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프롤로그
‘나는 궁금했어.
그러니까, 나를 사랑해 봐.’
옛날에 자신을 무척 따르던 후배가 있었다. 검은색 머리에 보석처럼 예쁜 붉은 눈동자를 가진 그에게 마음속으로 ‘루비’라는 애칭을 지어 주었다.
후배는 자신과 우연히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걸음을 돌려 따라왔고, 자신이 멍하니 정원에 앉아 있으면 그 옆에 앉아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할 말이라도 있는 것일까 기다려 보았지만 후배에게서 돌아오는 말은 없었다.
용건도, 할 말도 없는데 왜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지 의문스러웠지만 딱히 말리진 않았다. 그 아이는 너무나도 예쁘고 귀여웠으니까. 신장이 좀 작은 게 콤플렉스 같아 보이긴 했지만…….
여느 때처럼 후배는 조용히 다가와 털을 고르는 검은 고양이처럼 자신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뭘 보고 계신 겁니까?”
훈련을 마치고 학교 내에 있는 정원에서 연못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으니, 드물게 후배가 입을 열었다. 무뚝뚝한 말투에다가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는 표정이라 그의 질문에 조금 놀랐다.
“개구리가…….”
“개구리?”
“겨울잠에서 깨어난 것 같아서.”
이제 시린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었다.
찬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무릎이 쑤시고 아팠는데, 다행히 이번 겨울은 짧게 지나간 것 같았다. 아니, 짧다고 느낀 이유는 아마 옆에 있는 이 귀엽고 무뚝뚝한, 고양이 같은 후배 때문일지도 모른다.
후배는 뭘 생각하는지 아리송한 얼굴로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작은 입을 열었다.
“잡아드릴까요?”
“응?”
“저 개구리, 잡아다 드리겠습니다.”
“…….”
헤리엇은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아 볼살이 통통한 후배를 내려다보다가, 입을 가리고 곤란한 웃음을 흘렸다. 신음처럼 작게 울리는 목소리에 후배의 귀가 쫑긋하고 세워졌다. 얼굴에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탓에 무뚝뚝하다는 인식이 많은 헤리엇의 소리 내어 웃는 모습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안 돼, 불쌍하잖아.”
“하지만 저대로라면 도망가고 말 겁니다.”
당돌하게 말하는 후배에게 다시 웃어 준 헤리엇은 축축한 흙을 파고 나오는 개구리를 빤히 쳐다봤다.
초록색 바탕에 검은색 반점이 여기저기 무늬처럼 그려진 개구리였다. 맹독도 없는 녀석을 괜히 건드려서 놀라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헤리엇은 후배의 머리끝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자신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는 행동에도 후배는 불쾌한 기색 하나 없이 다시 헤리엇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번에는 얼굴이 뚫리도록 쳐다봐서, 헤리엇은 고양이 털처럼 보드랍고 기분 좋은 머리카락을 놔줘야만 했다.
“저들만의 세상이 있을 테니까 별로 간섭하고 싶진 않네.”
“…….”
“전쟁이 끝나면 저런 생물들을 조사해 보고 싶어.”
후배는 딱히 헤리엇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래도 이따금 후배가 툭툭 내뱉는 말은 헤리엇을 즐겁게 만들었다. 붉은색의 예쁜 눈동자가 자신을 올곧게 바라볼 때마다 주인을 따르는 고양이처럼 느껴지는 것이 참 좋았다.
그때 둘의 사이를 방해하는 종이 쳤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끝나 갈 시간이었다. 헤리엇은 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들고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벌써 점심시간이 끝나 가는데… 점심은 먹었니?”
“아뇨.”
“그럼 이걸 줄게.”
헤리엇은 품에서 초콜릿과 사탕을 꺼내 작은 고사리 같은 손 위에 쏟아부었다. 헤리엇이 단걸 좋아해 챙겨 다니는 군것질거리였다.
“고맙습니다.”
후배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헤리엇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후배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헤리엇의 옆에 고이 놓인 지팡이를 들고 탁탁 먼지를 털어 주었다. 끝부분에 붉은 보석이 달린 지팡이는 헤리엇의 신체에 맞춘 제작품으로 꽤 고가의 것이었다.
“여기요.”
“고마워, 엔저.”
헤리엇은 후배에게 지팡이를 받고 그것을 지지대 삼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느릿하게 움직였다. 이제 수업이 시작될 텐데 후배는 고지식하게도 헤리엇의 발걸음에 맞춰 천천히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