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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단테의 비밀 (24/30)

23. 단테의 비밀

헤리엇을 따라 군에서 은퇴할 계획을 세우던 엔저 맥과이어의 위대한 꿈은 퍼즐 조각처럼 산산이 부서졌다. 일단은 엔저 부대를 아직 완벽하게 인계하지 못한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몇 년 동안 혼자서 부대 관리를 전부 해 오던 보좌관 안쉘의 공백도 채우기 쉽지 않은 상황에 엔저마저 갑자기 떠나게 되면 남은 부대원들은 갈 곳이 없어진다. 그렇게 되면 엔저 부대 전체가 공중분해 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몇 년간 엔저의 압도적인 무위를 중심으로 꾸려진 부대였기 때문에 전투 계열보다는 보조 계열의 능력자들이 훨씬 많았다. 개개인의 능력 수준은 뛰어난 편이긴 했지만, 그것도 부대의 성격에 잘 맞아야 빛을 발휘할 수 있다. 그렇기에 엔저는 그들의 자대배치를 완벽하게 인계하고 몸을 빼야 하는 사명이 있었다.

그리고 아직 안쉘의 지지 기반이 튼튼하지 못한 점도 있었다. 맥과이어 가문은 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편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안쉘이 대통령이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거기다가 일개 가문 하나의 지지만으로 아직 새파란 애송이인 안쉘이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게 엔저는 하늘 같은 선배님과의 행복한 미래가 언젠간 오리라 믿으며 단테의 잔당들이 수도와 그 인접한 지역에서 일으키는 테러들을 앞장서서 처리해 나갔다. 그 덕분에 안쉘을 노리는 테러범들의 움직임이 좀 잠잠해지나 했더니 이번엔 중동권인 21구역에서 사건이 터져 버렸다.

지금의 엔저는 벌써 이틀째 헤리엇을 보지 못해 그야말로 위험한 짐승이었다. 굶주려 잔뜩 날카로워진 짐승 그 자체였다. 그동안 단테의 밑에서 어떻게 참았는지 모를 정도로 인내심이 얕아져 있는 상태였다.

이제는 헤리엇의 사진을 핥거나 헤리엇이 쓰던 포크, 칫솔, 비누, 샤워 타월 등을 모으는 것만으로는 한참 부족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직접적으로 헤리엇을 맛보게 된 것이 엔저의 인내심을 갉아먹는 듯했다.

그런 엔저의 낌새를 눈치챈 안쉘은 그를 살피던 와중에 의도치 않게 그가 주머니 속에 소중하게 넣어 놓은 양말 한 짝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저것을 어디에 쓰는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오싹해진 안쉘은 차마 묻지도 못하고 애써 외면했다. 슬슬 한계가 다다른 엔저를 달랠 방안이 필요했다.

“단테의 최측근이었던 막시무스가 21구역에서 자경단을 불러 모으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뒤에선 용병도 고용하는 모양인데, 딱 봐도 수상한 냄새가 납니다.”

엔저의 우수한 보좌관이었던 경험을 마음껏 발휘한 안쉘이 테이블 위로 종이들을 펼쳐 놓았다. 막시무스는 단테가 낙선되자마자 누구보다 빠르게 대통령을 버리고 달아난 인물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를 배신자처럼 보겠지만 안쉘은 단테가 그런 이를 십여 년 동안이나 자신의 곁에 둘 리 없다고 생각했다.

상의원인 그는 단테가 구속되자마자 은퇴를 선언하고 21구역으로 도망쳤는데, 양쪽에게 있어 중요한 무언가를 들고 도망간 게 아닐까 싶었다.

단테의 저택을 샅샅이 뒤졌는데도 티끌만 한 증거 한 조각도 찾지 못해 그를 법적으로 잡아넣을 방법이 없었다. 때문에 안쉘은 손가락이나 빨면서 그의 동태를 살피다가 이번에 드디어 작게나마 꼬리를 잡을 기회가 생긴 것이다.

막시무스는 아군도 많았지만, 단테의 사형이 확정되면서 예전의 명성과 인맥도 대부분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자경단이나 용병을 고용한 것 같았다. 지금 그가 처한 상황 자체만 따지면 바람 앞에 놓인 촛불처럼 위태위태해 보였다.

그러나 단테의 최측근으로 있던 자가 고작 이런 바람에 위태로워질 인물이 아니라는 건 군부에 있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는 입이 떡 벌어질 만한 재산을 소유했고 몇 안 남은 인맥이어도 무시할 만한 것은 못 되었다.

독재 체제를 이십여 년간 유지해 온 단테는 죽어서도 끈질기게 안쉘의 발목을 잡는 중이었다.

“분명 단테가 숨긴 기밀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수색할 명분이 없어서 놔두고 있었지만 어떤 정보든 그것을 토대로 파고들 곳이 있다면 파고들어야 합니다.”

안쉘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붉은색 눈동자를 무료하게 데굴데굴 굴리기만 하며 관심 없다는 듯 구는 엔저의 모습에 속으로 혀를 쯧쯧 찼다. 단테의 밑에 있었을 때부터 노래를 부르던 은퇴가 이번에도 무산된 셈이니 의욕이 사라졌다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번 일을 처리하는 데 가장 제격인 것은 엔저밖에 없으니 어떻게든 일을 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를 5년 넘게 곁에서 봐 온 경험으로 안쉘은 그의 관심사가 어디에 쏠려 있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

“중동권은 사막화가 이미 진행되어 황폐한 곳이라고 알려졌지만 커다란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관광 산업이 발달한 곳이기도 합니다.”

힐끔.

엔저가 눈동자를 힐끔 움직여 안쉘을 바라봤다.

“이번 일은 일급 기밀이니 은밀하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여행객으로 신분을 감추고 잠입하셔야 할 겁니다. 공교롭게도 바로 돌아오는 항공편 티켓이 없어서… 일주일가량의 시간적 여유가 생깁니다.”

안쉘이 여유로운 몸짓으로 태블릿 화면을 톡톡 두드리며 엔저의 눈앞에 항공편 노선과 시간이 잘 보이게 들이댔다.

“만약 일이 금방 끝난다면 남는 시간 동안 그곳에서 어떤 일을 하든 상관없는 자유시간이 생기게 됩니다. 5성급 호텔은 물론 개인 수영장이 딸린 방으로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만… 아직 적임자를 찾지 못해서 걱정이 큽니다.”

안쉘은 엔저가 지금의 제안을 뿌리치지 못하리란 걸 잘 알았다. 그는 안쉘의 속내를 눈치채고 기분이 나쁜지 얼굴을 찌푸렸지만 헤리엇과 중동권에서 느긋하게 쉬는 상상을 했는지 얼굴이 그새 풀렸다. 그리고는 붉은 눈동자를 섬뜩하게 반짝이며 엔저가 손을 내밀었다.

“내놔.”

“물론입니다. 지원군을 몇 명이라도 함께 보낼까요?”

엔저는 안쉘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코웃음을 쳤다.

그리하여 집에서 연두부를 접시에 담아 먹으며 드라마를 시청 중이던 헤리엇은 난데없이 공항으로 향하는 차량에 타게 되었다.

사실 안쉘이 엔저를 회유하고, 공항으로 향하는 차량에 타기 전까지 헤리엇은 드라마를 보며 안쉘을 죽여 버릴까 살짝 고민하던 중이었다.

만약 안쉘이 헤리엇의 머릿속을 봤다면 진심으로 겁에 질려 하얗게 질린 얼굴로 ‘…노, 농담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하면서 쭈그러들었을 테고 헤리엇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농담 아닌데’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대통령이 되었다고 귀여운 후배를 돌려보내지도 않고 계속 잡고 있어서 기분이 굉장히 언짢았다. 하지만 안쉘은 운이 좋은 건지 본능적으로 피한 것인지 헤리엇이 진심으로 판테니엄관으로 쳐들어가기 전에 손을 써서 그를 중동으로 보내 버렸다. 안쉘은 기적적으로 목숨을 연명한 것이다.

공항에 도착해 엔저와 마주한 헤리엇은 오랜만에 본 후배의 수척한 얼굴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물론 두 사람이 떨어져 있던 시간은 48시간도 채 되지 않았으며 엔저의 얼굴은 아주 멀쩡한 상태였다. 다만 선배를 이틀간 보지 못해서 근심이 드리워졌을 뿐이었다.

