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153화 (153/180)

# 153

153화.

위험 분자

놀란 커플러가 크로노스의 크리스탈을 사용했고, 날아들던 몸뚱이가 간섭을 받아 서서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전신으로 마나를 흘려보내며,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와 함께 악을 토해 냈다.

세현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크로노스가 담겨 있던 심장 부근에서 뭔가의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이따위 거.”

또한 이 기운이 자신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주리라고 확신했다.

“좆까라…… 그래에에에!!!”

그러자, 시간 감속 효과에서 벗어나 몸이 거미줄에서 힘으로 빠져나오듯 천천히 앞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뭐, 뭔가요오옹!!”

이에 커플러를 포함한 다른 관리자들의 얼굴에 경악의 표정이 띄워졌다.

파직!

잠시 후, 뭔가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세현의 몸이 앞으로 빠르게 쏟아져 커플러의 몸을 덮쳤다.

콰아아앙!

“크흐흐흡…. 크흐흐흐흡!! 짜릿짜릿 한데요옹!”

연기가 걷히고, 바닥에는 한쪽 귀가 크게 잘려 나가 검은 피를 뚝뚝 흘리는 달마시안, 커플러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상황에서도 특유의 능글맞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세현은 그에 대꾸해 주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검을 휘둘렀다.

까앙-!

순간 불꽃이 튀며, 십여 명의 무녀가 무기를 뻗어 세현을 막아섰다.

화려하게 생긴 철퇴니, 도끼 같은 무녀들이 사용하는 것이라 하기에는 다소 과격한 느낌을 주는 무기였다.

“그쯤 해 두지. 더 이상 덤벼든다면 너는 여기서 확실히 죽는다.”

무녀들의 뒤에서 헬시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세현은 얼음장처럼 차갑던 표정을 풀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대꾸했다.

“그렇겠지.”

세현은 무기를 거뒀다.

헬시안의 말대로, 이 이상 관리자들에게 덤벼들면 확실히 죽으리라는 것을 머리로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세현은 그저, 이제 관리인에게 자신의 힘이 통하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다.

물론 여기에는 커플러에 대한 분노와 화풀이도 반쯤 섞여 있었지만 말이다.

“커플러,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

“오호홍, 그래야겠죵? 일단 귀부터 좀 고치고요.”

커플러는 손에 들린 크로노스의 크리스탈을 귀가 잘린 단면 쪽으로 가져갔다.

그러자 크리스탈이 빛을 발하며 커플러의 잘린 귀가 서서히 재생됐다.

힘을 이용해 시간을 되돌리고 있는 것이었다.

“왜 이렇게 재생이 느린 줄 모르겠군용. 크리스탈의 힘이 약해진 것 같이…….”

하지만 커플러는 그 속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세현을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흐으음, 혹시 그랬던 건가요?”

커플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러곤 귀를 거의 재생시킨 후, 자신의 옷의 끝자락을 찢어 귀를 묶어 지혈을 했다. 어쩐 일인지 크리스탈로도 상처를 완전히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헬시안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할 일은 모두 끝났으니 슬슬 돌아가죵, 헬시안 님.”

“귀는 괜찮은 건가.”

“오홍홍. 헬시안 님이 저를 걱정해 주시다니 이거 그린라이트? 조~끔 아픈 것 빼곤 괜찮아용, 하지만…….”

커플러는 말끝을 늘이며, 허공을 찢어 차원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으로 걸어 들어가며 마지막 순간에 고개를 돌려 세현을 바라보며 읊조리듯 말했다.

“제가 허세현 군에게 힘을 준 게, 어쩌면 실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용.”

모든 관리자들이 들어가자 차원문이 다시 닫혔고, 보스룸에는 적막만이 맴돌았다.

[축하합니다! ‘서큐버스 군단’이 50층을 클리어했습니다!]

허공에 아나운서의 음성과 시즌 클리어를 축하하는 폭죽이 터졌다. 그사이, 사카린을 비롯한 길드원들이 장막 속에서 풀려났고 상황 파악이 안 된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허세현, 어떻게 된 거야? 관리자들은? 거주자들은?”

“모두 원래 자리로 돌아갔어요.”

“원래…… 자리?”

세현은 사카린의 질문에 쓴 웃음을 지으며 작게 대답했다.

† † †

온 사방이 체스판처럼 만들어진 거대한 홀.

