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해외답사
낯선 도시의 달리는 버스 안에서, 지친 기색의 서하가 손에 든 생수병을 구기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피곤해서 미칠 것 같다.
“후…….”
담배가 몹시 고팠다. 사실은 담배보단 다른 게 고팠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 선생, 오랜만이라 그런가 많이 힘들어 하네.”
“아, 괜찮습니다.”
한숨 소리가 컸던 건지 아니면 버스 안이 지나치게 조용한 건지, 한 칸 건너 앉아있던 김 박사가 서하를 독려했다. 말로만 끝난 게 아니라 가방에서 생강 과자를 몇 개 꺼내 건네준 통에 서하가 마음에 없는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했다. 이거 진짜 맵고 맛없는데.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 서하가 어쩔 수 없이 작은 조각을 입에 넣고 웃어 보이자, 그제야 만족한 듯 김 박사가 고개를 돌렸다.
‘뱉고 싶어.’
눈치를 보던 서하가 조용히 휴지에 생강 과자를 뱉어냈다. 버스 안은 고된 일정에 지쳐 잠든 이들로 가득했다. 중국으로 답사를 떠나온 지 벌써 열흘이 지났다. 떠나기 전 강제혁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 …중국?
- 방학마다 답사를 가거든요. 이제 복학해야 하니까, 아무래도 가야 할 것 같아서…….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서하가 속한 대학원은 방학이 되면 재학생의 준비 하에 해외로 답사를 떠나곤 했다. 방학이 시작할 즈음에 안내 메일이 도착하곤 했는데, 어느새 겨울 답사를 준비할 때가 된 모양이었다. 일정과 함께 참석 여부를 묻는 메일이 온 걸 보면.
애초에 복학을 결심한 상황에서 답사를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강제혁에게 허락을 받고 싶은 건 서하의 개인적인 욕심이었다.
- 얼마나 가는데요?
- …보름이요.
기간이 긴 게 문제라면 문제일까. 강제혁은 딱 서하의 예상대로 대답했다.
- 가기 전에 많이 괴롭혀줘야겠네.
그 옅은 미소가, 다시금 서하의 뇌리를 잠식했다.
‘보고 싶다.’
그와 이렇게 먼 거리로 오랜 시간 동안 헤어져 본 적이 있던가. 당연히 일정표를 전부 공유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언제 어느 호텔에서 머무는 지까지 모두 알 수 있었다. 오늘만 해도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받았고, 사진까지도 몇 장씩 보내곤 했다. 가지고 온 카메라가 아니라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타자를 쳐 보내는 서하의 모습을 보며 몇몇 사람들은 서하가 연애 중이란 소문을 확신하는 듯 했다.
“여자친구가 이 선생 많이 보고 싶어 하나 봐.”
“네? 아, 하하…….”
중반부부터는 어색한 웃음으로 갈무리를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있다고 생각하든 어쩌든 별로 상관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괜히 소개팅을 하겠느냐, 맞선 볼 때 되지 않았냐는 귀찮은 제안이 들어오지 않을 테니 어쩌면 괜찮은 대처였다.
- 호텔 들어가면, 몇 시든 꼭 전화해요. 매일매일.
- …네.
- 장소 이동할 때도 메시지 보내고, 무슨 일 생기면 빼놓지 말고 꼭 말하고, 밥 먹을 때도 연락하고…….
- 그럴게요.
이른 아침 공항까지 데려다주며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였다.
- 돌아오면 한동안 침대에서 묶여 지낼 생각도 하고.
서하에게 가장 인상 깊고 감동적이었던 대사는 바로 저것이었다. 서하는 답사를 떠나기 약 2주일 전, 일정 중 8일은 호텔방을 현수와 함께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답사 직전에도 일정이 수정되곤 하니 서하로선 놀랄 일이 아니었지만 강제혁은 유쾌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강제혁의 눈에 서하는 꼭꼭 숨겨둬야 할 꿀단지 내지는 진귀한 보석인 듯 했으니 말이다.
겨울이라 긴 옷을 입긴 할 테지만 같이 방을 쓰는 사람이 있는 상황에서 의심스러운 자국을 남겼다간 곤란할 수 있기 때문에, 떠나기 전부터 일주일은 강제로 금욕해야만 했다. 절대 보이지 않을 엉덩이 정도는 맞을 수 있다고 했지만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봐버리는 둘의 성격 탓에, 그 제안 역시 기각 당했다. 고로 서하나 강제혁이나 몹시 쌓여있는 상태란 뜻이었다.
- …그럴게요.
저야 해외로 나왔으니 가능성이 없지만, 오히려 강제혁이 그 사이에 외도를 행할까 불안했다. 그가 그럴 리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대개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그러하듯 서로를 불안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꼬박꼬박 전화와 연락을 주고받는데 집착하게 됐다. 지금도 서하는 그의 연락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선배님,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오늘은 석굴을 답사하는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새벽부터 움직여야 했다. 하루 종일 돌아다닌 탓에 피로가 누적되었다. 저보다 더 피로한 얼굴의 석사생이 서하의 상태를 물으며 홍삼 캔디를 주고 갔다. 분주히 움직이는 후배들을 보며 서하가 제 가방을 챙겨 호텔 로비로 향했다. 지지부진한 하루가 또 끝나간다.
“1307호 이서하 선배님, 임현수 선배님. 키 여기 드릴게요.”
자대 교수님, 타 학교 선생님들과 서하의 위로 온 박사 졸업생들이 호텔 키를 받은 후에 서하와 현수의 차례가 돌아왔다.
“무슨 일 생기시면 702호로 전화해주세요!”
흙빛 낯에 힘겨운 미소를 걸고 공지를 주는 총무 후배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서하도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오늘 진짜 힘들다.”
“…그러게요.”
자줏빛 융단이 깔린 호텔의 엘리베이터에 현수와 함께 하는 이 순간이 지겨웠다. 중간에 와서 중간에 가는 부분일정이라니. 짧기나 하면 몰라 8일이나 있으면서. 서하가 손바닥으로 눈두덩이를 문지르며 휴, 한숨을 쉬었다. 결국 저와 8일간 함께한 현수가 제 열애설의 확성기 역할을 했다. 어쩌면 예상했던 일이었다.
서하는 호텔에 도착하면 현수더러 먼저 씻으라고 웃어 보이곤 호텔 주변을 돌며 전화 통화를 했다. 그리고 어떻게 눈치 챈 건지 4일쯤 지났을까, 현수가 가자미눈을 뜨고 물어왔다.
“무슨 전화 통화를 나가서까지 해?”
“네?”
“온도차 봐. 너 평소 목소리랑 그 전화 받을 때랑 목소리 차이 심하게 나는 거 알긴 하냐?”
두어 번, 문을 열고 나가며 전화를 걸었던 것 같은데 그때 들은 모양이었다. 귀도 좋지, 미친 인간. 결국 5일 째 술자리에서 현수가 ‘나도 연애하고 싶다, 서하처럼!’을 외쳐 공공연히 알려지게 된 것이다. 워낙 허언증이 심한 남자라 다들 반신반의했지만, 서하의 행동이 한몫했다. 결국 제 탓이다.
“나 내일이면 가는데, 우리 오늘 술 한 잔?”
“저 오늘 너무 피곤해서요. 귀국하면 해요.”
“진짜 재미없네.”
그냥 싫어서 그러는 거야. 서하는 속으로 진심을 삼키며 툴툴 거리는 현수를 무시했다. 그리고 방 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현수가 제 짐 가방을 현관 앞에서 던져 넣으며 서하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그럼 나 오늘 석사 애들이랑 술 한 잔 할 테니까, 오늘 너 먼저 씻고 먼저 자라.”
물론 석사생들에겐 불행한 소식이었다. 탁, 닫히는 문과 함께 정적이 찾아왔다. 그럼 오늘은 좀 편하게 통화할 수 있으려나. 서하가 시계를 확인하며 서둘러 옷을 벗었다. 말끔히 씻고 편안한 상태로 통화하고 싶었다. 시간이 다소 늦긴 했지만, 빠르게 씻으면 못할 것도 없었다.
알몸으로 샤워부스에 들어가 샤워기를 틀자 조금 시간을 두고 뜨거운 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먼지가 잔뜩 꼈을 머리며 몸 구석구석을 닦아내자 개운하고 시원했다. 살 것 같았다. 향당산 석굴은 계단이 많아 코스에 난이도가 있었다. 게다가 오후엔 박물관까지 다녀왔으니 기력이 남아날 수가 없었다.
“하…….”
강제혁은 뭘 하고 있을까.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시간이 어느덧 11시 30분이었다. 한국은 12시 30분일 것이다.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자 신호가 몇 번 가지도 않았는데 바로 신호음이 멎었다. 하루 종일 그의 목소리를 듣는 이 시간만을 기다렸다.
[호텔이에요?]
“네, 주인님은요?”
[…혼자 있나보네. ]
둘만의 은밀한 호칭에 강제혁이 나른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바깥에선 혹시라도 다른 일행을 마주칠 위험이 없지 않았기에 오랜만에 불러보는 호칭이었다.
“현수 형이 오늘 마지막 밤이라고 석사생들이랑 술 마시고 들어온대서요.”
석사 시절엔 선배였기에 선배라고 불러도 됐지만, 그가 뒤늦게 박사 후배로 입학했기에 전처럼 선배라 부를 수 없어 차선책으로 고르게 된 호칭이었다. 이전에 선후배였던 관계로 ‘임현수 씨’라고 불렀다간 눈총을 받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물론 현수야 서하에게 선배라 부르는 게 당연해졌고 말이다. 위계질서가 엄격한 학교였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내일부터는 혼자 방 쓰겠네요.]
“네, 좀 편해질 것 같아요.”
[전화 통화도 더 오래할 수 있겠네.]
가운만 입은 채로 호텔 침대에 누워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 아래가 씨근거렸다. 하지만 현수가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긴장해야만 했다. 서하가 최대한 슬픈 생각을 하며 눈을 꼭 감았다.
[보고 싶어서 어떡하지.]
제 마음의 소리를 그대로 읊은 것 같다. 진짜, 어떡하지. 서하가 입술을 꼭 깨물고 북받치는 감정을 삼켜냈다.
“5일 남았어요.”
[참을 수 있어요?]
“…….”
솔직히 쉽지 않다. 육체적인 것 뿐 아니라 그저 그가 그립다. 욕구불만도 문제고, 정신적인 구속도 부족하다.
“많이… 보고 싶어요.”
마음 같아서는 답사고 지랄이고 당장 한국으로 날아가고 싶었다. 예전엔 답사를 꽤 즐겁게 다녔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저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머저리가 된 것 같다.
“5일만 참아볼게요.”
[…깜찍한 소리를 하네. 며칠 안 본 사이 더 귀여워져서는.]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는 순간이 좋았다. 바로 곁에 있다면 더 좋을 텐데. 서하가 강제혁이 선물해줬던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느리게 숨을 내쉬었다. 이것만으론 부족했다. 목을 조여 매는 가죽 목걸이를 차고 싶었다. 침대에 묶여 엉덩이가 터질 때까지 맞고, 위아래로 쑤셔지고 싶다. 서하가 무의식적으로 손을 제 뒤에 가져다댔다가, 문 열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손을 뗐다.
“내일 연락할게요.”
“이거 봐. 애인이랑 통화했지?”
결국 강제혁의 대답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전화를 끊어야 했다. 그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현수가 낄낄거리며 서하를 놀려댔다. 이불을 당겨 가운을 입은 몸을 가려 덮으며 서하가 눈썹을 찌푸렸다.
“왜 벌써 왔어요.”
