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
170화.
뉴 오더 (2)
세현은 한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리베르의 머리를 붙잡은 후 날개를 펼쳐 공중으로 크게 날아올랐다.
그러자 주변의 시야가 넓게 펼쳐져 보였다.
성령개방의 일격으로 엉망진창이 된 일대, 그 사이에서 서큐버스 군단과 리베르의 수하들이 난전을 벌이고 있는 전장이 눈에 들어왔다.
“가자아아아!”
헤라클레스, 제우스 3형제 같은 보스 몬스터들이 수백여 마리나 밀집된 구역으로 사카린이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죽어! 죽어어!”
그녀가 두 개의 사슬낫을 힘차게 내던질 때마다 엄청난 파쇄음과 함께, 보스들의 머리가 펑펑 터져 나갔다.
다른 길드원들 또한 그에 못잖은 전투 능력을 보여 주며 보스급 몬스터들을 학살했다.
“미친. 저게 입주자라고?”
“못 이겨… 저건 절대 못 이겨.”
그 광경을 지켜보던 상위권 입주자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자신들이 적어도 수십, 많이는 수백 명이 붙어야 제거할 수 있던 보스 몬스터들을 마치 일반 몬스터처럼 썰어 대는 그 모습에 침착한 인간이 있다면 그게 도리어 미친놈 일 것이리라.
“도, 도망쳐!!”
순식간에 공포가 전염됐고, 얼마 가지 않아 대열에서 이탈자가 발생했다.
하나가 도망치기 시작하자, 그 뒤를 따라 수십 명의 입주자가 그를 따랐다.
그때 반대편에 서 있던 관리인 하나가 공중에서 아래로 기다란 창을 내리꽂았다.
꽈르릉-!
흡사 제우스의 벼락과 유사한 형태의 낙뢰가 내리치며 그들의 몸뚱이가 순식간에 산화해 버렸다.
<물러서지 마라.>
그걸 시작으로 관리인들이 입주자들의 배후에서 각자의 보구를 들고 앞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말은 안 했지만, 여기서 도망가면 재가 돼 버린 자들과 똑같이 만들어 주겠다는 의도가 느껴지는 제스처였다.
“죽었어, 우린 여기서 다 죽었어.”
“으아아아!”
앞에서는 서큐버스 군단이 보스 몬스터들을 썰어 대며 다가오고, 뒤에는 관리인들이 버티고 있는 상황.
입주자들은 완전 패닉에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윽고 서큐버스 군단이 거의 모든 보스 몬스터들을 제거하고 앞으로 달려들었을 때, 그들은 하나둘씩 무릎을 꿇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제발! 한 번만 살려 주십쇼!”
“죽고 싶지 않습니다! 지, 집에 가족이 있습니다!”
그들의 뻔하고 하잘 것 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심지어는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자들도 있었다.
“머저리들, 차라리 끝까지 싸우다가 멋있게라도 죽어.”
하지만, 그런 모습에 자비를 보이기는커녕 사카린과 길드원들은 무자비하게 무기를 휘둘러 학살을 벌였다.
- 한 번 인류를 배신한 자는 철저히 배제한다. -
이는 서큐버스 군단이 관리인들에 맞서 싸우기로 한 이후로 철저히 지켜 오고 있는 원칙이었다.
저들 대부분은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관리인들에게 박쥐처럼 붙은 후, 알량한 힘으로 민간인들을 착취하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을 용서하면 후환이 생길 것이 분명했다.
현재 한 명의 입주자가 아쉬운 상황일지라도, 어차피 인류를 한 번 배신한 자들에게 등을 맡길 수도 없는 노릇.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확실하게 정리하고 가는 것이 맞았다.
“끄아아아악!”
“이 개자식들아!”
서큐버스 군단이 안쪽으로 파고들어 입주자들을 베어 내기 시작하자 그들은 그제야 무기를 들고 저항했다.
물론 전투력의 수준 차이가 현격했기에 그들은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아마 보스급 몬스터들이 함께 섞이지 않았다면, 개미처럼 삽시간에 쓸려 나갔으리라.
<이 건방진 것들이!!>
전황이 불리하게 전개되자, 다급해진 관리인들 또한 제각기 보구를 소환해 전장에 직접 뛰어들었다.
“이제 좀 해볼 만한 놈들이 나왔네!!”
자신에게 관리인 두 명이 동시에 붙어 보구를 휘두르자, 사카린은 그 맹공을 받아 내며 즐겁다는 듯 입꼬리를 씨익 추켜올렸다.
