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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술 (12/24)

외전. 술

“한 잔 더?”

시끌시끌한 술집 안을 감사해야 하는 건지. 서하가 제 앞에서 대결이라도 하듯 술잔을 기울이는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처음에는 저와 김산이 마시려고 했던 것 같은데, 김산의 도발 이후로 강제혁이 술잔을 모조리 거둬가고 있었다.

- 술도 한 잔 못해? 그럼 어쩔 수 없이 서하랑 나랑만 마셔야겠네. 옛날처럼.

별로 대단한 도발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강제혁은 서하가 알기로 술을 입에도 대지 않는 청정한 간(liver)의 소유자였다. 그럼에도 술잔을 아무렇지 않게 뺏어가기에 내심 술을 잘 마시겠거니 했는데, 아무래도 좆 된 것 같다……. 강제혁의 눈빛은 살짝 맛이 가 있었다. 애초에 빈말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던 술자리 제안이었는데.

- 술 한 잔 해야지. 앞으로도 계속 볼 텐데.

알코올 만능주의인 김산을 간과한 제 죄였다. 강제혁의 오피스텔이 학교 근처인 탓에 마침 배회하던 김산과 마주쳐버린 것도 문제였고.

- 앞으로 계속?

- 워낙 친동생 같은 후배라. 공적으로도 만날 일이 좀 되고.

서하가 이해할 수 없는 건 오히려 강제혁 쪽이었다. 무시하고 갈 길 갔으면 될 걸, 굳이 술자리를 승낙한 속내를 알기가 어려웠다.

김산은 기다렸다는 듯이 꽤 그럴 듯한 술집으로 목적지를 설정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가장 한산한 구석 자리를 점유하기에 그래도 생각이 있긴 있구나 했는데, 그건 오산이었다. 김산은 술이 오르면 오를수록 강제혁에게 의미 모를 시비를 걸어대고 있었다. 아무래도 작정한 것 같았다.

“우리 서하는 고량주를 제일 좋아하는데, 강제혁 씨는 그건 알려나 몰라.”

“집에 몇 병 있는 걸 봤는데 모를 리가요.”

대놓고 ‘우리 서하’라고 말하는 김산이나, 서하의 집을 제 집 마냥 드나든다는 걸 강조하는 강제혁이나 유치하기론 비할 데가 없었다. 가운데서 과일안주를 집어먹던 서하가 소주를 벌써 몇 병 비워낸 두 사람을 보며 불안하게 시선을 옮겼다. 김산이야 소주 마시는 데 이골이 난 양반이니 독 째로 들이 부어도 취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지만, 아무래도 강제혁이 불안했다.

“안주 좀 먹으면서…….”

“새삼스레 뭘.”

“괜찮아요.”

포크로 수박 한 조각을 들어 올렸는데 양쪽에서 사양하는 말이 돌아왔다. 당연히 서하의 포크가 향한 방향은 강제혁 쪽이었고 김산은 익숙하게 사양하는 말부터 뱉은 것이다. 말이 끝나자마자 강제혁이 김산을 불쾌하다는 듯 노려봤고 김산은 김산대로 눈썹을 찌푸렸다.

“아, 그래. 애인님 먼저 챙겨드려야지.”

선배도 취한 것 같은데. 서하가 오갈 데 없어진 수박을 제 입으로 욱여넣으며 입술을 다물었다. 비꼬는 투가 분명했다. 서하가 과일을 하나 더 집었을 때 강제혁이 서하의 손목을 쥐었다.

“…?”

“아.”

과시를 하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명령이라도 내리는 건지. 분간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설렜다. 거만하게 입을 벌린 강제혁의 모습이 서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존나 잘 생겼다……. 애인 겸 주인의 용모에 쿵쾅거리는 가슴을 내리누른 서하가 그대로 강제혁의 입 속으로 과일을 가져다 바쳤다. 손등을 쓰다듬는 손길에 왠지 허리가 다 오싹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아니꼽다는 듯이 보던 김산이 혀를 파며 말했다.

“연인 사이인지, 주종관계인지. 쯧.”

둘 다요. 서하가 어쩐지 머쓱해져 속으로만 대답했다. 주인이자 연인인 남자의 손에 잡힌 손목이 뜨거웠다. 열이 오르는 느낌이 선명했다. 그런 서하를 두고 강제혁이 나른하게 답했다.

“둘 다라면요.”

“그게 말이 되나?”

꽤 취한 것 같은 목소리였다. 김산의 발언은 다소 무례할 수도 있었지만 서하를 걱정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어서인지 그렇게 고깝게 들리진 않았다. 물론 서하 한정이었지만.