중심부에 놓인 수백 개의 테이블에는 관리자들이 심각한 얼굴로 떠들고 있었다.

테이블 앞에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고, 많은 거주자가 끊임없이 음식을 퍼 날랐지만 아무도 그 음식에 감히 손을 가져다 대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겁니까? 커플러가 크로노스의 크리스탈을 가지게 됐다고요?”

“흐음, 소문에는 리베르가 크로노스를 배신하고 죽였다는군. 크로노스가 아파트의 인과율을 깼다는 명분이 있다 보니…….”

“그럼 리베르가 아니라 왜 커플러의 손에 들어간 겁니까?”

“크리스탈을 포기하고 시즌5 구역의 관리장 직을 받았다고 하더군, 크로노스의 힘 같은 걸 자기가 가져 봐야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게지.”

“이제 아파트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야 나도 모르지…….”

이들의 관심사는 커플러와 리베르에게 온통 쏠려 있었다.

애초에 크로노스는 두 의지를 제외하면 아파트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힘과 권력을 가진 자였다.

이런 존재의 힘을 일개 하급 관리자인 커플러가 손에 넣은 건 그들이 두 의지를 따라 온 긴 시간 동안 처음 벌어진 일이었다.

관리자들의 입장에서는 앞으로 재편될 권력 구조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고, 그를 위해 현재도 쉴 새 없이 주판을 튕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 홀의 앞쪽에 놓인 단상에 흰색, 검은색, 두 개의 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관리자들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그 방향을 향해 일제히 절을 했다.

<<아아, 오랜만에 다 같이 얼굴 보니 눈물이 다 나오려고 하네. 안 그래, 델?>>

<<뭐 딱히…….>>

목소리가 홀 전체에 울려 퍼지더니 빛 안에서 두 존재가 그것을 가르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각각 검은 날개, 흰 날개를 가진 자들.

이 아파트의 창조주이자 신격의 존재, 두 의지 ‘델’과 ‘렌’이었다.

그녀들이 아파트 총회에서 육체를 실체화시켜 관리인 전체에 모습을 드러낸 건 매우 오랜만이기에, 관리인들은 이번 총회에서 뭔가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오늘 우리가 여기 찾아온 건 다른 게 아니라, 임명식을 좀 하려고 왔어.>>

<<커플러, 앞으로 나오거라.>>

검은 날개, 렌이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키자 그 위치에 있던 커플러가 벌떡 일어나 귀를 펄럭이며 사뿐사뿐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런 와중, 마치 시상식에서 상이라도 탄 듯 관리자들에게 시선을 보내며 손을 흔드는 것이 그야말로 ‘커플러답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하하항!”

커플러는 두 의지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얌전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자 흰색 날개 ‘델’이 커플러의 머리를 손으로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커플러가 이 아파트의 ‘총지배인’을 맡게 될 거야.>>

그 말을 꺼낸 순간, 다시 한 번 관리인들이 웅성거렸다.

애초에 ‘총지배인’이라는 직책은 아파트에 없었다.

하지만 척 듣기에도 많은 권한이 있는 직책을 일개 하급 관리인에 불과한 커플러에게 맡긴다는 것이 파격적이기 때문이었다.

<<총지배인은 말 그대로 아파트 전체의 컨트롤을 맡게 되는 거야. 우리를 제외하고는 여기 있는 너희들 모두, 커플러의 아래가 된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겠지?>>

“하, 하지만 두 의지시여! 커플러는 일개 하급 관리인에 불과……”

그러자 관리장 중 한 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따지듯 되물었다.

아파트에서 크로노스와 더불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관리장이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두 의지가 자신보다 한참 아래에 있던 커플러를 윗선으로 꽂은 것이니 납득되지 않는 게 당연했으리라.

하지만 이 말은 꺼내지 말아야 했다.

<<아, 귀찮아. 꼭 두 번씩 말하게 하는 것들이 있더라.>>

흰색 날개의 ‘델’이 하품을 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끄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아악!”

그러자, 조금 전 이의를 제기했던 관리인의 머리통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괴로운 듯 신음하며 버둥거렸고, 이를 보던 관리인들의 얼굴에는 경악의 표정이 떠올랐다.

퍼어어엉-!

머리가 굉음과 함께 터졌고, 주변으로 뇌수가 흩뿌려졌다.