관리인들의 숫자와 서큐버스 군단의 숫자가 거의 비슷했기에, 두 명이 붙은 사카린을 제외하면 전투는 거의 1:1 양상으로 흘러갔다.
나머지 보스 몬스터와 입주자들은 세이메이가 다량의 소환수들을 이용해 혼자서 커버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이익! 입주자들 따위가!>
관리인들과 서큐버스 군단, 그들의 1:1 전투 양상은 호각지세로 흘러갔다.
어떤 길드원은 스킬과 권능의 상성에 따라 때로는 관리인을 밀어붙이기도, 약간 밀리기도 했다.
공중에 떠 있는 세현은 그 전투에 당장 개입하지 않은 채 멀찌감치 떨어져서 조용히 그 광경을 지켜봤다.
‘여기서 제대로 싸워 봐야 한다.’
자신이 지금 당장 전투에 개입하면, 쉽게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는 뒤가 없다.
앞으로 수많은 관리인과 더 싸워 나가야 하기에 현재의 싸움에서 최대한 많은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했다.
<끄으으윽!!>
전투가 지속되고, 관리인과 길드원들 사이에 승패가 서서히 갈리는 분위기였다.
승패가 갈리는 비율은 대략 5:5정도.
세현은 이런 그림이 나오는 게 못내 아쉬운지 차가운 얼굴로 고개를 작게 저었다.
‘아직은 부족하군.’
애초에 S급, A급에 불과한 입주자들이 아파트의 최상위 포식자나 다름없는 관리인이랑 대등한 싸움을 펼친다는 것 자체가 기적과 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세현과 서큐버스 군단이 상대해야 할 것은 관리인들이 끝이 아니다.
이 세계, 모두의 운명을 제멋대로 흔들고 있는 그 너머의 존재.
그들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하수인에 불과한 관리인들 따위는 압도적으로 싸워 이겨야 한다는 것이 세현의 생각이었다.
그나마 만족할 만한 전투력을 보여 주는 것은 사카린이었다. 그녀는 혼자 2명의 관리인을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시종일관 공세적으로 밀어붙였고, 크리스탈을 이용해 새로 얻은 권능과 자신의 원래 스킬을 적절히 배분해 전투를 리드했다.
심지어는 관리인 한 명의 어깨를 통째로 날려 버려 치명상을 입힌 상태이기도 했다. 아마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사카린은 압승을 거둘 것이다.
‘슬슬 끝내자.’
길드원들이 충분히 경험을 했다 생각한 세현이, 날개를 펄럭이며 지상과 가까운 거리로 날아갔다.
이미 입주자 중 몇 명은 세현이 가까이 온 것을 눈치챘는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리베르는 죽었다!!”
세현은 리베르의 잘린 머리를 번쩍 들어 올리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포효했다.
<리, 리베르 님이!>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그 모습을 목격한 자들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듯 아연실색한 상태였다.
유일하게 관리장급인 ‘리베르’가 죽었다는 것은 이 싸움에 더 이상 승산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자. 술래잡기를 해 보자고.”
세현이 엑스칼리버를 가로로 크게 그었다.
붉은 선이 그 너머의 공간을 열어젖히며 내부에서 수천여 마리의 탐식구더기를 쏟아 냈다.
‘만족스러운 속도다.’
그 광경에 세현은 만족스러운 듯 씨익 미소 지었다. 리베르를 죽이고 얻은 보구 ‘제우스의 선물’ 덕분에 구더기가 소환되는 속도가 한층 빨라진 탓이었다.
탐식 구더기들은 탐욕스러운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관리인, 몬스터, 입주자들을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셀 수도 없이 많은 관리인들의 크리스탈을 흡수하며 키워 온 허세현의 권능. 그것은 차라리 재앙이라 표현하는 것이 맞았다.
<입주자 따위가 이런 수준의 권능을!>
“끄아아악! 살려 줘!”
사방에서 입주자들, 몬스터들, 관리인들이 비명 소리와 탄성이 동시에 들려오며 지상에는 지옥도가 펼쳐졌다. 길드원들은 그 틈을 타 관리인들과 몬스터들에게 최후의 일격을 먹여 싸움을 최대한 빠르게 종결시켰다.
“후우우…… 끝났다.”
수십 분에 걸쳐 한 바탕 소란을 벌이고 난 후, 세현은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세현이 손가락으로 허공에 뭔가의 선을 그려내자 탐식구더기들이 움직이며, 지상에 흩뿌려진 적들의 시체와 피를 남김없이 게걸스레 먹어 치웠다.
“토해 내.”
