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172화 (172/180)

# 172

172화.

밥 먹을 때 개가 나를 건드렸다.

“일리 있는 말씀이긴 합니다만. 그들 또한 더 이상 저희에게 흥미가 식은 것은 아닐지요.”

“세이메이, 너 어린애들이 개미나 곤충 가지고 노는 거 본적 있어?”

“그게 무슨 뜻인지 잘….”

“어린애들은 본인이 재미있고, 흥미 있다고 느끼는 일만 하지. 그런 애들이 곤충을 가지고 놀다가 질리면 어떻게 하는지, 그건 뻔하잖아.”

“뻔하다면?”

“다리나 날개를 제멋대로 잡아 뜯고, 그걸 아무 데나 대충 던지고 ‘아 시시해’라고 말하겠지.”

그 말의 뜻을 이해한 세이메이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두 사람 사이에 시선이 오가며 잠시간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꼬르륵-!

세이메이의 배에서 위장이 떨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뭐야, 배고프냐?”

“조, 조금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훈련이 계속 되다 보니.”

이에 세현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어두웠던 세이메이의 표정이 부끄러움의 붉은색으로 덧씌워졌다.

“그럼 나가서 뭣 좀 먹고 오자, 맛있는 거 쏠 테니까.”

“넵!”

“그런데 쥐새끼 공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 말을 하는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강당 바닥에 늘어져 자는 에D츄에게로 향했다.

“윰냐후… 츄우우우… 치즈… 쭈인님 저는 치즈가 쪼아효…….”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지, 에D츄는 입을 옹알거리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기분 좋은 꿈꾸는 것 같은데, 그냥 두고 가자고.”

“넵!”

두 사람은 잠꼬대 중인 에D츄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터벅터벅 걸어서 식당으로 향했다.

그들이 선택한 장소는 서큐버스 군단 사옥 근처에 있는 ‘김밥지옥’.

현재 시간이 새벽 1시를 넘은데다 사옥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기에 딱히 선택지가 없어 내린 결정이었다.

“주인장! 여기 쫄면 하나랑, 순두부찌개랑, 라볶이랑, 참치김밥을 주시지요!”

“저는 라면 하나요.”

“알겠수.”

세이메이가 사극 톤으로 우렁차게 엄청난 양의 음식을 시켰지만 홀 서빙을 담당하는 아주머니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이 쿨내 넘치는 아줌마는 두 사람이 뭘 먹건 1도 관심이 없는 듯했다.

누가 보면 불친절하다 생각하겠지만, 괜히 어설픈 식당에 들어갔다 사인 공세나 사진을 찍어 달라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단 차라리 이쪽이 훨씬 나았다.

“오오 저기 주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음식을 기다리던 중, 세이메이가 벽면에 놓인 TV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거기선 뉴스 앵커가 쉴 새 없이 서큐버스 군단과 허세현의 거취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어대고 있었다.

[서큐버스 군단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거의 확실시되고 있으며 이렇게 될 경우, 한국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세 번째로……]

[서큐버스 군단의 핵심 인물이자, ‘제2군단’의 창시자 중 한 명인 허세현 입주자는 진정한 평화가 유지를 위해서 모두가 함께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아우 저것들은 만날 똑같은 얘기만 해.”

세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옆 테이블에 놓여 있던 리모컨으로 채널을 다른 데로 돌려버렸다. TV에서 자신을 성자나 구세주처럼 취급하는 걸 맨정신으로 보기 힘든 탓이었다.

“음식 나왔수.”

잠시 후, 테이블 한 가득 음식이 차려졌다. (정확히는 ‘세이메이의 앞에 한가득’이지만.) 세이메이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잘 먹겠습니다, 주군!”

“그래.”

세이메이는 마치 먹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음식들을 신나게 입으로 가져갔다.

세현은 라면을 한 젓갈씩 깨작거리며, 그녀의 모습을 마치 자식 바라보는 부모처럼 흐뭇하게 바라봤다.

후드 티에 청바지를 입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영락없이 먹보 여대생이었다. 아파트 안에서는 거의 언제나 음양사 풍의 옷을 입던 시절과는 그 느낌이 사뭇 달랐다.

“참 잘 먹는단 말이지.”

“후웁! 저, 저번에 주군이 말쑴해 쥬시지 않았숨까. 먹눈게 남눈 것이라고.”

“야야, 입에 있는 거 먹고 말해, 먹고.”

그렇게 식사가 한창 되던 중이었다.

딸랑-!

“어서오슈.”

김밥지옥의 문이 열리며, 세현의 등 뒤로 소리가 나더니 바로 뒤 테이블에 의자를 빼고 앉는 소리가 났다.

