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 회 (12/30)

11. 회 

뚝뚝-.

머리카락 사이로 물방울이 영롱하게 맺혀 바닥으로 떨어지는데도 사내는 개의치 않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하얀 시트가 물기에 젖어 짙은 색으로 변했다.

사내의 손에는 사진이 들려 있었다. 사진 속 두 사람은 친구인 사이인지 환하게 웃으며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그날의 찬란함을 곱씹고 있는지 사내의 눈이 흐려졌다. 물기 어린 눈동자로 한참 동안 사진을 내려다보던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사진을 탁자 위로 조심스럽게 올린 사내가 이번엔 탁자 위의 무언가를 잡았다. 아주 소중한 보물을 쓰다듬는 것처럼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하지만 사내의 얼굴에는 고통이 한가득 어려 있었다.

달칵.

사내가 버튼을 누르자 들고 있는 녹음기에서 부드러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 안녕, 친구… 내 이기적인 부탁을 들어주어 정말 고맙네. 걱정하지 말라고 격려하고 싶지만, 너무 늦었군. 하지만 걱정하지 마, 우리가 약속했던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이 세상은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따듯할 걸세. 네가 화내는 건 이해해… 너는 정말 내게 분에 넘치는 멋진 친구이니까. 내가 무사히 돌아오면 네게 할 말이 정말 많아. 오… 이런, 배가 오는군. 다시 통화할게, 제이든.

녹음의 끝이었다. 사내가 다시 버튼을 누르자 똑같은 음성으로 똑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틀렸어…….”

사내는 눈물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온몸이 떨리고 오열이 멈추지 않았다. 두 볼을 타고 격정적이고 뜨거운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의 갈색 눈동자가 사납게 타올랐다.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 세상은 더 차갑고 냉정해. 너와 내가 틀렸어.”

그러면서 사내는 다시 녹음기 버튼을 달칵 눌렀다. 그는 그리운 이의 목소리를 계속 듣기 위해, 몇 번이나 듣고 대답했다.

“틀렸어… 알시타, 네가 틀렸어.”

*  *  *

그날, 회를 먹었냐고 하면 당연히 먹지 못했다.

부둣가에 어마어마한 토네이도가 불어 닥쳐 도시 사람들은 대피했고 군대가 파견됐다. 멀리서 바다를 횡단하던 군함이 부둣가에 배를 정착할 정도였다.

토네이도를 없애고 바닥에 착지한 엔저는 주머니에서 전자 담배를 꺼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얼핏 보면 매우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엔저를 포위하듯 에워싼 군인이 긴장한 표정으로 총을 들었다.

엔저는 살짝 고개를 들어 입을 열었다. 전자 담배를 느긋하게 입에 물고 있는 엔저의 모습은 처연할 정도로 슬퍼 보였다.

“계급은?”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엔저는 총을 든 이들 중 가장 대장 격으로 보이는 이에게 물었다.

어두운 부둣가에 바람이 불어 닥쳤다. 대장 격인 사내는 인상을 찌푸렸다가 머리를 쓸어 올리며 전자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엔저를 자세히 살폈다.

그러던 그가 눈을 크게 뜨며 뒤로 두어 발자국 물러났다. 헝클어진 검은 머리를 쓸어 올리는 손이 길고 아름다웠다. 붉은색 눈동자를 담은 눈이 가늘게 변해 그 자리에 있는 군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계급은?”

다시 묻는 음성이 지독히도 차가웠다. 대장급 사내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소령입니다.”

“그럼 총 내려야지, 이 새끼야.”

저 멀리 부두 끝에 아슬아슬 걸려 있는 차량을 쳐다보며 엔저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국민 영웅의 입담에 소령이 화들짝 놀라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과도한 능력 사용은 군법 위반이었다. 특히 도시에서 능력을 사용한 건 가중처벌의 가능성이 컸으며, 계급에 상관없이 모두 중범죄였다.

군인들이 머뭇거리고 있으니 이번엔 군함 쪽에서 잠시 소란이 일었다. 결계를 모두 해지한 안쉘이 다급하게 튀어나왔다.

“습격을 받았습니다. 블랙박스 영상을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거리에서 기관총을 쐈으니 증인도 아마 꽤 될 겁니다.”

안쉘은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그의 말대로 블랙박스 영상 안에는 엔저의 차량을 공격하는 다른 차량이 적나라하게 찍혔고, 거리의 증인도 꽤 많았다. 탄피도 발견되었으니 증거도 충분했다. 의외로 사건이 쉽게 넘어가는 듯싶었다.

조사가 끝나고 나니 시간은 늦었고 횟집은 문을 닫았다. 어쩔 수 없이 안쉘은 헤리엇이 부담스럽지 않게 먹을 수 있는 음식집을 찾아야 했다.

“대체 왜 그러십니까, 대령님.”

사건 다음 날, 참새가 짹 하고 우는 맑은 하늘 아래에 퍼지는 음울한 기운을 참지 못하고 안쉘이 입을 열었다. 헤리엇은 우울한 엔저의 얼굴을 바라보며 오늘도 작게 미소 짓고 있었다.

안젤라와 리언이 아침 브리핑을 위해 소파로 다가왔다가 화들짝 놀라 뒤로 두어 발자국 떨어졌다. 그 정도로 엔저 맥과이어는 심각하게 축 처져 있었다.

처연할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이 검은 머리카락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어제도 꽤 심각하게 우울해했는데 설마 오늘까지 갈 줄은 몰랐다. 누가 보면 인생을 9회 차 정도 말아먹은 사람 같았다. 하지만 이번 인생을 화려하게 말아먹은 건 안쉘이었고, 엔저는 그 원흉이었다.

“대령님!”

대답은 없었다. 헤리엇이 엔저의 머리카락을 쓸어 주며 등을 토닥였지만 소용없었다. 아니, 헤리엇 알스터의 손길에도 반응이 없다니 하늘이 놀랄지도 몰랐다.

안쉘은 심각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봤다.

혹시 지금 상황이 엄청 악화되었나? 단테 막심이 무슨 공작을 펼친 걸까.

안쉘은 많은 경우의 수를 읽으려고 노력해 봤지만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안쉘이 알기로 단테 막심은 아직 움직이려는 조짐을 보이지 않았고, 어제는 잠시 트러블이 있었지만 정당방위로 잘 빠져나왔다.

잡지사나 기자들이 나중에 몰려들어 봤자 세간은 언제나 영웅의 편이었다. 오히려 엔저 맥과이어의 목숨을 노리는 이들이 있다는 소식이 대통령 후보인 안쉘의 영상보다 더 회자되었다.

안쉘은 신음을 삼키며 꿀벌처럼 제자리를 돌아다녔다. 혹시라도 엔저가 이대로 무너지면 안쉘 자신은 죽은 목숨이었다.

