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165화 (165/180)

# 165

165화.

강시 (2)

콰드드득-!

그러자 길드원들이 동시에 앞으로 달려들어 앞에 놓인 열댓 마리의 강시들을 깔아뭉개기 시작했다.

“완전히 몸뚱이를 갈기갈기 찢어 버려!”

혈강시들은 특유의 기민한 움직임으로 응전했지만, 애초에 전력의 차이가 컸기에 결국 사체가 갈기갈기 찢겨 죽게 됐다.

‘이런 것들이 수백, 수천 마리 있다고 생각하면 쉽진 않겠어.’

세현은 혈강시의 사체를 채집의 단검을 이용해 파밍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첫 전투에서 잡 몬스터를 상대한 짧은 경험만으로도 이번 시즌의 난이도가 상당하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굳이 설명하자면 혈강시 한 마리는 시즌6의 좀비 10기 정도를 동시에 상대하는 정도의 난이도를 가졌었다.

“슬슬 안쪽으로 들어가자고요.”

길드원들은 동시에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더 크게 들려오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그때마다 나타나는 혈강시들의 숫자가 점차 늘어났는데, 많은 곳에서는 동시에 수백 마리가 동시에 나타나기도 했다.

세현이 ‘탐식 구더기’를 이용해 넓은 범위를 커버했기에 망정이지 자칫 잘못했다간 길드원 한두 명은 큰 부상을 입을 뻔했을 아슬아슬한 상황이 계속 벌어졌다.

심지어 어느 시점에 가서는 혈강시들이 끝도 없이 쏟아지는 탓에 애초에 목표로 하는 지점까지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소환하는 놈을 먼저 잡아야 한다.’

계속되는 전투 속에서 세현은 혈강시들이 나타나는 시점과 방향을 계속 관찰했다.

놈들을 계속해서 소환하는 놈을 잡아, 근본적인 문제를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11시, 4시, 8시 건물 지붕 뒤쪽에 있는 놈들 잡아!”

“오케이!”

결국 그 흐름을 읽어 낸 허세현이 크게 외치자, 상황을 눈치챈 길드원들이 재빨리 산개해 그 장소로 공격을 퍼부었다.

“어, 어떻게 알아낸 거냐!”

그곳에 매복하고 있던 놈들이 당황했는지 부랴부랴 도술을 발동시키며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콰드득-!

길드원들의 무기 세례가 놈들의 목을 말끔히 따 버렸다.

수백 마리에 달하던 혈강시들이 조각상처럼 굳어져 제자리에 멈춰 버렸다.

“뭐야 이거, 인간이 아니잖아?”

쓰러진 영환술사들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 세현이 그들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들은 도술사 같은 옷을 입고 있었지만, 엉덩이 쪽에 꼬리가 길게 달렸고 온몸에는 털이 수북이 덮혀 있었다.

‘원숭이?’

잠시 후, 놈들의 사체가 스르륵 녹아내리더니 그 자리에 털 몇 가닥만이 남았다.

[#.재료 아이템 / 마법의 털]

-기가 고밀도로 뭉쳐진 털.

희귀도: S(전설)

세현은 이 마법의 털이라는 아이템 안에 꽤나 많은 양의 마나가 응축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레벨이 거진 300에 근접하게 되면서 마나를 느끼는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진 탓이었다.

‘재료 아이템으로 쓸 만하겠군.’

일단 마법의 털을 인벤토리에 대충 던져 놓은 후, 세현은 다시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혈강시들의 방해가 없었기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목표 지점인 성의 본전에 도달할 수 있었다.

“막아라! 비전서를 절대로 빼앗기면 안 된다!”

“이 사악한 놈들!”

본전 앞, 사각의 돌을 넓게 깔아 놓은 광장에는 붉은 도포를 입은 무인들이 제각기 무기를 들고 갖은 마수들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두 눈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호랑이, 입에서 독액을 토해 내는 두꺼비,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강시들까지….

마수들의 숫자와 종류는 다채롭다 못해, 이곳이 마경이라고 착각하게 할 정도였다.

‘저 붉은 옷의 인간들, 꽤 강한데.’

마수들의 스펙이 거의 준보스급 몬스터들 수준인데도, 붉은 도포를 입은 무인들은 제법 그에 잘 맞서 싸우고 있었다.

그들이 검이나 창 같은 병장기를 휘두를 때마다 붉은 혈류가 몰아치며 마수들의 생명력을 빨아들였는데, 아마도 저것이 무협 소설에 흔히 나오는 ‘무공’이 아닐까 싶었다.

“일단 돕자고요.”

