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안쉘의 수난.
“사랑! 그건 정말 멋진 단어이지요.”
따라랑~.
북쪽 바다 앤이 하프 현을 튕기며 눈을 반짝거렸다. 그의 아름다운 얼굴 위에 흥미로 가득한 악동 같은 미소가 떠올랐다.
사랑에 대한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며 하프를 연주하는 앤은 아름다웠고 매혹적이었지만 좀 미친 인어 같았다.
헤리엇은 군인이 아닌 이의 상담이 필요했고, 인맥이 짧아 겨우 떠오른 사람이 산 위 호수에 숨어 있는 인어 앤이었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 비쩍 말라 있던 것과 달리 물을 만나 아주 탱글탱글하게 변해 있었다. 호수 생활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름다운 푸른 눈동자가 사람을 유혹할 것처럼 반짝거렸다.
놀랍게도 그가 치고 있는 하프는 물로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감미로운 노랫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아름다운 목소리에 새가 지저귀고 어디서 숨어 있었는지 멧돼지와 사슴이 튀어나왔다. 흡사 동화책에 나올법한 장면이었다.
짝-!
인어 왕자 앤이 손뼉을 치자 화들짝 놀란 동물들이 일사천리로 도망갔다. 앤은 싱긋 웃으면서 물로 만든 하프를 튕겼다.
“그런 아름다운 사랑에 왜 근심이 가득하죠?”
헤리엇은 조금 뜸을 들이며 웃었다. 그 곤란한 미소에 인어 앤은 더욱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푸른색 머리를 늘어트리며 헤리엇이 서 있는 호숫가로 올라왔다. 등허리부터 이어진 지느러미가 푸른색으로 반짝거렸다.
헤리엇과는 다르게 앤의 꼬리지느러미는 푸른색으로 어른거렸다. 바다를 완벽하게 품은 앤의 모습은 아름다운 신의 피조물이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헤리엇에게 있어 무척이나 낯설고 생소한 단어였다. 헤리엇은 모든 것들을 좋아하며 기본적으로 호의를 품고 살았다. 귀여운 안젤라와 리언, 달콤한 코코아, 그리고 마을 주민들, 평화. 이곳에서 한적하게 지내는 시간 또한 좋아했다.
그리고 헤리엇은 그 누구도 싫어하지 않았다. 그 말은 즉, 헤리엇은 자신에게 지독한 실험을 했던 군부도 싫어하지 않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그들은 정당한 값을 치러 헤리엇을 사 왔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제 일을 했다. 그런 생각뿐이었다.
만약 헤리엇이 다음 날 리언이나 안젤라에게 총을 맞아도 곤란하다는 듯 웃을 뿐 그들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진 않을 거란 소리였다. 그 뜻은 누구나 좋아하지만, 어느 누구도 특별하지 않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당신의 사랑은 분명 화사하게 꽃을 피울 텐데.”
하얗고, 도자기 인형 같던 헤리엇의 뺨에 붉은 꽃이 피어오른 것을 보며 앤이 흥얼거렸다. 인어 앤은 차가워 보이는 인상에 비해 생각보다 훨씬 서정적이고 엉뚱한 사람이었다.
앤이 손을 휘저어 물로 꽃을 만들었다. 마치 푸른 장미처럼 보였다. 그가 다시 사랑의 속삭임을 노래로 읊었다.
“행복한가요, 헤리엇?”
헤리엇은 갑작스러운 앤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고 곤란한 듯 작게 미소 지었다. 그러다 호수 안에서 살랑살랑 지나가는 작은 생명체를 보며 의아한 듯 말했다.
“…물고기?”
전에 봤을 땐 한 치의 수면 아래도 보기 힘들 정도로 흙탕물이었던 호수가 투명하게 반짝거렸다. 그 안에서 헤엄치는 작은 새끼 물고기도 보였다. 헤리엇의 반응에 앤이 노래를 멈추고 말했다.
“제 능력입니다. 물속에서 생명을 태어나게 하고, 살아갈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뿐만 아니라 여느 인어답게 물을 다룰 수 있는 능력까지 있었다. 그의 타액은 상처를 아물게 해 주고, 그가 있는 물속은 정화되어 생명의 탄생이 일어난다. 정말 놀라운 능력이었다.
만약 군이 그를 잡아갔다면 아주 귀중한 실험체로 썼을 거라고 헤리엇은 생각했다. 역시 바다의 왕족다운 능력이었다.
그런 앤이 바다를 빠져나온 건데 정말 괜찮은 걸까. 그 덕분에 아무런 생명 활동이 없었던 호수가 아름다운 작은 세계가 되었지만 말이다.
이 안에 물고기가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도 하지 못했던 헤리엇은 본인의 상담도 잊고 멍하니 호수 아래를 응시했다.
“굉장하군요.”
“그것보다, 당신의 얘기를 좀 더 해 주시겠습니까?”
앤은 웃으며 헤리엇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아주 부드럽게 그를 이끌며 호수 아래로 헤엄쳤다. 헤리엇이 잠시 버둥거리다가, 한숨을 쉬는 것처럼 눈을 감았다.
헤리엇의 군복 바지가 벗겨지고 두 다리는 어느새 앤과 마찬가지로 인어 지느러미로 변했다. 단지 헤리엇의 비늘은 선명할 정도의 흰색이었다.
