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三. 곡재아의曲在我矣 (19/24)

三. 곡재아의曲在我矣

잘못이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제게 있음을 이르는 말.

“흐, 하읏…….”

사랑채에 들기 무섭게 방문을 닫아건 화용군은 얼기설기 걸친 서하의 옷을 도로 벗게끔 했다.

- 벗으십시오.

- 백주대낮에 어찌…!

- 임갈굴정臨渴掘井이라.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질 않습니까? 스승께서 그 정도 성의는 보이셔야지요.

스스로 옷을 한 겹 한 겹 벗어 내리며 서하는 다시금 수치심에 절여졌다. 음서에 뭐라 쓰여 있었냐는 물음에 하나하나 답하다보니 대들보에 넘겨진 명주 끈에 손이 묶였다.

이게 이렇게 쓰는 게 아닐 텐데. 보통 자결을 위해 대들보에 명주 끈을 걸곤 하니 서하는 제 선비로서의 정체성이 오늘에야 비로소 죽임을 당하는구나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잠시, 손목을 구속당하니 제가 마치 음서 속 주인공이라도 된 것 같았다. 속적삼 하나만 걸친 채로 손목이 묶여 제 뒤에 지켜선 사내에게 치부를 온전히 보이는 채였다.

“볼기에 내 손자국을 새긴 채로 유학을 가르치려 했다니, 담이 아주 크군. 작야처럼 청해보아라.”

“윽…….”

공대와 하대를 넘나드는 그의 말씨가 고약했다. 가차 없이 엉덩이를 움켜쥐는 화용군의 손이 몹시 우악스러워, 서하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저를 욕보이는 말이 매섭고도 뜨거웠다. 늘상 꿈꿔오던 상황이 목전에 놓이자 판단력이 흐려졌다.

“흐, 읏……. 엉덩이를…, 때려 주십시오…….”

매번 속으로만 주워섬기던 말을, 이번엔 제정신으로 뱉어냈다. 작야와 다른 공대의 말로 청했다. 아마 그때는 기방의 남창인 줄 알고 그리 하대를 했을 것이다. 수치심이 서하의 머리를 까맣게 물들였다. 그럼에도 엉덩이를 쥔 손은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서하가 매질을 기다리다 못해 움찔 떨자, 화용군이 가차 없이 볼기를 내리쳤다.

“아……!”

“손으로 만족할 수 있겠느냐.”

화용군이 원색적인 물음을 던졌다. 서하는 잠시 고민했다. 손도 좋았지만, 그보다 날카로운 통증이 고팠다. 서하가 작게 고개를 젓자, 화용군이 서랍에서 회초리를 꺼내 들었다.

“내 누구를 매질해본 게 처음이라, 힘 조절이 어려울 듯한데…….”

“…….”

“어떻게 때려야 그대가 만족할까.”

그것은 물음이되 물음이 아닌 말이었다. 서하가 어쩔 도리를 몰라 입만 벙긋거리다 결국 청을 올렸다.

“아프게……. 아프게… 때려주세요.”

입 밖으로 뱉고 나니 더욱더 처절한 청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와 같은 말을 하는 이가 어디 있을까. 수치심에 눈가가 다 뜨거웠다. 그런 서하를 관망하던 화용군이 회초리를 세게 쥐었다.

“윽…!”

더 확실하고 날카로운 통증이 서하의 몸을 수놓았다. 마지막 남은 이성이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매번 바라마지 않던 고통이 육신을 저미고 머리를 뜨겁게 달궜다. 바람을 가르는 회초리의 날렵한 소음이 서하를 설레게 했다.

“하아, 읏, 아!”

매달린 손목이 욱신거리고 엉덩이는 불이라도 붙은 것 같았다. 어느새 앞에선 질척한 액체가 흐르고 있었다. 빨간 줄이 새겨진 엉덩이에 화용군의 뜨거운 시선이 머물렀다. 서하도 그 시선을 느꼈다. 눈빛이 닿는 것만으로 곁에 선 남자의 흥분이 여실히 느껴졌다. 서하가 달궈진 머리로 음서 속 교접을 떠올렸다. 그 와중에도 사나운 매질은 끊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서하의 손끝이 무참히 떨렸다. 터질 듯 발기한 성기가 꺼떡거리고 있었다.

