ 하자마자 찢어지는 듯한 일렉트릭 기타 소리가 차 안을 울리기 시작했다.

대니얼이 손가락을 세운 채로 일순 정지했다.

‘뭐야, 이거!’

온정을 쳐다보았다. 의외도 이런 의외가 없었다. 외모는 순진하고 순수한 소년처럼 생겨선 산발한 남자가 웃통 벗고 헤드뱅잉 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만드는 험상궂은 음악이라니.

손가락을 다시 움직여 음악을 껐다. 얼마나 노출이 됐다고 고막이 예리한 칼날로 찢겨나간 기분이었다.

“낙하산 씨?”

온정이 바로 대답했다.

“네.”

“취향이 투 지미 그쪽이에요?”

온정은 알아들었다. 투 지미란 일렉트릭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와 지미 페이지를 가리키는 거라고 말이다.

“네. 투 지미도 좋아해요.”

“아!”

이어서 한 번 더 “아아!”

그러는 동안 두 사람이 탄 오프로더 앞에 작은 도시가 펼쳐졌다.

대니얼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진으로 본 그 그림이네. 이제야 좀 사람 사는 데 온 것 같네.’

정경을 찬찬히 살피는 대니얼의 눈에 산꼭대기에 매달린 무언가가 보였다. 다시 손가락을 들어 가리켰다.

“저게 뭐예요?”

“곤돌라에요.”

“아, 곤돌라.”

그러다 아까 받은 명함의 문구가 떠올랐다.

<오디세이 호텔 앤 리조트> 곤돌라 사업본부 본부장 예온정

대니얼이 바로 물었다.

“저거 관리해요?”

그 말에 온정이 웃음을 터뜨렸다.

“네. 저거 관리해요.”

대니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곤돌라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도 탈 수 있어요?”

“그럼요. 원하시면 제가 모실게요.”

“아무 때나?”

“오늘은 안 돼요. 바람이 너무 불어서 운행도 못 하지만, 운행한대도 몇 분 안에 토할 거예요.”

곤돌라에 시선을 그대로 둔 채 대니얼이 말을 이었다.

“덜컥덜컥.”

온정이 바로 이어받았다.

“네. 곤돌라 안에서 바람을 맞으면 심장이 덜컥덜컥, 그렇더라고요.”

대니얼이 온정을 쳐다보았다.

‘파가니니 카프리스 1번도 내내 덜컥덜컥 그렇지.’

생각의 끝에서 이해할 수 없는 충동에 떠밀린 대니얼이 생각도 안 해본 말을 했다.

“낙하산 씨가 나 따라다녀요.”

“네?”

“나 여기 있는 동안, 낙하산 씨가 나 따라다니라고.”

온정은 당황했다.

“저는 이번 연주회하고 전혀 상관이 없…….”

“상관이 있든 없든 나 따라다니라니까?”

온정이 가만히 있자 대니얼이 덧붙였다.

“세 번 말했어요. 이제 끝. 한 번만 더 말 시키면 연주회 엎어버릴 테니 그리 알아.”

온정이 입을 벌렸다가 대니얼을 쳐다보았다.

“야!”

대니얼이 충격받은 얼굴로 온정을 쳐다보았다. 그 누구도 대니얼을 그런 식으로 부른 적이 없었다.

“내가 너를 왜 따라다녀? 낙하산은 일도 없는 줄 아나 본데, 낙하산도 낙하산 나름인 거야. 그리고 연주회를 엎는다고? 맘대로 해. 오디세이만 곤란해질까? 너도 망신이야.”

대니얼의 눈이 더 둥그레졌다.

“천재, 천재 하니까 지구인이 다 네 발아래 있는 것 같니? 네가 아무리 천재에 만재라 해도 나한테는 투 지미 밑이야. 잉베이 맘스틴을 기준으로 치면, 밑도 그냥 밑이 아니라 해저 3만리.”

잉베이 맘스틴 또한 일렉트릭 기타리스트였다.

“무엇보다 원하는 게 있으면 공손하게 부탁해. 싸가지 없는 말투로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고.”

온정이 덧붙였다.

“오디세이는 어느 방향으로 가도 절벽이 한 군데는 있거든? 한 번만 더 까불어 봐. 끌고 가서 떠밀어버릴 테니까.”

그러곤 딱 맞춰 나타난 <오디세이 호텔 IN 나왕> 정문 앞에 차를 댔다. 명함 좀 내밀 만한 직원들에 이사들까지 죄다 나와 도열해 있었다.

온정이 차에서 내리자 이사 하나가 빠르게 다가와 조수석 문을 열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환영합니다. 미스터 대니얼 도.”

하지만 대니얼은 온정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쏴아아…… 흘러가는 바람을 따라 모두의 시선이 온정에게로 옮겨갔다.

‘하! 사고 쳤네. 일단은 시치미.’

온정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대니얼에게 다가가 팔을 살짝 잡았다.

“오디세이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미스터 대니얼 도.”

그리고 활짝 웃었다. 맺힌 것도 없고 가라앉은 것도 없는 대단히 깨끗한 웃음이었다. 대니얼이 내렸다. 일을 저질러도 차 안에서가 아니라 호텔 안에서 크게 저질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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