헤리엇의 귀에 갈퀴가 생기고, 손과 등줄기에 지느러미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헤리엇의 목 끝에 아가미가 생겼고, 그의 머리카락은 어느새 바다를 품은 푸른색으로 빛났다. 눈을 뜨자 하얀 눈동자에는 어느새 푸른색이 어른거렸다.
주변에서 헤엄치던 작은 새끼 물고기들이 아름다운 인어들에게 다가왔다. 어느새 이렇게 많은 생명을 탄생시켰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새끼 물고기들이 물꼬를 트는 것처럼 두 인어에게 다가와 길을 터 주었다.
호수는 꽤 깊었고, 웃고 있던 앤은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헤엄치며 움직이는 것이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두 마리 인어가 빙글빙글 돌며 호수 아래로 내려갔다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촤악-.
“그러니까, 후배에게 미움 받는 게 두렵다는 소리군요.”
앤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헤리엇도 덩달아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앤은 수면 위를 꿀벌처럼 8자로 돌아다니다가 헤리엇의 옆으로 돌아왔다.
헤리엇이 걱정하는 문제는 이것이었다. 헤리엇은 당장 안젤라나 리언, 혹은 안쉘이 자신을 배신하고 등 돌려도 상관없었다. 늘 그렇듯 곤란하다고 생각은 하겠지만 그뿐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엔저는 달랐다.
“그 애는 어릴 때부터 날 동경해서…….”
아무리 둔한 헤리엇도 엔저가 자신을 동경해 따른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아카데미 시절 엔저는 헤리엇을 누구보다 따랐고, 동경했다. 자신이 하는 말이라면 모두 신뢰했다.
헤리엇 역시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공부를 했고 무던히 노력했다. 왜 그랬나 했더니 엔저가 특별해서였던 거다. 믿기지 않았지만 헤리엇은 아마 그 어릴 때부터 엔저가 특별했던 모양이다.
“아마 이런 감정을 품고 있는 걸 알면 싫어할지도 몰라…….”
헤리엇은 그렇게 말하는 자신이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푸른색으로 일렁이는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헤리엇은 호수 아래로 살짝 잠수했다. 앤 역시 그를 따라 잠수하면서 손목을 잡았다. 이 인어는 아마 스킨십을 매우 좋아하는 듯싶었다.
만약 상담을 해 주는 게 안쉘이었다면, 아니 적어도 리언이었더라면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 같은데요.’라고 대답해 주며 헤리엇을 안심시켜 줬을 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담 대상은 북쪽 바다 인어 앤이었다. 앤은 그들의 사정을 잘 몰랐다.
안쉘은 그동안 설마 엔저가 정말 귀여운 후배일 뿐이었냐고 경악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헤리엇은 심각했다. 앤은 헤리엇과 함께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러면 그와 가장 가까운 이의 조언을 들어보는 건 어떻습니까?”
“조언?”
“그래요, 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어드바이스!”
앤은 뭐가 또 그리 신나는지 이번엔 물로 만든 기타를 들고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헤리엇은 그를 따라 얼떨결에 몇 번 더 빙글빙글 춤을 추다가 겨우 지상으로 올라왔다.
촤악-.
물 위로 올라오는 헤리엇의 머리가 다시 하얗게 바랬다. 갈퀴가 있던 손은 정상적으로 돌아왔고, 등허리부터 발끝까지 이어지던 인어의 지느러미는 사라졌다.
매끈한 하얀 다리를 내놓고 헤리엇은 조용히 벗어 놓은 군복 바지를 찾았다. 앤은 아직 인어의 모습으로 호숫가에 기댔다.
“아, 툴툴이 씨에게 장난은 이제 안 칠 테니 다시 놀러 와달라고 전해 주시겠습니까?”
“…툴툴이?”
“네, 아주 귀여운 툴툴이 씨요.”
앤의 말에 헤리엇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쪽 바다로 돌아갔다는 범고래를 왜 여기서 찾을까.
그 시각, 안쉘은 겨우 구한 전자 담배 액을 갈아 끼우고 전원을 켰다.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열고 담배를 입에 물며 고민에 빠졌다.
‘괜찮을까, 그 양반.’
하얀 피부에 붉은색 꽃이 피어오른 헤리엇은 딱 봐도 혼란스러워 보였다. 안쉘은 설마 여태껏 그것도 모르고 엔저 맥과이어를 대했었냐고 물어볼 뻔했다.
누가 봐도 엔저는 헤리엇 알스터를 향해 열렬한 사랑에 빠져 있었다. 그냥 숨만 쉬어도 좋다고 끙끙대는데 누가 모를까.
심지어 엔저는 헤리엇이 아니면 성기능이 반응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중증이었다. 그걸 순정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순정을 더럽히고 있다고 해야 할지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안쉘이 아는 한 엔저 맥과이어는 누구에게도 상냥한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단 이유로 같은 군복을 입은 장교를 처참히 뭉개 버린 적이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은 이유는 헤리엇 선배의 사진을 멋대로 가져갔기 때문이었다.
엔저 맥과이어는 장난을 용서하지 않았다. 그는 아주 냉정한 사내이며 실제로 잔인하기까지 했다.