복수도 제대로 못 하고 죽을 수는 없었다. 차라리 독심술이 가능한 정신계 능력이었으면 좋았을걸.

안쉘은 끙끙거리면서 제발 헤리엇이 엔저를 위로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손을 들어 엔저의 축 처진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기분 좋은 듯 미소 지을 뿐이었다.

엔저의 상태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게 분명했다. 저렇게 눈치가 없는 것도 능력이라며 안쉘은 새삼스럽게 감탄했다.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안젤라가 눈치를 보며 리모컨을 들었다.

“중위님 어제 연설하셨죠? 뉴스 좀 볼까요?”

안쉘은 지금 이 상황에 브리핑을 제대로 할 수 없음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한 차례 기사를 확인했지만, 뉴스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미디어는 믿을 수 없어도 그들이 보는 관점은 읽을 수 있으니까.

달칵, 소리가 나며 TV 화면이 켜졌다. 안쉘은 TV 화면 속에 나타난 사람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어? 제이든 올던이잖아.”

“누구예요?”

안젤라는 입술을 비죽 내밀면서 물어봤다. 안쉘의 연설을 보고 놀리고 싶었는데 다른 사람이 나와서 마음에 안 든 것 같았다.

“평화위원장입니다. 알시타 막심의 절친한 친우였죠… 잠시 은거했는데 이번에 다시 복귀하나 봅니다.”

제이든 올던은 갈색 머리에 갈색 눈동자를 가진 근사한 중년 사내였다. TV 속에서 특유의 능글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인터뷰하고 있었다.

- 잘 쉬었죠. 이제 그만 복귀하라고 마누라가 들들 볶아서요.

하하하. 인터뷰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는 제법 느끼하게 웃으면서 눈썹을 찡긋거렸다. 그리고 목덜미가 답답했는지 넥타이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사실 그는 아직 미혼이었다. 농담으로 딱딱할 수도 있었던 인터뷰를 금세 웃음꽃으로 만드는 걸 보니 화술이 좋은 것 같았다.

그는 아카데미 시절부터 알시타 막심의 곁에 있었고, 평화의원에 들어갈 때도 함께했던 의리파 사내였다. 알시타 막심이 죽고 십여 년 동안 위태롭게 의원직을 간신히 이어가다가, 결국 6년 전 위원장직을 내려놓고 은거에 들어갔는데 이번에 복귀하는 모양이었다.

대통령 선거철에 나타난 저 사내의 등장은 무슨 파란을 불러일으킬까.

긴장한 안쉘의 입술이 바짝 말랐다. TV 속에서 제이든은 그대로 보좌관들과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매력적인 주름이 잔뜩 당겨질 정도로 미소 짓고 있었다.

“제이든 올던이 복권했군요. 대령님, 그를 회유하실…….”

그는 알시타 막심의 친한 친우이자 전우이기도 한 만큼 인맥도 넓고 평화의원은 대부분 그의 손아귀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알시타를 내세워 단테 막심이 그에게 접근할 가능성이 컸다. 안쉘에게 했던 것처럼 아들의 숭고한 죽음을 강조하고, 그를 죽인 인어와 바다에 대한 복수를 계속 피력할 것이다. 소중한 이가 죽은 충격으로 단테의 정신지배가 먹힌다면 이쪽의 움직임이 어려워진다.

“…대령님.”

하지만 엔저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 양반이 진짜 왜 이럴까?

세상이 멸망한 것도 아닌데 멸망한 것처럼 맥을 못 추렸다. 이런 상관의 모습은 처음이라 안쉘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엔저 맥과이어는 늘 자신감에 차 있었고 오만했다. 그래서 어떤 일에도 고개를 숙이는 법 없는 이었다. 머리도 다 처져서 저렇게 처연한 표정을 지을 사내가 아니었다.

안쉘은 제 상관을 쳐다보다가, 표적을 바꾸어 헤리엇에게 손짓했다. 헤리엇이 안쉘의 손짓에 지팡이를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배가 제 곁에서 떠나가는데도 엔저의 고개는 들릴 줄 몰랐다. 헤리엇이 절뚝거리며 다가오자 안쉘이 헤리엇에게 속삭였다.

“헤리엇 님, 오늘 엔저 대령님이 힘이 너무 없는 것 같지 않습니까?”

“음.”

헤리엇은 금방 미끼를 물었다. 고개를 돌려 엔저를 살펴보더니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오, 이런.’

헤리엇은 축 처져 눈을 감고 있는 엔저를 더 꼼꼼히 내려다봤다. 그러고 보니 오늘 정말 기운이 없는 것 같았다. 늘 발기하는 아랫도리도 오늘따라 잠잠했다.

헤리엇은 안타까운 마음에 엔저의 귀를 쓰다듬었다. 검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 주며 엔저의 뺨을 톡톡 검지로 치기도 하고 쓸어내리기도 했다.

그러자 엔저의 눈동자가 겨우 열렸다. 그의 붉은색 눈동자가 퇴폐적일 정도로 위태롭게 떨리고 있었다. 헤리엇은 안쉘에게 들은 대로 엔저가 오늘따라 기운이 없는 걸 깨달았다.

옛날, 아카데미 시절에 엔저는 가끔 이렇게 울적한 표정을 지었다. 초반에는 경계하는 새끼 고양이처럼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더니, 시간이 지나자 소리 없이 얌전히 곁에 앉아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그리고 커다란 눈을 굴려 헤리엇을 관찰했었다.

그런 그를 보면서 헤리엇은 연못가에서 잉어들에게 빵조각을 던져 주고 작게 미소 지었다. 헤리엇이 웃으면 엔저는 화들짝 놀라 머리털까지 쭈뼛 세웠다. 그게 털을 곤두세우는 고양이 같이 느껴져 더욱 웃었던 것 같다.

작고 작은 엔저는 늘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면서 꼭 헤리엇이 쉬는 곳으로 귀신같이 나타났다. 그리고 살금살금 다가와 헤리엇의 옆에 앉았다.

헤리엇은 여름에는 연못가에 있었고, 추운 겨울에는 도서관에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헤리엇이 다쳤고, 수조에서 나오지 못했다. 인어 모습으로 몸을 웅크리고 있으니 엔저가 방문을 열고 다가왔다.

헤리엇의 몸에서 피가 계속해서 빠져나가 물을 더럽히고 있었다. 꼬리 쪽은 잔뜩 헤져서 생살이 드러나 있었다. 비늘이 덜렁거리고, 뼈가 보일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었다.

수조에 다가온 엔저는 멍하니 헤리엇의 상처를 응시했다. 인어 꼬리에서 흐르는 피가 무척 아파 보였다.

“…헤리엇 선배.”

엔저의 눈은 정말 컸다. 붉은색 눈동자 가득히 물기가 서려 있었다.

“제가…….”