세현은 새로 들어온 손님이 혹여 라도 귀찮게 굴까 싶어 애써 그쪽으로 시선을 주지 않았다.

“네에, 아주머니 여기 주문할게용.”

“네에~ 말씀하세요.”

“메뉴판엔 없지만, 혹시 여기에 프링X스 혹시 있나요?”

“여기에 그런 게 왜 있어요.”

“오호홍, 역시 그렇겠죵?”

황당한 주문에 주인아줌마가 짜증난다는 듯 퉁명스레 대꾸했다. 그 순간, 피로로 멍해졌던 세현의 정신이 바짝 조여 왔다. 지금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귀에 익은 음성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제육덮밥 하나 주시구용. 아, 그리고 콜라도 세캔 가져다 주세용.”

세현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과 앞께, 앞에서 음식을 먹고 있던 세이메이와 눈을 마주쳤다.

“주, 주군…. 저기…….”

한참 음식을 먹으며 행복에 젖었던 그녀의 표정이 얼어붙어 있었다. 세현은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알았다.

쿠타탕-!

그 순간, 세현이 몸을 돌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식탁이 쓰러졌고 그 여파로 음식이 바닥에 쏟아졌다.

거의 동시에 한쪽 팔에 엑스칼리버가 소환됐고, 세현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향해 그걸 겨눴다.

“너 이 새끼…… 무슨 속셈이냐?”

등을 돌린 세현의 눈에 들어온 것은 동글동글한 귀여운 얼굴에 잠자리 안경을 쓰고 있는 신지영이었다.

“오호홍, 정말 오랜만이에요 허세현 군.”

“그 역겨운 모습으로 말하는 거 집어치워.”

신지영의 모습으로, 비음이 섞인 귀여운 척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에 세현은 노골적으로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바라신다면 기꺼이 해야죵~!”

그러자, 신지영의 모습이 액체의 형태로 뭉그러지더니 금세 정장을 입은 달마시안 인간의 형태로 변해 있었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지만, 저는 개가 맞으니 괜찮겠죵? 오호호호홍!>

커플러는 자신이 한 실없는 농담이 재미있다 생각했는지 혼자 웃음을 터뜨렸다.

“지랄.”

세현은 그 찰나의 순간, 사선의 왕을 사용해 커플러의 목을 향해 엑스칼리버를 옆으로 휘둘렀다.

극도로 가속된 의식 속에서, 커플러는 태연한 얼굴로 캔 콜라를 따고 있었다.

엑스칼리버의 검신이 놈의 목전에 닿기 직전이었다.

<인식 속도를 가속해 시간을 ‘느리게’ 체감하게 하는 권능이군용?>

커플러가 싱긋 웃더니 콜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세현의 몸은 느리게 움직이고 있지만, 놈의 움직임은 평범한 시간 축처럼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느리게 느끼게 하는 것과 진짜 시간을 느리게 만드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죵.>

커플러는 빈 콜라 캔을 엑스칼리버의 옆면 위에 가뿐히 올려놓더니 세현의 뒤로 돌아가 무릎을 무릎으로 치는 장난을 쳤다. 한없이 느리게 느껴지는 시간 속에, 세현의 몸의 균형이 무너지며 앞으로 기울어졌다.

그리고, 시간이 다시 원래대로 가속했다.

쿠당탕탕-!

쨍그랑!

앞으로 고꾸라진 세현의 몸이 구르면서, 김밥지옥의 유리문을 박살 내고 도로변에 나뒹굴었다.

“이런 미친….”

세현은 지금 자신의 상황이 납득되지 않는다는 듯, 이를 갈며 몸을 일으켰다.

거의 400~500명분의 관리인의 크리스탈을 흡수하고 권능을 꾸준히 개발시켜 왔음에도, 조금 전 커플러의 공격에 전혀 대항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홍홍, 어떤가요? 허세현 군이 열심히 싸우는 동안 저도 크로노스의 힘을 열심히 수련했답니당.>

박살 난 유리문 사이로, 커플러가 천천히 걸어 나오며 귀를 파닥거렸다. 놈이 입술을 이죽거리는 모습에, 세현은 분노로 전신의 피가 들끓는 기분이 들었다.

“주, 주군!”

그때 세이메이가 밖으로 황급히 뛰쳐나와, 소환수들을 모두 불러냈다.

골렘, 스켈레톤, 리치, 데스나이트, 오니, 시키가미 등이 요란하게 동시에 몸을 일으키자 주변 건물이 또 한차례 박살냈다.

소환이 끝난 후, 소환수들과 허세현은 둥글게 진을 치고 커플러를 감쌌다.

