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 낙화난상지落花難上枝
한번 저지른 일을 돌이킬 수 없다.
화용군은 듣던 대로 총명하여, 서하의 가르침을 거리낌 없이 배우고 익혔다. 그것은 단연 유교 경전에만 국한 된 게 아니었다.
- 사흘 전에 준 서책에선 나무를 깎아 만든 것으로 나오던데, 나무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아서.
길쭉하고 단단한 손가락 틈에서 반짝이는 것은 옥으로 된 막대기였다. 심히 외설스러운 모양의……. 둥근 앞머리에 굴곡까지 사내의 음경을 쏙 빼닮아 있었다. 말하지 않은 것까지 철저히 준비해 오는 화용군으로 인해 서하는 속절없이 몸을 내주어야만 했다. 이런 남사스러운 것을 대체 누구더러 만들라 한 걸까. 염통이 쫄깃해지는 상상이었다.
- 직접 넣는 걸 보여줘야지.
- 읏, 나리…….
뼛속까지 상전인 그는 서하를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어조로 명령을 내리곤 했다. 단둘만 남을 땐 꼭 ‘나리’라 부르라는 명령에 착실히 따른 탓에 서하는 항시 그와 함께일 때면 절로 머리가 불타는 듯 했다. 천것도 아닌 몸으로 누군가를 이런 호칭으로 불러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뒤에 옥으로 만든 남근을 물고 화용군의 흉근을 입안에 담아냈을 땐 머릿속이 텅 비는 것 같은 착각까지 일었다. 벌써 몇 번이나 그의 앞에서 도포를 벗고 속잠방이까지 벗어냈을까. 엉덩이에 새겨진 매자국은 옅어질 줄을 몰랐다.
- 하아, 흐, 학, 아…!
파정하는 순간의 지독한 쾌감이 잊히지를 않았다. 해서 그를 만나지 못하는 날에는 옥근을 뒤에 밀어 넣고 스스로 엉덩이를 매질하기까지 했다. 물론 그 후엔 제 허락 없이 음탕한 짓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그에게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날이 추워지는 게 다행이었다. 그가 준 목도리로 얼룩덜룩한 목덜미를 충분히 가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산은 동궁의 일로 부쩍 바빠져 얼굴을 보기가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을덕만이 시름 가득한 낯으로 간간히 서하의 초가집에 들곤 했다. 서하는 구태여 김산의 안부를 묻지는 않았다. 을덕은 내심 서하가 제 주인을 달래주길 바라는 눈치였지만 서하에게 직접 청을 올리진 않았다. 김산이 단단히 당부하기라도 한 것인지, 그저 서하의 조반을 챙겨주곤 머뭇거리다 집을 떠나곤 했다.
“나더러 어찌 하라고…….”
막 등청한 서하가 궐 쪽을 바라보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김산에게 한 번 가봐야 하는 걸까.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당장 오늘 밤에도 화용군이 저를 찾을지 몰랐다. 어쩐지 숨겨둔 남첩이라도 된 것 같은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남들의 눈을 피해 영운궁에 들 때는 더욱 그러했다. 여인도 아닌데 가마를 타고-화용군 역시 이목을 싫어해 가마를 즐겨 탔으나 저와 그는 입장이 달랐다- 장옷까지 쓰고 별궁에 방문했을 땐 자괴감마저 일었다. 실상 그와 저의 처지는 신분상으로 보아도 결코 대등하지 못한데, 잠자리에선 말할 것 없었다. 그 점이 서하를 흥분케 하기는 하였으나…….
“화용군은 가르칠 만한가?”
뒤이어 등청한 임 전훈이 느닷없이 말을 걸어왔다. 서하가 자세를 바로하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오셨습니까.”
“날이 점점 추워지는군. 자네에게 일을 몰아준 것 같아 미안해서 말이네. 화용군이 애먹이진 않는가?”
코를 문지르며 묻는 말이 어쩐지 의심스러웠다. 귀찮다는 듯 화용군을 떠밀어 놓고 왜 이제 와 관심을 보이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른 종친들과 다를 것 없이 학문에 정진하고 있습니다.”
그가 특히 정진하는 학문이 어떤 계열인지는 말할 수 없었지만. 게다가 서하는 다른 종친들을 가르쳐 본 일이 없으니 거짓을 고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임 전훈이 그런 서하를 묘한 눈으로 쳐다봤다. 불필요한 긴장이 감돌았다.
