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
161화.
미미크리(3)
“츄우우우우!”
세상 전체를 집어삼킬 듯한 폭발이 에D츄의 방패를 훑고 지나갔다.
다행히 에D츄의 방어 능력은 그 폭발을 아슬아슬하게 견뎌 냈고, 사카린을 포함한 길드원 모두 큰 대미지 없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크아아아아!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개년들아!”
하지만 사카린은 여전히 야수처럼 공격성을 드러내며, 길드원들에게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일단 사카린 언니부터 묶어.”
결국 부길드장인 메디아의 명령하에, 사카린을 특수한 마법 처리가 된 구속구로 포박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사카린은 괴로운 듯 발광했지만, 구속구의 능력이 MP를 빠르게 빨아들여 스킬을 발동시키는 것을 막았다.
“아아, 더럽게 아프네. 역시 길드장이야.”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폭발이 끝난 후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와중에 그 사이로 검은 그림자가 익숙한 음성을 뱉으며 나타났다.
“뭐, 뭐야 저건?”
“귀신인가?”
그 그림자의 정체는 온몸이 숯덩이가 되어 버린 허세현이었다.
그 숯덩이의 정체가 허세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던 것도, 머리의 붉은 왕관과 몸에 입은 거지같은 네크론 갑옷 덕이었다.
그는 손에 검 대신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진 칼집을 들고 있었는데, 이는 엑스칼리버의 검집인 ‘아발론’이었다.
잠시 후, 아발론은 녹색 아우라를 내뿜으며 숯덩이가 된 세현의 몸을 휘감았고 네크론 갑옷 또한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세현의 몸이 빠르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와, 사카린 길드장 실력 역시 어디 안 갔네.”
완벽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세현은 빙긋 웃으며 엑스칼리버를 뽑아 포박당한 사카린을 향해 다가갔다.
“아, 안 돼!”
길드원 몇 명이 이를 제지하려 앞장섰지만, 세현은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그녀들의 움직임을 피하거나 어깨로 밀쳐 내며 파고든 후 검을 내리쳤다.
썩둑-!
그러자 엑스칼리버의 검신이 사카린의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베어 냈다.
거의 허리춤까지 닿았던 그녀의 머리카락은 이제 겨우 어깨에 간신히 닿는 수준의 똑단발이 되어 버렸다.
그 직후였다.
“츠즈즈즈즈-!”
사카린의 머리카락 속에서 작은 돌멩이 크기의 괴생명체가 요상한 소리를 내며 기어 나왔다.
문어와 바퀴벌레를 뒤섞어 놓은 듯한 생김새에 등짝 한가운데는 커다란 눈동자가 달려 있었다. 놈은 빠르게 양옆에 달린 8개의 다리를 꿈틀거리며 자리를 빠져나가려 했다.
세현은 이를 놓치지 않고 앞으로 풀쩍 뛰어올랐다.
파직-!
발뒤꿈치에 놈의 눈동자가 찍혀 눌렸고, 세현은 불쾌한 표장과 함께 놈을 자근자근 밟아 짓이겼다.
‘이건 권능이군.’
본능이 이 사단을 벌인 것이 관리자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알려 줬다. 전후 상황을 생각했을 때, 아마 ‘알터’와 같이 힘을 탐내는 놈의 소행일 확률이 높았다.
“일단 급한 일부터 처리해야지.”
세현은 한숨을 푹 내쉬며,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카린에게 다가갔다.
“잠깐 피해 봐요.”
고갯짓을 하자, 사카린을 부축하고 있던 길드원들이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세현은 검집 아발론을 그녀의 가슴 위에 얹고, 그것을 발동시켰다.
녹색 아우라가 뿜어지며 사카린의 전신을 감싸고 돌았다.
잠시 후-.
“우으으으으……”
사카린이 천천히 신음하며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오랜만이에요 길드장.”
“허세현……”
그 앞에는 허세현이 싱긋 웃으며 손을 내밀고 있었다. 사카린의 눈썹 끝에 투명한 액체가 작게 몽글몽글 맺히기 시작했다.
† † †
소동이 일단락된 후, 세현은 자신이 60층에서 베이스캠프로 사용했던 장소로 길드원들을 초대했다.
좀비가 넘쳐 나는 도시에서 가장 높은 빌딩 옥상에 위치한 곳으로, 조악하긴 하지만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물품이 갖춰져 있었다.
“자, 많이들 먹어요.”
세현은 이곳에서 커다란 냄비에 담겨 있던 카레를 대충 데우더니 이걸 작은 일회용 그릇에 담아 길드원들에게 나눠 줬다.
“오오 생각보다 맛있는데?”
한바탕 소동을 겪은 뒤였기에, 길드원들은 세현이 나눠 준 카레를 제법 맛있게 먹었다. 이는 백설희의 카레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한 것이기에 맛이 없는 쪽이 도리어 더 이상하긴 했다.
