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권-5장. 주인과 노예 (5/24)

리버 오브 본디지(River of Bondage) 2권

5장. 주인과 노예

빗방울이 잘게 부서지듯 떨어져 내렸다. 걸음을 내딛는 속도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호흡은 자꾸만 흐트러지고 몸은 달아오르는데, 드러난 피부에 닿는 빗물의 온도가 차디찼다. 그 탓에 몸이 뜨겁다는 사실이 더 선명히 다가왔다. 안과 밖의 온도가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정문을 지나 강제혁의 집이 보일 즈음엔 눈이 다 풀려 있었다. 아는 사람을 마주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방금 전까지 결박되었던 손목이 아렸다. 빨리 아까처럼 묶이고 싶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자 오롯이 둘 뿐이란 사실이 더 극명하게 느껴졌다. 품 안에 가두듯 서하를 구석으로 몬 강제혁이 느리게 숨을 들이마셨다. 서하 역시 가만있는 것만으로 강제혁의 체취가 코에 담뿍 들어오는 자세에, 무참히 발기했다.

“들어가면 옷부터 벗어.”

분명한 반말이 서하의 몸을 더욱 더 뜨겁게 달궜다. 낮게 속삭이는 강제혁의 목소리에선 정욕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서하가 대답보다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급했다.

“대답을 해.”

“읏, 네.”

그런 제 조급함을 다그치듯 강제혁이 무섭게 채근했다. 얼마 안 있어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몇 배는 길게 느껴지던 시간이 지난 후에 강제혁의 집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문 닫히는 소리까지 색스럽게 들릴 지경이니 미친 게 틀림없었다. 이래서 강제혁의 중간고사가 전부 끝날 때까지는 만나지 않으려 했는데.

느리게 훑는 시선 때문에 긴장감이 팽만했다. 손이 자꾸만 미끄러졌다. 그 탓에 빗방울에 젖은 옷이 쉬이 벗겨지질 않았다.

“피어싱을 할까.”

“흐으…….”

반쯤 옷을 벗었을 때, 젖은 손끝이 유륜을 매만졌다. 서하가 풀린 눈으로 제 유두를 희롱하는 강제혁의 손을 바라봤다. 짧은 손톱이 예민한 부분을 꿰뚫을 듯 거칠게 애무하고 있었다.

“흐, 아……. 해, 주세요…….”

서하가 흐릿한 눈으로 겁도 없이 대답을 내놓았다.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아는 걸까. 지독하리만치 순수한 서하를 강제혁이 열띤 눈으로 바라보았다.

“지금 무슨 말 하는지 알고는 있어?”

“흐, 알아요. 으응…….”

“씨발…….”

색기를 띤 대답에 그가 희게 드러난 서하의 목덜미를 깨물었다. 아득, 망설임 없이 급소를 물어뜯는 행위가 마치 포식자의 그것처럼 잔인했다. 서하의 입에서 새된 신음이 터졌다. 평생 수절을 하고 산 주제에 요 며칠 강제혁의 손을 타지 못 했다고 안달이 난 몸이 우스웠다.

서하가 떨리는 손으로 바지를 벗고 속옷을 내렸다. 엉덩이 골 사이로 느껴지는 단단한 것은 옷감 안에서도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이대로 꿰뚫리고 싶다. 통증을 수반한 삽입이 간절했다. 갈증이 났다. 서하가 엉덩이를 부비는 것을 느낀 강제혁이 대번에 서하의 머리채를 잡았다.

“…버릇없이 굴지 마.”

“흐으, 흐……. 제발, 흑…….”

타박하는 목소리에 서하가 몸을 떨었다. 물기가 느껴지는 손이 달아오른 엉덩이를 세게 쥐어 잡았다. 녹녹한 숨이 짧게 퍼졌다.

“아…!”

“문에 기대서 엉덩이 내밀어요.”

이성이 돌아온 듯한 존대가 못내 서운했다. 하지만 문에 기대라는 말에 서하가 아래를 바짝 조였다. 현관에서 더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걸쳐진 셔츠를 내려 손목을 결박한 강제혁이 서하를 문가로 밀었다. 처참히 구겨진 흰 셔츠가 결박구가 되어 제 손을 옴짝달싹 못 하게 가로막고 있었다. 차가운 철문에 닿는 젖꼭지가 아릿한 동통에 꼿꼿이 섰다. 이 문 하나를 넘어서면 바깥이다. 강제혁이 사는 층엔 다른 집도 있었고, 택배 기사나 경비원이 오갈 수도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구멍이 욱신댔다. 그럼에도 수치심이 드는 걸 애써 참고 엉덩이를 내밀자 짝 소리가 나는 스팽킹이 이어졌다.

“하으, 윽! 아!”

발끝이 절로 곱아 들었다. 간만의 매질에 성기에서 물이 뚝뚝 흐르기 시작했다. 좋아서 미칠 것 같다. 뇌가 타 버릴 것 같아. 잡힌 머리채로 인해 그 아래 피부까지 자극되는 느낌이 선연했다.

“숫자 세.”

“흣, 아, 두, 둘…….”

열기와 노기가 동시에 느껴지는 목소리가 윽박지르듯 명령했다. 물기 있는 손으로 엉덩이를 내리치니 통증이 평소보다 배로 다가왔다. 서하는 차가운 현관에 이마를 부비며 그 통증이 주는 쾌감을 즐겼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타액이 흘러 내렸다. 숫자가 커질수록 흥분이 치솟는다. 이래서 만나지 않으려 했는데, 몸은 이성의 통제에서 벗어나 희열을 느낀다. 다만 삽입 없는 스팽에 구멍이 간질거렸다. 꿰뚫리고 싶다.

“하으, 아, 오십…….”

정신없이 맞다보니 어느새 오십 대였다. 손으로 맞는 건 허용범위가 다른 도구보다 컸다. 이젠 뭐라도 물려주었으면 싶은데, 얼얼한 엉덩이가 절박하게 흔들렸다. 전체가 빨갛게 달아오른 둔부를 짙은 눈으로 보던 강제혁이 골 사이에 숨겨진 구멍을 핥듯 매만졌다.

“아…!”

파드득, 달싹이는 몸이 노골적으로 바라는 바를 드러냈다. 손가락을 물고 싶어 달싹이는 구멍이 음란하고 간사했다.

“너, 넣어 주세요…….”

서하가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로 간청을 해보았지만 강제혁은 그저 입구 주변을 눌러댈 뿐이었다. 잠깐의 침묵이 서하를 더 안달 나게 했다.

“…뭘 넣어줬으면 좋겠는데?”

서하의 귓바퀴가 붉게 달아올랐다. 삼류야설도 아니고. 하지만 효과는 대단했다. 당장 닿아있는 것은 손가락이었지만 손가락 따위보다 더 굵고 긴 것이 필요했다. 두껍고 단단한 살덩이…….

“말해 봐.”

기어코 제 입에서 그 단어를 듣고자 하는 강제혁이 심술궂었지만 싫지 않았다. 오히려 이 상황이 야하다고 생각하게 되니까. 서하가 떨리는 입술을 열고 혀를 움직였다.

“주인님 자지요…….”

단어만으로 수치심이 가중된다. 저보다 한참 어린 남자에게 자지를 넣어 달라 말하는 자신이 창피하고, 그 말을 하며 흥분하는 스스로가 쪽팔렸다.

“어디에?”

“흐으…….”

입가와 뒤를 동시에 문지르며 묻는 말에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할 수 있다면 동시에 물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서하는 남자의 성기가 고팠다. 아무렇게나 능욕 당하고 싶다. 홀로 자위를 하던 때에도 언제나 입과 뒤에 딜도를 동시에 물고 쑤석이곤 했었다. 어쩌면 혼자 할 수 있는 가장 극한 행위가 그것이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지금은 그저 한계까지 몰리고 싶었다. 생각할 틈조차 없이 농락당하고 싶었다. 그래서 대답이 느려졌다.

“못 고르겠으면 내가 고르고.”

입과 애널 사이에서 망설이는 서하를 보고 혀를 찬 강제혁이 그대로 서하의 머리채를 잡아 바닥에 주저 앉혔다. 서하의 눈앞에 강제혁의 바지춤이 있었다. 뺨이 닿기 직전이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노력을 해야지.”

“흐…….”

“손은 쓰지 말고.”

셔츠에 구속된 손을 얌전히 내린 서하가 옷감 안에서 단단히 선 강제혁의 성기에 얼굴을 문댔다. 섬유 위로도 야한 향기가 나 입안에 침이 가득 고였다. 빨고 싶다.

“빌어 봐.”

달콤한 명령에 서하가 숨을 깊이 들이 마시곤 입술을 달싹였다.

“…빨게 해주세요.”

발갛게 달아오른 눈가와 젖은 입술이 애걸의 말을 뱉자 강제혁의 눈이 한층 더 음습해졌다. 허락의 의미를 담은 턱짓이 떨어지자 서하가 다급히 이로 지퍼를 내리고 혀를 내밀어 속옷 위를 핥아 올렸다. 버클을 푸는 게 힘겨워 끙끙대자 강제혁이 자비롭게도 직접 성기를 꺼내주었다. 눈앞에 발기한 성기가 보이자 서하의 호흡이 더 빨라졌다. 색정적인 빛깔을 한 성기가 우람한 크기를 자랑하며 빳빳이 서 있었다. 매번 보는 거지만 크고 흉악한데, 또 예쁜 것 같다. 남근 숭배 사상이 이렇게 탄생했나, 싶을 정도로.

서하는 무릎이 아팠지만 자세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타액이 고인 혀로 귀두부터 머금기 시작했다. 비로소 갈증이 해소될 기미가 보였다.

“하…….”

나직하게 떨어지는 강제혁의 신음이 마치 한숨처럼 들렸다. 서하가 목구멍 안으로 제 몫을 삼키며 성기를 더욱 깊이 물었다. 턱이 빠질 것 같은 크기였으나 개의치 않았다. 서하는 한 입 한 입 음경을 먹어가며 몸을 떨었다. 머리가 터질 것처럼 뜨거웠다.

“후, 남자 좆 무는 걸 이렇게 좋아해서야…….”

“응, 흐으……. 학, 큽…….”

“내 시험 핑계 삼아서 다른 데서 벌리고 다닌 건 아니겠지?”

강제혁이 머리채를 세게 쥐고 성기를 푹 처박는 탓에 눈앞에 별이 튀기는 듯했다. 한계까지 벌어진 목구멍에 헛구역질이 나오려 했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참았다. 생리적인 반응으로 터진 눈물이 서하의 뺨을 타고 흘렀다. 강제혁은 말없이 서하의 입안으로 성기를 깊게 박아 넣었다. 성기의 커다란 부피감으로 숨 쉴 틈조차 없이 목 안이 빼곡하게 찼다. 산소가 부족해진 서하의 시야가 점점 까맣게 번졌다. 다급해진 서하가 강제혁의 바짓가랑이를 꾹 쥐자,

“흑, 크……. 허억…!”

