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구속지강(拘俗之江)
* * *
一. 불기일회不期而會
뜻하지 않은 때에 우연히 만남.
푸른빛이 도는 찻잔 안에 말린 연꽃을 우려낸 차가 가득 담겼다. 일렁이는 작은 수면에 메마른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젖은 입술에 꽃이라도 핀 것만 같았다. 차를 마시는 사내의 얼굴은 곤륜산의 주인 서왕모의 총자라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옥을 깎아 만들었다 해도 이보다 귀한 낯은 아니리라. 기세 좋은 눈썹 아래 새까만 물웅덩이 같은 눈동자가 그를 꼭 닮은 노인을 비추었다.
“완혜가 생전에 즐기던 차란다. 어떠하냐.”
“향이 좋습니다. 주십시오.”
울림이 좋은 목소리가 탐욕을 비추었다. 완혜는 지금은 훙서하고 없는 금상의 누이였으며 대비의 적장녀였던 공주의 이름이었다. 자경전의 주인이자 이 나라 만인지상의 모후인 대비께 이토록 뻔뻔히 요구를 할 수 있는 자는 단 한 사람뿐이었다. 모후를 어려워하는 금상조차 흉내 내지 못할 태도였다.
“탐욕스러워 좋구나. 조 상궁. 전부 내어 주거라.”
“예, 마마.”
비취로 만든 가락지에 햇빛이 닿았다. 그 역시 잠자코 보던 사내가 그림 같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가락지가 무척 곱습니다.”
“이것도 주마.”
말을 할 때마다 움직이는 단순호치丹唇皓齒가 사람을 홀리는 듯 했다. 물론 대비전이 그를 총애하는 이유는 사내의 미모로 인한 것만은 아니었다. 가락지를 벗겨 상궁에게 건넨 대비가 사내를 기꺼운 낯으로 바라보았다.
“소손이 자주 찾아뵙지 못해 송구할 따름입니다.”
“안 그래도 내 그것을 이르려던 참이다.”
연로한 낯에는 염려가 깃들어 있었다. 사내는 완혜공주의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망나니 같았던 부마도위는 공주가 훙서하자 기다렸다는 듯 유람을 떠났고, 홀로 남은 어린 아이는 강씨 집안에서도 골칫덩이로 전락해 무관심 속에 성장해야만 했다. 아들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대비가 안팎으로 힘을 쓰는 동안, 손자는 제 편 하나 없는 곳에서 장성하였다. 해서 대비는 딸의 분신과도 같은 손자를 금지옥엽처럼 여겼다. 그러니 이리 무례해도 귀하게만 보는 것이리라.
“금상과 이 늙은이가 너를 어여삐 여겨 안팎으로 시기하는 이들이 많은 것을 내 알고 있다.”
“개의치 마소서. 소손은 괜찮습니다.”
“너는 강씨 문중의 사람이 아니다. 왕실의 자손이지.”
대비의 목소리는 일흔 노인답지 않게 힘 있고 꼿꼿했다. 법도대로라면 공주 슬하의 후손은 봉작은커녕 왕실의 자손으로도 인정받지 못했으나, 일찍 누이를 잃은 금상의 마음은 법도가 닿지 못할 곳에 있었다.
금상은 즉위 후 왕권을 안정시킴과 동시에 공주의 아들인 사내에게 ‘군’의 봉작을 내렸다. 더군다나 완혜공주가 살던 영운궁을 하사하고 강씨 문중의 손에서 빼냈다. 한편으론 세자 시절 내내 냉엄했던 모후의 마음을 얻기 위한 일이기도 했다.
“화용군.”
화용월태花容月態라. 꽃 같은 낯에 달과 같은 자태라 하여 그와 같은 봉작을 내렸다. 군호를 보고 그를 비웃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 낯을 마주하면 다들 입을 다물곤 했다. 그만큼 그와 어울리는 군호였다. 화용군 강제혁은 이 나라 만인지상과 그 모후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누구도 그를 건드릴 수 없었으며, 왕손보다 더 고귀한 대접을 받는 사내.
“네 종학宗學에서 수양토록 하여라.”