덜렁거리던 비늘이 뚝 하고 떨어졌다. 하늘하늘 가라앉는 비늘을 응시하던 엔저가 고개를 들었다.

헤리엇은 제 인어 꼬리가 마치 생선 같다고 느꼈다. 그래, 예전에 알시타와 먹었던 회가 떠올랐다. 동쪽 바다 전투에 투입된 헤리엇은 엉망으로 망가졌다. 거대한 힘을 이기지 못한 어린 몸이 온통 상처를 입었다.

“선배를…….”

“엔저, 이리 오렴.”

헤리엇은 제 앞 유리를 탁탁 치며 웃었다. 그날 엔저의 잔뜩 부푼 검은 머리가 축 처졌다. 그가 어깨를 잔뜩 늘어트리고, 눈을 감고 있었다.

헤리엇은 처음으로 누군가를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손을 뻗어 엔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싶었다. 엔저는 정말 작았고 소중했고, 귀여웠다.

지금은 그때의 작은 엔저가 아님에도 헤리엇은 엔저가 아직도 귀여웠다. 손을 뻗어 엔저의 귀를 쓰다듬던 헤리엇이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굳게 닫혀 있던 엔저가 눈을 떴다.

“왜 그러니, 엔저?”

“…….”

“가여워라… 왜 이렇게 기운이 없는 거야.”

헤리엇은 속상하다는 듯 말했다. 귀여운 후배가 기운 없는 것이 안타까웠는지 혀를 찼다. 감히 선배를 귀찮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엔저는 도통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맙소사…….”

안쉘은 정말 그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말해 주지 않으련?”

“선배… 저는.”

엔저는 오늘 아침부터 기운이 없던 이유를 입을 열어 떠듬떠듬 말했다.

“…회를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

“…….”

이, 개… 시발.

안쉘은 천불이 나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하지만 안쉘의 또라이 상관은 무척 심각했고, 정말 진지했다.

“선배의 좋아하는 음식도 파악하지 못한 데다, 선배가 좋아하는 음식도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

엔저의 눈가가 붉게 변했다. 헤리엇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엔저의 눈가를 검지로 쓸어 넘겼다. 그러고 보니 안쉘도 엔저가 회를 먹은 걸 본 적이 없었다. 예전에 같이 일식집에 갔을 때 초밥에 손도 대지 않았다.

“이건 모독이에요.”

엔저의 붉은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안젤라가 ‘저게 무슨 소리예요?’하고 안쉘에게 눈으로 물었다. 난들 아나, 안쉘은 싸늘한 시선으로 염병하는 두 사람을 응시했다.

“선배에 대한 내 사랑의 모독이에요.”

“싫어했어?”

헤리엇은 자신 역시 아홉 살 이후로 회를 한 번도 먹어 본 적 없다며 그를 달랬다. 엔저는 기운 없는 얼굴로 살짝 입꼬리만 올렸는데 그 모습도 꽤 근사했다. 엔저의 팬이었던 안젤라가 얼굴을 불그스름하게 붉혔다가 정신 차렸다.

그러는 사이 완전히 둘만의 세계로 빠진 둘은 서로를 마주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선배가 생각나서.”

안쉘은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일까 싶었지만, 헤리엇은 계속해 보라는 듯 엔저의 턱을 살살 쓰다듬었다.

“회를 보면 선배가 생각났어요.”

엔저가 입맛을 다시며 혀로 입술을 할짝댔다. 엔저의 붉은 눈가가 점점 꽃이 피는 것처럼 펴지며 붉은 눈동자가 짙어졌다.

‘이런 미친.’

안쉘은 오늘만 몇 번째인지 모를 욕을 삼켰다. 하지만 헤리엇은 하얀 눈동자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을 휘며 입을 열었다.

“그러면 이번에 한 번 내 앞에서 먹어 보렴.”

“네.”

그 뜻을 이해한 안쉘은 새하얗게 안색을 굳혔지만, 안젤라가 옆에서 휴대전화를 들었다.

“그럼 오늘 점심은 회에요?”

안젤라도 괜히 헤리엇의 부하가 아니었다.

*  *  *

두 평론가의 부드러운 음성이 라디오를 통해 울려 퍼졌다.

- 지금 가장 주목해야 할 사람은 제이든 올던의 복귀입니다. 그의 등장에 많은 정치인이 긴장하고 있는 상태죠. 6년의 은거 끝에 복귀한 제이든의 행동에 단테 막심 후보마저 긴장하고 있으니까요.

그는 지금 정치인 중 가장 영향력이 강한 위원장이며, 20년 전 엘리키스호에 탑승했던 전 평화위원장 알시타 막심의 뒤를 잇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10년 만에 ‘안쉘 리’ 후보자가 단테 막심의 독재에 선전포고하지 않았습니까?

- 저도 그 연설을 봤습니다.

- 재미있었죠. 주제로 돌아와서 제이든 올던은 알시타 막심의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둘은 아주 훌륭한 능력자들이었고, 아카데미 시절 상위권으로 졸업해 많은 주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의외로 두 사람은 입대하지 않고 정치계에 뛰어들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습니다.

특히 제이든 올던이 그랬죠. 알시타 막심이야 아버지가 정치인이니 그럴 수 있다 쳐도 제이든은 정말 훌륭한 군인의 재목이 아니었습니까? 능력도 공격성이 높은 불 능력자이고, 군에서도 그의 입대를 두 팔 벌려 기다리고 있었죠.

제가 생각했을 때 제이든은 아마 정치계에 뛰어들 알시타를 지키기 위해 함께 평화의원에 들어간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군에서도 제이든을 회유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모두 불발로 끝났죠.

- 두 사람이 졸업한 곳이 ‘그’ 엔저 맥과이어가 졸업한 아카데미 아닙니까?

- 맞습니다. 영웅 엔저 맥과이어가 졸업한 아카데미이지요.

- 하지만 제이든 올던은 알시타 막심의 비극적인 죽음에 6년 전 돌연 정치계에서 사라졌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평화위원장으로 14년을 버티다가 사라졌어요. 그런데도 제이든 올던은 여전히 현 정치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정치인입니다. 평화위원은 모두 알시타 막심의 의지를 이어받고 있으니까요.

아마 그가 이번에 복귀한 것도 대통령 후보 ‘안쉘 리’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가 절친한 친우의 아버지의 편에 서냐, 혹은 ‘중립’이냐가 이번 선거에 많은 영향을 주겠죠.

- 안쉘 리의 뒤를 봐준다는 선택지는 없나 보군요.

- 오… 혹시 그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 뭐… 10년 만에 등장한 후보자가 아닙니까. 안쉘 리 후보자의 후견인은 그 엔저 맥과이어잖아요. 이번 연설에서 ‘안쉘 리’ 대통령 후보의 수행원으로 참여해 입지를 확고하게 박아 버렸죠.