순식간에 성기가 빠져나가고 침이 턱 끝을 따라 줄줄 흘렀다. 급작스레 산소가 들어오자 물에 빠졌던 사람마냥 게걸스런 호흡이 이어졌다. 눈물과 타액으로 범벅이 된 서하의 얼굴에 손찌검이 떨어졌다. 돌아간 고개가 얼얼하다. 뺨을 얻어맞은 건 처음이었다. 그리 아프지 않았음에도 모욕적인 기분에 제 아래도 사정 직전으로 달아올랐다. 서하의 입꼬리가 쾌감으로 인해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 그 모습을 만족스레 바라보던 강제혁이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침실까지 기어 가. 오늘은 심문을 좀 하죠.”

“네…….”

순종적인 대답 말곤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무엇도 넣지 못한 엉덩이가 불만족스레 움찔거렸다. 그렇게 맞고도 여전히 부족했다. 강제혁이 말하는 심문의 의미 따위를 의심할 새도 없이 서하가 기기 시작했다. 치켜 올라간 엉덩이에 시선이 닿는 게 느껴졌다. 등줄기가 오싹했다.

“비가 많이 오네.”

“…….”

빗줄기가 제법 굵어진 모양인지 창 너머로도 소음이 상당했다. 단조롭게 날씨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는 아무렇지 않아보였다. 네 발로 기어 침실로 향하는 제가 이질적으로 느껴질 만큼. 이윽고 서하가 침실에 당도했다.

녹녹한 방안에 기분마저 질척해지는 착각이 일었다. 심문을 하겠다더니 방 한 가운데, 푹신해 보이는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손과 발을 구속하기 좋게끔 팔걸이와 다리 부분에 수갑과 족갑이 연결된 모습이었다. 서하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의자의 정중앙에 딜도가 부착된 모양새가 음산했다. 어두컴컴한 실내에서도 빤히 보이는 음란한 자태였다.

“앉아.”

거부권은 없었다. 어떻게 앉아야 할까. 천천히 엉덩이를 내려 메마른 입구를 딜도의 선단에 꾸욱 눌러 보았다. 쉽게 들어가지 않는 것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강제혁은 문 앞에 선 채로 서하를 응시할 뿐이었다. 차갑고 건조한 모조 성기는 그대로 삼키기엔 버거운 감이 있었다.

“흐, 안 들어가요…….”

“하…….”

“빠, 빨게 해주세요.”

기시감이 느껴지는 청을 다시금 뱉었다. 젤 같은 것은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다. 눈썹 새를 좁히고 턱을 꾹 다문 강제혁의 낯에 서하가 무릎을 꿇고 그의 발등에 얼굴을 비볐다.

“제발…….”

“3분 줄 테니까, 빨아서 적셔요. 이서하 씨 구멍이 삼킬 수 있게.”

3분. 그와 동시에 강제혁이 시계를 쳐다봤다. 다급해진 서하가 의자에 달라붙어 딜도를 타액으로 적셨다. 실리콘 재질의 딜도는 무미했지만 썩 좋은 식감은 아니었다. 강제혁을 만나기 전에는 딜도를 빨며 자위를 하곤 했는데, 새삼 어떻게 이걸로만 자위를 했던 건지 의아할 정도였다. 장난감을 물고 빠는 서하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던 강제혁이 몸을 내려 드러난 구멍을 매만졌다.

“흣…!”

“도와주는 건데 왜 이렇게 놀라.”

살짝 미끈거리는 손가락이 구멍을 헤집고 들어서자 서하가 엉덩이를 흠칫 떨었다. 우악스레 안을 비집는 손가락에 벌어진 구멍이 빠듯했다. 강제혁의 말대로 지금 서하는 도움을 받는 중이었다. 딜도는 제법 크기가 있어서, 그대로 밀어 넣기엔 무리가 있었다. 더군다나 강제혁을 만나지 못하는 동안 자위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뒤가 잘 벌어질 지도 의문이었다.

그러던 차에 주인님께서 자비롭게 뒤를 넓혀주신다니 엎드려 절을 해도 모자란 상황이었다. 문제는 다소 거친 핑거링에도 서하가 느끼고 있다는 점이었다. 손가락으론 부족했지만, 그래도 가뭄에 단비 같았다. 뒤를 쑤석이는 손길에 정신이 나갈 것 같다. 서하가 딜도를 적시는 것도 잊고 기다리던 침입에 성기를 바짝 세웠다.

“하, 으응…….”

“필요 없어? 준비 없이도 이 정도는 먹을 수 있다는 건가.”

“흣, 아니, 아니요. 쑤셔 주세요…….”

서하가 달디 단 신음을 흘리며 애걸했다. 그리고 이미 부어터진 엉덩이에 매질이 떨어졌다.

“흐윽…!”

“3분 안에 저기 앉아야 한다는 거 잊지 마.”

의자에 매달려 몸을 떠는 서하에게 강제혁이 일갈했다.

“내가 너 엉덩이 흔들라고 쑤셔 준 게 아니잖아. 버릇없이 뭐하는 짓이야?”

“자, 잘못했어요…….”

낮은 꾸짖음에 서하가 몸을 자꾸만 떨었다. 이 와중에도 혼나니까 좋아서 죽겠다. 열 오른 머리로 서하가 딜도를 적시는 데 집중하려 했다.

“알아서 쑤시고 빨아서 자리에 앉아. 한 번만 더 버릇없게 굴었다간 알몸으로 공원산책을 하게 될 거야.”

뇌리에 꽂히는 경고에 등골이 다 오싹했다. 서하는 뒤로 손을 뻗어 입구를 벌리고, 혀를 내어 딜도의 선단을 축였다. 얼마나 시간이 남은 걸까. 뒤가 채 벌어지기도 전에 몸을 움직였다. 입구에 젖은 물건을 갖다 대고 엉덩잇살을 벌려 최대한으로 머금었다. 물론, 버거웠다.

“1분 남았는데.”

그런 서하를,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강제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꾸만 좁아지는 아래를 다그치듯 몸을 내렸다. 내벽이 쓸리는 느낌에 소름이 돋아났다. 아프다. 그리고 좋아…….

“30초.”

서하의 떨리는 허벅지가 점점 의자의 푹신한 부분에 잠겨 들어가고 있었다. 반쯤 머금었을까. 열과 성을 다해 딜도에 묻혔던 타액은 마른 지 오래였다. 팔걸이를 잡고 무게를 실어 엉덩이를 내리다, 일순 입구가 찢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일었다.

“아, 아파요…….”

“아픈 걸 좋아하잖아.”

“찢, 찢어질까봐…….”

공포심에 눈물이 방울방울 맺혔다. 그러고 보니 강제혁이 오늘 저를 심문한다고 했다. 뭘까. 두려움이 곱절로 늘어가는 순간 긴장으로 굳은 어깨에 커다란 손이 얹어졌다.

“정말 손이 많이 가. 알아요?”

“하윽…!”

“들어가잖아. 엄살 그만 부려.”

쑤욱, 억지로 주저앉히는 힘에 모조 성기가 엉덩이에 거칠게 삽입되었다. 빠듯하게 벌어진 입구에 예리한 통증이 닿아 서하의 발끝을 절로 곱아들게 만들었다.

“아, 아…….”

안타까운 신음이 자꾸만 번졌다. 안이 짓이겨진 것만 같았다. 강제혁은 그런 서하를 차갑게 내려다보곤 팔다리에 수갑과 족갑을 채워주었다. 말 그대로 빼도 박도 못하는 형국이었다.

“편하게 앉아야지.”

배려인지 꾸중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와 함께 서하의 몸이 의자 깊숙이 앉혀졌다. 더욱 깊게 박혀드는 물건에 서하가 소리 없는 울음을 터트렸다. 의자 등받이에 부착된 목걸이까지 채우고 나자 완벽히 박제되고 말았다.

“5분 지났네요. 어떡할까.”

“자, 잘못했어요. 용서를…….”

시계를 가리키는 강제혁의 손짓에도 서하는 차마 그곳을 보지 못 했다. 정신이 없었다. 정말 5분이 흐른 건지, 그가 거짓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뭐가 됐건 흥분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구속당한 사지 탓에 성기에선 쿠퍼액이 질질 흐르고 있었다. 눈썹을 찌푸린 강제혁이 주머니에서 링을 꺼내 서하의 부푼 성기에 채워주었다.

“아으윽…….”

“심문 받는 사람이 싸면 안 되지.”

냉정한 말에도 서하의 입꼬리가 경련하듯 움직였다. 좋아서 돌 것 같아. 맞아서 욱신거리는 엉덩이도, 억지로 실리콘 성기를 머금은 아래도, 결박당한 사지도 전부 너무 좋아서 죽을 것만 같았다.

“묻는 말에 똑바로 대답하지 않을 때마다, 단계를 올릴 거야.”

“흣, 응…….”

무슨 단계를 말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서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제혁이 으름장을 놓을 때마다 오싹오싹한 쾌감이 전신을 약하게 휩쓸어댔다.

“거짓말하면, 여기에 가둬두고 죽을 때까지 성노예로 살게 해주지.”

“흐, 하으…….”

“이서하.”

강제혁이 말을 뱉을 때마다 서하는 눈에 띄게 흥분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이런 종류의 더티토크엔 아직까지 면역이 없었으니까. 그런 서하를 바라보는 강제혁의 눈 역시 타들어 갈 듯 뜨거웠다. 전신이 구속된 채로 흥분에 바들바들 떠는 섭의 모습을 감흥 없이 볼 돔은 없었다. 하지만 일단은 알아내야만 하는 일이 있으니 최대한 숨을 죽이고 물었다.

“오늘 학교엔 왜 온 거야.”

“흐, 으…….”

고분고분 대답해야 하는데, 저를 뜯어 먹을 듯 보는 시선에 더 아프고 싶어 입술이 움직이질 않았다. 그런 서하를 보던 강제혁이 손에 든 리모컨의 버튼을 눌렀다. 서하는 그제야 강제혁이 말하던 단계가 뭔지 알 수 있었다. 안에 삽입된 딜도가 떨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 아흐으…. 아, 으응…….”

여린 진동이 내벽을 얕게 울렸다. 팔걸이를 쥔 서하의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이 정도 자극으로도 쌀 것 같았다.

“대답해.”

“흐, 읏. 선배가… 불러서요…….”

“무슨 선배.”

“아으, 응…. 읏! 아, 여자, 여자 선배요.”

선배란 단어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강제혁이, 왜 귀여운 건지. 서하가 엉덩이를 비비며 몸을 떨었다. 여자 선배라는 말만으로 그가 안심해 줄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사실을 고했다.

“김산은?”

“흐, 아…!”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고 단계를 올리는 바람에 서하가 크게 바르작거렸다. 물론 그래봤자 구속된 몸이 움직이는 덴 한계가 있었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무는 서하의 모습에 강제혁이 단계를 더 높였다.

“만났군.”

“하, 으응……. 가, 갑자기, 온 거라, 아…….”

