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
156화.
구더기의 왕(1)
그러자 터져 나간 두개골 사이로 작은 구더기들이 솟아나 머리를 덮더니 원래의 모습으로 말끔히 되돌렸다.
‘구더기를 이용해서 뭔가 하는 놈이다 그거군.’
일단 상대의 능력을 대략 유추하며 다음 전략을 생각했다. 현재는 길드원들이 없어 선택지가 현저히 적기에 최대한 단기 결전으로 몰고 갈 방법을 떠올려야 했다.
세현은 일단 시간을 벌기 위해 상대에게 말 한마디를 툭 던졌다.
“알터라고 했나, 관리자들은 아파트의 인과율인지 뭔지 하는 거에 관여하면 안 되는 거 아니었나?”
<오오, 물론 그렇지. 좋은 질문이야. 네 말대로 내가 입주자를 공격해 먹어 치운다면 명백히 인과율을 어기는 것이지. 하지만…… 이 공간은 그 어떤 존재의 눈도 닿지 않는 공간이거든.>
“눈이 안 닿아?”
<51층은 내가 직접 설계한 공간이고, 아주 극~히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일부의 공간만 미완성으로 남겨 뒀거든. 이곳은 아파트의 인과율이 적용되지 않는 공간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세현은 그제야 마스터키의 [커뮤니티] 기능이 작동되지 않았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저놈의 말이 맞다면 아마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 어떤 존재라 할지라도 알 수 없다는 뜻이리라.
‘이거 위험한데.’
또한, 관리자가 자신의 힘을 온전히 100% 발휘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됐다. 여태 싸웠던 시즌3의 ‘캐럴’이나 시즌5의 ‘크로노스’의 경우는 그들의 힘이 아파트의 인과율에 의해 제약되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꽤 어려운 전투가 될 것이 뻔했다.
‘아니, 차라리 잘됐어. 어차피 죽일 놈들이라면 지금 그 수준을 확실히 알아 두는 게 낫겠지.’
세현은 자신의 발 아래를 엑스칼리버의 성령개방을 이용해 힘껏 내리쳤다.
그러자 계단이 무너지며 곧장 알터가 있는 위치로 떨어져 내렸다. 그는 그런 세현의 공격이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지팡이를 가로로 그었고, 안에서 튀어나온 구더기들은 순식간에 거대한 돌덩이들을 파쇄하며 먼지를 일으켰다.
그 순간, 세현이 먼지를 뚫고 지척까지 다가왔다. 그러곤 엑스칼리버를 빠르게 대각선으로 그어 냈다.
태앵-!
알터가 뻗은 지팡이가 불꽃을 튕겨 내며 엑스칼리버의 검신을 받아 냈다. 세현은 양팔로 위에서 아래로 계속 찍어 누르려 안간힘을 썼고, 알터는 오른손만으로 조금의 미동도 없이 그걸 버텨 냈다.
<매번 놀랍군. 분명 모든 스펙은 내가 더 빠를 텐데 아주 정확한 위치로 들어와.>
“이제부터 놀랄 일이 더 많을 거다.”
세현이 씨익 입꼬리를 올리자 엑스칼리버의 검신이 노란빛을 발하며 전방으로 불꽃을 내뿜었다.
알터는 남은 왼손을 빠르게 휘둘러 가소롭다는 듯 불꽃을 옆으로 쳐 냈다.
퍼엉-!
돌 벽이 엑스칼리버의 섬광에 터지며 세현과 놈의 몸 위로 크고 작은 돌가루가 날아왔다.
“제기랄!”
세현은 잠시 인식의 시간이 느려진 사이, 이를 피하기 위해 옆으로 몸을 비틀어 빠져나갔다.
그런 중에도 알터의 눈동자는 이런 일련의 움직임을 완벽히 따라오고 있었다.
다음 수를 만들기 위해 그가 서 있는 계단을 검으로 다시 한 번 후려쳤다.
콰앙-!
그러자 계단이 무너지며 알터가 추락했다.
‘저 지팡이를 못 휘두르게 막으면서 싸운다.’
세현은 집요하게 아래로 따라 뛰어내리며 쿠자이의 발을 이용해 놈의 지팡이를 발로 힘껏 걷어찼다.
하지만 충돌 직전에 그 위로 구더기가 솟아나며 공격을 막아 냈다.
<오, 입주자치곤 영리하군. 내 보구를 먼저 무력화시키겠다 이건가?!>
알터는 다시 한 번 왼손을 휘둘러 세현의 뺨을 후려쳤다.
빠악-!
순간 세상이 흔들리며 세현의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잠시 후 굉음과 함께 몸뚱이가 어딘가에 처박히는 감각이 들었다.
‘관리자라는 놈들은 원래 이렇게 괴물인 건가.’
솔직히 말해 어이가 없었다.
