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 척교상봉隻橋相逢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
크게 다친 사람처럼 목덜미를 헝겊으로 칭칭 싸맨 서하가 관복을 차려 입은 채 종학청으로 등청했다. 벼슬길에 올라 연소한 나이에 정6품의 관직을 차지했으니 세간의 이목이 집중될 터, 가능한 조용히 살고 싶은 서하에겐 불운한 일이었다. 역시나 등청하자마자 곱지 않은 시선들이 서하에게로 떨어졌다.
“자네 꼴이 그게 뭔가?”
“송구합니다.”
머리가 희끗할 만큼 나이가 지긋하지만 서하보다는 두 품이 높을 뿐인 임 전훈典訓이 서하를 대놓고 나무랐다.
“쯧, 금일부터 화용군이 종학에서 수학하기로 했다네. 자네가 책임지게.”
“예?”
“어찌 그리 봐? 허면 왕실 종친도 아닌 화용군을 다른 종친들과 함께 가르치는 게 맞다 보나?”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서하는 화용군의 명성만 알 뿐 실물을 본 적도 없었다. 임 전훈은 정5품 당하관이었지만 동기 같은 친우들이 죄 당상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뒷배가 든든하대도 감히 대비전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화용군을 홀대할 생각을 하다니. 서하가 제 무덤을 파는 임 전훈을 속으로 측은히 여겼다.
다만 제가 그 화용군의 전담이라니. 겁이 덜컥 났다. 자칫 잘못해 제가 그의 진노를 다 감당하게 될까 생각만 해도 귀찮고 짜증이 났다. 다른 종친과 따로이 수업을 받는 것을 알면 아무리 화용군이 아둔한 이라도 기분이 상할 터였다. 공주의 독자인데다 대비전과 주상전하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니 얼마나 콧대가 높을꼬.
‘상전 모시게 생겼군.’
당장 상관의 명을 거역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겨우 마음을 다잡은 서하가 화용군이 들어 있다는 전각으로 향했다.
“…오늘부터 『춘추春秋』를 강할 사회 이서하라 합니다.”
* 춘추 : 유학오경 중 하나로 공자가 엮은 중국의 사서.
최대한 꼿꼿한 자세로 준비해둔 말을 뱉으며 들어간 곳에는 생전 처음 보는 미남자가 불편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앉아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눈이 마주친 순간 미간을 구겼다고 해야겠다.
‘왜 저래?’
괜히 머쓱해진 서하가 버릇처럼 뺨을 긁었다. 어쩐지 낯이 익었지만, 기억 속에 저런 미남자를 본 일이 없으므로 금세 상념을 지웠다. 절차대로 하자. 방 안에 들어있는 화용군의 표정이 나빴으므로 서하가 최대한 부드러운 낯을 가장해 다음 말을 이었다.
“스승께 예를 올리십시오.”
좋게 말해서 이렇지, 실상은 다음과 같았다. 인사해. 예의 없는 새끼야.
“스승?”
묘하게 풀어진 얼굴로 피식 웃음을 흘린 화용군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하에게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육 척은 가뿐히 넘기는 우람한 체격에 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눈으로 보기엔 칠 척쯤 되지 않을까 겁이 날 정도로 컸다. 무관 중에도 이런 기골은 없다. 따지자면 저도 큰 편인데 자존심이 상할 정도였다. 화가 난 건가? 홀로, 그것도 연소해 보이는 서하가 저를 가르친다니 화가 났을 수도 있다. 점점 가까워지는 화용군은 몹시 위협적이었다.
“어, 어찌 이러십니까? 불만이 있으시면 제가 아니라,”
“스승이라니. 간밤에 남의 정절을 훔쳐 달아났으니 파렴치한이라 해야지.”
정절? 파렴치한? 생각지도 못한 단어의 향연에 서하가 고개를 똑바로 들고 화용군의 얼굴을 마주했다. 똑바로 응시하기 어려울 만큼 위압감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어찌 이리 낯이 익을까. 그가 고압적인 태도로 가까이서 저를 내려다보자 기시감이 느껴졌다.
“전두가 모자랐거든.”
툭 떨어지는 돈주머니는 제가 서랍 속에 고이 두었던 것이었다. 저건 내 비상금……. 전두라니 무슨 뜻일까. 그때 화용군이 서하의 목에 둘러메진 헝겊을 당겼다. 순식간에 드러난 목덜미에, 남아있는 상처에 딱 맞는 크기로 화용군의 손이 감겼다.