헤리엇은 중동권의 후덥지근한 바람을 눈을 느리게 깜박거렸다. 물통을 들어 수분을 보충하는 그의 정수리 위로 햇볕이 쨍하게 내려앉았다. 피부가 약한 헤리엇의 얼굴과 목덜미는 금세 달아올라서 빨갛게 익어 버렸다.

“선배.”

수속을 전부 마치고 가까이 다가온 엔저가 헤리엇의 정수리를 손바닥으로 가렸다. 그늘을 만들어 주려고 한 것 같지만 엔저의 손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다.

그 사실을 엔저가 모를 리 없었다. 그저 그늘은 핑계고 달아오른 헤리엇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감상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렇게 한 치의 틈도 없이 달라붙어서 서로의 얼굴을 감상하며 걷던 두 사람은 공항 근처에서 안쉘이 준비해 준 군용차량을 찾았다.

차 안에는 두 사람이 이곳에 머무는 동안 필요한 여분의 옷가지와 생활용품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차에 올라타 쉬면서 헤리엇이 붉어진 피부를 진정시키는 동안 엔저는 헤리엇을 핥고 싶은 듯 뚫어지게 바라보며 혀로 입술을 축였다.

“선배. 그 물통 버리지 마세요.”

마지막 한 모금을 남기고 뚜껑을 닫은 헤리엇이 물통을 버릴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걸 본 엔저의 얼굴이 굉장히 간절했다.

“물이 조금밖에 없는데?”

“아주 좋습니다.”

“…….”

아무래도 엔저가 목이 많이 말랐나 보다. 미리 말했다면 더 남겨 두었을 텐데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운전대에서 손을 떼고 경건한 몸짓으로 물통을 받아 든 엔저가 물통 안의 물을 증발시킬 것처럼 눈을 빛내며 뚫어지게 응시했다.

옆에서 자신의 루비가 기분 나쁘게 반짝이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헤리엇이 자신의 붉은 기가 남아 있는 피부를 가리켰다.

“이런, 엔저. 이것 보렴. 내가 마치 생선 구이처럼 익어 버렸어.”

“…….”

살짝 뜸을 들인 그가 이어서 말했다.

“아니, 찜인가?”

“하하하… 하하하하하, 하하하! 선배의 유머 감각은 굉장하고 기발하십니다. 너무 웃겨서 배꼽이 빠져 버렸습니다.”

엔저는 배를 부여잡고 어깨까지 들썩이면서 자지러졌다. 헤리엇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개소리 말고 뒈져 버리라고 한마디 했겠지만, 그는 너무 웃기다면서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헤리엇은 엔저의 반응에 자신이 생각해도 웃겼는지 항상 짓던 미소가 좀 더 짙어져 있었다. 문득 엔저의 앞섬을 보니 언제 어디서나 팔팔한 젊은이답게 우뚝 솟은 상태였다.

“이런… 엔저, 발기했는데?”

“네.”

“방금까진 괜찮지 않았니?”

“선배의 빨갛게 익어 버린 피부를 보고 발기했습니다.”

생선 구이와 생선찜 중 어느 것에 발기했을까…….

애석하게도 으슥한 그늘에 주차된 차 안에는 정신 나간 대화를 지적할 수 있는 안쉘이나 고려인이 없었다. 그곳에는 비정상적인 두 사람뿐이었다.

“가엾게도…….”

헤리엇은 바지 속에 숨어 빳빳하게 발기해 버린 흉물을 가엽게 여기면서 엔저의 뺨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어떻게 해 주면 좋을까.”

“선배의 피부에 문지르게 해 주세요.”

말이 끝나자마자 헤리엇이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엔저의 흉흉한 성기를 밖으로 꺼낸 뒤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발갛게 익은 뜨거운 자신의 멱살 부근에 엔저의 팽팽하게 발기한 성기를 문질렀다.

이미 선액을 줄줄 흘리는 성기 때문에 목 전체는 물론 머리카락에까지 끈적끈적한 액체로 지저분해졌다. 그러나 헤리엇은 전혀 신경 쓰지도 않고 오히려 엔저가 입고 있는 상의를 들어 올려 배꼽을 확인했다.

헤리엇은 쇄골을 찌르는 단단한 성기도 배꼽도 어느 곳 하나 귀엽지 않은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헤리엇의 얼굴과 목덜미에도 성기를 문지르며 흥분을 이어 가던 엔저는 금방 사정에 도달했다.

왈칵하고 쏟아진 정액이 하얀 머리카락과 등, 어깨를 타고 흘러 옷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헤리엇은 고개를 들고 쇄골에 묻은 정액을 손가락으로 훔쳐 입으로 가져갔다.

손가락을 혀로 핥는 헤리엇의 모습에 엔저는 다시 흥분감이 솟아올랐지만 더한 행위를 하기에 이곳은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야외 주차장이었다. 결국 엔저는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볼록 솟은 자신의 성기를 바지 안으로 욱여넣었다.

호텔로 향하는 길 중간에 드라이브 스루 카페에서 아이스 초코를 주문해 준 엔저는 헤리엇이 음료를 다 먹고 버린 잔에서 일회용 빨대를 소중하게 챙기고서야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특히 빨대에서 헤리엇의 입술이 닿았던 부분에는 어떤 불순물도 묻지 않게끔 조심하면서 소중하게 챙기는 모습은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예술품을 다루는 듯했다.

헤리엇은 가끔 쓰레기통을 뒤져가며 이것저것 챙기는 엔저의 모습이 어쩜 저렇게 고양이를 닮은 것일까 귀엽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물건이 있으면 성에 찰 때까지 뒤집어엎는 점이 특히 닮아 있었다.

자신이 물었던 빨대를 품 안에 집어넣고 만족해하는 엔저를 귀엽다는 듯 인자한 표정으로 지켜보다 작게 웃었다. 그러는 헤리엇의 하얀 머리카락에는 여전히 엔저의 정액이 묻어 있었다.

*  *  *

이곳이 휴양지로 제격이라는 안쉘의 설명이 거짓말은 아닌지 예약된 호텔은 크고 호화로웠다. 그런데 룸에 직통으로 이동하는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수리 중인 바람에 절름발이인 헤리엇은 배려심 넘치는 후배의 품에 안겨 계단을 올라야 했다.

호텔 직원이 다른 위치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사용하면 된다는 말을 덧붙이려고 했지만, 엔저가 능력을 사용해 입을 막아 버린 사실을 헤리엇은 알지 못했다.

10층이 넘어 가는 호텔에서 엘리베이터도 없이 올라가야 하는 게 조금 불만인지라 헤리엇은 단단한 엔저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며 중얼거렸다.

“안쉘이 이런 건 알아보지 않았나 보네.”

“아니요. 역시 이대로 떠나보내기엔 일 처리가 너무 뛰어난 것 같습니다.”

“……?”

엔저는 헤리엇을 안고 씩씩하게 계단을 오르면서 진지한 얼굴로 고민하는 얼굴로 말했지만 헤리엇은 안쉘이 엘리베이터가 고장 난 호텔을 잡은 게 어디가 잘한 점인지 도통 영문을 몰랐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엔저는 아주 조심스럽게 헤리엇을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낮에 차 안에서 했던 것만으로는 왕성한 성욕을 억누를 수 없는지 그 위를 덮쳤다. 헤리엇은 아까까진 섬세한 유리 조각을 만지는 것처럼 대하더니 지금은 온몸이 터져 죽을 만큼 강하게 껴안는 엔저의 변덕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후배를 조금이라도 진정시키기 위해 탄탄한 등 근육을 새하얀 손이 훑었다. 이윽고 헤리엇의 손가락이 엔저의 목덜미에 닿았을 때 엔저가 헤리엇의 입술을 격정적으로 집어삼켰다.

헤리엇은 엔저의 혀를 이제 익숙하게 받아들이며 작게 신음을 흘렸다. 그와의 입맞춤은 늘 뜨겁고 새롭고 이상한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매번 처음인 것처럼 느껴지는 쾌감과 간지러움에 몸이 반사적으로 움츠러들었지만 엔저에게 잡힌 탓에 그것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온몸이 구속되는 느낌은 익숙했다.

