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심리 테스트
여느 날과 같은 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후식을 먹던 서하가 질문을 던졌다.
“오늘 학교에서 선배가 심리 테스트를 해줬는데요. 강제혁 씨도 해볼래요?”
“선배? 김산?”
운을 떼기 무섭게 출처를 묻는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서하가 티라미슈의 크림 부분을 떠먹으며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무슨 심리 테스튼데요.”
읽고 있던 책을 접어둔 강제혁이 다가앉으며 흥미를 보였다. 그 반응에 힘을 얻은 서하가 준비했던 말을 이었다.
“그게 선배도 인터넷에서 봤다 그랬는데 재밌는 것 같아서요. 강제혁 씨는 어떻게 대답할 지 궁금하기도 하고.”
“해 봐요.”
본격적으로 심리 테스트를 진행해야하는 서하가 머릿속으로 기억하는 내용을 되짚어 본 후 차근차근 설명했다.
“강제혁 씨가 전생에 공주였어요. 그런데 옆 나라에 방문했다가 그 나라 왕자한테 반한 거예요.”
“딱 이서하 씨처럼 생겼나보네요. 왕자가.”
“어쨌든, 그래서 청혼을 했는데 그 나라 왕이 조건을 걸어요. 왕자를 일주일 동안 탑 꼭대기에 가둘 테니까, 그 밑에서 기다려보라고요. 일주일을 채우면 혼인시켜준다는 거죠.”
“날밤 까면서 지켜야 됩니까?”
“…아마도요?”
“그래서요.”
“그런데 공주가 6일째 밤에 떠나버렸어요. 이유가 뭘까요? 당장 내일이면 왕자를 가질 수 있는데도요.”
“…이서하 씨는 뭐라고 답했어요?”
“저는…….”
제게 먼저 주어진 질문에 서하가 가만히 기억을 떠올렸다.
- 다른 왕자가 생겨서요?
이것 말고는 적합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른 왕자가 생겨서요.”
답을 아는 지금은 대충 제 심리를 알 것 같기도 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러고 나니 강제혁의 답이 궁금해진 것이다.
“강제혁 씨는 이유가 뭔데요?”
기대심과 호기심을 한껏 머금은 서하가 답을 추궁했다. 가만히 서하를 응시하던 강제혁이 입술을 뗐다. 아, 키스하고 싶다.
“나는 좀 긴데.”
“길어요?”
예상치 못한 답이었다. 이게 길 수가 있나. 멍해진 서하가 강제혁의 긴 답을 기다렸다.
“일단 나는 국빈이죠. 옆 나라에서 온 공주니까. 그런데 국빈인 나를 그렇게 사람들이 지나는 곳에 세워둔 것만으로 이건 내 나라에 대한 모욕이 됩니다. 다들 날 보고 비웃겠죠. 일국의 후계자가 남자 하나 갖자고 그 짓을 하는 거니까. 내가 돌아갔다면 그건 모멸감을 느껴서겠죠. 돌아가자마자 정벌을 준비할 겁니다. 그리고 옆 나라를 정복하고 탑 꼭대기의 왕자를 찾아갈 거예요. 그리고 말하겠죠. 네가 순순히 내 청혼을 받아들였다면 정실부군으로 삼아 예로 대하려 했는데, 이제 넌 전쟁 포로일 뿐이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내 발 아래에서 기어야만 하는. 발부터 핥을 건지 아님 옷부터 벗을 건지… 물어볼까요?”
할 말이 없어지는 대서사시였다.
“…….”
“풀이는.”
뻔뻔하게 풀이를 추궁하는 강제혁을 보면서 서하가 입술을 물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를 상상하자 아래가 씨근거렸다. 어째서인지 그와 저로 치환되어 들리는 지라.
“그게, 연인과 헤어지는 이유인데요……. 풀이가 안 되는 것 같아요. 제가 강제혁 씨 나라를 모욕하면… 차이는 겁니까?”
“아니죠. 이서하 씨는 날 차고 싶어도 못 찬다는 뜻이에요.”
강제혁이 서하를 꽉 끌어안으며 웃었다.
“다른 왕자가 못 뺏어가게 묶어놔야겠네. 아님 내가 그 다른 왕자 아닙니까? 그렇다면 잘 선택했어요.”
가만히 그 품에서 숨을 내쉬고 있자 강제혁이 서하의 앞섶을 세게 누르며 물었다.
“지금 섰죠.”
“…네.”
“그럼 오늘은 정벌 군주와 왕족이었던 노예 롤플레잉을 할까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