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171화 (171/180)

# 171

171화.

라스트 퀘스트

세계와 아파트가 하나가 된 지 1년, 서큐버스 군단은 세계 곳곳을 해방시켰다.

관리인들이 제멋대로 휘저어 놓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최대한 되찾으려는 그들의 노력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빠른 속도로 눈부신 성과를 내고 있었다.

또한 이들이 승리하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전투뿐만이 아니었다.

특유의 ‘유튜브’를 기반으로 쌓아올린 노하우를 이용한 언론전에서의 승리, 이는 ‘서큐버스 군단’이 일반 대중에 지지를 받고 영속적인 활동이 가능하도록 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이전에 아파트에서 그러했듯, 관리인들과의 전투가 벌어지면 이를 영상으로 촬영해 편집을 거쳐 유튜브에 업데이트 했다. 관리인들에게 억압받는 대중들에게 그것을 삶의 희망을 꿈꿀 수 있는 희망으로 여겼다.

매일매일 막대한 후원금이 쏟아졌고, 윤병종이 운영하는 2군단에 사명감을 가지고 자원하는 입주자들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물론 이 과정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허세현과 서큐버스 군단이 가진 힘을 제대로 파악한 관리인들이 등장했고, 그들은 생존을 위해 각자가 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들을 갖췄다.

-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니까. -

특히 시베리아 근방을 장악하고 있던 ‘시드메이커’들을 상대하던 때를 생각하면 세현은 지금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히 ‘거신’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민들레 씨앗 전용 레이드 괴수 백여 마리가 동시에 걸어오며 지축을 울리는 광경은, 그 존재 자체로도 자연재해나 다름없었다.

레이드 괴수의 스펙 하나하나도 미친 수준이지만, 후방에서 ‘시드메이커’들이 놈들에게 힐과 버프를 퍼부으며 도저히 감당이 불가능한 정도까지 몰리게 됐다.

그나마 이 전투를 어떻게든 승리로 이끌 수 있던 것은 허세현의 판단 덕분이었다.

- 내가 후방으로 파고들어 시드메이커들 딸 테니까, 그 동안 최대한 시간 끌어! -

세현은 다이달로스의 날개를 이용한 특유의 기동성을 살려, 시드메이커들이 있는 후방으로 파고들었다.

그 과정에서 괴수들의 벽에 몇 번이나 틀어 막히는 위기 상황이 있었지만, 세현은 그 때마다 ‘사선의 왕’과 헤르메스의 신발을 이용해 아슬아슬하게 그들을 피하며 전진해 나갔다.

- 죽여라! -

세현이 최후방에 도착했을 땐, 마치 연쇄 살인마라도 본 듯 겁에 질린 시드메이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보구를 이용해 원거리 투사체들을 난사했지만, 시드메이커들은 전투 스타일이 ‘서포팅’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존재들이기에 거의 20 대 1의 전투가 벌어졌음에도 세현은 어렵지 않게 그들을 도륙할 수 있었다.

그중엔 그나마 시드메이커들의 수장인 ‘스핀쿨러’가 권능 ‘과잉성장의 왕’을 이용해 스스로의 육체를 강화시켜 발악했지만, 그 또한 15분을 버텨 내지 못했다.

이후 주인을 잃은 괴수들은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했고, 서큐버스 군단은 그 틈을 파고들어 착실히 한 마리 한 마리씩 공략을 해 나가는 것으로 시베리아 토벌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가장 난이도가 있던 시베리아 토벌전이 끝난 후, 서큐버스 군단은 파죽지세로 관리인들의 잔당을 정리해 나갔다.

그들의 손에 죽은 관리인들의 숫자는 어느덧 900명을 훌쩍 넘어갔다.

그리고 결국엔 아파트와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메인 퀘스트 ‘멸망전’을 클리어하는 데 성공했다.

[관리인 (984 / 984명) 처치를 완료했습니다!]

[레벨 (500 / 500) 달성을 완료했습니다!]

[메인 퀘스트 ‘멸망전’을 클리어했습니다!]

“제기랄, 숨바꼭질도 힘들다 힘들어.”