엔저의 손에 묻은 피는 안쉘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게 믿기지 않은 남자가 바로 저 엔저 맥과이어였다. 저렇게 푼수 같은 꼴을 보고 있으면 게거품을 물 법한 이들이 트럭으로 두어 대는 될 것이다.
그 엔저 맥과이어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그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인형 같은 사내가 처음으로 반응했다. 그는 몇 번이나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가 귀까지 빨개진 모습으로 안쉘을 돌아봤다.
삐리리리릭-.
그러나 타이밍 참 거지같이 찾아왔다.
안쉘에게 뭔가 말하려던 헤리엇은 그 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개인용 핸드폰이 아닌 업무용 핸드폰이 울렸다. 아마 본부에서 온 연락일 것이다. 안쉘은 작게 욕을 하며 헤리엇에게 양해를 구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리고 등을 돌려 전화를 받았다. 쓸모없는 감시원 따위가 내일 도착하는데 숙소를 정해 달라는 얼빠진 전화였다. 안쉘은 그 영양가 없는 질문에 건성으로 몇 번 대답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잉?”
그 자리에 헤리엇이 없었다. 이 양반 어디 갔어? 다리도 불편한 사람이 어딜 그렇게 빠르게 갔는지 뒷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안쉘은 혼자 기지로 돌아왔다. 사무실 소파에 누워 있는 엔저 맥과이어는 거의 초주검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는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아주 불길한 천 쪼가리를 얼굴에 묻고 숨을 들이켜고 있었다.
저 천,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하지만 안쉘은 정말 최선을 다해 모른 척했다.
* * *
하늘 같은 선배가 저를 피하고 있다는 충격으로 엔저는 구제 불능이 되어 축 늘어져 있었다. 언제나 각 잡힌, 칼 같은 그의 모습만 겪었는데… 사람이 이렇게 망가질 수도 있구나, 하고 안쉘은 속으로 감탄했다.
그렇다고 엔저에게 헤리엇은 사실 댁을 좋아하고, 그 마음을 겨우 깨달아서 혼란스러워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 줄 수도 없었다.
그때, 엔저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근사한 얼굴이 화색을 띠었다. 동시에 달칵하고 문이 열렸다. 들어온 것은 지팡이를 짚은 헤리엇이었다. 안쉘이 헤리엇의 모습을 확인하고 물었다.
“밖에 비 옵니까?”
“음… 아니.”
하지만 헤리엇의 전신이 홀딱 젖어 있었다. 그는 물을 뚝뚝 흘리면서 쓰게 웃었다. 엔저가 얼른 다가와 헤리엇의 머리와 몸을 천으로 꼼꼼하게 닦아 주었다.
안쉘은 방금까지 엔저가 저 수건에 얼굴을 묻고 숨을 들이마시는 걸 생생하게 목격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 기억을 최대한 잊으려고 노력했다.
“따듯한 것 좀 드리겠습니다.”
“고마워.”
“어디서 이렇게 젖어 오셨습니까.”
“잠시 호수에…….”
‘사라졌다 했더니 호수로 갔었구나.’
안쉘은 와그작 하고 새 종이컵이 구겨질 정도로 손에 힘을 주었다가 간신히 풀었다. 그는 종이컵을 휴지통에 버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새것을 꺼내 보리차를 따랐다. 다행히 방금까지 주전자에 있던 보리차는 따듯했다.
“여기요.”
“…음.”
헤리엇은 그것을 한 모금 마시곤 탁자에 올려놨다. 그리고 다가온 안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뒤에서 엔저가 행복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종이컵을 챙기는 게 보였다.
“안쉘.”
안쉘은 불안해졌다.
“네.”
“잠시 귀 좀.”
‘아니, 대체 왜요…….’
안쉘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저기서 종이컵을 챙기던 엔저의 붉은색 안광이 안쉘을 향했다. 네가 뭔데 우리 선배랑 귓속말을 하느냐는 눈빛이었다.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안쉘은 울고 싶었다.
설상가상 헤리엇의 얼굴이 다시 붉게 변했다. 그와 동시에 빠각, 소리를 내며 테이블에 금이 갔다. 엔저의 바람이 마치 돌풍을 불러 일으킬 것처럼 사무실 내부에 조금씩 불어 닥쳤다.
‘나무아미타불. 살려 주세요.’
“엔저가 어떻게 하면 나를 좋아할까.”
“…….”
“…….”
“…네?”
이젠 제법 타이밍을 놓치는 데 익숙해진 안쉘이 점이 된 눈으로 답했다.
그는 네가 대통령을 하라고 명령하듯 말했던 엔저의 말에 대답했을 때보다 더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2대8 머리에서 머리카락 몇 가닥이 이마 위로 흘러내렸다.
“그러니까… 엔저가 나를 좋아할 수 있게 도와주면 좋겠어.”
헤리엇의 표정에 다시 수줍음이 생겼다. 그에 뒤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배경 중 한 명인 엔저는 종이컵을 들고 굳어 있었다.
누가 잘못 보면 헤리엇이 안쉘에게 고백하는 장면인 줄 착각할 만한 광경이었다. 안쉘은 너무 기가 막혀서 홀로 생각했다.
‘그냥 숨만 쉬세요…….’
그것보다 얼굴이 너무 따끔거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안쉘은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
‘저한테 왜 그러세요.’