“엉덩이를 때려 주시오.”
“…!”
“백면서생이 읊기엔 상당히 괴리감 있는 말이지.”
서하의 낯이 충격으로 얼룩졌다. 정상적인 사고가 이어지지 않았다. 화용군은 서하의 충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보기 좋은 미소를 흘릴 뿐이었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서하가 헝겊을 단단히 여미며 말했다.
“저희 집으로 가시지요.”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이대로 넘어갈 사내가 아니었다. 전날 밤의 사내가 하필 화용군이라니. 무언가 단단히 잘못됐다. 해서 제 발이 저린 서하가 먼저 굳은 마음을 먹고 화용군을 제 집으로 이끄는 것이다.
- 엉덩이를… 때려 주시오…….
흐릿한 기억이지만 분명 제가 읊었던 말이었다. 수치심에 욕지기가 나올 지경이었다. 음서 속 대사를 그대로 읊었다는 게 낯부끄러워 더더욱 할 말이 없었다. 서하는 이 순간 그저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이대로 사직을 청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직무를 거부할 수도 없었다. 화용군의 의중도 알아야 했고. 결국 그와 동행해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허나 그와 함께 나란히 제집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보일지 모른다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저야 저자에 나선다 해도 별다른 시선을 받지 않지만 화용군은 다를 게 분명했다. 다시 한번 흘낏 본 모습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에 띄지 않는 구석이 없었다. 머뭇거리는 서하를 보던 화용군이 속내를 간파한 듯 피식 웃어보였다.
“그리 이목이 두려우면 내 가마에 올라야지. 안 그런가?”
화용군이 사냥감을 포획한 맹수처럼 열기를 숨기지 않고 속삭였다. 그가 교자보다 가마를 즐겨 탄다는 것은 소문으로 알고 있었으나 제가 그 가마에 오를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제집보단 영운궁으로 가는 게 낫지 싶었다. 그러나 제가 화용군의 사저에 드는 모습도 남에게 보여줄 것은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겁이 나나?”
“못할 것도 없지요.”
오기가 일었다. 끝없이 도발하는 화용군의 작태에 서하가 저도 모르게 대답했다. 그리고 곧바로 후회했다. 가마라니…….
“간밤엔 제자의 허리를 타더니, 대낮엔 그 가마에 타는군. 음란한 스승이야.”
“농이 지나치십니다. 어찌 스승께 예를 갖추지 않고 삿되게 구시는 겁니까?”
“농? 저잣거리에서 그대 엉덩이를 매질해야 정신을 차릴까.”
날카롭게 날아드는 말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서하가 저를 깔아보는 화용군의 뜨거운 시선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가정한 상황을 상상하고 말았다. 간밤에 그에게 매질을 당한 엉덩이가 씨근거렸다.
“언사를 신중히 하십시오.”
“내 가마꾼들을 부르기 전에 안에 드시게. 그리고 그대 집보단 영운궁으로 가는 게 나을 성 싶은데.”
영운궁은 완혜공주가 하사 받은 별궁이었다. 현재는 화용군의 군저인……. 손목을 쥐는 단단하고 시원한 손이 도무지 거절할 수 없게끔 서하의 몸을 당기고 들었다. 살결이 닿는 것만으로 간밤의 쾌감이 다시금 떠오른다. 서하가 빠듯하게 조여드는 아랫배를 무시하며 가마 안으로 몸을 숨겼다. 곧 단둘이 될 좁은 공간임을 잊은 처사였다.
***
가마 안은 결코 좁지 않았으나 거구인 화용군과 둘이 나란히 타기엔 무리가 있었다. 안에 든 후에야 그걸 알아챈 서하가 불안하게 내부를 살폈다. 임금이 타는 가마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휘황찬란한 내부였다. 아무리 금상의 생질이라 하나 과분한 대우다. 외려 금상의 수랏상에는 찬을 세 가지만 올린다 들었건만 아마 화용군의 소반은 자리가 모자라지 않을까 싶었다.
