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155화 (155/180)

# 155

155화.

타일런트

그것은 서서히 형체를 구체화하기 시작해 이윽고 하나의 생명체로 변이했다.

“역겹군.”

얼굴은 썩어 가는 코끼리를 닮았고, 상체와 하체는 여러 동물의 살점을 뭉쳐 사람의 형태를 구성하고 있었다.

거기다 피부에는 인간의 팔, 다리, 머리 등이 종기처럼 덕지덕지 달라붙어 끔찍한 광경을 연출했다.

“꾸어어어어어!”

놈이 별안간 포효하더니 코에서 검붉은 고체를 뱉어냈다.

그것은 마치 총알처럼 빠른 속도로 세현의 머리통을 향해 올곧게 날아왔다.

‘보인다.’

투사체가 10m 즈음 앞으로 다가온 시점, 의식이 가속하며 세상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세현은 엑스칼리버를 옆으로 돌려 마치 야구 배트를 휘두르듯 코끼리 괴수 ‘타일런트’를 향해 투사체를 쳐 냈다.

까앙-!

순간 불꽃이 튀며 투사체가 놈에게 되돌아갔고, 놈의 기다란 콧속에 그것이 깊숙이 처박혔다.

“꾸우우!”

그 직후, 놈의 코가 꿀렁이더니 그 안에서 붉은 기운이 일어나 폭발을 일으켰다.

기다란 코가 처참하게 뜯어지며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졌고, 놈이 비명을 내지르며 몸부림쳤다.

세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전방으로 내달렸다.

콰득-!

발광하던 놈의 오른 어깨에 엑스칼리버가 섬광을 내뿜으며 반쯤 파고들었다.

명색이 보스 몬스터인 터라 단번에 깔끔하게 베어지진 않는 모양, 하지만 세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퍼억-! 퍼억-! 퍼억-!

검을 들어 올린 후, 벌어진 살점 사이로 다시 한 번 내리치고 또 내리치고 또 내리쳤다.

그렇게 십여 번을 반복하자, 타일런트의 팔이 드디어 끊어지며 피를 뿜어냈다.

세현은 놈의 어깨를 발판 삼아 뒤로 뛰어올라 다시 거리를 벌렸다.

“끄르르윽….”

그러자 놈의 잘린 코와 팔의 단면에서 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채 10초도 걸리지 않아 완전히 재생했다.

그럴지라도 놈이 피를 흘린 만큼 HP가 쭉 빠져나갔기에 세현의 일격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들어와.”

세현은 엑스칼리버를 바닥에 내던지고 손을 까딱거리는 것으로 놈을 도발했다.

“꾸오오!”

그러자 타일런트는 화가 잔뜩 난 듯 포효하며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한 발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연구실 전체가 뒤흔들렸다.

놈은 지척까지 다가와 코와 함께 자신의 양팔을 세현에게 곧장 내리찍었다.

무게와 속도가 그대로 실린, 공격을 허하는 것만으로 전신이 짜부라져 버릴 강한 일격이었다.

하지만 세현은 그 직전에 놈의 품으로 파고들어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위로 뛰어올라 몸을 빙글 돌렸다.

빠악-!

그리고 쿠자이의 발을 이용해 놈의 커다란 턱에 강렬한 돌려차기 한 방을 처박았다.

그러자 쿠자이의 발에 박아 놓은 ‘최상급 토파즈’의 효과가 발동되며 놈의 턱 부근에 스파크가 튀었다.

“꾸어어!”

갑작스러운 충격에 놈이 비틀거리자 세현은 그대로 놈의 기다란 코를 붙잡아 그대로 어깨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걸 밧줄 삼아 놈의 목덜미에 칭칭 감아 잡아당긴 후, 이를 꽁꽁 묶어 버렸다.

타일런트는 괴로운 듯 캑캑 숨을 내뱉으며 세현을 잡으려 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때리기 시작했다.

“워워.”

세현은 어렵지 않게 놈의 어깨에서 뛰어내린 후, 바닥의 엑스칼리버를 주워 놈의 뒤편으로 돌아가 무릎 뒤를 베어 냈다.

놈은 신음을 내뱉으며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고, 세현은 놈의 등으로 올라가 목 뒤에 엑스칼리버를 양손으로 밀었다.

쿠득, 쿠드드득-!

검이 쑤욱 밀려들어가며 피가 왈칵 쏟아진다. 세현이 양팔에 마나를 흘려보내자 엑스칼리버의 검신이 금빛 섬광을 거세게 뿜으며 놈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엑스칼리버의 두 개의 소켓에 박힌 ‘헤파이토스의 루비’ 효과 덕분에 동시에 불길도 함께 치솟아 놈의 몸뚱이를 태웠다.

놈은 귀가 찢어질 듯 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발광했지만, HP가 모두 사라지는 데에는 채 20초도 걸리지 않았다.