사뭇 진지한 헤리엇의 표정을 보며 안쉘은 불편한 듯 엉덩이를 들썩거리다가 한숨을 쉬었다. 헤리엇 알스터, 눈앞에 앉아 있는 이 남자가 지금 안쉘이 머무는 컨테이너에 궁둥이를 붙이고 있다는 사실을 엔저 맥과이어가 알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벌써 두려웠다.
안쉘은 이미 엔저에게 사망 플래그를 착실히 쌓아 가는 중이었다.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는다면 정말로 저 북쪽 앞바다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눈앞의 헤리엇은 안쉘을 실시간으로 절벽 끝에 밀어 넣고 있음에도 공부에 임하는 학생의 자세로 볼펜까지 들었다.
‘그것보다, 아까 대령님이 그 거리에서 그 소리를 못 들었을 리는 없을 테고.’
그래서일까 의외로 엔저는 쉽게 헤리엇과 안쉘에게서 떨어졌었다. 그러나 그의 진중한 붉은색 눈동자는 헤리엇을 집어삼킬 듯했다. 그는 이제 수중에 들어온 것을 한입에 집어삼킬 수 있는 상어처럼 고요하게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안쉘은 대체 대령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감을 잡기가 힘들었다.
“일단, 상대가 내게 호의가 있다고 하면…….”
사실 헤리엇이 옆에서 숨만 쉬어도 엔저는 좋다고 달려들 것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걸 모르는 건 오직 당사자인 헤리엇뿐이었다.
그렇다고 아무런 귀띔도 없이 그냥 엔저 대령님은 댁을 사랑합니다, 땅땅! 거릴 수도 없었다. 진지하게 공부에 임하는 헤리엇의 모습에 안쉘도 진지하게 응했다. 그의 고질병 같은 성격 때문이었다.
“가장 첫 번째는 가벼운 스킨십부터 해야 합니다. 아… 상대가 불쾌해할 수 있으니 되도록 허락 없는 터치는 지양하도록 합시다.”
그렇게 말하면서 안쉘은 이미 엔저가 그 가벼운 스킨십 따위 저편으로 보냈다고 생각했다. 하나 마나 한 이야기를 아주 진지하게 들으며 메모까지 하는 헤리엇의 하얀 머리통을 보자니, 뭔가 놀려 먹을수록 재밌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놀린 걸 알면 엔저 맥과이어가 안쉘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전에 죽여 버릴 수도 있지만.
“두 번째, 대화입니다. 떨어져 있는 시간에도 휴대전화로 대화를 나누면서 무엇을 하는지 공유하는 방법입니다.”
안쉘이 그렇게 말하며 헤리엇에게 휴대전화를 꺼내 보라고 말했다.
어딘가 노인 분들이 쓸 법한 효도폰 같은 폴더폰을 내놓더니 헤리엇이 곤란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럴 줄 알았다.
안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휴대전화를 받아 내용을 확인해 보던 안쉘이 경악했다.
“왜 아무도 저장이 안 됐습니까??”
“하는 법을 몰라서.”
“…….”
안쉘은 생각보다 헤리엇이 강적일지도 모른다는 정답에 가까운 예상을 했다. 그는 헛기침을 하며 기억하는 상관의 번호를 톡톡 누르며 헤리엇에게 말했다.
“저번에 스마트폰을 이용하시던데…….”
“그건 군용이라.”
아, 사적인 사용은 불가하단 말이군. 근데 그걸로 인터넷도 하고 홈쇼핑도 들어가지 않았나. 참 웃기는 일이었다.
헤리엇의 휴대전화에 겨우 엔저의 번호를 입력한 안쉘은 한숨을 쉬었다. 헤리엇의 휴대전화에 처음으로 엔저 맥과이어가 입력됐다. 이것만으로도 엔저는 감동해서, 어쩌면 눈물을 흘릴지도 몰랐다.
“그러면 문자를 보내 보도록 합시다.”
“음…….”
헤리엇은 조금 난감한 듯 신음을 삼켰다. 안쉘은 옆에서 이왕 돕는 거 조금 더 도와주기로 했다.
“여기 상대의 이름을 적고, 그다음은 용건을 적습니다. 뒤에 이모티콘을 써 주면 더 좋죠.”
[엔젤, 뭐하니?◐]
아니, 뭐지 이 괴문서는.
안쉘이 경악해서 물었다.
“엔젤?”
“아… 엔을 치니까 자동으로.”
“빌어먹을 자동완성…….”
안쉘은 속이 좋지 않다는 듯 중얼거렸다.
엔저 맥과이어에게 엔젤이라니, 지나가던 개가 웃다가 배꼽 빠지는 소리였다. 하지만 죽음의 유머를 좋아하는 헤리엇은 떡잎부터 다르다고, 아주 마음에 든다는 듯이 문자를 수정하지 않고 감상 중이었다.
안쉘이 사람을 꼬시고 싶다면 그딴 유머는 절대로 하지 말라고 진지하게 충고하려고 하다가, 실수로 전송 버튼을 눌러 버렸다.
저 괴문서를!!!!
“보내 버렸네.”
헤리엇은 곤란한 듯 작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정말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나마 엔저에 관한 건 얼굴 근육이 움직이니 다행이었다.