“김산이랑 무슨 관계야?”

다정하게 묻는 말은 예리한 칼날을 숨기고 있었다. 서하가 쾌감에 떨다 강제혁을 올려다봤다.

“대답하기 싫어?”

“흐, 으, 그냥, 선배…….”

“거짓말하면 어떻게 한다고 했는지 잘 생각해봐.”

머리채를 잡는 강제혁의 손길이 거칠었다. 거짓말을 하면, 이 집에 가둬놓고 성노예로 쓰겠다고 했다. 싫지 않았다. 타인의 의지대로 쓰임 당할 육체가 되어 사는 삶이. 남들이 들으면 끔찍하다고 하겠지만, 서하에겐 아니었다. 아무 생각도 고민도 없이, 망가지고 싶다. 더군다나 주인이 강제혁이라면. 그라면.

“벌이 벌 같지가 않지.”

“하, 읏……. 아!”

리모컨의 스위치가 끝까지 올라가는 게 보였다. 번개가 창밖을 희게 적셨다. 동시에 쾌감의 불꽃이 서하의 시야를 깜깜히 메웠다.

***

장대같이 내리는 빗줄기가 거무죽죽한 콘크리트 바닥을 무참히 때렸다. 녹진녹진한 공기가 피부를 습하게 감싸고 든다. 서하의 핏기 없던 낯빛이 자꾸만 떠올랐다. 얼굴을 본 지 오래 되어 원래 그토록 희었던 건지, 아니면 저를 봤기 때문에 창백하게 질린 건지 알 수 없었다.

김산은 가지 말라고 한 마디 말도 못 건넨 스스로가 비참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때, 혜인이 유리잔으로 테이블을 두드려 정적을 깨부쉈다.

“아, 술맛 떨어져.”

“…안 마신다고 했잖아요.”

소주잔을 앞에 두고 죽상을 한 김산을 보던 혜인이 타박의 말을 던졌다. 쯧, 혀 차는 소리가 이어졌다. 문단속하고 가랬더니 머저리마냥 연구실에 우두커니 서 있는 놈을, 혜인이 멱살을 잡고 의자에 주저 앉혔다. 그리고 연구실 냉장고에 상비되어 있는 술병을 와르르 꺼내 억지로 술을 먹이는 상황이었다.

“너 진짜 개진상이다.”

“누나가 신경 쓸 일 아니에요.”

그럼에도 신경이 쓰인다. 김산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같이 일하는 인간의 능률이 떨어지니 짜증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김산에게 이별을 고한 입장이라 더 그렇고. 혜인은 자신이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도 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찝찝한 것을 질색하는 혜인에게 작금의 상황은 별로 좋지 못했다.

“이서하 사생활 지켜. 네 거나 털어놔.”

“하…….”

“싫으면 술이나 다 비우고 가던지.”

김산은 테이블을 가득 메운 술병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산 역시 혜인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어찌 보면 제 탓이기도 했다. 이 나이 먹고 감정 하나 쉬이 정리하지 못 해 여기저기 민폐를 끼치고 있었으니까.

결국 김산이 투명한 액체가 든 잔을 기울여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연구실에 유리로 된 술잔을 상비하는 혜인은 참… 보기에 괴란했다.

“…으.”

식도가 타들어가는 거친 타격감과 함께 과일을 닮은 향이 진득하게 터졌다.

“원샷을 다 하네.”

“고량주인 줄 몰랐으니까 원샷 했죠.”

“중국에서 사온 거야. 괜찮지?”

“…얼마 줬어요?”

“한 400위안 줬나.”

“좋은 술이네.”

이 와중에도 서하가 고량주 좋아하는 것이 떠오른다. 김산은 병에 새겨진 고량주의 상품명을 되뇌다 한숨을 내쉬었다. 인상을 찌푸린 김산을 보던 혜인이 맥주병을 들이밀었다. 얼마나 정신이 없으면 잔에 따라진 술이 뭔지도 모르나. 술병을 받아든 김산이 제 잔을 채우는 사이 혜인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습윤한 공기 속에 탁한 연기가 퍼져 나갔다. 김산이 맥주를 한 잔 들이켜고 입을 열었다.

“서하……. 좋아한 줄 몰랐어요.”

“그러니 나랑 결혼하겠단 헛소리를 했지.”

“언금이라면서요.”

“나는 언급해도 돼.”

담배를 물고도 정확한 발음으로 혜인이 쪼듯 말했다. 무슨 정신이면 연구실에서 담배를 피워. 하지만 딴지를 걸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한숨을 내쉰 김산이 복잡한 낯으로 중얼거렸다.

“남자 좋아해본 적 없어서, 사실은 아직도 혼란스러워요.”

“사람 좋아하는 게 다 똑같지. 이서하는 뭐래?”

“모르겠어요. 그 뒤로 도망치듯 뛰쳐나가서.”

그 말에 혜인이 방금 전 보았던 서하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말을 해줘야 하나.

“난 서하도 너 좋아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누나가 착각한 거예요.”

혜인은 작년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김산이 저렇게 딱 잘라 말하는 걸 보니 이젠 아닌가 보다. 제가 아까 본 서하의 표정도 얼추 그랬다. 사람 감정이라는 게 유구해봤자 기한이 있기 마련이니까. 게다가 새로운 자극이 생기면 변할 수도 있고.

“서하 애인 생겼어?”

넘겨짚듯 물어본 것인데, 김산이 입술을 깨물었다. 혜인은 서하와 함께 있던 그 남학생이 서하의 애인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 남자는 키가 무척 컸다. 서하보다 한 뼘 정도? 덩치도 좋았고. 나이도 어릴 텐데. 이 모든 정황을 토대로 냉철히 판단했을 때, 김산에게는 여러모로 승산이 없는 게임이었다.

“그럼 포기해.”

“…그래야죠.”

늦은 대답에 혜인이 눈썹을 꿈틀했다. 포기할 생각 없는 것 같은데.

“서하 뺏고 싶어?”

이번엔 아예 대답이 없다. 혜인의 입가에 헛웃음이 번졌다. 헤어지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주제에 저와 결혼을 하려 했던 김산이 괘씸했다. 먼저 차서 다행이다.

반면 김산은 그 말에 깊은 고민에 빠진 스스로를 규탄하는 중이었다. 뺏고 싶냐고? 서하를 강제혁에게서 떼어내곤 싶었다. 제가 서하를 갖지 못하더라도,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는 절대 안 될 말이었다. 만나지 못한 동안 서하의 몸에 늘었을 상처를 생각하면 숨이 턱 막혀왔다.

“이 새끼 이거 안 되겠네.”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니긴 새끼야. 애인 있다는데 뺏고 싶어 하는 게 안 될 새끼지. 될 새끼냐?”

“누나가 몰라서 그래요.”

“뭘 몰라? 이번에도 서하 프라이버시 타령 할 거야? 너 그거 아냐? 너 지금 다 말한 거나 다름없어.”

엄연히 따지자면 다 말한 건 아니지만, 은연중에 몇 가지는 흘렸다. 김산은 혜인에게 넘어가 주절주절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은 스스로를 질책했다. 혜인이 빈 잔에 술을 따르며 김산에게 물었다.

“승산은 있어?”

있다고 생각하면 쓰레기인 걸까. 서하가 강제혁을 비호하긴 했으나, 건조한 눈망울에선 애달픈 사랑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서하가 강제혁에게 휘말린 거란 생각이 들 뿐이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파야지. 별수 있나.”

모호한 혜인의 말에 김산이 술잔을 연이어 비웠다. 서하를 놓고 싶지 않았다. 서하에게서 강제혁이 남긴 상처를 지우고 싶었다. 처음부터 다시 제대로 된 사랑을 가르쳐주고 싶다. 모든 것이 혼란한 가운데 그것만은 분명했다.

“무슨 봄비가 저렇게 무식하게 와. 춥게.”

혜인이 단조롭게 말했다. 과연 그 말대로 빗방울이 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싸하게 울려 퍼졌다. 억수가 퍼붓듯 내리는 와중에 자줏빛 목련이 처연히 흔들거렸다. 이 비가 그치면 빗방울을 양분 삼아 봄꽃이 흐드러지게 필 것이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아닌 척 얕게 입꼬리를 올리던 서하가 보고 싶었다.

***

가슴팍이며 허벅지가 빨갛게 물들도록 매를 맞은 서하가 벌어진 입술을 정돈하지 못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온몸에 꽃이라도 핀 것 같다. 봄이 온 게 제 몸으로 온 것 같다. 맞는 게 좋아 강제혁의 질문에 애매한 대답을 내놓은 대가였다.

“김산이 그냥 선배라는 말을 나더러 믿으란 거야?”

“흐으, 아……. 진짜예요…….”

젖꼭지를 비트는 손길에 서하가 턱을 바르르 떨었다. 내벽을 달구는 딜도와 아릿한 통증을 주는 매질이 열 오른 머리를 더욱 멍하게 만들었다. 사정하고 싶다. 그런 생각밖에는 안 들었다.

“흐악…!”

“내가 화냈으면 좋겠어? 매를 벌지, 아주.”

“자, 잠시만, 아!”

방울이 달린 집게 모양의 니플 클램프가 이미 부은 젖꼭지를 깨물듯 매달렸다. 울음소리를 닮은 신음이 터졌다. 서하가 통증에 몸을 떨 때마다 짤랑거리는 예쁜 소리가 울렸다. 진즉부터 한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했는데, 쾌감을 느끼는 것엔 상한선이 없는 모양이다. 서하가 구속된 몸을 비트는 사이, 까맣게 젖은 강제혁의 눈이 느리게 그 모습을 훑었다.

“언제부터 알고 지냈어?”

“하, 하으윽, 스무 살 때부터요…….”

서하에게 대답을 피할 정신 같은 건 날아간 지 오래였다. 사정하고 싶다. 그리고 좀 더 폭력적인 삽입이 절실했다. 진동에 내벽이 저릿할 지경이었지만, 딜도로는 부족했다.

“10년?”

“네, 흐, 으응…….”

셈을 마친 강제혁이 햇수를 읊었다. 제 나이를 말해준 적이 있던가. 서하는 지나가듯 그런 생각을 했지만 상관없었다. 나이를 알고 말고가 뭐가 중요해. 지금 이 상황에.

“둘이 사귀었던 건,”

“아, 아니, 흐, 그런 적 없, 어요.”

“평범한 선후배 사이라고?”

“네, 흐, 읏……. 주인님, 저 이제, 아, 제발…….”

“끝까지 거짓말을 하네.”

오싹할 만치 냉정한 목소리였다. 사귀었던 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평범한 선후배 사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김산이 제게 고백했다는 말 따위는 할 수 없었다. 멍한 머리로도 아닌 건 알아서.

“그 남자가 이서하 씨 좋아하는 것 같던데.”

“하으윽, 아, 아아…!”

