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167화 (167/180)

# 167

167화.

혼돈의 힘

그곳에는 80층에서 봤던 것과 동일한 10개의 비석이 놓여 있었다.

“이거……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대형 몬스터의 등장을 예측했던 입주자들은 대체로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잠시 후, 10개의 비석이 동시에 푸른빛을 내뿜어 그 중심부에 커다란 구체를 형성했다.

그리고 그것은 하늘로 검은 소용돌이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저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고 있기에 세현과 서큐버스 군단은 제각기 무기를 붙잡고 전투태세를 취했다.

“끼에에에엑!”

비명 소리와 함께 수만 마리의 마수들이 동시에 새까맣게 뿜어져 나왔다.

“뭐, 뭐야 저건……”

“이거 레이드 전투 아니었어?”

별안간 여기저기서 폭발이 일어나며 전투가 시작됐다.

입주자들뿐 아니라,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대기 중이던 군 병력들까지 모두 동원되어 화력을 퍼부었다.

“으어어억!”

“사, 살려 줘!”

하지만 어쩐 일인지 마수들을 제거하는 속도보다도 검은 소용돌이가 놈들을 내뿜는 속도가 더 빨랐기에 처음에는 팽팽해 보였던 전선은 점점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젠장…… 이거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허세현 또한 성령개방을 이용해 소용돌이를 생성한 10개의 비석에 직접 공격을 퍼부어 봤지만, 아무런 효과도 볼 수 없었다.

한참을 헤매던 세현은, 이번엔 검은 소용돌이를 직접 헤집어 보려 날개를 펼친 후 엑스칼리버를 앞으로 뻗고 돌진했다.

타앙!

금속 마찰음과 함께, 세현의 몸이 검은 소용돌이의 초입에서 튕겨 나갔다.

몇 번이고 반복했지만 마찬가지였다. 뭔가의 결계 같은 것이 세현이 소용돌이 근처로 접근하는 것을 막고 있었다.

“젠장. 이대로 가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세현은 쏟아지는 마물들을 향해 쉴 새 없이 성령개방과 탐식구더기들을 뿜어내며 살육을 이어갔다.

그렇게 전투가 이어진 지 한 30여 분쯤이 지났을까?

[소용돌이 근처에서 죽인 마수의 숫자가 3천을 넘었습니다!]

[혼돈의 왕이 당신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별안간 마스터키에서 메시지가 출력되더니 세현의 머릿속으로 사념 하나가 들려왔다.

[오, 꽤 신기한 놈이 보이는구나. 이 정도 힘이라면 한 번 붙어보고 싶은데 말이지.]

“넌 누구냐.”

[오오, 내 목소리가 들리는가 보구나. 나는 혼돈의 왕, 네가 나의 권속들을 제거하는 모습이 재미있어 말을 걸었다.]

“재미있어? 그럼 한 판 붙어 보는 게 어때.”

세현은 지금 목소리를 걸어오는 놈이 이번 시즌의 최종 보스라는 것을 직감하고, 도발적인 태도로 나아갔다.

[좋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 해야 할 일이 있다.]

그 직후, 눈앞에 커다란 팝업 하나가 출력됐다.

[#.메인 퀘스트 / 혼돈의 왕]

- 혼돈을 부르는 검은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재앙을 멈추고 싶다면 소용돌이 너머에 있는 ‘혼돈의 왕’을 쓰러뜨려라.

적정 레벨: ???

적정 인원: 1명(1인밖에 입장할 수 없는 던전입니다.)

[수락하기]

세현이 곧장 수락하기 버튼을 누르고 소용돌이를 향해 외쳤다.

“어떻게 해야 이 빌어먹을 소용돌이를 넘어서 네놈을 볼 수 있는 거냐.”

팝업이 사라졌고 다시 한 번 사념이 들려왔다. 재미있다는 듯, 웃음기가 가득 서린 음성이었다.

[좋아 좋아! 배짱이 두둑한 놈이로군! 내게 도전할 기회를 주도록 하지!!]

그 사념이 들려온 직후, 소용돌이 안쪽에서 세현의 머리만 한 뭔가가 날아와 품속으로 묵직하게 안겨왔 다.

“이건 뭐야……?”

그것은 여러 개의 홈이 새겨진 석판이었다. 그 순간, 세현은 이 물건이 뭔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운석!”

세현은 곧장 빠르게 전장을 이탈하며 사카린에게 딱 한 마디만을 남겼다.

“길드장! 나 잠깐 중요한 일 좀 처리할 테니까 버티고 있어 봐요!”

“야! 야 허세현 어디가!!”

세현은 곧장 날개를 펼쳐 미칠 듯한 속도로 아파트를 향해 되돌아갔다.