현재 세현이 가진 힘은, 다른 입주자들은 감히 넘보지도 못할 압도적인 영역에 다다른 상태였다.
게다가 다른 관리자와의 전투도 이미 몇 차례 겪은 상태기에 하급 관리자쯤은 어느 정도 싸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겨우 따귀 한 방에 이 꼴이라니.’
저놈들이 진심으로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면 어떤 꼴이 될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세현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자 시야의 반대편에서 자신을 향해 내달리고 있는 수십 마리의 구더기와 그 끝에서 음흉히 미소 짓고 있는 알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 흐름을 천천히 인식하게 하는 이 능력이 아니었다면 이미 세현의 목숨은 저 구더기의 끔찍한 입에 뜯겨 흩어졌을 것이다.
‘끝까지 발악은 해 봐야지.’
세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가까이 다가온 구더기 몇 마리의 몸을 발판 삼아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대로 쿠자이의 발을 발동시켜 위로 뛰어오른 후, 다이달로스의 날개를 이용해 빠르게 날아올랐다.
‘이대로 탈출한다.’
알터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곳이 아파트의 인과율의 제약을 받지 않는 곳이라면, 이곳을 빠져나가면 그만이라고 판단했다.
현재로선 승산이 희박하기에 이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위로 10분쯤을 쏜살같이 날자, 계단의 끝에 커다란 원형의 문이 달려 있었다.
세현은 그것을 파괴하기 위해 곧장 성령개방으로 섬광을 연속으로 날려 보냈다.
퍼엉-! 퍼엉-!
맹렬한 폭발이 일어났지만, 어쩐 일인지 그 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 문은 당연히 열리지 않아, 이 공간은 내가 통제하는 장소니까 말이야.>
원통형 공간의 저 아래에서 알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놈을 쓰러뜨려야 한다 그건가, 최악이군.’
최악이었다.
따귀 한 대를 날리는 것만으로도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적을 상대로, 이런 좁은 공간에서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하는 상황.
세현에게는 이 상황을 타계할 법한 수가 거의 없었다.
‘지금 같은 경우라면…… 도박수를 던지는 수밖에.’
전투 속에서 떠올린 몇 가지의 망상 같은 작전. 성공 확률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달리 방법이 없기에 카드를 꺼내 들었다.
“마장기신 랜돌프.”
세현이 마장기신의 소환 시동어를 외치자, 원형 공간에 가득 소환진이 나타나 빙글빙글 회전했다.
그러자 소환진 아래로 랜돌프의 거대한 다리가 빠져나왔다.
콰과과곽-!
놈의 거대한 몸뚱이는 원형 공간의 벽을 긁으며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 거대한 몸뚱이에 꼼짝없이 깔리고 만다면 아무리 알터라 해도 무사하지 못할 터.
‘한 방에 간다.’
세현은 이를 악물고 근처의 계단에 양다리를 디디고 서서 인벤토리에 있는 엘릭서를 몇 병 들이켰다.
그러곤 마나포션을 쭉 꺼내 놓고 한 손으로는 성령개방을 사용해 엑스칼리버에 에너지를 응축시켰다.
마나가 50% 미만으로 떨어질 때 즈음 계속 포션을 들이켰고, 그렇게 응축된 에너지의 크기는 점차 커져 갔다.
그렇게 약 서너 개의 마나 포션을 들이켰을 즈음.
콰아아앙-!
랜돌프가 바닥에 충돌하며 엄청난 굉음과 함께 폭풍 같은 바람이 원형의 통로를 따라 위로 솟구쳤다.
함께 튀어 오른 돌가루들이 세현의 뺨을 날카롭게 베어 냈고, 아래에는 먼지가 자욱이 솟아올라 알터가 어떻게 됐는지 알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아직이다.’
그런 와중에도 세현은 멈추지 않고 마나포션을 먹으며 성령개방으로 에너지를 계속 중첩시켰다.
<마장기신을 추락시키다니! 재미있는 공격이야!>
잠시 후, 아래에서 검은 그림자가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정장이 군데군데 찢긴 알터였다.
그의 상태를 보아하니 랜돌프를 추락시킨 것이 어느 정도 유효한 타격을 입힌 듯 보였다.
<이제 끝이다!>
알터는 지팡이를 휘둘러 구더기를 소환했고, 수십 기의 구더기가 세현이 딛고 서 있는 천장을 향해 닥쳐 들었다.
‘지금이다.’
세현은 그 타이밍에 맞춰 계단에서 뛰어내렸다. 그러곤 앞으로 달려드는 구더기들을 최대한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피함과 동시에 놈들을 발판 삼아 알터를 향해 달려들었다.
거기에 쿠자이의 발과 다이달로스의 날개를 이용해 가속도를 더했다.
“죽어어어어!”
