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148화 (148/180)

# 148

148화.

킹 오브 킹

그러자, 헤파이토스의 몸뚱이 위에 잔뜩 새겨진 보랏빛 상처들이 빛을 격렬히 발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정점에 달했을 때-.

퍼버버버벙-!

맹렬한 폭음과 함께 엄청난 규모의 연쇄 폭발이 일어났다.

<으으…… 으으…. 개미들…… 왜 나를 이렇게 미워하는 것이냐!!>

헤파이토스의 갑옷은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고, HP가 모두 빠진 놈은 전신에서 피를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아 신음했다.

[축하드립니다! 서큐버스 군단 길드가 45층을 클리어했습니다!]

그러자 스테이지 클리어를 알리는 아나운서의 음성과 함께, 허공에 폭죽이 터지는 연출이 출력됐다.

“미워하긴 개뿔, 니가 다짜고짜 덤벼들었잖아.”

세현은 쓰러져 있는 헤파이토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그는 겁에 질린 듯 몸을 벌벌 떨며 조심스럽게 대꾸했다.

<빠, 빨리 죽여라!>

“내가 댁을 죽이긴 왜 죽여.”

여기서 헤파이토스를 죽여 버리면 소량의 재료 아이템과 ‘헤파이토스의 망치’를 얻을 수 있지만, 시즌5의 핵심 강화 콘텐츠인 ‘소켓’ 시스템의 활용이 불가능해진다.

그걸 알고 있는 허세현이 굳이 그런 선택을 할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살려줄테니 오래오래 살아, 그 대신 목숨 값을 평생 갚으라고.”

<으으, 개... 개미 따위가 내게 그런 말을.......>

“개미도 개미 나름이지, 나는 총알개미나 그쯤 되는 놈이라고 생각해 두라고.”

<좋아, 네게 목숨값을 지불하마!>

헤파이토스는 손을 덜덜 떨며 저 멀리 날아가 있던 자신의 망치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가, 강화하고 싶은 장비를 하나만 건네다오.>

세현은 상대가 뭘 하려는지 이미 알고 있기에 자신의 주력 무기인 엑스칼리버를 흔쾌히 내어 주었다.

그걸 받아 든 헤파이토스는 짐짓 놀란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이것이 나를 베어 낸 무기인가…… 어, 엄청난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많은 힘을 넣을 수 있겠어.>

그는 말없이 엑스칼리버를 모루로 가져가더니 그걸 망치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불꽃과 함께 허공에 수십 개의 마법진이 그려지더니 엑스칼리버의 검신에 붉은 레이저를 쏘아 홈을 파내고 있었다.

일련의 작업이 끝나자 헤파이토스는 검신을 들어 올려 자신이 새긴 홈 자국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이, 이 구멍에 보석을 박아 넣으면 무기가 더 강해질 것이다. 앞으로 내게 찾아오면 네, 네가 가진 무기에 보석을 박아주마.>

“아 잠깐만, 나도 줄 게 있는데.”

헤파이토스가 엑스칼리버를 내밀 즈음, 세현은 품속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이는 다이달로스에게 받았던 패였다.

그는 이 패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지 눈썹을 움찔거리며 되물었다.

<이 물건은 어디서 구한 것이냐?>

그의 질문에 세현은 다이달로스를 라비린토스에서 구해 준 일화를 간략히 요약해 전달했다.

<다이달로스라, 나의 자손이 네게 크, 큰 신세를 졌구나.>

그는 잠시 고민하듯 침음을 흘리더니 뭔가를 결심했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며 말을 이었다.

<조, 좋아! 네게 친히 나의 은혜를 베풀어 주마. 너의 이 무기에 품격에 어울릴 만한, 대단한 물건을 여기에 넣어 주겠다.>

그러곤 대장간 구석에 놓인 상자에 손을 넣더니 그 안에 든 보석들을 하나씩 꺼내 들어 확인했다.

그중에 3개의 보석을 한참이나 고르고 골라 꺼내더니 그걸 모루로 가져가 엑스칼리버에 새겨진 3개의 홈에 망치를 이용해 힘껏 때려 박았다.

<개, 개미여. 진귀한 보석을 심었으니 만족스러울 것이다. 앞으로 내 대장간에 장비와 보석을 들고 찾아오면 이렇게 무기를 강화해 주… 주마.>

헤파이토스가 내민 엑스칼리버의 검신에는 손톱만 한 크기의 루비가 세 개 박혀 있었다.

그 빛깔이 영롱함을 넘어 눈이 부실 지경이어서 척 보기에도 엄청난 고급품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세현은 입꼬리를 싱긋 올리며 곧장 상태창을 열어 엑스칼리버의 옵션을 확인했다.

그러자 가장 하단부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추가로 적혀 있었다.

[소켓 옵션]

▶ 헤파이토스의 루비 x 3

- 대장장이신 헤파이토스가 직접 선별해 연마해 낸 최상급 루비.

등급: 영웅(S)

능력:

공격력 증가 - 3티어 증가

용광로 - 검으로 적을 공격할 때 화염 속성 데미지 추가.

검신에 루비 세 개가 박힌 것으로 3티어의 공격력이 올랐을 뿐만 아니라 무기에 화 속성 데미지를 추가했다.

단순히 말하자면 엑스칼리버가 30레벨이 넘는 수준의 스펙이 단번에 뛰어올랐다는 것이었다.