그런 제혁에게 뜻밖의 기회 아닌 기회가 주어졌다. 종학이라 함은 왕실 종친이 학문을 수양하는 기관이었다. 공주의 자손은 법도 상으로 왕족이 아니기 때문에 종학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봉작을 내리는 것이야 훙서한 공주에 대한 위로라 칠 수 있더라도, 종학은 달랐다. 그러니 대비가 방금 내뱉은 말은 조정에 파란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
“서하야!”
우레처럼 커다란 음성에 이름을 불린 사내가 깜짝 놀라며 서책을 덮었다. 곧 장지문이 벌컥 열리며 덩치가 큰 선비가 안으로 들이닥쳤다. 만면에 미소를 띠운 선비가 진갈색 눈동자를 빛내며 방석도 깔지 않고 서안 앞에 자리를 잡았다.
“스물다섯의 나이에 종학의 박사라니, 네 다 컸구나.”
“선비의 이름을 그리 막 부르시면 어떡합니까.”
선비가 갓끈을 풀어 옆에 막 벗은 갓을 내려놓는 사이, 흰 낯의 사내는 서책을 서안 밑으로 밀어 넣으며 그를 책망했다. 남들에게 보이기 부끄러운 음서淫書라, 최대한 단정한 낯을 가장해야 했다. 서하라 불린 선비는 희희낙락하는 방문객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다행히 선비는 그가 읽던 서책의 정체를 의심하지 않는 듯 했다.
“네 아무리 장성하여도 내 눈엔 그저 어리광쟁이 서하란다.”
“형님, 농이 지나치십니다.”
불퉁한 음성이었으나 선비의 눈엔 그마저 어여뻤다. 시원스레 웃음 짓는 선비의 낯은 호남자의 것으로 걸맞았다. 말을 받아치는 사내는 예조판서를 지낸 이정안의 차남이자 종학에 사회司誨로 제수된 이서하였다.
“왕실 종친이 많지는 않으나, 웃전을 가르쳐야 하니 고될 것이야.”
“알고 있습니다.”
서하를 걱정하는 선비는 세자시강원에서 문학으로 임하고 있는 김산이었다. 둘은 어린 시절부터 옆집에 살며 왕래하던 사이로, 벗과 같은 사이였다. 어린 이 도령의 모습을 기억하는 김산은 제 앞에서 꼿꼿이 등을 세우고 상투를 매만지는 선비가 그저 귀엽고 기특할 따름이었다.
“어찌 기별도 없이 오셨습니까?”
“우리 사이에 무얼. 축하주를 마시러 왔지. 일전에 부친께서 담그신 자두주를 가져왔어.”
“과하게 마시면 어찌 되는 줄 아시면서요.”
“내가 있잖아.”
고운 눈썹이 대번에 구겨졌지만 김산은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서하는 제 앞에서 보기 좋게 웃는 김산의 모습에 복잡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서하가 몇 해째 홀로 흠모하는 사내였으니 이리 긴장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십여 년 전, 뜰에서 마주친 어린 김 도령은 저보다 크고 장대했으며 강한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시간이 흘러도 한결 같았다.
“할 말도 있어서 왔어.”
“무엇이요?”
술잔을 채운 김산이 웃는 낯 그대로 엄청난 말을 쏟아냈다.
“부인께서 이혼서를 주셨단다.”
웃는 낯 이면에 서린 고통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
웬 선비들이 거문고 타는 소리 속에 술잔을 주고받으며 주색을 탐미하고 있었다. 한양에서 가장 큰 기방이라, 이곳에 드나드는 객들은 전부 아비가 조정에 적을 두고 있거나 본인이 성균관의 유생이거나 하였다. 금야今夜 가장 큰 술판을 벌인 이들은 다름 아닌 병조판서의 아들과 그 벗들이었다. 기방의 기생이며 남창들을 죄 불러 모아 요란히도 입을 놀리는 와중이었다.
“그자가 남창이 아니면 뭐랍니까? 그 낯짝으로 대비전을 홀린 게지요, 무얼.”
“어허, 이 사람. 조손 지간이 아니던가. 무엄한 말씀이야.”
“그게 아니고서 종학이라니요! 화용군이니 뭐니, 봉작에 영운궁에, 이 나라 법도가 그놈으로 하여금 죄 무너지고 있소이다!”