다시 한 번 손짓 하자, 탐식 구더기들은 입에서 아이템들을 토해 낸 후 그들이 나왔던 붉은 선 너머의 차원으로 돌아갔다.
“그 스킬은 진짜 언제 봐도 사기라니까.”
“스킬 아니에요. 권능입니다.”
바닥에 떨어진 아이템을 눈으로 훑고 있던 때, 사카린이 옆으로 다가와서 세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아 그게 그거지.”
세현은 사카린의 말을 무시한 채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아이템을 빠르게 솎아 냈다.
자신이 쓸 아이템, 길드원들이 쓸 아이템, 그리고 윤병종이 이끄는 ‘2군단’에 보낼 아이템, 그리고 마켓에 팔아 치워 자금으로 사용할 아이템들을 카테고리별로 선별하는 작업이었다.
“시끄럽고, 이거나 받아요.”
세현은 사카린에게 관리인의 크리스탈 2개와 보구 2개를 건넸다. 민첩성과 근접 공격에 특화된 물건들로, 현재의 사카린에게 꼭 맞는 물건들이었다.
“오오, 땡큐!”
이후에도 세현은 자신이 생각하는 길드원들의 고유한 전투 스타일에 맞춰 아이템을 분배했다. 그게 꽤 절묘해서, 이를 받는 길드원들 대다수가 배분에 납득하는 모습이었다.
“길드장, 나머지는 2군단에 넘겨서 쓸 아이템은 쓰고, 쓸모없는 건 팔아 치워서 자금 마련할게요.”
세현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 사카린이 싱긋 웃으며 천천히 대꾸했다.
“허세현, 이제 그런 거 물어보지 말고 네 맘대로 해라. 여기 있는 사람 중에 너 안 믿는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 그치.”
“당연하다츄!”
“주군이라면 지옥까지라도 따라갈 것입니다!”
그러자 뒤쪽에 서 있던 길드원들이 그녀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에D츄와 세이메이가 오버스럽게 외치며 분위기를 띄웠다.
“아우, 닭살 돋으니까 오버들 하지 마라.”
세현은 괜스레 찡해지는 느낌에 코끝을 가볍게 긁적였다.
† † †
[속보입니다. 오늘 오후 4시, 서큐버스 군단이 중국 지역의 관리인 17인과 전투를 벌인 것으로 추측되는 자금성 일대의 현장입니다. 곳곳의 기왓장과 무너진 벽, 피어오르는 연기가 치열한 전투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전투에서 중국 지역 전체를 통치하던 관리장 ‘천존’과 16인의 관리인, 그들을 돕던 ‘공산 연맹’ 세력도 거의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고 현지 언론은 알려 왔습니다.]
[중국 정부는 공식 담화를 통해 서큐버스 군단의 중국 해방을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왔으며…… 이로 인해 서큐버스 군단에 의해 해방된 국가는 89개로 늘어나게 됐습니다.]
[이후 중국의 치안은 서큐버스 군단 산하에 있는 ‘2군단’의 도움을 받아 한시적으로 유지되며……]
[리플]
-Jangbob0: 서큐버스 군단, 우리나라도 해방시켜 줘요!
-XSFM: 앞잡이 노릇하던 공산 연맹 놈들 꼬시다! 진즉에 뒤졌어야 됐는데.
-Kumtata: 중화민국 해방 만세!
-Puilad: 이 정도면 솔직히 서큐버스 군단을 기리는 동상을 세워야 된다.
[이어서 브라질의 거대 예수상에서 전투가 벌어졌다는 소식입니다. 이번 전투에서 사망한 민간인의 숫자는 15만여 명으로 추정되며 관리인들 또한…….]
[이로서 남미 대륙은 서큐버스 군단의 활약에 의해 관리인들로부터 완전한 해방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브라질 정부는 아파트에서 나온 ‘거주자’들에게 일반 시민들과 동등한 권리를 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관리인을 상대로 투쟁 중인 79개의 반군이 서큐버스 군단’과 ‘제2군단’에 공식 지지 성명을 냈습니다.]
[속보입니다! 오늘 오후 9시, 알래스카 극지방에서 민들레 씨앗의 제작자들로 알려진 ‘시드메이커’ 전원이 소탕되었다는 소식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직접 제작한 거대 레이드 몬스터를 앞세워 서큐버스 군단에 대항했지만, 전투 시작 후 5시간 30여 분 만에 완전히 소탕됐습니다. 서큐버스 군단은 이때의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하여 일반 시민에 공개했으며…….]
[전 세계가 서큐버스 군단에게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