한참 동안 답장이 없었다. 안쉘은 답장을 기다리는 동안 친구에서 연인까지, 혹은 선후배 관계, 사내 연애, CC 등을 헤리엇에게 알려 주고 있었다.
그러다 안쉘의 휴대전화로 전화가 왔다. 사적으로 이용하는 안쉘의 개인용 휴대전화였다. 발신자를 보니 안젤라였다.
“네.”
- 도와주세요!!!
안젤라의 다급한 음성에 안쉘이 눈을 찌푸렸다.
“무슨 일입니까.”
- 대, 대령이, 대령이 미치셨어요!
대령? 이 마을에 대령이란 직급은 엔저 맥과이어밖에 없었다. 안쉘은 다급해져서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 대령이 몸부림치고 계세요!! 엄청 괴로운 것 같은데, 갑자기 휴대전화를 확인하더니…….
“…무시하십시오.”
안쉘은 싸늘한 음성으로 일갈하고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여전히 메모장을 들고 있는 헤리엇을 쳐다봤다.
“아마 답장을 받기까지 시간이 걸릴 듯싶습니다. 계속하죠.”
두 사람은 마치 멀리서 보면 120시간 토론을 하는 것처럼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안쉘의 뺨에서 땀이 또르륵 흘렀다. 헤리엇마저 하얀 얼굴에 약간의 홍조가 돌았다.
둘은 숨을 헐떡이며 전우를 향해 서로 씨익 미소 지었다. 물론 헤리엇은 여전히 진지한 얼굴로 아주 옅은 웃음을 띠운 채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쉘이 말했다.
“그리고 이건 제 개인적 취향인데, 저는 귀를 파 주는 걸 좋아합니다.”
응당 연인이라면 서로의 허벅지를 베개 삼아 귀를 파 주거나 머리를 쓸어올려 주거나 그래야지.
“물론 제 개인적인 취향입니다. 참고하지 마십시오.”
안쉘은 농담처럼 말했지만 이미 헤리엇의 메모장 가장 마지막에는 ‘허벅지 베개, 귀 파 주기’가 적혀 있었다.
이 일로 둘은 짧은 시간 매우 친해졌고 겨우 헤어졌다.
또롱-.
안쉘의 컨테이너에서 나와 절뚝거리며 걷던 헤리엇의 휴대전화에 짧은 벨이 울렸다. 단발적인 소리에 휴대전화를 들고 확인한 헤리엇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팔자로 내려갔던 눈썹이 조금 올라와 있었다.
[네^^ 선배. 통화할 수 있으십니까?]
귀여운 후배는 정말 너무 사랑스러웠다.
헤리엇이 통화를 하려고 달칵 휴대전화를 연 것과 동시에, 앞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엔저 맥과이어가 흐트러진 몰골로 헤리엇의 눈앞에 서 있었다. 뛰어온 건지 얼굴이 붉어져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안쉘의 집과 군 기지는 꽤 멀었는데 그 거리를 단숨에 달려왔나 보다. 붉은색 눈동자와 언제나 단정했던 검은 머리가 조금 헝클어져 있었다. 그 모습도 어찌나 예쁘던지 헤리엇은 저도 모르게 손을 들었다.
“이리 온, 엔저.”
엔저가 천천히 다가오면서 귀에서 휴대전화를 떼었다.
“통화를 하고 싶었는데, 얼굴이 보고 싶어져서요.”
“음… 나도 그랬어.”
헤리엇이 작게 웃으며 손짓했다. 아카데미 시절이 떠올랐다. 엔저는 늘 저렇게 갑자기 짠하고 헤리엇의 앞에 나타나 주었다.
물론, 그때는 차마 다가오지 못하고 헤리엇의 주변만 빙글빙글 돌았다. 하지만 지금은 무척 거대해져서, 헤리엇보다 더 크더니 어느새 옆에서 함께 걸었다.
* * *
헤리엇은 고민했다. 사실 안쉘에게 들은 내용은 충분히 헤리엇도 아는 지식이었다.
천천히 스킨십하고, 대화를 나누고, 호감을 아낌없이 보여라. 마지막으로 허벅지를 베고 귀를 파 주어라.
게다가 앞에 들은 것들은 모두 실행한 상태였다. 헤리엇은 엔저와 만나자마자 작은 스킨십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서로의 정자까지 공유한 상태였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세상 둔감한 헤리엇이지만 엔저 맥과이어와 충분히 스킨십을 해 왔다고 생각했다. 대화라고 하면 헤리엇의 집 앞마당에 이미 엔저가 군용 텐트를 친 상태라서 매일같이 질리도록 하고 있었다.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놀랍게도 창문가에서 엔저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배 주무십니까?”〕
“…응.”
〔“졸리신 것 같은데 얼른 주무세요.”〕
왜 창문가에 딱 달라붙어서 말을 거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자기 직전까지 대화도 나누는 상태였다.
그럼 남은 건 호감을 아낌없이 보여 주고 허벅지를 베면 되는 건가?
헤리엇은 거기서 조금 머뭇거렸다. 사람에게 기대가 없고 감정을 가진 적이 없던 헤리엇으로서는 어떻게 호감을 표현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수수께끼보다 더 수수께끼 같은 일이었다.
헤리엇은 고민하다가, 엔저를 집 안에 들이고 소파에 앉혔다.
“선배?”
“가만히 있어 봐.”