“하긴… 친밀해보이더군.”
“예?”
수염을 쓸어내며 조용히 중얼거리는 말에 어쩐지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친밀해 보이다니. 그리고 임 전훈이 서하가 더 놀랄 말을 늘어놓았다.
“아닐세. 듣자하니 자네와 화용군을 기루에서 봤다는 말이 있어 사적으로 교분을 맺었나 했지.”
함께 기루에 있었다는 말은 첫 밤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 후로는 함께 기루에 든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저는 만취해 있었고, 기껏해야 화용군이 취한 저를 방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 게 전부일 텐데 누가 그걸 봤단 말인가. 게다가 엄연히 따지자면 제가 종학에 등청하기도 전의 일이었다. 대답을 잘못했다간 사단이 날수도 있는 문제였다.
“소생은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
“하인을 두지 못한 탓에 서책을 전달하려 직접 영운궁에 든 것을 제하면 사적으로 만난 일은 없습니다.”
서하의 부정에도 임 전훈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질 않았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누구라도 들어와 이 긴장감 어린 공기를 깨부숴주었으면 싶었다.
“사제지간에 교유하는 게 무에 그리 문제라고 이리 학을 떼나. 혹…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거든 주저 말고 말하게. 내 살펴줌세.”
“불미스러운 일이라니…….”
조금 다가서며 속삭이는 말에 서하의 눈썹이 미묘한 각도로 휘었다. 불미스러운 일은 무얼 말함이며 자신을 도와주겠다는 뒷말은 또 뭘 말함이던가. 서하가 아는 한 화용군과 제 사이에서 벌어진 일을 아는 이는 없었다.
영운궁은 선왕께서 살아생전 시집가는 장녀에게 하사한 별궁으로 그 위용이 삼정승의 사가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리 큰 집에 살면서 하인의 수는 어찌나 적은지. 게다가 대부분 행랑에서 머물며 최소의 인원만이 본채로 드는 모양이었다. 제 밑에서 부리는 하인들도 믿지 못해 몇몇을 빼고는 곁에 두지 않는 화용군인데 대체 어디서 말이 샜단 말인가. 심지어 서하를 모시러 오는 하인은 맹인이라 제 얼굴을 보지도 못했다.
- 나리께선 제게 목숨보다 중한 분이시지요. 눈을 잃고 삶을 저버리고자 했을 때, 완혜공주께서 소인을 구하셨고 어렸던 나리의 곁에 두셨습니다. 나리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이건 쇤네는 알지 못하니 걱정 마십시오.
서하가 걱정하는 것을 눈치 챈 모양인지 장옷 속에 있는 서하에게 이런 말까지 건넸다. 그제야 그 이가 짚은 지팡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만큼 서하는 긴장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런 측근하인마저도 화용군의 지척에 머물지 못했다. 홀로 다니는 것을 즐기는 양반네라니. 저야 하인을 쓸 여유가 없어 그런 것이라지만. 어찌 되었건 간에 염통이 오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별안간 임 전훈이 서하의 어깨를 짚었다.
“송충이를 함께 잡아보자는 말이야.”
“예…?”
“아니라면, 자네도 송충이와 함께 빗물에 떠내려가고 말 것이네.”
임 전훈은 의미 모를 말을 남겨 놓은 채 자리를 비웠다. 서하만이 홀로 남아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
***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 것인지 쉬이 가늠이 되질 않았다. 화용군은 만인이 부러워하는 대상이자 질투하는 사내였다. 적도 많겠지. 관계를 시작한 게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그대는 너무 외진 곳에 살아.”
초가집에 들어선 화용군이 인사 한 마디 없이 불평을 내놓았다. 둘만 있으면 공대는 저 멀리 집어치우곤 하는 그였다.
“언제 오셨습니까?”
놀란 서하가 당황한 어투로 되물었다. 인기척도 없이 다니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덩치가 산만 한 사내가 어찌 저리 기척이 없을까. 기이한 일이었다. 화용군의 갓 위엔 종친들이나 쓸 법한 옥장식이 세공되어 있었다. 저 갓이면 이 집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사겠지. 초라한 제 집을 살피던 화용군이 한숨처럼 말했다.
“북촌에 기거할 형편이 안 되나? 내 스승께 집 한 채 정도는 드릴 수 있는데.”
“지금 이리 뵙는 것도 남이 볼까 두렵습니다.”