아무래도 가마를 타고 가는 것은 아니다 싶어 서하가 무릎을 세운 순간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가마꾼들이 돌아온 듯 했다. 귀를 대고 자세히 들으니 종학청에 드나드는 다른 관리들도 지나는 듯 했다. 하필이면…….
“가마가 좀 무거울 것이다. 가마꾼 두엇을 더 사오너라. 품삯은 넉넉히 준다 하고.”
“예, 나리.”
조금 희미하게 들리는 목소리에 서하가 몸을 움츠렸다. 이윽고 벌컥 열린 문에 심장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비켜 앉게.”
“…자리가 좁습니다. 그보다 보는 이가 많으니 우선 안으로 드시지요.”
“유혹하는 건가.”
안으로 들라는 말에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화용군이 얇은 미소를 띠고 중얼거렸다. 화용군은 뜻 모를 호감을 잔뜩 내비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둘이 함께 앉는 것은 무리인 것 같은데. 서하가 갈팡질팡하는 사이, 가마 안으로 든 화용군이 서하의 허리를 당겨 제 품에 앉혔다.
“어찌…!”
“쉿, 남들이 들으면 어찌 하려고.”
커다란 손바닥이 서하의 입을 틀어막았다. 긴장감과 함께 이는 야릇한 감각에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화용군이 서하의 목에 감겨있던 헝겊을 다시금 당겨 풀었다. 순식간에 노출된 목덜미에 한기가 스몄다.
“목덜미에 솜털이 바짝 선 것이, 우리 스승께서 음탕한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으읍…….”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가로막힌 입술론 어떤 말도 뱉을 수 없었다. 살면서 타인을 이토록 가까이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낯설고 불편했다.
“나리, 출발하겠습니다.”
밖에서 가마꾼이 제법 큰 목소리로 말했다. 서하가 저항할 새도 없이 가마가 들렸고, 덜컹하는 순간 힘을 주어 버티던 엉덩이가 화용군의 국부에 주저 앉혀졌다.
“흐읏…!”
부어터진 엉덩이에 가해진 강한 충격에 서하의 입에서 새된 신음이 터졌다. 수치심에 눈물까지 맺힐 지경이었다.
“언제부터 고통을 즐겼지? 뉘에게 배웠느냐.”
짐승의 우짖음을 닮은 쉰 목소리는 색의 기운을 담고 있었다. 무엇보다 좀 전과 다른 완벽한 하대에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입술을 가로막았던 손이 어느새 관복의 대를 풀고 고름을 당기고 있었다. 쉽사리 벗겨지는 옷에 당황한 서하가 저항하려 했지만 허리를 끌어안은 팔뚝이 마치 형틀처럼 서하의 몸을 구속하고 있었다.
“대답하지 않을 때마다 하나씩 벗길 것이야. 아무리 가마 속이라 하나 선비 된 자가 저자에서 나체로 능욕 당할 수는 없겠지.”
“이, 이러지 마십시오.”
“그건 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지 않느냐.”
한 겹 더, 관복 안에 입고 있던 무명 저고리가 벗겨졌다. 다음은 얇은 속적삼뿐이었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저,”
“질문이 둘이었지.”
이번엔 바지 끈이 풀렸다. 상의도 아직 남았는데 아래를 벗기는 투박한 손길에 서하가 저도 모르게 몸을 들썩였다. 아무리 숙련된 가마꾼이라도 안에서 난동을 피우면 가마를 놓치고 말 것이다. 순간의 예상대로, 방금 전의 움직임은 난동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가마꾼들이 쉬이 넘길 수준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리, 곧 비탈길입니다.”
돌려 말하고 있으나 방금 전의 움직임에 주의를 주는 말이었다. 서하가 눈을 커다랗게 뜬 채 놀라 멈췄던 숨을 겨우 터트렸다.
“늦어도 무방하니, 천천히 가거라.”
“예, 명심하겠습니다.”
화용군은 서하를 똑바로 쳐다보며 조금 큰 목청으로 바깥의 가마꾼에게 명을 내렸다. 관복은 진즉에 구석에 처박혔다. 아무렇지 않게 제 옷을 벗기는 미남자의 뜻을 알기가 어려웠다.
“대체 어찌 이러시는 겁니까.”
서하가 최대한 작게 따져 물었다. 어찌 옷을 벗기는가. 양반된 자로 이런 풍기문란한 짓을 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기루라면 모를까. 가마 안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흥분하는 자신이었다. 반쯤 벗겨진 옷과 저를 구속하는 몸이 지나치게 색정적이었다.