헤리엇은 서랍을 뒤적거려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있는 엔저의 허벅지 위에 머리를 베었다. 엔저가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헤리엇은 엔저의 허벅지가 예상했던 대로 무척 탄탄한 것에 감탄했다. 엔저의 손이 굳은 듯 허공에 멈춘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붉은색 눈동자로 헤리엇을 내려다보면서 숨도 쉬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헤리엇이 팔을 뻗어 그의 손바닥 위에 무언가를 올려 주었다.
“…….”
“…….”
“…….”
“귀 좀 후벼 줄래?”
“…어떻게 제가 감히. 선배의 귀에…….”
그러면서도 엔저는 헤리엇의 귓가에 손을 가져갔다. 솜털처럼 아주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군인답지 않은 조심스러운 손길이라 헤리엇은 미소를 지었다.
엔저의 손끝은 차가웠다. 헤리엇은 그게 시원하게 느껴져서 기분 좋은 듯 눈을 감았다. 엔저가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엔저는 아주 조심스럽게 헤리엇의 구멍으로 귀이개를 집어넣었다.
사락, 소리를 내며 헤리엇의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귓가를 덮은 머리카락을 보고 엔저가 침을 삼켰다.
머리카락마저 만지면 부서질 것처럼 희미하고 위태로웠다. 다른 사람들보다 색소가 부족한 헤리엇은 만지는 것만으로도 부서져 내릴 것만 같은 사람이었다. 햇볕이 내리쬐면 그는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 같았다.
엔저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보다 까마득히 위에 있는 헤리엇이 늘 이렇게 위태롭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엔저는 조심스럽게 헤리엇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그러자 헤리엇의 눈꼬리가 살짝 아래로 쳐졌다. 본래 순한 인상인 헤리엇은 웃으면 더욱 순해 보였다. 어쩌면 사람들이 헤리엇을 우습게 보는 이유에 그의 인상이 한몫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엔저가 손을 들어 헤리엇의 통통한 귓불을 만지작거리자 헤리엇이 기분 좋은 신음을 살짝 흘렸다. 그의 웃음소리는 너무 작아서 엔저는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더 듣는 데 혈안이 되었다.
조심스러우면서도 대담한 손길에 헤리엇이 미소 지었다. 엔저는 더욱 용기를 내어 헤리엇의 귓바퀴와 라인을 따라 손끝을 이동시켰다.
“옛날에…….”
엔저가 조심스럽게 귀이개를 움직이며 속삭였다. 헤리엇의 귀에 높낮이가 다른 음성이 들렸다.
“선배…….”
예전에 흥분해서 가라앉은 목소리와 동일했다. 헤리엇을 앞에 두고 관능적으로 움직이며 성욕에 어쩔 줄 모르던 때와 같은 높이였다.
“음.”
헤리엇이 눈을 감고 작게 대답했다. 엔저의 손길이 꽤 괜찮은 듯 말리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선배의 귀를 만져 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랬어?”
“네.”
헤리엇은 살짝 눈을 떠 엔저를 올려다봤다. 귀여운 후배는 누구보다 진지하게 헤리엇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귀이개를 아주 신중하게 움직여 헤리엇의 귀 안이 상처 입지 않도록 노력했다.
엔저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헤리엇은 엔저가 귀를 만질 때부터 등허리가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말하지 그랬어.”
“그럴 수 없었어요. 선배는 제게 닿을 수 없는 분이었으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인지.
헤리엇이 이해하지 못해도 엔저는 상관없다는 듯 움직였다.
헤리엇에게 엔저는 귀엽고 특별한 후배였다. 만약 그가 원한다면 귀를 만지는 것 따위 몇 번이고 허락했을 것이다. 물론 다른 이가 그런 부탁을 했다면 헤리엇은 매우 곤란한 미소를 지으며 거절할 것이 분명했다.
엔저는 그때의 한풀이를 하는 것처럼 아주 끈질기게 헤리엇의 귓불을 만지고 놔주지 않았다.
“선배 귀가 아주 깨끗한데요.”
그러면 굳이 파는 의미가 없을 텐데도 엔저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솔직히 헤리엇도 안쉘이 권해서 한 거지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 그냥 엔저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 있는 것이 좋았을 뿐이었다.
엔저는 몸이 늘씬한 편이었는데, 막상 만지면 온몸이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어 굉장히 단단했다. 그리고 피부가 좋아서 그런지 만지는 촉감도 좋았다.
엔저는 헤리엇의 귀에서 귀이개를 꺼내 눈앞에 가져가 확인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귀한 가루를 찾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자신의 품 안에서 작은 지퍼 백을 꺼내 툭툭 털었지만 나오는 건 없었다.
선배의 귀지 하나 가지지 못하다니. 엔저는 정신 나간 생각을 하며 헤리엇의 정수리를 쓰다듬었다.
헤리엇은 두피에 닿는 엔저의 손끝이 서늘해서 기분이 좋았다. 날은 아주 무더웠고, 헤리엇은 늘 수분이 부족했다. 인공적인 찬 바람은 좋아하지 않지만, 에어컨이라도 없었으면 이 시골 마을에서 살아갈 수 없었다.
헤리엇은 곁눈질로 엔저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엔저.”
“네.”