“이다음은.”

“흐, 아, 으읏…….”

“지난밤엔 양물을 빨게 해 달라, 뒤를 쑤셔 달라 바쁘게 입을 놀리더니, 어찌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게야?”

그런 말까지 했나, 서하가 눈을 질끈 감았다. 입가가 아릴 지경이었다.

“스승의 소임을 다 하려면, 나를 잘 가르쳐야지.”

“화, 화용군….”

서하가 망설이는 순간, 화용군이 서하의 성기 끝을 손바닥으로 세게 쥐었다. 자극적인 접촉에 서하의 허리가 뒤틀리고 엉덩이에 힘이 들어가고 구멍이 세게 조여졌다.

“매질로 충분한가? 아닐 텐데.”

서하 역시 한계였다. 맞는 것도 좋았지만 어제의 그 충격에 가까운 쾌감도 그리웠다. 염치는 필요하지 않았다.

“말해.”

그런 서하를 화용군이 충동질했다. 화용군이 기어코 서하의 속적삼을 풀어 젖혔다. 뒤이어 단단한 손끝으로 여린 젖꼭지를 뭉개며 붉게 달아오른 서하의 귓가에 대고 명령했다.

“말하라고.”

회초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엉덩이 골을 파고드는 손가락은, 서하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지, 흣, 자지 주세요…….”

“하…….”

“쑤셔 넣어 주세요…….”

말로 뱉고 나니 더욱 더 치욕스러웠다. 하지만 성적 욕망의 실현 앞에서 그걸 포기하기엔, 서하가 가진 굶주림이 너무도 컸다. 스스로 젖지 못하는 구멍에 알 수 없는 미끈거리는 액체가 떨어졌다. 작은 병이었는데, 머리에 바르는 동백기름인 듯 했다. 원래 쓰임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손가락을 단번에 두 개를 쑤셔 넣은 화용군이 안을 억지로 벌리며 빠르게 넓히고 있었다. 서하의 입에서 연신 헛숨이 터져 나왔다.

“학, 으응, 읏!”

“다음엔 스스로 벌리도록 해.”

서하의 등줄기로 소름이 돋아났다. 가르치지도 않은 말인데, 어찌 저리 음서와 똑 닮은 말을 하는지.

“아악…!”

화용군이 서하의 흰 목덜미를 씹으며 굵은 성기를 삽입하기 시작했다. 손가락 두 개로 쉽게 풀어질 만한 곳이 아니었으므로 삽입이 몹시 힘겨웠다. 서하의 허리가 화용군의 손 안에 잡혔다. 식은땀이 배어나온 탓에 얇은 속적삼이 젖어들고 있었다.

“흣, 아, 허으윽…….”

울음소리를 닮은 신음이 흩뿌려졌다. 화용군의 낮은 한숨도 서하의 귓가에서 덩달아 퍼졌다. 제 몸을 꿰뚫는 커다란 양물이 두려웠다. 그리고 동시에 미칠 만큼 좋았다.

“후, 힘 빼. 밤새도록 좆 꽂고 있고 싶어?”

어느새 해가 졌나. 서하가 노을이 지는 창밖의 붉은 빛에 시선을 뺏겼다. 밤새 양물을 꽂고 능욕 당할 거란 생각을 하니 외려 아랫배가 바짝 조여들었다. 상상만으로 쌀 것 같았다.

“음탕한 구멍 같으니…….”

“흣, 악…!”

푹, 거친 움직임으로 단박에 박혀든 성기에 서하가 새된 신음을 내질렀다. 엉덩이 골에 닿는 거칠한 거웃과 뱃속에 쑤셔진 양물의 존재감에 온몸이 떨렸다. 매를 맞아 심하게 따가운 엉덩이가 화용군이 추삽질을 할 때마다 마찰되어 통증이 더해졌다. 전날 밤처럼, 아니 그보다 더 확실하고 선명한 쾌감이 전신을 휩쓸었다. 눈앞이 깜깜해지는 쾌감이었다.