술에 거나하게 취한 한 사내가 이름 모를 누군가를 지칭하며 성을 내고 있었다. 상석에 앉은 이는 제법 점잖은 척 그를 말리곤 있었지만, 낯짝에 어린 미소로 그 행태를 불쾌해 하지 않음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 무언의 허락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사내가 갓끈을 풀어 젖히며 취기가 만연한 목소리로 목소리를 틔웠다.
“내 멀리서 한 번 보았는데도 아래가 묵직해지더이다! 사내도 거부하지 못할 훤훤장부인데 독수공방 늙은 노인네야…….”
불이 붙은 사내가 곁에서 술잔을 채우는 남창의 엉덩이를 우악스레 움켜쥐며 이죽거렸다.
“네 한번 대답해 보거라. 네 놈도 잘난 사내에게 안기고 싶겠지? 전두를 두둑이 주지 않아도 다리를 벌릴 게 아니냔 말이야.”
“흣, 나리…….”
“이놈 교태부리는 것 좀 보게. 내 오늘 예서 일을 치를까?”
사내가 머리를 곱게 땋은 남창을 엎어뜨리자 선비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왁자지껄한 와중에 장지문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거칠게 열렸다. 웃고 떠들던 선비들의 시선이 갑작스런 불청객에게 단번에 꽂혀 들었다.
“…목소리가 꽤나 크군.”
낮게 울리는 목소리가 거문고 소리보다 운치 있었다. 칠척에 가까운 장신의 사내가 휘황찬란한 면부를 그대로 드러내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 낯에 시선이 꽂힌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뒤늦게 남창의 저고리 속에서 빠져나온 남자가 헝클어진 상투를 채 정리하지 못하고 사내를 보았다.
“화, 화용군…….”
“아, 나를 아는 모양이야.”
눈꼬리를 접어 웃는 모습은 꽃 같았으나 낮은 목소리 탓에 어쩐지 등골이 서늘하였다.
“어, 어찌 이곳에…….”
“기루에 술을 한잔하러 왔다가, 옆방에서 내 얘기를 하는 듯하여 잠시 들렀네. 재미들 보았는가.”
“…….”
즐거이 타고 놀던 악기 소리는 멎은 지 오래였고, 상석에 앉아있던 선비도 그의 눈을 애써 피했다. 방 안에 마치 서리가 내린 것 같았다.
화용군은 그런 선비들을 하나 둘 눈에 담으며 천천히 상석으로 향했다. 선비는 쉽사리 일어나지 않았으나, 제 무릎 옆에 닿는 버선발에 결국 무거운 엉덩이를 떼어내야만 했다. 아무렇지 않게 상석을 꿰어 찬 화용군이 빈 잔을 집어 들자, 방금 전까지 취기 어린 사내에게 희롱 당하던 남창 아이가 술잔을 채워주었다.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 속에 술 한 모금으로 입술을 축인 화용군이 얼어붙은 사내들을 휘 둘러보았다.
“어찌 말들이 없는가. 내 이 방 웃음소리에 흥이 겨워 예까지 행차하였는데.”
“화용군, 심기 미편하셨다면 송구합니다.”
방금 전까지 상석을 차지하고 있던 병조판서의 아들이 화용군에게 말을 높이며 사죄의 말을 올렸다. 그 태도에 다른 사내들도 고개를 숙이며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어찌 내가 미편하지? 내가 아니라 대비전께서 미편할 언사가 아니었는가. 어디 심기 미편하실 뿐인가. 불충하기 그지없지.”
끝까지 공대를 하지 않는 화용군은 언뜻 무례해 보였으나, 자연스러운 말씨 탓에 범상해 보였다. 게다가 아까까지 그가 모든 이야기를 듣지는 않았을 것이라 일말의 기대를 품었던 게 무상해지는 첨언이었다.
“이 친구가 술버릇이 좋지 못해 망언을 하였습니다. 자리를 베푼 저를 책망하십시오.”
“그대가 책임을 질 텐가?”
술자리의 농이었다. 안 보는 데선 임금의 욕도 한다는데, 억울할 법도 하였다. 허나 하필 주상과 대비의 총애를 받는 화용군을, 그가 듣는 곳에서 대비전과 함께 욕보였으니 책임을 지라면 목숨을 내놓아야 마땅했다. 말을 꺼낸 선비가 딱딱하게 굳은 낯으로 화용군을 보았다.