남은 관리인 제거에 성공한 그때, 사카린은 사슬낫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투덜댔다.

마지막으로 남은 관리인들은 세현의 압도적인 기세에 짓눌렸는지, 계속 도망과 은거를 반복했다. 이 때문에 술래잡기 같은 상황이 벌어졌고 서큐버스 군단은 여기에 많은 체력과 시간을 빼앗겨야만 했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마지막 관리인을 제거하고 그들의 크리스탈과 아이템의 회수까지 끝나 갈 무렵, 백설희가 경쾌한 목소리로 외치자 길드원들이 이에 반응했다.

“고생했어!”

“으으, 이 짓도 드디어 끝이구나!”

“휴가 좀 가자 휴가 좀!”

하나같이 후련하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지난 시간 동안 밤낮도 없이 싸움 속에서 살아왔던 그녀들이다. 그 지긋지긋한 싸움의 끝에서 느끼는 감정은 보통의 인간 따위가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닐 터였다.

그때, 사카린이 싱긋 웃으며 허세현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고생했다, 허세현.”

“길드장도 고생했어요.”

“우린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냐?”

“모르죠, 하지만 아직 완전히 이 일이 끝난 건 아닐 겁니다.”

모두가 싸움이 끝났다 생각하는 와중, 세현은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았다.

아직 총지배인인 ‘커플러’도, 아파트를 만들었던 ‘두 의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상태,

‘재미있는 것’에 극도로 집착하는 그들의 성향으로 봤을 때, 이대로 이야기가 끝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세현은 그들이 뭔가의 일을 또 벌일 것으로 확신했다.

그리고, 그런 불길한 예감은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다.

[레벨500 달성 특전 발생!]

[‘브레이브킹’의 고유권능 ‘용감한 왕’이 개방됩니다!]

동시다발적으로 길드원들의 마스터키가 진동하며 아나운서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건 뭐야? 고유권능이라니.”

“너도 생겼어?”

“츄우우우! 에D츄도 뭔가 생겼어요!”

“저도입니다 주군.”

반응을 보건데, 길드원 전체뿐 아니라 에D츄나 세이메이도 500레벨을 달성한 것으로 ‘고유권능’이 생겼다는 모양이었다.

세현은 그 즉시 상태 창을 열어 ‘권능’ 부분을 확인했다.

[권능]

총 보유 권능 개수: 269개

(1) (NEW!) 고유권능 ‘용감한 왕’ (LV 1/1)

권능 등급: 측정 불가.

- 한때 원탁을 이끌었던 위대한 왕은 자신과 백성들을 속여 온 ‘바이브 카흐’에게 맞서 싸운 용감한 왕이기도 합니다. 반란은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는 인간 역사상 위대한 의지들을 베었던 유일한 인간이며 유일무이하게 ‘인과율’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품었던 자입니다.

(2) 사선의 왕 , 구더기의 왕 외 266종.

- [세부 사항] 선택 시 모든 권능 목록 열람 가능.

‘측정 불가 등급이라?’

설명창을 확인한 세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인과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자.

이 문구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모르지만 세현의 고유권능은 여태 보아 온 관리인들의 직관적인 권능과 성향 자체가 달라 보였다.

다른 관리인들의 권능은 대부분 스킬과 유사한, 직관적 능력과 설명 문구를 가졌다.

그에 반해 세현의 고유권능의 설명은 이야기를 줄줄 적어 놓은 느낌에 가까웠다.

‘이건 어떤 능력인지 알아내는데 한참 걸리겠구만……’

세현은 이마를 짚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권능의 정확한 능력을 알아내기 위해 앞으로 해야 할 뻘짓을 상상하니 머리가 지끈거렸기 때문이었다.

“자! 집에 가자!”

그때, 사카린이 박수를 두 번 짝짝 치는 것으로 상황을 종료시켰다. 길드원들은 제각기 밝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들이 집인, 서큐버스 군단 사옥으로 향했다.

