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
166화.
중원무림
“혈소아 씨라고 했나요?”
“아…… 네 그렇습니다!”
세현이 입을 열자, 혈룡의 딸이 화들짝 놀라 대꾸했다.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네? 그게 어떤……”
“이상형이요 이상형, 좋아하는 남자 취향 말해 달라고요.”
다소 강경한 태도로 질문을 던지자, 혈소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소녀는 귀공자 같은…… 품격이 있는 분이 좋습니다.”
“귀공자라? 그럼 저랑은 한~참 거리가 있네요. 그쵸?”
“어어…….”
혈소아는 쉽사리 대꾸하지 못하고 입을 벙끗거렸다.
옆에 있는 혈룡의 눈총이 따가웠지만, 세현은 아랑곳 않고 등을 돌려 길드원들을 향해 외쳤다.
“여러분, 제가 귀공자 타입입니까?”
“아니?”
“솔직히 그건 아니지.”
“뭐 나름 귀엽긴 하지만 귀공자는 전혀 아니지.”
“귀공자? 미쳤어?”
세현의 외침에 길드원들은 넌더리를 치거나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것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이 사람들이, 미쳤다고 할 것까진 없잖아요.”
괜히 서운한 마음에 한숨을 푹 내쉰 후, 세현은 혈룡을 바라보며 말했다.
“보셨죠? 저는 그쪽 따님의 이상형이랑 거리가 먼~인간입니다. 따님을 위해서라도 결혼은 안 되겠네요.”
“그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여식은 그저 가문을 위해서……”
그는 주절주절 말을 이었다.
마치 꼰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답답한 일장 연설에 세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 한다고.”
“네, 네? 그게 무슨……”
“결혼 안 한다고 이 할배야. 좀 적당히 좀 하지.”
세현은 엑스칼리버를 뽑아 그의 수염을 썩둑 잘라 냈다.
너무 빠른 속도였기에, 혈룡은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한 채 입을 벙긋거릴 뿐이었다.
“정 싫다면, 돌덩이는 여기 두고 갈게. 그 대신 다른 놈들한테 뺏기면 그때는 내가 당신 목을 잘라 버릴 테니까 그런 줄로 알고 있어.”
“이 무슨…….”
세현의 무례한 태도에 화가 났는지 혈룡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는 감히 덤벼들지는 않았다.
명색이 한 개의 문파를 이끄는 장문인이기에 세현의 힘이 어느 수준인지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허세현, 저 돌덩이 안 챙겨도 돼? 분위기로 보아하니 메인 퀘스트 깨려면 저거 있어야 될 것 같은데.”
혈륜파의 성을 빠져나온 직후, 사카린이 세현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질문을 던졌다.
“그럼 거기서 어떻게 합니까?”
“그 여자애랑 결혼하면 간단하잖아, 예쁘게 생겼던데 그냥 결혼하지 그랬냐?”
“됐다니까요. 다른 루트가 있는지 찾아보고 진행하면 될걸…….”
“뭐 나야 좋지, 괜히 허세현을 다른 여자한테 뺏기는 건 솔직히 좀 그렇잖아? 안 그래 설희야?”
사카린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백설희를 쳐다보자, 그녀가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돌려 버렸다.
세현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장난 그만 치고, 서둘러서 움직이자고요.”
† † †
“망할, 이거 실화냐?”
71층에 도착지 93일, 세현과 서큐버스 군단은 계속해서 다른 문파를 찾아다니며 메인 퀘스트를 진행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메인 퀘스트는 혈륜파의 메인 퀘스트가 발생했을 때처럼 최초 발생 후, 마수들을 제거하면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9파 1방뿐 아니라, 마교, 사교, 하오문 등 무림의 수많은 집단들을 찾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정보를 모았지만 그들이 뱉는 정보는 대부분 뜬구름 잡는 것뿐이었다.
- 10개의 돌이 마수들의 손에 들어가면 중원무림은 끝장난다. -
- 천지가 개벽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
‘이 따위 정보로 메인 퀘스트를 어떻게 찾아내냐고….’
게다다 빈번하게 문파들을 습격하는 ‘마수’들의 배후조차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황, 이대로 가다가 다시 한 번 ‘민들레 씨앗’이 날아갈 판이었다.
“젠장, 71층 전체를 진짜 이 잡듯이 뒤진 것 같은데 이렇게까지 정보가 없을 수가 있나?”
“망했다 망했어…… 71층에서 한 1년은 더 썩는 거 아닐까요?”
“재수 없는 소리 하지도 마라.”