“그대가 내 물음에 답하질 않으니까.”
화용군은 그저 초연했다. 서하는 말로만 들어오던 화용군의 행태에 충격받으면서, 동시에 흥분하고 있었다. 어찌 되었건 저자에서 나체가 되는 사태만은 막아야 했다. 시전을 지나는지 소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배우지 않았고, 그저… 대과를 치르기 전에, 반발심에 경거망동하였다 형님께 회초리질을 당한 후로 알게 되었습니다.”
입 밖으론 처음 내뱉는 고백에 서하가 귓바퀴까지 붉게 물들이며 수치심에 조용히 떨었다. 말로 뱉으니 더욱 치욕스럽다.
“친형제에게 욕정을 느꼈단 말인가?”
“친형제가 아닙니다! 어려서부터 알고 지낸…….”
적나라한 질문에 서하가 조금 역정을 담은 목소리로 반박했다. 부인에게 끝내 이혼서를 받고야 만 김산이 바로 서하를 처음으로 매질한 장본인이었다.
양친께선 애당초 서하에게 큰 관심도 기대도 없으셨다. 그저 어린 나이에 시집갔다가 서방이 첫날밤 문지방을 넘기도 전에 비명횡사하여 과부가 된 큰딸만이 아픈 손가락이요, 금지옥엽이었다. 애당초 딸 사랑이 지극하여 아들은 눈에 담지도 않으셨다. 그저 누이가 나서지 못하는 벼슬길, 그것만이 서하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사랑채 작은 방에서 학업에 정진하며 과거를 준비하는 것이 서하의 일과였다. 누이는 간혹 서하를 꼬여내 간식을 쥐어주기도 하고 장난을 걸기도 했다.
누이를 원망한 적은 없었다. 그러다 누이가 혼례를 치르게 되었다. 혼례복과 비단금침을 준비하며 화기애애했던 집에 서하의 자리는 없었다. 서하가 소과에 장원으로 합격한 날이었다. 그래서일까. 늘 그래왔음에도, 어쩐지 속이 상해 그날 처음으로 술을 입에 댔다. 자꾸만 오르는 취기에 몸이 뜨거워 옷도 벗고 상투도 풀어헤치고 지나는 이에게 시비를 걸다 김산에게 걸렸다. 다시 돌아봐도 창피한 과거였다.
- 걷어라. 네 잘못을 다 실토할 때까지, 회초리질을 할 것이야.
술에서 깨 아침에 일어났을 땐 김산의 집이었다. 때는 김산이 혼인하기 전으로, 본가에 머물던 시절이었다. 바로 옆이 제 집인데 어찌 이곳에 데려왔나 했더니 매질을 할 거란 말이 떨어져 몹시 당황했었다. 김산에게 잘못을 전부 실토하고서야 매질이 끝났고, 겨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종아리를 맞으면서 서하는 제 의복이 두터움에 감사를 느껴야 했다. 맞은 종아리와 함께 성기가 욱신거렸기 때문이다. 생애 처음으로 회초리를 맞았다. 어려서부터 눈치를 살피는 게 습관이 되어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고, 간혹 실수를 해도 양친은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하는 본가 사랑채의 제 작은 방으로 들어서 발기한 성기를 어쩌지 못해 이불 속에서 끙끙 앓다가, 매 맞은 곳을 꾹꾹 눌러가며 사출했다.
그 후론 밤마다 김산에게 매를 맞는 꿈을 꿨다. 제가 사내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도 그즈음이었다. 그게 어언 몇 년이던가. 언제 이리 세월이 흘렀지. 그 사이 김산은 혼인을 했고 누이는 과부가 되었다. 서하의 혼사는 애초 양친의 관심사가 아니었으므로 차일피일 미뤄지다 외려 누이의 일이 불거져 모두 혼사를 꺼리는 대상이 되었다. 어쩌면 다행인 일일지도 몰랐다. 각시에게 매질을 해 달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게다가 서하는 남색이었다.
“허면 양물을 빨게 해 달라 했던 것은,”
“그건!”