저도 모르게 타박하는 말이 나왔다.
“술자리 끝난 거예요?”
“아니, 너 안 자면 데리고 가려고 왔지. 형 내일 가는데 서운하지도 않냐, 이 새끼가.”
얼큰하게 취한 현수가 입술을 못나게 삐죽 내밀고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돌아가면 한 잔 해요. 제가 살게요. 저 지금은 너무 피곤해서 안 돼요.”
“철벽방어 좀 봐. 왜, 여친이 술도 못 먹게 하냐?”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강제혁이 제가 사사롭게 술 마시는 걸 싫어하는 건 맞았지만, 여자친구는 아니었으니까. 서하가 대답 없이 돌아눕자 현수도 이내 포기하고 문을 나섰다. 저 인간만 아니었음 더 길게 대화를 나누는 건데. 반쯤 발기하다 만 성기가 아쉬웠다. 그래, 좀 더 늦게 들어왔으면 큰일 날 뻔 했다.
문이 닫히고 조용해진 호텔 방에서 서하가 조명을 아예 전부 끄고 침대에 다시 파묻혔다. 조금 후에, 진동 소리와 함께 메시지가 도착했다. 어두운 방 안에서 휴대폰 화면이 반짝거렸다.
「잘 자요. 자위하지 말고.」
꽤 정곡을 찌르는 메시지였다.
***
“내일 마지막 날이라, 아시죠?”
드디어 14박 15일의 13일째 하루였다. 후배 하나가 서하에게 눈을 맞추며 미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일이 답사 일정상으로 마지막 밤이니 회식이 예정되어 있다는 의미였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미 예상하고 있던 서하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하는 용량이 다한 메모리카드를 갈아 끼우고 전투라도 하듯 박물관 안으로 들어섰다. 일반적인 유적을 답사하는 경우라면 조금 여유롭게 촬영이 가능하지만, 박물관은 달랐다. 다들 박물관 관람 전에는 한숨을 꼭 쉬고 들어가곤 했으니까. 숨 쉬듯 유물과 캡션을 촬영해야 하는 것은 피로를 유발한다.
“요즘 선생님들 다 건강 챙기셔서 회식 그렇게 길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거 다행이네요.”
서하가 회화 구간에서 셔터를 연신 누르는 틈에 이름 모를 후배 하나가 와서 말을 걸어왔다. 박물관에 입장하기 전에 말을 걸던 남후배였다. 거의 보름째 보고는 있는데, 사실 그렇게 사람 이름을 잘 외우는 편이 아닌데다 기억할 필요도 없는 것 같아 외우진 않았다. 알아서 뭐해.
“선배님 이번에 복학하신대서 저 되게 좋았거든요.”
아직 안 갔어? 서하가 제 옆에 서서 종알거리는 후배를 빤히 봤다. 휴학한 사이에 입학한 석사생 같은데 제가 복학한다는 사실에 왜 좋아하나 싶었다.
“나를 알아요?”
“저 선배님 과사무실 조교하시던 시절에 학부 다녔었는데……. 과사도 일부러 막 찾아뵙고 그랬어요. 혹시 제 이름 모르시는 거 아니죠? 김남현인데.”
보아하니 아예 동대 후배인 모양이었다. 뿔테 안경에 흐리멍덩한 이목구비를 아는 인간 데이터베이스에 넣고 열심히 돌려봤지만 워낙에 흔한 인상이라 오히려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본 것 같긴 한데, 지하철에서도 본 것 같다. 굳이 이름을 알려주는 후배의 과한 친절에 서하가 어쩔 수 없이 그 이름을 외웠다. 앞으로 봐야 할 게 분명한데 또 이름을 몰랐다간 곤란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과사무실이 워낙 붐비다보니까 기억이 없네요…….”
“괜찮아요! 이제 기억하시면 되죠.”
글쎄, 굳이 기억을 해야 할까? 서하가 말없이 입꼬리만 당겨 형식적인 미소를 지어주고 촬영에 다시금 집중했다. 셔터 소리만이 정적을 메우는 가운데 남현은 지치지도 않는지 서하에게 또 말을 걸어왔다.
“이제 복학하시면 무슨 수업 들으실 거예요?”
“…오 선생님 수업이랑, 회화사 수업 하나랑 원론 수업 하나씩 들을 겁니다.”
“저랑 같은 수업 들으시겠네요. 좋다.”
대체 뭐가 좋은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러려니 생각하며 서하가 통상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별로 도와줄 수 있는 건 없을 것 같은데…….”
“그냥 같이 듣는 것만으로 좋은 거죠.”
“음…….”
시답잖은 대화였다. 그 후로도 남현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딱히 귀담아 들을 만한 내용은 없었다. 오늘은 이 일정이 마지막이었다. 박물관 답사 후엔 호텔 근처 식당으로 이동해 저녁 식사를 하고 호텔에서 쉬면 된다. 당장 내일이 회식이니 오늘 밤이 유일하게 쉴 기회였다. 특히 서하는 귀국 후에 강제혁의 침대에서 묶여 지낼 테니 더더욱 그랬다.
모이기로 했던 시간에 맞춰 박물관 1층에서 모인 후에 버스에 올랐다. 그 전까지 서하의 곁에 붙어 진득하게 자리를 지키던 남현이 아쉬운 듯 서하를 물끄러미 바라봤지만 신경 쓸 만한 일은 아니었다. 유독 조용한 휴대폰이 불안했다. 오늘은 스터디에 간다고 들었는데, 지금쯤 도착했을까. 서하가 휴대폰을 열어 메시지를 보냈다.
「이제 박물관 나와서 저녁 먹으러 가요. 주인님도 저녁 맛있게 드세요.」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어차피 모레면 만날 테니 벌써부터 그를 귀찮게 할 이유가 없었다. 한참 놀 땐데, 괜히 질척거리는 인상을 줘서 그가 질리기라도 할까봐 걱정된 것도 있었다.
붉은 계열의 장식으로 가득한 식당은 중국 요리 특유의 냄새가 진동하는 상태였다. 서하가 둥근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자 남현이 그 옆자리에 앉았다.
“선배님은 좋아하는 요리 따로 있으세요? 저 여기 와서 음식이 너무 입에 안 맞아서 힘들었어요.”
“나는 중국 요리를 좋아해서……. 현지 음식이 입에 안 맞아서 힘들었겠네요.”
“좋아하세요? 어떤 거요?”
“매운 거요.”
주절주절 무의미한 대화를 나누는 사이, 테이블에 요리가 한가득 올라왔다. 남현은 서하가 어떤 요청도 하지 않았음에도 알아서 음식 따위를 그릇에 퍼 서하의 앞에 올려주었다.
“그럴 필요 없어요. 다른 선생님들도 계시고.”
“아…….”
저보다 연차가 높은 선생님이 두 분이나 계신 테이블인데, 대단한 윗사람을 대하듯 호들갑을 떠는 후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서하가 답장이 없는 휴대폰을 괜히 꾹 잡아 쥐고 젓가락질을 이었다. 튀긴 생선은 간장과 식초 양념에 절여져 있어 꽤 괜찮은 맛이 났다. 가시가 많은 게 단점이었지만.
“서하 석사 시절에 답사 왔을 적에는 음식을 통 입에 못 대더니, 이제 잘 먹네.”
맞은편에 앉아 식사를 하던 최 교수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답사를 준비하던 학기에 함께 답사를 갔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산동성이었나.
“먹다보니 맛있더라고요. 국내에서 먹기 힘든 맛이잖아요.”
“산동성 음식 잘 하는 식당을 아는데 다음에 한 번 알려줄게. 춥다고 콧물 찔찔 흘리면서도 동서로 분주히 다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언제 박사 입학을 했어.”
최 교수가 장성한 아들이라도 보는 것처럼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대화의 주제가 자신이 된 것이 좀 불편했지만, 서하가 서글서글한 대외용 미소를 지어보이며 맞받아쳤다.
“그때 선생님께도 여러 가지로 배운 게 많습니다. 꾸준히 공부했어야 하는데 중간에 휴학한 게 아쉬워요.”
물론 거짓말이었다. 또 휴학하고 싶다. 반짝거리는 저 대머리에 대고 휴학을 선언하고 싶었다.
“아주 말은 청산유수야. 아참, 지난 학기에 교양 강의 맡았었다면서.”
소식도 늦다. 실은 의식적으로 어르신 테이블에 안 낀 탓에 제게 말을 걸 만한 타이밍이 없긴 했다. 서하가 교양 수업을 맡았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옆에 앉아있던 후배가 서하를 노골적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애들 가르쳐 보니 어때? 맨날 강의실 앉아서 듣기만 하다 강단에 서서 말하려니 이상했을 거야. 첫 수업 때 많이 긴장하잖아.”
그 말에 서하는 첫 수업 날이 떠올랐다. 그래, 긴장을 넘어서 소름이 돋았었다. 생애 첫 플레이 상대가 강의실 책상에 앉아 저를 보고 있었으니 소름이 안 돋을 수가 있을까. 다시금 그 상황을 생각하니 오금이 다 저렸다.
“…많이 긴장되더라고요. 저 스스로 좋은 학생이었나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자네는 좋은 학생이지. 이번에 내 수업도 듣나?”
지나가는 듯 묻는 말에 서하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이게 본론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듣죠. 이번에 근대 회화 수업하신다고 들었는데요.”
당연히 안 들으려고 했다. 대충 미뤄둘 생각이었는데, 저 여우같은 아저씨……. 만족한 듯 후식으로 올라온 하미과를 집어 먹는 최 교수를 보며 서하가 속으로 탄식했다.
“어, 선배님. 아까는,”
“근대 회화까지 수업 네 개 듣는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못 들었나 봐요?”
눈치 없이 끼어드는 남현의 말에 서하가 무 자르듯 단정적인 말씨로 분쟁의 원천을 차단했다. 누굴 엿 먹이려 드는 것도 아니고. 식사가 끝나자 후배들이 커피를 돌리기에 사양한 후 먼저 식당 바깥으로 나와 담배를 입에 물었다.
“저녁은 맛있게 드셨어요?”
언제 또 따라 나온 건지. 어느새 제 옆에 서 라이터를 켜 불을 붙여주는 남현에게 서하가 잠시 눈길을 뒀다 거뒀다.
“그럭저럭 잘 먹었습니다.”
“저도 자주 먹다보면 입에 맞는 날이 올까요?”
“글쎄요.”
서하는 담배를 한 숨 빨아 당겨 연기를 머금어 삼켰다 뱉기를 반복했다. 노을 지는 하늘이 왠지 모를 향수를 자극했다. 제가 담배 피우는 것을 싫어하는 강제혁이 떠올랐다. 커피와 담배를 다 포기할 수는 없다고 빌었더니 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답이 돌아왔었다. 그 말에 서하는 담배를 골랐다. 그러면서도 못마땅해하던 그의 얼굴이 선연했다. 한국은 지금 한 시간의 시차를 두고 있을 텐데, 강제혁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순간순간 그가 그립고 궁금하다.
“…선배님, 여자친구 있으시다는 소문 진짜예요?”
나른하게 연기를 내뱉는 사이 남현이 어물쩍거리며 질문을 던져왔다.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면 곤란한데. 저보다 조금 작은 키의 남현을 내려다보던 서하가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고 다시 내쉬었다.
“알아서 뭐 하게.”
“…그냥 궁금해서요. 보통 대학원 생활하다보면 다 헤어지고 그러니까, 저도 그냥 선배님한테 조언 좀 듣고 싶고…….”