메인 퀘스트가 진전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 탓에 길드원들은 긴급회의를 진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회의를 한다고 딱히 뭐가 나올 리는 없었다.
거주자의 호감도를 올려 보고, 몬스터를 몰살시켜 보고, 서브 퀘스트를 진행하기도 해 봤다.
하지만, 메인 퀘스트는 여기서 한 발자국도 더 나갈 수 없었다.
“거기다가 71층 다른 층에 비해서 너무 넓지 않냐? 거의 10배는 되는 느낌인데.”
“맞아 71층 너무 넓어, 짜증나 죽겠어 진짜…… 좁기라도 하면 그나마 나을 텐데.”
한창 얘기를 나누던 중, 길드원들이 71층의 넓이에 대해 불만을 토해 냈다.
그러던 중, 세현은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넓이가 10배쯤 된다라…. 설마.”
머릿속에 한 가지 가설이 세워졌고, 세현은 곧장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허세현 어디가!”
“잠깐 다녀올 데가 있어요.”
세현이 바로 향한 곳은 ‘승강의 방’이었다.
아직 이곳까지 올라온 입주자들이 아무도 없기에 텅텅 빈 방 안에서, 세현은 이곳의 버튼 하나하나를 천천히 뜯어봤다.
“뭐야 이거?”
세현은 자신들이 있는 71층의 버튼에 새겨진 숫자를 보는 순간 숨이 멎는 느낌이 들었다.
[7S]
버튼에 새겨진 문자는 71층이 아닌, 7S라는 글자였다.
‘혹시……’
세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로 위에 있는, 본래 72층의 버튼이어야 할 버튼을 터치해 봤다.
그러자 눌리지 않아야 할 72층의 버튼이 눌리며 메시지음이 출력됐다.
[7S-2번 구역으로 이동합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밖으로 빠져나가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여긴…… 무당파 본산 아니야?”
구름이 잔뜩 낀 스산한 산의 풍경, 그리고 그 중턱에 매달려 있는 거대한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혈륜파에서 도망친 후, 그 다음에 도착한 9파1방인 무당파의 본산이 있는 곳이었다.
“72층이 여기로 연결된다고?”
세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혹시나 하는 시즌7의 다른 버튼들도 터치하자, 72층과 마찬가지로 모두 작동하고 있었다.
[7S-3번 구역으로 이동합니다.]
[7S-3번 구역으로 이동합니다.]
……
[7S-8번 구역으로 이동합니다.]
[7S-9번 구역으로 이동합니다.]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문을 열고 나갈 때마다 71층에 위치해 있던 9파 1방의 문파가 위치한 근처 동굴로 빠져나왔다.
그것은 세현에게 한 가지 정보를 알려 주고 있었다.
“시즌7은 한 개의 필드로 합쳐져 있다 그건가?”
시즌7은 다른 시즌들과 달리 전체가 10개 층으로 나뉜 것이 아닌, 한 개로 합쳐진 것이 아닌가 하는 추론이 가능했다.
그렇다면 필드의 넓이가 다른 스테이지들에 비해 거의 10배가량이 넓은 것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됐다.
“흐음.”
세현은 턱을 쓰다듬으며 마지막 시즌7의 마지막 층인, 80층의 버튼을 터치했다.
[7s-10번 구역으로 이동합니다.]
본래 메인 퀘스트의 최종장이 벌어져야 할 80층, 그곳에는 온 사방에서 벼락이 내리치는 검은 구름 사이로 떠 있는 공중섬이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는 시뻘건 물이 가득 차 있는 거대한 호수가 있었고, 호수 주변을 10개의 거대한 비석이 둘러싸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은 기괴한 장소, 세현은 절벽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서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러자 융단처럼 펼쳐진 구름 무리와 그 틈 사이사이로 시즌7 곳곳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가 시즌7이라고? 여태 이런 곳은 본적 없는데….”
시즌7의 메인 퀘스트를 탐색하며, 몇 번이고 다이달로스의 날개를 이용해 하늘로 날아올랐던 세현이다.
숨겨진 동굴이나 지하에 있는 장소라면 모를까, 이렇게 공중에 대놓고 있는 섬을 못 봤을 리가 없었다.
세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이달로스의 날개를 펼쳐 공중섬에서 서서히 멀어졌다.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자, 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세현의 몸이 뭔가의 막을 뚫고 나갔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운에 세현은 몸을 틀어 날아왔던 방향을 바라봤다.
“……이게 뭐야?”
조금 전, 다가왔던 공중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마치 이곳에 원래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돌아가려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해 보다가 결국 승강의 방을 통해서 다시 공중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분명 여기랑 뭔가 연관이 있는 것 같은데.”