그때는 아팠나, 답답했나, 괴로웠었나.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냥 버틸 만해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 짧은 순간 엔저에게 온몸이 꽁꽁 묶인 헤리엇은 안쪽에서 휘몰아치는 감각을 도저히 이길 수 없어 허리를 뒤틀었다. 입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질척한 혀에 목덜미가 찌르르해져 왔다.

한참 동안 헤리엇의 입 안을 간질이던 혀가 빠져나갔다. 엔저는 숨을 헐떡이며 아래에 놓인 헤리엇을 느긋하게 감상했다. 헤리엇의 눈에 엔저가 언제나 귀여운 아기 고양이지만 가끔 이렇게 보이는 성숙한 모습에는 눈을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낯설었다.

엔저는 새하얗던 헤리엇의 뺨과 눈가가 불그스름하게 변하는 것을 보며 자신의 욕망과 끊임없이 싸워야만 했다. 색이 바랜 것처럼 하얗기만 한 헤리엇이 유일하게 색을 내는 순간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인내심이 실처럼 가늘어졌다. 오로지 자신만이 피울 수 있는 꽃이었다.

하지만 엔저는 인내심이 강했고 특히 헤리엇에 관한 것이라면 더 심해졌다. 헤리엇의 쇄골을 타고 올라가 뺨에 입을 맞추던 엔저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무방비하게 손을 늘어트리고 모든 것을 자신에게 맡긴 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작게 미소 짓는 헤리엇과 눈을 마주했다.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광경이었다.

따끈한 김이 올라올 듯한 헤리엇의 젖은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은 엔저는 그의 허리와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선배, 아프지는 않습니까?”

“음…….”

헤리엇은 계속 벌리고 있던 허벅지 안쪽이 뻐근했는지 몸을 쭉쭉 늘리고 있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엔저는 관계 후의 뒤처리까지 모두 말끔하게 끝낸 다음 넓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서류들을 정리했다.

사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처리해야 할 일이었지만 눈만 마주치면 불타오르는 두 사람에겐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아마 안쉘도 그 정도는 짐작하고 계획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안쉘이 건네준 서류에는 막시무스 전 의원과 그가 모으고 있는 자경단, 그리고 뒤에서 은밀하게 고용 중인 용병단의 세세한 정보까지 전부 조사하여 정리되어 있었다. 헤리엇은 짧은 시간에 이만큼이나 알아내 깔끔하게 정리한 정보들을 훑으며 안쉘의 유능함에 감탄했다.

“안쉘도 대단하네. 이런 것까지 알아 오다니.”

“대통령씩이나 되어서 이 정도의 정보도 모으지 못한다면 나가 뒈져야 하지 않을까요?”

헤리엇은 귀엽게 현직 대통령을 악담하는 후배의 뺨을 톡톡 치며 작게 웃었다.

막시무스는 단테가 상의원이었을 때부터 데리고 다니던 보좌관이었다.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난 후에는 의원직에 올라 단테를 지지했다.

이십여 년간 단테의 곁에서 그가 흘리는 단물을 누구보다도 달콤하게 빨았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단테의 인생에서 가족들보다도 그를 더 가까이에서 지켜본 측근이기도 했다.

“저도 이야기만 들어 봤지 가까이에서 본 적은 없었습니다.”

“단테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했던 사람인데도?”

“네.”

엔저는 침대에서 내려와 테이블 쪽으로 향하는 헤리엇이 앉을 의자를 빼 주기 위해 일어나 움직였다. 헤리엇이 의자에 앉는 것까지 확인한 엔저는 그의 맞은편에 앉아 이미 확인한 서류들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꼼꼼하고 야무지기까지 한 후배의 모습에 헤리엇의 초록색 눈동자에 뿌듯함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숨겨 뒀던 겁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단테의 더러운 치부를 본 작자일 테니까요.”

헤리엇이 겪어 온 바에 의하면 단테의 사상에 동화되어 따르는 그들 대부분이 인어를 굉장히 증오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이 정말로 인어에게 무슨 짓을 당했던 것인지, 아니면 단테의 세뇌에 걸린 것인지, 그저 바다를 차지하고 싶었던 것인지, 대체 왜 인어를 증오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었다.

헤리엇은 막시무스의 뒤를 캐다 보면 그 해답을 줄지도 모른다고 조금은 기대하는 중이었다. 사상이 맞지 않는 상관 밑에서 이십여 년을 버티면서 권력을 휘두르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거기다가 지금 용병을 고용하고 자경단을 모으는 그의 행위에 담긴 의도가 너무나도 명확해 추리할 것도 없었다. 안쉘이 당선되고 인어와 임시휴전을 맺은 것에 불만을 가진 것이 틀림없었다.

“무력으로 안쉘을 대통령 자리에서 몰아낼 생각일까?”

정권이 바뀌고 안쉘이 아직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한 이 시점이 가장 큰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눈에 뻔히 보였다. 실제로 단테의 잔당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덤벼들었으니까. 물론 엔저가 전부 능력으로 치워 버렸지만 말이다.

헤리엇이 서류를 보며 곰곰이 생각하고 있다가 문득 조용해진 분위기에 고개를 들었다. 귀여운 후배가 붉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배.”

“응?”

“언제부터 알고 계셨어요?”

“뭘?”

“알시타가 부친인걸. 언제부터 알게 되셨던 거예요?”

엔저의 말에 헤리엇은 대답하지 않고 곤란한 듯 웃기만 했다. 헤리엇의 초록색 눈동자가 눈꺼풀에 가려졌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모르고 계셨잖아요.”

“그랬지.”

하지만 헤리엇은 그 대답을 끝으로 대화를 이어 가지 않았다. 아무리 귀여운 후배에게라도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말할 이유를 모르고 있는 것인지 작은 미소만 지으며 곤란해했다.

사실 엔저는 헤리엇에 대한 것 중에 자신이 모르는 일이 있다는 것은 미칠 듯이 싫었다. 하지만 헤리엇이 원하지 않는다면 깊게 파고들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헤리엇이 언제 눈치챘는지 대충 짐작이 가기도 했다. 아마 단테의 세뇌가 풀리면서 헤리엇에게 ‘어떤’ 기억들이 돌아왔던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누군가가 작은 힌트를 주었을지도 몰랐다.

“이제는 상관없어요, 선배. 지금 제게 가장 중요한 건 선배의 소원이고 헤리엇 선배는 제게 했던 약속을 지키는 것밖에 남지 않았으니까요.”

어렸을 적의 엔저 맥과이어.

작은 키, 커다란 눈, 털을 잔뜩 경계하며 자신의 곁을 맴돌았던 그 작디작은 남자아이가 생각 없이 내뱉었던 그 말.

그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렸고 헤리엇의 앞에서 증명해 보였다. 헤리엇은 또다시 울렁거리는 심장에 의아함을 느끼고 얼굴에서 미소를 지웠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각들이 생소했다.

“신기하지, 엔저.”

엔저가 손을 들어 헤리엇의 뺨을 엄지로 쓰다듬었다.

“네 앞에선 감정을 느낀다는 게. 다른 사람이 아닌 오로지 너에게만 이렇게 심장이 요동쳐. 너무나 신기하지 않니.”

헤리엇이 크고 뜨거운 엔저의 손바닥에 얼굴을 대고 눈을 감았다. 새하얗게 바랜 촘촘한 속눈썹이 그의 눈동자를 가렸다.

“…신기하네요. 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

헤리엇은 갑자기 엔저의 목을 물어뜯어 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엔저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그러나 다시 침대 위로 직행하기에는 두 사람이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막시무스와 관련된 서류를 내려다보던 엔저가 물었다.

“지원군을 부를까요, 선배.”

“그럴 필요가 있니?”

헤리엇의 붉은 입술이 벌어지는 것을 보던 엔저가 몸을 부르르 떨면서 전율했다. 이 세상에 서로를 제외한 나머지는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  *  *

두 사람은 지금 어느 한 건물 옥상에 올라와 막시무스의 저택을 망원경으로 살펴보는 중이었다. 