감상은 일단 미뤄 두고, 서큐버스 군단 전체가 동시에 마수들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세현은 잠시 전장을 살피며 마수들 중 가장 강력한 개체를 찾았다.

‘저놈이군.’

거의 10m가량의 뱀의 몸뚱이에, 얼굴이 달려야 할 부분에 10여 개의 해골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흉측한 괴물.

‘상류’라 이름 붙여진 저 마수의 능력은 거의 시즌6의 메인 보스에 필적할 정도였다.

세현은 엑스칼리버를 단단히 붙잡아 놈의 얼굴 쪽을 겨눈 채, 다이달로스의 날개를 펼친 상태에서 땅을 힘차게 발로 굴렀다.

콰지직-!

순간 최상급 토파즈가 섬광을 토해 내며, 세현의 몸을 경쾌하게 앞으로 밀어 버렸다.

상류의 해골 얼굴들이 세현을 향해 형형색색의 섬광을 뿜어냈다.

그것을 뚫고 앞으로 돌진하자 뒤쪽에서 불길이 치솟고, 얼음이 바닥에 깔렸다.

‘머리마다 각자 다른 속성의 공격을 하는 콘셉트군.’

거의 모든 속성의 공격을 다룰 수 있는 괴물. 아마도 세현이 속성에 의지해서 적을 공략해야 하는 평범한 입주자였다면 저놈을 상대하는 것도 꽤 까다로웠으리라.

세현은 ‘사선의 왕’을 이용해 놈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간 후, 머리 중심부에 엑스칼리버를 후려쳤다.

타앙-!

마치 북이 울리는 듯, 경쾌한 소리와 함께 중심부의 머리 하나에 쩌저적 금이 가기 시작했다.

놈의 몸뚱이가 중심을 잃고 뒤로 밀려나는 순간, 세현은 ‘구더기의 왕’을 이용해 두 개의 문을 열어 양쪽으로 탐식 구더기들을 쏟아 냈다.

“다시 간다.”

그러곤 놈의 얼굴들이 구더기에 신경 쓰지 못하도록 다시 한 번 전방으로 치고 들어가 엑스칼리버를 휘둘러 댔다.

“끼에에엑!”

세현이 시선을 끄는 사이, 탐식 구더기들이 놈의 기다란 몸뚱이에 다닥다닥 달라붙어 몸을 거칠게 물어뜯기 시작했다.

놈은 괴로운 듯 몸부림치며 더욱 거세게 세현에게 섬광을 내뿜었다.

‘이러면 더 과감해질 수 있지.’

세현은 이번에는 그 섬광 몸으로 받아 내며 양팔을 크게 들어 올린 후, 성령개방을 사용해 엑스칼리버에 금빛 섬광을 응축시켰다.

순간 HP가 크게 줄어들었지만, 이내 ‘탐식 구더기’들이 놈의 몸뚱이를 먹어 치운 효과 덕분에 HP가 다시 차올랐다.

놈은 공격이 먹히지 않음에 약이 바짝 올랐는지, 더욱 입을 크게 벌리고 거세게 섬광을 퍼부었다.

“너, 그럴 때가 아닌데.”

세현이 씨익 웃으며, 금빛 에너지가 한껏 응축된 엑스칼리버를 내리쳤다.

콰지지지지직-!

마치 두부가 잘리듯 열 개의 거대한 해골이 으깨졌다.

놈의 HP는 순식간에 줄어들었고, 힘을 잃은 몸뚱이가 지상으로 추락해 내쳐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탐식 구더기들은 놈의 몸뚱이를 자비 없이 계속 물어뜯었다.

‘마무리는 구더기들한테 맡기고….’

세현은 곧장 다른 마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가장 강한 놈을 제거했기에 마수들은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불과 약 15여 분 후, 50여 마리에 달하던 마수들은 모두 목숨을 잃고 고깃덩이가 되어 바닥에 너부러지고 말았다.

세현은 채집의 단검으로 재료를 남김없이 쪽쪽 빨아먹고, 아이템까지 몽땅 챙겼다.

특기할 만한 점은, 놈들의 몸속에서 아까와 같은 ‘마법의 털’이라는 것들이 다량으로 드랍됐다는 것이었다.

‘역시, 이걸 이용해서 마수들을 조종하는 모양이군.’

세현이 잠시 획득한 아이템들을 확인하고 있는 사이, 가까이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감사합니다! 의협들 덕분에 성을 지켜 낼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척 보기에도 ‘장문인’이라는 느낌이 드는 노인이 양팔로 포권을 취하며 정중히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당신은……?”

“저는 헐륜파의 장문인인 ‘혈룡’이라 합니다.”