횡설수설 이어지는 헛소리에 서하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대학원생이 연애하기 힘든 건 사실이긴 했다. 헤어지는 선후배도 많이 봤고. 연애 고민을 왜 친분도 없는 저한테 털어 놓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냥 대충 대답해주기로 했다.
“시간 배분을 잘 하면 안 헤어지겠죠. 자기 역량에 달린 겁니다.”
“…….”
“나는 담배 다 피웠는데, 먼저 차에 들어가 있어도 돼요?”
“아, 네에…….”
시무룩한 목소리에 서하가 등을 돌려 버스로 향했다.
“문 열어주세요.”
버스 안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기사가 보이기에 서하가 중국어로 말했다. 서하의 요청을 알아들은 기사가 버스의 문을 열어주었다. 조용한 버스 안에 들어선 서하가 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레몬맛 사탕 하나를 입에 물었다. 강제혁이 챙겨준 것이었다. 제가 보고 싶을 때마다 먹으라는 말을 했는데 이게 마지막이었다. 더 넉넉히 줬어야지. 제가 얼마나 그를 보고 싶어 하는지 강제혁은 모르는 게 분명했다.
유치한 상념에 잠겼던 서하가 휴대폰을 들어 도착한 메시지가 없는지 확인했다. 다시 확인해도 제가 보낸 메시지가 마지막이었다. 바쁜가……. 곧이어 전화를 걸어볼 틈도 없이 사람들이 버스 안에 하나둘 들어차기 시작했고 시동이 걸렸다. 어두운 밤하늘이 차창 너머로 스쳐갔다. 서하가 고심 끝에 메시지 하나를 더 보냈다.
[주인님이 주신 사탕 다 먹었어요. 너무 조금 주셨어요.]
10분 쯤 달렸을 때 묵기로 했던 호텔에 당도했고, 여태까지의 저녁처럼 룸 열쇠를 받아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며칠 전부터 혼자 쓰는 방이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것이었다. 샤워까지 마치고 나오니 어느덧 9시였다. 온몸이 나른했다. 온수에 익을 듯 달아오른 피부가 비교적 시원한 침구에 닿자 편안함에 졸음이 쏟아졌다.
“전화…해야 하는데.”
눈이 자꾸만 감겼다. 순식간에 밀려든 수마가 흐릿한 정신을 집어삼켰다.
***
그렇게 서하가 깜빡 잠이 들었다는 자각도 없이 색색 숨을 내쉬던 때, 미약한 진동이 어깨 언저리에서 울려왔다. 서하가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을 땐 어두운 침실 안에서 휴대폰 액정만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아…!”
강제혁의 이름 세 글자가 흐물흐물한 잠기운으로 몽롱했던 머리를 백짓장으로 만들어주었다. 다급히 전화를 받으려는데, 이미 꽤 여러 번 전화를 건 건지 부재중 25통이 찍혀있었다. 그리고 시간은 12시……. 잠들기 전에 확인했던 시간이 9시였으니 3시간을 통으로 잠든 것이다. 아예 잠들어버린 게 아닌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걸까. 서하가 통화 버튼을 누르기 무섭게 바로 울리는 진동에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전화를 받았다. 미치겠네.
“…주, 인님.”
[왜 전화를 안 받아요?]
생각보다는 침착한 목소리였지만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화가 나도 별로 티가 안 나는 사람이었으니까. 서하가 가라앉은 목소리를 가다듬을 새도 없이 변명을 이었다.
“죄송해요. 깜빡 잠들었어요. 바로 전화 걸려고 했는데…….”
정돈되지 않은 음성에선 잠기운이 여전히 묻어나고 있었다. 그도 이걸 알아야 할 텐데. 서하가 정상참작을 바라며 입술을 씹었다. 대답이 없는 순간이 더 긴장됐다. 서하는 서둘러 손을 뻗어 침실의 무드등을 켰다. 부드럽고 은은한 조명이 켜져 방안이 조금 밝아졌다.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정말로요.”
[…많이 피곤했나본데.]
“그랬, 나 봐요. 죄송해요.”
[다시 잘 거예요?]
진심을 담아 용서를 구하자 강제혁이 낮은 한숨과 함께 다음 질문을 던졌다. 다행히 화가 많이 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부재중 전화 너머로 쌓여있던 문자를 확인하지 않아 아직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아뇨. 저는 다 잤어요. 주인님 괜찮으시면… 목소리 듣고 싶어요.”
엎드려 누운 채 강제혁의 전화를 받고 있자 그리움이 북받쳤다. 이틀만 지나면 얼굴을 볼 수 있음에도 자꾸만 보고 싶었다. 예전엔 이런 기분 느껴본 적 없는데.
[목소리만?]
그런 서하의 의중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건지, 다음 질문은 무던히도 감상적이었다.
“얼굴도, 뵙고 싶고…….”
[그리고.]
“…맞고 싶어요.”
유도 심문 같다. 그에게 맞는 상상을 하자 엉덩이가 괜히 간지러웠다. 가운 속의 맨몸이 예민해지고 살갗에 닿는 침구와 가운의 표면이 야하게 느껴졌다. 금욕 기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일까.
[또 뭘 해줬으면 좋겠어요?]
저도 모르게 손이 가운 안을 헤쳤다. 어차피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테니까, 목소리를 들으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 정도는 해도 되는 거 아닐까. 소리만 참는 다면…….
“못 움직이게 묶고…….”
성적인 긴장감에 조금 단단해진 젖꼭지가 손가락에 닿았다. 서하가 입술을 꼭 깨물고 휴대폰을 고쳐 잡으며 다른 손으로 제 유두를 꼬집고 둥글리길 반복했다. 니플 클램프를 채워두는 걸 좋아하는 강제혁이 떠올랐다. 피어싱을 해주고 싶다고도 했었다. 그 생각을 하며 조금 억세게 문지르자 헛숨이 터졌다.
[묶이기만 하면 이서하 씨 난잡한 구멍이 심심할 텐데.]
“구멍도… 쑤셔주세요. 주인님 자지로, 엉망으로 만들어 주세요…….”
눈을 감고 목소리를 듣고 있자 강제혁이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다는 착각이 일었다. 서하가 반쯤 발기한 성기를 시트에 문지르며 젖꼭지를 문지르던 손을 뒤로 옮겼다. 억지로 엉덩이를 벌려 잡고 두꺼운 성기를 쑤셔 넣는 강제혁의 거친 움직임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옆방이며 층 전체에 교수님들과 선후배들이 머물고 있는 호텔인데, 그 가운데서 한참 어린 학생에게 범해지는 상상을 하자 죽을 것만 같았다. 스스로 엉덩이라도 때리고 싶었지만 그건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서하는 엉덩이를 강하게 쥐고 벌린 뒤 손가락 하나를 메마른 곳에 밀어 넣었다. 서하의 까만 눈썹이 조금 일그러졌다. 열기로 머리가 뜨거웠다.
[자위하고 있어요? 내 허락도 없이?]
“주인님, 흐, 못 참…겠어요……. 뒤, 쑤시고 싶, 으읏… 허락해주세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 손가락은 이미 두 개째였다. 그가 저를 엉망으로 만들어 줄 수 없으니 욕망이 자꾸만 넘쳐흐른다. 교정되지 않은 제 행동을 질책해주었으면 좋겠다.
[항상 생각하는 건데 이서하 씨는 지나치게 참을성이 없어요. 근데 그게 귀여운 점이라 혼도 못 내고……. 내가 돔으로서 고충이 많아요.]
“그럼 혼, 내 주세요…….”
손가락으로 마른 구멍을 쑤시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안타까움에 서하가 애먼 입술만 잘근잘근 씹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문 열어요.]
“…네?”
강제혁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누군가 호텔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서하가 하던 것도 멈추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문 열라니까.]
휴대폰에서 새어나오는 목소리가 꿈결 같았다. 꿈일까? 심장이 두방망이질을 치고 열기로 달아오른 몸은 힘이 풀려 쉽게 움직여지질 않았다. 서하가 휘청거리며 가운을 여미고 호텔 방문을 돌려 열자 거짓말처럼 강제혁이 서 있었다.
“강제혁 씨…?”
서하가 저도 모르게 제 볼을 꼬집었다. 아직 자고 있는 거 아닐까? 그런 서하를 보던 강제혁이 피식 웃으며 한 발짝 더 가까이 들어섰다.
“그렇게 해서 아프긴 할까. 진짜 아프게 해줄 테니까 비켜서요.”
서하가 홀린 것처럼 한 발짝 뒤로 물러서자 강제혁이 익숙한 체취를 풍기며 안으로 들어왔다. 문이 닫히자 바깥의 작은 소음마저 차단됐다. 서하가 제 눈앞에 선 강제혁을 바라보며 불규칙적인 호흡을 뱉었다.
“침대로 가서 엎드리란 말, 필요해요?”
입고 온 코트를 벗어 옷걸이에 걸어둔 강제혁이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서하가 고개를 젓고 발을 옮겼다. 검은 목 폴라 속 단단한 육체가 자꾸만 시선을 끌어 움직이기 어려웠다. 저 안에 자리한 근육질의 몸을, 눈 감고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세세히 알고 있었다. 침대에 올라 무릎을 대고 허리를 낮춰 그가 원하는 자세를 취하자 숨이 가빠왔다. 어떻게 여기 있는 걸까. 속옷 한 장 입지 않은 아래가 다시금 욱신거렸다.
“…전화 안 받은 벌도 받고, 꿈인지 아닌지 확인도 할 수 있고 일거양득이죠.”
“읏…….”
겨울바람에 차게 식은 손이 가운을 걷어 올리고 익숙한 움직임으로 서하의 엉덩이를 거머쥐었다. 저 손이 얼마나 달콤한 고통을 줄지 알고 있다. 그 생각을 하자 뒤가 꾹 조여졌다.
“옆방에 교수가 머무는 것 같던데, 조용히 해야겠어요. 방음 기대할 숙소가 아닌 것 같아.”
강제혁이 서하의 입에 무언가를 굴려 넣었다. 혀에서 미미하게 퍼져나가는 달콤한 향에 그게 꽤 커다란 사탕이란 사실을 안 서하가 입술을 꼭 물고 머금었다. 사탕으로 인해 오른쪽 볼이 불룩해졌다. 타액과 섞여 레몬향이 후각을 사로잡는다. 그에게 보냈던 메시지가 떠오른 대목이었다. 그리고 치켜 올려진 엉덩이에 손바닥이 내리쳐졌다.
“흡…!”
사탕보다 더 단 통증에 서하가 발끝을 오므렸다. 세차게 떨어지는 매질에 엉덩이가 움찔거렸다. 짝, 짝 달라붙는 타격음이 날카롭게 울렸다. 커다란 사탕으로 인해 제대로 다물리지 못한 입술 새로 타액이 새어나왔다. 며칠을 상상만 하던 스팽이었다. 너무 좋아서 숨이 턱턱 막혔다.
“읏, 아…….”
서하의 손 안에서 시트가 엉망으로 구겨졌다. 그의 말대로 이 호텔은 방음이 훌륭한 편은 아니었다. 게다가 자정이니 다들 잠들어있겠지. 술을 마시는 무리도 있을 것이다. 조용한 가운데 폭행을 닮은 스팽킹의 소음이 바깥으로 새어나가기라도 할까 겁이 났다. 그럼에도 맞아서 얼얼한 엉덩이에 만족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다.