막시무스의 저택은 휘황찬란했던 과거를 보여 주기라도 하듯 화려하고 거대했다. 저택 안의 정원은 곳곳에 현란한 색들의 꽃들이 심어져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눈을 아프게 만들었다. 막시무스가 예전에 마을 주민들을 초대하곤 했다는 로즈가든의 명성만큼은 여전했다.

안쉘이 알려 준 정보에 의하면 단테보다도 훨씬 나이가 많아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 늙은이가 아직도 권력을 놓지 못하고 이런 일을 저지른다는 사실에 조금은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헤리엇은 뚜렷하지는 않지만, 단테와 함께했던 기억들이 산발적으로 툭툭 튀어나오곤 해서 조금은 곤혹스러웠다. 기억 속에서의 단테는 그가 생전에 말했던 것처럼 손주인 자신을 굉장히 사랑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만큼 아껴 주었다.

그는 상의원으로 활동할 당시에 바쁜 와중에도 헤리엇을 무릎에 올려놓고 어화둥둥 어르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때 단테의 곁에 있던 거무죽죽하고 덩치가 큰 사내가 아마 막시무스였던 것 같기도 했다.

‘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을까.’

너무 어렸을 때라 굳이 기억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던 것 때문일까. 떠오르는 단테와의 기억은 아주 흐릿했고, 흑백 영화를 보는 것처럼 바래 있었다.

헤리엇은 저택을 한참 동안 망원경으로 쳐다보다가 희미하게 웃었다. 어쨌든 단테는 끔찍한 짓을 저질렀고 헤리엇을 생체실험 도구로 이용했다. 그 많은 실험체 중에 설마 죽었다고 생각했던 손자가 포함되어 있으리라곤 예상도 하지 못했겠지만, 그 덕분에 늙은이의 참혹한 말로는 감상할 수 있었다.

단테는 헤리엇의 눈동자와 끊임없이 시선을 맞추려고 하며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과다출혈로 인해 죽기 직전까지 손자에게 잠시라도 닿겠다며 손을 허우적거렸다.

많은 이들이 너무나도 쉬운 죽음이 아니냐고 소리쳤지만 적어도 헤리엇은 자신이 친손주라는 사실이 단테에게 죽어서도 믿고 싶지 않은 절망적인 진실이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임무를 앞에 두고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 헤리엇의 옆모습을 보던 엔저 맥과이어는 감탄스러워하며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숨만 쉬어도 땀이 날 정도로 더웠던 낮과는 달리 이곳의 밤은 제법 쌀쌀했다.

모래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저택 안 동태를 살피는 데 문제는 없었다. 다만 모래바람이 섞여 있는 공기 때문인지 숨 쉴 때마다 목구멍이 따끔거렸다.

저쪽 건너편 마을을 지나가면 거대한 사막이 나오는데, 한때 아름다운 바다였던 그곳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란 말이 와 닿았다.

난간에 기대고 서 있던 헤리엇이 몸을 뒤로 물렸다. 그의 하얀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엉망으로 헝클어졌다.

“역시… 선배는 허튼 일 하는 것 없이 완벽하고… 감히 저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진중한 계획을 짜고 계시겠지요.”

“…….”

방금까지 잡생각을 하고 있던 헤리엇이 머쓱한 기분에 휩싸였다.

“어쩌면 이렇게 완벽하고 아름다우실 수 있을까요.”

“…음.”

하늘 같은 선배와 함께 임무를 수행한다는 상황이 감격스러운지 눈물마저 글썽이는 엔저를 보던 헤리엇은 난생처음으로 난감함이라는 감정과 마주했다. 엔저를 아는 사람이라면 혹시 머리에 총을 맞았는지 의심부터 했겠지만 헤리엇은 조용히 망원경을 내려놓을 뿐이었다.

“어떤 옷을 입어도 무척 멋지시지만, 오늘은 더 눈이 부셔 견디기 힘이 듭니다, 선배…….”

평소에 수수한 외출복을 입거나 군복, 제복만 입고 다녔던 헤리엇이 이번 임무에서는 맞춤형 기동복을 입고 있었다. 고가의 스판 재질로 만들어진 기동복은 헤리엇의 신체에 맞춰 안쉘이 직접 주문 제작해 준 것이었다. 평범한 옷감이 아니라 불연성 재질로 화기(火氣)에도 강하고 방탄복의 기능도 들어가 있었다.

어깨에서부터 허벅지까지 단단하게 조여지는 끈과 신체에 딱 맞춰 드러나는 굴곡, 근육이 조밀하게 짜인 헤리엇의 복부와 엉덩이는 엔저의 인내심을 마구잡이로 공격했다.

‘전혀 안 보이네…….’

잡생각을 했던 탓도 있었지만 사실 기념품 가게에서 싸게 산 망원경은 당장 코앞에 있는 가게의 간판도 제대로 읽어 낼 수 없었다. 싸구려가 다 그렇긴 해도 눈을 반짝이며 ‘우리 선배님 너무 멋져!’하고 반짝이는 엔저의 기대를 깨트리고 싶지는 않았다.

곤란한 미소를 지으며 웃는 헤리엇의 모습을 탐하듯 구석구석 훑던 엔저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음험한 후배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헤리엇이 망원경을 바닥에 떨어트리며 소곤거렸다.

“뭐… 대충 뭐라도 털면 나오지 않을까?”

헤리엇이 한 말은 이미 안쉘이 엔저에게 한 내용과 같았다. 자경단을 조사한다는 빌미로 용병단을 조금만 털어도 먼지가 우수수 나올 것이라는 말이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없으나 막시무스가 순수하게 마을의 치안을 위해 용병단을 고용했다고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을 굳이 말한다며 안쉘을 비웃었던 엔저는 마치 처음 듣는 내용인 것처럼 마냥 감격에 벅차올라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예상할 수 있는 곳에 인력을 배치해 뒀을 테니 두드려 잡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연구소에 쳐들어갔을 때처럼 마구 돌아다니지 말고 제발 조심해서 움직여 달라며 두 손을 꼭 맞잡고 당부하던 안쉘이 통곡할 만한 말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투 경험만 따지면 헤리엇보다 엔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헤리엇이 시골에 내려가 멍하니 지낼 동안 엔저는 무수히 많은 전투를 치렀을 터였다.

헤리엇은 그런 엔저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었지만 반짝이는 루비를 보고 있자니 섣불리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엔저의 곁에 있으면 항상 새로운 감정의 파도에 휘말리곤 했지만, 이토록 당혹스러운 감정은 또 처음이었다.

헤리엇이 당황하는 동안 엔저는 분홍색으로 달아오르는 헤리엇의 귓가를 마음 놓고 감상했다. 미치도록 사랑스럽고 귀여운 모습에 엔저의 손가락이 움찔거렸지만 헤리엇은 딱히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리고 일단…….”

“네.”

움직이는 입술, 깜박이는 눈, 흰 속눈썹, 초록색 눈동자를 차분하게 내리깔고 목표물을 바라보는 고요한 시선까지. 헤리엇의 어느 것도 놓치지 않고 눈으로 샅샅이 핥던 엔저는 그래도 착실하게 대답했다.

“막시무스의 서재까지 은밀하게 잠입해서 안쉘이 원하는 증거들을 모으고…….”

“과연, 훌륭하신 전략입니다.”

아직 말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도 엔저는 습관처럼 감탄했다.

“안쉘의 말대로 피해는 최소한으로 하고… 인명 피해는 줄이는 게 좋겠지.”

“자비로우시기까지… 선배의 가르침은 제가 감히 따라갈 수 없을 만큼 훌륭하십니다.”

엔저의 능력으로 하늘을 날아 저택 입구에 내려진 헤리엇은 땅에 발을 딛자마자 정원을 순찰 중인 사내의 목을 조르고 기절시켰다. 저 멀리서 엔저가 용병 한 명을 똑같이 기절시키고 목덜미를 잡아끌고 오고 있었다.

죽진 않았지만 파랗게 질린 것이 당분간 깨어나지 못할 듯했다. 헤리엇은 기절한 사내의 발목을 잡고 질질 잡아끌어 수풀 속에 감추고 엔저와 함께 창가로 다가갔다.

어두운 하늘과 달리 정원 내부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밝았다. 여기저기 설치된 조명으로 보아 정원을 제법 공들여 꾸민 것이 분명했다.