아직 귀에 귀이개를 넣은 채로 엔저는 헤리엇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얀색 눈동자에 엔저의 붉은 눈동자가 반사되어 약간 붉은 기운이 담겼다. 그 모습이 어찌나 배덕하고 흥분되는지 엔저는 신음을 삼켰다.
고귀한 하늘 같은 선배는 가끔 이렇게 엔저를 내려다보며 농락했다. 멍한 붉은빛 시선에 헤리엇이 엔저와 눈을 마주하고 살짝 눈웃음을 지었다. 엔저의 기억 속 헤리엇은 이런 식으로 웃는 사람이 아니었다.
“간지러우니까 그렇게 움직이지 마. 이상한 기분이 들거든…….”
헤리엇이 그러면서 다리를 움직였다. 아마 아래까지 자극이 된 것 같았다. 엔저는 헤리엇의 머리카락을 잡은 채로 그만 손안에 있던 귀이개를 망가트리고 말았다. 쇠로 만든 귀이개가 엔저의 손아귀에서 형체도 알아볼 수 없도록 뭉개졌다.
헤리엇은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는지 엔저의 허벅지 안쪽을 쓰다듬었다. 그의 머리카락이 사락거리며 엔저의 그것을 더욱 자극했다. 엔저는 신음을 삼키며 소파 가죽을 쥐어뜯듯이 움켜잡았다.
“엔저, 주머니에 혹시 뭐가 있어? 몽둥이 같은 거.”
헤리엇이 엔저의 허벅지를 쓰다듬다가 고개를 들었다.
“…선배의 귀 핥게 해 주지 않겠습니까.”
“…더러운데.”
“깨끗했습니다.”
꿀꺽 침을 삼키며 엔저가 속삭였다. 허벅지 안쪽에서 느껴지는 몽둥이가 더 커지고 뜨거웠다. 대체 이게 뭐기에 엔저가 저렇게 초조해하는 거지.
헤리엇은 손을 움직여 허벅지 안쪽과 밖을 계속 쓰다듬었다. 결국 엔저는 신음을 흘렸고 헤리엇은 늘 그렇듯 후배의 부탁에 약한 선배였다.
헤리엇은 나중에야 허벅지에서 느껴지던 뜨거운 몽둥이가 엔저의 성기인 것을 알았다. 이윽고 엔저가 못 참겠다는 듯 바지 버클을 풀더니 성기를 꺼냈기 때문이었다. 헤리엇이 감탄하며 엔저에게 속삭였다.
“정말 거대하구나, 엔저.”
그렇게 작았던 어린 후배가 지금 이렇게 훌륭한 것을 가지고 있다니, 헤리엇은 볼 때마다 감탄했다. 엔저를 올려다보니 그때의 어린 소년은 어디에도 없고, 근사하고 관능적인 어른 엔저가 어둡게 가라앉은 눈으로 헤리엇을 보고 있었다.
헤리엇은 저도 모르게 손을 움직여 엔저의 뜨거운 성기를 잡았다. 아까부터 계속 머리를 불편하게 찌르던 게 이것이었구나.
헤리엇의 손에 닿자마자 울컥하고 정액을 뱉어 내는 게 얼마나 참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헤리엇은 정액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혀를 내밀어 귀두 부근을 핥아 주었다.
늠름하고 착한 엔저의 성기는 그것만으로 좋다고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고 있었다. 거대한데도 이런 부분은 귀엽다니… 헤리엇은 더욱 달래 주듯 혀를 움직였다.
“선배… 저도 핥고 싶습니다.”
엔저는 제 다리 사이에 고개를 묻고 혀를 작게 움직이는 헤리엇의 하얀 머리를 응시하며 속삭였다. 그러고 보니 어느샌가 자신은 엔저의 성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헤리엇이 고개를 들자 입가를 타고 성기의 첨단에서 흘러나온 액이 질척거리며 흘러내렸다. 헤리엇의 입가를 입술로 핥은 엔저는 혀를 내밀어 헤리엇의 귀를 한입에 집어삼켰다,
헤리엇은 엔저의 머리를 토닥거리면서 진정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귀여운 후배는 진정하기는커녕 집어삼킬 것처럼 헤리엇의 귀를 이로 잘근잘근 물다가 귓구멍 안으로 혀를 집어넣었다. 민감한 부위이니만큼 헤리엇의 얼굴도 조금씩 풀어졌다.
질척거리는 혀의 느낌이 귓속에서 느껴졌다. 헤리엇의 목덜미를 따라 엔저의 침이 주르륵하고 흘러내렸다. 마치 잡아먹히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헤리엇은 엔저의 목덜미와 복근을 손으로 훑어 주며 토닥였다. 단단한 복근이 헤리엇의 귀를 혀로 후빌 때마다 팽팽하게 너울거렸다.
엔저는 아까부터 계속 먹고 싶고, 안에 넣고 싶었던 헤리엇의 귓구멍을 혀로 농락하고 있었다. 고막에 물이 차는 소리가 들리는 느낌이었다.
“…음.”
썩 좋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따듯하고 미끈거리는 혓바닥이 귓바퀴를 어그러트리듯 집어삼킬 땐 소름이 돋았다. 헤리엇은 손을 뻗어 정액 같은 희뿌연 액을 왈칵 쏟고 있는 엔저의 성기를 쥐었다. 여전히 아플 만큼 발기한 게 신경이 쓰였다.