얼마나 맞았을까. 서하의 성기는 투명한 선액을 질질 흘리는 채였다. 화끈거리는 엉덩이가 아프고 좋았다. 하지만 점점 부족해졌다. 강제혁이 오기 전에 헤집어놓았던 구멍이 아쉬웠다. 뭐라도 좋으니 거칠게 쑤셔줬으면 좋겠다. 서하가 아쉬움에 곁눈질로 강제혁의 아랫도리를 자꾸만 쳐다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제 엉덩이를 후려치며 발기한 흉근이 바지 아래에서 두툼한 양감을 뽐내고 있었으니까. 빨고 싶다. 뒤를 엉망으로 쑤셔주었으면…….
“사탕 다 먹으면 쑤셔줄게요. 그러니까, 열심히 빨아서 녹여.”
그런 서하의 머리채를 휘어잡은 강제혁이 낮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입안에서 반 쯤 녹아가는 사탕이 너무 커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새콤한 단맛이 매질을 닮았다.
열심히 혀로 사탕을 굴리고 빠는 사이, 강제혁이 그런 서하의 허리를 잡아 들어 정자세로 눕혔다. 풀어헤쳐진 가운과 그 안에 붉게 달궈진 몸이 침실의 은은한 조명 아래 드러났다. 바짝 발기한 성기는 단정치 못한 투명한 액체로 젖어 번들거리고 있었다. 부어오른 엉덩이가 시트에 닿자 화끈거림이 더욱 진해졌다. 강제혁이 어디서 꺼낸 건지 모를 니플 클램프를 서하의 젖꼭지에 물려주었다.
“아윽…….”
방금 전에 이걸 생각하며 손가락으로 유두를 꼬집었는데 뭔가 속내가 들킨 것 같아 부끄럽고 야릇했다. 가슴팍에서 찌르르한 통증이 퍼져 나가는 순간이 몸서리 처지게 좋았다. 돌기를 아프게 누르는 클램프는 반짝거리는 빨간 보석이 매달려 있는 모양이었다.
흰 살결 위에서 빛나는 보석의 모습에 강제혁이 속으로 다시금 유두 피어싱을 고민했다.
“다리 벌려.”
수치심에 오므라들었던 다리를 지적하는 말이었다. 서하가 사탕을 한 번 더 굴려 물었다. 다리를 벌린 뒤 양 손으로 잡아 고정하자 치부가 온전히 드러났다.
“혼자 해 봐요. 아까 나랑 전화할 때처럼.”
이 자세는 아니었지만, 행위 자체는 수행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왼손으로는 왼쪽 다리를 받쳐 잡고 오른손을 옮겨 여린 살을 헤쳤다. 윤활액 없이 안을 헤집는 게 힘겨워 뒤가 쓰라렸다. 그 통증이 좋긴 했지만 좀 더 빨리, 많이 쑤시고 싶었다.
“…힘들어요.”
그 말을 뱉음과 동시에 강제혁의 앞섶으로 눈이 갔다. 세상에서 가장 음탕한 윤활액이 바로 저기 있었다.
“정액… 뿌려주세요.”
“바라는 게 많네.”
반 정도 녹은 사탕을 빨아 물고 서하가 몸을 일으켜 강제혁의 바지춤에 뺨을 부볐다. 떨리는 손으로 성기를 꺼내는데도 제지가 없었다. 허락이겠지. 서하가 사탕을 손에 뱉어내고 거머쥐려 하자 강제혁이 그 사탕을 가져갔다. 조급해진 서하가 흉흉하게 발기한 거근을 입에 넣고 달큰하게 절여진 혀와 볼 안쪽 살로 감쌌다. 커다랗고 굵고 긴 사탕을 빠는 것만 같았다. 서하가 아예 개처럼 엎드려 강제혁의 성기를 깊게 물고 삼키길 반복했다. 단단히 일어선 성기는 금방이라도 탁액을 뱉어줄 것처럼 바짝 서 있었다.
“옆에 교수님도 계시는데… 강사가 학생 좆 빨면서 흥분하고.”
“흐읍, 하…….”
저를 수치스럽게 하는 말에도 아랑곳 않고 서하가 성기를 핥고 빨았다. 버거울 때면 입천장으로 귀두를 문지르고 뺨으로 살 기둥을 문질렀다. 타액과 강제혁의 좆에서 흐른 프리컴이 서하의 볼에도 묻어났다.
“삼켜서 조여야, 이서하 씨 좋아하는 좆물이 나오지.”
강제혁이 더운 숨을 터트리며 자지를 물고 빠는 서하의 눈가를 지분거렸다. 조언이 적절해 입을 벌리고 목구멍에 힘을 푼 채로 커다란 좆을 깊게 삼켰다. 꾸역꾸역 탐욕스레 입에 밀어 넣은 성기가 서하의 목 안쪽까지 가득 메워졌다. 발끝이 자꾸만 움찔거렸다.
“후…….”
강제혁은 제 것을 가득 물고 뺨을 붉히는 서하가 사랑스러운 동시에 외설스럽게 느껴졌다. 저 야한 얼굴을 눈물과 정액으로 함뿍 적시고 싶다는 파괴적인 욕구가 강제혁을 충동질했다. 서하의 머리채를 잡아 뿌리 끝까지 삽입하자, 목구멍이 바짝 조여들며 성기를 압박했다. 정신도 못 차리고 막히는 호흡에 바들바들 떠는 서하의 뒤에, 강제혁이 손에 굴리던 사탕을 밀어 넣었다. 끈적한 사탕이 여린 살 속으로 파묻혀 들어갔다. 서하 역시 제 뒤를 침범하는 정체 모를 것에 신음하며 강제혁의 성기에 박혀들었다. 입안을 긁어내리며 뽑혀 나간 육봉에 기침이 터져 나왔다.
“…벌려.”
“흐으, 읏, 네…….”
서하가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눕힌 채 다리를 벌려 보였다. 흥분에 잠식된 강제혁의 좁혀진 미간이 색스러웠다. 붉게 달궈진 거근을 손으로 몇 번 흔들자 서하의 다물린 구멍과 다리 사이에 희고 진득한 정액이 흩뿌려졌다. 강제혁의 자지에서 나온 뜨뜻한 체액이 서하의 예민한 부분을 적시고 범했다. 서하가 그 모습을 온전히 눈에 담으며 뺨을 붉혔다. 저도 모르게 안쪽에서 무언가 이물감이 선명히 느껴졌는데, 조금씩 익숙해지는 건지 불편함이 사라지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포식자의 눈으로 찢어발길 듯 내려다보는 시선에 서하가 입을 벌려 감사의 말을 뱉었다.
“구멍 안쪽… 보이게 벌려.”
낮고 탁한 음성과 방금 사정을 마쳤음에도 흉흉히 서있는 성기가 강제혁의 흥분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서하가 제 몸에 묻은 정액을 훑어 윤활유로 삼아 뒤를 문질렀다. 안쪽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자 정신적 만족감이 먼저 번지고 들었다. 강제혁의 앞에서 모든 것을 내려둔 채 스스로를 범해 보이는 처지가 똑똑히 각인 되는 순간이었다.
“하으…….”
서하가 손가락을 넣고 여린 살 속을 헤집었다. 벌어진 엉덩이와 구멍이 제 주인의 눈앞에 난잡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내벽을 훑고 문질러 넓히자 안쪽의 색이 보일 만큼 구멍이 벌어졌다. 정액과 점도가 다른, 조금 끈적한 액체가 녹아내려 뒤로 흘렀다.
“빨아 삼키면 쑤셔준다고 했는데, 윗입보다 아랫입이 일을 더 잘한 것 같죠.”
“…….”
“사탕이 부족하다며. 내가 많이 보고 싶었나 봐요.”
사탕이었구나. 희미한 미소로 저를 내려다보는 강제혁을 보며 서하가 제 뒤를 침범한 물건의 정체를 알아챘다. 서하가 울 것 같은 얼굴로 다리를 좀 더 넓게 벌리고 뒤를 벌리며 빌 듯 속삭였다.
“…칭찬해주세요.”
“어떻게?”
제 입으로 또박또박 청하길 바라는 주인님의 뜻에 따라 서하가 입술을 움직였다.
“주인님 자지로… 난잡한 구멍을 쑤셔서 칭찬해주세요.”
부끄러움도 없이 이런 말을 뱉게 되었다. 당장 내일도 일정이 있는데 그런 것 따위야 아무래도 좋았다. 저 흉측하리만치 큰 물건으로 뱃속을 꿰뚫릴 수만 있다면.
벌어진 입구가 강제혁을 홀리는 것처럼 벌름거렸다. 그가 사탕과 정액으로 달큰하게 절여진 구멍에 성기를 맞추고 귀두부터 단번에 밀어 넣자, 서하의 얼굴에 남아있던 일말의 단정함이 허물어졌다.
“윽…!”
크게 뜨인 눈과 벌어진 입술이 물기로 반짝거렸다. 서하가 제 뒤를 가득 메우는 익숙하고도 그리웠던 성기의 존재감에 헛숨을 연신 들이켰다. 가빠오는 호흡을 무시하고 벌어진 입술 틈으로 혀를 쑤셔 넣는 강제혁은 잔혹한 폭군 같았다. 젖꼭지며 엉덩이, 구멍 안쪽, 입술 안까지 저릿하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온몸의 솜털이 다 서는 것 같은 쾌감에 눈가가 아릴 지경이었다. 머리끝까지 오르는 열기가 서하를 잠식하고 어지럽혔다.
“하, 읍, 아읏…!”
혀가 빠져 나가면 신음이 터지고 그 터지는 신음을 막으려 입안을 들쑤시는 혀끝이 성기를 꼭 닮아있었다. 거칠게 쑤셔 박혀지는 성기에 구멍이 연신 오물거리길 반복하며 제 안에 든 것을 조이고 달궜다. 뭐가 더 뜨거운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머릿속이 희게 번지고 새까맣게 물들기를 반복했다.
“아, 아아…, 흣, 으응, 어떡, 해, 아…!”
그리고 그렸던 쾌감에 서하가 저도 모르게 울음을 터트리며 허리를 흔들었다. 무의식적으로 성기를 만지려는 서하의 손을 한 손으로 잡아챈 강제혁이 서늘한 시선으로 경고하듯 서하의 목덜미를 물었다.
“뒤로만, 가야지. 후……. 할 수 있잖아.”
야멸차게 박아 올리는 허릿짓에 서하의 몸이 자꾸만 흔들렸다. 푹푹 박혀드는 성기가 젖은 소음을 내고, 살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안에 퍽하고 쑤셔질 때는 눈앞이 희게 번지고, 다시 쑤셔 넣기 위해 내벽을 긁으며 빠져나갈 때는 시야가 깜깜해진다.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맞아서 부은 엉덩이가 삽입할 때마다 부딪혀 쓰라린 것도 쾌감을 더 짙게 만들 뿐이었다.
“하, 아으읏, 소리, 소리 들려요. 제발, 읏, 아…!”
뒤늦게 방음이 떠오른 서하가 쾌감에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빌었다.
“그럼 그만 할까?”
놀리듯 뒤로 빠져 뭉그적대는 성기에 서하가 안타까운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도리질 쳤다. 아직 끝까지 다 쑤셔주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뻔히 아는데 입구 근처에서 장난치듯 문대지는 귀두가 얄궂었다.
“키스, 으응, 해 주세요…….”
“혀를 빨아 봐요.”
그리고 입술이 닿았다. 반 틈 벌어진 사이로 서하가 혀를 밀어 넣고 헤집어 강제혁의 혀를 빨아 당겼다. 열심히 그 혀를 빨고 핥으며 엉덩이를 꾹꾹 조여 대자 곧 참지 못한 강제혁이 다시 한번 세게 성기를 쑤셔 박았다. 푹 찔러져 들어와서는 안 될 곳까지 삽입된 성기에 서하가 혀를 빨던 것도 잊고 끊어지는 신음을 터트렸다.