***

“오늘 수업 즐거웠습니다.”

“…….”

서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흐트러진 상투도 화용군의 손에 맡겨야 했다. 화용군의 야문 손끝이 서하의 상투를 단정히 동여매주었다. 머리카락이 당기는 것만으로 야릇한 느낌이 들었지만 음낭이 텅 빌 정도로 사정했기 때문에 딱 거기까지였다. 길지 않은 행위였으나 간밤의 여파가 컸다.

“음서는 인편으로 보내줄 겁니까?”

뒤늦게 스승에 대한 예우라도 차리는 건지, 화용군은 완벽한 존대를 구사하고 있었다. 어째선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까맣게 물든 밤하늘 아래서 서하가 달빛에 비친 화용군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봤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이게 옳은 건지.”

“옳고 그름의 기준은 누가 정합니까?”

화용군은 서하의 사고방식마저 괴멸시키려는 듯 했다. 미진하나 유학자요, 선비로 자랐다. 군자는 청렴결백해야 하는데, 방금 제가 저 방 안에서 화용군과 한 짓은 맑고 깨끗하여 탐욕이 없는 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음심으로 얼룩진 금수만도 못한 행동이 서하의 발목을 잡았다.

“고고한 선비의 몸이라 입이 쓴 것은 알겠으나, 선비이기 전에 사람이지 않습니까? 아무도 안 보는 데서 음탕하게 구는 게 무에 그리 문제라고.”

“궤변입니다!”

그렇게 말했지만 저 역시 화용군의 말에 감화되고 있었다. 애초 음서를 보고 망상을 즐기던 순간부터, 아니 저를 꾸중하는 형님의 매질에 흥분한 순간부터 제게 남은 답은 하나뿐이었으니까.

“잊지 마시오. 그대가 먼저 나를 꼬여냈어. 나는 그대를 놓아줄 생각이 없고.”

화용군이 그런 서하의 어깨를 거머쥐며 낮게 속삭였다. 헝겊을 벗겨낸 화용군이 서하의 목에 미색의 비단 목도리를 감아주었다. 꽃 화花자가 멋스럽게 수 놓여 있었다. 달빛에 반짝이는 눈은 검고 짙었다. 입술이 닿을 것처럼 가까웠다. 대체 이게 무슨 조화일까. 생전 처음 겪는 경험과 몰아치는 감정에 천지가 진동하는 것만 같았다.

***

“늦었구나.”

“…언제 오셨습니까?”

낡은 초가집에 들어서자 마루에 앉아있던 김산이 서하를 맞이했다. 저지른 일이 있어 괜히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서하가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마루에 걸터앉았다. 김산은 무표정한 얼굴로 서하를 관찰하고 있었다.

“어찌 그리 보십니까?”

“어딜 다녀오는 길이냐.”

웃음기 없는 목소리에 서하가 입술을 사려 물었다가, 이내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어디를 다녀오긴요. 제가 어딜 다녀오겠습니까. 기껏해야 세책집…….”

“참이냐.”

“무슨,”

“되었다. 세책집에 다녀왔다는 말은 믿으마. 작야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게야.”

서하가 당황을 숨기지 못하고 김산을 똑바로 응시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이 일었다. 김산의 눈빛에 서린 의문이 어디를 향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흐트러진 의관이 신경 쓰여 긴장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그가 어찌 지난밤을 언급하는가.

“작야라니…….”

“아직도 그 못난 술버릇을 고치지 못한 것이냐!”

김산이 손을 뻗어 서하의 목덜미를 가려주던 비단 목도리를 벗겨냈다. 유난히 환한 월광 아래 상처가 드러났다. 김산의 얼굴이 충격에 휩싸였다. 을덕에게 들어 알고는 있었다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놀랄 수밖에 없는 상흔이었다.

“형님…!”

