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
162화.
완벽한 쥐 (1)
놈은 통로 안까지 따라 들어와 구더기의 왕을 사용해 전방으로 거대 구더기들 수십 마리를 날려 보냈다.
“술래잡기 해 보자고.”
그러자 세현은 다이달로스의 날개를 펼쳐, 바닥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헤르메스에 신발에 달린 토파즈가 스파크를 일으킨 덕에 순간 속도가 구더기들의 속도를 능가했다.
하지만 그 속도가 점차 줄어들고, 구더기들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가장 앞쪽에 있던 구더기가 아가리를 커다랗게 벌리고 세현의 몸뚱이를 물어뜯으려던 순간-.
“어이쿠.”
직전에 허세현이 몸을 빙글 돌려 엑스칼리버로 거대 구더기의 입을 갈라 버렸다.
직후, 성령개방으로 금빛 폭발이 일어나며 뒤따라오던 수십 마리의 구더기도 공중에서 분해되었다.
“도망치려면 도망치고, 말려면 말지 무슨 어설픈 짓을 벌이는 건지 모르겠네.”
미미크리가 어깨를 으쓱하며 터벅터벅 앞으로 걸어왔다.
이에 세현은 놈의 표정과 어깨를 으쓱하는 제스처를 흉내 내며 이에 답했다.
“어설픈 짓 아닌데?”
“아니면 무덤 자리라도 고른 건가?”
“맞아맞아, 무덤 자리지.”
세현은 손가락을 튕기며 ‘딱’ 소리를 내며 말을 이었다.
“네놈 새끼의 무덤.”
그 순간, 미미크리의 뒤로 수십여 개의 그림자가 후두둑 떨어져 착지했다.
“츄우우우우! 덤벼라 가짜 쭈인님!”
“오오, 허세현을 꼭 닮은 게 불알 한 번 까 버리고 싶게 생겼네?”
그곳에 서 있는 것은 서큐버스 군단 길드원들과 에D츄, 세이메이의 소환수들이었다.
그들은 수직 계단에서 허세현이 미미크리를 유인해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 후, 아래로 추락해 퇴로를 막아 버린 것이었다.
“젠장, 이런 머저리 같은 수에 당하다니.”
그제야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인지한 미미크리가 침음을 흘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바닥에서 검은색, 흰색 연기가 동시에 여러 개가 일어나며 퀸, 룩, 나이트, 비숍, 폰을 비롯한 15인의 소환수들이 나타났다.
“작위 수여!”
설상가상으로 미미크리는 퀸에 작위 수여를 사용했다.
놈의 몸 위에는 검은색과 흰색이 나무뿌리처럼 얽힌 갑옷이 덧씌워졌고, 엑스칼리버의 모습 또한 비대하게 변형되었다.
이는 현재 원탁의 기사로 길드원들에게 힘을 나눠준 세현에게는 불가능한 전투태세였다.
“더럽게 강해 보이네.”
하지만 세현은 긴장이 되기는커녕 강한 상대와 싸워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아드레날린이 전신에 돌았다.
게다가 뒤쪽에 있는 미미크리들이 언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통로 안으로 들어올지도 모르는 상황.
최대한 속전속결로 전투를 끝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설희 씨, 버프 저한테 몰빵해 줘요!”
“네!”
신호와 함께 설희가 노래를 불러 세현에게 갖은 버프를 발동시켰다.
순간 모든 능력치가 거의 1.5배까지 치솟으며, 세현은 전신에 터질 듯한 힘이 더해지는 것을 느꼈다.
“제대로 붙어 보자고!”
세현이 헤르메스의 신발로 땅을 박차며 총알처럼 놈에게 달려들었다.
까아아아앙-!
놈이 성령개방을 함과 동시에 엑스칼리버를 전방으로 내뻗었고, 순간 통로 전체가 노랗게 물들 정도의 빛이 뿜어졌다. 그 직후, 세현은 ‘사선의 왕’을 발동시켜 몸을 대각선으로 움직여 놈의 겨드랑이로 파고들었다.
물론 미미크리 또한 ‘사선의 왕’을 사용해 세현과 동일한 인식 세계 속으로 들어와 그 움직임을 쫓았다.
채앵-! 채앵-!
마치 서로의 움직임을 훤히 예측하고 싸우는 듯 한, 정교하게 합이 맞춰진 기괴한 싸움이 계속 이어졌다.
완전히 호각지세로 보이는 상황, 하지만 여기에는 명백히 변수가 존재했다.
미미크리의 스펙이 ‘작위 수여’로 인해 더 높은 상황이라는 것과, 세현이 레벨이 더 높기에 ‘사선의 왕’의 지속 시간이 미세하게 더 길다는 것이었다.
어느 한쪽의 우세를 점치기는 어렵지만, 이는 서서히 두 사람의 예지가 가득한 전투 속에서 작은 변수들을 서서히 누적시켜 갔다.