집을 주겠다니. 말이 나오고도 남음이었다. 이 관계를 끊어내야 하는데, 그게 옳은데. 대개 옳은 일이 그러하듯 실천하기가 어려웠다. 특히 임 전훈의 언질로 서하는 극도로 예민한 상태였다. 더 이상은 화용군과 가까워져선 안 될 것 같았다. 아무리 양친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한다 해도 제 죄로 인해 멸문지화를 초래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지금이 가장 빠른 회귀점일지도 몰랐다.
그만큼 서하에겐 확신이 없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화용군과 밀회를 가져야만 할 확신. 육욕을 이길 수 없는 게 문제였으나 생사가 달린 문제에선 그깟 색욕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근래 들어 제 선택을 자꾸만 뒤집는 것 같았지만 별 수 없었다. 확신도 용기도 없었다. 화용군은 저가 그러거나 말거나 신을 벗자마자 손을 뻗어 둔부를 희롱하려 했다.
“이러지 마시고 일단 안으로,”
“음탕하군. 나는 그저 그대 옷에 먼지가 묻어 털어주려던 것뿐인데 어찌 이리 급하게 굴지?”
허리 근처를 툭툭 털어주며 속삭이는 말에 서하가 헛숨을 집어 삼켰다. 어찌나 뻔뻔한지 이길 재간이 없었다.
“화용군. 이제 와 이런 말씀 드리기는 송구하지만,”
“내가 그대를 잡아먹기라도 하나? 우선 안으로 들었으면 좋겠는데.”
참나. 저가 앞서 하려던 말이 안으로 들라는 말이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제 말을 가로채는 그가 어이없었다. 눈썹을 찌푸린 서하가 화용군의 뒷모습을 불퉁한 표정으로 바라보았으나 화용군은 그저 어찌 들어오지 않느냐는 표정으로 서하를 빤히 볼 뿐이었다.
“할 말이 있으면 들어와서 하도록 해.”
“…예.”
그리고 방에 들어선 후 한 시진이 지났을 때는,
“하, 아윽, 아…!”
“말을, 해보래도, 응?”
화용군의 흉근에 꿰뚫려 허리를 흔드는 상황에 처해졌다. 꽃술을 닮아 붉고 맨질맨질한 살덩이가 사정없이 서하의 아래를 쑤시고 핥아 내렸다. 이러려던 게 아닌데…!
“제발, 하, 아아, 읏!”
이러지 말라고, 이래선 안 된다고 항변해야 하는데도 쉽지 않았다.
“더, 으응, 더, 흣, 아프게… 아프게 해주, 아…!”
제 입에서 터지는 말은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안에 드는 것이 아닌데, 그와 밀폐된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아닌데! 뒤늦게 후회해 봐도 변하는 건 없었다. 당장은 그가 주는 짜릿한 고통과 쾌감에 넘어가는 수밖에는.
“그대가 자꾸, 내게서 도망치려 하니까, 내가 화가 나.”
“하아, 아, 윽, 아! 으응, 흣…….”
거친 정사와 함께 김산에 대한 걱정과 화용군과의 관계를 끊어내야 한다는 생각은 또다시 물안개처럼 흩어지고야 말았다.
***
“…주상전하의 신임과 대비마마의 한 몸에 총애를 받으시는 전도양양한 화용군께서 구태여 허물을 만드셔야 되겠습니까?”
질펀한 교접 후, 기절 직전에 이른 서하가 쉬어빠진 목소리로 고했다. 화용군은 서하의 벗은 몸을 만지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육욕에 눈이 먼 게 틀림없다. 재미있다는 듯 서하를 쳐다보는 눈이 짙었다.
“전도양양? 내가?”
“예. 훙서하신 공주께서 유일하게 남기신 아드님이시고, 따지자면 종친도 부마도 아니시니 후일 조정에서 크게 쓰이시지 않겠습니까?”
서하가 준비해뒀던 말을 쉼 없이 늘어놓았다. 법도대로면 공주의 아들은 왕실 종친이 아니었다. 이례적으로 그가 군의 작위를 받았을 뿐. 금상의 생각을 알 수 없었지만, 그로 인해 화용군을 경계하는 이들이 많다는 건 요 근래 곁 귀로 들어 알게 되었다. 지방 한직이나 노리는 저와는 한참 다른 종자들이라.
