七. 애별리고愛別離苦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괴로움.
흑립을 선물하는 것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무얼 주는 게 좋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 결국 사선 안 될 것을 사고 말았다. 곰방대에 담배를 차곡차곡 쌓아 넣은 서하가 착잡한 표정으로 주머니에 든 것을 만지작거렸다.
‘줄 수는 있을까.’
서하가 담배 연기를 빨아 당겨 마신 후 느리게 내뱉었다. 흰 연기가 운무처럼 퍼져나간다. 저도 모르게 산 것이다. 주지도 못할 것 같았다. 이걸 받은 그가 미간을 좁히면 상처를 받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화용군을 곁에서 지켜본 결과, 그가 가진 것은 전부 제가 줄 수 있는 것보다 값지고 훌륭한 것들이었다.
언제고 인연이 끊어질 텐데, 정표라고 하긴 무엇하나 그동안 고마웠다 말하며 뭐라도 쥐어주고 싶었다. 지나치게 감정이 묻어나는 선물인가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나더러 혼인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몸이다. 자형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망자의 덕택으로 제 혼삿길도 꽉 막혔다. 사람이 죽은 것을 두고 고마운 일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나 생사가 인간의 소관이 아니니 어쩔 수 없었다. 혼인 전날까지 안색이 어두웠던 누이도 외려 그 일로 자유의 몸이 되었다며 내심 좋아했다. 그 일로 상심한 것은 양친뿐이었다.
“화용군은 언제고 혼인할 테지.”
그럼 더는 그를 만나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 주머니 속 물건도 줄 수 없다. 적어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가 먼저 저를 버려준다면 가슴이 찢어지고 뒤가 아쉬울지언정 포기해야만 한다. 허나 그가 그 후에도 저를 찾는다면 어찌 될까. 나는 그를 밀어낼 수 있을까.
“어리석다.”
화용군이 여인이었다면, 그는 저를 배필로 맞아주었을까? 남색인 제 처지로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우스웠으나 만약 그와 같은 사람이라면 괜찮았을 지도 모른다는 천치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조금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뉘십니까?”
몸을 일으켜 나서면서도 화용군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장지문을 열고 나간 곳에는,
“서하야!”
누이가 서 있었다. 서하가 버선발로 누이를 맞았다.
“누님! 어찌 오셨습니까?”
오랜만에 뵙는 누이는 안색이 좋았다. 배꽃 같은 그 낯이 햇살을 받아 희게 반짝거렸다. 방금 전까지 제법 비참한 생각 속에 잠겨있었는데, 누이의 얼굴을 보고 나니 그런 생각이 조금 가셨다. 실로 다행이었다.
“네 어찌 사나 보러왔다. 녹봉은 받는 족족 쓰는 거니? 집 꼴이 이게 무엇이냐?”
“모을 새도 없습니다. 가뭄이 들면 가장 먼저 관원의 녹봉을 줄이지 않습니까.”
“돈이 부족하면 기별을 했어야지. 아버지께서 말씀은 아니 하셔도 네 걱정을 많이 하신단다.”
말 안 하면 걱정도 안 하는 거죠. 서하가 속으로만 생각하며 웃어보였다. 누이는 나이를 먹을수록 해맑았다. 헌데 몸종도 가마도 없이 홀로 온 것이 의아해졌다. 서하가 그에 대해 물으려하자 누이가 먼저 선수를 쳤다.
“춘수가 이번에 약과를 좀 만들어주었어. 네 주려고 직접 싸들고 왔다.”
“잘 됐네요. 안으로 드십시오. 바람이 찹니다.”
춘수는 본가에서 찬을 주로 만드는 하인이었다. 서하도 어린 시절부터 그 이의 음식을 먹고 자랐으므로 내심 기대가 되었다. 섬돌 위에 신을 벗어두고 방으로 들자 괜히 신경이 쓰였다. 좁다래한 방 안에 선 누이가 혀를 차며 서하에게 핀잔을 주었다.
“예서 자면 춥지는 않니? 방 꼴 좀 봐라.”
“누님 방이 더 더러웠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요 놈이…….”
볼을 꼬집는 손이 야물었다. 욱신거리는 뺨에 서하가 입술을 빼죽 내밀며 한숨을 내쉬었다. 찬합의 뚜껑을 열자 모양이 예쁘게 잡힌 약과 사이로 모양이 울퉁불퉁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뭡니까?”
