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149화 (149/180)

# 149

149화.

크로노스(1)

“끄으으윽…. 끄으으윽……”

가슴 부근이 찢겨 나가는 듯한 고통이 엄습해 오며 세현은 발작하듯 경련했다.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 정도의 격통에 눈앞이 노랗게 물들었다.

그렇게 고통 속에 몸부림치고 있는 동안, 세현의 머릿속으로 익숙한 목소리의 사념이 들려왔다.

[이제 너의 몸뚱이를 버릴 때가 됐구나.]

그 직후, 가슴쪽에서 푸른 빛이 뿜어지며 그 사이로 주먹만 한 크리스탈 하나가 뽑혀 나왔다.

그것은 세현의 몸을 완전히 빠져나오자 빠른 속도로 반대편에 서 있는 크로노스의 석상을 향해 날아가, 그 가슴을 뚫고 들어갔다.

그러자 전신으로 푸른빛이 퍼져 나가더니 생기가 깃들며 어엿한 생명체의 모습으로 변이했다.

<자, 그럼 두 번 째 싸움을 시작하지.>

“이잉, 두 번째 싸움? 저거 무슨 소리 하는 거냐?”

크로노스의 말에 사카린이 질문을 던졌지만, 세현은 이에 정색하며 대꾸했다.

“길드장, 지금은 저놈 쓰러뜨리는 것만 집중해.”

지금은 그런 사소한 의문을 해소하는 것보다는 눈앞의 공포스러운 존재를 산산조각 내는 것이 우선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설희 씨 버프! 세이메이, 소환수 다 꺼내!”

“넵!”

“알겠습니다, 주군!”

세현은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아자토스의 눈으로 ‘다크니스 리턴’을 발동해 길드원 전체의 무기를 강화했다.

동시에 세이메이의 언데드 군단, 요괴 군단이 몸을 일으켰고 미노타우르스의 어깨에 올라탄 설희가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광역 버프를 발동시켰다.

다른 길드원들 또한 각자 가진 버프를 모두 발동시키고 엘릭서를 먹는 것으로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빠르게 갑니다.”

세현은 엑스칼리버에서 금빛 오오라를 뿜어내며 다이달로스의 날개를 이용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저 모래시계만 박살 내면 이길 수 있다.’

그러곤 함성을 내질러 아군에게 순간적으로 이동속도 버프를 준 후, 빠르게 크로노스의 주변을 뱅글뱅글 돌며 상대의 빈틈을 찾았다.

<재미있군, 서로 상대의 능력을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싸움이라니.>

이에 크로노스는 제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히죽 미소를 띨 뿐이었다.

그런 사이, 길드원들이 원거리에서 놈의 몸통을 향해 지체 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훌륭한 공격들이야, 하지만…….>

그러자 크로노스가 히죽 웃음 지었고, 모래시계가 찰나의 순간에 뒤집혀 모래를 아래로 쏟아 내기 시작했다.

“뭐, 뭐야 저건.”

난생처음 보는 생소한 광경에 길드원들은 침음을 흘렸다.

자신들이 날린 공격이, 마치 시간이라도 정지한 듯 허공에서 멈췄기 때문이었다.

‘내가 틈을 만들어야겠군.’

세현은 이 공동의 벽면을 지지대 삼아 박차며 빛과 같이 놈에게 날아들었다.

이런 고착 상태에서는 길드원들의 공격이 별 소용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몸속에서 볼 땐 몰랐는데 이리 보니 날파리같구나.>

세현의 몸뚱이가 놈에게 가까워지자 시간이 한없이 늘어지며 몸이 자동차가 돌진하는 정도의 속도로 느려졌다.

보통의 사람이 보기에는 충분히 빠른 속도겠지만, 이는 이 수준의 입주자의 전투에 있어서 굼벵이나 다름없는 속도였다.

크로노스는 기쁘다는 듯 눈웃음을 치며 자신의 거대한 낫을 세현을 향해 내리쳤다.

“제에에엔장!”

충돌 직전, 세현은 이를 악물고 쿠자이의 발로 허공을 걷어찼다.

그것으로 가까스로 궤도에서 벗어났고, 거대 낫은 허공을 가르며 후폭풍을 일으켜 세현의 몸이 반대편 벽까지 날려 버렸다.

세현은 벽면에 가까스로 발을 딛고 몸을 멈출 수 있었다.

‘이전에 상대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다.’

단 한 번의 공방을 주고받았을 뿐이지만 세현의 본능은 정확하게 말해 주고 있었다.

눈앞의 크로노스는 세현이 F급이던 시절에 만났던 존재보다 훨씬 강했다.

애초에 놈에겐 모래시계를 이용해 자신의 육체를 재생시키거나 가속하는 능력이 있을 뿐, 상대의 시간을 감속시키는 능력 따위는 없었다.

