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164화 (164/180)

# 164

164화.

강시 (1)

60층이 클리어되고, 그동안 쌓여 왔던 허세현의 전투 영상이 동시에 업데이트됐다.

[‘브레이브킹’ 허세현 ‘51층 보스’ 1:1전투 영상]

[‘브레이크킹’ 허세현 ‘54층 보스’ 1:1전투 영상]

[‘서큐버스 군단’ ‘60층 보스’ 미미크리 단체 전투 영상!]

신지영이 밤낮을 불태워 가며 불과 일주일 만에 편집해 업데이트한 10개의 영상.

사람들은 거의 4~5개월 만에 보는 허세현의 소식이기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조회수와 언론의 집중도는 모두 이쪽으로 쏠려 버렸고, 다른 입주자들은 이에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서큐버스 군단, 특히 허세현 저놈은 그냥 종족이 다른 놈이야.”

“사실상 서큐버스 군단은 번외로 쳐야 되고, 이건 나머지 길드들끼리 2등 싸움하는 판이 됐군.”

입주자들과 일반 대중은 이제 공공연하게 자각하게 됐다.

공산연맹이니 팔콘 유니온이니 하는 대형 길드들이 겉보기에만 그럴싸하지, 서큐버스 군단과는 수준 자체가 몇 단계나 차이가 있다는 걸 말이다.

특히 허세현의 경우는 솔로 플레이로 각 층의 메인 보스들을 9명이나 잡아내는 모습을 보여 줬는데, 이는 여태 있었던 아파트의 상식을 완전히 깨 버리는 짓이었다.

“이대로 서큐버스 군단이 성장하게 둘 수는 없습니다!”

“다른 입주자들은 왜 저렇게 못하는 겁니까?”

하지만 이건 단순히 서큐버스 군단이 강해졌다고 해서 좋아할 일만은 아니었다.

상위 랭크 입주자들, 각 정부, 그리고 한성 그룹 같은 거대 재벌들까지… 그들은 살아 있는 인간 병기나 다름없는 존재이자 통제가 불가능한 허세현과 서큐버스 군단에게 두려움과 거부감을 동시에 느꼈다.

이미 물리적인 힘으로 그들을 견제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기득권인 이들에겐 아직 여론전을 벌일 수 있는 돈과 정치력이라는 힘이 남아 있다.

‘100층까지 쭉 달리려면 여기서 기반을 단단하게 다져 놓아야 한다.’

허세현은 이런 상황을 벌어질 것을 이미 사전에 예견하고 대비책 또한 옛날부터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 놓은 상태였다.

길드 건물, 회의실에 혼자 앉아 뉴스 기사와 커뮤니티를 한참 뒤적이던 세현은 뭔가를 결심했다는 듯 벌떡 일어나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윤병종, 잘 지내냐? 내가 너한테 제안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그런데 시간 괜찮으면 우리 길드 건물로 좀 찾아와 주라.”

가장 첫 번째 스텝은 대학교 동창이자 D급 입주자인 윤병종을 만나는 것.

얼핏 보기에는 별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이것은 세현의 이번 계획에서 가장 핵심적인 움직이었다.

“어 세현아, 오랜만이다.”

채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윤병종이 서큐버스 군단 건물 앞으로 찾아왔다.

덩치는 산만 한 것이 잔뜩 얼어붙어 해외여행이라도 온 듯 주변을 신기한 눈으로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세현은 자연스럽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자, 회의실로 올라가자.”

두 사람은 아무도 없는 빈 회의실로 들어가 테이블에 앉았다.

세현은 구석에 놓인 커피 머신에서 따끈한 아메리카노를 뽑아 건넨 후, 천천히 얘기를 시작했다.

“너를 여기 부른 건 말이야, 내가 이번에 프로젝트를 하나 시작하려고 하는데 네가 그걸 좀 맡아 줬으면 해서 불렀어.”

“프, 프로젝트? 어떤 내용인데?”

난데없이 떨어진 큰 떡밥에 윤병종이 얼어붙었고, 세현은 천천히 자신이 구상한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윤병종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세현의 말을 경청했다.

“이거 좋은 계획인 것 같긴 한데. 내가 이런 중요한 일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이 일을 너 아니면 누가 하냐. 여기에 예산은 5천억 정도 투자할 거야, 철저히 내가 사비로 마련할 거니까 탈날 걱정은 안 해도 돼.”

“5, 5천억?! 너 그런 돈을 막 써도 되는 거야?”

세현의 과감한 발언에 윤병종은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5천억,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 규모의 돈을 자신이 관리해야 한다 생각하니 갑자기 부담감이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뭐 이제 돈은 나한테 큰 의미가 없으니까.”