상태창을 띄워 그의 스테이터스를 자세히 확인했다.

클래스 등급은 SS급, 레벨은 300에 다다랐고 스킬 대부분이 자신의 혈액을 무기처럼 다루는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수준이 확 올라갔는데.’

세현은 지금부터가 아파트의 본게임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몬스터도, 거주자의 수준도, 이전 시즌들에 비해 확실히 올라간 것이 초반부터 확실히 체감됐기 때문이었다.

“저 마수 놈들의 정체가 뭔지 압니까? 몸에서 이런 게 나왔습니다.”

세현은 혈룡에게 자신이 주운 마법의 털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는 마법의 털들을 만져 보더니 놀란 얼굴을 해보이며 대꾸했다.

“엄청난 기가 응축돼 있군요…. 이건 흡사 영약과 비슷한 물건인 듯싶소만."

“이 정도의 마수들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세력은 듣도 보도 한 적도 없소.”

“그럼 당신들이 굳이 이곳에서 방어진을 펼친 건 뭐 때문입니까?”

“그건…….”

헐륜파 장문인은 잠시 고민하는 듯 침음을 한참 흘리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곳에 아주 ‘중요한’ 물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물건?”

“여기서 말씀드리긴 그러니 잠시 따라오시지요. 이건 직접 눈으로 보셔야 설명이 될 겁니다.”

세현과 길드원들은 장문인을 따라 혈륜성의 안쪽 깊은 곳으로 따라 들어갔다.

몇 개의 비밀스러운 문을 지나 도착한 그곳은 거대한 창고였다.

갖은 금은보화와 병장기, 도자기 따위가 잔뜩 놓인 창고.

혈룡은 그곳에서도 가장 깊은 곳으로 세현 일행을 인도했다.

“마수들은 이걸 노리고 온 듯합니다만…….”

“엥? 이게 뭡니까?”

세현이 이렇게 대꾸한 것은, 그 자리에 있는 것이 그저 주먹 크기의 돌멩이 하나뿐이기 때문이었다.

“혼돈의 돌입니다. 먼 옛날, 불길한 존재의 힘의 원천이라고 알려져 있지요. 그 당시 혼돈을 퇴치한 중원 무림을 이끌던 10개 세력이 나눠 가졌던 것이라 알고 있습니다.”

“혼돈?”

세현의 질문에 혈룡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도 그 ‘혼돈’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합니다만, 세계를 ‘멸망’의 위기에 빠뜨렸던 존재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상태창을 띄워도 간단한 설명 외에는 별다른 정보를 획득할 수 없었다.

‘어찌됐든, 이 돌덩이들이 이번 시즌의 핵심 요소라 그거군.’

세현은 혈룡을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이 돌을 제게 넘기실 생각은 없습니까?”

“흐음……. 그건 아무래도 좀.”

“이곳에 돌이 있다면 저 마수들이 계속 공격해 올 텐데요.”

혈룡은 곤란한 얼굴이었다.

대대로 보관해 오던 보물을 처음 보는 더벅머리 남자가 대뜸 넘기라 하니 화를 내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일지도 모른다.

“귀공은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걸 그대에게 드리기엔 그래도 서로 간의 신뢰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신뢰를 쌓아야겠군요. 어떤 방법이 있습니까?”

세현이 거두절미 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혈룡은 흠칫 놀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의협다운 기개군요! 좋습니다, 그럼 제안을 드리지요."

“말하세요.”

“제 슬하에 딸아이와 혼인을 맺어 주시지요. 의협께서 저의 가족으로 들어와 주신다면 친히 혼돈의 돌을 내어 드리리다.”

“잉? 혼인요?”

“그렇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세현은 자신이 무협의 세계에 왔다는 것을 똑똑히 자각했다.

아마도 이 ‘혈룡’이라는 자는, 세현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을 목격했고 그걸 자신의 손에 넣기 위해 딸을 이용하려는 듯했다.

아주 고전적인 클리셰였다.

“아, 아버님.”

그때, 혈륜파의 옷을 입은 무인들 중 여자 검객 하나가 흠칫 놀라 입을 열었다.

모찌처럼 흰 얼굴에 앵두같은 입술을 가진 귀여운 중국 미인상의 여성이었다.

조금 전 마물들과의 전투에서도 꽤 화려한 무공을 펼치며 활약했기에 기억해 두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이 아이가 제 딸인 혈소아라고 하는 아이입니다.”

혈룡의 말에 세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딸의 의사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그녀를 물건처럼 제멋대로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 ‘관리자’나 ‘두 의지’를 떠올리게 하는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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