[허세현 님이 ‘51층’을 최초로 클리어하셨습니다.]

[‘끔찍한 운명을 끝내준’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보상: 올스탯+2

[51층으로 향하는 ‘승강의 방’이 활성화됩니다.]

[51층 메인 던전의 난이도가 하락합니다.]

스테이지 클리어를 알리는 음성이 연속으로 들려왔다.

평소의 세현이었다면 엉덩이라도 흔들며 즐거워했을 터지만, 얼굴에는 조금의 웃음기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채집의 단검으로 놈의 몸뚱이에서 재료 아이템을 파밍하는 등 당장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재료 파밍이 끝난 후, 놈의 몸뚱이가 스르륵 자리에서 녹았고 그 자리에는 아이템과 골드가 드랍됐다.

‘이게 메인 퀘스트 아이템인가.’

세현은 아이템을 적당히 챙긴 후, 그 한가운데 놓인 유리관을 집었다.

관 내부에서 여러 개의 구체가 빙글빙글 돌고 있는 물건이었다.

[#.퀘스트 아이템 / 타일런트 MK-3 유전자샘플]

- 타일런트의 유전자 샘플이 담긴 시험관. D바이러스 치료와 백신 개발에 중요한 자원으로 사용될 것 같다.

‘이런 걸 여러 개 만들어서 치료제를 개발하면 된다 그거군.’

시즌6의 메인 퀘스트는 ‘콜드렐라’에 대항하는 조직인 ‘J.O.D(Jocker or die)’를 도와 D바이러스의 백신/치료제를 제작하는 것이다.

이러한 DNA 샘플을 모아 그들에게 가져가면 치료제를 개발해 줄 것이고, 이를 통해 바이러스의 위협으로부터 이 구역을 구해 내는 흐름일 것이다.

‘딱히 쓸 만한 건 없군.’

세현은 새로 주운 아이템들의 성능을 대강 파악한 후, 당장 쓸 수 있을 법한 아이템 몇 개만을 챙겨 모두 앱을 이용해 경매장에 올려 버렸다.

사실 현재 쓰는 장비보다 미세하게 성능이 좋은 것들도 있었으나, 기존 장비들이 시즌5에서 헤파이토스를 통해 최고급 보석들을 박아 강화를 시켜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성능 차이가 크지 않은 이상 그냥 진행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이었다.

‘다음 층으로 가자.’

정리가 끝난 후, 세현은 곧장 다음 층으로 가기 위해 반대편의 문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위로 높게 솟은 원통형이 공간이 나타났고, 외곽에는 나선형으로 계단이나 있었다.

위에서 아래로 빛이 쏟아지는 것이 묘하게 성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공간이었다.

세현은 이곳의 분위기가 특이하다고 생각해, 히든 퀘스트가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빛이 쏟아지는 부근을 탐색했다.

‘별건 없는 모양이군.’

하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기에 포기하고 이내 천천히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의 끝이 한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꽤 길었고, 마침 머리를 정리하고 싶었기에 세현은 한 발 한 발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길드에는 별일은 없으려나.’

그러던 중, 세현은 마스터키를 만지작거렸다. 간만에 [커뮤니티] 기능을 통해 아파트의 돌아가는 분위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응, 이거 왜 이래?”

하지만 어쩐 일인지 커뮤니티에 접속이 되질 않았다.

“뭐 당장 급한 일도 아니니까.”

[상태창]이나 [인벤토리]같은 기능들은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세현은 막연히 접속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계단을 가볍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이었다.

촤아아악-!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원형의 중심부로 수십 개의 그림자가 비스듬하게 세현을 향해 낙하했다.

너무 찰나의 순간이라 인식조차 어려울 정도였지만, 머리가 꿰뚫리기 직전 세현의 인식이 그것을 포착하며 순간 감각이 늘어지며 세상을 느리게 느껴지도록 했다.

‘벌레?’

세현의 눈앞에 있는 것은 거대한 구더기 형태의 괴물이었다. 그 크기가 하나만 해도 족히 1m는 되는데다가 앞부분에는 에어리언을 닮은 흉측한 입까지 달려 있었다. 아마 저 속도로 머리에 충돌한다면 저 날카롭고 흉측한 이빨이 세현의 목을 단번에 잡아 뜯어 버릴 기세였다.

‘50층이 아직 끝난 게 아닌가? 아니면 히든 퀘스트?’

세현은 재빨리 검을 휘둘러 이미 가까이 다가온 구더기를 베어 내며 계단으로 뛰어내렸다.

쿵-!

바닥에 착지함과 동시에 고개를 들자 머리 위로 또다시 수십여 마리의 구더기가 쏟아졌다.

‘제기랄. 붉은 뱀의 검이 있었으면….’