‘확인부터 확실히 한다.’

세현은 몇 번이고 모래시계를 향해 공격을 더 시도하며, 놈의 능력을 재차 확인했다.

이를 시도할 때마다, 놈은 모래시계를 돌려 속도를 감속시켰고 모든 공격은 형편없이 실패로 돌아갔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얼굴이군.>

이에 크로노스는 흡족한 듯 입꼬리를 올려 요사스러운 미소를 흘렸다.

‘제기랄…….’

놈의 말대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세현은 전생에 자신이 겪었던 크로노스의 모습을 생각하고, 나름의 공략법을 수립했다.

물론 그동안의 경험이 있기에 변수가 생길 것을 예측해 다른 카드들을 많이 준비해 놨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다른 종류의 스킬을 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모래시계를 파괴하지 못하면 궁극기니 뭐니 아무 소용없어.’

단순히 스펙만 보자면, 놈을 쓰러뜨리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길드원들 모두 가공할 위력의 궁극기를 가지고 있고, 세현 또한 엑스칼리버와 아자토스의 눈, 거기에 마장기신 랜돌프까지 가공할 위력의 무기들을 준비해 놓은 상태다.

하지만, 저 모래시계의 근처에 다가가면 여지없이 발동되는 시간 감속 효과 때문에 감히 접근조차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럼, 내가 이제 응답해 줄 차례군.>

크로노스의 눈이 이글이글 빛을 뿜더니 직선으로 광선을 한줄기 쏘아 냈다.

“피, 피해츄!”

그것이 길드원들 위로 쏟아지기 전에 에D츄가 앞으로 나아가 방패를 펼쳐 광선을 쳐냈다.

콰앙-!

위로 튕겨진 광선은, 천장을 뚫고 지나가며 아래로 거대한 돌덩이 몇 개를 뱉어냈다.

<계속 가 보도록 하지!>

이후 크로노스는 눈의 광선뿐 아니라 거대 낫을 이용해서 온 사방에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최대한 거리를 내주지 마! 근처에 다가가면 시간이 느려진다!”

오더에 따라 길드원들은 최대한 그녀에게 거리를 주지 않은 채 멀리멀리 떨어져 시간 감속에 휘말리지 않도록 했다.

세현은 그런 중간중간에 엑스칼리버를 이용해 금빛 섬광을 원거리에서 날려 보내는 것으로 견제를 하며, 최대한 시간을 벌며 놈의 패턴을 관찰했다.

‘저놈, 묘하게 설희 씨를 집중공격하고 있다.’

실제로 놈이 10번의 공격을 날리면 거의 3~4번은 백설희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녀가 힐러라는 걸 인식해서 제일 먼저 제거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철저히 실리에 맞춰 싸우는 영리한 싸움 방법이었다.

‘그 방법을 써 보자.’

세현은 잠시 공중에서 내려와, 최후방에서 소환수들을 부리는 데 전념하는 세이메이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러곤 빠르게 그녀에게 귓속말을 속삭여 자신이 떠올린 전술을 빠르게 전달했다.

“알겠습니다, 주군!”

“부탁한다.”

세이메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세현은 다시 날개를 펼쳐 공중으로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엑스칼리버 대신 붉은 뱀의 검을 붙잡고 긴 사거리를 이용해 놈의 시간 감속 능력이 닿는 밖에서 최대한 공격을 쏟아 부었다.

시간 감속이 걸린다고 해도 검이 날아가는 속도가 느려질 뿐, 멀리 떨어진 세현까지 이에 휘말릴 일은 없기에 보다 안전하게 놈을 견제할 수 있었다.

물론 그사이에도 길드원들 또한 원거리에서 공격을 퍼부었다.

<재미없는 싸움을 하는군.>

원거리에서 견제만 계속되는 싸움에 놈이 따분하다는 듯, 하품까지 해 보이더니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며 눈의 광선을 더욱 격렬하게 사방으로 난사했다.

“심심하다고 하니 정면 대결로 가자고.”

그때, 세현은 놈의 모래시계와 일직선이 되는 반대편 벽면에 두 발을 붙인 체 엑스칼리버를 놈에게 겨눴다.

그러곤 마나를 끌어 올려 최대한 많은 힘을 검신에 응축시켰다.

금빛 성광이 흘러넘치다 못해 번개와 같은 형태로 터져 나오며 천둥 같은 소리가 공동 내부에 울려 퍼졌다.

<재미있군. 속도와 힘으로 강제로 시간의 장막을 뚫어 보겠다 그건가.>

“시끄러, 꼭 좆밥들이~ 재미있군. 이딴 소리 하더라? 그 머리통에 구멍이 나도 재미 타령 계속할 수 있는지 보자.”