† † †

[어제 오후 6시, 사카린 입주자가 이끌고 있는 서큐버스 군단이 현재 지구에 퍼져 있는 ‘관리인’들의 소탕을 끝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10일이 지난 오늘, 53개 국가의 지도자가 모인 WLC 회담이 싱가포르에서 개최됐습니다. 이 회의에서 지도자들은 각 국가의 비상 상황을 해제하고. 지난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지역을 수복하고 국가 정상화에 총력을 기울일 것을 합의했습니다.]

서큐버스 군단이 모든 관리인의 죽음을 천명한 후, 한동안 겨울처럼 얼어붙었던 세상이 봄이 찾아왔다.

대다수의 인류는 무너진 도시와 시스템을 재건하려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또한, 아파트에서 풀려난 ‘거주자’들을 위한 특별 자치 구역 설립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자칫 이것이 인종차별과 같은 형태로 번져 나갈 수 있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WLC참여 국가들은 ‘거주자’들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어느 정도 기간 동안 그들을 격리시키고 서서히 사회로 편입시켜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한 언론사 취재에 따르면 서큐버스 군단의 이후 거취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며, 현재는 강남에 위치한 사옥에서 지내고 있다는 내용이 전해졌습니다.]

[지난 2년, 관리인과의 전쟁으로 잠정 중단되었던 노벨상 시상식이 올해부터 다시 진행될 예정이라고 하며, 올해 노벨상 평화상 후보로 ‘서큐버스 군단’ 길드의 공동 수상이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스켈레톤 다섯! 여섯!”

“알겠습니다, 주군!”

자신에 대한 수많은 기사와 인터뷰 요청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와중, 허세현은 그 모든 것을 쌩까고 서큐버스 군단 사옥 지하 강당에서 세이메이, 에D츄와 함께 트레이닝을 진행 중이었다.

트레이닝 방법은 간단했다.

허세현이 필요한 소환수를 외치면, 세이메이가 그들을 소환해 세현을 공격하는 방법이었다.

여기에 에D츄가 공격로에 섞여 들어 소환수들과 함께 공격을 도왔다.

“흣차.”

하지만, 세현이 주먹을 내뻗거나 엑스칼리버를 천천히 휘두를 때마다 소환수들이 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허무히 으깨졌다

세이메이의 소환수들은 결코 약하지 않지만, 세현과 비교했을 때는 어른과 아이, 아니 어른과 정자만큼이나 그 수준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그림이 나오는 건 당연지사.

그럼에도 이 훈련을 반복하는 것은 새로 얻게 된 고유권능 ‘용감한 왕’의 정확한 능력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이 훈련을 시작한 지 벌써 5일째, 하루에 10시간이 넘도록 다양한 경우의 수를 놓고 여러 상황을 재연해 봤지만 세현은 여전히 ‘용감한 왕’의 정확한 능력을 알아내지 못했다.

“하아…… 지친다 지쳐.”

이번 시도마저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나자, 세현은 한숨을 푹 내쉬며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그러자 에D츄가 피곤하다는 듯 하품을 하더니 세현의 옆으로 기어와 머리를 세현에게 들이밀며 앵겨 왔다.

“쭈인님! 머리 긁어 주쎄요!”

“아우 귀찮아 죽겠네.”

세현은 퉁명스레 대꾸하면서도 손가락을 세워, 에D츄의 머리를 벅벅 긁어 줬다. 그때마다 에D츄는 기분이 좋은 듯 꿈틀거리더니 채 3~4분도 되지 않아 코를 골기 시작했다.

“주군, 왜 이 권능을 굳이 알아내려 하십니까? 이제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닌지…….”

세이메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와 물었다.

평소 눈치라고는 1도 없는 그녀이지만, 지난 며칠간 세현의 태도에서 뭔가의 초조함을 느꼈기에 나온 질문이었다.

세현은 콧잔등을 살살 긁으며 뭔가를 고민하는 듯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아직 이 싸움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네?”

“관리인 중에 나한테 가장 적대적일 커플러 놈의 움직임이 없다는 것도 수상하고, 아파트를 만든 그 사이코들이 우리를 이대로 둘 리가 없어.”

세현은 머릿속에 ‘두 의지’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저 자신들의 재미만을 위해 수많은 존재들의 운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농락하는 자들.

그런 자들이 이렇게 상황이 끝나도록 절대 두지 않을게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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