“외숙부께서 방금 그 말씀을 들으셨다면,”
용상의 주인을 외숙부라 부를 수 있는 사내는 조선 땅에 그가 유일하였다.
“구족이 멸해졌을 테야. 선산까지 파헤쳐 부관참시를 해도 할 말이 없질 않나. 국모를 욕보였는데. 그 세 치 혀만 자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지.”
떨어지는 말은 무겁고도 싸늘했다. 망발을 일삼았던 사내가 딸꾹질을 하며 눈물을 추접스레 흘리기 시작했다. 바짓가랑이가 소변으로 젖어드는 추한 소리가 울렸다.
“병판의 아드님께서 책임을 진다고 하였으니, 조만간 내 자네의 집에 들르지.”
“…….”
“친우들의 입을 잘 단속하게.”
어깨를 툭툭 두드리는 큰 손이 주는 위압감이 야차 같았다. 고개를 푹 숙인 선비가 작게 대답하자 화용군이 만족스레 웃으며 방을 떠났다. 강씨 문중에서 홀로 자라며 그들의 두려움을 먹고 자란 어둑시니. 화용군의 또 다른 별명이었다.
***
멀리서 들리는 가야금 소리에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섞여들었다. 홀로 기루의 뒤뜰을 걷던 제혁이 아직까지 불쾌한 냄새가 떠나지 않는 코끝을 손등으로 훔치며 인상을 찌푸렸다.
“지린내가 진동을 하는군.”
무엄한 일이었으나 그것이 현실이었다. 사대부들은 ‘강제혁’을 탐탁찮아했다. 저들이 이룬 광영에, 왕손이라 생각지도 않는 인물이 때를 묻힌다 여긴 탓이니 그럴 법도 하였다. 그런 것이야 제혁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으나 오줌을 지린 사내 탓에 역했다. 오늘은 도저히 술맛이 나지 않는지라, 제혁이 신을 고쳐 신고 발을 뗐다. 그리고 그 순간,
“으…….”
구석에서 취기를 이기지 못하고 신음하는 미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보였다. 술주정을 보는 날인가. 평소 같았다면 그저 지나쳤을 것을, 달빛을 받은 미색 도포가 자꾸만 눈길을 끌었다. 푹 꺾인 사내의 목덜미가 곧 부러질 성싶었다. 성큼 걸어 가까이 다가가자 저도 모르게 그 여린 곳에 손이 갔다. 목덜미 아래 손을 넣어 받쳐주자 사내가 고개를 돌려 멍한 눈으로 제혁을 보았다.
화용월태는 오히려 이런 낯에 어울리는 말 일진데. 제혁이 시선을 뺏긴 그 낯을 찬찬히 살폈다. 반쯤 감긴 눈에는 어쩐지 색스러운 기색이 어려 있었다. 곧은 콧대를 따라 높게 솟은 코끝이 다음으로 보였고, 그다음은 붉은 입술이었다. 미동인가, 아니면 남창인가. 연령대가 오묘하다. 손가락을 부르는 입술이 묘한 가학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흐……. 누구…….”
“누군지 말하면 그대가 알까.”
제혁이 턱 끝을 잡고 눈을 맞추려 하자 사내가 시선을 피했다. 달빛을 받은 낯이 희고 단정했다. 그 움직임으로 인해 회가 동했다.
“예서 몸을 파나?”
“예…?”
질문을 던졌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흐리멍덩했다. 취기가 심하게 오른 탓 같았다. 여기서 사내를 버려두고 떠날 수도 있었지만, 어쩐지 내키지 않았다. 제혁이 사내의 도포 사이로 손을 넣어 일으켜주자, 사내가 그런 제혁의 품에 저항 없이 엉겼다. 제혁은 당장이라도 입술이 닿을 것 같은 훤한 이마에 혀를 가져다 대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방으로 갈까.”
“…으응.”
졸음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아이 같았다. 대답인지 앙탈인지, 분간은 쉽지 않았지만 제혁은 제 욕망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바쁘게 뜰을 지나는 남자아이는 기루의 하인인 듯 했다. 제혁이 아이를 잡아채며 말했다.