<오홍홍, 너무 적개심을 드러내진 마세용. 여기서 싸움을 벌이면 저 아주머니께서 슬퍼하실 거라구용.>

커플러는 태연한 얼굴로 김밥지옥 쪽을 가리켰다.

“야이 씨벌놈들아! 남의 살림 아주 거덜을 내라 거덜을 내!”

그러자 깨진 유리문 앞으로 얼굴이 시뻘게진 홀 서빙 아주머니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오홍홍, 제 잘못은 아니니 두 분이 변상해 주세용!>

“시끄럽고, 본론부터 말해.”

커플러가 주절주절 헛소리를 이어 가자 세현은 노골적으로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며 말을 끊었다.

그러자 놈은 턱을 쓰다듬으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마지막 퀘스트를 끝내셨으니, 이제 에필로그를 진행해야 할 것 같아서요.>

이 말을 뱉음과 동시에 놈이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 팝업이 출력됐다.

[#. 에필로그 / 주인공은 누구?]

- 당신의 퀘스트는 모두 끝났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이야기에 주인공이 여러 명 있을 수는 없는 법이죠.

자, 결판을 냅시다.

누가 진짜 주인공인지!

되도록 주인공은 제~가 되고 싶네요오옹!

퀘스트 시간 / 장소: 7일 후 자정 00시 / 아파트 1층, 플래닛 트리 홀.

클리어 조건: 서큐버스 군단, 혹은 커플러의 사망.

보상: 상대방의 모든 힘을 흡수.

“뭐냐 이건.”

<오홍홍, 제가 보내는 초대장쯤으로 생각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용. 지금쯤이면 다른 길드원들 분께도 모두 같은 내용으로 전달됐을 거예용. 허세현 군은 제게 각별한 사람이다 보니 제가 이렇게 직접 찾아온 것이고용.>

“우리가 이 퀘스트에 응하지 않는다면?”

<좋은 질문이네용.>

커플러가 손뼉을 짝짝- 부딪치자, 반대편에 놓인 거대한 빌딩 벽면 위로 영상이 갑자기 출력됐다.

그 영상에는 커플러가 모 영화에 등장했던 메인 빌런을 대놓고 패러디한 듯한 옷을 입고, 한 손에는 커다란 건틀렛을 착용하고 있었다.

잠시 후, 화면 속의 커플러는 손가락으로 ‘딱’하는 소리를 크게 냈다.

그 다음 장면에서는 지구의 전경이 비춰지더니 그 전체가 푸른빛으로 물들었고, 그 다음엔 거대한 괘종시계의 시계 바늘이 빠른 속도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팽이처럼 회전하는 장면이 출력됐다.

이어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아 보이는 노인의 얼굴에 주름이 서서히 없어지더니 젊은 청년으로, 청년에서 아이로, 아이에서 영유아로 변이하더니 그 끝에는 완전히 존재 자체가 소멸되는 영상이 나왔다.

이런 소멸 현상이 반복되며, 도시의 사람들이 사라지고 문명이 순식간에 몇십 년, 몇백 년 단위로 쇠퇴하는 모습이 충격적인 비주얼로 영상에서 재현되었다.

자신의 퀘스트에 응하지 않으면, 지구의 시간을 저렇게 되돌려 버리겠다는 명백한 협박이었다.

<오홍홍 어때용? 제가 영상 편집 실력을 뽐내볼 겸 만들어 봤는데용.>

“개자식이…….”

<매번 말하지만 그 욕은 제겐 통하지 않는답니당~!>

“거짓말하지 마라, 네놈이 저 정도 일을 벌일 힘이 있다고?”

<네, 있는데용?>

커플러가 다시 한 번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그러자 셰현의 시간이 갑자기 역행하기 시작했다.

세이메이의 소환수가 다시 땅으로 돌아가고, 김밥지옥의 깨진 유리가 원래대로 붙었다.

잠시 후, 시간 역행이 끝났을 때 세현은 테이블에 앉아 라면을 먹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때용, 가능하죵?>

등 뒤에서 다시 커플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신지영의 모습을 하고 제육덮밥과 캔 콜라를 먹고 있는 그놈의 모습이 보였다.

“이런 미친…….”

<어쨌든 얘기는 여기까지 해 두죵, 그럼 일주일 후 뵙도록 하겠습니다, 세현 군!>

신지영이 별안간 콜라 캔을 자신의 머리 위로 뒤집었다.

그러자 검은 액체가 펑펑 쏟아지더니 그녀의 몸을 집어삼켰고, 잠시 후 그 자리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됐다.

세현은 마치 유령이라도 본 듯이 멍한 얼굴로 읊조리듯 말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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