빠르게 묻는 목소리엔 신경질적인 분노가 서려있었다. 눈치도 빠르다. 당사자인 저도 몰랐던 것을 강제혁이 알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생각을 이어갈 새도 없이 검붉게 달아올라 팽팽히 선 성기를 쥐어짜듯 잡아채는 손길에 서하가 몸서리를 쳤다. 젤이라도 바른 건지 질척한 액체에 젖은 손이 끔찍하게 자극적이다.

“하, 하아, 응, 흐으……. 그만, 읏…….”

“왜 대답을 못 해?”

“아, 아윽, 그런, 거 아니…….”

“씨발…….”

낮은 욕설이 강제혁의 입술을 뚫고 터졌다. 끝까지 제게 관계를 숨기는 서하가 괘씸했다. 분명 한계일 텐데. 파들파들 떨리는 허벅지는 보랏빛 멍이 들어 가엾게 보일 지경이었다. 물론 강제혁의 눈엔 음란하게만 보였지만.

결국 몸을 비틀며 신음하는 서하를 보다 못한 강제혁이 구속구를 풀고 끙끙대는 서하를 뽑아내듯 안아 올렸다.

“하으윽…!”

순식간에 안을 메우던 모조 성기가 뽑혀 나가고 둥글게 벌어진 구멍의 안쪽으로 찬 공기가 들어찼다. 조밀한 구멍이 뻐끔거리며 음란한 소리를 찔꺽하고 냈다. 서하가 충격에 덜덜 떨며 강제혁의 몸에 매달려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 사이 강제혁은 그런 서하의 면면을 씹어 삼킬 듯 눈에 담았다. 제 손으로 물들인 살갗이었고, 제가 가르친 몸이었다. 그런 것에 집착하는 스스로가 돌연 유치하게 느껴졌지만 제 것을 탐내는 다른 이의 야욕에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남자가 서하를 좋아한다는 걸 확신한 순간부터는 더더욱.

“이서하.”

강제혁이 침대 위에 서하를 내려놓으며 짧게 이름을 불렀다. 존칭 없이 떨어지는 제 이름 세 글자에 서하가 가쁘게 한숨을 내쉬었다. 푹신한 침대에 등이 잠겼지만 긴장될 뿐 편안함이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서하가 뻐끔 벌어지는 아래에 스치듯 닿는 성기를 느끼며 다리를 벌렸다. 시키지 않아도 아는 것처럼, 오금을 손으로 쥐고 강제혁을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흉흉한 남근이 제 골 사이를 뚫을 듯 비비고 있었다.

“너, 넣어 주세요……. 흐, 읏…….”

강제혁은 제 것을 먹고자 탐욕스레 벌어진 구멍을 응시할 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강제혁이 사정을 해야 제 성기를 막고 있는 링도 풀어줄 텐데, 그럴 기미가 보이질 않으니 서하는 딱 죽을 노릇이었다.

“주인, 님, 제발…….”

“먹고 싶어?”

“네, 주인님 좆물, 먹여 주세요. 흐으…….”

갈급하게 청하는 목소리가 엉망진창으로 떨리고 있었다. 울며불며 저를 바라는 서하를 가만 보던 강제혁이 성기 끝을 붉게 달아올라 움찔거리는 구멍에 맞추었다. 귀두 끝을 머금고자 엉덩이가 달싹이는 모양이 관능적이었다.

“내 이름 불러 봐.”

유치할지언정 듣고 싶다. 서하가 ‘강제혁’을 원한다고 말해주었으면 했다. 실핏줄이 터진 눈으로 서하를 씹어 삼킬 듯 바라보던 강제혁이 낮게 말했다. 그런 강제혁의 생각을 알지 못하는 서하는 그저 그의 명령대로 입술을 열었다.

“강제혁… 씨.”

“더 말해.”

“강제혁 씨 좆물 먹, 으응, 하, 아으, 아악…!”

이윽고 서하가 고대하던 것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한 번에 처박힌 성기는 마치 불에 달군 쇠기둥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내내 머금었던 딜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굵기와 길이에 호흡이 죄 멎었다. 죽을 것 같다. 뜨거운 살 기둥에 꿰뚫린 서하가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입술을 뻐끔거렸다.

“흐으, 아, 윽, 읍……!”

강제혁이 낮게 신음을 뱉으며 그런 서하의 입안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동시에 조금 남았던 기둥의 밑 부분이 서하의 안을 더욱 벌리고 들어섰다. 끝까지 삽입된 성기 탓에 배가 답답했다. 까슬한 음모가 회음에 닿고 살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힘 안 빼?”

“하, 아아, 읏, 아, 악, 하, 제, 제발…….”

콱콱 안을 비집고 쑤셔대는 성기가 주는 쾌감과 통증이 지나쳐 해일이라도 몰려오는 것 같았다. 별안간 하늘이 번쩍하고 밝아졌다. 짧은 시차를 두고 시끄러운 천둥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서하는 그런 것 따위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강제혁의 몸짓에 흔들릴 뿐이었다. 어쩌면 눈앞이 연거푸 희게 번지는 탓에 인식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너에 대한, 권리가, 다 나한테 있다는 거, 흐, 잊지 마.”

“아, 아읏, 으응, 하, 조, 좋아, 아아…….”

자꾸만 치미는 괴이한 소유욕과 일렁이는 감정에, 강제혁이 서하의 뇌리에 각인하듯 말했다. 서하는 안을 들쑤시는 성기에 엉망진창으로 낯을 적시며 강제혁의 것을 머금었다. 폭력적인 두께의 좆이 거친 움직임으로 쾌감을 느끼는 지점을 정확하게 짓눌렀다. 눈앞이 희게 번지는 걸 넘어서 주체할 수없이 몸이 떨렸다. 사정하지 못한 채로 수없이 절정을 맞는 느낌은 진절머리가 나도록 좋았지만 앞이 당겨 견디지 못할 지경이었다.

“아, 학, 하아, 으읏, 싸, 싸고 싶…….”

정말 한계였다. 눈가가 죄 짓물러 아릴 참이었다. 발기한 후 사정하지 못한지 얼마나 되었더라. 죽을 것 같아……. 제 주인님을 사정시킬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서하가 흐린 시야로 강제혁의 입술을 찾아 혀로 축였다. 입맞춤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그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세이프워드를 제외하면, 최후의 수단이었다.

“하…….”

제 입술을 빠는 서하의 몸짓에 강제혁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서하가 먼저 시도한 입맞춤은 강제혁에게 꽤 괜찮은 수였다. 거친 삽입에 앓는 소리를 흘리며 흔들리던 서하가 제 입술을 빠는 것은 지나치게 자극적이었고, 강제혁이 내심 바라던 것이기도 했다. 저 때문에 이 지경이 되고서도 끝까지 저를 찾는 서하가 기꺼웠으니까. 키스에는 불호 표시를 해놓은 주제에 제 기분을 맞추려 입술을 찾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끝끝내 진실을 고하지 않는 입술이었으나 제 것을 물고자 애를 쓰니 예뻤다. 아무래도 미쳐 가는 것 같다. 화를 내야 하는데 자꾸만 예뻐서.

“넌… 뭐든 내 허락을 받아야 해.”

“아, 흐으…!”

“후, 네가, 읏, 넘겨 준 권리란 거, 잊지 마.”

머리채를 쥔 강제혁의 손은 거칠었지만, 서하에겐 더없이 달콤한 통증이었다. 서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 강제혁의 기분을 좋게 만들고 싶단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서하는 강제혁이 제 안에 사정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행위의 끝을 위한 게 아니라, 그저 제 안에 그의 것이 뿌려지길 바랐다. 뭣도 아닌 그 체액이 이 순간 간절했다.

돌연 강제혁이 서하의 몸을 뒤집었다. 아래에서 성기가 뽑혀 나가기 무섭게 다시 쑤셔졌다. 서하의 입에서 헛숨이 어지러이 터졌다. 무도하리만치 잔인한 추삽질이 이어졌다. 치켜 올려진 엉덩이에 강제혁의 장골이 닿으며 살 부딪히는 소리가 어찌나 큰 지, 장대같이 쏟아지는 빗소리를 가릴 지경이었다.

“하, 흐으, 악, 아, 아!”

“앞으로, 김산이든 뭐든, 읏, 만나게 되면 보고해.”

“흐으, 읏, 네, 그, 럴게요, 학, 아…!”

그는 제 주인이니 못할 것도 없었다. 무너진 허리를 추켜올릴 새도 없이 성기를 짓뭉개고 처박는 몸짓이 더욱 거칠어졌다. 서하는 시트를 그러 쥘 힘조차 없었다. 뒤를 가득 메우던 거근이 느리게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내벽을 긁으며 빠지는 느낌이 소름끼치도록 선명했다. 서하가 경련하듯 몸을 떠는 사이, 강제혁이 성기의 끝을 아직 벌름거리는 구멍에 대고 속삭였다.

“먹고 싶다고 했잖아. 벌려 봐.”

당장 기절하고 싶었지만 팽창한 성기가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서하가 손을 뻗어 제 엉덩이를 잡아 벌렸다. 매질을 당한 엉덩이가 욱신거렸지만, 사정하지 못한 제 성기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부어서 빨갛게 달아오른 입구에 칭찬하듯 뜨끈하고 끈적한 액체가 뿌려졌다. 서하가 그 뇌쇄적인 감각에 몸을 떨며 신음했다.

“하아, 하…….”

“흘리면, 뒷구멍에 정액을 머금은 채로 강의하게 만들 거야.”

강제혁이 손가락으로 조금 흐른 정액을 밀어 넣으며 서하의 엉덩이를 꽉 쥐었다. 서하가 묘한 두려움에 떨며 감기는 눈을 겨우 뜨곤 네, 하고 대답했다. 완벽하게 순종적인 노예의 모습이었다. 서하 역시 그런 자신의 모습에 진하게 흥분하고 있었다. 아무런 자극 없이도 약하게 갈 만큼.

“뒤처리를 해야지. 깨끗하게 핥아.”

그 말에 서하가 무겁게 가라앉은 몸을 일으켜 아직도 단단한 강제혁의 성기를 혀로 머금었다. 기이한 맛이 미뢰를 감쌌지만, 그저 야릇하게 다가올 뿐이었다.

“넌 나만의 노예야.”

“…….”

“내가 네 유일한 주인이고.”

최면을 걸듯 속삭이는 말과 함께 사정을 막던 것이 사라졌다. 다시금 천천히 뒤를 저미듯 삽입되는 성기에 서하가 느리게 탁액을 뿜어내며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뒤를 쑤시는 감각만이 느리게, 꿈처럼 번졌다.

***

여린 분홍빛 봉오리들이 비가 그치기 무섭게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나이 서른이면, 계절의 순환에 무뎌질 때도 됐다고 생각했는데 그도 아닌 듯했다. 물방울을 머금은 꽃잎을 보던 서하가 괜히 달아오르는 뺨을 손으로 꾹 눌렀다. 한 열 대쯤 맞은 엉덩이 색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구제불능이다.

어차피 커닝도 불가능한 문제들이라 집요하게 감독할 필요도 없었다. 지루해진 서하가 시선을 창가로 돌렸다. 날씨가 좋았다. 꽃도 예쁘고.