“소환수들 잡아!”
세현과 미미크리, 두 존재가 춤을 추듯 전투를 이어가는 사이 길드원들은 재빨리 미미크리의 소환수들에게 달려들었다.
물론 미미크리의 15마리의 소환수가 거의 준보스급 수준으로 강하긴 했지만, 길드원들 모두가 ‘원탁의 기사’로 힘을 증폭시켰기에 애초에 스펙에서 거의 배 이상의 차이가 났다.
거기다가 서큐버스 군단 쪽에는 ‘퀸’의 능력을 가진 사카린과 광역 버프를 줄 수 있는 백설희, 에D츄에 다양한 소환수를 부리는 세이메이까지 있다.
당연히 전투는 일방적으로 흘러갔고, 불과 수 분도 되지 않아 모든 소환수를 제거할 수 있었다.
“그아아악!”
그럴 즈음, 미미크리의 오른팔이 잘려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사선의 왕’의 레벨 때문에 인식을 가속하는 시간에서 미세한 차이가 나는 것이 계속 누적되며, 세현의 움직임이 어느 한 순간 미미크리에게 발생한 틈을 정확히 찌르고 들어간 탓이었다.
“다 때려 부어!”
세현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놈의 목을 붙잡아다 바닥에 내리쳤다.
그리고 혹시라도 ‘네크론’ 세트나 아발론으로 회복하는 것을 막기 위해 빠르게 사지를 절단시킨 후 놈의 목을 뎅겅 쳐 버렸다.
“이 재수 없는 새끼! 뒤져! 뒤져!! 아주 두 번 뒤져 버려!”
목이 잘린 미미크리가 침묵하자 근처에 있던 사카린이 앞으로 달려와 놈의 ‘중요한 부위’를 발꿈치로 퍽퍽 내리찍었다.
허세현은 그때마다 왠지 모르게 그곳이 아파 오는 느낌에 털이 바짝바짝 서는 것 같았다.
“길드장, 그거 꼭 밟아야 됩니까?”
“그럼! 나쁜 놈인데, 아주 쓰레기 같은 새끼인데 이렇게 밟아 줘야지!”
“그거 저한테 하는 얘기 아니죠?”
“에~이 설마 그렇겠냐. 그냥 이! 몬스! 터가! 쓰레기! 같다는! 얘기! 지!”
사카린은 계속 감정을 담아 박자에 맞춰 미미크리의 중요한 곳을 발로 으깨 버렸다.
잠시 후, 몸뚱이가 서서히 녹아내려 녹색 액체가 되고 나서야 화가 풀렸다는 듯 기지개를 켰다.
‘좋아, 한 놈 잡았다.’
세현은 작전의 첫 번째 페이즈를 성공시킨 것에 입꼬리를 올렸다.
아직 4마리나 남긴 했지만, 한 마리를 줄인 것 만으로도 난이도는 현격히 낮아진다.
“뭐야, 너 치사하게 친구들 데리고 왔냐?”
그러던 중, 등 뒤에서 세현과 같은 미미크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놈들은 이미 소환수들을 잔뜩 꺼내 놓고 살기등등한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상태였다.
세현은 그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대꾸했다.
“애초에 5:1이었잖아, 밸런스를 좀 맞춰 보려고 했지.”
“지랄.”
그러자 4명의 미미크리가 동시에 엑스칼리버를 들고, 끝에서 붉은 빛을 뿜으며 천천히 허공을 그었다.
그 타이밍에 맞춰 반대편에서 수백 마리에 달하는 거대 구더기들이 통로를 타고 무섭게 짓쳐들어왔다.
세현은 바닥을 검으로 그어 구더기들을 소환해 방어벽을 세웠다.
“피해!”
그 외침에 길드원들이 동시에 통로 반대편으로 내달렸다.
세현이 세운 구더기 방벽은 쿵쿵 울리는 충격음과 함께 뒤흔들리더니 채 10초도 버티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세이메이! 스켈레톤이랑 시키가미로 막아!"
이후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계속됐다.
등 뒤에서는 미미크리들의 갖은 공격이 쏟아졌고 세현은 세이메이의 하급 소환수들을 계속 버리는 방법으로 시간을 벌었다.
기껏해야 1~2초를 버는 수준이었지만, 최소한 거리가 좁혀지는 걸 막는다는 것에서 의미가 있었다.
잠시 후-.
역방향으로 한참을 달리던 길드원들의 앞에, 미미크리들이 있던 것과 마찬가지로 통로와 통로가 이어지는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다.
이곳에는 총 다섯 갈래의 길이 연결돼 있었고, 위에는 거대한 프로펠러가 돌아가며 외부의 공기를 빨아들였다.
“제대로… 한판 붙어 보자고!!”
세현은 엑스칼리버의 성령개방을 응축시킨 후, 노란 파동을 프로펠러의 중심축으로 쏴 올렸다.