“춘수가 만든 것이라니까.”
“아닌 것 같은데요?”
“흠흠.”
괜히 목청을 가다듬는 게 연하의 솜씨가 분명했다. 서하가 냉큼 그 조각을 집어 입에 넣었다. 달다.
“맛있어요.”
“그렇지?!”
“당연하죠. 모양만 누님이 내신 거잖아요.”
“…….”
옳은 말을 뱉었을 뿐인데 연하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결국 눈치가 보인 서하가 분위기를 수습해야 했다.
“모양이 어떻든 무슨 상관입니까. 누님의 마음이 담겨있는 걸요.”
“…그럼 되는 거겠지?”
조금 밝아지는 연하의 안면에 서하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걸 만들 사람이 아닌데…….
“누님, 좀 이상합니다. 갑자기 걸음하신 것도 그렇고 간식을 손수 만드시질 않나.”
“…….”
설마……. 저와 똑같이 곤란하거나 멋쩍으면 뺨을 긁는 버릇을 알고 있기에 서하가 목청을 틔웠다. 넘겨짚는 것이라도 혹시 싶었기 때문이다.
“정인이라도 생기셨습니까? 재가하시려고요?”
“…그게,”
***
아무래도 날이 쌀쌀하다. 연하를 배웅하고 홀로 남은 서하는 조금 허탈해졌다. 좀 전에 나눈 대화가 자꾸만 떠올랐다.
- 떠나고 싶어.
- 예? 그게 무슨,
- 정인이 내게 떠나자 했어. 더는 답답한 규방에 갇혀 있기 싫다. 어머니, 아버지께 말씀드리지 않고 야반도주할 것이야.
- 어째서요? 재가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어찌 그런 위험한,
- 재가하고 싶은 게 아니야. 그도 규방 여인이야. 우린 함께 떠날 거란다. 네가 누이에게 실망했대도 할 말 없어. 오늘은 아우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것이니 부디 웃는 낯으로 누이를 보내주렴.
심히 충격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제가 어찌 할 방도는 없었다. 그저, 하염없이 누이가 부러워졌다. 제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
별 것 아니라고 말하면서 주면 받아주지 않을까. 기껏해야 옥으로 만든 무언가일 뿐이고, 지나는 길에 주웠다고 말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럼 부담스럽지도 않겠지. 하지만 그러자니 간직해달라는 말을 덧붙일 수 없을 것 같았다. 서하는 종학청에 등청해 화용군을 기다리다, 그가 도착하기 무섭게 꾸러미를 손에 꾹 쥐면서 학당 안으로 들어섰다.
예를 차리면서도 열기 어린 눈으로 서하를 살피던 화용군이었으나 오늘만큼은 달랐다. 낯을 확인하기 무섭게 예를 올리고 곧바로 서책에 눈을 돌리는 화용군을 보며 서하는 내심 불안을 느껴야만 했다. 얼마 전이었다면 그의 이런 태도를 반가이 여겼을 터인데, 우습고 얄궂다. 의연하려 하였으나 자꾸만 숨이 멎고 가슴께가 쓰라렸다.
“급한 일이 있어 먼저 가보겠습니다.”
“아…!”
강론이 끝나기 무섭게 화용군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서하는 몹시 당황하여 저도 모르게 화용군의 소매 자락을 쥐고 말았다.
“뭡니까?”
“오늘 밤은 만날 수 없습니까?”
저답지 않은 목소리요, 태도였다. 그를 은애한다는 거지같은 사실을 깨닫자 더는 그 앞에서 당당할 수가 없었다. 먼저 만남을 청하는 서하를 묘한 표정으로 훑던 화용군이 서하의 손목을 잡아 내렸다.
“기별할 테니 퇴청하면 곧장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어찌 공대를 할까. 이곳이 종학청 내이기 때문임을 모르지 않지만 어째선지 참담해졌다. 무슨 급한 일이 있으신 겁니까. 어디를 가십니까. 언제 기별을 주십니까. 저를 가지고 싶다던 말씀의 진의가 무엇입니까. 제가 당신 말을 따르면 당신도 혼인하지 않는 겁니까.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들이 서하를 괴롭게 만들었다.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질문에 화용군이 답해줄 리 만무했다. 곧바로 등을 돌리는 그를 보며 서하가 속으로만 그 질문을 주워섬겼다.
***
“요즘 어딜 그리 다니는 게야.”