헤리엇은 허리춤에 미리 준비해 둔 절연테이프를 꺼내 창문 아래 모서리에 몇 겹으로 붙인 다음 창문을 팔꿈치로 내리쳤다. 깔끔하게 깨진 창문은 바삭거리는 소리를 내며 추락했지만, 바닥에 닿지 못하고 허공에 두둥실 떠올랐다가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엔저가 능력을 사용한 덕분이었다.

구멍 난 창문 안에 손을 넣어 잠금장치를 풀고 안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은 군더더기 없이 매우 신속하게 움직였기에 입구에서 저택 안까지 잠입하는 데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안이 꽤 넓네.”

정적이 쌓인 복도를 천천히 걸어가며 주변을 살피던 두 사람은 반대편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계단 아래로 몸을 숨겼다. 다행히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공간이었기에 자세히 살피지만 않는다면 발견하기 힘들었다.

헤리엇은 일정한 발걸음 소리로 상대는 세 명 정도이고 모두 훈련받은 이들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군인인 것 같지?”

“탈영병일 수도 있고요.”

“그러네… 막시무스를 따라 나온 걸까.”

그들은 위층으로 올라갈 생각인지 두 사람의 지척에까지 접근해 왔다. 헤리엇은 딱히 긴장하진 않았지만, 최대한 들키지 않기 위해 엔저와 바짝 붙어 있으려니 왠지 발기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곤란했다.

발기해 버리면 마음껏 움직이기가 힘들어질지도 모르기에 가까스로 흥분을 참은 헤리엇은 위쪽으로 점점 멀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수런수런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은 계단 밑에 침입자가 숨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쪽 상황은 어때?”

“…개 같아. 맥과이어놈이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니까.”

대답하는 사내의 목소리엔 공포심이 담겨 있었다. 헤리엇은 눈을 깜박이며 들리는 익숙한 이름에 신경 써서 귀를 기울였다.

반란군을 제압하거나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폭동을 엔저 부대가 쓸어버렸을 때 도망친 이들 중 한 명이었는지 사내는 두 번 다시 엔저와 마주하고 싶지 않다고 투덜거렸다.

그런 놈이 왜 이곳에서 순찰이나 돌고 있는지 의심스러웠지만 헤리엇은 후배의 명성에 선배로서 아주 뿌듯해졌다. 그러나 이내 코웃음 치는 햇병아리의 이어진 대답에 몸이 굳었다.

“그런 새끼는 하나도 무섭지 않아.”

정말로 무섭지 않은지 비웃는 목소리로 햇병아리가 말을 이어 갔다.

“들리는 소문에 고자인 것 같은데, 사내 구실도 못하는 놈이 뭐가 무섭다고.”

나머지 두 사람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고 이내 그는 조롱하는 투로 말을 끝마쳤다.

“단테의 정부였다가 지금 대통령이라는 젊은 녀석으로 갈아탄 게 분명해. 그 덩치로 뒤에서 얼마나 더러운 짓을 해야 그 나이에 승승장구할 수 있는지…….”

쯧쯧 혀까지 차는 걸 마지막으로 헤리엇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사라졌다. 막상 당사자인 엔저는 아무 생각도 없어 보였지만 헤리엇의 표정 없는 얼굴은 그게 아니었다.

그는 엔저에게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고 허벅지에 꽂아 둔 칼을 뽑아 달려 나가려고 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엔저가 화들짝 놀라 헤리엇의 몸을 끌어안았다.

아무리 엔저가 힘이 세도 헤리엇이 진심으로 뿌리치면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후배의 손길을 매정하게 뿌리칠 수 없었던 헤리엇은 계단 아래에서 소리 없이 버둥대다가 가까스로 진정했다.

한참 동안 엔저의 품에 안겨 있으니 놀랍게도 기분이 한결 나아진 헤리엇이 다시 작게 미소 지은 얼굴로 돌아와 엔저에게 속삭였다.

“미안하구나, 엔저… 갑자기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르겠네.”

임무에 지장을 줄 수 있었을 텐데도 엔저는 기분 좋은 듯이 목을 울리며 소곤거렸다.

“괜찮습니다, 선배.”

그는 몇 분간 말없이 헤리엇을 강하게 껴안고 있다가 떼어 놓았다. 헤리엇은 멀어지는 엔저의 어깨를 저도 모르게 붙잡고 다시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고 싶어지는 충동을 이기기 위해 인내심을 최대한 발휘해야 했다.

심장이 울렁거렸다. 움찔거리는 손을 내려다보며 헤리엇이 머쓱한 듯 웃었다. 새로운 감정은 늘 그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린 두 사람은 계단을 통해 위층으로 올라갔다. 고용된 용병들이 저택에 머무는 건 아니었는지 복도는 무척이나 적막하고 조용했다. 간간이 상주 고용인들과 마주칠 뻔하긴 했지만 헤리엇과 엔저는 능숙하게 몸을 숨겼다.

“이 시대에 메이드 복이라니… 상당히… 취향이 오래된 사람인 것 같네.”

메이드 복을 입고 지나가는 사용인의 뒷모습을 보며 헤리엇이 중얼거렸다. 단테보다 나이가 많다고 했으니 아마 아흔이 훌쩍 넘었을 노인네의 구식 취향은 젊은이들이 이해하기엔 조금 난해했다.

엔저가 헤리엇의 중얼거림에 코웃음을 쳤다.

“구닥다리 변태죠.”

그러다가 헤리엇과 눈이 마주치자 말이 바뀌었다.

“…하지만 가끔 입는 건 괜찮을 것 같습니다.”

말을 바꾸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순간 떠오르는 생각에 헤리엇은 난감해졌다. 그리고 곤혹스러운 듯 웃었다. 만약 엔저가 저런 옷을 입고 싶다고 한다면 두 팔 벌려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선배로서 후배를 사랑해 주리라 다짐했다.

엔저는 헤리엇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지만, 마음속까지 완벽하게 꿰뚫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엉뚱한 방향으로 이어지는 헤리엇의 생각은 당연히 알지 못했다.

안쉘이 매수한 고용인 몇 명의 진술로 그려진 저택의 내부지도에 의하면 서재는 총 세 곳이었다. 하지만 헤리엇과 엔저는 물론 안쉘까지 이 세 곳 중에서 증거가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고용인들이 알 만한 곳에 증거를 둘 정도로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저택 내부를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막시무스의 침실로 추정되는 곳까지 흘러들어 왔다. 방 안에서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외출했다는 정보는 없었으니 저택 안에 있음이 틀림없을 텐데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아 조금 의아해했다.

그러면서도 헤리엇은 겁 없이 침실 안쪽으로 들어가 구석구석을 들쑤셨다. 책장에 있는 책이나 서랍에 있는 것들을 바닥에 던져 버리며 요란하게 수색했다.

어차피 내일 아침이면 깨진 창문부터 두 사람이 침입한 증거들이 하나둘씩 발견될 테니 조심스럽게 행동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지금 당장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

“선배.”

엔저의 부름에 가까이 다가간 헤리엇의 눈에 보인 것은 침실 한편에 마련된 작은 책상이었다. 책상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 밑에 놓인 작은 서랍이 자물쇠로 꽁꽁 잠겨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자물쇠는 능력자용으로 만들어져 능력으로는 절대로 풀 수 없는 특수한 물건이었다.

그래 봤자 헤리엇에게는 아무런 방해 요소도 되지 못했다. 팔꿈치로 자물쇠를 내리치자 나름 견고하게 생긴 물건인데도 단번에 부서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헤리엇이 가장 위에 있는 서랍부터 열어서 살폈다.

“…뭐가 없네.”

상당히 고가의 능력자용으로 만들어진 자물쇠까지 채워 놓았기에 뭔가 중요한 것들을 넣어 놨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실망이었다. 안쪽에 손을 넣고 뒤적거려 보지만 장부는커녕 종이 쪼가리 하나도 잡히지 않았다.

가장 마지막 서랍을 여니 무언가가 나왔는데, 기대와는 달리 작은 사진첩 하나뿐이었다. 별 소득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안쉘 입장에서 그런 것이고 헤리엇에겐 아니었다.

헤리엇이 사진첩을 펄럭펄럭 넘기면서 낮게 중얼거렸다.

“단테의 예전 모습이야.”

“…….”