이번에는 천천히 공중섬의 곳곳을 관찰했다.
가장 특이할 만한 것은 주변에 놓인 10개의 비석이었다.
그 위에 새겨진 정체불명의 언어를 눈으로 훑어보자 그 위에 커다란 팝업과 함께 그것이 한글로 번역되어 출력됐다.
[이곳에 천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혼돈이 잠들어 있다.]
[그의 힘은 10개로 쪼개져 있으니 온전한 그를 대면할 자, 10개의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혼돈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자, 새로운 세계의 질서를 만들 것이리라.]
“무슨 말이야?”
모든 문장을 읽었지만, 딱히 그 내용이 이해가 가진 않았다.
더 많은 힌트를 찾아보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이것이 전부였다.
그때였다.
콰지지직!
갑자기 10개의 비석이 푸른빛을 온 사방으로 내뿜어 대기 시작했다.
그 빛이 호수의 검은 소용돌이 위에서 하나의 구체로 뭉치더니 안으로 천천히 빨려 들어갔다.
“끼에에에엑!”
잠시 후, 마수들의 살풍경한 비명 소리와 함께 그곳에서 무수히 많은 마수들이 공중으로 뿜어져 나왔다.
세현은 화들짝 놀라 주변의 바위에 몸을 숨겼다.
“뭐야, 저 미친 숫자는.”
뿜어져 나온 마수들의 숫자는 족히 1만을 뛰어넘고 있었다.
현재의 세현조차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감히 대적해 볼 엄두조차 나지 않을 수준이었다.
그 마수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공중섬의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저 놈들이 전부 여기서 온 거였군.”
세현은 자신이 여태 상대했던 마수들의 출처가 여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애초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투명한 공중섬.
이곳에서 마수들이 생성되기에 시즌7을 쥐 잡듯이 뒤져도 마수들의 생성지를 특정할 수 없던 것이었다.
그렇게 수십 분 동안 마수들의 추락 행렬을 지켜본 후, 세현은 천천히 몸을 다시 움직였다.
† † †
이후 세현은 자신이 발견한 새로운 정보들을 곧장 길드원들에게 풀었다.
길드원 전체가 정체불명의 공중섬에 들이닥쳐 탐색을 해 봤지만, 더 이상의 정보는 없었다.
9파1방은 ‘혼돈의 돌’ 등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부르긴 했으나 하나같이 특별한 ‘운석’을 가지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10개의 운석을 강제로 모아 볼까 했지만, 그랬다가 9파1방의 모든 거주자들을 적으로 돌려 메인 퀘스트 자체가 어그러져 버릴까 두려워 선뜻 선택을 내릴 수 없었다.
결국 아무런 소득도 없이 100일이 모두 지나가 버렸다.
“망할…….”
[민들레 씨앗 레이드 긴급소집. ‘서큐버스 군단’전원 참가 요망.]
결국 서큐버스 군단에도 민들레 씨앗 레이드를 막기 위한 요청이 들어왔다.
어쩔 수 없이 세현을 비롯한 길드원 전체가 ‘관리사무소’가 지정한 장소에 모여 정상의 민들레 씨앗이 지상에 떨어지길 기다렸다.
[경보! 경보! 아파트 정상의 민들레가 씨앗을 발사했습니다! 예측 추락 지점의 병력들은 모두 전투를 준비합니다! 경보! 경보!]
[각 조의 대대장은 수시로 본부에 상황을 보고하길 바랍니다. 이상.]
서큐버스 군단은 아파트 밖에 나올 수 없는 세이메이와 에D츄를 제외한 전 인원이 1개 대대로 묶여 이번 전투에 참가하게 됐다.
이번 레이드에 참가하는 1개 대대의 평균 인원 숫자는 300~400명.
겨우 10여 명으로 이뤄진 길드를 대대로 편제한다는 것은 관리사무소가 그녀들의 전투력을 어느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와아~ 씨앗이다.”
허공으로 거대한 씨앗 10여 개가 두둥실 떠올랐다.
길드원들은 산 중턱에 있는 예상 추락 지점에서 마치 관광지라도 온 듯 여유 가득한 태도로 민들레 씨앗의 추락을 지켜봤다.
콰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민들레 씨앗이 추락하고 먼지가 뭉게뭉게 솟아났다.
그것이 모두 걷혔을 때, 그 자리에는 이번 민들레 씨앗 레이드의 보스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뭔데?”
추락 지점에 바짝 다가간 세현은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풍경에 미간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