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159화 (159/180)

# 159

159화.

미미크리(1)

모두가 이렇게 아파트를 오르는 것에 집착하는 것은 당연히 허세현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지난 몇 개월간, 길드원들은 허세현을 만나기 위해 의기투합해서 메인 퀘스트의 공략을 시도했다.

당연히 자신들의 숫자가 많고 ‘원탁의 기사’의 힘으로 말도 안 되는 힘을 각성했기에, 혼자인 허세현 따위야 금방 따라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도저히 허세현이 혼자 치고 올라가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승부욕 하나 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서큐버스의 군단이기에, 그녀들은 이를 악물고 ‘허세현 타도’라는 다소 엉뚱한 목표를 내걸고 바득바득 아파트를 오르기 시작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같은 길드원들끼리 쉐도우 복싱을 하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이들에게는 아주 진지하고 심각한 일이었다.

심지어는 꿈에서 허세현이 자신을 놀리고 사라진다는 길드원들이 속출할 정도였다.

다소 장난스럽게 시작했던 ‘허세현 따라잡아 불알 걷어차기’ 운동은 이제는 악과 투지가 활활 불타오르는 상태가 됐다.

서큐버스의 군단이 본격적으로 공략에 집중하게 되자, 광고나 연예계 활동 등은 끊겼고.

그나마 유지하는 활동은 전투 도중에 촬영한 영상 등을 신지영의 손에 맡겨 업데이트하는 것이 전부였다.

“허세현 그놈 지금 58층이라고 했지? 우리가 두 달 내로 따라잡는다! 으아아!”

“으아아아!”

사카린은 마치 혁명 전사라도 된 양, 보스 몬스터의 정수리 위에 올라가 무기를 추켜들고 힘껏 소리쳤다.

그러자 이를 본 길드원들도 잔뜩 흥분해서 함께 외쳤다.

겉모습 멀쩡한 사람들이 부족 전쟁을 벌이러 가는 원시인 같은 모습을 하고 있자니 뭔가 우스웠지만, 다시 말하겠다. 본인들은 아주, 심각하게 진지한 상태였다.

“가즈아!”

사카린의 외침과 함께 길드원들이 다음 층으로 향하려던 와중이었다.

갑자기 허공에 익숙한 음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축하합니다!]

그걸 들은 순간, 사카린은 몸을 멈칫하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설마 아니겠지?”

하지만, 이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

[’허세현’ 님께서 58층을 최초로 클리어하셨습니다!]

“아아악, 허세현 이 개자식아! 좀 천천히 좀 올라가라고!!”

사카린은 분노에 가득 차 포효했다.

† † †

‘구더기의 왕’을 습득한 이후, 시즌6은 세현의 권능을 테스트하는 연습장으로 전락했다.

물론 시즌6의 난이도가 쉽거나 한 탓은 아니었다.

이곳의 보스들은 보통의 상태라면, 꽤 난이도가 있었을 수준의 몬스터들이다.

하지만 세현이 기존에 사용했던 전투 방식에 두 개의 권능이 더해지니, 이를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 가능한 수준에 다다른 것이었다.

세현 스스로도 본인의 힘이 일반 입주자의 수준을 넘어, 거의 초월적인 존재의 수준으로 올랐다 자각할 정도였다.

‘하급 관리자, 알터 정도는 해볼 만할지도 모르겠어.’

확신까지는 아니지만, 이제는 어지간한 관리자와는 그들이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한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즌6 메인 퀘스트 또한 무난하게 진행됐다. D바이러스를 퍼뜨린 ‘콜드렐라’에 대항하는 조직 ‘J.O.D’에게 각 보스를 쓰러뜨리며 얻은 DNA 샘플을 계속 보급했고, 그들은 부지런히 백신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59층에서 쓰러뜨린 보스 ‘네메시스’의 DNA 샘플을 마지막으로 60층에 있는 J.O.D의 비밀 기지에 전달하자, 연구원들은 백신 연구를 30일 내로 마치겠다고 자신만만하게 통보했다.

“30일이라…… 그사이에 60층은 충분히 클리어하지 않으려나.”

갑자기 생긴 시간에 세현은 60층의 메인 퀘스트를 찾으려 계속 움직였지만, 도통 메인 퀘스트의 실마리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그렇게 1주가 지나고 2주가 지나갈 무렵. 세현은 간단한 한 가지 사실에 다다를 수 있었다.

“결국 30일이 지나야 메인 퀘스트가 진행된다 그거군.”

백신 개발의 완료. 아마도 이것이 시즌6을 클리어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인 듯했다.

세현은 남은 16일의 시간 동안 계속해서 레벨 업과 권능 사용에 익숙해지는 데 주력했다.