“허세현, 근데 카레 재료는 어디서 난 거야?”
한창 카레를 퍼먹던 중, 이제는 정신이 멀쩡히 돌아온 사카린이 싱긋 웃으며 되물었다.
“카레는 오래 놓고 먹으려고 인벤토리에 챙겨 놓았던 거 썼고, 고기는 뭐 자체 조달했죠.”
“고기를 자체 조달해? 여기서 고기 구할 데가 어디 있다고.”
“없긴 왜 없습니까, 널리고 널린 게 고기구만.”
허세현은 싱긋 웃으며 엄지손가락으로 빌딩 아래에 무리 지어 있는 좀비 떼를 가리켰다.
“서, 설마?”
“이런 미친!”
“푸훕!”
“웨엑!”
그러자 길드원들이 카레를 뿜어낸 후, 헛구역질하거나 침을 퉤퉤 뱉어 댔다.
오직 에D츄만이 다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 모습을 본 허세현은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하하, 배고파서 한번 먹어 봤는데, 좀비 고기 먹는다고 딱히 바이러스 걸리고 그런 것도 없더라고요. 생각보다 맛도 괜찮고!!”
“아아악! 허세현 저 새끼 내가 오늘 진짜로 죽인다!”
도리어 흐뭇한 얼굴로 엄지손가락으로 따봉을 해 보이는 세현의 모습에 사카린이 분노하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참아요 참아!”
“워워워!”
길드원들은 이번에야말로 뭔 일이 날까 싶어 사카린을 재빨리 붙잡아 말렸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있고 나서야 모두가 진정이 됐고, 허세현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한참이나 설명을 듣고 나서야 가벼운 사과를 건넸다.
‘나도 슬슬 맛이 가는 모양이네.’
세현은 50층 이후, 끊임없이 싸우며 점차 인간성이 무뎌지는 것을 느꼈고.
좀비 고기를 먹는 것에 거부감이 없던 것 또한 그런 연속 선상에서 발생한 것이라 생각했다.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된, 기묘한 감각.
세현은 이 이질적인 감각에 아직은 딱히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기에, 이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으으…… 내가 나중에 허세현 저 새끼 불알 잘라다가 알탕 해 먹을 거야.”
이후 길드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자신들이 가진 간편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그리고 잠시간의 휴식을 가진 후, 길드원 전체 회의가 시작됐다.
간만에 허세현을 포함한, 전체 인원이 모인 상태에서 진행되는 회의였다.
“그러니까 네가 60층에서 기다리고 있던 건 혼자서 도~저히 클리어가 불가능한 보스가 있기 때문이라 그거지?”
“네, 뭐 그렇죠.”
시즌6의 최종 보스, 미미크리에 대한 설명을 모두 마치자 길드원들 모두 착잡한 표정이었다.
조금 전, 허세현과 사카린의 싸움을 봤던 길드원들이기에 허세현이 다섯 명인 것이나 다름없는 미미크리들의 위력을 대략적으로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책은 있어? 소환수까지 80명이나 되는 놈을 우리가 무슨 수로 이겨.”
“작전을 잘 짜는 수밖에요.”
“그래서 공략은 언제 시도할 건데?”
“되도록 빠르게요, 길드원들만 괜찮으면 당장 3~4시간 뒤에 해도 좋고요.”
“그렇게 급하게 할 필요 있나? 천천히 레벨 업 하면서……”
사카린의 제안에 세현은 고개를 빠르게 저으며 대꾸했다.
“뭐 평소라면 괜찮은데요, 이게 제가 60층에 도착한 지 벌써 70일 지나서 말이에요. 괜히 민들레 씨앗이 날려 보내면 여론만 나빠질 게 뻔하잖아요?”
세현의 말이 맞았다.
혹시라도 100일 이내에 60층을 공략하지 못하면, 그래서 민들레 씨앗이 날려 보내진다면, 여태까지의 흐름으로 생각했을 때 여론은 서큐버스 군단을 질타할 것이 뻔했다.
안 그래도 어떻게든 서큐버스 군단을 물어뜯고 싶은 한성 그룹이다.
이는 그들의 돈에 절여진 정부 관료, 언론에게 먹음직스러운 떡밥을 던져 주는 셈이나 다름없었다.
뭐 이제 와서 새삼 한성 그룹과 여론이 두려운 건 아니지만, 괜히 민들레 씨앗을 날아가게 해 민간에 피해를 끼치는 건 모두 피하고 싶었다.
“하아… 그래,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해야 허세현이지. 그래 네 잘난 작전이 뭔지부터 얘기해 봐.”
사카린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수긍하자, 세현이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 작전의 핵심은, 상대가 ‘허세현’이랑 똑같은 놈들이라는 데 있어요.”