“또 왈패들에게 시비를 건 게야?! 어찌 이리 어리석어! 장성해서도 회초리질을 당해야 정신을 차리겠어?”

김산이 우레와 같은 목소리로 서하를 꾸중했다. 때려주면 나는 좋지……. 서하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김산을 쳐다봤다. 붙잡힌 어깨가 욱신거렸다. 그리고 오늘 아침, 을덕에게 상처를 보였단 사실이 떠올랐다. 서하가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김산이 서하를 붙잡았던 손을 놓고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는 술 안 먹겠습니다. 화 푸세요.”

“내 잘못이야. 네게 말하는 게 아니었다. 술을 먹자고 하는 게 아니었어.”

이혼서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서하가 수심에 잠긴 김산의 옆얼굴을 훔쳐보다 말했다.

“형수님께서는…….”

“무서워서 안채엔 걸음도 못 했다.”

축 쳐진 어깨가 안쓰러워 보였다. 김산에 대한 마음을 차곡차곡 접어둔 지가 언젠데, 지난밤에 저는 왜 그렇게 술이 고팠을까.

“예서 자고 가도 될까?”

“이 좁은 집에 주무실 곳이 어디 있다고요. 이불도 한 채뿐인 걸요.”

“사내끼리 한 이불 덮는 게 문제야?”

김산은 한없이 가볍게 말했다. 그는 남색이라곤 안중에도 없는 인물이니 당연히 그렇게 여길 터였다. 서하가 입술을 말아 물었다. 이상하게 그의 말에 전처럼 설레질 않는다. 하루 만에 이 무슨 변화일까. 간밤에 사내와 한 이불 아래서 교접을 하고 방금 전까지 그와 배꼽을 맞추었으니 제가 답할 말이 없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허면 저는 예서 자렵니다.”

서하가 손바닥으로 마루를 탕탕 치자 김산이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려고요?”

“그래. 어차피 잠이야 사랑채에서 자니 부인 마주칠 일은 없겠지. 아참, 너 화용군을 맡게 되었다고?”

예상치 못한 이름의 등장에 서하가 바짝 긴장했다. 아닌 게 아니라 좀 전까지 그와 함께 있었으니 말이다.

“…소문도 빠르십니다.”

“종학청에 갔더니 임 전훈이 그러질 않아. 조심해라. 눈 밖에 났다간 멸문지화도 먼 이야기가 아니야.”

화용군을 조심하라는 김산의 경고가 색다르게 들렸다. 조심해야 할 상대는 맞았다. 그로 인해 멸문지화를 당할 지도 모른다. 불현듯 밀려오는 걱정에 서하의 낯에 시름이 깃들었다.

“이만 가보마.”

“살펴 가십시오.”

김산을 배웅하며 서하가 둥글게 뜬 달에 시선을 주었다. 달빛이 유난히 밝았다. 쉽사리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에 골치가 아팠다.

***

동이 트는 게 무서울 지경이었다. 밤새도록 고민한 결과는, 그의 제안을 거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일’들은 모두 실수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했다. 밤새도록 성현의 말씀을 되뇌었다. 사람으로 나 금수와 같은 짓은 그 두 번으로 족했다.

마음을 정리하자 머리가 차분해지는 한편 가슴께는 무거웠다. 나름 공들여 개켜놓은 목도리가 눈에 들어왔다. 앉은 자리에서 일어난 서하가 옅게 자국이 남은 손목을 살폈다. 어둠 속에선 보이지 않던 것이, 해가 뜨기 시작하자 다시금 드러나는 것이 두려웠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실상 결론이 내려졌음에도 결국 욕망을 이겨내지 못했던 스스로가 창피했다. 화용군의 제안은 단순한 유혹을 넘어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십 년의 시간 동안 억눌러 온 소망을, 단 한순간에 이뤄주었으니까. 겪어보기 전엔 생에 단 한 번이라도 족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맛을 보고 나니 도저히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두 번째의 실수도 기꺼이 저지르고야 만 것이다.

