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154화 (154/180)

# 154

154화.

실종

“아아악! 허세현 그 새끼, 대체 어디 갔냐고오오!”

“지, 진정하세요, 언니.”

동그란 잠자리 안경을 쓴 신지영이 울상으로 발을 버둥대는 사카린의 어깨를 주무르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조금 전 사카린의 말대로, 허세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마지막 발자취를 알고 있는 것은 백설희였는데, 그마저도 8층에 위치한 세현의 집에 남겨진 한 장의 편지가 전부였다.

[알아서 돌아오겠음, 찾지 말 것. - 허세현 ]

‘그 새끼…. 왜 나한테는 편지 안 남기고 백설희한테만 남기고 가는데!’

이후 사카린은 길드원들과 정보상들을 풀어 허세현의 존재를 찾았지만, 말 그대로 아무런 정보도 찾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언론이나 정부 기관에서 취재나 인터뷰 요청이 오거나, 광고, 홍보 제의가 와도 핵심 인물인 허세현이 없기에 ‘길드 내부 사정으로 진행할 수 없다.’라는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 혈압이야……. 이 인간 돌아오면 진짜 거기를 걷어차서 고자를 만들어 버리든가 해야지.”

“언니…… 저기요.”

사카린이 얼굴이 시뻘개져서 이마를 짚고 있던 와중, 신지영이 어깨를 조물거리며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유튜브 영상, 편집 다 했는데 이제 슬슬 올려도 될까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영상 편집은 이미 일주일 전에 다 해 놓은 상태였다.

문제는 이 영상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허세현이 실종된 상황이기에, 선뜻 업데이트하기가 조심스러운 상황이었다.

“에휴…….”

하지만 사카린도 이미 알고 있었다.

한동안 허세현을 찾는 게 어렵다는 것을 말이다.

게다가 신지영의 눈빛을 보고 있자니, 말은 안 하지만 자신이 편집한 영상을 얼른 선보이고 싶어 하는 게 뻔히 보였다.

‘슬슬 움직이긴 해야지.’

사카린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현재 길드는 허세현이 돌아올 때까지, 유튜브나 다른 대외 활동뿐 아니라 시즌6의 공략도 잠정적으로 중단한 상태였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지금의 상태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좋아, 영상 그냥 풀어 버려. 집 나간 인간 같은 거 알 게 뭐야.”

“에헤헤. 고마워요, 언니!”

사카린의 흔쾌한 수락에, 신지영은 세상이 입꼬리가 귀에 걸리도록 싱글벙글 웃으며 대꾸했다.

제 딴에는 애써 태연한 척해 본다고 하는 모양이지만, 도통 숨겨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던 중, 사카린이 신지영의 얼굴을 쳐다보다 한마디를 툭 던졌다.

“그건 그렇고 너, 귀에 그건 뭐냐? 반창고는 왜 했어?”

“아아 이거요. 아… 음…….”

시답지 않은 질문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지영은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았다는 듯 당황한 얼굴로 허둥댔다.

“채, 책상 모서리에 부딪혀서 상처가 났어요, 헤헷.”

“아이구 조심 좀 하지 그랬냐.”

“네네 그래야죠. 그럼 영상 업데이트하러 갈게요 빠씽!”

지영이 머리를 긁적이며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이후 사카린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길드원들에게 말했다.

“오늘부터 시즌6 공략을 재개한다.”

이 명령을 시작으로, 서큐버스 군단은 언제나와 같이 조 단위로 흩어져 메인 퀘스트를 진행했다.

허세현의 실종으로 백설희는 자연스럽게 사카린의 조에 소속되어 다시 호흡을 맞추게 됐다.

시즌6의 배경 콘셉트는 특이하게도 좀비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포칼립스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현재 51층에서 60층 구간까지, D바이러스라는 것이 전 세계에 퍼졌다는 설정이었다.

입주자는 D바이러스에 얽힌 음모를 파헤쳐 치료제를 만들어 거주자들을 구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였다.

다양한 좀비들과 변종 좀비들이 몬스터로 등장했으며, 이 사건에 얽힌 제약회사 ‘콜드렐라’의 직원들이 주요 몬스터로 등장했다.

서큐버스 군단은 차근차근 메인 퀘스트를 병행함과 동시에 시즌6에 필요한 장비 아이템과 레벨링을 진행했다.

진도가 느리긴 했지만, 과거 ‘콜드렐라’의 직원과 접촉하는 데 성공해 이제 막 메인 퀘스트의 초입에 진행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시점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이 꼭 40일쯤이 지날 무렵이었다.