이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50층을 넘어간 이후, 세현이 획득한 장비, 재료 아이템은 마켓에 내놓으면 부르는 게 값이었다.

이미 통장에는 예비금으로 모아 놓은 수천억의 돈이 쌓여 있었고, 어차피 마켓에서 엘릭서나 포션 같은 소모품을 제외하면 더 좋은 아이템을 살 수도 없는 상황이기에 돈이 딱히 큰 의미를 가지지도 못했다.

지금의 세현에게 있어 돈은,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 아닌 아파트 외부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힘’ 그 자체로 작용했다.

그리고 세현은 그 힘의 일부를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을 도왔던 윤병종에게 나눠줄 생각이었다.

“이미 준비는 다 해 놨다. 영상도 우리 길드 내에서 전문가가 만들어서 뿌릴 거고, 대대적으로 마케팅도 들어갈 거야. 네가 계약서에 도장만 찍으면 된다.”

얘기를 마친 후, 세현은 미리 준비해 놓은 계약서를 테이블 앞으로 내밀었다.

윤병종은 떨리는 손으로 계약서를 붙잡고 천천히 그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계약 내용이 말도 안 된다.

말도 안 되게 좋은 내용이기에 지금 보고 있는 이 계약서에서 도리어 현실감이 느껴지지가 않았다.

이 계약서의 내용은 간단했다.

<낮은 등급의 입주자들이 아파트에서 원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조직을 만든다.>

<이 협회에 들어가는 자금은 ‘허세현’ 개인이 5천억을 투자하며, 이후 추가 자금이 필요할 경우 재투자를 한다.>

<이 협회 운영은 입주자 ‘윤병종’이 맡게 되며, 윤병종은 허세현과의 계약에 따라 일정한 금액의 급여를 매달 지급받는다.>

“세현아, 이거 너무… 너무 좋은 제안인데. 하나만 좀 물어보자.”

“말해.”

“넌 이 협회를 왜 만들려고 하는 거냐? 그리고 왜 이 협회를 나한테 맡기려는 거야?”

윤병종의 질문에 세현은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다 말을 이었다.

“낮은 등급이라고 별 볼 일 없다고 무시하고, 깔보고, 지들 멋대로 하는 새끼들이 아니꼽거든. 내가 빨갱이 기질이 좀 있나 봐.”

최은철, 팔콘 길드, 다른 상위 길드들과 모두의 운명을 손에서 쥐락펴락하는 관리인들과 두 의지까지….

힘과 권력으로 자신보다 약한 존재들을 제멋대로 휘두르는 군상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세현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그들에게 제대로 크게 한 방을 먹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리고 낮은 등급 입주자들의 마음은 네가 제일 잘 알 것 같아서 말이야. 내가 직접 나서기엔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고.”

세현은 과거 윤병종이 자신의 입주자 등급을 듣고, 흔쾌히 수백만 원어치의 초보자용 아이템을 건네줬던 것을 똑똑히 기억한다.

자신도 겨우 입에 풀칠하는 D급 입주자인 와중에 그런 선행을 베풀었다는 건, 그가 어떤 인물인지 충분히 말해 주고 있었다.

“…그래, 네 뜻이 그렇단 말이지.”

병종은 잠시 고민하는 듯 침음을 흘리다가 볼펜을 붙잡고 세현과 눈을 똑똑히 마주한 채 다시 말을 이었다.

“네 제안 받아들일게. 그리고 열심히 해서, 꼭 네가 생각한 조직이 될 수 있도록 만들게.”

그는 볼펜으로 서명란에 자신의 이름을 천천히 또박또박 새겨 넣었다.

† † †

60층을 클리어한 지 꼭 일주일 되는 날.

윤병종과 계약을 마친 후, 세현은 모든 일을 병종과 신지영에게 일임하고 길드원들과 함께 시즌7을 시작하게 됐다.

“오…… 이번 시즌은 분위기가 좀 남다른데?”

승강의 방을 통해 70층에 도착하자 이색적인 풍경이 모두를 기다렸다.

소나무가 빼곡히 들이찬 기암절벽과 높은 산, 그리고 중국의 정취가 느껴지는 기와지붕의 건물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세현이 풍경을 잠시 즐기다 앞으로 몇 걸음을 내딛자, 마스터키의 아나운서 음성이 시즌의 시작을 알려 왔다.

[시즌7, 9파 1방을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9파 1방, 중원 무림에 위세를 떨치는 9개의 문파와 개방을 뜻하는 단어.