성이 난 김산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서하를 꾸짖었다. 서하는 퇴청하자마자 화용군의 거처인 영운궁으로 향했다. 속이 답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영운궁 후문의 문턱도 채 넘지도 못하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기별을 준다 하였으니 얌전히 기다리면 된다. 하지만 영영 저를 찾지 않는다면? 자조적인 웃음이 서하의 입가에 머물렀다 사라졌다. 결국 그 후로 꺼내 보지 않겠다 맹세했던 그의 그림이 떠올랐다. 이대로 화용군이 저를 떠난다면 남은 정표는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서하가 집에 들어섰을 땐 김산이 마루를 지키고 선 채였다. 그 역시 피로해 보였다. 서하가 그런 김산을 지나치며 섬돌 위에 신을 벗어 두었다. 그의 꾸짖음에 반응할 여력이 없었다. 그가 그린 그림이라도 봐야 성이 찰 것 같았다.
“별일 아닙니다. 몹시 곤하니 오늘은 돌아가 보십시오. 명일 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어딜 다녀오기에 곤하냐 물었다!”
“어찌 물으십니까? 시전에 들렀다 왔습니다!”
신경이 예민해진 서하가 결국 거짓을 고하며 목청을 높였다.
“거짓말 하지 마라. 네 요즘 영운궁에 드나든다는 걸 내 모를 성 싶으냐?”
별안간 김산이 서하의 발자취를 짚어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허나 그걸 어떻게 김산이 알고 있을까. 서하가 도리어 성을 내며 시치미를 뗐다.
“형님,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정6품으로는 부족하더냐? 어찌 이리 변했어?”
하지만 김산은 이미 다 안다는 듯 속상함을 감추지 못하고 서하를 추궁하고 있었다. 제가 세를 탐해 그리한 줄 아는 걸까. 벼슬자리를 원해서 그에게 몸을 내어주었다면 마음까진 주지 않았겠지. 그가 제 육욕을 채워주어서? 서하가 스스로를 비웃었다. 색을 탐해놓고 이제와 벼슬자리를 탐해 그런 것이 아니라 변명하는 스스로가 우스웠다. 똥 묻은 개가 겨는 묻은 게 아니라며 고개를 젓는 격이다. 하지만 부정할 필요가 있었기에, 그리고 벼슬자리를 탐하여 영운궁에 든 것이 아니기에 고개를 저어보였다.
“아니래도요.”
“아니긴 무엇이 아니야! 네 저자에 어떤 소문이 도는 지 알아?”
참지 못한 김산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꾹꾹 눌러왔던 말을 터트리고 말았다. 소문이라니. 그 말엔 서하 역시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도성에 돌던 노래는 가사가 바뀌었으나 김산에게 있어 이 소문은 더 이상 한낱 소문이 아닌 채였다. 해서 서하에게 추궁하고 싶었던 마음이 오늘에야 터지고 말았다.
“소문이라니 무슨,”
당황한 서하가 멍하니 선 채 김산을 쳐다봤다. 김산은 괴로운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속울음을 쏟아내듯 토로했다.
“‘화용월태의 사내가 스승을 업고 논다’는 노래가 떠돌았었다. 사내 둘이 교유하는데 어찌 이런 추문이 도냐는 말이야! 서하야. 이 형님에게 솔직히 말해보아라. 네가 계간을 할 리 없다. 내가 널 모르지 않는데…….”
잠시 흥했던 노래는 사라진 것이나 진배없어도 김산의 속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듯 했다. 화용군이 직접 정인이라고 선언했기에 충격에 서하를 찾지 못했다. 헌데 당장 오늘 입궐하자마자 화용군의 혼사에 대해 듣고 말았다.
- 주상전하께서 화용군과 좌의정 영감의 여식을 이어주시려고 한다는군. 추문에 증좌가 있다더니 그도 그저 헛소문인가 보아.
그 말을 듣는 순간 김산은 억장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증좌가 없다는 것은 다행인 일이었으나, 화용군이 혼인을 한다니 더욱 문제였다. 정인이니 뭐니 하더니 전부 거짓이었다. 화용군에게 서하를 지켜줄 생각 따위는 손톱만치도 없었다. 아니, 지키는 길인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서하에게 일말의 감정이 없다면 다행인 일이라지만 만약 아니라면…….
“서하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아무 일 없었다고 하면 이 형님이 믿어주마.”
“아니요. 형님은 아무것도 모르십니다.”