“내가 스승을 탐해 비역질을 했다는 게 알려지면 그대는 청금록에서 이름이 지워지고 나는 어머니 이름에 먹칠을 했다는 이유로 사약을 받을 지도 모르지.”
조곤조곤 핏빛 앞날을 읊는 그가 소름끼쳤다.
“…그리 잘 아시는 분이 어찌 한순간의 육욕에 취해,”
“그대는 몰랐나?”
잇자국이 남은 목덜미를 쓰다듬는 손길이 칼날 같았다. 할 말이 없었다. 정말 몰랐을까. 차게 굳은 얼굴이 서하를 응시하고 있었다. 야멸찬 시선이 흡사 죄를 묻는 판관 같다.
“…모를 리가요.”
“그래, 그대도 알면서 내게 안겼지.”
“무서워서 그럽니다.”
야멸차게 서하의 엉덩이를 때리던 손이 가슴께를 도닥거리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차오르는 안온함이 모순적이다. 저를 두렵게 만든 이는 눈앞의 사내가 분명한데 그만이 저를 평안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게.
“그대는 나만 두려워해야 해.”
“…….”
“나만이 그대를 아프게 할 수 있어.”
눈가에 닿는 입술이 뜨겁고 부드러웠다. 제게 소유욕을 드러내는 이 사내가 싫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나를 화나게 하지 마. 그럴수록 그대를 옥죄고 싶어지니까.”
“…….”
애초 만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모두 그 밤에 술에 취해 삿된 청을 올린 제 잘못이었다.
마주친 눈이 뜨거웠다. 탓할 사람이 없어진 서하가 입술을 깨물었다. 돌이키기엔 정말 늦었다. 불투명하다 못해 새까만 앞날이 두려웠으나 지금 제 살갗에 닿는 이의 체온만큼은 싫지 않았다.
***
“내 본시 그림 그리기를 즐기니, 이 출중한 실력으로 그대를 그려두면 가히 보기 좋지 않겠는가.”
“그림이라니…….”
문제가 터진 것은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 퇴청하느냐.
- 형님! 어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여느 때처럼 강론을 마친 후 화용군은 영운궁으로, 서하는 제 사저로 가기 위해 종학청 뜰을 나선 순간이었다. 화용군이 가마에 오르기 무섭게 서하를 기다리고 있던 김산이 그 앞을 막아섰다. 서하는 이미 가마 안에 든 화용군이 그 모습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 추측하였으나, 실상 그렇지 못했다. 화용군은 가마에 난 창으로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았다.
- 네 관복 입은 모습은 아무리 보아도 질리질 않는다. 언제 이리 장성하였을꼬.
- 이립而立이 머지않았는데, 농이 지나치십니다.
멀어지는 두 사내를 어둡게 응시하던 화용군이 중얼거렸다.
- 어찌 저리 웃는가.
본 적 없는 서하의 미소가 방금 전까지 좋았던 기분을 무참히 난도질했다. 그리 웃는 것은 처음 보는데, 웃는 얼굴이 어여뻐 더 화가 났다. 제혁이 턱을 세게 다물며 창을 내렸다.
그 밤, 화용군이 서하의 집에 들이닥쳤다. 화구畫具를 가져온 화용군을 마주한 서하는 얼어붙은 채였다.
- 어찌 오셨습니까?
그 물음이 화용군의 화를 돋웠음은 당연한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이었다. 상석에 자리를 잡은 화용군이 능청스레 서안 위에 흰 비단을 펼치고 서하를 노려보는 게.
“벗어라.”
그림을 그린다더니, 저더러 옷을 벗으란 명을 내리는 화용군의 말에 서하가 옷섶을 거머쥐었다. 느닷없이 집으로 찾아와 다짜고짜 그림을 그리고자 하니 옷을 벗으란 그의 말이 황망했다.
“화용군.”
“어찌 그리 부르지? 매질이 시원찮았던 모양이야.”
“…나리.”
곧바로 호칭을 바꿔 불렀지만 어쩐지 분위기는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서하가 무릎을 꿇어앉으며 화용군의 안색을 살폈다.
“어찌 노하셨습니까?”
“아무래도 그대를 묶어둘 방편이 필요하지 싶어서.”
무감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말에 서하가 침음했다. 무슨 뜻인지 가늠이 되질 않았기 때문이다. 호롱불이 일렁거리며 화용군의 까만 눈을 비추었다. 그 안에 담긴 것은 제 인영뿐이라, 서하가 눈을 내리깔았다. 화용군이 증표를 원한다.
