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
163화.
완벽한 쥐 (2)
잠시 후, 에D츄의 양손에 달린 방패가 빛을 내뿜으며 동시에 다른 형태로 변이했다.
하나는 검, 하나는 방패였다.
검은 화려한 칼자루로 장식되어 자루 끝에 수많은 보석이 달려 있는 고풍스러운 쯔바이핸더였으며, 방패는 거대한 십자가가 중앙에 박힌 타워 쉴드였다.
이는 아서왕 전설의 ‘완벽한 기사’ 갤러해드가 쓰던 이상한 띠의 검, 그리고 저주받은 방패였다.
두 무구 모두 아서왕이 쓰던 엑스칼리버에 버금가는 위력을 가진 막강한 물건으로, 에D츄가 갤러해드의 힘을 완전히 각성함으로써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오…… 이거 진심으로 상대해야겠는데?”
그걸 본 미미크리가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자신의 소환수 퀸에 손을 얹고 읊조리듯 말했다.
“작위 수여.”
미미크리는 순식간에 작위 수여로 자신의 소환수, 퀸의 힘을 흡수했다.
전신에 검은색과 흰색이 뒤섞인 우아한 실루엣의 갑옷이 덧씌워졌고, 엑스칼리버의 형태 또한 이에 맞게 변형됐다.
“좋아, 한판 붙어 보자 쥐새끼!!”
“츄오오오옷!”
에D츄와 미미크리가 앞으로 달려가며 서로의 검을 앞으로 내뻗었다.
까아앙-!
이상한 띠의 검은 예리한 각도로 미미크리의 틈을 치고 들어갔다.
물론 그 또한 허세현과 같은 권능 ‘사선의 왕’을 가지고 있기에 에D츄의 공격이 아무리 예리하게 들어와도 인식의 속도를 가속해 피해 냈다.
그리고 틈이 날 때마다 ‘구더기의 왕’을 사용해 허공으로 거대 구더기를 사방으로 뿜어내며 파상 공세를 펼쳤다.
“무슨 놈의 방어력이.”
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았다.
에D츄가 들고 있는 십자가의 방패가 넓은 구역에 빛으로 된 방어막을 펼쳐 대부분의 공격을 무효화시켰기 때문이었다. 어쩌다 방어막을 뚫고 생체기를 줬다 싶으면, 뒤에 있는 백설희가 치료 스킬을 발동시켜 이를 완전히 무효화시켰다.
“저년을 먼저 죽여야겠군.”
미미크리는 정면에서는 자신이 에D츄를 상대함과 동시에 구더기의 왕을 이용해 소환된 구더기들을 백설희 쪽으로 보냈다.
하지만 1차적으로 에D의 방벽에 막혀 소수의 구더기밖에 뒤쪽으로 가지 못했고, 그나마 빠져나간 개체들은 백설희를 지키고 있는 미노타우르스에게 으깨져 버렸다.
미미크리가 에D츄를 쓰러뜨릴 수도 없고, 그 반대로 에D츄가 미미크리를 쓰러뜨리지도 못하는 고착 상태가 계속됐다.
어느덧 10여 분이 지나고 에D츄의 ‘아바타르’와 미미크리의 ‘작위 수여’가 거의 동시에 해제되었다.
미미크리는 뭔가를 결심했다는 듯, 엑스칼리버를 단단히 고쳐 잡았다.
“재미는 있었다만, 슬슬 끝내야지.”
그러곤 붉은 빛을 내뿜어 공중을 크게 그어 다량의 구더기를 앞으로 계속 쏟아 냈다.
구더기들이 점점 쌓여 가며 그 숫자는 족히 수백을 넘기 시작했다.
“츄우우우우…….”
“긴장해, 에D츄.”
에D츄는 저것들이 동시에 덮쳐 올 것을 걱정해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며, 방어 태세를 더욱 견고히 했다.
백설희도, 미노타우르스의 얼굴에도 전신이 아릿해지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와라! 얼른 들어와랏츄!!”
이런 에D츄의 허세 가득한 외침에도 거대 구더기들은 앞에서 으르렁대기만 할 뿐, 한참을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3분이 지났을 무렵-.
뭔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것은 백설희였다.
“에D츄, 혹시 저 뒤에서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츄우웃?”
에D츄는 그제야 뭔가 잘못됐다는 듯 것을 자각하며 앞쪽의 구더기들을 하나둘씩 메치기 시작했다.
놈들의 반격이 매섭긴 했지만, 뒤쪽에서 백설희가 치료기를 퍼붓자 에D츄는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결국 수분이 더 걸려서 에D츄와 백설희는 거대 구더기들을 뚫고 반대편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오, 슬슬 눈치챘나 보네? 뭐 이미 늦었지만.”