서하는 서하 나름대로 충격을 받은 채였다. 노래가 돈다는 소식에 등골이 서늘했지만, 김산이 저를 저리 보니 그런 김산에게라도 제 속을 털어내고만 싶었다. 노래가 돈다고? 그게 사실인데 어찌 하나. 어느새 깊어진 마음에, 꼬리가 밟힐 줄을 알면서도 영운궁을 찾아간 제 잘못이 가장 컸다. 사내끼리 교유하는데 어찌 그런 소문이 나느냐 물은 걸로 보아 아마 저와 화용군의 사이를 추측한 노래일 터였다. 이제 와 거짓이라 하면 무얼할까.
“무얼, 무얼 모른단 말이야.”
“제가 남색이니까요!”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김산에게 서하가 일갈했다. 그래, 내가 그를 은애한다. 스승 된 몸으로, 사내 된 몸으로 가져선 안 될 마음을 품었다. 속이 썩어문드러지는 것만 같았다. 언제 이리 됐나. 그 밤 때문에? 아니면 자꾸 저를 가지고저 하는 그 때문에? 한 번 터진 마음은 수습할 길 없이 입 밖으로 범람했다.
“제가 화용군을 은애해서 그리 된 겁니다. 소문이 나기 전에 실수를 만회할 수 있었는데, 육욕에 눈이 멀어 음탕한 짓을 연거푸 저지르고, 심지어는 그를 마음에 품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니 알면서도 또 그를 만났지요. 전부 제 책임입니다.”
“은애라니…….”
단 한 번도, 밖으로 뱉어본 적 없는 진심이 터져 나왔다. 뜨겁게 적셔지는 뺨이 이상했다. 아파서, 맞는 게 좋아서 울었던 것 같은데. 화용군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 그가 주는 육체적 고통 때문이 아니라, 그를 은애해 아픈 마음으로 인해 눈물이 났다. 허망하고 쓰라리다. 그에게 뭐라도 주고 싶어 시전을 배회하고 또 배회했다. 그가 줄 고통을 떠올리다 어느새 그의 이름을 입에 담으며 수음하고 밤을 지새웠다. 그가 저를 부르는 것이 기대되고, 그가 저를 찾아오는 것이 기쁘고, 그가 저를 가지고 싶다 말하는 게 듣기 좋았다. 그가 저를 그리는 게 좋고, 그의 그림을 가질 수 있어 기뻤다.
“…서하야.”
“소문이 났다고요? 허면 이제 끝났군요. 저는 죽게 되겠습니다. 다행입니다. 누님이 떠나셔서요. 그 분은… 그래도 금상의 생질이니 목숨은 부지하겠지요.”
부디 그러길. 살아남아 나를 기억하시길. 더러운 욕망뿐이라도 좋으니 나를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정표 하나는 전할 것을. 품속의 꾸러미를 건네주지 못한 게 못내 서글펐다. 지금이라도 달려가 그에게 이것을 전할까. 마지막으로 그 품에 한 번 안겨보고 싶다. 그를 품에 안아보고 싶다. 어이없지만 진심이었다. 그런 서하를 보며 김산이 덩달아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화용군이 곧 혼인한단다. 허면 너는 대체 어찌 하려고…….”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였다. 아니, 그리 말하면 거짓이지. 생각은 했으나 이 순간에, 이렇게 마주할 거라곤 생각지 못한 사실이었다. 그 사실이 서하를 헤집고 찢어냈다. 새파랗게 질리는 낯을 보며 김산의 심장도 덩달아 내려앉았다. 하지만 이로써 서하가 단념할 수 있다면 제가 서하에게 따귀를 맞는대도 골백번이고 맞아줄 수 있었다.
“이달 안에 좌의정의 여식과 혼례를 올린단다. 전하께서 바라시는 일이니 좌의정 대감도 반대할 수 없을 것이야. 서하야. 이제 되었다. 다 잊고…….”
“직접… 들어야겠습니다.”
“서하야!”
“아니, 듣지 못한데도 좋으니 마지막으로 얼굴 한 번만… 한 번만 보고 올게요.”
서하가 저를 잡는 김산을 뿌리치고 그대로 내달렸다. 그림을 보며 마음을 달랠 때가 아니었다. 결국 문갑은 열어보지도 못했다. 시간이 없었다.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며 서하의 뺨을 적시고 들었다. 어차피 마지막이라면, 그의 얼굴을 보고 끝내고 싶었다.