“말이 안 될 건 뭡니까?”

“여보 자기도 못 하는 게 무슨 연인 사이라고. 강제혁 씨는 참 특이하네요.”

“그러니까 이서하 씨 만나죠.”

불꽃이 튀기는 것 같은 기 싸움에 서하가 먼저 김산을 타박했다.

“꼭 그런… 으… 닭살 돋는 호칭을 써야 연인이에요? 선배는 혜인 선배한테 여보 자기했어요?”

“야, 그건…!”

입을 꾹 다무는 게 분명히 본인도 안 한 것이다. 애초에 그렇게 닭살 돋게 구는 혜인과 김산도 상상이 되질 않았다. 그러자 김산이 별안간 언성을 높였다.

“우리는 할 수 있는데 안 한 거고, 너희는 못 하는 거니까 다르지!”

“억지 좀 부리지 마요!”

“야, 이게 뭐가 억지야. 서하야. 형은 솔직히,”

“그만 안 하면 공적으로도 피해 다녀요, 진짜.”

이게 협박이 되나 싶었지만, 김산은 서하가 그 말을 뱉자마자 눈에 띄게 풀 죽은 표정이 됐다. 덩치 큰 개 같다. 서하가 어쩐지 조용해진 강제혁을 불안하게 살피며 손을 겹쳐 잡았다.

“집에 가요.”

“…응.”

바깥에서 반말로 대답하는 게 어쩐지 이상했지만, 안색 하나 변하지 않은 그에게 일말의 기대를 품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별로 취한 건 아니겠지, 부푼 꿈이었다.

***

“많이 취한 거 아니죠?”

분명 똑바로 걷고 있는데, 숨결마다 알코올 향이 번지는 게 해독이 하나도 안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얼굴은 멀쩡한데. 집 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서하의 손을 놓고 신발을 벗는 강제혁의 뒷모습을 보며 서하가 어느새 배어나온 식은땀을 손등으로 훔쳤다.

“…벗어.”

신발을 정리하는 와중에 불현 듯 들려온 강제혁의 낮은 음성이 등골에 느리게 꽂혀들었다. 술주정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서하의 손은 익숙하게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의 벗으란 명령에 파블로프의 개라도 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셔츠를 벗어 바닥에 떨어뜨리는 스스로가 수치스러웠다.

바지와 함께 속옷까지 다 벗어내자 무릎이 알아서 꿇어졌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했지만 서하의 목덜미엔 반지를 팬던트 삼은 목걸이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강제혁이 개목줄 대용으로 걸어준 것이었다. 반지 안쪽 테두리에 가늘게 새겨진 글씨는 그의 이름이었고. 이걸 걸어주며 목덜미를 쓰다듬던 그날의 기억이 꿈처럼 번졌다.

- 내 소유라는 증표. 잃어버리지 말아요.

그 후로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 같지만 플레이가 시작된 탓에 그 뒤의 대화는 없었다. 강제혁의 손에는 제 목에 걸린 반지와 똑같은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그는 한순간도 반지를 빼지 않았다. 아마 저 반지의 안쪽에도 서하의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을까.

벗으란 명령 이후에 어떤 말도 없는 강제혁의 눈치를 살피다 서하가 그의 발등에 시선을 떨어뜨렸다.

“…핥게 해주세요.”

그의 명령 없이는, 허락 없이는 어떤 행위도 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이 서하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사랑한다는 달콤한 말을 주고받은 것도 좋았지만 그보다 더 진하게 저를 옥죄는 구속이 달콤했다. 허락의 말이 없으니 자연스러운 순서로 서하가 강제혁의 발등에 뺨을 가져다 댔다. 조르는 행위가 최선이었다.

“제발…….”

“핥고 싶어?”

“네.”

바닥에 납작 엎드려 그의 발등을 핥고자 간청하는 순간이 좋았다. 바닥까지 떨어진 듯한 착각. 엉망진창이 되고 싶다는 질펀한 욕구.

“거실까지 기어오면 핥게 해주지.”

취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에 서하가 한결 안심하며 네 발로 기기 시작했다. 평소와 같은 온도의 분위기가 불안감을 덜어내 주었다. 예상치 못한 김산과의 술자리로 오만 가지 상상이 들었는데 다행히 별 문제 없는 것 같았다. 강제혁 역시 취하지 않은 것 같고.