그곳에는 양팔로 엑스칼리버를 단단히 붙잡고, 전신에서 노란 섬광을 뿜어 대고 있는 미미크리의 모습이 보였다.
놈은 거대 구더기들을 방패삼아 이곳에서 엑스칼리버의 스킬 ‘성령개방’의 힘을 응축시키고 있던 것이다.
저 거대한 에너지가 전방에 모두 쏟아진다면, 제아무리 각종 저항력과 미친 맷집으로 무장한 에D츄라 해도 무사하진 않을 듯싶었다.
“미노타우르스, 막아!”
백설희가 미노타우르스에게 명령을 내려 미미크리를 공격해 보려 했지만, 곁에 흩어져 있던 거대 구더기들이 다시 날아들어 전진을 막았다.
“늦었어.”
미미크리가 씨익 웃어 보이며 엑스칼리버를 크게 들어올렸다.
“등 뒤에 숨어라츄!”
“돌아와!”
백설희가 미노타우르스를 재빨리 돌아오게 한 후, 에D츄의 등 뒤로 숨었다.
에D츄는 비장한 얼굴로 양팔을 X자로 교차시켜 두 개의 방패를 전방으로 내뻗었다.
잠시 후, 전방에서 눈이 멀어 버릴 정도의 빛무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쿠와아아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에D츄의 몸을 노란 섬광이 훑고 지나갔다.
무지막지한 양의 HP가 쭉쭉 줄어드는 것이 실시간으로 보일 정도, 백설희는 등 뒤에 숨어 계속 마나포션을 들이켬과 동시에 힐링기를 모조리 때려 박았다.
“츄우우웃!”
그럼에도 에D츄의 털이 검게 타기 시작하며 점차 뒤로 밀려났다.
HP가 회복되는 속도보다 떨어지는 속도가 더 빨랐고, ‘성령개방’이 쏟아 내는 막강한 위력의 빛은 도무지 멈출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백설희는 자신의 목숨이 여기서 끝이 날지도 모른다고 직감했다.
“이걸로 끝이다, 쥐새끼들.”
그 너머, 엑스칼리버에를 전방으로 내밀고 있던 미미크리가 사악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아직 방출되지 않은 에너지는 7할이 넘게 남아 있었고, 이 기세로 간다면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기 전에 에D츄를 충분히 녹여 버릴 수 있다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끝이지.”
그때였다.
미미크리의 등 뒤에서 자신의 것과 똑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과 함께 고개와 눈동자를 최대한 옆으로 돌렸다.
자신과 같은 얼굴을 했지만 살색의 피부를 가진 인간이 이체를 띄며 지켜보고 있었다.
“어, 어떻게 네놈이 벌써 여기에!!”
이것이 미미크리가 뱉은 마지막 말이었다.
콰드드득-!
놈의 바로 등 뒤에 서 있던 허세현이 엑스칼리버를 옆으로 후려쳐, 놈의 목을 그대로 끊어 버렸다.
잘린 절단면에서 녹색 피가 줄줄 새어나오더니 놈의 몸뚱이는 그대로 힘을 잃고 털퍼덕 쓰러져 버렸다.
“츄우우?”
엑스칼리버가 내뿜는 미칠 듯한 섬광이 드디어 멎자, 그 너머에서 잔뜩 웅크리고 있던 에D츄의 모습이 보였다.
온몸이 검게 그을린데다가 어떤 부분은 파마라도 한 듯 털이 꼬불꼬불하게 휘어 있었다.
세현은 그 모습에 피식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잘 살아 있었냐, 쥐새끼.”
그러자 잔뜩 겁에 질린 에D츄의 눈에 투명한 액체가 크게 맺혔다.
녀석은 커다란 덩치로 쿵쿵쿵 뛰어와 앞발을 힘껏 뻗으며 세현에게 몸을 날렸다.
“쭈인니이이임!”
물론 세현은 그를 받아 주지 않고 몸을 옆으로 슬쩍 피해 버렸다.
쿠웅-!
당연하게도 에D츄는 볼품없이 바닥에 처박혔다.
“고마워요 세현 씨, 덕분에 또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았네요.”
그때 에D츄에게 가려 있던 백설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세현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덕분은 무슨, 여기서 시간만 끌어 달라고 한 게 애초에 작전이었잖아요.”
세현과 서큐버스 군단 길드가 세운 작전은 그닥 복잡하지 않았다.
그저 여러 갈래로 나뉜 통로에서 미미크리를 넷으로 분산시켜 하나씩 각개 격파하자는 것, 이는 미미크리 4명이 뭉쳐 다대다 상황이 펼쳐지면 도리어 전투가 어려워질 것을 예상해 벌인 짓이었다.