괴성과 함께 알터의 가슴을 향해 엑스칼리버가 쏟아졌다.
콰드득-!
놈의 가슴이 검에 꼬챙이처럼 꿰뚫렸고, 세현은 놈의 배 부근을 발판 삼아 그대로 함께 추락했다.
<이이이익! 이 무슨!>
놈이 지팡이를 휘두르려 했지만, 세현은 한 손으로 검의 손잡이를 붙잡고, 남은 한 손으로 놈의 지팡이를 붙잡아 구더기가 재차 소환되는 것을 막았다.
놈은 공중에서 완전히 균형이 무너진 상태였기에, 세현의 공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추락하길 수분, 저 멀리 바닥 부근에 끼어 있는 랜돌프가 보였다.
세현은 다시 양팔로 엑스칼리버를 단단히 붙잡은 후, 랜돌프의 연료가 저장되는 코어가 있는 부근을 정확히 노리는 상태로 추락했다.
까가가가강-!
순간 랜돌프의 가슴 쪽과 엑스칼리버가 충돌하며 불꽃이 튀었다.
세현은 접합부의 틈에 검의 끝자락을 깊게 찔러 넣어 알터를 그대로 고정시키고 작게 읊조렸다.
“관리자, 여기서 네 무덤이다.”
<이이이익! 무슨 헛소리를!!>
콰아아아아앙-!
그러자 엑스칼리버가 그동안 응축시켰던 성령개방의 힘을 한 번에 발사했다.
그 에너지는 알터의 몸을 관통한 후, 그대로 랜돌프의 연료가 담긴 코어로 쏟아져 들어갔다.
알터가 타오르며 비명을 내질렀고, 그의 몸뚱이는 계속해서 구더기를 생성해 몸을 재생시켰다.
“아아아아악!”
엄청난 화력에 세현 또한 몸뚱이가 검게 그을리며 격통이 쏟아졌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 냈다.
고기를 굽는 듯한 소리와 냄새가 정신을 아득하게 했다.
그렇게 모든 에너지를 전방으로 쏟아붓자, 관리인 알터는 구더기가 육체를 재생시키는 속도가 눈에 보일 정도로 현저히 느려진 상태였다.
<으흐흐, 이걸 어쩌나. 네 에너지를 몽땅 때려 박아도 나는 아직 죽질 않았는걸!>
알터는 이빨이 빠지고 온몸이 구이가 된 흉측한 모습임에도, 썩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꾸했다.
“걱정 마라, 이제 곧 죽을 테니까.”
세현은 침착하게 인벤토리에 남아 있는 잡스러운 검을 몇 개 꺼내 놈의 전신에 박아 몸둥이를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리고 모든 준비를 마친 후, 다이달로스의 날개를 펼쳐 다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어, 어딜 가는 거냐!>
세현은 등 뒤에 들려오는 알터의 애절한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위로 빠르게 올라갔다.
그리고 천장의 문 앞에 있는 계단에 바로 서서 아래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이글거리는 노란빛이 위로 올라오고 있었고, 잠시 후에는 랜돌프의 내비게이션 역할을 하는 아나운서의 음성이 들려왔다.
[마장기신 랜돌프, 완파됐습니다. 코어 동력부가 곧 폭발합니다. 사용자는 빠른 시간 내에 대피하십시오.]
[폭발 카운트다운. 10….]
[9…]
[8…]
[7…]
[6…]
[5…]
[4…]
[3…]
[2…]
[1….]
[마장기신 랜돌프, 폭발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아래에서 순간 눈이 멀어 버릴 정도의 빛이 쏟아졌다.
‘제발!’
세현은 재빨리 물리 저항력을 올려 주는 엘릭서 들이켜고는, 엑스칼리버의 검집인 아발론을 한 손으로 끌어안고, 나머지 한 손에는 최고급 생명력 포션을 들고 긴장한 얼굴로 전방을 주시했다.
콰아아아아앙-!
직후, 엄청난 빛의 소용돌이가 솟구치며 세현의 몸을 덮쳤다.
순식간에 HP가 줄어들었고, 세현은 목숨이 끊어지는 걸 막기 위해 한 병에 수백,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포션들을 입에 동시에 들이부었다.
아발론과 포션이 세현의 육체를 회복시키는 것과 동시에 몸이 찢겨 나가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제발! 제바아아알!’
몸이 갈가리 찢기는 격통과 함께 세현의 피부가 벗겨지고 살점이 타올랐다.
마치 오븐 속에 들어온 통닭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한 3~4초쯤을 겨우 버텼을까.
[관리자 알터, 사망했습니다. 이 구역의 잠금이 해제됩니다.]
등 뒤에서 아나운서의 음성이 들려오며 세현의 몸이 위로 튕겨져 나갔다.
그 직후, 세현의 시야가 흐려지며 의식이 완전히 끊겨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