지금 누구보다 인기 있는 영웅 아닙니까? 저도 팬이고 제 딸도 팬입니다. 특히 남쪽 바다와 근접한 18구역에서 그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사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엔저 맥과이어의 팬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물론 정치는 팬심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심지어 안쉘 리 후보는 너무 젊고, 정치 경력도 전무한 군인이에요. 그가 당선될 확률은 너무 낮습니다.

-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말입니까?

- 네. 기적이요.

안젤라가 숨죽이고 웃었다. 부드럽게 운전대를 돌리는 안쉘의 눈이 잔뜩 찡그려졌지만, 도무지 웃음이 멈출 수 없었는지 그녀는 바르르 떨기까지 했다. 귀여운 갈색 꽁지머리를 노려보던 안쉘이 한숨을 쉬었다.

헤리엇이 작게 미소 지으며 안쉘에게 냉수를 건넸다. 리언은 회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이장님과 함께 마을회관에서 점심을 먹겠다고 했다.

이 와중에도 헤리엇은 연신 엔저의 검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있었다. 그 꼴을 보던 안쉘이 연거푸 한숨을 쉬더니 입을 열었다.

“뭐가 그렇게 웃깁니까, 안젤라. 제가 당선되는 게 기적이라는 거요?”

빌어먹을 라디오. 바로 꺼 버렸어야 했는데 제이든의 행방을 듣다가 놓치고 말았다. 안젤라가 한번 크게 웃더니 심호흡을 쉬었다.

빌어먹을 평론가 새끼들, 할 줄 아는 거라곤 뒷조사나 하면서 사람을 신나게 까는 것밖에 없지.

그것뿐만은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제 뒷담을 들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안쉘은 크게 감정이 상했다.

헤리엇은 엔저의 부드러운 검은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과거를 떠올렸다.

제이든 올던.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이라고 했는데 역시 그가 맞았다. 가끔 알시타를 따라 보육원으로 찾아오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알시타가 혹시 누구에게 해코지라도 당할까 봐 전전긍긍해하던 사람이었다. 유약한 이미지인 알시타와 달리 제이든은 건강하고 쾌활한 미남이었다.

실제로 조곤조곤하고 조용한 알시타를 따라 제이든이 온 날이면 보육원은 늘 시끌벅적해졌다. 그는 알시타가 호위도 없이 홀로 보육원을 찾아가면 못마땅한 표정으로 뒤쫓는 사람이었다.

알시타에게 받은 사탕을 핥아 먹고 있을 뿐이었는데 제이든이 은근슬쩍 와서 헤리엇의 이마에 작게 꿀밤을 날렸다. 아프진 않았지만 이런 어른은 처음이라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올려다봤다.

“꼬맹아. 너 때문에 알시타가 위험하게 이곳까지 찾아오잖아.”

“…….”

“뭐, 아들을 잃고 징징거리는 것보단 낫지만.”

그는 참 가벼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에 어린 알시타에 대한 애정은 진짜였다. 둔한 헤리엇도 느낄 정도로 애정이 깊은 시선이었다.

제이든 올던은 알시타 막심을 위해 맞지도 않는 구두를 신은 것처럼 정치계에 뛰어든 게 맞았다. 그의 능력처럼 타오르는 갈색 눈동자는 알시타를 향할 땐 한없이 부드럽고 온화해졌다.

헤리엇이 기억하는 제이든 올던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를 떠올리는 와중에도 헤리엇은 제 어깨에 머리를 기댄 엔저의 숨소리를 들으며 쉬지 않고 엔저의 검은 머리카락을 만졌다.

안젤라가 보조석에서 창문을 열며 콧노래를 불렀다. 오늘 점심으로 먹을 회가 기대되는 모양이었다. 작게 웃은 헤리엇이 안젤라에게 말했다.

“기분 좋아?”

“네!”

“왜?”

“땡땡이잖아요.”

“…….”

안젤라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머리를 정리했다. 주근깨 가득한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났다.

“근무 시간에 자리를 이탈하는데 월급은 꼬박꼬박 나오잖아요. 거기다가 비싼 회까지 먹으러 가는데, 당연히 기분 좋죠.”

헤리엇은 그런 안젤라가 귀여운 듯 살포시 웃었다. 안쉘이 운전하면서 말했다.

“안젤라는 그대로 있어 줘요.”

“네?”

안젤라가 알아듣지 못하고 되물었다. 앞서 헤리엇과 엔저의 저질스러운 성적인 농담을 알아듣지 못하고 회를 먹으러 가자던 안젤라에게 안쉘은 연거푸 이렇게만 말했다. 제발 그대로 있어 달라고.

*  *  *

“이런 가게도 아예 처음이야?”

헤리엇이 옆에 앉은 엔저에게 묻자 엔저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그 자신이 좋으나 싫으나 관심받는 사람이었다.

그와 밥을 먹기 위해 같잖은 권력을 이용하는 사람이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억지로 가야 하는 자리도 있었다. 아니면 부모님의 권유, 혹은 단테 막심의 명령으로 참여해야 하기도 했다. 대부분이 식사 자리였고, 부차적으로 술자리까지 끌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전투를 끝내고 돌아온 다음 날은 더 심했다.

그의 영웅담을 듣고 싶고 이용하고 싶어 하는 이들은 정치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손목에 자신의 브랜드 손목시계를 걸고 싶어 하는 기업, 엔저가 사용하는 총을 후원해 주겠다고 하는 무기 업체, 입고 있는 거추장스러운 수트, 구두, 액세서리 등등 별의별 개돼지들이 짖으며 엔저에게 다가왔다.

엔저가 속했던 18구역은 과거 동양권 지역으로, 회가 유명한 곳이었다. 그들은 틈만 나면 엔저를 횟집으로 불러 젖혔다.

“가끔 들어온 적은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안 먹었어?”

엔저는 붉은색 눈동자를 내려 헤리엇을 응시했다. 하얀색 머리카락을 응시하다가 시선을 내리자, 보기 좋은 하얀색 속눈썹이 보였다. 하얀 사람이 붉은색 입술을 열어 속삭이고 있었다.

엔저는 회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과거가 있었다. 그건 피가 흩어지는 수조 안에서 새하얀 인어가 상처를 입은 채 몸을 웅크리고 있던 모습이었다.

그때의 자신은 어렸지만, 인어가 입은 부상의 정도가 크다는 사실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 속살이 다 보일 정도로 파인 인어 꼬리에서 쉴 새 없이 피가 흘러나오며 하얀 비늘도 몇 개씩 떨어져 나갔다. 저러다 과다출혈로 죽는 건 아닐까 겁이 날 정도였다. 

그 이후에 회를 볼 때마다 헤리엇의 상처 사이로 보이던 속살이 떠올라 먹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엔저는 회를 우악스럽게 입에 처넣는 개돼지들을 눈을 가늘게 뜨고 관찰하기만 했었다.