“…무엇을 그리고 싶으신 겁니까.”
물음에 대한 답은 없었다. 하지만 서하도 알 것 같았다. 삽시간에 붉게 물드는 공기에 서하가 입술을 앙다물고 옷고름을 잡아당겼다. 갑작스럽고, 또 의중을 알 수 없는 명이었다. 하지만 그가 제게 보이는 집착이 싫지 않았다. 한 겹 한 겹 몸을 감싸고 있던 것들을 벗어내자 금세 나체가 되었다. 화용군의 앞에서 전라가 되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으나, 의관을 정제하고 붓을 든 이 앞에서 홀로 헐벗은 꼴이 되자 수치심이 더하였다.
“나를 만나기 전엔 홀로 수음하였겠지.”
“…예.”
“그 ‘형님’을 생각하며 그리했나?”
날카로운 물음에 서하가 움찔하였다. 노기를 담은 눈빛이 매서웠다. 제 몸을 샅샅이 훑는 그 시선이 뜨겁고, 분노가 느껴지는 표정이 색정적이다.
“그, 랬습니다.”
“허면 그때처럼 해봐. 아, 혼자 하려면 옥경이 필요하겠군. 그대는 뒤가 허전하면 싸질 못하잖아.”
비꼬는 말과 함께 던져진 음란한 물건에 서하가 입술을 사려 물었다. 벗은 몸에 드는 한기가 외설스러웠다. 그의 앞에서 홀로 수음하던 때를 흉내 내야 한다는 사실이 몹시 수치스러웠다. 갈 곳을 잃은 서하의 손이 애먼 옥근만 만지고 들었다. 그때 화용군이 서안을 옆으로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서 서하의 어깨를 밟아 눌렀다.
“아…!”
있는 힘을 다한 것이 아니기에 아프지는 않았으나, 진정으로 그의 발아래 깔리니 음심이 치솟았다. 서하가 어느새 젖은 눈으로 화용군을 올려다보며 가슴께로 손을 옮겼다. 버선발에 짓밟힌 어깨가 묵직했다. 차게 식은 손끝으로 유두를 지분거리고 꼬집어대던 서하가, 이윽고 제 손가락을 입안에 넣고 빨아 당겼다. 화용군은 그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하가 타액으로 적신 손가락을 꺼내 메마른 입구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아, 아읏…….”
서하는 엉덩이를 매섭게 때려주는 화용군의 손이 간절했다. 스스로 허벅다리를 때려도 보았지만 영 성에 차질 않았다. 어느새 발을 물린 화용군이 자리로 돌아가 그런 서하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좁은 구멍에 옥근을 밀어 넣으며 서하가 바닥에서 꿈틀거렸다. 엎드린 채 뒤를 쑤시니 젖꼭지가 바닥에 쓸려 몹시 야릇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붓을 움직이는 화용군이 야속했다. 푹푹 거친 소리가 나게 옥근을 쑤시고 박아대던 서하가 끝내 사정하지 못하고 풀썩 쓰러졌다.
“하, 아…. 나리, 나리의 것을, 물려 주세요…….”
벌어진 서하의 입이 빨갛고 깊어 보였다. 청하는 말이 몹시 음란해 화용군이 눈썹을 찌푸렸다.
“혼자 하는 것을 보이랬더니, 어찌 나를 유혹하느냐.”
화용군이 서안을 치우고 다가와 서하의 머리채를 쥐었다. 서하의 눈앞에 발기한 화용군의 성기가 바지를 뚫을 듯 선 것이 보였다.
“…홀로 하는 법을 잊었습니다.”
그를 앞에 두니 수음하는 것이 아쉬웠다. 해서 그리 말한 것인데, 화용군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어째서?”
“나리께서, 읏, 나리께서 해주시는 게 좋아서요….”
“허면 이제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라.”
서하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내내 간지러웠던 엉덩이에 날카로운 타격이 떨어졌다. 잡힌 머리채가 황홀하고 가차 없는 매질이 서하를 흥분케 했다. 바쁘게 화용군의 바지 앞섶에 코를 묻으며 그림에 대한 것은 까맣게 잊었다. 그 짧은 사이, 완벽한 춘화도를 그려낸 화용군이 인장까지 찍었음은 꿈에도 모르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