***
“전하!”
“우리 귀한 조카가 왔구나. 다들 물러나라.”
벅찬 숨을 채 진정시키지 못한 제혁이 금상을 찾았다. 어찌 이리 뒤통수를 치시나.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아침에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오고 싶었으나 마지막으로 서하의 얼굴을 보고 확인하고 싶었다. 무표정하지만 단정한 낯은 평소와 같았다. 다행히 그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듯했다. 제 옷자락을 잡는 그는 평소와 다르되 평소와 같았다. 마음이 급한 탓에 손 한 번 잡아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밟혔다.
그렇게 바로 제혁은 종학청을 나와 제 외숙을 찾았다. 제 심정을 닮은 것처럼 하늘이 음울했다. 궁인들이 멀리 물러나기 무섭게 금상이 제혁의 손을 쥐었다.
“손이 차다.”
“전하, 어찌 제게 일언반구도 없이…!”
“정녕 몰랐느냐? 허면 아랫것들이 함구령을 잘 지켰다는 뜻이로다. 상이라도 내려야겠군.”
금상이 웃는 낯으로 답했다. 하지만 마주 웃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부원군이 하릴없이 제 뒤를 캐고 다니는 것을 알고도 모른 채했다. 어차피 영운궁 안까진 손을 뻗치지 못했을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허나 그 밤, 제가 머문 곳은 영운궁이 아니었다. 어리석고 미숙한 충동의 결과였다. 일을 바로잡기 위해서 손을 쓰려 했으나 저보다 금상께서 한발 빨랐다. 증좌가 있다는 소문도 그저 소문일 뿐 실체가 없었으므로 괘념치 않았다.
“과인이 전부 바르게 정리하였으니 넌 따르기만 하면 된다.”
“전하!”
“드러나지 않은 잘못은 잘못이 아니란다.”
노래를 퍼뜨린 자들은 죄 주검이 되었고 노래는 가사가 바뀌었다. 화용월태의 사내가 낮이면 글을 배우고 밤이면 스승을 업고 논다던 적나라한 노래는 밤에도 글공부를 놓지 않는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 땅에 금상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있기는 한 걸까. 그러나 제혁은 게서 멈추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된 김에 서하를 데리고 도망치고 싶었다. 원치 않는 의무 따위 훌훌 털어버리고 그대로 도망치고 싶었다. 더는 어머니의 그늘 아래 그들의 동정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 새도 없이 제 혼담이 오간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그것도 금상의 하명 아래.
“제게 정인이 생겼습니다.”
“사내는 정인이라 할 수 없단다.”
단호하게 말을 자르는 금상은 인자하게만 보였다. 그래서 더 거부할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하지만 외숙 앞에서 그와 같은 선언을 한 제혁 역시 물러날 생각 따윈 없었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서하를 안았고, 그를 온전히 갖고 싶어졌다. 다른 이를 곁에 두고 싶지 않았다. 우두커니 선 조카를 지그시 보던 금상이 수염을 쓸어내리며 추궁했다.
“부원군이 너를 많이 미워한 모양이야. 더러운 수를 썼기에 과인의 선에서 해결했다. 네 잘못도 있다는 걸 부정하진 않겠지.”
“저를 놓아주십시오. 전하의 조선에 제가 필요치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어마마마께서 너를 필요로 한다.”
대비를 들먹이는 금상의 말이 야속했다. 채 늦지 않은 시간임에도 시꺼먼 하늘이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것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좌의정은 좋다고 하던가요? 미친 작자로군요. 계간질을 한 사내를 딸에게 배필로 주다니요.”
이죽거리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참아지질 않았다. 혼사를 엎어야만 했다. 제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형국이 몹시 불쾌하고 짜증이 났다.
“너를 대군의 격에 맞추어 장가보내려는데 어찌 싫다하겠느냐. 추문에 대한 것도 그저 헛소문이라 과인이 직접 타일렀느니.”
“제가 목을 매야만 합니까?”
“허면 사회의 목을 칠 것이란다. 네 죽고 나면 끝인 줄 아느냐. 과인은 누이를 잃은 것으로 족해.”
“어머니는 싫어하는 사내와 혼인해 병을 얻으셨습니다.”
“해서 너도 병을 얻으려 하느냐? 허면 어의를 보내 치료해주마.”
“어의가 치료할 수 있는 병이라면 어머니도 그리 황망히 돌아가시지 않았겠지요.”