“아윽…! 흐으, 학, 아!”
“씨발, 진짜…….”
눈앞이 번쩍번쩍하고 아래에선 예고도 없이 투명한 액체가 새어나왔다. 조여진 복근을 알 수 없는 액체로 가득 적시며 서하가 눈물을 펑펑 흘렸다. 전신을 휩쓰는 쾌감과 아릿한 통증에 아무 말도 나오질 않았다.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왔다. 그때부터 거친 추삽질이 이어졌다. 안을 들쑤시는 무뢰배 같은 남근에 서하가 울음소리를 닮은 망가진 신음을 흩뿌렸고, 강제혁이 그런 서하의 입을 손바닥으로 가로막으며 더 강하고 빠르게 내벽을 꿰뚫고 유린했다. 커다란 손에 막힌 입과 잡힌 손목은 야릇한 감각을 더해줄 뿐이었다.
“흐읍…!”
서하가 짓무른 눈으로 쾌감에 절여져 신음하는 순간이 강제혁의 눈 안에 오롯이 담겼다. 땀으로 젖은 이마도, 맞고 깨물려 울긋불긋한 몸뚱이도, 박아줄 때마다 좋아서 자지러지는 구멍과 표정도 어느 한구석 사랑스럽지 않은 곳이 없었다.
“계속, 그렇게 예쁘게 울어.”
“아읍…!”
“사랑해.”
마음이 흘러넘쳐 튀어나온 고백임이 분명했다. 서하가 멍한 정신으로 얕게 숨을 내쉬었다. 강제혁이 거칠게 뱉는 그 사랑고백이 좋았다. 강제혁이 손바닥을 떼기 무섭게 다시 혀를 밀어 넣자 서하가 그 혀를 기쁘게 받아들이며 신음했다. 난도질을 당한 내벽 안쪽에서, 강제혁의 크고 굵은 성기가 몇 차례 꿈틀거리며 정액을 뱉어냈다. 당장 내일, 아니 오늘 일정이 있는데 안에 사정하는 그가 심술궂었지만 서하에게도 만족스러운 순간이었다. 그가 다른 곳에 쌌다면 서운했을 만큼.
***
그 뒤로도 강제혁은 서하의 젖꼭지나 성기, 엉덩이 같은 곳을 몇 차례 더 희롱했다. 욕실에 데려가 씻기는 사이, 그는 곯아떨어진 서하의 구멍을 벌려 정액을 긁어내고 그 김에 성기를 다시금 쑤셔 박았다. 욕조 안에서 타의로 흔들리고 범해지던 서하가 또 그 알 수 없는 투명한 액체를 뿜으며 잠에서 깨어났고, 그 뒤로 욕실 바닥에 엎드려진 채 몇 번이고 좆을 삼켜야 했다.
씻겨 진 건지 아니면 탈수가 된 건지 모를 만큼 힘이 없어진 서하가 침대에 다시 파묻혔을 땐 동이 트고 있었다. 강제혁이 피곤함 따윈 한 점도 보이지 않는 말끔한 얼굴로 서하를 제 품에 안았다.
“근데 여긴 어떻게…….”
뒤늦게 궁금증이 인 서하가 다 쉬어빠진 목소리로 강제혁에게 질문을 던졌다.
“일정표 받았고, 언제 어느 호텔 머무는 지도 알고 있었고.”
그리고 닿는 것만으로 쓰라린 젖꼭지를 연신 만지작거리던 강제혁이 서하의 질문에 성실히 답변을 이었다.
“호실 수는 어떻게 아셨어요?”
“누가 이걸 흘렸던데.”
강제혁이 손을 뻗어 탁상 위에서 종이를 집었다. 그리곤 서하의 눈앞에 그 종이를 흔들어 보였다. 답사준비위원들이 호텔에 도착할 때마다 한 장씩 나눠주는 숙소 배정표였다. 답사 참가인원들의 이름과 방 번호 뿐 아니라 친절하게 가이드 방 번호며 호텔의 와이파이 비밀번호까지 적혀있는, 요컨대 짬딸들의 노가다 결과물이었다. 늙은이들 편하자고 아랫사람 갈아 넣은 결과물이긴 한데.
“이걸로 찾아온 거예요?”
“전화해서 물어보려고 했는데, 이서하 씨가 전화를 안 받아서.”
개인정보가 담긴 종이였기 때문에-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답사 참가인원 전원의 휴대폰 번호도 기입된 종이였다- 함부로 흘리면 안 되는 건데, 만약 교수님이나 다른 선생님이 보셨다면 사달이 났을 것이다. 서하는 어찌 됐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강제혁의 허리를 좀 더 깊게 끌어안았다.
“와 줘서 고마워요.”
“내가 이서하 씨 보고 싶어서 온 거예요.”
“…….”
“하루도 못 참겠더라고.”
“아…….”
“갑자기 일 생긴 거 처리하고 바로 날아왔어요.”
약을 발라 미끈거리는 엉덩이를 살짝 쥐는 손이 농밀하고 다정했다.
“원래는 첫날부터 따라와서 옆방에 머물까 했는데… 룸메이트가 있었잖아요?”
“…그건 제가 정한 게 아닌데요.”
“그래도 벌 받아야지. 내가 기분이 나빴으니까.”
“읏…….”
그가 따라다녔다면 답사고 나발이고 호텔에서 누워 지내야 했을 것 같은데. 서하가 제 살갗에 입술을 문대는 강제혁을 보며 나른한 한숨을 쉬었다. 계속 이렇게 강제혁과 침대에서 얽혀 있고 싶었다. 오늘 일정은 국가 박물관에 가는 것과 서점에 들르는 일 뿐인데, 솔직히 아프다고 드러눕고만 싶었다. 호텔도 연속으로 같은 호텔이라 따로 짐을 옮길 필요도 없고…….
“나가기 싫어요.”
“졸려서? 아니면 더 혼나고 싶어서?”
서하가 투정 부리듯 속내를 털어 놓자 강제혁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물어왔다. 다 알면서 굳이 묻는 그가 얄미웠다.
“더… 같이 있고 싶어서요.”
그리고 입술이 마주 닿았다. 자연스레 입술을 벌리자 혀가 다시금 입안을 헤쳤다. 끈덕진 키스가 몇 분쯤 이어지고, 서하가 가쁜 숨을 터트렸을 때 입술이 떨어졌다.
“귀엽게 굴지 마요. 괴롭히고 싶으니까.”
“…괴롭혀 달라고 그러는 건데요.”
“강짜도 놓을 줄 알고. 어차피 같이 있을 거예요. 내가 오늘 이서하 씨 쫓아다닐 거거든요.”
강제혁이 서하의 볼을 꼬집으며 즐거운 듯 말했다. 피로하고 고됐던 답사가 순식간에 달달한 여행으로 탈바꿈한 것 같았다. 저를 쫓아다닐 거란 말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힘들었지만, 플레이의 여운이 진하게 남은 몸을 강제혁의 품에 접붙이며 서하가 감기는 눈꺼풀을 방치했다. 이 순간을 만끽하고 싶었다.
***
“선배님, 어제 잠자리는 편하셨어요?”
아침이면 늘 인사말로 주고받는 질문이었음에도 지난밤의 일이 떠오른 서하가 잠시 걸음을 멈췄다. 아침 7시에 걸려온 모닝콜을 받고 잠에서 깨자, 강제혁이 반라인 채로 커피를 타 주었다. 황량한 답사지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정말 좋았다…….
“잘 잤어요.”
“춥지는 않으셨어요? 어제 히터가 잘 안 나왔다고 문의하신 선생님도 계셨는데…….”
“추위를 잘 안 탑니다.”
왁스로 세운 남현의 어색한 머리가 서하의 눈에 들어왔다. 오늘 귀국인 것도 아닌데 왜 꾸민 건지 모르겠네.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자 9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늑장을 부리는 노 교수님 탓에 출발이 늦어지는 것 같았다.
“아침은 드신 거예요? 아까 조식 먹을 때 못 뵌 것 같아요.”
아침은 강제혁과 룸에서 해결했다. 별로 아침을 챙겨먹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강제혁이 타준 커피와 룸서비스로 받은 샌드위치면 부족할 것도 없었다. 오랜만에 그와 얼굴을 마주하고 식사를 한 것만으로 만족스러웠다.
“별로 배가 안 고파서.”
“아, 그러셨구나.”
짧게 이어지는 대화가 귀찮았다. 복도 끝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가 났고, 노 교수가 피로한 얼굴로 터벅터벅 내렸다. 출발 시간이 10분 쯤 늦어졌다.
“저 사람 모델인가? 키 되게 크다.”
노 교수가 내린 뒤 시선을 옮겼는데 갑자기 누군가를 지칭하는 것 같은 후배의 혼잣말에 서하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다름 아닌 강제혁이었다. 어제 입고 온 코트를 걸친 채 긴 다리로 휘적휘적 걷는 모습이 새삼 낯설었다. 165cm 쯤 되는 노 교수의 뒤에 서 있으니 강제혁의 키가 더 커보였다. 종족이 다른 것만 같다.
강제혁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서하의 뺨이 조금 달아올랐다. 그 변화를 눈에 담은 건 멀리 서 있는 강제혁보다 남현이 조금 더 빨랐다. 남현의 표정도 덩달아 미묘해졌다.
“다들 출발하실 게요. 버스에 타 주세요!”
시종일관 바쁘게 돌아다니던 여자 후배가 커다란 목소리로 탑승을 알렸고, 가볍게 짐을 꾸린 사람들이 높디높은 키의 리무진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한 번 더 그의 얼굴을 보고 오르고 싶었는데 사람이 많은지라 쉽지가 않았다. 버스 안에 들어서 가죽으로 된 판판한 좌석에 앉자 엉덩이에 매질의 여운이 진하게 퍼졌다.
“서하 씨, 어디 불편한 데 있어요?”
“아니요. 좀 피곤해서요.”
눈썹 사이가 잠시 좁아진 것뿐인데 주변에서 걱정의 말을 던져왔다. 서하가 최대한 자연스럽게 피곤한 척 한숨을 푹 내쉬었다. 피곤하긴 했지만 정신적인 피로도는 0에 가까웠다. 강제혁 덕분이었다. 그렇게 복잡한 북경 시내에 진입하자 문득 강제혁의 말이 떠올랐다.
- 이서하 씨 쫓아다닐 거거든요.
방금 로비에 내려온 건 알고 있었지만 버스를 타버린 시점에서 강제혁이 저를 어떻게 쫓아다닐 거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쉴 새 없이 경적 소리가 울리는 거친 도로 위에서 서하가 잠시 눈을 붙였다. 도착까지는 30분 쯤 걸린다고 했으니 한숨 잠들 시간 정도는 될 것이다. 방금 전까지 제 주인과 살갗을 부딪치며 누워있던 침대가 몹시 그리워졌다.
***
“11시 30분까지 관람하시고 로비에서 모이시면 됩니다.”
마지막 하루라 긴장이 풀려가는 건지 첫날에 비해 현저히 편해진 표정의 총무가 공지를 전했다. 북적북적한 박물관 내부에서 카메라를 목에 건 서하가 홀로 전시관을 찾아 발을 옮겼다. 세부전공대로 붙어 다니긴 하는데, 애초에 서하는 혼자 다니는 게 편했기 때문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서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는지, 남현이 서하의 조금 뒤에 따라붙으며 말을 붙여왔다.
“선배님, 이건 뭐예요?”
남현의 손가락이 가리킨 것은 자그마한 불상이었다. 들고 다니는 용도의 호지불 같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유물 앞에 중국어로 이름과 설명이 친절히 적혀 있었다.