그리고 그날, 아주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듣게 됐다.

[허세현 님이 ‘51층’을 최초로 클리어하셨습니다.]

[51층 메인 던전의 난이도가 하락합니다.]

입주자가 메인퀘스트를 최초 클리어할 때, 마스터키에 오는 알림이 입주자 전체에 전송된 것이다.

문제는 이 알림에 ‘서큐버스 군단’이라는 길드명이 아닌, ‘허세현’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는 것이었다.

그 뜻은, 허세현이 혼자서 51층의 메인 던전을 클리어했다는 걸 의미했다.

이는 아파트에 있어 전무후무한, 가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하…… 이런 미친 새끼. 혼자서 메인 던전을 클리어해?”

오랜만에 허세현의 소식을 접한 사카린은 욕을 뱉으면서도 도리어 기쁜 얼굴을 해 보였다.

그녀는 때마침 옆에 있던 백설희에게 쾌활하게 외쳤다.

“설희야 서두르자! 저 망할 놈 찾아가서 시원하게 뺨이라도 올려치자고!”

“네! 그래야죠!”

백설희 또한 싱긋 웃으며, 기운차게 대답했다.

† † †

몇 시간 전-.

뭔가 불법적인 것을 대규모로 연구하고 있던 것처럼 보이는, 낡은 연구 시설.

이곳의 노후화된 파이프관과 깨진 LED 전등은 이곳의 분위기를 더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이곳은 제약회사 ‘콜드렐라’의 연구 시설이었던 장소 중 하나로, D바이러스를 통한 돌연변이 연구가 주로 이뤄졌던 곳이라는 설정이 붙어 있었다.

이곳은 51층의 클리어를 위한 메인 던전이기도 했다.

세현은 그런 연구 시설 안에서 빠르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구어어어어!”

그러자 연구실 안에 있는 실험용 유리관과 복도에서 좀비들이 떼를 지어 쏟아졌다.

그 움직임은 좀비라고 하기엔 너무 기민하고 민첩했다.

수십 마리에 달하는 놈들은 어느 정도 지능도 갖췄는지, 양옆과 공중, 뒤로 흩어져 세현을 향해 동시다발적으로 달려든다. 양동작전을 펼치겠다는, 명백히 전략적인 의도가 가득한 움직임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기겁을 하며 도망을 쳐야 할 상황이지만, 세현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놈들을 천천히 관찰했다.

‘움직임이 훤하게 보인다.’

현재의 세현은 좀비들의 움직임이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한 듯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잔상이 남지 않고 선명히 포착할 수 있었다.

이 감각은 상대의 움직임이 느리게 느껴지게 했는데, 이는 시간을 제어하는 크로노스의 능력처럼 실제 시간을 컨트롤하는 것과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굳이 설명하자면 시간은 평소와 같이 흐르지만, 감각과 인식이 극도로 예민해진 탓에 상대가 ‘느려진’ 것처럼 보이는 것에 가까웠다.

‘일단 앞쪽 두 마리 먼저.’

세현은 이런 감각을 이용해 전투의 그림을 하나의 흐름으로 그려냈다.

그리고 가장 앞 쪽의 두 좀비가 다가와 칼처럼 날카로운 손을 휘두르는 순간, 한없이 늘어지는 의식의 시간 속에 허리를 살짝 숙이는 것으로 놈들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 냈다.

콰득-!

회피에 성공한 직후, 엑스칼리버를 사선으로 올려쳐 좀비 둘의 허리를 끊어 냈다. 내장과 놈들의 비명이 동시에 쏟아졌다.

‘옆에서 둘.’

그다음, 이번엔 땅을 박차고 올랐다. 그러자 양옆에서 공격을 해 오던 놈들이 서로 충돌해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세현은 공중에서 그대로 몸을 팽이처럼 회전시켜 놈들의 목과, 공중에 떠 있는 좀비 하나의 다리를 동시에 베어 냈다.

콰드드득-!

사방으로 피와 내장이 흩뿌려지며 좀비들이 요절했다.

‘뒤에 셋.’

세현은 몸을 빙글 돌려 안정적이게 착지한 후, 뒤에서 달려오는 좀비 세 마리마저 말끔히 베어 버렸다.

불과 3초도 되지 않는 시간에 벌어진 일이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좀비 8체를 썰어 버리는 괴물 같은 움직임.

이를 제삼자가 목격했다면 세현에게 예지능력이 있다고 말해도 믿을 수준이었다.