그러곤 시즌7 구역에서 대기 중인 에D츄와 세이메이를 데리고 당장 9파 1방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갑작스러운 등장에 당황한 장문인들에게 세현은 아무런 꾸미는 말도 없이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니들이 가지고 있는 운석 내놔.”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바로 안 내놓으면 있는 쪽 없는 쪽 다 팔 줄 알아라.”

1분 1초가 급박한 상황이기에 세현은 최대한 강경한 말투로 말했다.

“쳐라!”

그러자 상황은 당연한 수순으로 흘러갔다.

“에D츄, 세이메이. 잡졸들 좀 막아 봐.”

“넵 쭈인님!”

“네 주군!”

세이메이와 에D츄가 각 문파의 무림인들을 상대하는 사이, 세현은 장문인들에게 달려들었다.

“크어억!”

대부분의 전투는 세현이 검을 서너 번 휘두르는 것으로 결판이 났다.

그들이 SS급이고 레벨이 300을 넘는다 한들, ‘사선의 왕’을 가지고 있는 허세현을 1:1 대결에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던 탓이었다.

“모,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치명상을 입은 후, 그들은 하나같이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했다.

세현은 그때마다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해 줬다.

“죽이긴 뭘 죽여, 운석이나 내놓으라고.”

“드, 드리겠습니다!”

세현은 두드려 맞고 나서야 비굴하게 운석을 바치는 장문인들에게 ‘필요 없어.’라고 외치고 싶은 것을 꾹꾹 참고, 10개의 운석을 하나둘씩 자신이 획득한 석판에 끼워 봤다.

찰칵-!

마치 처음부터 하나의 물건이었던 듯, 운석들이 석판의 홈에 장착됐고 10개를 모두 끼워 넣자 석판 전체에 은은한 푸른빛이 맴돌았다.

[#. 퀘스트 아이템 / 혼돈의 힘]

- 흩어져 있던 혼돈의 힘이 하나로 돌아왔다.

이것을 ‘혼돈의 왕’에게 건네주면 그는 온전한 힘을 되찾을 것이다.

아이템 설명에서 세현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정확히 알려 주고 있었다.

“돌아가자.”

세현은 곧장, 아파트 외부의 전장으로 돌아갔다.

“끄아아악!”

“적들이 너무 많아! 지원군들 더 없어?!”

바닥에 널려 있는 무수히 많은 마수, 입주자, 군인들의 시체는 세현이 자리를 비웠던 근 1시간 동안의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말해 주고 있었다.

“끝내자.”

세현은 마수들을 베어 내며 소용돌이의 한가운데로 거침없이 돌진했다.

그리고 소용돌이에 닿기 직전, 석판을 꺼내 안쪽으로 있는 힘껏 집어던졌다.

[‘혼돈의 왕’의 던전에 입장합니다!]

그러자 메시지가 출력되며 몸이 순식간에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게 메인 던전 입장권 같은 역할을 하는 거였군.’

삽시간에 시야가 검게 물들었고, 잠시 후 온 사방이 흰색뿐인 광활한 공간이 펼쳐졌다.

세현은 저 멀리 떨어져 보이는 작은 ‘검은 점’을 보고 그쪽을 향해 내달렸다.

“뭐야, 사람?”

거리가 가까워지면 질수록, 검은 점의 형체는 점차 디테일해졌다.

눈, 코, 입 따위가 보이지 않는 검은 그림자 같은 형태의 사람, 그의 이마에는 금빛을 내뿜는 고리가 씌워져 있었고 엉딩이에는 꼬리로 추정되는 검은 그림자가 길게 뻗어 나왔다.

세현은 그와 약 30m 거리에 멈춰 서서 엑스칼리버를 단단히 붙잡았다.

<오오, 재미있군 재미있어. 내게 힘을 돌려주는 간덩이 큰놈이 아직도 남아 있을 줄이야!>

“넌 뭐냐.”

<내가 뭐냐? 으음…… 어떻게 얘기를 해 줘야 할까.>

세현의 질문에 검은 실루엣은 고민하듯 턱을 쓰다듬다가 손가락을 ‘딱’ 소리가 나게 튕겼다.

[메모리얼 던전 ‘혼돈의 왕’에 진입합니다.]

그러자 머릿속으로 수많은 정보가 빨려 들어오며 눈앞에 영상 하나가 출력됐다.

이미 ‘아서왕’의 진정한 힘을 각성할 때 메모리얼 던전이라는 것을 수도 없이 겪어 왔기에, 세현은 이 시선에 금세 적응할 수 있었다.