“저기 쓰여 있네요.”
서하가 눈짓으로 해설의 존재를 알려주자 남현이 짧은 탄식을 뱉었다. 그 후에도 발길을 옮기는 곳마다 따라붙어 자질구레한 질문을 던지는 남현 탓에 서하의 미간이 점차 좁아졌다. 그리고 저 멀리서 팸플릿을 든 채 그런 서하와 남현을 응시하는 장신의 관람객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강제혁이었다.
“…재밌네.”
빵빵한 패딩을 입은 채 요리조리 돌아다니는 서하는 강제혁의 눈에 한없이 귀엽게만 보였다. 다만 붕어 똥 같은 걸 매달고 다니는 게 마음에 안들 뿐. 그럼에도 제가 모르는 집단 속의 서하를 보는 건 즐거웠다. 대체로 굳어있거나 형식적인 웃음을 지어보이는 것도, 제 앞에선 보이지 않는 표정이어서 보는 맛이 있었다.
“선배님, 저 책 사려는데 한번 봐주시면 안 될까요?”
전시관을 돌고 돌다가, 박물관 한편에 마련된 서점에 도착한 순간이었다. 전시관에 볼 게 없었던 모양인지 꽤 이른 시간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책을 고르고 있었는데, 남현은 굳이 서하에게 질문을 해왔다. 몹시 귀찮았지만 여기서 무시했다간 제 평판이 추락할 수 있었으므로 서하가 표정을 풀었다. 그리고 애처롭게 저를 쫓아다니는 남현의 모습에 왠지 제 석사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다. 결국 여러 가지 이유로 결정을 내린 서하가 귀찮음을 무릅쓰고 남현의 책 더미를 살펴 주었다. 많이도 골랐네. 조금 훑어보니 대충 답이 나온다.
“이건 사도 좋을 거고, 이건 사지 말고요. 이건 너무 비싸네. 책 뒤에 ISBN 촬영해놓고 귀국하면 학교 도서관 사이트에서 구입 신청해요. 도서관에 비치되려면 3개월은 걸릴 테지만 당장 급한 자료 아니니까.”
“와, 감사합니다.”
해맑게 웃어 보이는 남현의 모습에 서하가 짧게 마주 웃어주곤 다른 책장으로 눈을 돌렸다. 몇 권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고, 몇 권은 너무 비싸서 남현에게 조언했던 것처럼 ISBN을 찍어두었다. 뭔 책이 한 권에 8만원을 해. 입술을 조금 삐죽거린 서하의 눈에 서점 저 끝에서 책을 고르는 강제혁이 눈에 들어왔다. 괜히 이유도 없이 입술이 간질거렸다. 따라 다닌다더니 어떻게 여기까지 왔네.
‘…더럽게 잘생겼네.’
서하만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닌지 바로 옆에서 책을 고르던 후배 하나가 옆의 동기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저 남자 아까 호텔 로비에서 본 남자 아니야? 개잘생겼다.”
“기럭지 봐. 미쳤다.”
“나한테 10cm만 나눠주면 좋겠다.”
타지에서 보니 안 그래도 우월한 외형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우리 후배님들 눈썰미도 좋아.”
박사 선배 중 하나인 40대의 중년 남선배가 그 대화에 끼어들었다. 원래도 비호감으로 뒷말이 자주 나오는 사람으로 본명인 장병욱보다 병쌤으로 주로 불리곤 했다. 그래서인지 강제혁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했던 후배가 떨떠름한 표정을 애써 숨기며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서하 역시 안 듣는 척 하면서 괜히 귀가 솔깃했다.
“한국에서 잘생긴 남자 보기가 얼마나 힘든데요. 답사 와서 눈 호강할 줄은 몰랐는데 이득 봤어요.”
“아, 괜히 서운하네. 나는? 나는 안 잘생겼나?”
눈치 없이 농담을 던지는 병욱의 말에 후배가 콧구멍의 평수를 넓히며 괜히 말을 돌렸다.
“이서하 선배님이 잘생기셨죠!”
“갑자기 왜 제가 나와요.”
“와, 서하는 잘생기고 난? 내 얘긴 왜 안 해줘?”
후배들을 피드백 지옥에 빠뜨리는 병욱의 행태에 서하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애들한테 뭐라고 하지 말고 저기 노 교수님한테 여쭤보시면 되죠. 미학 전공이시잖아요.”
“왜 내 얘기가 나와? 다들 무슨 재미난 얘기를 하시나?”
학생들 입에서 제 이름이 나오자 신이 난 노 교수가 멀리서부터 웃으며 걸어오기 시작했다. ‘으응, 병욱 씨 잘생겼느냐고?’로 시작되는 짧은 미학 강의에 서하가 스리슬쩍 자리를 빠져나왔다. 후배들은 이어지는 병욱의 외모에 대한 학문적인 평가에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리고 아까까지 살펴보던 8만 원짜리 도록을 괜히 만지작거리다 내려놓은 서하가 조금 저렴한 책들을 엄선해 계산대 앞에 섰다.
“240위안입니다. 담아 드릴까요?”
“네, 감사합니다.”
점심을 먹은 후에 대형서점으로 갈 예정이었기에 돈을 조금 남겨두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환전을 조금 더 넉넉히 해올 걸. 서하가 지갑에서 돈을 꺼내 지불하며 짧게 생각했다. 11시 30분까지 로비에 모이라고 했는데, 시계를 확인하니 아직 10시 30분이 채 되지 않았다.
“선배님, 커피 한 잔 드실래요?”
남현의 물음에 서하가 생각할 여지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 화장실이 급해서.”
조금 크게 말한 건 누군가 듣기를 바라서였을까. 서하가 평소와 달리 목청을 틔우며 행선지를 말하고 빠르게 1층 구석의 화장실로 향했다. 남현도 이내 포기한 건지 화장실까지는 쫓아오지 않았다. 세면대 앞에 서서 괜히 손을 씻어낸 서하의 눈앞에 익숙한 그림자가 졌다.
“…인기 많네요, 선생님.”
화장실 안에 인기척이 없는 걸 확인한 강제혁이 낮은 목소리로 서하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는 어색한 호칭이 서하의 등골을 훑고 지나갔다.
“강제혁 씨 잘생겼다는 얘기가 먼저 나왔는데요.”
“내가 잘생겼어요?”
눈을 맞추고 묻는 목소리가 달고 시원했다. 괜히 전날 밤에 물고 빨았던 사탕의 맛이 떠오른다.
“몰라서 묻는 거 아니죠.”
“이서하 씨 눈에 잘생겼느냐고 묻는 건데.”
바로 곁에 선 얼굴이 서하의 가슴을 요동치게 했다.
“…잘생겼어요.”
“이서하 씨도 내 눈에 잘생겼어요.”
남들이 들으면 토할 만한 애정 어린 대화였지만 두 사람에겐 별로 중요치 않았다. 그저 은밀히 회동을 갖는 순간이 좋았을 뿐.
“한 시간 뒤에 로비에서 모이고 점심 먹으러 갈 거예요.”
“여유가 좀 있네.”
하지만 화장실이란 공간은 계속해서 대화를 잇기에 적절한 느낌은 아니었다. 관광객들이 드나들기도 쉽고, 그 중 서하의 일행이 있을 확률도 다분했으니까.
“담배 피우는 척 하고 주차장으로 와요.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거부할 이유가 없는 명령이 떨어졌다. 서하가 제 볼을 쓰다듬고 나가는 강제혁의 뒷모습을 홀린 듯 응시했다. 방금 조금 오그라드는 생각이 서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강제혁이 경국지색의 미남 같다는 생각이었다. 아마 깐깐한 노 교수도 극찬을 할 것이다.
로비에서 수다를 떠는 후배들을 지나쳐 주차장으로 향한 서하의 눈에 들어온 것은 꽤 썬팅이 잘 된 차량 앞에 서 있는 강제혁의 모습이었다.
“빨리 왔네.”
“차 렌트한 거예요?”
“이서하 씨 열심히 쫓아다니려고 어제 밤에 공항 도착하자마자 빌렸어요.”
자연스레 차문을 열어주는 강제혁을 보며 서하가 잠시 주변을 살핀 후 보조석에 올랐다. 문을 닫고 몇 초쯤 기다리자 강제혁 역시 운전석에 탑승했고, 어쩐지 둘이 여행을 떠나온 것 같다는 착각이 일쯤 입술이 부딪쳤다.
“으응…….”
좁은 틈을 가르고 밀려드는 혀의 익숙한 맛에 아래가 욱신거렸다. 뺨을 감싼 강제혁의 손바닥이 조금씩 아래로 내려왔고, 입안을 헤집는 격렬한 입맞춤에 서하의 정신이 흐릿해졌을 때는 패딩이 벌어지고 남방의 단추가 풀어진 뒤였다.
“안에 러닝셔츠 입고 다니라고 했잖아요.”
“아…….”
귀찮아서 입지 않은 건데. 드러난 젖꼭지가 어제의 여파로 부어올라 있었다. 사실은, 남방의 표면에 쓸리는 통증이 좋아서 내의를 입지 않은 것도 있었다. 그런 서하의 속내를 간파한 강제혁이 차가운 손가락 끝으로 유두를 굴리며 아프게 꼬집었다.
“읏!”
“일부러 아프고 싶어서 이러지. 야하게.”
주차장 한복판에서 가슴을 드러내고 유두를 능욕 당하는 제 모습이 몹시 수치스럽고 야릇했다. 서하가 저도 모르게 다리를 반틈 벌리며 침을 꼴깍 삼켰다.
“마음 같아선 구멍에 구슬이라도 넣어주고 싶은데 어제처럼 질질 쌀까봐 그러지도 못하고.”
“후으…….”
호흡도 어려울 만큼 느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귀국하면 여기에 피어싱을 박을까. 어때요?”
“…주인님이 해주시면 다 좋아요.”
서하가 애써 흥분을 잠재우며 강제혁의 손을 붙들고 고백했다. 뭐든, 당신이 내게 해주는 게 싫을 리가 없다. 소유욕에 불타는 강제혁의 까만 눈이 좋았다.
“보내기 싫게 만들지.”
성난 바지춤이 서하의 눈에 꽂혀 들어왔다. 당장이라도 그의 뜻대로 범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한 시간도 남지 않은 집합 시간 안에 플레이를 끝낼 가능성은 희박했다. 서하가 혀로 입술을 적시곤 속삭였다.
“…자지 물려주세요. 빨고 싶어요.”
이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무엇보다 저 흉악한 자지가 제 입을 욕구 해소의 용도로 충분히 이용해주길 바랐다.
“발정 난 고양이 같아.”
“부탁드려요…….”
그런 서하의 욕심에 강제혁이 몸을 뒤로 물렸다. 서하의 고개가 그의 단단한 하체로 떨어졌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
“매운 거라도 드셨나? 입술이 왜 이렇게 부었대?”
식당에 도착해 자리에 앉자마자 들은 소리가 저거였다. 괜히 불퉁한 병욱의 말에 서하가 괜히 입술을 안으로 말아 숨기며 고개를 저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꽤 당황했기 때문이었다. 별 대답이 없자 재미가 없어졌는지 병욱이 실없는 소리를 했다.
“빨리 한국 음식 먹고 싶다. 얼른 내일이 되면 좋겠네.”
“그러게요.”
서하가 혼잣말처럼 떨어진 병욱의 말에 얼른 화답했다. 컵에 찻물을 따라 마시며 원형 테이블 위에 올라오는 요리들을 보고 있자 남현이 대뜸 또 말을 붙여왔다.