사실 엔저가 헤리엇에 대한 자신의 이 감정이 음욕으로 가득하고 질척하다는 걸 깨달은 것은 성인이 된 이후였다. 그전까지 엔저에게 헤리엇은 신기하고 곁에 있고 싶고 지켜 주고 싶은 사람이었다.

“말했잖아요, 선배가 생각났다고.”

“음.”

주문을 끝낸 안쉘이 안절부절못하며 이쪽을 살피는 게 느껴졌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에도 헤리엇은 이상하게 엔저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아까와 다르게 그는 헤리엇을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 근사하고 멋지게 자란 후배는 이따금 이렇게 시선을 놔주지 않았다.

음식이 나올 동안 서로를 응시하며 나머지를 왕따 시키고 있으니 안젤라와 안쉘이 짜게 식은 얼굴로 각각 젓가락과 포크를 들었다. 안젤라는 04구역 출신으로 유럽권 사람이기 때문에 젓가락보다 포크가 더 편했다. 그에 반해 안쉘은 21구역의 중화권 사람으로 젓가락이 더 편했다.

두 사람이 식기를 들 동안 헤리엇과 엔저는 여전히 끈질기게 서로의 얼굴을 눈으로 핥고 있었다.

“…우리끼리 이거 다 먹어요.”

“좋은 생각입니다.”

안젤라는 전투적으로 광어회를 입에 집어넣었다. 뽀얀 속살이 보기만 해도 탱글탱글하더니 맛도 신선하니 입에서 사르르 녹았다. 입안에 물컹물컹 씹히면서 약간 비린 맛이 나는 게 끝내주게 맛있었다.

이럴 수가! 근무 시간에 이렇게 비싼 회를 먹을 수 있다니.

눈물이 날 정도였다. 안젤라가 전투적으로 먹을 동안 안쉘은 조심스럽게 눈치를 봤다.

“…대령님, 헤리엇 님, 음식 나왔습니다.”

굳이 그걸 말하냐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안젤라가 고개를 들었다.

많이 시켰으니까 안심하고 먹으라는 듯 안쉘이 그녀의 머리를 토닥거려 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헤리엇의 눈동자가 천천히 식탁으로 향했다. 커다란 접시에 놓인 회는 네 사람이 먹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많았다.

헤리엇이 움직이기 전에 엔저가 먼저 손을 들어 가장 가까이 있는 회를 한 점 입에 넣었다. 붉은 혀가 하얀 속살을 감싸며 사라졌다. 그 와중에도 엔저의 붉은 눈동자가 잡아먹을 것처럼 헤리엇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쁘지 않네요. 먹을 만해요.”

“…….”

“왜 못 먹었냐고 물어보셨죠?”

방금 분명히 말해 놓고 엔저가 다시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헤리엇은 움직이는 엔저의 입술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엔저 또한 자신을 바라보는 헤리엇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붉은색 눈동자가 예쁘게 반짝거리면서 헤리엇을 향하고 엔저의 매력적인 미소가 그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헤리엇의 귓가에 다가온 엔저가 속삭였다.

횟집에 함께 간 개돼지들이 입에 욱여넣고 있을 때 엔저는 헤리엇을 생각나게 하는 회를 한 점 집었다.

그리고…….

“자위했거든요.”

“아.”

“선배를 생각하면서 자위했어요.”

헤리엇이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맞은편의 두 사람에겐 들리지 않을 크기로 은근히 속삭이는 엔저의 목소리가 등이 떨릴 정도로 귓가를 울렸다.

“왜?”

“선배를 먹고 싶었거든요. 언제나.”

‘저분들 지금 사람 앞에 두고 뭐 하는 짓거리래요?’

안젤라가 입안에 음식을 꿀꺽 삼키면서 안쉘에게 중얼거렸다. 안쉘은 아예 고개를 숙이고 음식만 퍼먹고 있었다.

‘마주치지 마세요, 모르는 척해요.’

엔저의 말에 잠시 멍하게 있던 헤리엇이 숟가락을 들고 철판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내는 옥수수 요리를 한입 떠먹었다. 아무렇지 않아 보였지만 그의 귀는 붉게 변한 상태였다. 엔저는 그런 헤리엇의 귀를 응시하며 이름 모를 생선의 살점을 젓가락으로 집고 입에 넣었다.

헤리엇의 꼬리를 해체하면 분명 이런 색이 나오겠지. 피를 다 빼고, 아름다운 하얀색 비늘을 모두 벗겨 내고 살점을 뜯으면 이런 촉감일까. 엔저는 늘 생각했었다.

그 파괴적인 생각은 감히 하늘 같은 고귀한 선배를 상대로 차마 해선 안 되는 추악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그럴 때면 늘 아래가 뻐근해질 정도로 흥분이 몰려왔다.

그 넓은 수조 안의 작은 인어가 몸을 웅크리고 피를 한없이 흘리는 모습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던 나약하고 어린 자신이 떠올랐다.

먹고 싶어.

집어삼키고 싶은 감각이 도저히 떨어지지 않았다. 포악한 짐승이 헤리엇의 살결을 먹어 치우고 싶다고 으르렁거렸다.

“아.”

갑자기 헤리엇이 젓가락을 식탁 위로 떨어트렸다. 그 소란에 안쉘이 고개를 들었다가 화들짝 놀라 헤리엇을 쳐다봤다. 그런데 그의 눈동자에 푸른 안개가 서서히 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하얀 머리도 점점 푸른색으로 변하고 매끈한 다리에 비늘이 올라왔다.

“헤리엇 님!?”

인어는 인어의 모습으로 물 밖에서 오래 버티지 못한다. 목덜미 쪽에 아가미가 생기고, 손과 귀에 물갈퀴가 생기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런 곳에서 헤리엇이 인어로 변신이라도 한다면 큰 소란이 일어날 것은 자명했다. 안쉘이 다급하게 입고 있던 상의를 벗어 헤리엇의 얼굴을 가렸다.

“대령님!”

점심이라 사람은 적었지만 없지도 않았다. 소란에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기 전에 얼른 헤리엇을 들고 빠져나가야 했다. 엔저가 점점 꼬리가 올라오는 헤리엇의 무릎 뒤에 손을 넣어 들쳐 안고 가게 밖으로 튀어 나간 뒤 능력을 이용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안쉘이 밑에서 가게 안을 정리하는 모습이 작게 보였다. 그사이 헤리엇은 완전히 인어로 바뀌어, 안쉘이 걸쳐 준 셔츠 사이로 푸른 머리카락이 넘실거렸다. 헤리엇의 바지가 점점 벗겨지고 어그러진 지느러미를 가진 인어 꼬리가 허공에서 달랑거렸다.

“선배, 무슨 일이십니까?”