“방을 내어 주거라. 내 머물고 갈 것이니.”
“예, 따라 오십시오. 이부자리를 펴드리겠습니다.”
빠릿한 몸짓과 또박또박 말하는 솜씨가 체구에 비해 연차수가 된 일꾼인 듯 보였다. 그런 아이에게 제혁이 덧붙여 말했다.
“…주안상도 준비해라. 값은 두둑이 쳐주마.”
“예, 명심하겠습니다.”
척 보기에도 높은 분의 언사라, 시동이 눈치를 살피며 답했다. 쓰러진 이는 기방에서 본 일이 없는 낯인데, 손님인 듯하였다. 하지만 아랫것 된 도리로 함부로 말을 얹을 수 없어 그저 두 객을 인도할 뿐이었다.
***
술에 거나하게 취한 사내에게선 꽤 구미를 당기는 향이 났다. 서늘한 밤바람을 그대로 머금은 도포 자락과 은은한 살냄새. 선비의 옷을 입고 있으니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는 이 기루의 객일 게 분명했다.
“으응…….”
글줄 읽는 선비일 게 뻔한 희멀건 낯.
“헌데…….”
어찌 이리 색향이 돌까. 몸 파는 남창과 붓을 든 선비란 한데 어우러질 수 없는 것인데도 사내에게선 색기와 문기가 동시에 묻어나고 있었다. 울리고 싶다. 주안상을 앞에 두고 침상에 앉아 한가로운 고민을 하며, 제혁이 사내의 옷고름을 풀어주었다.
“열이 나니 식혀야지.”
“하…….”
나름의 변명도 덧붙였다. 뜨끈하게 달아오른 사내의 뺨이 제혁의 손바닥에 닿았다. 찬 기운에 기분이 좋은 모양인지 찌푸려진 두 눈썹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
자세가 반전됐다. 취객의 강한 악력에, 강제혁이 난생처음으로 누군가의 아래에 깔렸다. 그 유명한 화용군의 탄탄한 가슴팍 위를 짚고 선 사내가 둔부로 아래 깔린 이의 고간을 짓누르며 속삭였다.
“엉덩이를… 때려 주시오…….”
툭, 묵직한 돈주머니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내는 기생에게 하룻밤의 값을 치르듯 전두를 내밀며 제혁에게 매질을 청하고 있었다. 이색적인 것으로 모자라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
무엄하다 호령을 해도 모자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어울려주고 싶었다. 사내의 낯짝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열기가 과히 쌓인 탓일까. 제혁은 사내의 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행여나 사내가 뱉은 말을 무를까, 그 청대로 어린 아이를 훈계하듯 사내를 엎어두고 바지를 까 내렸다. 하얗게 드러난 살덩이가 달덩이 같았다.
“취향이 대단해.”
“흣…….”
“예를 때려 달라 이 말이지.”
손가락 끝으로 곡선이 진 살갗을 덧그리자 사내가 취기에 파들파들 떨리는 다리를 세우고 엉덩이를 높이 쳐들었다. 기대라도 한 것처럼. 언제고 이런 취향이 있다는 얘기만 들었지,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인지라 회가 동했다.
“몇 대를 때려줄까.”
“…….”
농락하는 것 같은 말에 수치심을 느끼기라도 한 건지 사내는 목덜미까지 붉혀가며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살아생전 느껴본 적 없는 흥분감에 제혁이 사내의 엉덩이를 어루만졌다. 질문을 던진 것은 자신인데 어째선지 답을 알 것 같았다. 맞고 싶어 안달이 난 이 요망한 볼기짝을 엉망진창이 될 때까지 때려주고 싶었다. 턱 끝까지 차오르는 색욕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흣…!”
무예를 단련하던 손으로 사내의 흰 엉덩이를 내리치자 청아한 파열음과 함께 사내의 몸이 떨렸다. 고통이 아니라, 쾌락으로 인한 떨림이었다. 맞은 것은 사내인데 어째선지 제 몸에 전율이 인다. 손바닥이 떨어지기 무섭게 분홍빛으로 물든 살결이 제혁의 음심에 불을 지폈다. 이어지는 매질과 함께 찰싹거리는 소음이 방안을 가득 울렸다. 교접할 때 나는 소리를 닮았다. 사내는 별다른 전희 없이 그저 볼기만 맞았음에도 착실히 성기를 부풀리며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 으……. 아…!”