현재 레벨 263, 경험치를 먹고 성장하는 엑스칼리버 또한 255레벨까지 올려놓았다.

‘갑옷도 슬슬 바꿔야겠군.’

세현은 여태 장착하고 있던 방어구 세트 ‘잊혀진 하수인 세트’를 사카린에게 전송한 후, 시즌6에서 모은 아이템과 마켓을 통해 최고급 재료들을 몇 개 수집해 헤파이토스에게 장비 제작을 의뢰했다.

예전 같았으면 시즌1 구간에 있는 마사무네에게 장비 제작을 의뢰했겠지만, 50층의 사건 이후로 세현은 감히 그녀의 얼굴을 바로 볼 면목이 없었기에 내린 선택이었다.

이후 헤파이토스는 대장장이 신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훌륭한 방어구 세트를 만들어 줬다.

“성능은 둘째치고, 생긴 게 영 취향은 아니구만.”

디자인보다는 효율을 중시하는 세현이 이런 반응을 보일 정도로, 헤파이토스가 건네준 갑옷의 디자인은 괴이했다.

시체와 뼈를 정교하게 깎아 내 만든 갑옷이었는데, 이걸 장착하니 입주자라기보다는 도살자나 마왕의 모습이 떠올랐다.

[#. 방어구 세트 / 네크론 세트 ]

- 죽은 자들의 기운이 가득 서려 있는 방어구 세트.

등급: 영웅(S)

방어력: 27티어 D

세트 효과:

- 무한 재생: 적에게 공격을 허가하지 않고 5초 이상 지날 시 초당 HP가 10%씩 회복.

- D바이러스: D바이러스의 영향으로 당신의 육체가 비약적으로 강해집니다.

▶HP 50% 향상, 공격력 20% 향상.

“이러다가 진짜 좀비가 돼 버리겠구만.”

갑옷을 입은 세현이 피식 웃었다.

안 그래도 HP를 빠르게 회복시키는 ‘아발론’과 적을 먹어 치워 HP를 회복시키는 ‘구더기의 왕’을 손에 넣었는데, 방어구 세트에 달린 세트 옵션까지 이런 쪽에 치중된 느낌이었다.

‘차라리 잘됐어. 어차피 관리자 놈들이랑 싸우려면 질긴 생명줄이 필요할 테니까.’

세현은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방어구 세트의 소켓에 HP 증폭 옵션이 달린 보석들을 모두 때려 박았다.

앞으로 관리자들과 싸움이 벌어질 때, 혹여라도 큰 기술에 한 방에 죽어 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어떻게든 한 방만 버텨 낸다면 아발론과 물약, 무한 재생 등으로 어떻게든 살아날 수 있다는 자신이 있기에 내린 선택이었다.

“좋아, 시즌6도 끝내러 가 보자고.”

모든 준비를 마친 후, 세현은 백신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인 60층에 위치한 ‘J.O.D’의 연구실로 향했다.

연구실은 안전상의 문제로 해발 600m가 넘는 설산 위에 지어졌는데, 저번에 여기를 방문했을 때 입장에 사용할 수 있는 ID카드를 미리 받아 놓은 상태였다.

세현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설산 위에 지어진 연구실의 정문에 ID카드를 가져다 댔다.

[띠딕-! 인증된 사용자입니다.]

“역시, 메인 퀘스트는 여기서 진행되는 거였구만.”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새하얀 벽면에 새빨갛게 피 칠갑이 된 연구실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 대부분이 무언가에 몸이 뜯겨 나가 죽어 있었는데, 시체의 상태를 보니 사건이 벌어진 지 그다지 오래된 것 같지 않았다.

“거, 거기 사람입니까?”

내부를 뒤지던 중, 책상 아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책상 앞쪽을 가리던 의자를 빼내고, 허리를 숙여 안쪽을 바라보자 갈색 머리를 한 40대 남성 연구원이 겁에 질린 얼굴로 세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배…… 백신 연구를 위해 잡아두었던 좀비들이 완성된 백신을 맞자 폭주를 일으켰습니다. 우리는 마, 말도 안 되는 괴물을 탄생시켰어요! 그놈이 밖에 풀려나면, 세계는 정말로 멸망할 겁니다!”

“그놈, 어디 있는데.”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연구소 지하로 내려가는 걸 똑똑히 봤습니다.”

“지하라….”

이 연구실은 ‘콜드렐라’의 눈을 피해 지어진 시설이다. 혹여라도 놈들이나 좀비들의 공격이 가해질 경우를 대비해 비상 지하 통로가 만들어져 있는데, 이곳에서 탄생한 괴물은 그곳으로 향한 모양이었다.