엔저는 그까짓 늙은이의 젊었을 적 모습 따위 궁금하지 않은 듯 별 소득이 없다며 코웃음을 쳤다. 그래도 헤리엇은 사진 속의 단테를 뚫어지게 관찰했다.

알시타와는 다른 느낌의 인자한 분위기를 가진 단테는 왠지 모르게 자신과 닮은 것 같았다. 만약 이 말을 엔저에게 했다면 감히 저 늙은이와 선배가 어찌 닮았겠냐고 소리칠지도 모르겠다.

“알시타.”

사진첩의 페이지를 조금 더 팔랑팔랑 넘기자 어린 시절의 알시타가 찍혀 있었다. 헤리엇이 기억하는 알시타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단테의 품에 안긴 어린아이는 분명 알시타였다.

사진을 한 장 한 장 뚫어지게 쳐다보며 넘기는 것을 반복하던 헤리엇은 조금 이상한 점을 느꼈다.

“엔저. 이 사진 좀 봐.”

엔저는 사진첩에는 흥미가 없어 다른 곳을 뒤지고 있다가 헤리엇의 부름에 냉큼 다가왔다.

헤리엇이 눈앞에 사진첩을 펼쳐 보여 준 사진에는 단테와 그의 아내로 추정되는 여성, 그리고 알시타가 함께 찍은 평범해 보이는 가족사진이었다. 그런데 살펴볼수록 어딘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

“인어지?”

혹시 너무 어두워서 사진의 색감이 잘 보이지 않을까 봐 헤리엇이 책상 위의 작은 등까지 켜서 보여 주며 말했다.

“푸른색은 인어의 고유색이잖아. 인간에게선 이런 색이 나오지 않아.”

헤리엇이 말한 대로 사진 속 단테의 옆에 선 가슴까지 내려오는 구불거리는 머리카락과 빛나는 눈동자의 여성은 사진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선명한 푸른색을 지니고 있었다. 단테 막심이 지금까지 인어들에게 해 온 짓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정말로 이질적인 사진이었다.

“어째서…….”

헤리엇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들었다. 이윽고 허벅지에 꽂은 단검을 빼내 어느 곳을 향해 날을 세워 던졌다. 이윽고 탁 소리가 나며 방 안이 환해졌다. 전등 스위치에 단검을 던져 맞힌 듯했다.

끼익.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인 한 명이 한 발 한 발 힘겹게 침실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거동하는 게 불편해 보이는 늙은이가 부축해 주는 사람도 없이 느리게 들어와 침대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낯선 이가 침실에 침입했는데 도망치거나 소리 지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부르지도 않는 걸 보아하니 헤리엇이 올 걸 예상한 사람처럼 보였다.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이곳 사용인들을 안쉘이 회유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막시무스 또한 안쉘의 측근 중 누군가를 회유한 것일 수도 있었다.

“…이렇게 보니… 닮았군.”

쇠가 갈라지는 것처럼 매우 거칠고 듣기 불편한 목소리가 막시무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쉬어 있는 말소리에 쌕쌕거리는 바람 소리도 섞여 있었다.

“단테도 나도 속은 거지… 그 영악한 놈에게.”

헤리엇은 늙은이가 대체 누구에게 말하는 건지 정확히 알 수 없어서 중간에 말을 잘라 버렸다.

“당신이 막시무스?”

“그래… 어린 너를 한 번 본 적이 있었는데… 기억나진 않겠지.”

헤리엇은 당장 알시타가 자신의 친부였다는 사실도 기억이 돌아오기 전까지 모르고 있었다. 지금은 단테와 함께했던 아주 어린 시절이 단발적으로 떠오르긴 했지만, 그 속에 막시무스는 선명하지 않았다.

헤리엇의 초록빛 눈동자와 뚫어지게 마주하던 막시무스가 혀를 쯧쯧 찼다.

“단테가 낳은 그 불효막심한 놈 말이다. 알시타 그놈은 어리석어도 너무 어리석었어… 지 때문에 어떤 사태가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헤리엇은 자신이 단테의 친손자임을 알고 있는 듯한 막시무스의 말에 미소를 지웠다. 특히 알시타의 험담을 듣고 있자니 방금 치밀어 올랐던 사나운 충동이 다시 헤리엇을 삼켰다. 그래도 아까 느꼈던 격정적이고 심장이 울렁거리는 감각까지는 아니었다.

“너를 숨겨 버린 탓에 단테는 인어를 몰살하려고 했던 거고, 그 때문에 너는 끔찍한 실험을 받게 된 게지. 전부… 알시타 그놈 때문이다.”

말을 마친 듯 막시무스는 기침을 콜록콜록 내뱉기만 했다.

헤리엇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두고 표현하는 ‘만약에’라는 가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알시타가 단테의 계획에서 헤리엇을 빼내기 위해 죽었다고 속이고 보육원에 데려간 것도, 그 때문에 단테가 인어를 몰살하려는 계획을 짠 것도, 알시타가 고통스럽게 생을 연명하다 죽은 것도, 거기에서 앤을 만난 것도, 헤리엇이 생체실험을 당한 뒤 아카데미에서 엔저를 만난 것들 전부 이미 일어난 일이었다.

어차피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만약’이라는 말을 붙이고 후회하는 짓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고문해도 몇 시간 못 버틸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말투는 곤란해하는 듯 보였지만 헤리엇의 표정은 그리 곤란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 막시무스의 저 늙은 몸뚱이가 어느 정도로 고문을 버틸 수 있을지 계산하는 중이었다.

그런 헤리엇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막시무스는 그저 헤리엇이 들고 있던 사진첩을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다. 헤리엇보다 곱절은 더 살아온 늙은이의 탁한 갈색 눈동자는 악의로 가득했다.

“가여운 나의 친우. 그토록 사랑하고 아꼈던 네 손에 살해당하는 순간 얼마나 괴로웠을까. 나마저 가 버리면 죽은 내 친우의 넋은 누가 기려줄꼬.”

“…….”

이놈도 상당히 정신이 나간 놈이구나.

이제 보니 저 늙은이는 놀랍게도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헤리엇은 단테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며 저승에서의 안위까지 걱정하는 막시무스를 보며 작게 웃었다.

그는 인어를 학살한 단테를 선량한 인간으로 여기며 불쌍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만약 그를 고려인과 안쉘의 앞에 데려다 놓으면 분노한 두 사람에게 돌에 맞아 죽을지도 모르겠다.

헤리엇과 엔저는 단테에게 유감이 있긴 했지만, 그 감정이 지금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헤리엇은 자신의 손으로 단테를 죽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복수를 끝냈다고 생각했다. 엔저 또한 애초에 처음부터 헤리엇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고 단테가 죽든 말든 상관없었다.

단테가 가진 사연 따위 궁금하지 않은 두 사람은 감정 없는 무기질적인 시선으로 막시무스를 응시했다. 그가 늘어놓는 장황한 헛소리는 아무런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헤리엇은 오히려 아카데미 시절의 교육과정 중에 배운 고문 기술들을 어떻게 써먹을지 여전히 생각 중이었다. 그 과목을 수료한 이들 중에서 지금까지도 헤리엇을 따라갈 자가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 고문 관련 과목들의 성적이 아주 우수했다.

헤리엇이 배운 기술들을 써먹기 위해 한 걸음 움직인 순간 멋대로 과거를 회상하던 늙은이가 내뱉은 문장 하나가 귓가에 박혔다.

“산호, 꽃 산호. 그 인어만 아니었다면…….”

*  *  *

단테 막심은 보이는 것과 다르게 불우한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틈만 나면 손을 올리는 난폭한 부모 밑에서 그는 여러 폭력 속에 노출된 유년기를 보냈다.

세계의 끝이라고 알려진 29구역은 숫자만 번지르르하게 붙여 놓았을 뿐 사실상 빈민굴이나 다름없는 무법지대였다. 그곳에서 단테는 보잘것없는 능력이 있는 능력자로 늘 웃는 얼굴과 타인의 비위를 잘 맞추는 언변을 가지고 살아남았다.

단테가 열여덟이 되던 해 평소에 보였던 사람에게 소개를 받아 29구역의 공무직을 한 자리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함정이었고, 이내 목숨을 위협받게 되었다.