그것으로 관리인들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잇지 않았다.

<<커플러, 여기 이거 받아.>>

델과 렌은 자신들의 열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각자 하나씩 빼내 내밀었다.

커플러는 그것을 받아 들고 조심스럽게 오른손과 왼손에 하나씩 각각 끼웠다.

그러자 커플러의 몸 주변에 검은 오오라와 흰색 오오라가 섬유처럼 늘어나 몸 주변을 빙빙 돌았다.

잠시 후, 그 기운들이 동시에 커플러의 긴 귀와 눈, 입으로 동시에 빨려 들어갔다.

“힘이…… 힘이 넘쳐 흐르는군용!”

피부에 핏줄이 울뚝불뚝 솟아오르더니, 몸의 근육이 꿈틀대며 커플러의 모습을 변형시키고 있었다.

<<그럼, 잘해 봐. 앞으로도 재미있는 그림 부탁할게.>>

<<커플러. 나는 네놈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최대한 ‘델’을 즐겁게 해 다오.>>

이 말을 끝으로 두 의지는 시야에서 곧장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커플러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 후, 관리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파트의 관리자 일동 여러분, 지금부터 ‘총지배인’이 된 커플러라고 해용! 앞으로 함께 좋~은 쇼를 만들어 보자고용.”

그사이 관리인들 또한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커플러를 향해 불만과 야유가 쏟아졌다.

“저따위 놈이…….”

“대체 두 의지께서는 무슨 생각이신 거냐.”

“제기랄!”

관리인들 대다수는 커플러가 자신들의 상관이 되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조금 전, 한 관리인이 머리가 터져 죽었음에도 두 의지가 사라지니 자연스럽게 이런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커플러는 그걸 한참을 듣고 있다가 입꼬리를 사악하게 올리며 말했다.

“대답해야죵, 여러분!”

그리고 손뼉을 두 번 부딪혀 ‘짝짝’ 소리를 내자…….

“이이익, 이건 무슨!”

“몸이 제멋대로 움직여!”

관리인들이 갑자기 자리에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몇몇 강한 관리인들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 버티기도 해 봤지만, 채 1분이 되지 않아 모든 관리인들이 커플러의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아~ 역시 힘이라는 건 기분 좋은 거군용! 너무 기분이 좋아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을 정도에용!”

거의 천여 명에 가까운 관리인이 동시에 자신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는 광경에 커플러는 강렬한 쾌감을 느끼며 귀를 펄럭였다.

그러던 중-.

“앗 따거!”

커플러는 귀 쪽에서 쓰라린 느낌을 느껴 살짝 몸을 떨며 자연스레 통증이 느껴진 방향으로 손을 가져갔다.

길고 커다란 달마시안 귀, 그 끝을 조심스레 만지자 쓰라린 느낌과 함께 기다란 손가락 위에 검은 피가 흠뻑 묻어났다.

한 입주자에게 공격당했던 부위였는데, 그때의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아 피가 난 듯했다.

“호옹…….”

그걸 보는 순간, 즐거움과 흥분이 가득했던 커플러의 미간이 잠시 일그러졌다.

† † †

[속보입니다. 오늘,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입주자 길드인 ‘서큐버스 군단’ 50층을 클리어했다는 소식입니다. 이는 아파트 내부 입주자들의 소식을 통해 알려졌으며 아직 서큐버스 군단은 공식적인 성명을 내놓지 않은 상태입니다.]

[전 세계 언론들이 그들에게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직 유튜브 영상이나 공식 기자회견을 하지 않은 상태이며……]

[서큐버스 군단은 수많은 취재 요청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과연 시즌6의 배경은 어떻게 될지 정보를 파악하고자 하나 아직 알려진 바가 없어…….]

50층 클리어 후, 당연하게도 서큐버스 군단과 허세현에 대한 관심이 물밀듯 쏟아졌다.

보스는 어떤 존재였으며 어떻게 잡았는지 모두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각자의 예측을 쏟아 냈다.

하지만 서큐버스 군단은 평소와 달리 조금의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그렇게 무려 2주라는 시간이 지났고, 사람들의 궁금증은 점점 더 커져만 가고 있었다.

“아아아 망할 놈의 언론 놈들…. 누군 밝히기 싫어서 입 닫은 줄 아나!”

그런 언론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던 사카린이 길드 회의실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포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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