“서하 선배는 귀국하면 뭐가 제일 드시고 싶으세요?”
이번 질문은 생각할 만한 문제였다. 내일 도착하면 강제혁과 함께 식사를 할 텐데, 가능하면 아주 맛있는 걸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하가 고민 끝에 역으로 질문을 던진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요즘 어린 친구들은 뭘 좋아하죠?”
김남현은 강제혁보다 나이가 많을 것 같은데, 그래도 저보다야 20대 초중반의 입맛을 잘 알 것 같았다. 되돌아온 질문이 당황스러웠던 모양인지 남현이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굴렸다.
“어린 친구라고 하시면…….”
“스물네 살 정도.”
해가 바뀌어 1월이니, 강제혁도 당연히 한 살 더 먹었다. 스물네 살에 나는 뭘 하고 있었더라.
“요즘 마라탕 유행하던데요…….”
“그건 중국 음식이잖아요.”
중국에서 기껏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마라탕을 먹자니 조금 상황에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 서하의 답에 병욱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뭐야, 서하 씨 애인이 스물네 살인거야? 일곱 살 차이? 능력 좋네. 이제 갓 대학교 졸업했나?”
갑자기 몰린 시선과 관심에 서하가 눈을 크게 떴다. 뭔 눈치들이 이렇게 빨라. 남들이 눈치가 유별나게 빠른 게 아니라 저가 남들 눈치를 심하게 안 보는 거란 생각은 못 하는 서하였다.
“아니에요. 아는 동생이랑 먹을 거라서,”
졸지에 제 주인이자 애인인 강제혁이 아는 동생으로 둔갑했다. 미안해도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병욱은 믿지 않았다.
“귀국하자마자 만나는 게 애인이 아니라 동생이라고? 거짓말도 적당히 해야지. 아니, 그리고 그렇게 어린 아는 동생은 또 어디서 만났대.”
미친, 괜히 물어봤네. 서하가 긁어 부스럼이 된 제 질문을 탓하며 말을 돌리기 위해 고민했다. 사촌동생이라고 할까? 사촌동생 강제혁에게 능욕 당하는 사촌형 이서하를 생각하자 몹시 음란했다. 미쳤지.
결국 찻물을 한 모금 삼키고도 적절한 변명이 떠오르질 않았고, 대화는 이미 만날 수 있는 연상과 연하의 한계선까지 진행된 상태였다.
“아래위로 다섯 살 이상은 안 돼요, 저는.”
“나는 위로는 안 만나고 아래론 10살도 커버 가능해.”
“병욱쌤, 그 10살 어린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주세요.”
“내가 뭐!”
수다스러운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서하는 대화 주제가 영영 저를 떠나길 바랐다.
“서하 씨 애인 사진 없어? 궁금한데.”
“없다니까요.”
애인이 없다고 해야 되는데, 마침 식당 안으로 들어선 인물이 강제혁이었다. 방금 전까지 그의 아래에 코를 박고 성기를 빨았다는 생각이 들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저릿한 느낌이 스치고 지났다.
“진짜 애인 없어?”
“…다른 얘기하면 안 돼요?”
홀로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판을 보고 음식을 주문하는 강제혁이 자꾸만 서하의 눈에 밟혔다. 들리지는 않겠지.
“아, 누구는 좋겠다. 귀국하면 어린 애인이랑 밥도 먹고.”
시시한 대화를 줄기차게 이어가던 남현도 병욱의 앞에선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덕분에 식탁에는 병욱의 저 툴툴대는 푸념을 끝으로 목소리가 끊겼다. 결국 얹히기 직전이 된 서하가 대충 말을 돌렸고 편치 못한 식사시간이 이어졌다. 귀국 후 메뉴 역시 오리무중이 되었다. 식사를 한 후엔 곧바로 장소 이동을 위해 버스에 올라야 했다.
「밥 맛있었어요?」
좌석에 앉자마자 도착한 메시지에 서하가 답장을 보내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냥저냥요. 주인님은요?」
어서 귀국해 그와 단둘이 식사하고 싶다. 그 이후의 일정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서점에 들러 책을 고르는 게 주된 목적이었지만 자질구레한 소품을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도 신년이라고 신년과 관련된 상품도 꽤 있었다. 흑뱀의 해라고 까만 뱀 인형을 팔길래 괜히 강제혁이 떠오른 서하가 작달만한 키링 하나를 집었다. 그러다 보니 인형도 귀여운 것 같아 똬리를 튼 뱀 인형도 결제했다. 어째 책보다 다른 걸 더 많이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선배님, 인형도 사세요?”
“좀 귀여운 것 같아서.”
“저는 뱀 징그럽던데.”
혀를 빼죽 내민 뱀 인형의 얼굴이 왠지 강아지처럼 친숙하게 느껴졌다. 칠흑처럼 까만 인형의 눈동자가 강제혁의 것을 빼닮았다. 툴툴거리면서도 다른 팬시 제품을 둘러보는 후배를 뒤로 하고 버스에 올랐다. 저녁 식사를 간단히 하고 회식에 대한 공지를 들은 후 서하는 호텔 방으로 향했다. 왠지 문을 열면 강제혁이 있을 것 같아서, 쇼핑한 물건과 책을 바리바리 싸들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아…….”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선 방 안엔 인기척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조금 시무룩해진 서하가 휴대폰을 켜 도착한 메시지가 없나 확인했다. 아무리 훑어봐도 저녁 식사 전까지 나눈 대화뿐이었다.
「저 지금 호텔 들어왔어요. 8시부터 회식이라 연락 못 받을 것 같아요. 죄송해요.」
서하가 화면을 두드려 메시지를 전송한 후 테이블에 물건을 대충 올려두었다. 고개를 빼꼼 내민 인형을 쇼핑백 안에 꾹꾹 욱여넣은 서하가 옷을 벗어 던졌다. 아무래도 회식 후에는 만취해 쓰러질 것 같아 샤워를 먼저 해둘 요량이었다. 마지막 날이니 다들 부어라마셔라 하겠지, 생각했다.
***
“건배!”
과연 서하의 예상대로 고량주며 맥주가 테이블 가득 쌓여있었다. 서하의 지도 교수인 오 교수는 술을 좋아하지 않아 진즉에 방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노 교수나 최 교수 같은 경우엔 주당이라, 이 술병이 다 비워져야 자리를 파할 작정인 것 같았다. 벌써 건배사만 30번째였다. 조금 전에 주량을 넘긴 서하가 물컵을 들이키며 어떻게든 뱃속에 들어간 알코올이 분해되길 기원했다.
“물을 술처럼 마시냐, 너는.”
술에 거나하게 취한 병욱이 서하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을 걸어왔다. 어제 강제혁과 구른 탓에 몸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한데 술까지 먹으니 저 역시 죽을 판이었다.
“선배, 저 치지 마세요. 토할 것 같아요.”
“어우, 얘랑 자리 바꿀 사람!”
웃음소리가 왁자지껄하게 퍼지는 가운데 알딸딸하게 취기가 오른 서하가 진동이 울린 휴대폰을 들었다.
「문 반 틈 열어놓고 갔던데, 나 들어오라고 그런 거예요?」
「뭘 이렇게 많이 샀어. 물욕 있는 줄은 몰랐는데. 서울 가면 나랑 쇼핑갈까요?」
「너무 많이 마시지 마요. 혼나.」
강제혁이 보낸 메시지가 연속으로 도착한 걸 본 서하가 안면근육을 조절하지 못하고 입이 귀에 걸리게 웃었다. 너무 귀여워서 어떡하지. 연하의 주인이 지나치게 귀엽다. 그 모습을 포착한 병욱이 서하의 휴대폰 화면에 취한 얼굴을 들이댔다. 취중에도 깜짝 놀란 서하가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뭐, 뭐예요.”
“‘너무 많이 마시지 마요. 혼나’? 야, 너 완전 꽉 잡혀 사는 구나. 대박이다. 진짜.”
다행히 앞전의 메시지는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서하가 놀란 와중에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조금 언성을 틔웠다.
“남의 휴대폰을 왜 봐요!”
“이거 어린 애랑 연애한다고 유세부리는 것 좀 봐.”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을 바지춤에 슥슥 문댄 서하가 괜히 머쓱해 과일 안주를 집어 먹었다. 현지에서만 먹을 수 있는 희한한 종류의 포도였다. 껍질을 까 입에 넣으니 달고 향이 좋았다. 강제혁한테도 주고 싶었다.
“다들 논문 열심히들 쓰자. 졸업을 위하여!”
건배사와 함께 금세 제게서 옮겨간 관심에 볼을 긁적거리느라 서하는 건배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안 마시면 좋지. 서하의 시선이 벽에 붙은 시계로 향했다. 어느새 12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아이고, 이제 늙어서 더 못 먹겠다. 나머지는 너희끼리 먹어라.”
졸음이 쏟아지는지 연신 하품을 하던 노 교수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고, 최 교수 역시 허리가 아프다며 물러났다. 눈치를 보던 서하도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병욱이 그런 서하의 손목을 덥석 잡아 바닥에 주저 앉혔다.
“이게 어디서 뺑끼를 쳐. 더 먹고 가!”
“아윽…!”
순식간에 엉덩방아를 찧은 서하가 테이블에 고개를 묻고 신음했다. 순간적으로 맞아서 터진 엉덩이에 체중이 실린 바람에 너무 아팠다.
“헉, 선배. 괜찮아요?”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후배 연주가 서하의 안위 여부를 물었다. 이것도 통증이라고 심하게 짜릿했던 까닭에 서하는 조금 오래 얼굴을 숨겨야만 했다.
“…괜찮아요.”
“아, 병쌤. 왜 사람을 그렇게 주저 앉혀요?”
“내가 뭘 했다고!”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버럭 소리를 지르는 병욱의 모습에 후배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평소 행실이 그대로 영향을 미친 결과물이었다.
“선배, 들어가서 쉬세요.”
그래도 석사 중에 제일 고참인 연주가 서하의 등을 떠밀어주었다. 할 말이라도 있는지 저 끝에서 남현이 서하에게 뭔가 눈빛을 보내왔지만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었기에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하는 눈인사로 연주에게 감사를 전하고 회식 자리를 벗어났다. 나중에 기프티콘이라도 보내줘야겠다. 밖으로 나오니 밤공기가 차갑게 서하를 반겼다.
「저 이제 나왔어요. 담배 한 대만 피우고 올라갈게요.」
강제혁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무섭게 전화가 걸려왔다. 담배를 입에 물었던 서하가 걸려온 전화를 받자 차분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올라와서 태워요. 여기 객실 흡연 가능하던데.]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서하가 조용히 답했다.
“주인님 담배 연기 싫어하시잖아요.”
[그런 배려할 시간에, 내가 이서하 씨 보고 싶어 하는 거나 배려하세요.]
괜히 가슴께가 일렁거렸다. 불도 붙이지 않은 담배를 갑 안에 도로 집어넣은 서하가 제 방으로 서둘러 발을 옮겼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복도를 걷는 시간이 몹시 길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문득 그를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도 강제혁이 먼저 호텔에 당도한 채였다. 저는 몰랐지만. 그때와는 다른 행복한 긴장감이 서하를 두근거리게 했다.
“왜 이렇게 늦어.”
룸 키를 가져다대기 무섭게 벌컥 열린 문 너머에는 강제혁이 가운만 입은 채로 서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물기에 젖은 머리카락이 유독 검고 짙게 보였다. 가운 아래 긴 다리가 시선을 잡아끈다.
“주인님…….”
“얼마나 마셨길래 얼굴이 이렇게 익었어요?”