규모가 큰 갱단에 단단히 찍혀 버린 단테를 정부는 구해 주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는 그보다 더한 일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며 군이나 경찰을 투입하기에는 인원과 예산이 아깝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29구역 출신인 막시무스는 그해 단테와 함께 속아서 소개로 들어오게 된 동기였다.

갱단에 쫓겨 절벽 끝까지 내몰린 그는 결국 절벽에서 떨어져 바다 깊은 곳으로 빠졌다. 그러나 운이 좋게도 살아남았다. 만약 그가 그곳에서 죽어 버렸다면 인어와의 전쟁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살았다.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빠진 바다에 있었다. 29구역 양쪽에 인접한 해안가 중 한 곳은 정부에 의해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었는데 그곳이 동쪽 바다 인어들이 무리를 지어 사는 곳과 가까웠기 때문이다.

단테가 빠진 곳은 바로 그곳이었고, 바닷속에 빠진 단테를 동쪽 바다에 사는 인어가 구해 주었다.

단테는 햇빛이 비치는 투명한 바닷속에서 자신을 끌어 올리는 차가운 감촉을 느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새하얀 손가락과 비늘이 반짝이는 하얀색 지느러미를 가진 이형의 존재를 똑똑히 보았다.

어릴 적에 동화처럼 들어 온 난폭하고 사나운 인어 이야기는 모두 거짓이었는지 인어는 해안가 모래사장까지 단테를 조심스럽게 끌고 나왔다. 단테가 눈을 떠 확인한 인어는 천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여성형 인어인 그녀는 단테가 지금껏 보아 온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인어의 이름은 꽃산호이며 그 뒤에 붙는 이름은 가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며 배시시 웃는 그녀에게 단테는 한눈에 반해 버리고 말았다.

그 길로 단테는 꽃산호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그리고 인어들도 비늘에 묻은 물기가 마르면 다리가 생기고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긋나긋하게 웃는 그녀는 단테가 이끄는 손길에도 전혀 반항하지 않았다.

꽃산호는 말주변이 없는 인어였다. 가끔 노래할 때를 제외하고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녀를 집에 들여앉힌 단테는 잠시나마 행복감에 빠졌지만 29구역은 아름다운 그녀가 살기엔 너무 위험한 곳이라는 걸 상기해 냈다.

그러던 중 막시무스에게 꽃산호의 정체를 들키는 바람에 크게 말다툼을 했지만, 함께 이 지옥 같은 29구역을 벗어나자는 단테의 꼬임에 막시무스는 넘어가고 말았다. 그때의 단테는 대단하지 않지만, 능력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상태였다.

단테와 막시무스는 인어인 꽃산호의 도움으로 바다를 횡단해 난생처음으로 29구역이 아닌 다른 구역에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평화로운 타지에 넋이 나간 것도 잠시 두 사람은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사업을 꾸려 나갔다.

막시무스는 그때까지도 인형처럼 희미하게 웃으며 단테를 따르는 꽃산호가 꺼림칙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웃고는 있지만, 텅 비어 버린 듯한 미소에 마치 바다에 놔주면 그대로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꽃산호는 푸른 머리카락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그림처럼 아름다운 미인이었지만 그것뿐이었다. 그래, 마치 감정 없는 인형 따위를 보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도움으로 바다를 건너긴 했지만 막시무스는 꽃산호를 좋아할 수는 없었다.

29구역에서 치열하게 살아남은 두 사람은 평화로운 타 구역에서 날이 갈수록 승승장구했다. 얼마 이상의 재물을 모으자마자 단테는 제법 그럴싸한 저택을 하나 지어서 그곳에 인어와 살았다. 그리고 그다음 해 인어는 임신했다.

열 달 뒤 세상에 나온 아이의 이름은 알시타 막심이었다.

*  *  *

“…인어와 인간이?”

막시무스의 말이 잠시 끊긴 사이 헤리엇이 의문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신이 가진 출생의 비밀에 인어의 피가 섞여 있다는 사실에도 헤리엇은 놀란 기색이 없었다. 이제까지 지루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제법 희미한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막시무스는 그런 그의 모습에 주름진 눈가를 꿈틀거리며 저런 것까지 그 빌어먹을 인어와 닮았다며 욕설을 내뱉었다.

“인어와 인간의 이종교배가 가능했나?”

헤리엇의 옆에서 무표정으로 듣고 있던 엔저가 대답했다.

“군 실험에서는 성공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래?”

“네. 인어도 인간에 속하는 민족이라고 했으니까요.”

헤리엇이 생체실험의 성공작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그에게 인어의 피가 흘러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렘이라고 했던 성공작도 그랬던 것일까.

막시무스를 신뢰하기는 어려웠지만 알시타를 껴안고 있는 푸른 머리의 여성과 단테의 사진 속 모습을 보면 마냥 허황된 이야기는 아닌 듯싶었다.

말을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던 막시무스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막시무스는 단테를 따라 정치계에 뛰어들어 그를 보좌하기 시작했다. 그건 단테의 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고 아니면 29구역에서 태어나 기어코 부와 명예를 손에 움켜쥔 그를 동경해서일 수도 있었다.

막시무스는 단테의 옆자리를 차지한 인어 꽃산호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그건 어떻게든 감당해 낼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리고 막시무스의 걱정이 효과가 있었는지 알시타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물에 닿아도 변하지 않았고 능력도 없었다.

그렇게 물 흐르듯 평탄한 날이 지속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막시무스는 그날을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기억했다. 천둥 번개가 내리치던 비 오는 날 밤, 단테는 비에 잔뜩 젖은 채 막시무스를 찾아왔다.

그는 파랗게 질린 안색이었고 눈에 핏줄이 잔뜩 서서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막시무스는 분명히 꽃산호와 크루즈 여행을 다녀오겠다며 아침 일찍 가족들을 데리고 나간 사람이 왜 이런 꼴로 문을 두드리는지 영문을 몰라 너무나도 어안이벙벙했다.

단테는 이성이 절반 이상은 날아간 것 같았다. 시퍼런 얼굴빛과는 달리 그에게서 나오는 분노의 열기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는 미친 듯이 꽃산호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를 저주했다.

이성을 잃은 단테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그녀가 바다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워 꽃산호를 집에서 단 한 걸음도 내보내지 않았던 단테가 처음으로 용기를 내 가족 여행을 결심하고 크루즈에 승선한 날 밤. 십여 년 만에 바다를 보게 된 꽃산호가 허겁지겁 단테의 품에서 벗어나 배 난간에 매달렸다.

오랜 시간 함께 하면서 말소리 한 번 제대로 내주지 않았던 그녀가 내뱉은 말은 청량하고 아름다운 목소리와는 반대로 단테를 절망하게 했다.

“날 보내 줘요.”

“가족들에게도 따뜻함을 알려 주고 싶어요.”

“다시 돌아올게요. 약속해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애걸하는 단테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

헤리엇은 곤란한 듯 작게 미소 지은 얼굴로 막시무스의 말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사랑하는 인어가 자기를 떠났다는 사실만으로 인어를 학살하고 몰아내려고 했다기에 단테는 야망과 욕심이 많은 자였다.

그게 기폭제가 될 수는 있겠지만 바다를 이용해 더 많은 권력과 부를 얻고 싶어 했던 건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내 할머니가 인어라는 건 좀 놀랍지만… 단테가 고작 인어에게 버림받았다고 이런 짓을 벌였다기엔 수지 타산이 너무 맞질 않는걸.”

단테에 대한 과거를 미화시키며 구구절절 늘어놓는 걸 들어 줄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래서 헤리엇은 막시무스를 결박하고 침실을 다시 수색하고자 했다. 아직 안쉘이 원하는 정보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막시무스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한참이 지난 후에야 갑자기 광증을 얻은 것처럼 폭소하기 시작했다.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

그동안 헤리엇은 막시무스의 가운 주머니에서 열쇠 하나를 꺼냈다. 막시무스는 이제 시계를 확인하고 붉게 충혈된 눈으로 소리쳤다. 왠지 모르게 아주 즐거운 듯한 웃음이었다.

“어리석은 놈들! 이제야 냄새를 말고 돌아다니는 꼴이 아주 우습기 짝이 없구나. 너희는 이미 늦었어… 이제는 내 친구의 계획에 재를 뿌릴 수 없게 될 거야. 불쌍한 나의 친구…….”