“고얀 놈…….”
도무지 끝나질 않는 싸움이었다. 끝내 제혁이 물러서지 않자 금상이 그 어깨를 두드리며 서하를 들먹였다.
“사회는 청으로 보낼 것이야. 사신단에 이름을 올렸으니 조만간 교지가 내려질 게다. 그에게도 좋은 일이지. 도성에 남아있다 너와 또 다시 추문이 돌면 그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몇 년만 지나면 너도 과인의 결정에 고마워할 게야.”
서하의 안위를 들먹이는 말에 제혁이 턱을 세게 다물었다. 그도 그렇게 생각할까. 가지고 싶다 몇 번이고 말했지만 쉬이 품에 들어오지 않는 그였다. 청으로 가야한다는 교지를 받으면 그는 좋다고 저를 떠날까. 제 혼담을 듣고 오히려 잘 되었다 홀가분해할지도 모른다. 그림을 몇 장이고 그려대도 소용이 없었다. 아무리 붓끝을 움직여도 서하는 게 담기는 것이 아니라 제 마음에 담길 뿐이었다. 그 몸에 제 이름을 새겨 넣어도 그를 제품에 가둘 수는 없으리라.
그날 밤, 술에 취해 제게 매달리는 서하를 보며 욕정을 품었다. 자꾸만 마음이 가는 흰 낯이, 저 때문에 눈물로 젖는 게 좋았는데 이젠 웃는 것도 보기 좋았다. 그를 놓고 싶지 않다. 그가 저더러 놓아 달라 눈물로 호소한다 해도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끝의 끝까지 그를 옭아매고 제 색으로만 물들이고 싶었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결국 제혁에게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 뿐이었다.
***
“오셨습니까.”
해가 진 후에야 귀택한 화용군을 서하가 직접 맞이했다. 어찌 사랑채에 들어 있느냐 물으면 답할 말은 없었다. 정문으로 들어왔다고 말하면 그가 기함을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죽게 된 몸으로, 마지막으로 그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한 방울 씩 내리던 비는 어느새 장대비가 되었다. 젖은 몸으로 영운궁 문전에 서 있으니 이윽고 맹인 하인이 문 밖으로 나왔다.
- 안으로 드시겠습니까?
목소리도 듣지 않고 화용군의 ‘객’임을 어찌 아는가 싶었지만, 담장 너머 빼꼼히 고개를 내민 노복 하나가 서하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저 이가 이 이에게 언질을 주었구나.
- 고맙소.
- 갈아입을 옷을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해서 그의 방에 홀로 들었다. 가만히 살펴 본 방 안에선 화용군의 체향이 은은하게 풍기고 있었다. 그가 제 방에 들었을 때도 이런 생각을 했을까. 젖은 옷을 벗어두고 하인이 가져다 준 새 옷으로 환복하고 나니 방 안이 점차 뜨거워졌다. 불을 때는 구나. 홀로 그의 방에 앉았다가, 그와 보냈던 시간을 생각하니 눈가가 뜨거웠다.
- 이달 안에 좌의정의 여식과 혼례를 올린단다.
그래, 언제고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다. 애초에 지고지순한 관계도 아니었고 육욕으로 시작된 사이니 이렇게 끝나는 것도 감지덕지할 일이었다. 다만 노래가 돌았다 했으니 제 목숨은 어찌 될지 알 수 없었다. 금상의 아끼는 조카를 건드린 죄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 왕실의 입장에서야 그게 깔끔한 결론이겠지. 제 허물을 들추고자 한다면 화용군까지 피해를 입을 테니 아마 그것이 가장 완벽한 처사일 것이다. 허면 불명예스러운 죽음이 아니니 가문에도 누가 되지 않으리라. 떠난 누이는 어디쯤 있을까. 함께 한다던 사람과 행복할까. 그는 날 보면 어떤 얼굴을 할까. 질문을 던져야 옳을까. 홀로 생각하던 서하는 결국 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
“비가 오는데 어찌 온 게야.”
하대가 반갑다. 서하는 굳은 채 서 있는 화용군을 보며 옷고름을 풀었다. 이게 제 마지막 선택이었다.
“…무슨,”
“가르침을 드리려고요.”