왜 그랬을까. 답답한 마음이 일어 바깥 공기가 간절해졌다. 장지문을 열어젖히고 마루에 선 서하가 크게 숨을 들이켰다. 새벽의 서늘한 기운이 폐부에 스며들고, 타오르듯 떠오르는 태양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 옳고 그름의 기준은 누가 정합니까?

왜 자꾸만 그 사특한 말이 떠오르는 걸까. 서하가 제 몸을 탐하던 화용군의 낯을 떠올렸다. 그 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오금이 저릿했다. 치미는 한기에 팔뚝 언저리를 쓸어냈다. 몸이 뜨겁다. 아직도 욱신거리는 엉덩이와 몸 구석구석이 지난 이틀을 자꾸 상기시켰다.

- 아무도 안 보는 데서 음탕하게 구는 게 무에 그리 문제라고.

색정적인 미소와 낮은 목소리가 쉬이 잊히질 않았다. 아무래도 잘못된 길에 들어서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까진 희망이 있었다. 금수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길이, 남아있었다. 적어도 서하의 생각에는 그랬다.

***

어둡고 추운 밤, 야심한 시각에 흑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부원군 댁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세자의 외조부이자 중궁전의 부친인 부원군은 이름값만 못한 권세를 지니고 있었다. 대비와 주상이 합심하여 이룬 결과물이었다. 흑색 도포를 입은 사내는 종학청의 임 전훈으로, 품에는 서찰 하나를 숨긴 채였다.

「자고로 송충이란 솔잎을 먹어야 하는 법인데, 모란 위에 앉았으니 이 나라 법도가 땅에 떨어졌음이지.」

말해 무엇 하랴. 종친도 아니면서 종학에서 수학하며 세자의 자리를 위협하는 화용군, 강가놈을 이르는 말이었다. 게다가 행행行幸에도 따라 나선다니 월권이 지나쳤다. 이러한 주상의 처사에 불만을 품은 이가 적지 않으니 자연히 화용군에게 반대하는 세력이 생길 만도 했다. 부원군은 그런 이들을 이용해 주상의 기를 누르고 제 외손에게 힘을 보태려는 것이리라.

- 동문수학한 사이로 아직까지 전훈이라니, 내 마음이 아프다네. 자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야.

임 전훈이 주먹을 꽉 쥐었다.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

속으로 걱정했던 것과 달리 종학청에서 화용군은 무척 점잖은 태도로 서하를 대했다. 마치 다른 사람을 대하듯 스승에 대한 예를 올렸으며 바른 자세로 앉아 강론에 임했다. 서하도 그의 그런 모습에 점차 익숙해져 한 시진이 흘렀을 즈음엔 다소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강의에 임할 수 있었다. 종학청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범상하게 구는 화용군으로 인해 일순 제가 꿈을 꿨나 싶기도 했다. 마치 장자의 호접몽처럼 생생한…….

“꿈이었나…….”

퇴청하여 제 작달막한 초가집으로 돌아왔을 땐 볼을 꼬집어보기까지 했다. 아니, 꿈이라면 그 일이 꿈일 테니 지금 볼이 아픈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마루에 선 서하가 제 목에 감겨있는 목도리를 손으로 꾹 쥐었다. 꿈이 아님을 분명히 말해주는 증표가 버젓이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쓰라린 볼기짝도 그러했다. 헌데 어찌 된 일일까. 만일 없던 일로 하기로 한 거라면. 제가 먼저 관계를 물리고저 해놓고 어째선지 마음이 허했다. 어이가 없었다.

“…사는 곳이 지나치게 누추한데.”

낮은 울림을 가진 목소리에 심장이 툭 떨어지는 듯 했다. 그게 저 거구의 사내 때문인지, 아니면 방금 전의 가정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여긴 어찌 알고,”

“인편으로 뭘 보낼 만한 형편이 아니군.”

사립문을 열고 마당 안으로 발을 들인 화용군이 가벼운 말씨로 중얼거렸다. 저벅저벅 커다란 갖신이 점차 가까워지는 소리가 들렸다. 짙은 먹색의 도포가 마치 귀신의 것처럼 보였다. 서하가 차마 그를 바로 보지 못하고 목에 감긴 목도리를 움켜쥐었다.