세현은 이를 악물고 벽을 박차고 앞으로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 직후, 공중에서 쿠자이의 발을 이용해 공중을 발로 강하게 걷어차 다시 한 번 추진력을 얻었다.

안 그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는 더더욱 가속해 그대로 모래시계를 향해 선을 그리며 돌진했다.

<과연, 자신만만할 만한 수준의 속도이긴 하군.>

“끄으으아아아아아!!”

하지만, 거침없이 돌진하던 세현의 몸뚱이가 서서히 느려지더니 모래시계를 불과 2~3m 앞둔 지점에서 완전히 정지해 버렸다.

이에 세현은 검이 모래시계에 닿지 못한 것이 분한 듯 뭔가를 입으로 벙긋거리고 있었다.

“캐에에…… 슬……”

<날파리답게 죽어라.>

크로노스의 거대 낫이 정확히 세현의 몸통을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리이잉!!!”

가까스로 외침을 끝마친 그 순간- 세현의 몸이 빛을 발하며 사라지더니 주변에 수백여 장의 종이가 흩날렸다.

<으응?>

“츄우우우우!”

그리고 그 자리에는 방패를 위를 향해 치켜든 에D츄가 이를 악물고 버텨내고 있었다.

<이 무슨!>

그다음으로 주변에 흩어졌던 수백 장의 종이들이 갑자기 새와 같은 형태로 변형하더니 순식간에 산개해 모래시계를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당황한 크로노스는 다시 시간 감속을 전개했지만, 이미 몇 장의 종이 새가 모래시계에 달라붙은 상태였다.

“세이메이!”

“예, 주군!”

그때 저 멀리서 세이메이와 허세현의 외침이 들려왔고, 모래시계에 붙은 종이 새, 시키가미가 붉은빛을 내뿜더니…….

퍼어어엉-!

굉음을 내며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이 대체 무슨…….>

순간 시계의 위쪽 유리에 작은 구멍이 뚫리며 안에 담긴 모래가 줄줄 새기 시작했다.

‘성공이다.’

크로노스와 먼발치에 서 있던 허세현이 입꼬리를 추켜올렸다.

조금 전 세현이 성공시킨 일격은 순식간에 이중 트릭을 사용한 것이었다.

일단 등에 세이메이의 시키가미를 붙이고 의도적으로 쿠자이의 발까지 써서 정면으로 최고의 일격을 시도하는 것처럼 연출했다.

쿠자이의 발로 공중을 박차는 것으로 몇 번이고 위기에서 탈출하는 것을 보여 줬기에, 크로노스에게 이것을 일부러 사용하는 것을 보여 줘 더 이상 탈출 수단이 없다는 것을 전투 중에 일단 각인시킨 것이었다.

하지만, 그 대신 ‘룩’ 클래스와 위치를 바꿀 수 있는 스킬 ‘캐슬링’을 이용해 에D츄를 그 자리로 보내고 허세현은 빠르게 전장을 이탈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등에 붙어 있던 시키가미들이 자리에 남았고, 일순간 에D츄의 등장에 당황한 크로노스의 빈틈을 파고들어 세이메이가 시키가미로 모래시계를 삽시간에 공격한 것이었다.

비록 모래시계에 작은 구멍을 내는 것에 불과한 공격이었지만, 여태 여유 가득한 태도로 전투를 주도해 오던 크로노스에게 제대로 된 한 방을 먹여 흐름을 바꿨다는 데서 큰 의미가 있었다.

‘이 흐름을 놓치지 않고 간다.’

세현은 크로노스가 정신 차릴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곧장 다음 카드를 꺼내 들었다.

“마장기신 랜돌프.”

시동어를 말하자, 세현의 머리 위로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지더니 그 사이로 금빛 강철 거인 하나가 소환되어 지상에 착지했다.

이는 마장기신 랜돌프, 아웃터 갓 니알라토텝과의 결전에 사용됐던 결전 병기였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마장기신을 향해 내달렸다.

세현은 곧장 랜들프의 가슴 부근에 놓인 황금 수정 위에 손을 얹고 마나를 흘려 넣었다.

[사용자의 사용 권한을 확인합니다.]

[관리장 ‘크로노스’ 님의 권한이 파악됐습니다. 마장기신의 사용을 허가합니다.]

마스터키가 메시지를 출력하며 세현의 몸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장기신 랜돌프, 현재 연료 5%. 최대 가동 시간 5분입니다.]

마치 조종실 같은 내부에 들어오자 아나운서의 음성이 세현에게 현재 랜돌프의 상태를 알려 줬다.

그동안 악착같이 연료를 채워 넣었음에도 랜돌프는 고작 5분을 움직일 수 있을 뿐이었다.

이는 짧은 시간이지만, 이 시간이면 충분히 적에게 한 칼을 먹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좋아. 빠르게, 한 방에 박살내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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