“제출할게요.”

듣자마자 묘한 전율이 이는 목소리가 제 귓가에 꽂혀 들었다. 당연하게도 강제혁이었다.

“…놓고 가세요.”

벌써 다 썼나, 싶었지만 어차피 시험을 도울 조교도 없는 몸. 끝까지 강의실에 남아 있어야만 했다. 내심 강제혁이 끝까지 있어주길 바랐는데, 유치한 생각에 저도 모르게 자조적인 웃음이 나왔다.

“가기 싫다면.”

느닷없는 물음에 서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 앞에 선 강제혁을 쳐다봤다.

“꽃구경하느라 정신을 못 차리네. 그렇게 예뻐요?”

“아, 그게…….”

“거울 보지. 왜 창밖을 봐.”

뭐야, 닭살 돋게. 저도 모르게 버릇처럼 튀어나가려던 핀잔이 강제혁의 얼굴을 보자 쏙 들어갔다. 다른 사람이 저런 말을 했다면 필시 얼굴을 구기고 토하는 시늉을 했을 것이다. 애초에 제게 그런 말할 사람도 없지만.

“난 이서하 씨 몸에 피는 꽃이 더 좋아요.”

강의실에 아무도 없는 게 다행이었다. 강제혁이 말하는 ‘꽃’이 키스마크든 스팽 자국이든, 남들이 알아선 안 될 말이었다. 민망함과 수치심에 서하가 고개를 숙이자 꽤 두껍게 쌓여있는 시험지가 보였다. 아무도 없는 것에 더해 모든 학생이 시험을 치고 나갔다는 뜻이었다. 이윽고 서하가 제 턱을 쥐는 손에 입술을 꼭 다물었다. 삽시간에 분위기가 농밀하게 변한다.

“시험이 너무 어렵던데.”

“…어려웠어요?”

“어떻게 생각해요?”

“수업 열심히 듣고, 매일 복습 한 두 시간 정도만 하면 다 쓸 수 있는 수준으로 냈는데…….”

그 말에 강제혁이 얇게 웃었다. 제 입술을 스치는 손이 건조했다. 서하는 충동적으로 혀를 내어 핥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에 그쳐 다행이다. 둘 뿐인 강의실은 미묘한 감각을 일깨우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니까. 그가 조금 더 짙게 입술을 매만졌다면 분명 그의 손가락을 핥고 말았을 것이다.

“밥은.”

“아직요.”

“먹으러 갈까.”

제 끼니를 챙기는 강제혁은 마치 키우는 동물을 염려하는 주인의 것과 같았다. 서하가 시험지 뭉치를 준비해온 봉투에 담으며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로…….”

“희한한 걸 묻네. 당연히 우리 집이죠.”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뭘 뜻하는 지, 이제는 뼈저리게 아는 서하가 입술을 말아 물었다. 그가 먹이고자 하는 게 사전적 의미의 식음이 가능한 것일까.

“가요.”

문을 열어주는 강제혁의 손에는 위협적인 핏줄이 관능적인 모양새로 서 있었다. 핥고 싶다는 충동이 일 만큼.

***

“읏, 흐…….”

또 다시, 약 일주일만의 거친 플레이였다. 맞아서 부은 엉덩이에 바르는 크림이 유달리 차갑게 느껴졌다. 호흡이 부족할 만큼 삽입을 당했으니 입구도 몹시 부어있을 터였다. 식탁에 엎드려 엉덩이를 내민 채로 요리를 당했다. 기진맥진한 서하에게 제 흰 티셔츠를 입힌 강제혁이 의자에 앉을 것을 종용했다. 그래서 서하는 녹녹한 엉덩이를 조심스레 붙이며 아까까지 능욕 당하던 식탁에 앉아야 했다.

“배고파요?”

분명 팬을 들고 묻는 말인데, 서하는 오싹한 기분을 느꼈다. 배고프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하면 좆물을 먹여주겠다는 사람이라……. 이미 한 차례 정액을 먹은 아래가 움찔거렸다.

“뭐가 먹고 싶어요?”

“아무거나요.”

“아무거나?”

“…좆물 빼고요.”

그 말에 강제혁이 소리까지 내가며 웃었다. 하지만 서하는 진심이었다. 지금 정말 배가 고팠다. 그쪽 말고.

“그건, 지금은… 배불러요.”

“그래야지. 배불러야죠. 내가 잔뜩 싸줬잖아.”

귓가를 간지럽히는 강제혁의 손길이 오묘했다. 별수 없이 몸이 떨렸다. 이미 한 차례 플레이를 했지만, 한 번으로 성에 찰 사람도 아니고 장소도 그의 집이니 거리낄 게 없어서일지도 몰랐다.

“흐…….”

“그런 소리 내면 더 먹고 싶다는 걸로 들리는데.”

“윽, 아니에요.”

눈썹 새를 좁히며 곤란하다는 듯 읊조리는 강제혁에게, 서하가 서둘러 부정의 의사를 내비쳤다. 별안간 강제혁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서하의 시선도 절로 그 쪽으로 돌아갔다. 팬을 내려놓은 강제혁이 휴대폰을 확인하곤 눈썹을 찌푸렸다. 그의 태도에 서하도 그저 스팸이겠거니 했다. 그러게 무음으로 해두지.

“스팸문자예요?”

“…별 거 아니에요.”

“그거 차단할 수 있는데.”

“차단해도 다른 번호로 자꾸 보내니까 의미 없어요. 신경 쓰지 말아요. 별 일 아니니까.”

뭔가 지독한 게 붙었나보다. 혹시 예전에 만나던 섭은 아닐까. 문득 드는 생각에 서하가 얼굴을 굳혔다. 괜히 기분이 찜찜해졌지만, 제게 강제혁의 휴대전화에 관여할 권리는 없었다. 반대의 경우라면 모를까. 휴대폰을 내려둔 강제혁이 찬장에서 면이 든 통을 꺼내며 물었다.

“파스타 괜찮아요?”

“음, 네.”

좋아하는 편이었다. 게다가 요 근래 먹을 일이 없기도 했고.

“오일? 크림?”

“…크림.”

“제 무덤을 파네.”

고르라기에 골랐을 뿐인데, 묘한 대답이 돌아왔다. 크림 파스타를 잘 못 만드나. 무덤까지 나올 일이야? 서하는 제법 한가로운 생각을 하며 컵을 기울여 목을 축였다. 끝까지 서하의 붉어진 살갗 여기저기에 시선을 주던 강제혁이 혀를 차곤 냄비에 물을 받기 시작했다.

“푹 익혀줘요? 아니면 알덴테?”

“…푹 익혀주세요.”

끓는 물에 면을 삶는 사이, 양파며 베이컨 따위를 칼질하는 강제혁의 뒷모습이 서하의 눈에 담겼다. 너른 등판이 자꾸 시선을 사로잡았다. 흰색 티셔츠 아래서 팽팽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등 근육이 육감적으로 다가왔다. 두꺼운 목덜미를 따라 흡사 산맥을 연상시키는 넓은 어깨가 펼쳐졌고, 날이 선 날개뼈가 거친 느낌을 줌과 동시에 두툼한 이두박근이 보기 좋은 양감을 자랑하고 있었다. 굴곡진 사내의 몸이 이렇게까지 농염하게 보일 수 있다니, 서하가 저도 모르게 강제혁의 뒤태를 평가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섹시함을 차치하고서라도, 덩치 큰 남자가 커다란 칼을 들고 식재료를 손질하는 모습은 꽤 보기에 좋았다. 왜 미디어에서 요리 잘하는 남자를 찬양하는지 알 법했다. 서하도 요리를 못 하는 편은 아니었고, 자취 기간이 길기에 나름대로 요리하는 걸 즐기기도 했지만 강제혁만큼은 아니었다. 건물주면 도련님으로 귀하게 자랐을 것 같은데.

서하가 컵에 맺힌 물방울을 손가락으로 훔치며 강제혁이 요리하는 모습을 열심히 시청했다. 요리 프로보다는 살색 만연한 포르노 같다. 달궈진 팬에 오일을 두르고 베이컨과 마늘, 양파, 피망을 볶는 냄새가 침샘을 자극했다.

“피망 먹을 수 있어요?”

“네. 잘 먹어요.”

뒤늦은 물음이긴 했지만 다행히 상관없었다. 서하의 대답에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인 강제혁이 다시 손을 움직였다. 버터를 녹이고 우유를 붓고, 다음은 생크림인가. 여유롭게 움직이는 몸 선이 섹시했다. 서하는 한참 어린 학생에게 이런 생각을 하는 제가 좀 수치스러웠다. 후추를 갈아 넣는 팔 근육은 방금 전까지 제 엉덩이를 흠씬 패놓은 주범이기도 했다. 엉덩이가 움찔했다. 벌어진 구멍 사이로 정액이 흘러나오는 것을 의식한 서하가 아래에 힘을 주며 냅킨을 손으로 구겨댔다.

“피클 필요해요?”

“네.”

“김치도?”

“…네.”

크림 파스타 같은 느끼한 걸 좋아한다고 말한 주제에, 결국 입맛은 한국인이다. 강제혁이 별 다른 표정 변화 없이 그릇에 파스타를 담고, 냉장고에서 김치와 피클을 꺼내주었다. 적당히 익은 김치의 냄새가 보다 적극적으로 입맛을 돌게 했다.

“맛있을지 모르겠는데.”

“맛있어 보여요.”

“뜨거우니까 조심해서 먹어요.”

테이블에 그릇을 내려놓은 강제혁이 의자를 빼 서하의 앞에 앉았다. 김이 올라오는 하얀 파스타는 척 보기에도 맛있어 보였다. 포크를 쥔 서하가 파스타를 돌돌 말아 후후 불었다.

“귀엽네.”

“…뜨겁다면서요.”

“근데 귀엽다고.”

“나 참.”

뜨겁다고 경고한 건 본인이면서, 갑자기 낯간지러운 평을 하는 강제혁이 열없게 느껴졌다. 강의실에서부터 그러네. 만약 입에 넣은 후에 들었다면 뿜었을 지도 모른다. 서른 먹고 귀엽다는 칭찬을 듣는 게 이상했다. 그 전에도 귀엽다는 말은 별로 못 들어본 것 같은데. 그 사이 파스타가 적당히 식은 것 같아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어보는데, 강제혁은 제 것은 입에 넣지도 않고 서하를 보고만 있었다. 한 입 문 것을 꼭꼭 씹어 꿀꺽 삼킨 서하가 입술을 갈무리하고 말했다.

“맛있어요.”

“몇 점?”

평가해도 되는 건가. 조금 고민됐지만, 먼저 묻는 말에 답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98점…?”

“2점 감점 포인트는 뭐예요?”

“…….”