“음… 인간으로 돌아오지 않네.”

“일단 근처 계곡으로 모시겠습니다.”

헤리엇은 인어로 변한 제 몸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엔저는 아름다운 선배의 모습을 관찰하며 서서히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계곡을 발견한 엔저는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깊지는 않지만 깨끗한 계곡이었다. 깊이가 무릎까지밖에 오지 않아도 나름대로 응급처치는 됐는지 말라가던 헤리엇의 꼬리가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물 안에 잠수하며 헤리엇이 턱을 쓰다듬었다.

헤리엇은 상체를 들어 일어나 앉았다. 물기로 촉촉하게 젖은 푸른색 머리카락이 엔저의 시선을 끌었다.

“아마, 내가 너무 흥분했나 봐.”

헤리엇은 입고 있던 검은색 티셔츠를 벗으며 진지하게 속삭였다. 경계가 모호한 하얀색 눈동자에 푸른 안개가 가득 끼어 그의 욕망을 비추고 있어 엔저는 신음을 삼켰다.

“너에게 먹힌다고 생각했거든.”

“…….”

엔저는 짙게 가라앉은 시선으로 헤리엇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손을 들어 헤리엇의 가슴을 쓰다듬었다. 인어로 변했어도 그대로인 붉은색 유두를 손가락으로 어루만지다가 천천히 아래로 쓸어내렸다. 복근을 훑고 인어 꼬리의 경계선을 쓰다듬었다.

아직 남아 있는 수술 자국을 몇 번이나 문지르다가, 비늘에 손을 올렸다. 차가운 비늘이 뜨거운 손에 닿자 화상을 입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맞아요, 선배. 감히 제가 회를 먹는 내내 선배를 집어삼키는 상상을 했습니다.

엔저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본인의 음심을 속으로 고백하며 손을 움직였다. 고귀한 선배는 감히 제가 이런 생각을 하는 줄 모르는지 늘 곤란한 듯 작게 웃기만 할 따름이었다.

엔저는 고개를 숙여 헤리엇의 통통한 유실을 입에 물고 혀로 핥아 올렸다. 꼬리를 잡고 비늘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쓰다듬으니 붉은 입술에서 작게 신음이 흘러나왔다.

“음…….”

뾰족하게 선 유두를 이로 깨물자 헤리엇의 몸이 물속으로 완전히 빠져 버렸다. 얼굴까지 전부 물속에 있는 헤리엇의 모습이 더욱 신비롭게 보였다.

엔저는 헤리엇의 하얀 몸을 더럽히는 기분으로 손을 움직였다. 배꼽을 쓰다듬다 그 안에 엄지손가락을 넣었다. 그러자 헤리엇이 몸을 부르르 떨며 물 안에서 입을 뻐끔거렸다.

차가운 개울물에 헤리엇의 체온도 점점 내려갔다. 귓가에 있는 물갈퀴를 손가락으로 잡고 뭉갤 듯이 어그러트리자, 헤리엇이 고개를 흔들었다.

“하아…….”

엔저가 신음을 흘리며 헤리엇의 허리를 양손으로 강하게 잡아 수면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헤리엇의 고개가 물속으로 더 깊이 박혀 버렸다.

엔저는 움찔거리는 그의 복근을 혀로 핥아 올렸다. 배꼽 안쪽으로 혀를 짓이기며 움직이니 위아래로 넘실거리는 헤리엇의 호흡이 느껴졌다.

엔저의 혀는 점점 밑으로 내려가 인어의 비늘을 하나하나 핥았다. 곤두서는 비늘 하나를 이로 물고 강하게 힘을 주자, 뜯어질 것처럼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리고 인어 지느러미 앞에 있는 균열에 엄지를 올렸다. 배꼽 아래, 성기 근처에 있는 세로로 균열된 구멍이었다. 그 안을 엄지 두 개로 힘주어 열자 붉은색 속살이 음란한 색을 띠며 끈적거리는 액을 내뱉고 있었다.

헤리엇의 얼굴은 물가에 박혀 있었기 때문에 신음이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았지만, 온몸이 움찔거리는 것으로 보아 꽤 느끼는 모양이었다. 고귀한 선배를 더럽히는 배덕감에 황홀해하며 지느러미 사이에 있는 균열에 입을 가져가 혀를 안에 넣고 강하게 빨아들였다.

첨벙-!

헤리엇이 작게 바르작거렸다. 그런데도 엔저는 강한 힘으로 허리를 붙잡고 균열을 할짝거리며 안으로 혀를 집어넣어 그 안에 있는 성기를 끄집어냈다.

균열 사이에 숨은 붉은색 덩어리는 인간의 성기와는 조금 다른 모양을 하고 있었다. 약간 굴곡이 져 있었고, 손가락 굵기 정도로 얇았다. 매우 붉은 그것은 약간 돼지 꼬리처럼 한 바퀴 휘어 있었는데 거기서 액이 울컥하고 쏟아졌다.

인어의 성기를 처음 본 엔저가 자연스럽게 입 안으로 그것을 흡입했다. 따듯하고 습한 곳에 성기가 들어가는 것을 느낀 헤리엇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보글, 하고 수면에 거품이 올라왔다.

엔저의 혓바닥이 요사스럽게 움직였다. 회오리처럼 꼬인 성기를 펼치듯이 길게 늘이고 어금니로 잘근잘근 씹었다. 지느러미를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면서 성기가 튀어나와 잔뜩 벌어진 균열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쑤시듯이 움직였다.

이윽고 그가 제 바지 버클을 풀고 거대해진 성기를 꺼냈다. 선배의 성기를 입에 물기 전에도 그것은 이미 선액을 흘리며 아플 정도로 발기하고 있었다.

엔저의 혀가 헤리엇의 성기를 정성스레 핥으며 흘러나오는 액을 게걸스럽게 먹었다. 말캉한 혀를 움직여 자극하다가 이로 들쑤시듯 씹어 대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헤리엇은 사람이었을 때와는 다른 이상한 쾌감에 결국 참지 못하고 몸을 돌렸다.

엔저는 서서히 위에서부터 비늘이 벗겨지는 헤리엇의 복부를 멍하니 응시했다. 이내 게걸스럽게 탐하던 인어의 성기를 뱉어 내자 헤리엇이 몸을 움직여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촤아악-.

물에서 빠져나온 헤리엇이 밭은 숨을 내뱉었다. 푸르스름한 머리카락이 하얗게 색이 빠져나갔다. 물갈퀴가 올라와 있던 귀가 점점 사람의 것으로 변해 갔다. 인어 꼬리가 서서히 갈라지며 사람의 다리 모양으로 변하고, 유일하게 살집 있는 두툼한 엉덩이가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하아… 하아.”