기어서 거실로 향하자 마찰로 인해 무릎이 붉어졌다. 체중이 실려 눌린 무릎이 아팠다. 이런 종류의 통증은 유쾌한 편은 아니었지만, 상황이 야릇했다. 털썩 소파에 앉은 강제혁을 살짝 올려다보곤, 서하가 그 발등에 입술을 묻었다. 핏줄이 굵게 선 남자다운 발등은 마치 빳빳이 발기한 성기를 닮았다. 혀로 핥고 빠는 사이, 조용한 한숨이 거실의 공기를 적셨다. 뒤가 욱신거렸다.

“부족해……?”

강제혁의 나른한 물음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머리채가 잡혔다.

“흐으…….”

젖은 입술이 뻐끔거렸다. 바짝 선 성기를 숨기고 싶었다.

“대답.”

“…부족해요.”

단순히 부족하다는 고백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건지, 머리채를 잡은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서하가 눈을 질끈 감고 뒷말을 이었다.

“주인님 자지가 빨고 싶어요. 입에 넣어주세요…….”

그 말이 끝난 후에 칭찬이라도 하듯 강제혁이 서하의 머리를 제 고간에 처박았다. 가까이 간 것만으로 느껴지는 후끈한 열기에 입술이 바짝 말라붙었다. 서하는 조심스레 이를 세워 지퍼를 내리고 오로지 입술과 치아만을 사용해 버클을 풀어냈다. 이젠 익숙한 행위였다. 터질 듯 발기한 성기가 묵직한 양감을 자랑했다. 볼 때마다 제가 다 뿌듯할 정도로.

강제혁의 속옷에 코를 묻고 뺨을 문지르자 참지 못한 강제혁이 직접 성기를 꺼내 서하의 입 앞에 놔주었다. 핏줄이 선 굵은 성기에 혀를 가져다대자 타액이 고였다. 혀의 돌기 구석구석을 자극하는 맛이 났다. 서하는 뜨끈하고 단단한 살 기둥을 핥아 올리고 입술로 물었다가 귀두 끝부터 조금씩 입안에 밀어 넣었다. 머리 위에서 터지는 강제혁의 느른한 한숨이 서하를 더 없이 만족스럽게 했다.

서하는 열심히 혀를 움직이고 소대를 핥고, 목 안쪽으로 성기를 한가득 삼켰다. 입술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지나치게 길고 굵은 좆은 서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이 흉악한 물건이 제 뒤를 어떻게 헤집는지 알고 있었다. 깊게 삼키는 게 힘들어 입안에 넣고 빼기를 반복할 무렵, 강제혁이 서하의 머리채를 잡은 그대로 급하게 성기를 더욱 깊게 삽입했다. 둥근 귀두가 서하의 입천장을 긁고 목 안으로 깊숙이 처박혔다.

“흡…!”

눈물 맺힌 눈가를 지분거리는 손가락이 야릇했다. 콧등을 간지럽히는 음모와 목 안을 점령한 살 몽둥이에 서하가 고통스레 신음했다. 말없이 저를 유린하는 강제혁이 잔인하면서도 고혹적으로 느껴졌다.

“읏…….”

짧은 신음과 함께 강제혁이 서하의 목 안에서 성기를 끄집어냈다. 온전히 성적인 용도로 쓰인 입안이 온통 아리고 쑤셨지만 서하는 다음 차례를 알고 있었다. 서하가 눈을 꼭 감고 혀를 내밀자 희고 끈적한 정액이 서하의 입이며 뺨에 잔뜩 뿌려졌다. 입안에 들어온 것을 삼켜낸 서하가 몸을 돌려 엎드렸다. 제지하는 말이 없었기에 양손으로 엉덩이를 벌리고 계속해서 욱신거리던 뒤에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으읏…….”

“지금 뭐해요?”

보다 선명한 발음으로 묻는 저 물음의 의도를, 서하는 알고 있었다. 저건 저를 수치스럽게 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주인님께서… 자지를 먹여주실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요.”

“…왜?”

“구멍이 간지러워서요.”

부끄러워 미칠 것 같았다. 손가락을 하나 둘 넣어 안쪽을 넓히는 작업을, 강제혁의 눈앞에서 해내는 스스로가 말 그대로 노예 같았다.

“…오늘은 다른 말로 부탁해볼래요?”

또 다른 퀘스트에 긴장감이 번졌다. 술에 취한 것 같은데, 어떤 무리한 명령을 내릴지 가늠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제혁의 거근이 들어오기엔 아직 한참 준비가 필요했기에 뒤를 넓히는 걸 멈출 수도 없었다. 마음의 준비를 마친 후 그가 원하는 것을 물었다.