그냥 100점이라고 하면 너무 과장하는 것 같아서 고른 점수였는데, 강제혁은 퍽 맘에 안 든다는 뉘앙스였다. 심각하게 얼굴을 굳힌 강제혁의 눈치를 살피던 서하가 괜히 파스타를 응시했다. 정적이 민망했다. 한참 서하를 내려다보던 강제혁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성적 정정 요구는 메일로 보내야 합니까? 지금 보낼까요?”

그 말에 서하가 입꼬리를 비죽 올렸다. 상대방은 시종일관 차분한 낯인데, 이상하게 웃겼다.

“학생이 진지하게 물어보는데, 태도가 너무 가벼운 것 아니에요?”

“…미안합니다.”

서하가 조금 느리게 대답했다. 사과의 말을 고르기 위함이었다. 그런 서하를 보던 강제혁이 한층 누그러진 눈빛으로 채근하듯 물었다.

“그래서 몇 점이에요?”

“백점……. A+요.”

“중간고사 점수도 좋았으면 좋겠네요.”

물 흐르듯 이어지는 대화에 계속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민망해진 서하가 괜히 스스로를 포장했다. 파스타를 휘휘 돌리던 서하의 포크가 잠시 멎었다.

“이거, 뇌물은 아니죠?”

“뇌물?”

“오늘 시험 본 거, 채점 잘 해달라고…….”

저도 농담을 한 번 던져봤는데 재미가 없는 모양이다. 조금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얌전히 처먹을 걸…….

저가 먼저 농을 해놓고, 눈치를 보는 서하의 모습에 강제혁이 실없이 웃었다.

“왜 이렇게 귀엽게 굴어.”

귀엽단 소리를 듣기엔 나이가 좀 많은데. 그래도 제가 더 어른인데 자꾸 귀엽다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서하는 저를 향한 수치스러운 칭찬에 파스타를 더 크게 물었다. 먹는 게 답인 것 같았다. 서하가 빨갛게 물든 뺨으로 식사에 전념하는 사이, 강제혁의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맛있네.”

“네. 맛있어요.”

평범한 대화가 한 차례 오간 후엔, 두 사람 모두 먹는 행위에 열중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맛있었다. 하얗고 점도 있는 소스가 입술에 묻는 것도 모르고 서하가 파스타 한 그릇을 다 비웠다. 김치와 피클은 저만 먹은 것 같았다. 산 건가. 어디 거지. 되게 맛있네. 브랜드나 물어볼까, 생각하며 서하가 식사의 끝을 알렸다.

“잘 먹었습니다.”

“…무덤 판다는 말이 뭔지 이해 못 했나봐.”

어느새 까맣게 물든 눈동자가 서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입술을 보고 있다고 해야 옳았다.

“아…….”

강제혁의 시야에 붉은 입술이 희고 농후한 액체를 머금은 모습이 담겼다. 지독하게도 외설스러웠다. 제가 만든 크림소스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역시 제가 만들었다는 사실이 더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서하를 잡아먹을 것처럼 보던 강제혁이 손을 뻗어 서하의 입가를 훔쳐 주었다.

“빨아요.”

“…….”

훔친 손가락을 그대로 입안으로 밀어 넣는 탓에, 서하가 뭐라 반박할 새도 없이 제 입 속을 헤집는 손가락을 받아들였다. 지치지도 않나봐. 정력적인 강제혁의 태도가 분위기를 달궜다.

“으응…….”

크림소스를 다 빨아 삼키게끔 하고도 끝까지 빠져나가지 않은 엄지가 축축한 혀와 입천장을 번갈아 훑었다. 입안의 성감대가 자극 당하는 강압적인 행위에 서하가 금세 눈가를 붉히며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배불러?”

음산하고 새까만 열기가 느껴지는 질문은 좀 전의 것과 달랐다. 서하 역시 배가 차니 다른 게 고팠다.

“고파요…….”

“뭘 먹여 줄까.”

“…좆물이요.”

아까까지 고사하던 것이었는데, 상황이 달라졌다. 의자가 바닥을 긁고 강제혁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서하가 입가를 쓰다듬는 손에 신음하며 말을 이었다.

“하얗고… 끈적한, 주인님 좆물 먹여 주세요.”

강제혁이 기뻐할, 그리고 제가 뱉고 싶은 말을 예쁘게 늘어놓았다. 그릇이 테이블 한편으로 치워지고 그 위에 서하가 다시금 자리했다. 방금 전까지 식사를 하던 곳에서, 이번엔 제가 그를 위한 요리처럼 또 다시 올라갔다는 사실이 서하를 또 흥분하게 했다.

“벌려.”

강제혁의 짧은 명령에 서하가 벗은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잡아 벌렸다. 무방비하게 노출된 엉덩이 사이로 무언가 울컥 흘러나오는 느낌이 선명했다. 강제혁은 말없이 서하의 뒤를 응시할 뿐이었다. 흰 체액은 강제혁이 직접 사정한 것이었다. 붉게 달아오른 입구 사이로 흘러나오는 것이 강제혁에게 기묘한 쾌감을 선사하고 있었다.

“크림 같네요.”

짧은 감상이지만 그건 서하를 수치스럽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말이었다. 수치심에 힘이 들어가자 뒤가 꾹 다물렸다. 뒤에서 들리는 낮은 웃음소리 탓에 서하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조이면 안 보일까봐? 내 앞에서 별걸 다 부끄러워하네. 너무 늦었다곤 생각 안 해요?”

“헉…….”

별안간 뒤에 부어진 차가운 액체에 서하가 몸을 떨었다.

“무슨, 읏…!”

“말대꾸하지 마.”

꾸짖는 말과 함께 뒤를 쑤시고 드는 손가락에 헛숨이 연거푸 터졌다. 알 수 없는 액체가 엉덩이며 구멍을 흠뻑 적셨다.

“뒤에서 정액 흐르는 걸 부끄러워하는 것 같아서 나름대로 배려를 해봤어요.”

벌려진 입안으로 젖은 강제혁의 손가락이 들이닥쳤다. 그 액체가 묻어있는 것 같았다. 요리할 때 썼던 크림이었다. 설탕이 들지 않아서 달지도 않은 농후한 우유의 맛이 났다.

“크림이랑 정액이랑 뒤섞이니까 보기 좋은데, 이서하 씨한테도 보여주고 싶네요. 빨간 구멍에 하얀 액체가 질질 흐르니까 내가 이만큼 싸준 것 같기도 하고.”

그제야 제 엉덩이 위로 뿌려진 게 크림이란 사실을 알게 된 서하가 목 안으로 앓는 소리를 흘렸다. 입과 뒤가 동시에 농락당하는 느낌이 야릇하고 수치스러웠다. 왼손으로 혀를 꾹 누른 강제혁이 오른손으로는 구멍 안을 헤집으며 서하의 뒤를 자극했다. 질척거리는 소음이 귓전을 연신 강타했다. 반항 한 점 없이 그의 뜻대로 삽입을 당하고 있자 강제혁이 서하의 몸을 뒤집어 식탁 위에 바로 눕혔다. 흰 셔츠가 반쯤 벗겨지고 드러난 가슴 근육과 젖꼭지에도 덩달아 크림이 뿌려졌다. 먹는 걸로 장난치면 안 되는데.

“흣, 으으, 아…!”

“이서하 씨 좆물 먹여줘야 되는데 큰일 났네. 조금만 참아요. 내가 배가 고파져서.”

포크로 젖꼭지를 얕게 찌르는 감촉이 소름끼쳤다. 그렇게 유린한 유두를 입술로 덮은 강제혁이 입안에 담긴 것을 거칠게 핥고 깨물기 시작했다. 서하의 성기는 발기한 채였다. 강제혁은 벌어진 서하의 다리 사이를 파헤친 후, 구멍을 벌리고 손가락을 한 번에 세 개쯤 밀어 넣었다. 젖은 구멍이 손가락을 삼키는 야한 소리와 유두를 빠는 음란한 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안을 푹푹 찔러대는 손가락과 유두를 농락하는 입술, 그리고 강제혁의 다른 손에 들린 포크가 살갗을 긁는 기이한 쾌감이 서하의 정신을 앗아갔다. 포크가 이렇게 야한 식기였나. 이날 서하는 새로운 발견을 하고 말았다. 앞으로 포크를 쓸 때마다 생각날 것 같다는 감상을 느끼며.

***

하늘은 쾌청하고 바람이 유독 맑았다. 느지막이 일어나 베란다에서 담배를 한 대 태우던 서하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일어나자마자 본 것은 강제혁의 메시지였다.

잘 잤냐는 상투적인 물음이 아니라 ‘일어나면 연락해요.’라는 건조한 명령이었지만 괜히 입꼬리가 간지러웠다. 이런 보고를 할 주인이 생겼다는 사실이 우습게도 기분이 좋았던 탓이다. 서하는 그 메시지에 반쯤 뜬 눈을 비비며 답장했었다.

「지금 일어났어요.」

역시 무미한 대답이었지만, 몇 글자 되지도 않는 것이 자꾸만 눈길이 갔다. 강제혁의 답장을 기다리며 담배를 태우다, 괜히 그 밑에 있는 김산의 이름이 눈에 밟혔다. 서하는 제 빈약한 채팅 목록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인간관계가 좁은 게 편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몇 안 되니 최근 대화가 아직도 이 모양 이 꼴이다.

“운동이나 하자.”

복잡한 머리를 비우는 데는 몸을 움직이는 것 만한 게 없었다. 물론 요즘은 강제혁과의 플레이로 인해 몸이 쉴 새가 없긴 했지만, 지금은 그가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엉덩이가 닿는 운동은 불가능한 상태였기에 팔굽혀펴기로 시간을 때웠다. 얼마 안 있어 몸이 뜨거워지고 땀이 이마를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간만에 운동으로 땀을 흘리니 좋았다.

서하가 단단히 선 팔 근육을 주무르며 정수기에서 물을 따랐을 때, 다시금 김산이 떠올랐다. 강제혁의 답신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서하가 운동을 끝낼 때까지도 휴대폰 화면은 미동조차 없었다.

김산은 뭘 하고 있을까. 이 시간이면 학교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 어쩌면, 제 연락을 기다릴 지도 모른다. 마지막 만남에서 나중에 연락한다는 말을 먼저 뱉었다는 사실이 자꾸만 양심을 찔러댔다. 사귀던 사이거나, 뭐 비슷한 거였다면 차단하고 번호를 지울 텐데. 물론 경험이 있어 아는 게 아니라 남들 하는 걸 보고 아는 것이긴 했다.

“재떨이 비워야겠네.”