헤리엇의 하얀 몸에 불그스름한 꽃이 피어났다. 어깨가 무척 달아올라 붉어졌다. 물가의 바위에 상체를 얹고 밭은 숨을 내뱉던 헤리엇의 분홍빛 허리가 엔저의 눈을 어지럽혔다.

엔저는 작게 욕을 내뱉으며 헤리엇의 뒤를 점령했다. 드물게 힘들어하며 숨을 헉헉거리는 헤리엇의 손목을 붙잡고 위에 올라타는 것처럼 엔저가 움직였다.

그리고 그의 두껍고 무거운 성기가 헤리엇의 엉덩이 골 사이에 턱 하니 올려졌다. 엉덩이 골을 지나 움푹 파인 헤리엇의 허리에 엔저의 성기에서 나오는 선액이 고여 들었다.

“자극하지 마세요, 선배… 제발, 못 참을 것 같아요.”

사람으로 변한 헤리엇의 귓가에 헐떡이며 괴로워하는 엔저의 숨결이 느껴졌다. 헤리엇은 방금까지 무슨 짓을 당했는지 기억을 잃은 것처럼 괴로워하는 가여운 후배에게 안타까운 시선을 올렸다.

귀부터 시작해 가슴까지 붉어진 헤리엇의 모습을 보고 엔저는 다시 신음을 흘렸다. 헤리엇은 손을 들어 엔저의 귀와 검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연스럽게 허리가 들리고 어깨가 엔저의 입술에 닿았다. 가여운 후배는 정말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가여운 엔저, 네 마음대로 해도 돼.”

“…제 마음대로요?”

“그래, 이렇게 괴로워하다니 가여워라. 참지 않아도 돼.”

헤리엇의 속삭이는 목소리에 엔저의 허리가 슬슬 움직였다. 얇은 헤리엇의 허리를 지나, 그나마 살점이 두툼한 엉덩이를 한 손으로 잡아 힘을 주었다.

뭉개지는 엉덩이를 빤히 보던 엔저는 참았던 숨을 간신히 뱉었다. 그리고 엄지손가락을 헤리엇의 구멍에 쑤셔 넣으며 내벽을 간지럽히듯 움직였다. 계곡물이 헤리엇의 내부로 들어찼다.

“…그러면 안 돼요, 선배… 제게 기회를 주지 마세요.”

“음…….”

엔저는 헤리엇의 한쪽 엉덩이를 쥔 손으로 뭉개듯 힘을 주었다. 엄지에 힘을 줘 헤리엇의 내부를 옆으로 당기자, 붉은색 구멍이 힘겹게 물을 머금고 움찔거리는 게 보였다.

선배를 감히 자신이 있는 곳까지 끌어내려 진탕 속에 빠트리고, 그것을 남김없이 먹고 싶어 하는 파렴치한 후배의 입가에 흉포한 미소가 걸렸다.

“아… 아아!”

헤리엇이 놀라 고개를 젖혔다. 차가운 물속에서 여전히 뜨거운 엔저의 귀두가 안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장이 위로 밀리는 감각에 기침이 절로 터져 나왔다. 바르르 떨리는 허리를 침착하게 누르며 어그러트리듯 엔저가 속삭였다.

“선배… 힘 빼세요. 괜찮으니까.”

“흐윽…….”

내장을 두드리며 안으로 들어오는 거대한 무언가에 헤리엇의 붉은 입술이 벌어졌다. 고통의 역치가 높은 헤리엇에게 오히려 생소할 만큼 억척스러운 감각이었다.

뜨거운 손이 차갑게 식은 허리를 강하게 쥐었다. 허리가 욱신거리는 것이 손자국이 남을 것 같았다.

“아… 아아.”

헐떡거리던 헤리엇이 부르르 떨었다. 질척하게 들어오는 성기가 한참 내벽을 긁고 내장을 압박했다. 침이 새어 나와 턱에 고여 밑으로 뚝뚝 떨어졌다. 찰팍거리는 물방울이 다리에 튀었다.

맙소사, 이건 뭐지?

헤리엇은 처음 느껴 보는 답답함에 목을 손톱으로 긁었다. 엔저가 조심스럽게 헤리엇의 손목을 잡아 목에서 떼며 속삭였다.

“괜찮으세요?”

속삭임은 상냥하지만, 아래는 전혀 아니었다. 내장이 터질 것처럼 들어왔으면서 더 깊게 들어오려고 했다.

“잠깐… 엔저, 아… 윽…….”

“아직 조금만, 더요…….”

한계까지 벌어진 항문이 아플 텐데도 헤리엇은 참으라는 엔저의 말에 입을 꾹 다물고 인내했다.

엔저는 조금 쑤셨을 뿐인데 붉어져 색을 내는 구멍이 너무나도 야해 보여서 미칠 지경이었다. 작열하듯 타오르는 열기를 느끼며 헤리엇이 결국 새된 비명을 흘렸다. 몸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이었다.

헤리엇은 침을 뚝뚝 흘리면서 제 표현이 웃기다고 생각했다. 몸이 진짜 찢어진 적도 있었는데 지금의 고통과는 궤도를 달리했다.

“하아, 하아.”

엔저가 밭은 숨을 내뱉었다.

“음…….”

헤리엇은 자신의 배꼽 근처를 쓰다듬으며 숨을 헐떡였다. 발버둥 치고 싶었지만, 사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엔저의 음모가 엉덩이에 비벼지는 느낌이 더 강해지고 아무리 숨을 갈무리해도 배 안쪽을 가득 채운 성기의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엔저는 헤리엇의 목덜미와 등을 쓰다듬으면서 난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아!”

헤리엇이 움직이지 않는 사지를 움찔거리며 새된 비명을 흘렸다. 안에 들어간 성기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천천히 뒤로 물러나는 움직임에도 아래가 다 빠져 버릴 것 같은 섬뜩한 감각에 몸이 저절로 떨렸다. 엔저는 헤리엇의 허리를 잡고 뒤로 물린 제 허리를 강하게 앞으로 튕겼다.

“흐윽! 아… 아파….”

외상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아니, 내상을 입어도 별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실제로 군의 실험 중에 쉴 새 없이 온몸이 찢겼던 헤리엇은 고통에 강했다. 하지만 이건 달랐다.

이 감각은 고문하고 비슷한 듯 전혀 달랐다. 이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뇌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헤리엇의 하얀 신체가 전부 붉어졌다. 엔저는 혀를 할짝대며 헤리엇의 허리 골을 쓰다듬었다. 성기가 가득 들어찬 엉덩이가 엔저의 골반에 짓뭉개지듯 살이 꾸욱 밀렸다.

검은 음모가 하얀 회음부 사이를 더럽히듯이 붙었다가 떨어졌다. 헤리엇의 등 근육이 바르르 떠는 걸 느끼며 엔저는 아까보다 강하게 뒤로 물러났다.