세현도 소싯적에 무협 소설을 읽어 본 적이 있기에 대강 이번 시즌의 콘셉트가 중국의 무협 세계를 베이스로 한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무공이니 기공이니 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이번 시즌에서 얻을 수 있는 힘의 성질을 대강 유추하며, 길드원들과 함께 길을 따라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4~5분쯤을 달렸을 때, 저 멀리 불타는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척 보기에도 거의 성 하나 급의 거대한 도시였는데, 그 안에서 폭음과 비명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분명히 뭔가의 전쟁이나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리라.

“길드장, 빨리 가요.”

“오케이.”

세현은 사카린을 닦달해 더 빨리 성으로 접근했다.

외곽에 도착하자 거대한 나무문은 이미 에D츄도 쉽게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박살이 나 있었고, 그 사이로 낡은 도포를 두른 평범한 인상의 민중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쥐떼처럼 빠져나오고 있었다.

세현은 그렇게 뛰어나오는 사람 중 한 명을 붙잡고 말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는 거지?”

“이, 이거 놓으슈! 지금 저 안은 지옥이야! 당신도 죽고 싶지 않으면 도망쳐!”

그는 세현의 손을 뿌리치며 혼비백산한 얼굴로 안으로 내달렸다.

“흠…….”

세현은 별다른 소득 없이 부서진 문의 틈 사이로 다가갔다.

그러자 눈앞에 언제나와 같이 팝업창이 출력됐다.

[#.메인 퀘스트 / 중원에 재앙을 부르는 돌]

- 이곳 ‘혈륜성’에는 중원에 재앙을 불러온다는 보물이 감춰져 있다.

정체불명의 마수들이 이것을 찾기 위해 공격해 왔고 이곳을 다스리는 거대문파 혈륜파가 마수들을 상대로 방어를 하고 있으나,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다.

클리어 조건: ???

적정 레벨: 290

적정 인원: 50

[수락하기]

‘퀘스트 내용이 뭐 이래?’

세현은 별 거부감 없이 수락하기 버튼을 눌러 팝업을 제거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히이이이익!”

나무문의 부서진 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저 앞에서 사람들이 뭔가에 몸이 찢겨 죽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양팔을 앞으로 내뻗고, 핏기가 없는 창백한 피부에 온몸에 부적을 덕지덕지 붙이고 있는 근육질의 괴인이었다.

“저건……”

그 즉시 상태창을 띄워 확인했다.

[#. 일반 몬스터 / 혈강시 ]

- 영환술사의 비전요술로 죽음에서 되살아난 마수.

보통의 인간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가졌으며, 이를 조종하는 도사를 제거하거나 사지를 산산조각 내야 비로써 그들을 죽음의 곁으로 보내 줄 수 있다.

레벨: 300

HP / MP: 65000 / 100

‘스텟으로 밀어붙이는 타입이군.’

설명창으로 봤을 땐 시즌6에서 상대했던 좀비들과 그닥 큰 차이가 없어 보이긴 했다. 세현은 일단 놈들의 실제 전투력이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앞으로 곧장 뛰어나갔다.

“캬아아앗!”

세현을 인식한 혈강시 대여섯 마리가 두 눈에서 붉은 빛을 번뜩이며 메뚜기처럼 뛰어올라 날아들었다.

그 속도가 이전에 상대했던 좀비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빨랐기에, 세현 또한 내심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냥 싸우면 제대로 한 방 먹겠는데.’

놈들의 공격이 몸에 닿기 직전, 세현은 두 눈을 똑바로 뜬 채 권능 ‘사선의 왕’을 발동시켜 그들의 움직임을 느리게 보았다.

그러곤 허리를 숙여 앞으로 미끄럽게 빠져나가며 엑스칼리버를 위로 후려쳤다.

콰드득-!

다시 인식의 속도가 가속하며, 엑스칼리버가 혈강시의 허리에 반쯤 파고들어 푸른 피가 내장과 함께 흩뿌려졌다.

“캬으으윽!”

놈은 그런 상태가 되어서도 몸을 비틀어 세현을 향해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러 댔다.

“젠장!”

놀란 세현이 엑스칼리버를 뽑아내며 오른 발로 놈의 정수리를 걷어차 떨어뜨렸다.

‘생각한 것보다도 골치 아픈 놈들이군.’

보통의 몬스터였다면 이것만으로도 이미 저세상에 가 있을 터였다.

하지만 혈강시는 허리가 반쯤 잘려 나간 상태에서도 아무런 고통도 없다는 듯 태연한 얼굴로 세현을 향해 재차 달려들었다.

“다 같이 썰어 버려!”

그때, 사카린이 외침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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