“손님이 왔는데 이리 세워둘 건가?”

정신이 번쩍 드는 말이었다. 그가 진정 귀한 손이라서가 아니라, 행여나 누가 보기라도 할까 무서워서 얼른 그를 안으로 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나는 사람이 드문 곳이라도 남의 눈에 보여 좋을 일은 없었다.

“안으로 드십시오.”

서하가 급히 자리를 비켰다. 화용군은 무감한 낯으로 손수 문을 열어젖히며 좋게 말해도 넓다곤 할 수 없는 제 방 안으로 큰 몸을 욱여넣었다. 혹시 몰라 그의 신을 들고 안으로 든 서하가 그 뒤를 따르며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방망이질을 친다.

“좁아. 그대 안처럼.”

단조로운 평가 후에 따르는 음탕한 발언에 서하가 바닥만 뚫어져라 응시했다. 이대로라면 구들장이 뚫어질 지도 모르겠다. 그때 화용군이 서하의 턱 끝을 쥐고 눈을 맞췄다.

“뭘 하고 섰어? 날 가르쳐야지.”

“…….”

“스승께서 서책을 보내지 않으니 이 몸이 찾아올 수밖에.”

시원스레 뻗은 콧날과 새까만 음기를 머금은 눈이 서하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가장 지독한 것은 모양 좋은 입술이 뱉어내는 야속한 말이었다.

“어찌 대답이 없어?”

“무얼 말씀하시는 건지…….”

“그대를 어떻게 아프게 해줬으면 하는지 묻고 있잖아.”

당혹감에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빠져 그의 고운 흑혜가 큰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좀처럼 회피하고 싶어도 쉽지 않았다. 좁다래한 제 방안에서 화용군이 갓끈을 풀어 바닥에 떨어뜨리는 모습만이 선명하고 커다란 움직임으로 눈에 들 뿐이었다. 단단한 손마디가 서하의 허리를 옭아맸다. 못 해도 네 겹은 되는 천들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이었다.

“대답이 늦어.”

“읏…….”

“혀 아래 엿이라도 숨겨 놓았느냐.”

기다란 손가락 하나가 입술을 짓누르고 파고들어 숨겨져 있던 혀를 문지른다. 노골적인 접촉에 허리 아래가 욱신거렸다. 그의 제안을 뿌리치기 위해 밤이 새도록 준비한, 선비로서의 몸가짐에 대한 격언들이 입안에서 부서져 내렸다. 이러면 안 된다는 말이 목구멍을 치고 올라왔지만 풀어지는 옷고름 하나 막지 못했다.

“이러시면,”

“아니 된다?”

제가 할 말을 가로채는 그의 목소리가 낮고 음습했다.

“엉덩이를 벌려 보이던 패기는 어디 갔지?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저자에서 매를 칠 수도 있다 했어. 그리되면, 그대 매를 맞으며 씨물을 흘리는 모습을 백성들에게 보이고야 말 텐데.”

협박이 달다. 끔찍이도 달고, 유혹적이었다.

“음탕한 몸뚱이니 내심 바랄지도 모르겠으나, 그런 모습은 나만 보고 싶어서. 유념해.”

웃음기 어린 색스러운 농담에 정신이 팔린 사이 거친 손놀림과 함께 단번에 맨 엉덩이가 드러났다. 분위기에 휩쓸릴 뻔 했던 서하가 다급히 화용군의 팔뚝을 그러쥐었다.

“헉, 자, 잠시만! 이러시면 안 됩니다. 본분을 생각하십시오. 저는 스승이고 화용군은…!”

“하룻밤 정인?”

“예?!”

“그도 아니면 그대와 배꼽을 맞춘 유일한 사내? 다른 사내가 있다곤 말 않겠지. 있다 해도 함구하는 게 좋을 것이야. 내가 소유욕이 좀 있는 편이라.”

