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151화 (151/180)

# 151

151화.

시간의 주인

물론 그 직후, 그는 섬광에 머리가 처참하게 터져 나갔지만 말이다.

그다음으로는 노덴스가 배후에서 접근해 크로노스의 왼쪽 어깨를 창으로 꿰뚫었다.

그는 크로노스의 시간 감속 능력에 구속된 상태에서 이빨로 얼굴을 물어 뜯겨 죽고 말았다.

이렇게 죽음과 맞바꾼 데미지가 누적되고 거주자의 숫자가 10% 정도 남을 무렵.

시야의 사각에서 앨리스가 있는 힘껏 날린 투창이 크로노스의 머리를 꿰뚫어 벽에 처박았다.

꼴사납게 벽에 꼬챙이가 된 크로노스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악에 받힌 목소리로 저주의 말을 토해 냈다.

<끄으으윽…… 무, 무사하지 못할 거다, 리베르.>

그 말을 마지막으로 크로노스는 완전히 침묵했다.

오랫동안 세현의 몸속에 기거하며 귀찮게 했던 존재의 최후치고는 비루하게 짝이 없는, 형편없는 죽음이었다.

잠시 후, 리베르가 벽으로 다가가더니 그의 가슴에 있는 크리스탈을 손으로 단단히 붙잡고 거칠게 뜯어내 버렸다.

쩌어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푸른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후우- 역시 관리장은 관리장이군요, 저도 이 정도까지 피해가 막심할 줄은 몰랐어요.>

리베르는 그제야 안심했다는 듯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돌려 구석에서 싸움을 지켜보던 세현을 보며 말했다.

<당신은 지금 무슨 상황이 벌어진 건지 모르겠군요.>

말없이 고개를 작게 끄덕이자 그는 피식 입꼬리를 올리며 대꾸했다.

<뭐 좋아요. 어차피 시간도 있으니 잠깐 설명이나 해 드리지요.>

그는 손에 들린 크리스탈을 허공에 띄워 보였다.

그러자 크리스탈을 중심으로 빛이 산개하더니 그것이 변이해 통제실 같은 공간이 생겨났다.

리베르는 그곳 안에 들어가더니 몇 개의 레버를 만지고 여러 버튼을 누르며 뭔가의 조작을 실행했다.

<재미있는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크리스탈을 이용하면 말입니다…….>

그가 모든 세팅을 마치고, 마지막 버튼을 눌렀을 때-.

조종석이 잠시 푸른빛을 번뜩였고, 그 직후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져 있었다.

“씨X, 뭐야 저건…….”

세현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비비적거리며 말했다.

이는 조금 전 크로노스와의 싸움에서 찢겨 나간 수많은 병사들이 되살아났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간단히 기적을 일으킬 수 있지요.>

리베르는 세현의 놀란 얼굴을 보고 즐겁다는 듯 히죽대며 입을 열었다.

<이게 크로노스의 크리스탈이 가진 진정한 능력. ‘시간의 통제실’이라는 능력입니다. 아파트의 모든 거주자의 시간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이지요. 그동안 크로노스가 이 힘을 가지고 사라진 덕분에 다른 관리자들이 거주자의 시간을 제어하느라 꽤 고생했답니다.>

“시간을…… 통제해?”

<뭐라고 말해야 이해가 쉬울까요. 음, 당신은 반복되는 아파트의 일상을 많이 보지 않았습니까? 죽었던 몬스터가 되살아나고, 거주자가 기억을 잃고 하는 것들 말이지요.>

“그거야 당연한 거잖아? 그래야 아파트가 유지될 수 있으니까.”

세현은 의아함에 질문을 던졌다.

아파트 내에서 NPC와 같은 역할을 하는 거주자가 여러 입주자를 상대로 계속해서 퀘스트를 주고,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저런 기능이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당연하기에 생각해 본 적 없다.

이것이 현재로서는 세현이 가진 생각의 전부인 것이었는데, 그 모든 것에 저 ‘시간의 통제실’이라는 물건이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모양이었다.

순식간에 많은 정보가 쏟아져 들어오며 세현은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흐음, 뭐 자세한 이야기는 저보다 당사자들에게 듣는 게 좋겠지요.>

리베르는 과장되게 인사를 건네며 뒤로 자연스럽게 물러났다.

그러자 앨리스가 세현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오더니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입니다. 허세현 님.”