“흐음…. 놈에 대해서 아는 것 좀 얘기해 봐. 능력이나 생긴 거라든지 하는 거 말이야.”

“정확히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놈은 계속 모습을 바꿨으니까요. 다른 도미네이터들의 능력을 쓰기도 했고, 또 죽은 연구원들의 모습을 흉내 내기도 했습니다. 끔찍했어요.”

“모습을 바꾼다?”

생존자와 대화를 끝낸 후, 세현은 연구실의 지하 통로로 향하는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다른 메인 던전에 입장할 때와 마찬가지로 팝업창이 출력됐다.

[#. 메인 퀘스트 / 최강의 D, 도미네이터]

- J.O.D의 지하 대피로 안에 백신 개발 중 탄생한 최강의 도미네이터들이 있다. 놈들이 세상 밖으로 풀려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적정 인원: 없음

적정 레벨: 입주자 레벨과 동일.

#. 메인 퀘스트에 처음 입장하는 입주자에 따라 보스의 성향이 변화합니다.

[입장하기]

“보스의 성향이 변한다라?”

팝업을 눈으로 훑던 중, 세현은 마지막에 달린 문구에서 뭔가 마음이 찜찜해지는 것을 느꼈다.

“일단 가 보자고.”

일단 찜찜한 마음을 뒤로하고, 세현은 지하 탈출로로 향하는 거대한 수직 통로의 사다리를 단단히 붙잡고 천천히 내려갔다.

“읏챠.”

사다리가 끝나는 곳에 착지하자, 못해도 트럭 서너 대는 동시에 드나들 수 있을 것 같은 더 넓은 통로가 나왔다. 그 위로는 녹색 살덩이들이 벽면과 바닥에 잔뜩 눌어붙어 있었는데, 세현은 이것이 보스 몬스터의 흔적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떨어진 방향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던 중이었다.

퓨슛-!

녹색 살덩이가 갑자기 가시처럼 돋아나, 세현의 얼굴로 날아왔다.

순간 인식의 속도를 가속해 이마가 뚫리는 것을 면했지만, 세현의 뺨이 살짝 베여 상처가 났고 그 사이로 새빨간 피 한 방울이 바닥으로 뚝 떨어져 내렸다.

바닥에 깔린 살덩이가 그것을 받아먹듯 흡수하더니, 별안간 살덩이들이 꿀렁이기 시작했다.

“기분 더럽네.”

방어구 세트가 가진 ‘무한 재생’의 효과로 세현의 흉터가 순식간에 아물었지만, 세현은 불쾌함에 미간을 찌푸리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자 여러 개의 통로가 연결되어 있는 커다란 공간이 나왔다.

위로는 엄청난 크기의 프로펠러가 쉴 새 없이 회전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이를 통해 연구 시설의 공기를 공급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놈인가.

세현이 이 커다란 공간을 둘러보던 중 반대편 통로에서 녹색의 살덩이가 보였다. 그림자에 가려 정확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꼭 사람만 한 크기를 하고 있었다.

“안녕하신가, 입주자 양반? 이름이…… 허세현이라? 아주 우스운 이름이네.”

그때 녹색 살덩이가 서 있는 방향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와 세현을 놀라게 했다.

‘뭐야 이거.’

단지 사람의 목소리일 뿐인데 세현이 이렇게 놀라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너…… 정체가 뭐냐.”

통로 반대편에 서 있는 녹색 괴물이 자신의 모습을 닮았… 아니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등에는 다이달로스의 날개가 달렸고, 손에는 엑스칼리버까지 들려 있었다.

“내 정체? 그을쎄에- 내 정체가 뭘까?”

녹색의 허세현은 프로펠러가 있는 공간의 중심으로 나왔다. 그러더니 몸 전체가 꿈틀대며 순식간에 자신의 형체를 변화시켰다.

놈이 변화하는 대상에는 52층에서 59층까지 출현했던 도미네이터들과, 연구 시설에 있었던 연구원들의 모습이 모두 포함돼 있었다.

‘상대의 모습을 훔치는 건가……’

세현은 이를 빠득 갈며 놈의 상태 창을 출력시켰다.

[#. 보스 몬스터 / 미미크리]

- J.O.D 가 도미네이터들의 DNA 샘플로 백신을 연구하던 중 탄생한 괴생명체. 다른 도미네이터들의 힘을 모두 가졌을 뿐 아니라 다른 생명의 DNA를 흡수해 복제하는 능력을 갖췄다.

현재 복제 중인 대상: ‘허세현’

등급: 등급 외 존재

HP / MP: 47500 / 27500

“최악의 상대를 만났구만.”

상대의 스테이터스가 자신과 동일한 것을 확인한 세현이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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