첫 번째는 허세현이, 두번째는 사카린과 세이메이가, 세 번째는 서큐버스 군단 길드원들이, 나머지 하나를 에D츄와 백설희가 맡기로 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것은 에D츄와 백설희였다.
다른 미미크리를 상대하는 구성원들보다 전력이 약하기에, 이들의 역할은 최대한 시간을 끌며 한 마리의 미미크리를 묶어 놓는 것이었다.
이렇게 시간을 끌면 그사이 다른 멤버가 미미크리를 빠르게 쓰러뜨리고 에D츄와 백설희를 도우러 오는 것이 이번 작전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이 작전대로 허세현이 타이밍 좋게 이곳에 돌아와 ‘성령개방’을 쓰느라 꼼짝 못하는 미미크리의 목을 간단히 따 버린 것이다.
[축하합니다! 서큐버스 군단이 60층 보스 ‘미미크리’를 제거했습니다!]
[시즌6을 최초로 클리어했습니다!]
[‘D바이러스의 정복자’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후우……. 지겨운 거, 드디어 클리어했다.”
세현은 지긋지긋하다는 듯, 한숨을 토해 내며 기지개를 켰다.
† † †
방 전체가 체스판처럼 검은색과 흰색의 사각형으로 모두 수놓아진, 마치 편집증 환자가 꾸며 놓은 듯한 기괴한 방.
이곳의 한쪽 벽면에는 수백여 개의 화면이 출력되고 있었다.
각자의 화면에는 아파트 안에서 벌어지는 중요한 사건 사고들을 쉴 새 없이 비춰 주고 있었다.
그 맞은편에 있는 흰색 테이블 앞에서 커플러는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마치 영화라도 관람하듯 스크린이 비추는 장면들을 눈으로 빠르게 훑어보고 있었다.
책상 위에 잔뜩 쌓인 프링X스와 빈 콜라 캔들이 그가 얼마나 여기에 오래 앉아 있었는지를 짐작케 했다.
“오호홍, 역시 권력은 좋군용! 권력이 짱이에용!”
이곳은 이른바 <관측소>라 불리는 장소로, 커플러가 두 의지에게 총지배인의 자리를 받은 후 가지게 된 장소였다.
스크린을 통해 아파트 대다수의 공간을 감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크로노스에게 빼앗은 힘인 ‘시간의 방’을 이용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커플러는 두 의지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말 그대로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되었다.
그가 유일하게 감시할 수 없는 곳이라고는 100층에 속하지 않는, 아파트 옥상에 위치한 ‘시드메이커’들의 연구실이 전부였다.
한창 즐겁게 스크린을 보고 있던 중, 그의 등 뒤에서 그림자 하나가 스윽 나타났다.
해골 팔의 미녀 ‘헬시안’이었다.
“커플러… 아니 총지배인. 관리인들이 허세현에게 지나칠 정도로 관심을 보이는 것 같은데. 방치해도 괜찮은 건가?”
그녀는 현재 커플러의 수족으로, 관리인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히트맨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물론 관리자의 신분을 숨기고 있던 ‘시작의 신전’의 수녀들 또한 그녀를 보좌해 함께 이 역할을 하고 있다.
“아아 괜찮아요 괜찮아요. 어차피 허세현 군은 이제 하급 관리자 따위에게 당할 수준이 아니거든요. 헬시안 님도 아시지 않나요? 알터가 장난질을 치려다가 도리어 먹혀 버렸잖아요?”
“그게 문제라는 거다. 일개 입주자 따위가 관리인의 권능을 흡수해도 되는 건가? 게다가 앞으로 그 힘을 노리는 관리인들은 점점 늘어날 거다. 지금이야 아파트의 인과율 때문에 눈치를 본다지만 알터 같은 놈들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보장도…….”
헬시안이 심각한 얼굴로 얘기를 이어 가자, 커플러가 손가락으로 그녀의 이마를 ‘딱’ 소리가 나도록 튕기며 씨익 웃어보였다.
“헬시안 님은 신경 쓰지 마세용. 도리어 그런 놈들이 허세현 군에게 먹혀 줘야 제 계획에 의미가 생기는 거라구용.”
“대체 그 계획이라는 게 뭔지 말해 줄 순 없는 건가?”
“오호호홍, 아직은 비밀이라구용. 흠, 그래도 헬시안 님은 믿을 만한 동료니깐……. 힌트라도 조금 드려 볼까용?”
커플러는 흰 책상 위에 올려진 프링X스 통에서 감자칩을 한 움큼 꺼내다가 입에 게걸스럽게 집어넣고, 쩝쩝 소리를 내며 이를 꿀꺽 넘겼다.
그러곤 이빨을 날카롭게 드러내며 천천히, 음흉하게 한 마디를 꺼냈다.
“두 의지를 죽이기 위해서는 허세현 군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거든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