서하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화용군을 쳐다봤다. 다른 사내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의 소유욕이 제게까지 닿는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꺼림칙하고 두려워졌다. 저를 갖고 싶다 했던가. 놀라 거칠어진 숨에 입술이 가까웠다. 공기가 달라지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어, 억지 부리지 마십시오.”

서하가 떨리는 손으로 화용군을 밀어냈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다시금 제 움직임을 가로막는 굵은 몸뚱이가 단단했다.

“무슨 억지?”

“그날은, 그저……. 그저 술기운에…!”

“허면 그 다음 날은. 가마 안에서 내 손에 옷이 벗겨지며 흥분하고, 내 집 사랑방에서 난잡하게 구멍을 벌려보였던 날은 어찌 해명할 생각이야. 그날은.”

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할 말을 찾지 못해 마른 침을 삼킨 탓이었다. 점점 어두워지는 방 안에서, 서하가 시선을 내리깐 채 입술을 깨물었다.

“무엇이 그리 두려워서.”

“…모르겠습니다.”

“왜.”

대화가 오리무중이다. 답답해진 서하가 마지막 이성을 덜어내 솔직하게 토로했다.

“실수라고 해야 하는데, 밀어내기 싫어요. 헌데 이러면 아니 되질 않습니까. 제가 어찌 그리 했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 순간 홀렸나 봅니다. 너무 오랫동안 바라왔던 일이라,”

“해서 내가 이뤄 준다질 않아.”

“화용군.”

“그대가 바라는 욕망을 내 직접 이뤄 주겠다고. 이미 내가 들킨 마당에, 다시 꼭꼭 숨기고 살 텐가? 아니면 다른 사내에게 치부를 드러내려고? 차라리 나를 믿지 그래. 내 그리 못 미덥나? 꽤 괜찮은 상대라고 생각하는데. 이래봬도 대비전과 전하의 총애를 받는 몸이라, 내 허물이 될 일을 남에게 퍼뜨리고 다니진 않을 거야. 나를 믿어. 그리고 그대 원하는 것을 취하도록 해.”

조곤조곤 속삭이는 말이 마치 꿀이라도 발린 양 매혹적이었다. 육체적 쾌락에 쉬이 무너지는 스스로가 한심스러웠다.

“나를 가르쳐. 그대가 원하는 것을 전부 이뤄 줄 테니.”

“화용군…….”

그를 부르는 서하의 목소리에 어느덧 적의는 몽땅 날아가 있었다. 하복부에 닿는 양물이 비단옷 아래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역시 흥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 부르는 건 듣기 나쁜데.”

“…예?”

언제 훔쳐낸 건지 알 수 없는, 서하에겐 눈에 익은 음서가 화용군의 손 안에 들려 있었다. 서안 밑에 숨겨둔 것인데……. 팔락팔락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고요한 가운데 울렸다. 홀로 보며 야릇한 상상을 하던 책을 들키니 그 어느 때보다 수괴스러웠다. 책장을 넘기던 화용군이 작게 웃으며 서하의 수치심을 자극했다.

“그래, ‘나리’라 불러 봐.”

“…!”

“그대 홀로 수음할 때처럼.”

꼭 다물린 뒤를, 배려 한 점 없이 파고들며 덧붙인 말에 서하가 화용군의 옷자락을 부여잡으며 낮게 신음했다. 빠듯하게 뒤를 벌리고 드는 마디 굵은 손가락이 야속했다. 한 발자국 더 가면 더는 돌이킬 수 없는데, 이젠 정말 안 되는데.

“어서.”

코끝이 마주 닿았다. 간지럽다기보다 야스러운 감각에 등골에 소름이 끼쳤다. 화용군의 널찍한 손바닥이 부어터진 엉덩이를 아프게 눌렀다. 서하가 벌어진 입술을 채 다물지 못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단지 부르는 것만으로 음경이 발기되는 단어였다.

“더 크게 불러야지.”

“…나리.”

삼도천보다 더 깊고 어두운 강을 기어코 건너고야 만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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