“매를 맞고자 기루에 온 것이냐. 천것으로 났다면 이골이 나도록 맞았을 터, 어느 댁 자제가 이리 음란할꼬.”
비꼬는 말에도 반응하는 것으로 보아 지독한 별종인 듯 했다. 제혁의 입꼬리가 희열에 움찔거렸다. 사내의 볼기를 때리면 때릴수록 저 역시 기묘한 쾌감에 아래가 뻐근해졌다. 생전 처음 느끼는 열락의 전조에 손이 멈추질 않았다. 뺨과 귀를 붉힌 사내가 달뜬 표정으로 신음하는 게 눈을 즐겁게 했다. 서안의 서랍 안에는 향유가 담긴 작은 병이 마련되어 있었다. 통통하니 부어오른 엉덩이 사이로 향유를 떨어뜨리고 촛불 아래 분홍빛으로 뻐끔거리는 입구를 적셨다.
“불빛이 어두워 잘 보이질 않아.”
뒤를 만지작거리는 데도 사내는 저항 한 점 없이 그저 제 앞의 도포 자락을 꾹 쥐고 앓는 소리를 냈다. 심지어는 제 말에 반응해 손을 뻗더니 엉덩이를 잡곤 벌려 보이기까지 했다. 그 음란무쌍한 태도에 강제혁이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사내 맛을 보았느냐.”
“흣, 으응…….”
“묻는 말에 어찌 답이 없어?”
“아! 흐윽…….”
제혁이 손을 치우고 볼기짝을 때려주어도 사내는 야릇한 신음만 줄줄 흘릴 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제혁이 그런 사내의 구멍에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거리낌 없이 손가락을 물어 삼키는 구멍이 요사스러웠다.
“계간에 도가 텄나보군.”
맞아서 붉어진 엉덩이가 손가락을 문 채 얕게 떨리고 있었다. 제혁이 사내의 뒤를 헤집는 사이, 사내가 별안간 제혁의 가랑이 사이에 고개를 묻고 어느새 발기한 양물에 뺨을 문댔다. 의도가 분명한 몸짓이었다. 취기 어린 눈이 야스러웠다.
“네 입으로 말해 보거라. 이 입으로 엉덩이를 때려 달라 하지 않았어? 원하는 걸 말해 보란 말이다.”
제혁이 웃음기어린 목소리로 사내에게 명했다. 반쯤 풀린 눈으로 허리를 뒤틀던 사내가 드디어 도톰한 입술을 열었다.
“양물을… 빨고, 싶습니다……. 물려, 주십시오.”
형체 없는 소리일 뿐임에도 색이 가득 묻어나온다. 제혁이 다소 거친 몸짓으로 부푼 남근을 꺼내 사내의 입 앞에 놓아주었다. 흉악할 만치 굵고 커다란 성기가 사내의 입술께에 놓였다. 사내가 잠시 망설이더니 그것을 입에 넣고 혀로 핥기 시작했다. 예민한 살갗에 닿는 혀의 감촉이 색스럽기 그지없었다.
“후, 더 깊이 물어야지.”
“읏, 으응…….”
한숨을 닮은 신음과 함께 사내가 젖은 눈으로 성기를 연신 물고 빨았다. 오돌토돌한 사내의 입천장에 문대지는 귀두 끝과 함께 전신의 피가 아래에 몰리는 듯한 선명한 느낌이 일었다. 제혁은 사내가 성기를 빨다 실수로 이를 세우거나, 핥기를 멈출 때마다 사내의 엉덩이 사이를 들쑤시거나 손가락을 뽑아 볼기를 후려치길 반복했다. 맞을 때마다 기쁨에 젖은 신음을 터트리는 사내가 요망했다. 더 이상 참기 힘들어진 제혁이 사내의 양손을 결박하고 뒤에서부터 성기를 쑤셔 넣었다.
“허으윽…….”
“몸에 힘을 빼야지.”