들끓는 욕정을 해소할 곳이 없던 차에 처음으로 음서를 보았다. 할 줄 아는 게 글줄 읽는 것뿐이니 세책집을 드나들다 풍기문란한 소설을 발견했다. 그걸 도구삼아 매일 밤 읽으며 상상하고 손장난을 쳤던 것이다. 서책을 파는 곳에선 항시 음서를 파니 접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거기서 그쳤어야 했다. 서하는 끔찍에 가까운 제 술버릇에 몸서리를 쳤다. 그래, 그날도 김산이 이혼서를 받았다고 해서…….
“대답을 하지 않았으니 한 장 더 벗겨야겠다. 아니 두 장이지.”
“자, 잠깐…!”
화용군이 서하의 입을 틀어막고 속바지와 속고의를 한 번에 벗겨냈다. 단번에 맨 엉덩이가 드러났다. 숨이 턱 막혔다. 어린애도 아닌 다 큰 사내가, 그것도 저보다 어린 사내의 손에 옷이 벗겨지다니. 저고리보다 짧은 속적삼이 초라하게 서하의 몸을 가려주고 있었다. 드러난 아랫배와 성기, 엉덩이가 수치스러웠다. 가장 수치스러운 것은,
“말은 그리 하면서 양물을 세우고 있으니 모순이야.”
“흣…!”
허리를 조이던 팔이 조금 풀리는가 싶더니 양물을 쥐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흥분했다. 그것만은 사실이었다. 서하가 발끝을 오므리며 수치심에 눈물을 떨어뜨렸다. 아직 바깥이 소란스러운데, 분명 여기는 은밀한 공간이 아니었다. 엉덩이를 받쳐 안은 손이 상처 부위를 아프게 문질렀다. 서하가 한 손으로 입을 막고 자꾸만 터지는 신음을 참아냈다. 다른 한 손은 미약하나마 화용군이 제 양물을 쥐고 있는 손을 잡고 버티는 중이었다.
“하으윽, 물으시는 것, 전부… 답해 드리겠습니다. 음서를 보고 따라한 것입니다. 홀로, 홀로 그리했습니다. 이러지 마십시오…!”
“어쩌지. 그대가 내게 다른 것을 가르쳤어. 나도 내게 이런 취미가 있는 줄은 몰랐는데.”
“아!”
말을 마친 화용군이 서하의 목덜미를 깨물었다. 음서를 보면서도 목덜미를 희롱하는 행위에는 그저 ‘목이 그저 목이지.’했었다. 그러나 그 생각이 우습게도 거기서부터 무언가 퍼지기라도 하듯 오금이 저려왔다. 서하의 손에 힘이 빠지자마자 화용군이 서하의 성기를 더듬었다. 쿵, 하는 하차감과 함께 꾹 다물린 밀부에 화용군의 기다란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윽…….”
행여나 바깥에 들릴까, 서하가 입 밖으로 새어나오는 신음을 애써 내리누르며 아랫배에 힘을 줬다. 미칠 것만 같았다. 구멍을 쑤시는 손가락이 지난밤의 기억을 자꾸만 떠올리게 했다. 빌고 싶었다. 홀로 들쑤시던 아래였다. 어찌 다른 사내가 이곳을 헤집는가.
“나리, 도착했습니다.”
“다들 물러가라. 주변에 개미 한 마리도 남기지 말고, 하인들도 전부 행랑으로 보내도록 해.”
“예, 명 받잡겠습니다.”
주변을 물리는 소리가 나고 다음은 풀벌레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고요였다. 질척하게 젖은 성기를 쥐고 있던 손이 떨어져 나갔다. 이리 되니 외려 그 손이 고파졌다. 아무도 없는데. 쾌감에 머리가 어떻게 된 것만 같았다. 서하가 애걸하는 눈으로 화용군을 바라봤다. 마주친 눈이 음습하고 까맣다.
“하아, 하…….”
“작야昨夜처럼 먼저 엉덩이를 벌려 봐. 음탕한 구멍에 넣어 달라 말해. 내게 거짓말 하지 말고.”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백주대낮이었다. 취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대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해줄 테니, 말만 해.”
엉망이 될 때까지 볼기를 때려줄 사내가 나타났다. 홀로 쑤시던 뒤에 양물을 넣어줄, 저를 구속하고 괴롭혀줄 사내. 이성보다 수십, 수백 배는 몸집이 큰 새까만 음심이 아가리를 벌리고 서하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열반을 위해 수행하는 승려를 유혹하는 마라도, 오랫동안 홀로 쾌락을 삭이던 서하를 유혹하는 화용군에 비하지 못할 것이다.