그 옆에는 벚꽃공주가 함께 다가와 그녀의 팔목을 꼭 붙잡고 서 있었다.

나란히 서 있으니 그녀들이 혈육이라는 것을 한 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두 사람은 닮아 있었다.

“그래, 설마하니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네.”

“죄송합니다. 무슨 일인지 차분히 말씀드리도록 하지요.”

세현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앨리스는 눈을 감고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허세현 님, 당신은 아파트 안에서 수많은 존재가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걸 보셨을 겁니다. 예를 들자면 당신들이 죽이는 몬스터라는 존재들이 죽은 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살아나는 것들을 말이죠.”

“알아, 우리는 그걸 리젠이라고 부르지.”

“그런 현상은 저희 거주민들에게도 똑같이 나타났습니다. 다른 입주자를 만날 때마다 이미 쓰러뜨린 하트여왕이 다시 부활한다던가, 자바워키가 다시 살아난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죠. 저희는 반복되는 시간선에서 계속 살아가는 존재였지만, 그걸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지요. 마치 시계태엽을 뒤로 되감듯이 말이지요.”

“…….”

“하지만, 허세현 님을 만난 후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저희가 아무런 의문을 가지지 못했던 시간의 반복을 자각한 것이지요. 아마도 당신의 몸속에 있던 관리장 크로노스의 힘이 영향을 미쳐 저희를 시간선에서 이탈시킨 것이겠지요.”

세현은 앨리스의 말뜻을 단번에 이해했다.

자신에게 반복되는 일상을 인지하게 되는 거주자, 이것은 스스로의 존재 자체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된다는 의미였다.

애초에 보통의 사람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게 말하고 사고하는 거주자들이기에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여태 있던 일들이 이것 때문이었군.’

세현은 자신이 환생한 후, 메인 퀘스트나 히든 퀘스트의 내용이 조금씩 변하고 입주자들의 태도도 변하는 것이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희의 운명이 관리자라 불리는 자들에 의해 농락당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희들만의 힘을 길러 왔습니다.”

“저 리베르라는 놈의 손을 빌려서 말이지. 그런데 저놈도 관리자인 건 마찬가지인데 말이야?”

“시간의 방은 이 아파트를 만든 두 의지가 관리자에게만 허가한 힘. 어차피 저희들이 손을 댈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하지만, 리베르 님은 자신이 시간의 방을 손에 넣으면 저희를 시간의 굴레 속에 밀어 넣지 않으시겠다 약조해 주셨습니다.”

“오호라…. 그렇게 됐다 그거지?”

모든 상황을 파악한 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리베르는 아마도 크로노스의 힘이 탐났을 것이고, 세현의 영향을 받아 자신들의 운명을 자각한 거주자들은 시간선에 갇힌 자신들의 운명을 바꿔 줄 누군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번 싸움은 둘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벌어진 짓이리라.

“오홍홍홍,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네용!!”

그때, 귀에 익은 경박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허공에 십여 명에 달하는 무리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리 앞 쪽에는 커플러와 헬시안이, 뒤쪽에는 시작의 신전에서 볼 수 있었던 무녀들이 있었다.

<커플러 아닌가. 요즘 자네의 대단한 활약상은 익히 들었다네.>

리베르는 그들의 등장을 이미 예상했다는 듯 싱긋 웃으며 여유롭게 대꾸했다.

“오호홍 과찬이시네용. 무려, 아파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크로노스를 죽여 버린 리베르 님이 하실 말씀은 아니지만용.”

<아아, 오해하지 말라고, 내가 죽인 게 아니라 그건 여기 있는 이 용사들이 한 일이니까. 그리고 말이야, 어차피 크로노스는 인과율에 크게 간섭한 존재라 응당 처분 될 존재였어. 안 그런가?>

“후우움, 그 말도 맞긴 하지만…… 되도록 제 손으로 처분하고 싶었는데용.”

그 말을 하는 순간, 커플러의 얼굴이 찌그러지며 광폭한 야수의 형태로 변이했다.