귀여운 후배의 낮은 한숨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귓구멍 안으로 엔저의 한숨이 들어오는 착각이 들었다. 주르륵하고 침이 흘러내리는 감각에 헤리엇은 고개를 뻗었다.
엔저는 홀린 듯이 헤리엇의 상반신을 옷 위로 훑으며 만졌다. 그 감각이 간지럽기도 하고 야하기도 해서 헤리엇은 허리를 들어 제 바지 버클도 풀어 버렸다. 그러자 헤리엇만큼이나 색소가 연한 성기가 퉁 하고 튀어나왔다.
엔저는 헤리엇의 머리를 쥐고 귀를 희롱하다가 손을 뻗어 헤리엇의 성기를 은은하게 어루만졌다. 액이 나오는 구멍을 손으로 막으며, 헤리엇의 귀를 계속해서 할짝댔다.
헤리엇의 목덜미 부근이 마치 꽃이 피는 것처럼 붉게 번져 나갔다. 꽃잎이 개화하는 헤리엇의 목덜미가 귓가에서 흐르는 침으로 축축하게 변했다.
이윽고 엔저의 손이 헤리엇의 목덜미로 향했다.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헤리엇의 앞가슴 쪽으로 손을 움직였다. 작은 알갱이부터 통통한 유륜까지 손에 잡혔다. 생생한 감촉이었다. 엔저는 헤리엇의 모든 것을 맛보고 집어삼키고 싶었다.
헤리엇은 엔저의 손길에 허리를 잘게 떨기 시작했다.
“선배. …아름다워요.”
몇 번이고 반복했던 말을 다시 읊조리며 엔저가 숨을 헐떡였다. 아직 미처 벗지 못한 헤리엇의 검은 티셔츠가 여러 액체로 질척하게 젖어 갔다.
헤리엇은 손에서 약동하는 엔저의 성기를 느끼고 입을 벌렸다. 아직도 헤리엇의 책상에는 엔저의 귀여운 정자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일반 사람들보다 열 배나 많은 정자는 엔저를 상징하는 것처럼 제 주장이 강해 너무 귀여웠다. 보고 있으면 엔저가 떠오르는 엔저의 정자는 최근 헤리엇이 가장 집착하는 것 중의 하나였다.
그런 것을 흘려서 버리는 게 아까워 헤리엇은 입을 벌려 엔저의 성기에 얼굴을 가져갔다. 그런데 소파에 흘린 액을 잘못 짚어 미끄러지는 바람에 몸이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엔저가 사정해 헤리엇의 하얀 머리카락과 귀가 엔저의 정액으로 뒤덮였다.
“…귓속에 정액이 들어갔어.”
헤리엇이 헐떡이며 속삭였다. 하필 사정할 때 헤리엇이 미끄러지면서 엔저의 성기 위로 넘어졌고, 귓구멍이 엔저의 성기 앞에 맞춰져 정액이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
헤리엇의 하얀 머리카락, 그 속에 숨겨진 귓구멍에서 엔저의 정액이 주르륵 흐르는 게 보였다. 귀가 먹먹한 모양인지 헤리엇이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엔저는 헤리엇의 유두를 만지는 손을 빼지 않고 헤리엇의 귓속으로 더욱 깊게 혀를 집어넣었다. 질척이는 소리를 내며 안에 있는 정액을 빼낸 엔저가 숨을 헐떡였다.
“…괜찮으십니까?”
“음… 조금 멍해.”
귓구멍 깊은 곳에 혀를 집어넣고 안을 모두 빨아들일 것처럼 핥아 대더니 헤리엇의 허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엉거주춤 엉덩이에 걸쳐진 바지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덩어리진 정액이 귓가에서 빠져나왔다. 비리지도 않은지 열심히 헤리엇의 귀를 핥던 엔저가 헤리엇의 엉덩이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이 구멍에도 언젠간 제 정액을 먹이고 싶어요.”
“후후, 네 것이 과연 들어갈까.”
헤리엇은 썩 나쁘지 않은지 허리를 조금 더 들어 엔저의 손가락이 잘 들어갈 수 있도록 유도했다.
“하아…….”
엔저가 낮게 속삭였다.
“그때가 되면 선배가 아파서 싫다고 울어도 그만두지 않을 거예요…….”
엔저는 빨간 귓불과 아직도 정액으로 질척거리는 귓속을 만족스럽다는 듯이 응시했다. 그리고 다시 혀를 내밀어 귓구멍 안으로 집어넣었다. 헤리엇의 머리카락과 얼굴을 타고 정액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다행히 헤리엇의 귀는 인어화된 몸 때문에 어떤 액체가 귀 안으로 들어가도 상관없는 구조였다. 엔저는 꼼꼼하게 헤리엇의 머리카락과 귀를 청소해 줬다.
아쉽다는 듯 떨어지는 엔저의 성기를 헤리엇이 달래 주듯 엉덩이에 누르고 비벼 주었다. 마치 흥분한 말 위에서 승마하는 기분이었다. 엉덩이 사이에서 엔저의 성기가 안절부절못하는 것을 느낄 땐 헤리엇의 몸도 왠지 노곤해졌다.
결국, 헤리엇은 사무실 소파 위에서 엔저와 끌어안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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