늙은이는 침을 흘리며 몸을 흔들어 웃다가 결국 힘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헤리엇은 엎어진 그의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핏물에 황당한 얼굴로 몸을 세워 일어났다.

“이 늙은이가 왜 이러는 걸까.”

정신을 잃은 건지 죽은 건지 움직임을 멈춘 막시무스의 육체를 뒤집어 가며 살피던 헤리엇은 그의 목덜미에 손가락을 대보고 고개를 저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막시무스는 직접 독을 먹고 자결한 듯했다. 입 안을 벌려 살피니 혀 오른쪽 아래에 독주머니로 추정되는 비닐이 놓여 있었다.

이대로 막시무스를 죽인 것으로 누명을 씌울 생각인가 싶었지만, 현재 대통령직에는 안쉘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막시무스가 그것도 모를 리는 없었고 결국 헤리엇은 그가 무슨 흉계를 꾸미는지, 단테가 인어를 학살한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들을 수 없었다. 이윽고 책상 아래에서 발견한 금고로 다가갔다. 막시무스의 품에서 나온 열쇠를 꽂으니 딱 맞아 돌아갔다.

“아무래도… 단테의 과거사를 줄줄이 읊고 싶어서 말했던 건 아녔나 봐.”

“시간 끌기였나 보군요.”

“교활한 늙은이야… 어쩐지 할아버지를 너무 미화하는 것 아닌가 싶었어.”

희미하게 웃는 헤리엇의 얼굴에서 단테를 안타까워하는 낌새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엔저는 말없이 헤리엇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열린 금고 안에는 다량의 금괴와 상당히 묵직한 종이 서류들이 들어 있었다. 금괴는 하나같이 1kg짜리 순금이었다. 금고에 있는 것만 되팔아도 수억 원은 나올 것이 분명했다. 헤리엇은 금괴를 싹싹 긁어 가방에 넣으며 서류를 꺼내 확인했다.

“…이건.”

서류 안의 내용을 확인하고 있던 도중에 두 사람이 끼고 있던 이어폰으로 신호음이 잡혔다. 여기에 통신을 연결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고려인과 안쉘 뿐이었다.

“안쉘?”

헤리엇이 신호를 잡아 말을 걸자 안쉘이 어딘가 조급한 말투로 다짜고짜 소리쳤다.

- 헤리엇 님! 대령님과 함께 그곳에서 빠져나오십시오! 저택이 곧 폭발할 것 같습니다!

뒤늦게 신호를 잡은 엔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능력으로 창문을 깨부순 엔저가 헤리엇의 허리를 붙잡고 밖으로 뛰어내렸다. 두 사람의 몸이 두둥실 떠오름과 동시에 막시무스의 화려한 저택이 아래층에서부터 커다란 폭발음을 내며 불길에 휩싸였다.

조금이라도 늦었더라면 무사히 빠져나오긴 요원했을 것 같았다. 헤리엇은 눈을 깜박이며 엔저의 목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말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위험할 뻔했네.”

“네.”

“서류는?”

엔저는 고개를 저었다. 헤리엇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일단 안쉘에게 돌아가자.”

5일 동안 누렸어야 할 선배와의 꿈같은 휴가가…….

엔저는 우울한 낯빛으로 화마에 집어 삼켜진 채 열기를 내뿜는 막시무스의 저택을 내려다봤다. 저 멀리서 소방차가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새벽 시간이었지만 근처에 살거나 지나가던 사람들이 막시무스의 저택 근처로 몰려들었다.

“…네.”

*  *  *

안쉘은 아주 은밀하게 움직였다.

대통령만이 열람할 수 있는 일급 기밀문서 중 인어에 관한 것들을 훑었다. 하지만 기밀이라고는 해도 쓸모없는 내용이 대부분이었고 앤이 부탁한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

일주일이 넘도록 몰래 기밀문서를 뒤지던 안쉘은 눈가가 뻐근해져 오는 느낌에 서류에서 눈을 떼 천장을 바라봤다. 대통령의 업무는 너무나도 바빠 자는 시간을 쪼개서 업무를 하는데도 시간이 부족하기 짝이 없었다.

퇴원했다고는 하지만 제 기능을 상실한 왼쪽 귀는 조금만 피곤해도 두개골이 욱신거릴 정도의 통증을 가져왔다. 수십 수천 개가 넘는 많은 기밀문서를 살피는 것도 상당한 노동이었다.

그래도 안쉘은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피로한 눈을 풀고 책장에서 또 다른 문서를 꺼내 왔다. 이곳은 오로지 대통령 외에는 아무도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 고려인이나 다른 이들에게 부탁할 수도 없었다.

여러 문서를 살펴보면서 안쉘은 세계의 일급 기밀이 생각보다 별것 아니며 세간에서 떠도는 음모론 중에 진실인 내용도 있다는 사실에 살짝 놀랐다. 설마 그 정도겠냐면서 파안대소했던 과거가 무색할 정도였다. 찜찜한 마음을 가다듬으며 다른 책장 사이로 얼굴을 집어넣었다.

[인어-인간 협약서]

‘…이런 게 무슨 일급 기밀이라고 있는 거지.’

기밀이라기엔 인어와 초대 인간 대통령의 계약에 관한 내용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퍼져 있었다. 제3차 대전의 여파로 인류는 멸망에 가까울 정도로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인구가 전쟁 전 세계 인구의 25%도 채 남지 않게 되었고 대부분의 문명이 박살 났다.

운이 좋아 살아남은 인간들은 무의미한 다툼을 그만두고 예전의 평화를 되찾자며 세계를 통합시켰다. 그때 당선된 초대 대통령이 우연히 바다에서 인어를 만났는데, 그때 그가 다른 종족으로서 존중하고 받아들이겠다는 협약을 맺었다는 이야기였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있을 것이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서류를 꺼내 펼친 안쉘은 곧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말았다.

“이게 뭐야.”

당혹스러운 마음에 제대로 표현할 만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한참 동안 서류 안의 내용을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서류 안의 글자가 바뀌는 일은 없었다. 그건 단테가 꾸민 인어 학살 계획만큼이나 아주 끔찍하고 비열한 내용이었다.

예전에 대화 도중 헤리엇이 한 말이 떠올랐다.

“…바다는 아마… 인어들을…….”

“가두는 감옥이 아니었을까?”

[제3차 대전이 끝난 후 바다는 차마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되었다. 인간들은 절망했다. 죽어 버린 바다로 인해 지상 또한 서서히 오염되기 시작했다. 결국엔 지구에서 생명체가 살아남기 힘들 정도로 변할 것이 틀림없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방사능으로 오염된 바다가 생명을 잉태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남은 인간들은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바다를 정화할 방법을 연구했지만,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때 우리는 발견했다.

정말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방사능으로 피폐해진 인간들에게 신께서 한 줄기 빛과도 같은 희망을 내려 주셨다. 우리에게 삶을 허락해 주신 거나 마찬가지였다. 인간 중, 특히 xx에-훼손되어 읽을 수가 없었다.- 사는 민족들이 특이한 능력을 가진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물에 닿으면 전설에서 나오는 인어처럼 외형이 변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몸담은 바닷물의 방사능 수치가 폭발적으로 줄어들었다. 물을 정화하는 능력이 있는 그들이 머물다 간 바다에는 놀랍게도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다.

우리는 그 능력이 발현된 민족을 인어라 부르며 지상에서 몰아냈다. 방사능과 오염으로 죽어 가는 바다를 살리고 지키라고 신께서 능력을 주신 것이 틀림없었다.

춥고 어두운 바다로 가기를 거부하며 발버둥 치는 이들을 동서남북으로 나눠 가두고 결계를 완성했을 때에야 우리는 드디어 신의 안배로 문명을 다시금 개척할 수 있었다.]

“말도 안 돼. 이건…….”

인어라는 종족은 태초부터 있었던 특수한 민족이 아니고 처음부터 바다에서 살았던 것도 아니었다. 과거 인간들이었던 이들을 바다라는 감옥에 처넣은 것이 바로 초대 대통령과 인간들이었다. 그 때문에 인어들은 지금까지 제대로 지상을 밟지 못하고 심해에 갇혀 살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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