“어떤, 말이요?”

“‘자기’라고 불러 봐요.”

스스로 애널을 쑤석거리던 손가락이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멎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서하가 충격 받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마주친 눈빛은 평소와는 결이 다른 색을 띄고 있었다. 이제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강제혁은 말 그대로 만취 상태였다. 알코올에 절여진 상대와 플레이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취, 하신 것 같은데…….”

“그런데?”

부정도 하지 않는다. 미쳤나. 자기라니, 이건 방금 전 김산의 시비가 적중했다는 뜻이었다. 시비와 알코올의 앙상블…….

“싫어?”

“아…!”

강제혁이 이미 손가락이 들어있는 서하의 뒤에 제 손가락을 쑤셔 넣으며 물었다. 예상치 못한 삽입에 당황한 서하가 헛숨을 터트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자, 잠깐…….”

“왜 싫은데요?”

투정이라도 부리는 것 같다. 안쪽을 꾹꾹 누르며 이유를 추궁하는 그가 얄궂었다. 취한 사람을 상대로 홀로 멀쩡한 정신으로 답을 내놓아야 하는 서하만 곤욕스러웠다. 차라리 저도 술에 취했다면 얼굴에 철판이라도 깔 텐데, 자지를 먹여달라는 말보다 ‘자기’라는 호칭이 더 수치스러웠다.

“읏…! 강제혁, 씨, 아…!”

아예 체중을 실어 서하의 목덜미를 자근자근 물어대는 강제혁은 감당하기 너무 어려웠다. 서하가 제 뒤에서 손가락을 빼기 무섭게 다른 손으로 서하의 양손을 결박한 강제혁이 빈 곳을 제 손가락으로 메웠다. 결박당한 손목과 반강제적으로 쑤셔지는 뒤가 서하의 피학적 성향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시야가 흐려질 지경이었다.

“흣…….”

“불러 봐.”

눈 딱 감고 부르면 되는데, 생전 뱉어본 적 없는 단어에 입이 쉬이 떨어지질 않았다. 배려 없는 애무임에도 자극적이었고 엉덩이에 스치는 굵은 성기가 아쉬웠다.

“부르면 원하는 대로 자지 먹여줄 테니까.”

“자…….”

차라리 자지라고 부르면 모를까, 자기라고 부르는 건 너무……. 물론 자지라고 부르는 것도 웃기기는 했다. 사람한테 자지가 뭐야, 자지가.

“윽…!”

“집중 안 하지.”

절로 젖을 리 없는 구멍에 윤활액도 없이 쑤셔지는 손가락이 거칠고 몰인정했다. 그럼에도 그 통증으로 성기만큼은 질척하게 젖었다. 무참히 뒤를 헤집고 쑤시는 손가락의 움직임에 길고 얕은 쾌감이 느리게 이어졌다.

“흐, 아, 으윽…….”

“시키는 건 안 하면서 쑤셔주니까 좋다고 가?”

“자, 잘못, 아윽…!”

안쪽을 지분거리던 손가락이 뽑혀 나가고 빈자리에 발기한 좆이 푹 쑤셔졌다. 서하가 고개를 꺾으며 불규칙적인 호흡을 뱉는 사이, 반쯤 삽입되었던 성기가 아예 안을 넓히고 느리게 박혔다.

“헉, 흐으… 아…….”

묵직하게 안을 헤집는 굵은 것과 술 향기가 묻어나는 숨결, 등 뒤를 누르는 커다란 몸뚱이가 서하의 몸과 정신을 꼼짝 못하게 짓누르고 결박하고 있었다. 숨이 턱 막히는 쾌감과 통증, 그리고 만족감에 주체할 수 없이 몸이 떨렸다.

“…해 봐.”

살짝 벌어진 입술에 강제혁의 손가락이 닿았다. 서하가 깊게 삽입된 성기에 아플 지경인 뱃가죽을 잊으려 애쓰며 입술을 파들파들 떨었다.

“주, 인님 먼저, 해 주세요…….”

어차피 취했겠다. 너도 못하는 거 나 시키지 말아달란 마지막 저항을 뱉었다. 정말 싫으면 세이프워드라도 외치겠는데, 정신적 한계도 아닐뿐더러 남발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낸 수가 결국 맞불작전이라니.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여기서 강제혁이 못 하겠다고 하면 되려 제가 기분이 상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미쳐버리겠네. 침묵이 길어질수록, 이럴 바엔 그냥 쑤시던 거에나 집중했으면 하는 마음이 치솟았다. 이거 플레이는 맞는 거야?