콰앙-!
프로펠러가 산산 조각나며, 서큐버스 군단은 동시에 네 개의 통로로 나뉘어 뛰어들었다.
“제엔자아아앙! 흩어져서 따라가!”
뒤따라오던 미미크리들은 위에서 떨어지는 파편들을 떨쳐 냄과 동시에 각자의 소환수들과 함께 한 명씩 나뉘어 구멍으로 들어갔다.
“개수작 부려 봐야 소용없을 거다.”
그중 가장 오른쪽 통로로 따라 들어간 미미크리가 잔뜩 약이 오른 얼굴로 앞에 달리는 뭔가를 따라 달렸다.
한참을 달리던 그것은 막다른 통로에 다다라서 멈춰 섰다.
“츄츄츄츄! 성공했군요.”
그것은 천천히 몸을 돌려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코끼리만 한 크기에 한쪽 눈에는 거대한 안대를 쓰고, 몸에는 흰색의 두터운 갑옷을 끼고 있는 햄스터.
야수의 왕, D의 의지를 이은 햄스터 에D츄였다.
그 뒤에는 이제는 자신의 펫이 된 미노타우르스의 어깨에 올라탄 백설희가 함께 있었다.
에D츄는 자신의 팔에 달린 방패를 앞으로 내밀고 허공에 복싱을 하듯 주먹을 휙휙 휘두르며 미미크리를 도발하듯 말했다.
“후후 덤비라츄!”
“젠장, 꽝이군.”
미미크리는 자신이 쫓은 상대가 허세현이 아니라는 것에 실망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빨리 처리하고 쫓아가야겠어.”
그러곤 손가락을 딱 소리가 나게 튕기자, 15마리의 소환수들이 동시에 에D츄에게 달려들었다.
그사이 백설희는 모든 버프를 에D츄에게 집중시켜 발동했다.
“츄오오오!”
에D츄의 방패 위로 방벽이 생겨나며 소환수들을 가볍게 튕겨 냈다.
애초에 스테이지 보스인 에D츄다.
거기다 원탁의 기사로 최강의 기사라 불리던 ‘갤러해드’의 힘을 지닌 상태에서 백설희가 버프와 갖은 회복 기술로 커버하고 있는 이상, 일반 소환수들로 상대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에D츄 쵸크슬램!”
에D츄는 한술 더 떠서 이상한 기술명을 외치며 미미크리가 소환한 소환수들을 하나씩 바닥에 매치고 짓밟으며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미미크리는 그 모습을 흥미롭다는 듯 지켜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오? 기대한 것보다는 꽤 하는데?”
처음에는 단숨에 때려눕히고 다른 적을 찾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눈앞의 상대와 한판 붙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더욱 커졌다.
“에D츄 드랍킥!”
“에D츄 크로스라인!”
불과 10여 분이 지났을 무렵, 그 자리에는 남은 미미크리의 소환수는 퀸 하나뿐이었다.
그는 엑스칼리버를 단단히 쥐고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좋아, 한 번 놀아 보자고 쥐새끼.”
“츄우우…….”
에D츄는 올게 왔다는 듯, 다시 전투태세를 취하며 미미크리를 노려봤다.
“설희 님. 처음부터 가장 강하게 가겠다츄! 쭈인님과 거의 비슷한 능력을 가진 적이라면, 어설프게 싸워선 승산이 없다츄……!”
“좋아!”
원래의 전략대로라면 에D츄는 자신의 방어 능력과 설희의 폭발적인 힐링 능력으로 다른 곳의 싸움이 끝날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이 임무였다.
하지만 에D츄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투지를 내비쳤고, 백설희 또한 제대로 1인분의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에 한 번 싸움을 걸어 봐도 나쁘지 않다 판단한 것이었다.
설희는 자신의 원래 버프 기술들뿐 아니라 자신이 원탁의 기사로 가지게 된 ‘비비안’의 능력까지 모두 동원해 버프를 걸었다.
“호수의 가호, 마법을 막는 입김, 축복의 입김!”
순간 에D츄의 모든 스펙이 거의 2배가 넘도록 뻥튀기가 됨과 동시에 마법 저항력, 물리 저항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우오오오! 제 필살기를 보여 드리죠!”
에D츄가 똥이라도 마려운 듯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눈을 막고 있던 안대를 잡아 던졌다.
그러자 눈동자에서 신성한 빛이 뿜어지더니 전신에 그 기운이 퍼져 나갔다.
“완벽한 기사, 갤러해드!!!”
스킬의 시동어를 외쳤다.
에D츄의 지방질 가득한 몸뚱이가 근육이 울뚝불뚝하게 변이했다.
이는 세현과 떨어져 있는 동안 사냥을 하며 길드원 중 일부가 얻게 된 스킬 ‘아바타르’로, 자신의 몸에 내재된 원탁의 기사 본연의 힘을 이끌어 내는 일종의 변신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