스스로 엉덩이를 때려 달라, 양물을 빨게 해 달라 청한 것치곤 어색한 몸짓이었다. 제혁이 사내의 하얀 둔덕 사이를 헤집고 발기한 남근을 반 정도 힘을 줘 삽입했을 때, 사내가 몸을 떨며 조용히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그 눈물이 제 정욕을 더욱 달구는 지라, 제혁은 기기묘묘한 쾌감에 사로잡혀야 했다. 사내의 단단한 목 줄기에 이를 박아 넣으며 마저 제 것을 박아 넣었다. 심하게 조이고 드는 내벽이 제혁의 이성을 불살랐다.
“더, 흣, 더 물어, 물어 주…….”
“어이가 없네.”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사내의 몸에 상처를 내며 흥분하는 스스로가 우스웠다. 저 역시 별종인 듯 했다. 이런 즐거움이 있었나. 제혁이 성기를 모조리 밀어 넣자 사내가 벗어나려는 듯 발버둥을 쳐댔다. 따뜻한 안이 마치 늪 같았다. 빼내기가 싫었다.
“흑, 아, 아아……. 제발, 아, 너무……. 아!”
사내가 몸서리를 치는 게 어찌나 보기 좋은지. 제혁이 그런 사내의 머리채를 상투가 망가지도록 휘어잡으며 성기를 빼냈다 그대로 푹 쑤셔 넣었다. 사내의 내밀어진 가슴 앞쪽에 돌기 두 개가 음란한 모양으로 빼죽 솟아있었다. 제혁이 성기를 마구잡이로 쑤셔 넣으며 사내의 유륜을 굴리고 유두를 꼬집어 주었다. 기다렸다는 듯 벌겋게 달아오른 엉덩이를 조금씩 들썩이는 사내가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어디서 이리 예쁜 것이 굴러들어 왔을까. 급히 돌아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제혁이 만족감을 숨기지 못하며 사내의 다리를 잡아 벌렸다. 바짝 선 성기에선 투명한 액체가 질질 흐르고 있었다. 촛불의 은은한 밝기 속에서도 반짝거리는 체액이 회음까지 적시고 들었다. 향유로 젖은 내벽을 제 성기로 몇 번이고 찢어발길 듯 헤집어주었다. 사내의 울음소리와 신음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아, 아, 흐윽, 아, 좋아, 너무…….”
사내가 제 젖꼭지를 괴롭히는 제혁의 못된 손을 끌어 제 목덜미에 가져다 놓았다. 제혁이 홀린 듯 사내의 목을 조르며 추삽질을 더욱 급히 했다. 숨이 모자라 핏줄을 가득 세운 사내가 일순 엉덩이를 바짝 조이며 씨물을 쏟아냈다. 쥐어짜는 듯한 조임에 제혁이 사내의 안에 마찬가지로 씨물을 싸질렀다.
사내를 놓아주고 싶지 않아졌다. 거칠게 호흡을 터트리며 기절하듯 잠든 사내를 보며 제혁이 사내의 목덜미와 가슴께에 순흔과 치흔을 남겼다. 흰 살갗이 붉게 물들고 나서야 그를 놓아줄 수 있었다.
***
“미친놈…….”
서하가 눈을 떴을 땐 기루의 방 안이었다. 새벽닭이 울기도 전에, 제 옆에 누운 사내의 얼굴을 확인할 마음의 여유도 없이 그대로 의관을 대충 꾸리고 도망질을 쳤다. 사내라니. 어찌 그랬을까. 서하가 스스로 제 뺨을 내리쳤다. 이런 와중에도 찌르르 울리는 육신의 통증이 야릇하게 다가오는 걸 보면, 자결이 빠르지 싶었다.
울컥 뒤에서 흐르는 액체의 미지근한 온도에 서하가 몸서리를 쳤다.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장면들에 수치심이 일었다. 단 한 번도 들킨 적 없던 추하고 더러운 욕망을 남에게 내보이고 말았다. 통증에 쾌감을 느끼고 강압적인 분위기와 언어에 욕정을 느끼는 스스로를.
김산이 이혼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에, 그가 돌아가고 나서 홀로 술을 먹고자 집을 나선 게 문제였다. 마시고 마시다 기루까지 갔던가.