“…자기야.”

낮고 조용한 목소리가 귓전에 꽂혔다. 다른 의미로 돋는 소름에 서하가 바짝 굳었다.

“왜 대답이 없어.”

그리고 강한 악력으로 머리채가 잡혔다. 복잡미묘해진 감정에 적응할 겨를도 없이 이어지는 강압적인 분위기에, 순간적으로 식었던 성기에 불이 당겨지듯 야릇한 감각이 퍼졌다.

“싫어?”

“아, 아윽…!”

어쩐지 차라리 그가 더 화를 내주었으면 좋겠다는 위험한 생각이 들었다. 술 한 모금 마시지 않은 머린데, 어쩐지 분위기에 취하는 것만 같았다. 뭣보다 김산이 만들어낸 이 간질거리고 오글거리는 상황이 야속했다. 대체 왜!

“우리가 평범하지 않은 관계라, 싫어요?”

성기를 쑤셔 넣은 채 몸을 바짝 붙이고 귓가에 속삭이는 말에 서하가 저도 모르게 잘게 떨었다. 알코올 향과 어우러진 낮고 축축한 목소리와, 안쪽을 자극하는 흉기가 어우러져 차분히 대답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

“읏, 그럴 리가 없잖아요……. 저도, 안 평범한데요.”

“그러면… 싫어하지 말아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이서하 씨가 날 싫어하는 건 계약 위반이니까.”

연말에 작성했던 정식 DS 계약서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술에 취해서도 어찌나 또박또박 발음을 잘 하는지. 서하가 이제 그만 사정해주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싫어할 리가 없는데도 이따금 저렇게 소유욕을 드러내곤 하는 강제혁은 소유 당하고 싶어 하는 서하의 어딘가를 자극하곤 했다.

“안 싫어해요. 흣…….”

“정말로?”

“…당연하죠.”

“그럼 불러 봐요. 자기야.”

지나치게 달콤한 호칭에 서하가 입술을 깨물었다.

“자…기야.”

정녕 제 입에서 나온 말이 맞기는 한 건지. 서하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눈을 질끈 감았다.

“착하다…….”

뒤통수에 떨어지는 입맞춤이 진했다. 이상하게 가슴이며 배 아래가 울렁거렸다. 그의 칭찬 한 마디에 숨이 차오르고 아래가 찌릿했다. 그리고 서하가 그 단어에 적응하는 사이 사정하지 않은 채로, 강제혁이 서하의 어깨에 고개를 떨어뜨렸다.

“주인님…?”

“으음…….”

“자요?”

“…….”

“자요?!”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숨소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강제혁의 주사의 끝이 갑작스러운 수면이라는 사실을.

“거짓말……. 가, 강제혁 씨. 자요? 진심으로?”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야…!”

90kg가 넘는 거구에 짓눌려 성기를 빼지도, 그렇다고 다시 박지도 못한 서하는 그대로 아침을 맞아야만 했다. 술에 취해 뻗은 이가 얼마나 무거운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곱게 잠든 강제혁을 치워내려 애를 쓰다가, 자극 당한 아래 탓에 불명예스러운 사정까지 해버렸다. 그렇게 그의 밑에 깔려 잠들지 못한 서하만이 남았다.

아침이 되어 강제혁이 잠에서 깼을 땐 몸살에 걸린 서하가 그 밑에서 끙끙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기상과 함께 발기한 강제혁의 성기가 서하의 안에서 부피를 늘리고 있었다.

“흐으, 빼, 주세요…….”

통증과 쾌감에 서하가 끙끙 앓으며 한 번 더 파정했다. 아침부터 야릇한 서하의 모습에 강제혁도 욕정을 느꼈으나, 그의 상태가 안 좋아 보였기에 치솟는 음심을 눌렀다. 이내 서하의 안에서 성기를 빼낸 강제혁이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어제 우리 섹스 했어요?”

“네…….”

진지한 얼굴로 묻는 강제혁의 말에 서하가 다크서클이 내려온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느리게 빠지는 성기에 서하가 우는 소리를 내며 짜증을 삼켰다.

“대체…….”

“강제혁 씨는 술 마시면 안 되겠어요. 금주해주세요…….”

심각한 표정으로 조건을 거는 서하를 보며 영문을 모르는 강제혁도 그저 고개를 끄덕여야만 했다. 결국 ‘자기야’ 사건은 그렇게 잊혀졌다. 어쩌면 다행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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