‘이 힘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할 수 있게 되면 관리자들이라도 해볼 만해.’

세현은 지난 40일간 51층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좀비를 썰어 대며, 새로 얻게 된 힘에 완전히 적응한 상태였다.

전투 도중, 감각과 인식의 수준이 극도로 예민해지며 마치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인식하게 되는 현상.

이걸 처음으로 각성한 것은 50층에서 커플러의 한쪽 귀를 베어 냈던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화를 주체할 수 없어 달려들었건만, 충돌 직전 뇌가 순간 뜨거워지는 느낌과 함께 세상이 슬로우 모션처럼 늘어졌다.

세현은 그 힘으로 커플러의 귀를 가볍게 베어 내는 데 성공했고, 이후 이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 직후에 이 힘이 가진 정확한 능력을 알기 위해 상태 창을 켜 봤지만, ‘브레이브킹’의 액티브, 패시브 스킬창에 표기되지 않았기에 이것이 어떻게 얻게 된 것인지, 정확히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정확히 밝혀낼 수는 없었다.

추측하기로는 몸속에 있던 크로노스의 힘과 커플러로부터 받은 검은 큐브의 힘이 뭔가의 작용을 해 벌어진 일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이 힘으로 싸그리 죽여 주마.’

지금 시점에 와서는 이 힘을 얻게 된 이유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세현은 그저 자신의 거주자들과 자신의 운명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고 있는 관리자, 그리고 더 나아가 두 의지라는 것들의 목을 베어 버리고 싶을 뿐이었고, 이 힘이 그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 힘 덕분에 51층 공략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음에도, 에D츄와 세이메이, 길드원들의 도움 없이 홀몸으로 51층의 메인 퀘스트를 시원시원하게 뚫어낼 수 있었다.

오히려 이 과정에서 좀비들과의 싸움이 반복되며, 이 인식과 감각이 정교해지며 전투가 점점 수월해지고 있었다.

이전까지 세현의 전투가 소환수에 의지해야만 했다면, 현재는 단신으로 어지간한 전투를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원탁의 기사’로 새로운 경지에 다다른 길드원들과 함께한다면 더욱 강한 위력을 발휘하겠지만, 현재로서는 이 새로운 힘에 완전히 적응할 때까지는 혼자 다니며 수련을 할 생각이었다.

“51층 보스, 어떤 낯짝인지 좀 보자.”

모든 좀비를 썰어 낸 후, 세현은 척 보기에도 뭔가가 있을 것 같은 거대한 철문 앞에 섰다.

오른쪽에 있는 패널에, 세현은 다른 방에서 ‘콜브렐라’의 임원을 죽이고 구한 ID카드를 가져다 댔다.

띠릭-!

[사용자 승인이 진행됩니다.]

그러자 비프음과 함께 사용자 승인을 알리는 아나운서의 음성이 들려왔고, 거대한 문이 양옆으로 자동으로 열렸다.

“썩 보기 좋지 않은 풍경인데.”

그 너머에 펼쳐진 풍경에 세현은 자연스레 미간을 구겼다.

축구 경기 정도는 거뜬히 소화할 것 같은 크기의 거대한 사각형의 공간, 그곳의 벽면에는 수없이 많은 생체 호스가 달려 있었고, 그것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공간의 중심부로 향하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는 노란 액체가 가득 담긴 거대한 유리관이 있었는데, 생체 호스는 아마도 그 안에 있는 거대한 살덩이에 영양소 따위를 공급하기 위해 존재하는 듯 보였다.

보스룸에 들어온 지 몇 초쯤 지났을까.

[침입자가 발견됐습니다! 경고합니다! 침입자가 감지됐습니다!]

요란한 사이렌음과 함께, 방 전체가 붉은색으로 번쩍였다.

[타일런트 MK-3, 잠금을 해제합니다.]

잠시 후, 중심부의 유리관에 연결된 호수들이 하나둘 빠지기 시작해 벽면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단부의 구멍이 생기며 노란 액체가 빠져나가 양쪽에 배치된 하수도로 흘러 나갔고, 그 자리에는 거대한 살덩이 하나만 남게 됐다.

‘뭐야, 저 살덩이랑 싸우라 그건가?’

의문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세현은 긴장을 풀지 않은 채 엑스칼리버를 겨눠 주변을 천천히 돌았다.

푸드드득-!

그러자 살덩이 위로 푸른 핏줄이 쭉쭉 돋아나더니 전체가 격렬히 요동치며 거품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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