샤워를 마치고 베란다로 나가자 꽉 찬 재떨이가 서하를 반겼다. 운동 전에 담배를 태우긴 했지만 금세 또 니코틴이 고파졌다. 담배를 입에 물자 기분이 가라앉는 착각이 일었다. 서하는 이도 저도 아닌 사이가 되어버린 김산의 번호가 뜬 화면을 만지작거리며 낮게 한숨을 쉬었다. 한숨에 형태가 생겼다. 담배연기가 퍼져나간 탓이다. 담배 연기가 제 한숨의 모양대로 빈 공간을 메웠다. 서하의 손가락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언제 시간 돼요?」

어색한 문자. 커서가 깜빡이는 모습이 전송을 종용하는 것만 같았다. 차라리 강제혁이 답장을 빨리 주면 김산에 대한 상념을 지울 수도 있을 텐데, 세상일은 언제나 그렇듯 제 뜻대로 되지 않는다. 서하가 밋밋한 질문이 담긴 메시지를 띄웠다. 읽음 표시가 뜨는 걸 의식하지 않으려 애쓰며 휴대폰을 주머니에 밀어 넣었을 때, 진동이 연이어 울렸다. 김산의 전화였다. 서하는 갑작스런 진동소리에 순간 움찔하고 놀랐지만,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미안해.]

서하가 여보세요, 소리를 뱉기도 전에 사과의 말이 들려왔다. 마치 기다렸던 것처럼.

“얼굴 보고 얘기해요.”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러고 싶었다. 최소한 그 정도 사이는 된다고 여겼으니까. 게다가 이대로 김산을 제 인생에서 도려낼 자신도 없었다. 언제 어른 될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서하는 애초에 그 동아리에 들지 말았어야 했다는 늦은 후회를 했다. 변하는 건 없었지만.

***

약속 장소는 늘 그렇듯 카페였다. 김산의 집 근처란 게 평소와 다른 요소이긴 했다. 서하가 먼저 시간이 되냐 물었고, 그래서 제가 그쪽으로 가겠단 의사를 전했다. 물론 김산은 서하의 연락을 받자마자 서하의 집 쪽으로 차를 돌렸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서하가 오겠다고 말했으니 김산은 기다려야만 했다. 먼저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으란 말을 했는데도 꿋꿋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산을 본 서하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융통성이 없다.

“커피 마실래?”

인사를 나누는 것도 어색할 것 같아서 스치듯 카페 안으로 들어섰는데, 뒤에 서 있던 김산이 앞서 나가며 물었다. 계산 못 하면 죽는 병이 도진 걸까. 서하가 따라 걸으며 늘 먹던 대로 진한 커피의 이름을 헤아리는 사이,

- 카페인 섭취가 과한 것 같던데.

불현듯, 강제혁의 지적이 떠올랐다. 요 며칠 별별 보고를 다 하다 보니 자연스레 따라온 감상이기도 했다. 어찌 됐건, 염려가 묻어나던 그 말이 서하를 망설이게 했다.

“그냥… 히비스커스차 마실게요.”

오늘은 강제혁에게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는 보고를 할 수 있겠다. 김산을 만났다는 말은 생략해야겠지만.

“…그래.”

김산의 대답은 단출했으나 표정은 미묘했다. 서하는 김산의 낯에 서린 기묘한 기색까진 발견하지 못했다. 그저 이 어색하고 불편한 상황을 견디기 위해, 테이블 위의 화병에 시선을 주었기 때문이다. 조화가 꽂힌 화병은 초라했다. 가짜라는 게 원래 그렇다. 그의 사과도 가짜였기 때문에 초라하게 들렸던 걸까. 서하가 멍하니 화병을 응시하는 사이 김산이 먼저 말을 걸었다.

“그동안 잘 지냈어?”

끔찍하게 어색하고 낯간지러운 질문이었다. 하지만 대화의 포문을 열기에 저것보다 적절한 멘트는 없었으니 마냥 김산을 탓할 일도 아니었다. 서하 역시 김산의 눈을 마주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남자다운 선을 그리는 울대를 보는 것으로 타협했다.

“네.”

“잘 지냈다니까 다행이네.”

그 말엔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거짓말은 아니었다. 하루가 멀다하게 매를 맞고, 괴상망측한 것을 삽입 당하고, 이곳저곳 묶여서 희롱당하는 일상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잘 지낸다고 할 수 있었다.

“커피는 줄이기로 했나봐.”

“아…….”

워낙 달고 살았기에 이상하게 보일 수 있는 문제였다. 서하가 제 손에 들린 붉은 빛깔의 차와 김산의 목덜미를 번갈아 보다 대답했다.

“몸에 안 좋잖아요.”

제가 뱉고도 우스운 대답이었다. 그런 걸 걱정했으면 대학원부터 안 갔겠지. 하지만 그런 궁색한 대답에도 김산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말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김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건강 걱정을 다 하고, 우리 서하 기특하네. 왜, 강제혁이 커피 그만 마시래?”

“…….”

“형이 걱정할 때는 듣지도 않더니……. 서운하게 느끼면 주제넘는 거야?”

정곡을 찌르는 말에 서하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얼굴에 다 표가 나는 모양이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그냥, 이제 서른이기도 하고. 몸도 예전 같지 않아서 그래요.”

“네 의지로 안 먹는 거였으면 사과할게. 미안해.”

“…….”

“밥은 잘 챙겨먹어?”

본의 아니게 잘 챙겨먹고 있긴 했다. 서하가 눈썹을 미묘한 각도로 움찔하고 대꾸했다.

“네, 뭐.”

“그래.”

어색한 대화가 띄엄띄엄 이어졌다. 따지고 보면 제가 먼저 얼굴을 보자고 했으니 용건도 내놓아야 맞는데, 영 쉽지가 않았다. 그리고 강제혁의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그를 보자니 선뜻 말이 나오질 않았다.

“선배는 잘 지냈어요?”

저 역시 할 말이 마땅치 않아, 둘 사이에 정말 어울리지 않는 괴상한 질문을 던졌다. 10년 동안 지겨울 만큼 만났는데. 서하는 새삼 이 상황이 참 우스웠다.

“…그럼. 잘 지냈지.”

꽤나 씁쓸한 대답이었다. 결국 견디다 못한 서하가 먼저 본론을 꺼냈다.

“오늘 보자고 한 건,”

“서하야.”

그런 서하를 김산이 가로막았다. 별안간 말문이 막힌 서하가 눈을 데굴 굴렸다. 침묵 탓에 멀쩡한 살갗에 닭살이 다 돋는다.

“형이 미안해.”

“괜찮아요.”

뭐가 미안한 지 구체적으로 설명할까봐, 그게 무서워서 이번엔 서하가 급하게 대꾸했다. 또 다시 김산이 제게 그 풋내 나는 감정을 고백할까봐. 초조함에 서하가 차게 식은 손가락으로 열기를 뿜는 찻잔을 거머쥐었다.

“너한테 짐을 지워준 것 같다.”

끝까지 착각이었다고, 오해란 말을 하지 않는 게 잔인하면서 동시에 김산다웠다. 서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잇는 김산에게서 시선을 떨어뜨렸다. 끝까지 마음을 부정하지 않는 그가 미웠다. 차라리 비겁해지지.

“내가,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맞아요. 선배는 그러면 안 됐어요.”

“…….”

“없던 일로 해요.”

서하가 고민 끝에 내놓은 결론은 바로 이것이었다. 도저히 그것 말고는 제대로 된 해답이 떠오르질 않았다. 김산에게 있어선 잔인한 거절이기도 했다. 끝까지 김산이 비겁해지지 않으니 저라도 비겁해져야 했다.

“10년이나 알고 지낸 사이잖아요.”

“…….”

“시간이 아깝다는 게 아니라…….”

대답 없이 입술을 꾹 다문 김산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이것밖엔 없었다. 영영 안 보고 살 수 없으니까. 일적으로든, 사적으로든 계속 마주칠 텐데. 무엇보다 이렇게 허무하게 흩어질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김산이 제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이제 그를 자위 반찬으로 쓸 일은 없겠지만.

“그냥, 없던 일로 했으면 좋겠어요. 제발요.”

서하는 간절함을 담아 뒷말을 덧붙였다. 제발. 의미를 알 수 없는 고백은 없던 일로 하자고. 부탁하듯 지어보인 미소가 김산을 약하게 만들었다. 가만히 잔인한 선고를 내리는 서하의 입술을 응시하던 김산이 그 부탁에 한숨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그래.”

그게 최선이었으니까. 김산도 그걸 알았다. 서하가 제 고백을 기껍게 받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제 입으로 묻고 싶진 않았다. 서하에게 책임을 돌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서하가 웃어주었다. 잘 웃지도 않는 애가 저와의 관계를 깨기 싫어 웃으며 부탁하고 있었다. 지금 김산에겐 그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

“우리 불편해지지 말아요.”

그렇게 말하는 서하에게 그럴 수 없다고 거부할 수 없었다. 카페 안에 느리게 흐르는 서정적인 곡조의 클래식 음악이 침묵 사이를 메웠다. 불편해지지 말자는 서하의 간곡한 부탁을 쳐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런 서하의 바람은 김산에게 있어 희망적이었다. 적어도 이제 아는 척 하지 말아달라는 말은 안 했으니까. 비루할지언정 한줄기 빛이었다.

“나도 부탁하고 싶은 거, 있어.”

욕심을 조금 더 내보았다. 큰 바람은 아니었지만, 김산에게 있어선 절실한 것이기도 했다.

“뭔데요?”

찻물로 마른 목을 축이던 서하가 김산에게 물었다. 제 부탁이 받아들여져 조금 편안해진 낯이었다. 붉은 빛의 찻물로 인해 조금 더 붉어진 서하의 입술이 김산의 시선을 가로챘다. 자꾸만 그게 눈에 들어왔지만 그는 최대한 대화에 집중하려 했다. 호흡을 갈무리한 김산이 서하가 제 말을 들어주지 않을까 불안해하며 말을 덧붙였다.

“내가 그때 했던 그 말, 없던 걸로 하자고 했으니까. 너도 내가 말하는 거 지켜줘.”

“들어보고요.”

“아니, 그냥 알겠다고 해.”

단호하게 대답부터 얻으려는 김산의 태도는 자못 고압적이었으나, 서하의 약한 부분을 찌르는 것이기도 했다. 김산의 조건이 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서하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찍어 누르는 목소리엔 여전히 약했다.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특히나 그가 제 부탁을 들어준 지금 같은 상황에는.

“…알겠어요.”

하나를 얻었으니 다른 하나를 내어줘야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대체 무슨 조건을 걸려고 저렇게 뜸을 들이나. 서하가 김산의 입가를 바라보다 부르튼 흔적을 발견했다. 립밤이라도 좀 바르지. 피곤함이 역력히 드러나는 김산의 입술이 서하에게 묘한 동정심을 불러 일으켰다. 모양 좋은 입술 사이로 진중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나한테 이제 아무것도 숨기지 마.”

그 말에 입술만 응시하던 서하가 눈을 들어 김산의 눈을 마주했다. 아주 오랜만에, 시선이 맞물렸다. 언제부터 저를 보고 있었던 건지. 김산의 깊은 갈색 눈동자가 서하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선배.”

서하가 마주친 눈을 피하지 못하고 김산을 불렀다. 아무것도 숨기지 말라는 말은 아주 위험한 조건이었다. 특히나 숨기는 게 많은 서하에겐.

“숨기지 않는다고 말 해.”