내장에서 빠져나갔다가 들어차길 반복하는 감각은 고통과는 다른 선연한 감각을 헤리엇에게 느끼게 해 주었다. 엔저가 멈추지 않고 때려 박자 헤리엇의 표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늘 곤란한 듯 작게 미소 짓던 표정이 사라지고, 바르르 떨며 일그러진 채 혀를 내밀고 침을 뚝뚝 흘리는 표정으로 변했다. 그건 아주 음탕하고 천박한 표정이었다. 고귀하고 아름답고 단아한 들꽃이 천박하게 내려앉는 표정 같았다.

헤리엇의 하얀 눈동자 위로 포악한 엔저의 웃음이 보였다. 아아, 그래도 후배는 아름다웠다. 헤리엇은 숨을 몰아쉬며 엔저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선배 아프십니까?”

“윽, 아… 아파.”

아픈 것보다는 모든 내장 기관이 화끈거리는 듯했다. 알고 있던 고통과는 다르지만 고통스러운 감각이 온몸을 휩쓸었다. 붉게 달아오른 입술을 우물거리며 헤리엇이 입을 열었다. 일그러진 표정 위로 가라앉는 음란함에 엔저의 성기가 더욱 커졌다.

“으… 윽!”

“아름다워요… 선배, 너무 아름다워요.”

붉게 짓눌린 엉덩이 사이를 서늘한 손으로 더듬거리며 엔저가 중얼거렸다. 헤리엇은 사나운 후배도 보기 좋았다.

그는 멍한 시선으로 제 위를 점령한 엔저를 올려다봤다. 손을 뻗어 물에 젖은 엔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검은 머리카락을 만지다가 귓불을 덧그리며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엔저는 헤리엇의 모습을 새기듯이 눈동자에 담으며 허리를 움직였다. 엎드려 있는 헤리엇의 오금을 잡고 들어 올린 후 성기를 욱여넣었다. 헤리엇이 다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엔저는 귀두가 남길 정도로만 뒤로 허리를 빼더니 다시 강하게 박았다. 이제는 헤리엇의 둔부 사이로 엔저의 흉악한 성기가 들어갔다 나오는 모양이 멀리서도 보일 만큼 허리 짓이 강해졌다.

“아, 아, 아아! 에, 엔저!”

헤리엇이 눈앞의 바위를 붙잡고 고개를 흔들었다. 엔저의 거대한 성기가 깊게 밀려 들어오고 몸이 위아래로 흔들거렸다. 고환까지 박아 넣을 기세로 힘주어 헤리엇의 엉덩이를 뭉개던 엔저가 숨을 나른하게 뱉었다.

헤리엇이 여태까지 느끼고 배웠던 감각 중에 쾌락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늘 아프거나, 고통스러운 것만을 학습했다. 그리고 그 감각을 어떻게 둔하게 만들 수 있는지 잘 알았다. 하지만 이건 달랐다. 이 쾌감은 아픔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붉은 속살이 빠져나왔다가 엔저의 성기와 함께 안으로 다시 빨려 들어갔다. 찔꺽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엔저는 진저리치는 헤리엇의 유두를 손가락으로 비비고 꼬집으며 그의 성감을 더욱 높여 갔다. 제 아래에서 아플 정도로 성기를 조이고 이성이 흩어진 헤리엇의 모습은 감히 상상했던 것보다도 더 눈부셨다.

‘아… 이럴 수가. 흐트러진 모습조차 어쩌면 이리도 아름다울까.’

엔저는 감동에 벅차 허리 짓에 힘을 실었다. 살과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점점 거세지고 빨라졌다. 선배에게 쾌락을 선사하고 싶은데 아직은 이 행위에 고통을 더 크게 느끼는 같았다.

그러나 엔저는 헤리엇의 성기를 쓰다듬으면서 견딜 수 없는 황홀감에 빠졌다. 전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노리던 헤리엇의 성감대 부분에 대고 비벼 주니 헤리엇의 허리가 움찔움찔 떨렸다.

어깨, 허리, 허벅지와 둔부 사이가 붉게 변해 야하게 반짝이는 광경에 엔저는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더욱 강한 힘으로 헤리엇을 짓뭉갰다.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동이 밀려왔다. 제 아래에서 새로운 감각을 느끼는 선배가 헐떡이고 있다는 사실에 미칠 것만 같았다.

선배, 선배, 이렇게 천하게 울어도 아름다운 나의 인어.

엔저는 눈물을 흘리며 헤리엇의 머리카락을 잡았다. 손에서 머리카락이 뭉근하게 비벼졌다. 아름다운 선배는 이런 걸로 더럽혀지지 않았다.

침을 뚝뚝 흘리면서 눈가가 잔뜩 부은 그의 얼굴은 처음으로 보는 것인데도 고고하고 아름다웠다. 아랫배가 다시 뜨거워졌다.

“받아 주, 헉, 받아 주세요, 선배. 제 것을 받아 주세요……!!”

엔저는 헤리엇의 엉덩이를 손으로 잡고 일어났다. 엉덩이가 허공으로 들리며 몸이 반으로 접힐 듯이 구겨졌다. 위에서부터 방아를 찧는 것처럼 엔저의 허리 짓이 점점 더 흉포해졌다.

“아, 아아, 으음, 아… 어, 어떻… 게.”

헤리엇의 목에서 갸르릉거리는 고양이처럼 애달픈 목소리가 흘렀다. 엔저는 헤리엇의 내장을 짓뭉개듯 강하게 움직였다. 뒤로 빼며 빠져나갈 땐 게걸스럽게 딸려 나오더니 박아 넣을 땐 아프다면서 거부하듯이 조였다.

그 다디단 모든 것이 엔저는 감격스러웠다. 엔저는 헤리엇이 처음이었고, 오롯이 헤리엇만이 그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이 하얀 사람을 붉게 만들고 싶었다.

“안에 싸게 해 주세요,”

헤리엇의 아랫배가 엔저의 허리 짓에 볼록 솟아오르는 착각이 들었다. 내장을 뚫고 뱃가죽을 밀어내는 느낌이었다. 그 정도로 엔저의 허리 짓은 격렬했다.

아프고 홧홧한 내장에 헤리엇이 숨을 힘겹게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신호로 헤리엇의 안쪽 깊은 곳에 박아 넣은 엔저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엔저는 진심으로 투시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붉은 내장에 자신의 백탁액이 흐르고 있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어릿어릿해지고 머릿속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헤리엇의 안에 질척한 액을 사정한 엔저가 붉게 물든 그의 턱을 잡고 눈을 마주했다. 그는 만족스러울 만큼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혀를 내밀어 헤리엇의 입 안을 모두 흡입한 엔저는 아주 배부른 표정을 지었다. 마치 사냥감을 뼈까지 모두 살살 발라 먹은 야생동물 같은 포만감으로 가득 찬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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