“제게… 어찌 이러십니까.”
마지막 남은 실낱같은 이성으로, 서하가 질문을 던졌다. 실상 울음에 가까운 소리였다.
“그대가 가지고 싶어졌거든.”
왜?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이었다. 사정하지 못한 아래가 뻐근했다. 손가락이 물려있는 뒤는 다른 것을 더 물고 싶어 제멋대로 벌름거리고 있었다.
“아프고 싶잖아. 엉덩이를 얻어맞고, 양물에 꿰뚫리고 싶잖아.”
“….”
“그대 보았다던 음서대로 내게 가르쳐 봐. 무엇을 봤는지는 모르지만, 그대가 강할 춘추보다 훨씬 더 마음에 들 것 같으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주상의 지엄한 명보다 더 강력했다. 서하가 입술을 달싹였다. 제대로 들리지도 않을 목소리였음에도 화용군의 낯에 미소가 어렸다. 승자의 미소였다.
***
날이 스산했다. 종학청 앞에 선 김산이 주변을 맴돌며 서하를 기다렸다. 하지만 퇴청하는 관리들 사이로 서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찌 이리 늦장을 부리는 게야. 그때 답답해진 김산의 눈앞에 작달막한 사내가 보였다. 그는 임 전훈이었다.
“사회는 오늘 등청하지 않았습니까?”
“아, 김 문학. 사회는 일찍 퇴청했소.”
김산이 인사보다 먼저 서하의 행방을 물었다. 따지자면 무례한 태도였으나 임 전훈은 개의치 않는 듯했다. 게다가 서하가 떠난 지 오래라는 예상치 못한 답까지 들려주었다.
“세자 저하의 스승이라니, 그대를 부러워하지 않는 이가 없을게요.”
서하를 홀대하던 임 전훈이 김산에겐 대놓고 치근덕거리고 있었다. 대충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지라, 김산이 표면적으로나마 웃어보였다.
“다음에 약주 한잔 하시지요.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사회를 잘 부탁드립니다. 아끼는 아우라서요.”
“아무렴. 내 우리 이 사회를 위해 대비전의 금자둥이인 화용군을 붙여주지 않았겠어.”
“화용군을요?”
김산이 의아함을 숨기지 못하고 되물었다. 임 전훈은 묻지도 않은 말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왜, 이번에 대비께서 화용군을 종학에 밀어 넣지 않았나. 종친이나 다름없는 양반인데 이 사회에게 좋은 기회가 되겠지.”
비아냥거리는 게 분명한 어투였다. 김산이 그런 임 전훈의 말에 별다른 대답 없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곤 종학청을 나섰다. 서하를 빨리 만나봐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서둘러 온 것이 무색하게 서하의 집은 텅 비어있었다. 애써 걸음한 것이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
‘퇴청했다면서 대체 어딜 간 게야.’
하인 하나 없는 초가집이 쓸쓸해보였다. 양친께 도움을 청하지 않은 대가였다. 그나마 제가 을덕을 보내 아침저녁으로 살피게 하니 사람 꼴을 하는 게지. 김산이 혀를 차며 서하의 방 안으로 들었다. 을덕의 손길로 대충이나마 정리된 모습이었다. 그것도 깊숙한 곳은 건들지도 못하게 하니 서안 아래 같은 곳은 엉망이지 싶었다. 언제 오려나. 그 샌님이 가봤자 세책집에나 가 있겠지. 서하가 즐겨 태우는 연초와 곰방대가 보였다. 끊으래도…….
“말을 들으면 이서하가 아니지.”
김산이 애정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때, 바깥에 인기척이 있었다.
“이제 온 게냐?”
“아이고, 주인어른. 언제 오셨습니까?”
기대했던 목소리가 아니라, 을덕의 것이었다. 김산이 조금 아쉬운 표정으로 을덕에게 알은체를 했다.
“퇴궐하여 바로 이리로 왔다. 서하는.”
“도련님 아직 안 오셨는데요? 것보다…….”
을덕이 답지 않게 몹시 머뭇거리며 울 것 같은 얼굴로 토로했다. 김산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에 적합한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