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에필로그 1. (26/30)

에필로그 1.

30구역은 현재의 대통령이 전쟁을 끝내자마자 만든 새로운 구역으로 지금까지도 엄격히 통제되어 있고 허가받지 않은 사람은 출입하지 못하는 곳이었다. 인어들의 거주 구역으로 만든 곳이라 혹시 모를 불상사를 막기 위한 통제였다.

처음 인어들이 거주할 수 있는 30구역이 만들어졌을 때 바다에서 나온 인어들은 처음엔 무척이나 어색해하고 지상에서 지내는 걸 조금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차가운 바닷속보단 따뜻한 지상이 좋았는지 그들은 대통령이 만들어 준 보금자리에 금세 적응했다.

간혹 물을 잘못 뒤집어쓰면 인어 모습으로 변하곤 해서 초반엔 무척이나 당황스러워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익숙해져서 당황하거나 허둥지둥하지 않았다. 그들도 점차 대처 요령이 생기며, 땅 위의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물론 30구역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는 인간들도 상당히 많아서 반대가 상당히 심했다. 인어가 바다에 없으면 정화가 안 된다고 하니, 인어들이 계속 바다에서 인간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사람들이 가끔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들의 이야기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그동안 생존의 위협을 받았던 인어들은 많은 보상을 받고 30구역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그 이후로 평화로운 나날에 적응하며 지내다 심심해지면 인어들은 종종 바다에 놀러 나갔다. 결계도 없어져 그들은 온 바다를 자유롭게 다녔다.

그들이 바다를 자유롭게 여행하며 다닌 덕분일까. 오히려 죽음의 바다라고 불렸던 동쪽 바다에 물고기와 고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인어들이 바다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던 단체들도 점차 사라져 모습을 감추었다.

[안쉘 리 대통령, 재선에 성공하다.]

[젊은 대통령이 내놓은 우스꽝스러운 평화 정책이 먹혔나?]

[이십 년간 전쟁에 시달렸던 이들이 뽑은 안쉘 리 대통령. 재선에 성공하여…….]

“신문이요.”

필은 올해로 네 살이 되는 소년으로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그의 아버지는 인어이고 어머니는 군인으로 양쪽 집안에서 결혼 허락을 받는 데 큰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여 임신까지 된 그들은 30구역에 정착했다. 그렇게 태어난 필은 지금 양쪽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아주 잘 사는 중이었다.

최근에 필은 다른 형, 누나들이 가지고 있는 최신형 휴대전화를 가지고 싶다며 엄마를 조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필의 엄마는 아침 9시에 일어나 신문을 가져다주는 걸 30번만 하면 사 주겠다고 약속했다.

필은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매일 신문을 가져다주었다. 물론 아직 숫자를 잘 못 세는 필은 벌써 30일이 훌쩍 지났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 모양이었다.

30구역이 생기고 가장 처음 이곳에서 태어난 필은 이곳 어르신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존재였다. 필은 가끔 군것질하고 싶으면 벌레를 잡거나 꽃을 따서 어른들에게 선물했다.

그럼 어른들은 사탕이나 소액의 용돈을 주며 크게 칭찬해 줬다. 전에는 조개를 가득 따서 옆집 할머니에게 선물하고 맛있는 스파게티와 수프를 잔뜩 얻어먹었다.

인간과 인어의 혼혈인 필은 기본적인 외형은 인간형이지만 물에 들어가면 목에 아가미가 생기고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발등에서 비늘같이 생긴 게 반짝이긴 했지만, 아빠처럼 완벽한 인어의 모습을 갖추지는 못했다. 그러나 바다 생물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인어의 천부적 재능을 물려받았다.

그래서 최근에 필은 새끼 상어와 함께 바다에서 놀다 오곤 했다. 새끼 상어는 필이 바다에 오면 저 멀리서 작은 물고기를 사냥하고 있다가도 꼬리가 빠지도록 필에게 헤엄쳐 와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필은 처음에 맛이 간 것 같은 상어의 눈동자가 기분 나빠서 싫어했지만, 자신의 뒤만 졸졸 쫓아다니는 새끼 상어의 모습에 정이 들어서 ‘영웅’ 엔저의 이름을 붙여 주었다. 필의 엄마는 유명한 엔저 부대에 소속된 군인이었기에 아마 상어의 이름을 들키면 엉덩이가 빠지도록 혼날지도 모른다.

필은 오늘도 바다에서 조개나 주워 오자고 생각하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상어에게 가기 위해 다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짧은 다리로 통통 뛰어가던 필은 그만 튀어나온 돌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아!”

그러나 필이 우당탕탕 굴러 넘어져 무릎에 피가 나게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넘어지는 어린 몸을 부드럽게 잡아 준, 새하얀 손 덕분이었다. 필은 제 허리를 감싸고 일으켜 세워 주는 사람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새하얀 머리카락의 사람은 눈썹이 팔자로 쳐지며 작게 미소 지어 주었다.

“괜찮니?”

“어… 네. 감사합니다.”

필이 배꼽 인사를 하며 고개를 꾸벅 숙이니 작게 웃는 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렸다.

인어들 사이에서 나고 자란 필은 인간들이 가진 미의 기준보다 눈이 월등하게 높았다. 그래서 웬만한 미인이 아니면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눈앞의 사람은 어딘지 모르게 인간도 인어도 아닌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눈길이 갔다. 동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새하얀 사람 같았다. 잠시 후, 하얀 사람 옆으로 검은 무언가가 다가왔다.

포근한 분위기의 새하얀 사람과는 달리 검은색 사람은 너무 무섭게 생겼다. 동화에 나오는 악당처럼 새빨간 눈동자를 가졌고 표정도 냉정하고 싸늘했다. 심지어 눈가에 흉터도 있어 흉악하고 못된 악당이 틀림없었다.

새하얀 사람이 필의 정수리를 약하게 토닥이더니 두 사람은 서로 속삭이며 필을 뒤로하고 발을 맞춰 걸어갔다. 잠시 뒤를 돌아본 하얀 사람이 손을 들어 필에게 인사를 해 주었다. 필은 멍하니 두 사람을 응시하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잘 되어 있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인어하고 인간이 잘 어울려 다니고 있어. 그는 정말 훌륭한 대통령이 되었나 봐.”

두 사람은 웃으며 길을 걸었다.

아주 평범한, 어느 날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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