아무것도 묻지 말자. 그의 혼인도, 저자에 퍼졌다는 소문도. 어차피 홀로 죽어질 몸이라면 입을 다물고 마지막 추억이라도 쌓자. 해서 그가 도착하자마자 옷을 벗었다. 처음 그와 약속한대로 그에게 가르침을 주고 저는 원하는 것을 취하자. 헌데 막상 그의 얼굴을 마주하니 눈물이 새어나오려 했다.
결국 서하는 옷을 다 벗지도 못한 채 화용군의 발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옷자락을 헤치고 그의 국부에 얼굴을 가져다대자 욕정을 참지 못한 화용군이 제 머리채를 쥐어왔다. 머리끝부터 진하게 퍼지는 쾌감이 서글펐다. 진정 마지막이다.
“엉덩이를… 때려 주십시오.”
간곡한 청을 올렸다. 서하의 목소리가 벌벌 떨렸다. 흥분이 아니라 설움으로 인한 것이었다. 터지는 눈물을 감추고자 그의 고간에 얼굴을 파묻었다.
“어찌 울지.”
자세를 낮춘 화용군이 서하의 낯을 직시하며 물었다. 서하가 손바닥으로 제 얼굴을 가리며 무너지는 입술을 다잡았다. 떨지 않으려 몇 번이고 숨을 삼키고 흐르는 눈물을 멈추고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진정이 되었을 때, 평소보다 더 단정하고 굳은 말씨로 답했다.
“빨리 맞고 싶어서 웁니다. 나리께서 때려주지를 않으셔서요. 입때껏 맞은 걸로는 부족합니다.”
“그대는 내게 맞는 게 그리 좋아?”
화용군의 목소리엔 평소와 다른 노기가 서려있었다. 왜 그가 화를 내나. 서하는 설움이 밀려들었지만 꾹 참고 그의 바지에 손을 댔다.
“예, 그게 아니라면 나리를 찾지 않았겠지요. 애초 그러고자 만나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하…….”
“핏물이 흐르도록 때려주십시오. 밤이 새도록 맞을 것입니다.”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새겨 달라 청하고 싶었다. 새카만 눈이 저를 노려보고 곧이어 화용군의 커다란 손이 서하의 옷을 찢어발길 듯 거칠게 벗겨냈다. 그의 앞에서 알몸이 된 것이 처음이 아닌데도 슬프고 괴로운 마음과 상관없이 아래가 씨근거렸다.
“스승께서 친히 가르쳐주시니 배워야지.”
“흐읏…….”
“그러고자 나를 찾아왔다는데, 그게 아니라면 나를 찾아오지 않았을 거라는데… 내가 기대에 부응해야 옳지 않겠느냐.”
순식간에 서하의 몸이 뒤집히고 뺨이 바닥에 닿았다. 절절 끓는 방바닥보다, 제 뺨이 더 뜨거운 것만 같았다. 빗물을 맞은 탓에 고뿔이 든 것일까. 어느새 전라가 된 몸이 몸살기운으로 으슬으슬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지막이다.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잡힌 손목에 닿는 손바닥이 시원했다. 그도 빗길을 걸어왔기 때문일까.
“내가 아니어도, 그저 그대를 아프게 할 사람이 있다면 좋다고 가서 옷을 벗겠지.”
“아니 그럴 연유가 없지요.”
부러 모진 말을 뱉었다. 이윽고 비단 끈이 서하의 눈을 가렸다. 그의 얼굴이 보고 싶었는데, 화가 난 그를 거역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맘껏 울 수 있을 테니까.
“볼기에서 피가 날 때까지 때려주마.”
“악…!”
휘익,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무언가 서하의 엉덩이를 후려쳤다. 회초리 같았다. 살점이 찢기는 듯한 강렬한 통증이 볼기를 수놓았다. 괴로운 와중에도 통증에 기뻐하며 달아오르는 육신이 원망스러웠다. 조금씩 서하를 봐줘가며 매질을 하던 평소와 달리 오늘 화용군의 매질은 야멸차고 잔혹했다.
회초리가 매질을 견디다 못해 세 개쯤 부러졌을 때, 서하의 엉덩이는 이미 붉은 색이 아닌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심지어 엉덩이가 터져 피가 맺히고 흐르는 상처도 여럿이었다. 서하는 쓰라림에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면서도 그가 준 상처가 기껍고 반가웠다.
“아…!”
“사정하면 안 되지. 오늘 밤이 새도록 맞아야 할 터인데.”
단단히 발기한 성기에 무언가 기다란 막대가 삽입되기 시작했다.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기이한 통증과 쾌감에 서하가 몸을 떨었다.