세현의 시야에는 붉은 도복을 입은 수많은 무림인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 나는 오행산의 왕, xxx라고 한다! 이 문파에서 가장 강한 놈은 튀어나와라! 한판 붙어 보자! -

그리고 세현의 의지와는 별개로 입이 벙긋거리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런 원숭이 같은 놈이!! -

그 말 한마디에 잔뜩 흥분한 무림인의 고수들이 하나둘씩 이 기억의 주인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 기억의 주인의 무공은 그들과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 끄어어억! 이, 이 힘은 대체! -

그가 검조차 쓰지 않고 주먹과 발길질을 몇 번 하기만 했다 하면, 내로라하는 무림 고수들이 뻗어 나갔다.

심지어는 너무 강한 일격에 목이 돌아가거나 피를 토해 내며 죽는 자들도 존재할 정도였다.

이런 영상을 본 후, 세현의 시선은 다시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그러곤 또 다른 문파의 도장에서 전투를 벌이고 또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그렇게 수십 개의 영상이 계속해서 지나가며, 이 기억의 주인공이 얼마나 압도적인 힘을 지닌 존재인지를 설명해 주고 있었다.

‘이거 완전 원펀맨이구만.’

현재의 세현 또한 관리자에 준하는 힘을 가졌기에 지금 기억을 보고 있는 이 존재의 힘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절대 만만히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 네놈 xxx여! 네 녀석은 중원의 도의를 져버리고 무림을 혼란케 한 죄를 알라! -

- 이곳에 모인 9파1방, 그리고 사파8문의 연합인 우리가 그대들에게 준엄한 정의의 심판을 내릴 것이다! -

수십 번의 기억을 본 후, 주변에 거진 수만에 달하는 인파가 늘어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인간…… 완전히 왕따였구만?’

그 광경을 보고, 세현은 이 기억의 주인이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애초에 이놈은 별다른 이유도 없이 수많은 문파를 깨부수며 그들에게 망신을 줬다.

명예에 죽고 명예에 사는 그들에게 그런 치욕을 줬으니, 공분을 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터.

그렇기에 모든 무림인들이 한데 모여 이 몸의 주인을 죽이려 드는 것이었다.

- 다 덤벼라, 겁대가리를 상실한 것들아! -

잠시 후, 살풍경한 전투가 벌어졌다. 기억의 주인은 셀 수 없이 많은 무림인들을 잔인하게 제거했다. 마치 사자와 토끼들의 싸움 같은, 일방적인 살육전이 계속 이어졌다.

몸에 상처가 계속 늘어 감에도 기억의 주인은 현재의 싸움이 재미 있다는 듯 괴스러운 웃음을 토해 내며 살육을 이어 갔다.

미친놈이라고 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광기에, 수많은 죽음을 목격해 왔던 세현조차 질려 버릴 지경이었다.

- 크으으…. 크으으으윽……. -

몇 시간이 지났을 때, 기억의 주인은 수많은 암기와 화살, 사슬 등에 찍혀 몸뚱이가 고슴도치와 같이 변해 있었다.

마왕 같던 같던 그의 기세도 점차 줄어들었고, 서서히 이 지옥 같던 싸움도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 저놈에게 마지막 일격을 날립시다! -

정파 사파, 각 문파의 장문인들이 모여 마지막으로 힘을 모았다.

그들은 자신이 펼쳐 낼 수 있는 궁극의 무공 절초를 펼쳤고 세현의 시야가 삽시간에 피로 물들었다.

‘뭐야? 이 인간들 수준에 쓸 수 있는 수준의 공격이 아닌데.’

세현은 이 광경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것이 장문인들이 펼치는 공격 절초가 그들의 수준과 전혀 맞지 않을 정도로 막강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마치, 그들이 가진 본연의 힘이 아닌 타인에게 빌린 듯한 성질의 것이었다.

‘혹시…… 권능인가?’

그 와중에도 소름이 끼치는 것은, 이 기억의 주인은 팔과 다리가 잘려 나가면서도 이빨로, 남은 한 팔과 다리로 마지막까지 장문인 몇 명을 자신의 길동무로 삼았다는 것이다. 실로 악마 같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투지였다.

하지만 결국 그 또한 장문인들의 강력한 무공에 사지가 갈가리 찢겨 나갔고, 결국은 유명을 달리했다.

잠시 후, 세현의 시선은 그 장면을 마치 카메라로 바라보듯 전환되었다.

그러자 찢겨진 몸뚱이가 스멀스멀 녹아내리더니 그 자리에 10개의 돌덩이가 남았다.

- 아 악귀의 힘이 담긴 영단인 듯하구려,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 이것을 저희가 나눠 가지는 것이 가장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

- 하긴 그렇구려, 이 무림에 이제 우리보다 강한 자는 없을 것이니……. -

장문인들은 대의를 위해 자신들이 돌을 가져가는 것처럼 말했지만, 세현은 그들의 눈에 떠오른 탐욕의 불길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살아남은 장문인들은 그것을 파기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1개씩 나눠 가진 후 헤어졌다.

[메모리얼 던전 ‘혼돈의 왕’이 종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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