낮은 목소리는 칼을 들이대고 협박하는 것 같기도 했고 숨이 끊어질 듯 간절한 부탁을 전하는 것 같기도 했다. 뭐든 서하에겐 거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서하의 모습을 눈이 아리도록 담아낸 김산이 말을 이었다.

“너에 관련된 거라면, 뭐든……. 받아들일 테니까, 숨기지 마. 너한테 속는 거……. 네가 나한테 숨기는 게 있다는 것도, 전부… 진짜 끔찍하더라.”

떨어지는 말의 끝이 처참히 떨리고 있었다. 분노, 절망, 설움, 비참함, 슬픔 같은 어둡고 축축한 감정이 담긴 부탁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 서하를 흔들었다.

“…알겠어요.”

어차피 다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섣부른 대답을 꺼냈다. 그러기로 했으니까. 서하는 새삼 제가 거짓말을 참 잘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이쯤 되면 인생이 구라다. 하지만 구태여 진실을 말해 몇 없는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안 들키면 장땡이지. 안일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상세한 성적 취향은 불필요한 정보기도 했고.

“고마워.”

“…뭘요.”

“배고프지? 밥 먹으러 가자. 야윈 것 같아.”

한결 가벼워진 음성으로 김산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서하가 끝까지 저를 놓지 못한다는 사실이, 뒤늦게 가슴 한편을 뜨겁게 데웠다. 치졸하다고 비난해도 좋았다. 어쨌건 서하에게 있어 제 존재가 가지는 의미가 크다는 반증일 테니까.

***

“그래서 화해를 했다고요?”

싸늘하게 식은 목소리엔 대화 주제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잔뜩 실려 있었다. 아침에 일어난 시간, 하루 일과, 식사 여부, 잠드는 시간 등을 보고하고 있었기에 김산과 잠정적인 화해를 한 사실도 그대로 고해바친 탓이다. 거짓말은 고백받았다는 사실을 숨기는 것으로 충분했다. 원래 거짓말도 적절한 진실과 섞어야 들통이 나지 않는 법이다. 서하 역시 내심 강제혁의 반응이 좋지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막상 마주한 채로 대화를 나누자니 입이 바싹 마르는 듯했다. 물론 좋은 쪽으로.

“…네.”

서하는 매를 기대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눈을 아래로 내리 깔았다. 테이블에 놓인 마디 굵은 손가락이 눈에 밟혔다. 그저 판판한 상 위에 조용히 놓인 손인데 더없이 자극적인 모양새였다. 저 손이 어떻게 저를 만지고, 제 엉덩이를 후려갈기는지 알고 있기 때문일까. 서하는 저를 응시하는 시선을 받아내며 단정한 손톱의 테두리를 찬찬히 관람했다. 아프게 때려준 후에 저 손끝으로 상처 부위를 세게 긁어주면 좋겠다는 음란한 생각을 했다.

강제혁은 서하의 생각을 꿰뚫어 보려는 것처럼 계속해서 서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하 역시 강제혁의 머릿속이 궁금했다.

“화내고 싶은데, 화내도 되나.”

생각보다 더 차분한 음성이 침묵을 깨부쉈다. 의아함에 고개를 들었던 서하가 잠시 후 바로 후회했다. 침착한 어투였으면서, 눈빛은 음산하기 그지없다. 감히 눈을 맞추느냐는 불호령이 들리는 것만 같아 서하는 그대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간만에 평화로운 티타임이었는데, 순식간에 살얼음판 같아졌다.

김산과 화해한 후로 며칠이 지났다. 그간 강제혁은 다른 시험을 치느라 바빴고, 서하 역시 제 주인의 학업 성적을 이유로 만남을 기피했다. 그래도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고 있었지만. 김산은 지금도 가벼운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놓은 상태였다.

‘무음으로 설정하길 잘 했지.’

그 며칠간 서하는 강제혁이 제안한 관계에 대해 재고찰했다. 감정을 배제하자고 말하진 않았지만, 엄연히 연애를 하자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쉽게 승낙했던 걸지도 몰랐다. 사랑 놀음을 하기에는 제가 많이 썩었으니까.

그렇게 내린 결론은 깔끔하고 단순했다. 다 말하자. 고백 어쩌고만 빼고. 이건 어차피 없던 일로 하기로 했으니 굳이 말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실천해 얻은 결과가 저 눈이니, 감내해야 했다. 다만 차라리 화를 내주면 편하겠는데 저렇게 물으니 뭐라 대답을 해야 할 지 혼선이 왔다. 강제혁의 의중을 알아차리기 위해 서하가 피곤한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그가 화를 내고 싶어 한다.

“화내고 싶으시면, 화내세요.”

그게 서하의 답이었다. 목소리 끝이 살짝 떨린 것은, 그의 노기가 두렵기보다는 등줄기를 가로지르는 성적인 욕구 때문이었다. 강압적인 분위기에 아래가 씨근거렸다. 그리고 조금 용기를 내 시선을 올렸다. 단단히 다물린 강제혁의 턱 근육이 시야에 들어찼다. 색스러운 감상이 들었다. 그리고 서하는 가만히 제 이야기를 경청하는 강제혁에게 마저 할 말을 내놓았다.

“저에 관련된 권리 다 가진다고 하셨잖아요. 화내고 싶으면 내셔도 됩니다. 제가… 감내할게요.”

강제혁은 권리 운운하는 것을 좋아했으니까. 저 역시 그 말이 무척 야릇하게 들렸고. 스스로 뱉고 나니 아무 권한도 없는 비참한 처지가 각인되어 발기할 것만 같았다. 아무렇게나 범해지고 싶어 호흡이 자꾸 흐트러졌다. 화가 난 주인이 더없이 섹시하고, 분풀이를 해주었음 싶다가도 제 아첨에 기분이 누그러지길 바랐다. 강제혁이 정말로 화난 모습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화가 나지 않은 상태에서도 버거운 플레이를 하는 남자니 무섭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 점이 꼴렸지만. 그런 서하를 보던 강제혁이 노기가 살짝 걷힌 눈으로 대답했다.

“그건 좀 화가 풀리네요.”

까맣게 물든 두 눈이 제 몸을 훑는 시선을 느낀 서하가 셔츠의 단추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손이 자꾸만 떨렸다. 바라는 걸 바칠 때였다. 화가 난 주인의 기분을 맞춰 드리는 방법은 서하가 아는 한 이것뿐이었다. 서하가 갖은 망상을 하며 조용한 스트립쇼를 하는 사이 강제혁은 그저 관망할 뿐이었다.

“…핥을까요?”

조급해진 서하가 먼저 물음을 던졌다. 목적어는 없었지만 못 알아들을 말은 아니었다. 물론 뭐든, 강제혁이 핥으라면 핥아야 하는 입장이긴 했다. 손가락이든 뭐든…….

“물어보지 말고 기어와.”

강제혁의 나른한 음성에 서하가 무릎을 꿇었다. 아직 양말을 벗지 못했는데, 강제혁이 다리를 조금 벌려 앉는 게 보였다. 바지 위로 그의 커다란 성기 윤곽이 도드라졌다. 그걸 보자 갈증이 나 마음이 급해졌다. 벗은 몸에 하얀 양말 하나만 남긴 서하가 꿇은 채로 테이블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바지 버클을 푸는 서하의 손이 자꾸만 미끄러졌다. 찻잔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귓전에 꽂혀 들었다.

“차 한 잔 다 마시기 전에 싸게 할 수 있는지 한 번 볼까요.”

유희를 즐기듯 가벼운 목소리에 서하의 벗은 몸이 흠칫흠칫 떨렸다. 제 서투른 스트립쇼가 마음에 든 건지, 아니면 다른 게 마음에 든 건지 강제혁의 성기는 제법 힘을 받아있는 상태였다. 거근을 입에 문 서하가 앓는 신음을 삼켜내며 눈을 감았다.

“나는 차를 마시고, 이서하 씨는 좆물 마시고… 서로 좋네요.”

상황에 적절치 못한 정중한 존댓말이 서하를 더욱 낯부끄럽게 했다. 부디 제 입놀림이 강제혁의 마음에 들길 바라며 서하가 열심히 혀를 움직였다. 벌써 몇 번째 그의 성기를 입에 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모양 좋은 굵은 기둥을 혀로 샅샅이 핥고, 입을 벌려 한입 크게 물었다. 서하가 귀두 끝을 제 오톨도톨한 입천장으로 긁어 넣으며 비좁은 목구멍 틈으로 성기를 깊게 삼켰다.

“하…….”

강제혁의 나른한 한숨이 테이블 위에서 퍼졌다. 서하는 빠듯하게 벌어진 입술로 기둥 아래를 조여 물었다. 그리고 혓바닥으로 핏줄이 돋은 성기를 받쳐 제 주인이 쾌감을 느낄 수 있도록 고개를 연신 움직였다. 야한 맛이 나는 성기를 이리 저리 맛보는 사이사이 강제혁이 차를 마시는 소리가 귓가를 야릇하게 적시고 있었다.

서하는 태연자약한 그 얼굴이 보고 싶다는 발칙한 생각을 했다. 제 3자의 눈으로 이 모습을 본다면 어떨까. 차를 마시는 강제혁의 좆을, 테이블 아래 무릎 꿇은 채 물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음란한 그림처럼 펼쳐졌다. 한 폭의 춘화도와 같을 것이다. 서하의 성기도 덩달아 단단해지고 있었다.

“선생님이 남자 좆 빠는 걸 너무 좋아해서 큰일이에요.”

“후읍…….”

서하는 머리카락 사이로 파고드는 손가락에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것만 같았다. 아래가 욱신거렸다. 강사의 머리채를 잡고 성기를 빨게 하는 이 고약한 학생의 행태가 기껍게만 느껴졌다. 돔과 섭이라는 사적인 관계와, 학생과 강사라는 공적인 관계가 서하의 머릿속에서 음란하게 충돌했다.

“거의 다 마셔 가는데…….”

“으응…….”

다급해진 서하가 살로 만든 불기둥을 더욱 깊이 물었다. 척척하고 외설적인 소리가 빈 공간을 메웠다. 잘게 허리를 쳐올리는 강제혁 탓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지만, 그가 사정하게 만들어야만 했다. 그의 화를 풀어 주어야만 했으니까.

얼마나 성기를 물고 빨았을까. 강제혁이 서하의 까만 머리채를 쥔 손을 당겨 마구잡이로 헤집어진 입안에서 제 것을 뽑아내었다. 갑자기 입안을 메우던 음경이 빠져 나가자, 서하가 멍한 얼굴로 숨을 헐떡이며 터지기 직전의 성기를 바라보았다.

“…입 벌려.”

낮게 젖은 목소리가 서하의 다음 움직임을 종용했다. 마찰로 부어오른 입술이 고운 모양으로 벌어졌다. 강제혁이 성기를 쥐고 몇 차례 흔들자 탁액이 서하의 발간 낯 위로 뿜어졌다. 혀 안에 고인 희고 끈적한 정액을 꿀꺽 소리 나게 삼킨 서하가 질척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지극히 평화로운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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