잇몸 사이로 흉측하게 드러난 송곳니를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워워 진정하라고, 나는 자네와 척을 지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으니까 말이야. 나도 이 ‘시간의 방’을 나 따위가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어. 이건 두 의지께 총애를 받는 자네에게 넘겨주지.>

리베르가 그 말을 하는 순간, 앨리스를 비롯한 거주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자신들을 시간선에서 꺼내 주겠다던 약속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 리베르 님!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 구세주 연기하는 것도 슬슬 귀찮군.>

앨리스가 다급히 외치자, 리베르는 귀찮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시간의 방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수천 명에 달하는 모든 거주자의 몸뚱이가 시간이 멈춘 듯 그 자리에 돌덩이처럼 굳어 버렸다.

<시간의 방은 자네에게 넘겨주지. 그 대신 시즌5의 관리장은 내가 맡는 걸로 해 주게. 어떤가?>

“호오, 아주 구미가 당기는 제안을 해 주시는군용? 솔직히 이렇게 나오실 거라곤 예상 못 했는데용.”

<커플러, 나는 현실적인 자일세. 자네가 이제 아파트의 실세라는 것을 모두가 아는 터, 척을 지고 싶지는 않다네. 솔직히 말하자면 바로 옆에 자네의 수족 노릇을 하고 있는 헬시안 님이 부러울 지경이란 말이지.>

“그 입 다물어라, 리베르.”

<워워~ 무서워라, 하긴 자존심이 상하시긴 하겠군요. 관리장급이 커플러의 수족 노릇을 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하지만 세상은 원래 빠르게 변하는 법입니다. 모두 변화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밀려나거나 죽게 되는 거죠. 조금 전의 크로노스처럼 말이에요.>

리베르의 빈정거림에 헬시안이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며 외쳤다.

그런 와중, 대화를 듣고 있던 세현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개새끼들이….”

리베르는 그저 ‘관리장’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운명을 깨달은 거주자들을 이용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이 사건에 휘말린 거주자들 모두 세현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자들이고, 이 사건 자체에 허세현 본인조차 이용당했기에 기분이 더러울 수밖에 없었다.

“오홍홍! 저는 리베르 님처럼 현실적인 분이 좋더라구용! 좋아용, 거래 성립입니당!”

커플러는 기분이 좋은지 귀를 펄럭이며,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러곤 시간의 방으로 들어가 마치 장난감을 처음 본 아이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것저것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오홍홍, 꼭 가지고 싶었던 물건인데 이렇게 손에 넣게 됐네용.”

일단은 이것저것을 만져 보며 시간의 방의 기능과 조작법을 익히는 듯 보였다.

“흐음…… 그러면 일단 여기 있는 혁명 전사들부터 원래대로 돌려 놔야겠지용?”

커플러는 레버와 버튼을 몇 번 누르는 것으로 조작을 마쳤다.

그러자 돌처럼 굳어 있던 거주자의 몸 위로 시계 모양이 낙인이 커다랗게 새겨졌다.

“이 상태에서 거주자들을 죽이면, 기억도 완전 소멸!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거군용! 오호홍. 이렇게 대규모의 인원들을 동시에 컨트롤할 수 있다니 역시 시간의 방은 대단한 능력이에용.”

커플러는 흡족하다는 듯 한참 웃으며 귀를 펄럭댔다.

“흐음…. 그건 그렇고 이 거주자들을 그냥 죽여 버리기는 조금 아까운데엥~ 뭔가 두 의지께 재미있는 광경을 보여드릴 기똥찬 아이디어가 없을까용?”

놈은 그러다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더니 세현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허세현 군, 혹시 제안을 하나 드려도 될까용?”

“말해.”

“퀘스트를 발행해 드릴 테니 세현 군이 여기 있는 거주자들을 직접 죽여주시지 않겠어용? 저 거주자들 모두 세현 군과 친분이 있는 자들이잖아용? 아마 두 의지께 보내드리는 최고의 쇼가 될 것 같은데용.”

“미친 개새끼가, 내가 하란다고 하면 예, 하고 할 줄 알았냐?”

커플러의 과격한 제안에 세현은 노골적으로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매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원래 강아지라서 ‘개~새끼’라는 말은 욕이 안 된답니당. 그리고 다시 말씀드리자면, 여기 있는 거주자들은 세현 군이 죽이지 않는다고 하면, 이 뒤에 있는 헬시안 님과 관리자 분들에게 죽을 운명이랍니당. 이건 피할 수 없는 사실이죵.”

“이런 지랄맞은…….”

커플러는 엄지손가락을 뒤로 젖혀, 뒤쪽의 헬시안과 무녀들을 가리켰다. 그 순간, 세현은 이곳에 있는 거주자들이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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