“이게, 흣, 아으윽, 이게 무슨,”
“씨물이 나오는 구멍을 막으면 사정하지 못할 게 아니냐. 그대에게 주려했던 비녀란다.”
“흐읏…!”
느리게 안으로 침입한 비녀가 알 수 없는 곳을 자극하고 있었다. 비녀에 달린 장식이 귀두를 간지럽혔다. 그리고 치켜 올라간 상처 가득한 엉덩이에 말캉하고 부드러운 것이 닿았다.
“아으읏…!”
“이리 핥아주어도 아픈 모양이지. 허나 우리 스승께서 이토록 아픈 것을 좋아하시니 불민한 제자는 성심을 다할 수밖에.”
“흣, 아, 더, 더 아프게, 하읏…!”
상처를 핥는 혀와 허벅지를 주무르는 손이 자극적이고 야릇했다. 붉게 선 서하의 성기는 금으로 세공한 백옥비녀를 머금은 채였다. 언제고 서하의 흐트러진 상투를 틀어줄 때 선물하려던 것인데, 이리 쓰일 줄은 몰랐다.
핏방울을 샅샅이 핥아 마시자 화용군의 입술이 붉게 젖어들었다. 엉덩이 골을 따라 혀를 내리니 뭍으로 나온 생선처럼 몸을 파닥거리는 서하가 귀엽고 미웠다. 제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말하는 입술이 밉고, 그럼에도 제가 선사한 통증과 쾌감에 몸을 떠는 서하가 사랑스럽다. 제가 그를 위해 얼마나 바쁜 하루를 보냈는지도 모르면서 저를 밀어내는 서하가…….
“하, 아, 으읏, 학, 빨리, 아, 그만, 넣어 주, 아…!”
서하의 마른 구멍 주위를 배회하던 혀가 다물린 곳을 침범했다. 아픈 엉덩이를 꾹꾹 눌러가며 끈덕지게 안과 밖을 핥고 빠는 질척한 혀의 움직임에 서하가 다리를 떨며 눈물을 쏟아냈다. 얼마 안 있어 익숙한 촉감의 단단한 첨단이 서하의 젖은 구멍에 닿았다. 화용군의 타액으로 젖은 입구가 그의 성기를 머금고자 달싹거리고 있었다.
“어서, 흣, 아…….”
아무 말 없이 성기를 비비는 몸짓에 몸이 달은 서하가 말을 이었다.
“어서 쑤셔 주세요. 나리의… 것을, 갖고 싶습니다.”
진정으로 갖고 싶은 것은 그보다 더 큰 마음이었으나 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곧 서하의 허리를 잡아챈 화용군이 서하의 몸 안으로 제 성기를 밀어 넣었다. 익숙하고도 곧 그리워질 압박감을 만끽하며 앓는 소리를 내자 곧 화용군이 서하의 몸에 제 것을 더욱 깊게 쑤셔 박으며 입술을 삼켰다. 거칠게 꿰뚫리는 아래에 터지는 신음과 채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한 마음이 겹쳐진 입술 속에서 부서지고 깨졌다.
은애합니다. 나리를 갖고 싶습니다. 결코 전하지 못할 진심 대신 얽어드는 혀를 빨고 제 안을 들쑤시는 성기를 삼켰다. 서하는 화용군이 허리를 쳐올릴 때마다 고꾸라지는 몸을 지탱하며 그를 더욱 깊이 느끼고자 스스로 허리를 흔들고 매달렸다. 차마 얼굴을 보게 해달란 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격정적인 교접이었다. 멍들고 찢어진 엉덩이에 그의 장골이 부딪힐 때마다 등줄기가 오싹한 통증이 전신을 휘감았다.
“흐으, 학, 아, 아흐윽…!”
입술이 떨어지면 신음이 터지고,
“읍…!”
울음이 터질 듯 하면 혀가 밀려 들어왔다. 이거면 되었다. 마지막으로 충분하다 여기던 때, 서하의 안을 거칠게 쑤석이던 성기가 가장 깊은 곳에서 토정했다. 천천히 뽑혀나가는 비녀에 서하의 성기도 울컥울컥 희고 진한 씨물을 터트렸다. 사정의 쾌감과 함께 한계까지 내몰린 육신이 버거웠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정신을 잃는 순간, 귓가에 화용군의 목소리가 들렸으나 그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