세현은 길이를 자유자재로 늘였다 줄일 수 있는 붉은 뱀의 검의 부재가 뼈아팠다.

소환수를 직접 끌고 다니지 않으면 그닥 메리트가 없었기에 이를 세이메이에게 넘겼기 때문이었다.

별수 없이 세현은 성령개방을 사용해 엑스칼리버의 힘을 전방으로 뿜어냈다.

위력은 확실했지만, 일순간 마나를 크게 소진하기에 남용하기 어려운 기술이었다.

콰앙-!

노란 빛이 위로 크게 폭발하며, 전방의 구더기들을 일순간에 불태워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오, 입주자 주제에 ‘탐식구더기’를 막아내? 역시 커플러가 주목할 수준의 입주자군, 솔직히 놀랐다.>

머리 위쪽에서 공간 전체에 중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쪽이냐.’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세현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엑스칼리버를 똑바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다이달로스의 날개를 펼친 후, 쿠자이의 발을 이용해 땅을 박찼다.

파직-!

순간 스파크가 일어나며 세현의 몸을 힘차게 위로 밀어냈다.

날개를 크게 흔들자 바람이 일어났다. 이 경쾌한 속도는 헤파이토스를 통해 다이달로스의 날개에 ‘에메랄드’를 장착한 덕분이었다.

에메랄드는 해당 아이템에 바람 속성을 부여해 속도를 강화할 수 있었고, 이것은 다이달로스의 날개에 딱 맞는 옵션이었다.

‘저놈이다.’

빠르게 상승하는 세현의 시야에 하나의 그림자가 점차 가까워졌다.

그는 검은색 정장을 입은 수인이었다.

얼굴은 사냥개 도베르만의 그것을 똑 닮았는데, 한쪽에는 고풍스러운 지팡이를 들고 머리에는 중절모를 푹 눌러쓴 것이 영국의 포쉬 계급을 연상시키는 듯한 차림이었다.

세현은 곧장 놈의 가슴을 향해 엑스칼리버를 조준한 후, 양팔을 힘차게 밀어냈다.

촤아악-!

그러자 천이 찢기는 소리와 함께 검은 그림자가 공중으로 흩어졌다.

<으음, 이상하군. 이 정도 힘을 입주자가 가졌다고? 아무리 SSS급이라 해도 이 시점에 이 정도 힘이라니……. 이건 흡사 관리자의 권능에 가까운 수준이군.>

그 직후, 이번에는 계단의 아래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단에 착지한 후, 고개를 떨궈 바라보자 그곳에는 도베르만 신사가 세현을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보며 떠들고 있었다.

‘저놈, 관리자다.’

지금 들은 몇 마디와 직감으로 세현은 놈이 관리자라는 것을 확신했다.

조금 전, 마스터키의 [커뮤니티] 기능이 먹통이 됐던 것도 분명 저놈과 관련이 있으리라.

<뭐, 한 번에 죽일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됐으니 내 소개나 하지. 내 이름은 ‘알터’. 시즌6의 하급 관리인이지, 그리고 자네를 여기서 먹어 버릴 생각이네.>

‘먹어 버린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했지만, 세현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

“계속 궁금했던 건데, 너희 관리자 놈들은 나한테 왜 이리 관심을 보이는 거냐?”

<그것까지 말해 줄 의무는 없어 보이는데 말이야.>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마, 강제로라도 불게 만들면 되니까.”

스스로의 이름을 ‘알터’라고 밝힌 관리인은 세현의 대꾸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오른손에 든 지팡이를 가로로 그었다.

그러자 공간이 찢어지며 그 안에서 조금 전 날아왔던 탐식구더기들이 빠져나와 그의 바로 앞에 둥둥 떠올랐다.

<아까는 조금 시시해하는 것 같았으니, 조금 변주를 줘 보도록 하지.>

그는 왼손을 위아래로 몇 번 움직인 후,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위에서 아래로 힘차게 휘둘렀다.

그러자 구더기들이 온 사방으로 흩어지더니 여러 각도에서 세현을 향해 날아들었다.

세현은 곧장 전방으로 달려들어 구더기들을 찢어 버리며 놈에게 접근했다.

지척까지 다가가자 놈은 지팡이를 휘둘러 세현에게 대응하려 했다.

하지만 그 직전, 세현은 쿠자이의 발로 각도를 틀어 다시 수직으로 상승했다.

그러자 뒤에 바짝 따라붙었던 탐식구더기 두 마리가 자신의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알터의 얼굴을 덮쳤다.

콰득-!

순간 놈의 머리 반쪽이 중절모와 함께 탐식구더기의 입으로 삼켜졌고, 뇌와 두개골이 훤히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너는 보통의 입주자가 아니었군.>

놈은 조금의 미동도 없이 위편 계단에 착지한 세현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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