“무슨 하나 마나 한 얘길 하고 있어……”
“끝까지 들어 봐요.”
세현은 자신이 그동안 구상해 놓은 작전을 천천히 늘어놓기 시작했다.
† † †
설산 정상 부근에 위치한 J.O.D의 연구실.
이 내부는 ‘D바이러스’연구 중 발생한 ‘미미크리’의 탈출 과정에서 죽은 연구원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그런 한가운데, 서큐버스 군단 전원이 함께 서 있었다.
그들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조금의 고민도 없이 지하 통로로 이어지는 수직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그럼 다들 여기서 기다려요.”
계단의 중간쯤에 다다랐을 때, 세현은 길드원들을 이 지점에서 대기시킨 후 홀로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곤 미미크리들이 있는, 통로와 통로가 연결되는 거대한 공간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5기의 미미크리가 세현과 소름 돋게 똑같은 모습을 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오, 또 왔네? 이제 슬슬 도망치는 거 지겹지 않나?”
“지겹긴 개뿔, 재미있어 죽겠다.”
세현은 자신과 똑같은 목소리와 말투로 비아냥을 던지는 미미크리들에게 중지를 펼쳐 보였다.
“죽고 싶으면 무슨 짓을 못해.”
미미크리들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동시에 소환수들을 꺼냈다.
“드럽게 치사하네. 나는 한 명인데 대체 소환수를 몇을 꺼내는 거냐. 1:1로 붙으면 별것도 아닌 것들이.”
세현은 이를 가는 시늉을 하며, 미미크리들을 자극하는 멘트를 던졌다.
“1:1로 붙으면 별거 아니라? 글쎄다,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그러자 미미크리 중 한 마리가 엑스칼리버를 전방으로 내밀며 앞으로 천천히 나왔다. 다른 미미크리들은 그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지켜볼 뿐,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예상대로 나오는군.’
세현은 앞서 보스룸을 들락날락 거리면서, 미미크리에게 1:1 신청을 했을 때 대체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을 확인했다.
세현은 이것이 대결에 목숨을 거는 자신의 성격이 미미크리들에게 반영됐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럼 1:1로 한 번 붙어 보자고, 허세현 나리.”
미미크리는 오른손을 뻗어 손을 까딱이며 도발을 해 왔다. 지극히 평소의 세현이 할 만한 행동이지만, 그런 모습을 본인의 눈으로 보니 괜히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음… 저 꼴은 내가 봐도 좀 재수 없긴 하네.’
세현은 한숨을 푹 내쉰 후, 엑스칼리버의 성령개방을 이용해 섬광을 전방으로 흩뿌렸다.
“좋아! 신나게 붙어 보자고!”
미미크리 또한 검을 휘둘러 섬광을 받아쳤다. 세현은 곧장 거대 구더기를 소환해 전방으로 날림과 동시에 반대 방향으로 치고 들어가 상대의 허리를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까앙-!
검이 놈의 허리에 닿기 직전, 스파크를 튀기며 위로 튕겨 나갔다.
‘젠장! 조금만 더 빨랐으면 한 놈 잡는 거였는데.’
그동안 레벨 업과 장비를 꾸준히 업그레이드해 온 덕분에 세현의 움직임은 현격한 정도는 아니어도 미미크리의 수준을 상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놈에겐 세현과 동일한 권능이 있기에, 아주 찰나의 순간 인식 속도를 올려 이를 어찌 피해 내는 모양새였다.
‘뭐, 밀어붙이는 수밖에.’
세현은 곧장 오른발로 놈의 겨드랑이 쪽을 걷어찼다. 이를 인식한다고 해도 피할 수 있는 각도가 아니었다.
게다가 움직임의 속도 자체와 권능의 수준 차이도 있기에 미미크리는 결국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빠악-!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놈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고, 세현은 그를 향해 엑스칼리버의 성령을 날려 댔다.
퍼엉-! 퍼엉-!
놈은 가까스로 그걸 피해 내며 뒤쪽의 벽면을 발판 삼아 멈추더니, 몸을 스프링처럼 튕겨 다시 세현 쪽으로 날아들며 공중에 붉은 실선을 그어 거대 구더기들을 흩뿌렸다.
“아 무섭네 무서워.”
이에 세현은 심드렁한 표정을 해 보이며, 구더기들을 베어 냄과 동시에 자신이 들어왔던 통로로 뛰어 올라갔다
“뭐야, 도망이라도 치는 거냐?”
이에 미미크리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되물었지만, 세현은 가소롭다는 듯 입꼬리를 살짝 추켜올리며 대꾸했다.
“도망은 무슨, 내가 완전히 처바르고 있잖아?”
세현은 여기까지만 딱 잘라 말한 후, 뒤로 돌아 반대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를 본 미미크리가 잔뜩 약이 오른 듯 외치며 뛰어올랐다.
“어딜 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