죽자. 어찌 죽어야 아프지 않게 죽을까. 서하가 남들과는 다른 이유로 그와 같은 고민을 했다. 통증이 있는 자결이라면 쾌감을 줄 것 같다는 미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돌 것 같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
“아이고, 도련님…!”
김산의 몸종인 을덕이 찬합 따위를 든 채로 비명을 질렀다. 서하가 그 외마디 비명에 상투를 더듬다 갓이 없음을 알아챘다. 어디다 두고 온 거야.
“으, 을덕아. 내 어제 약주가 과해 갓을 잃어버린 모양이야. 이건,”
“도련님, 모, 목이……. 무슨 변고라도 당하신 겝니까?”
그 말에 서하가 영문을 알 수 없어 연신 두 눈을 깜빡여보였다.
“예서 이러구 계시지 말고요. 얼른 안으로 들어가서 면경이라도 보십시오!”
냅다 싸리문 안으로 들이미는 손길에 서하가 맥을 못 추고 을덕의 뜻대로 집안으로 들어섰다. 도둑이라도 맞은 양 엉망진창인 방 안에 던져지듯 들어서자 을덕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귀신처럼 면경을 찾아 서하의 눈앞에 들이댔다.
“주인어른이랑 약주하셨다더니 어찌 이런 꼴이십니까? 세상에, 당장 오늘 등청하셔야 하는 양반이 이게 뭔 꼴이래. 아이고. 소인놈이 도련님 몸종 하나 안 들이시고 사실 때부터 알아봤습니다.”
서하를 어렸을 때부터 봐온 을덕이 가슴을 치며 잔소리를 쏟아냈지만 서하에겐 지금 들리지 않는 말들이었다. 목을 졸린 게 분명한 자국이었다. 커다란 손자국이 서하의 목을 덮고 있었다. 옷을 벗어 더한 게 있는 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있어 어려웠다.
“의원한테 보여야 하는 거 아닙니까? 복삿골에 기별을 넣을까요?”
복삿골은 서하의 본가가 있는 곳이었다. 그 말에 서하가 대번에 고개를 저었다.
“되었다. 아프지도 않고. 괜히 말 전할 생각 말고 함구해라. 누님 아시면 사단 난다.”
“그걸 아시는 양반이!”
“어허.”
서하가 잔소리를 시작하는 을덕의 말을 가로막고 관복부터 꺼내보았다. 본가에서 보내준 것이었다. 누이가 서툰 솜씨로 수놓은 흉배엔 백한白鷳이 약간 맛이 간 것 같은 눈으로 서하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의 제 꼴과 같다.
“도와드릴까요?”
“아니, 혼자 할 수 있어. 나가보게.”
두 손을 걷어붙이고 옷 입는 것을 시중 들어주려는 을덕이 고마웠지만 지금은 필요치 않았다. 지금 제게 필요한 건 정확한 상황 판단이다.
“예, 아침상 차려오겠습니다. 안 그래도 주인어른께서도 어제 얼마나 드셨는지 고주망태가 되셔서는……. 아유, 우리 불쌍한 주인어른……. 마님도 생각이 있으시겠지만두…….”
이혼서를 받은 주인을 염려하는 을덕은 진심으로 흐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지극한 충심을 기특히 여길 때가 아니었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어서 환복하십시오. 나가보겠습니다.”
그가 자리를 비우자 겨우 조용해졌다. 서하가 혹시 하는 마음에 문고리를 걸어 잠갔다. 어서 확인을 해봐야 하는데, 막상 홀로 남으니 손이 쉬이 움직이질 않았다. 두려움이 너무 컸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몇 가지 장면과 제가 읊었던 말들이 서하를 자괴감에 빠져들게 했다. 광증에 걸린 게지. 술병 탓인지 아니면 뒤에서 흐르는 그것 탓인지 속이 쓰렸다.
“제발…….”
아득한 기억과 축축한 뒤, 그리고 욱신거리는 엉덩이가 많은 걸 말해주고 있었지만,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일각도 지나지 않아 서하의 몸엔 새로운 상처가 늘었다. 도저히 자괴감을 참지 못한 나머지 벽에 이마를 들이박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