뺨을 감싼 손이 서늘해서 기분이 좋았다. 서하가 강제혁의 너른 품에 스르르 몸을 맡기며 부드럽고 단단한 가슴팍에 뺨을 문댔다. 허리를 낚아채 안으로 들인 강제혁이 서하를 침대 위에 올려두고 생수를 건네주었다. 갈증이 나던 차에 물이 너무 반가웠던 서하가 손을 내밀었다.
“입을 벌려야지.”
나긋하고 단정적인 목소리에 허리 아래가 울리는 것 같은 야릇한 느낌이 일었다. 서하가 입술을 벌리고 고개를 쳐들자 강제혁이 생수병의 뚜껑을 따 서하의 입안으로 차가운 물을 흘려 넣어 주었다.
“여기는 물이 다 미지근하더라고요. 이서하 씨 찬물 좋아하는 거 생각해서 미리 냉장고에 넣어놨어요. 마음에 들어요?”
목 안을 타고 넘어가는 물을 삼켜낸 서하가 알코올 향이 섞인 한숨을 뱉으며 조용히 읊조렸다.
“…감사합니다.”
“많이 피곤해요?”
목덜미를 쓰다듬는 손길이 농염했다. 서하가 그 손길을 온전히 느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좀 더 거칠고 난폭하게 만져주었으면 좋겠다. 이성보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본능이 서하로 하여금 강제혁의 가운 끈을 잡아당기게 했다. 느리게 풀어지는 도톰한 끈의 느낌이 좋았다.
“자꾸만 야해져서 큰일이네요.”
“주인님…….”
서하를 집어 삼킬 듯 응시하던 강제혁이 몸을 움직였음은 당연한 결과였다.
***
작은 조명만 켜진 밤의 호텔 복도에 흐트러진 발자국 소리가 울렸다. 만취한 남현의 걸음 소리였다. 한참을 뚜벅뚜벅 걸어 서하의 방문 앞에 선 남현이 노크를 하기 위해 손을 들어 올린 때였다. 그다지 방음이 좋지 못한 방 안에서는,
“아, 아윽…!”
회식 자리에서보다 더 음탕한 신음소리로 울고 있는 서하가 있었다. 다행히 목소리가 크지 않았던 덕에 바깥에 들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서하는 바깥 사정 따위는 전혀 모른 채 강제혁에게 허벅지를 맞고 있었다.
서하는 내일 비행기를 타야 하니 엉덩이와 허벅지 뒤쪽은 봐달라는 간청을 했고, 강제혁 역시 그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남은 선택지는 허벅지 앞쪽이었다. 손목을 묶인 채 가죽 벨트에 허벅지를 후려 맞으며, 서하는 착실히도 발기하고 있었다. 뒤에 물려진 아네로스가 끊임없이 전립선을 자극해 사정이 멀지 않은 듯 했다. 붉게 물든 허벅지에 서하가 떨리는 한숨을 뱉으며 색욕에 불타는 강제혁의 눈을 응시했다.
“흣, 주인님, 으응, 구멍에 넣어주세요…….”
이제 한계라는 뜻이었다. 강제혁이 벌어진 다리 사이에서 단번에 아네로스를 뽑아내자 서하가 앓는 소리를 크게 내며 허리를 무너뜨렸다. 문 밖에선 남현이 노크를 하기 직전 마지막 남은 이성으로 서하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중이었다. 강제혁이 침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서하를 제 위에 올린 순간, 휴대폰이 진동했고 그게 강제혁의 눈에 들어왔다.
「서하 선배님, 저 남현인데요. 지금 좀 뵐 수 있을까요?」
아까 그 붕어 똥인가. 눈썹을 찌푸린 강제혁이 서하의 허리를 당겨 발기한 제 성기를 구멍에 맞춰주었다. 서하가 스스로 삼키기 쉽도록. 쾌감에 절은 서하는 휴대폰 진동음 따위는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묶인 손목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강제혁이 이끄는 대로 다리를 벌린 서하가 울음 비슷한 신음을 냈다. 술에 취한 서하의 몸이 뜨겁고 말랑했다.
“하으, 아……. 얼른, 쑤셔… 주세요.”
“알아서 삼켜 봐요. 자지 좋아하잖아.”
움찔거리는 입구가 당장이라도 꿰뚫고 싶은 모양으로 강제혁의 귀두 끝을 간지럽혔다.
“난잡한 구멍 안으로 넣는 거예요. 이서하 씨 좋아하는 곳까지 찔러줄 테니까.”
눈물 젖은 얼굴이 사랑스럽고 예뻤다. 제가 남긴 매질로 붉게 물든 허벅지를 벌려 앉은 채 자지를 물겠다고 엉덩이를 움직이는 모습은 말할 것도 없었고.
서하가 수치심에 얼굴을 붉힌 채 허리를 움직여 강제혁의 성기를 야금야금 삼켰다. 꺾어지는 고개와 하얀 목덜미에 채워진 가죽 목걸이가 강제혁의 소유욕을 반증하듯 이니셜대로 반짝 거렸다. 반지가 달린 목걸이는 서하의 몸에 문신처럼 자리한지 오래였다. 강제혁이 반지 낀 손으로 서하의 등허리를 매만졌다.
“하아, 아…….”
핏줄이 흉흉히 선 굵고 긴 성기가 동굴로 숨어드는 뱀처럼 조금씩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진하게 밀려오는 쾌감에 열이 자꾸만 올랐다. 서하가 강제혁의 성기를 반 정도 삼켰을 때, 호텔 방을 울리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술이 조금 깬 듯 바짝 굳은 서하가 성기를 흡입하던 것도 잊고 고개를 돌린 채 눈을 크게 떴다. 숨죽인 입술이 붉었다.
“어딜 봐.”
“아, 흐윽…!”
강제혁이 몸을 일으킨 탓에 타의로 쑤셔진 구멍에 서하가 몸을 떨며 눈물을 흘렸다. 안을 짓누르는 성기가 지극히 자극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급해도 먹던 건 마저 먹어야죠.”
“흐읏, 아, 아흐윽…….”
귓바퀴를 문지르다 세게 목덜미를 긁는 손끝에 서하가 안타까운 신음을 흘리며 아래에 집중했다. 체중을 실어 엉덩이를 찧자 거근이 단번에 안을 때려 박으며 쑤셔졌다. 별이 튀기는 것 같았다.
“선배님, 주무세요?”
조금 먼 듯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이미 사정 직전이었던 서하에겐 들리지 않았다. 묶인 손목으로 강제혁의 몸에 제 아래를 맞출 뿐이었다.
“하, 으읍, 응…!”
이성을 잃은 듯 허리를 흔드는 서하의 모습을 보며 강제혁이 기분 좋게 웃어 보였다. 바깥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도 제 것에만 집중하는 서하가 예뻤다.
“후……. 키스, 해 봐요.”
몰려오는 도취감에 허리를 안고 얼굴을 가까이 하자 서하가 굶주린 듯 강제혁의 입술에 매달려 핥고 빨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도 엉덩이를 움직이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술 향이 혀끝을 타고 넘어오고 열심히 성기를 삼키고 뱉는 구멍이 강제혁의 정신을 빼놓았다.
“아, 으응, 읏, 아, 아, 흐윽!”
다시 한번 들려오는 끈질긴 노크 소리에 강제혁이 아예 서하를 엎어놓고 박기 시작했다. 뒤가 쑤셔질 때마다 난잡한 신음을 흩뿌리던 서하가 물을 줄줄 흘리며 몸을 잘게 떨었다. 콱 소리가 나게 성기를 욱여넣은 강제혁이 사정 직전에 물건을 빼 서하의 구멍과 엉덩이에 잔뜩 사정했다. 한참을 바들바들 떨던 서하가 기절한 듯 눈을 감았다. 취중에도 착실히 느끼는 몸이 귀여웠다. 첫날밤에도 그는 진탕 취해있었다. 그 밤이 떠오르자 서하가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서하의 몸 위에 이불을 덮어둔 강제혁이 방문을 빤히 응시했다. 처리할 게 남아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바깥에서 서성거리던 남현이 겨우 열린 문 앞에 섰을 때는,
“어…….”
“밤중에 무슨 짓입니까?”
로비에서 보았던 장신의 미남이 가운을 걸친 채 눈앞에 서있었다. 술 때문에 방 번호를 착각한 걸까? 등골이 오싹했다.
“헉,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몹시 당황한 남현이 90도로 사죄 인사를 하며 빠르게 복도를 벗어났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화가 난 맹수 같았던 사내의 얼굴이 잊히질 않았다. 겁이 덜컥 났다. 아침이 된 후 잠에서 깨어난 남현은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서하의 방이 맞았던 것 같은데, 만취했던 터라 자신을 믿을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오금이 저리던 그 까만 눈이 떠오를 때면 괜히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그 남자를 다시 본 장소는 공항이었다. 전날의 기억이 떠올라 머쓱해진 남현이 주눅이 든 얼굴로 남자를 쳐다봤지만 미스테리는 풀리지 않았다.
***
“나 주려고 산 거예요?”
서하는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강제혁과 진득한 키스를 나눴다.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선물을 건넸다. 이미 봤을 것 같기는 했지만 빨리 주고 싶었다. 인형과 키링을 양손에 들어 올린 강제혁이 서하에게 저 주려고 산 거냐는 깜찍한 질문을 했다. 괜히 민망해진 서하가 시선을 돌리며 고개만 끄덕였다. 누구한테 선물을 해봤어야 말이지. 그런 서하에게 강제혁이 쇼핑백을 내밀었다.
“나도 이서하 씨 주려고 샀는데.”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당황한 서하가 눈을 연신 깜빡거렸다.
“저요?”
“왜 이렇게 놀라. 내가 뭐 주는 거 처음도 아닌데.”
맞는 말이긴 했지만, 답사를 다녀온 제가 선물을 받는 상황이 어색했다. 그리고 쇼핑백을 열었을 때는 익숙한 책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건…….”
“사고 싶어 하는 것 같길래.”
너무 비싸서 버려둔 8만 원짜리 도록이었다. 그때 봤구나.
“학교에서 구매 신청해서 대여하려고 했는데요…….”
겸연쩍은 모양새로 항변하자 강제혁이 그런 서하의 엉덩이를 쥐어 당기며 물었다.
“사서 보는 것만 합니까? 학교에서 빌려보면 대여기한도 있고 불편하잖아요.”
“아뇨, 감사해요.”
뭐든. 그냥 감사했다. 아래에 싸하게 퍼지는 통증에 입술이 벌어진 서하를 보던 강제혁이 조금 더 세게 누르며 속삭였다.
“나도 고마워요.”
“…….”
“인형이랑 키링, 잘 쓸게요.”
목덜미를 잘근대는 행위에 저도 모르게 눈을 감고 음미하던 서하의 귓전에 무언가 툭툭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강제혁이 싸들고 온 다른 쇼핑백이었다.
“…?”
“중국에서 신기한 걸 팔더라고요. 그래서 사왔어요.”
침대에 흩뿌려진 쇼핑백 속 내용물들은 형형색색에 기상천외한 모양인 성인용품들이었다. SM용품인 게 틀림없는 구속구와 희한하게 생긴 스팽 도구,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도 잔뜩이었다. 그 양은 이게 과연 세관에 안 걸렸을까 싶을 정도였고.
“그럼 그때…!”
마지막 날, 잠시 연락이 안 되던 때 구매한 거란 생각이 서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났다. 아연실색한 서하를 보며 강제혁이 서하의 바지를 단번에 내렸다.
“이거 다 써볼 때까지 안 재울 거예요.”
엉덩이가 남아나지 않을 것 같은 달콤한 선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