‘S급 보석 3개라. 이 정도면 라비린토스를 돌았던 게 확실히 정답이었군.’

세현은 과거의 자신이 내린 선택에 만족하며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너 어제 유튜브에 올라온 서큐버스 군단 영상 봤냐?”

“봤지 인마. 미친, 그 인간들 겨우 10명 조금 넘는 머릿수로 헤파이토스 때려잡는 거 보고 어이가 터졌다.”

“그치, 특히 그 브레이브킹이 날개 달고 날아가서 헤파이토스 갑옷 박살 낼 때 소름이 돋았다니까?”

“근데 이제 팔콘유니온은 어쩌냐. SS급 입주자도 있다는 놈들이 천 명 가까이 몰려가서 그 꼴이 났으니 진짜 개 쪽 아니냐.”

“그걸 말이라고 하냐? 솔까 이제와서 지들이 최고의 길드니 뭐니 하는 개소리는 절대 못 하지.”

헤파이토스 레이드 이후, 아파트에서 누가 최강이냐는 논란은 단번에 종식됐다.

서큐버스 군단이 헤파이토스를 잡는 모습은 전 세계로 송출됐고, 그 과정에서 그들이 보여 준 압도적인 기세는 팔콘유니온과 비교하는 게 미안해질 정도로 차원이 달랐다.

언제나처럼 한성 그룹의 뒷돈을 받아 처먹은 ‘자칭’ 전문가라는 놈들이 간혹 팔콘유니온을 옹호하고 서큐버스 군단을 깎아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야, 너 한성 그룹에 돈 받았지. 지금 지껄이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전문가? 니가 전문가면 우리 집 뽀삐는 킹갓엠페러마제스티충무공 전문가임. 조속히 나가 뒤지시길 권장 드림.]

[추잡하다. 돈을 얼마나 받아 처먹어서 이렇게 팔콘유니온 똥꼬 빨아 주는지 모르겠는데 적당히 해라. 우린 뭐 눈깔 없는 줄 아냐?]

그때마다 대중은 그들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차라리 영상을 올리지 않고 헤파이토스에게 졌다면 모를까, 팔콘유니온을 선전하겠다고 시도한 ‘실시간 영상 중계’가 오히려 그들과 서큐버스 군단의 수준 차이를 극명히 보여 준 탓도 컸다.

이후 상황은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더 이상 자신들이 최고라는 것을 증명할 필요조차 없어진 서큐버스 군단은 빠르게 아파트의 공략을 이어 나갔다.

허세현의 ‘원탁의 기사’가 주는 독보적인 능력 덕분에 그들의 기세는 파죽지세 같았고, 서큐버스 군단 전체의 유대감은 점차 강해졌다.

물론, 이런 유대감은 단순히 함께 싸움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생기지 않았다.

전투를 이어가는 중간중간, 서큐버스 군단은 길드원들이 다 함께 여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해외여행이나 피크닉, 방송 출연이나 광고 촬영 등.

다양한 일과 여가를 함께 보낸 것은 조직 전체를 ‘가좆’같은 것이 아닌 진짜 ‘가족’같은 분위기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넉살 좋은 사카린이 언제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했고, 길드원들이 허세현, 백설희와 더욱 가까워질 수 있도록 각별한 노력을 쏟았다.

그 결과 아직 ‘원탁의 기사’를 받지 않았던 남은 길드원들도 모두 계약을 맺게 됐다.

이는 단순히 그들이 강해진 것이 아닌, 서큐버스 군단 전체가 허세현을 믿는다는 것의 증명이자 운명공동체라는 것의 상징이기도 했다.

[보스 ‘헤라’(을)를 쓰러뜨렸습니다.]

[46층을 최초로 클리어했습니다!]

[타이틀 ‘어머니 살해자’를 획득했습니다!]

보상: 올스탯 + 3

[보스 ‘포세이돈’을 쓰러뜨렸습니다.]

[47층을 최초로 클리어했습니다!]

[타이틀 ‘바다를 잠재운 자’를 획득했습니다!]

보상: 힘+10

[보스 ‘하데스’를 쓰러뜨렸습니다.]

[48층을 최초로 클리어했습니다!]

[타이틀 ‘명계의 문을 닫은 자’를 획득했습니다.]

보상: 지능+10

[보스 ‘제우스’를 쓰러뜨렸습니다.]

[49층을 최초로 클리어했습니다!]

[타이틀 ‘올림포스의 반역자’를 획득했습니다.

보상: 올스탯+5

이후의 메인 퀘스트의 스토리는 오해로 인해 올림포스의 신들에게 반역자로 낙인찍힌 입주자가 살아남기 위해 올림포스의 신들과 싸워 나간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50층에서는 입주자가 올림포스의 오해를 받게 만든 배후를 찾아 제거하는 것이 최종적인 흐름이었다.

‘배후라…… 그게 어떤 개 같은 놈인지 아주 잘 알고 있지.’

세현은 아파트를 오르며 크로노스와의 대결을 고대해 왔다.

급박한 위기를 겪을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놈의 힘을 빌려 썼고, 그때마다 몸속에서 놈의 힘이 차근차근 자라는 것을 느껴 왔다.

50층에서 놈을 어떤 형태로 다시 맞닥뜨릴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전생에 크로노스의 강력한 위용을 맛봤던 세현이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했다.

팔콘유니온을 포함한 다른 상위권 길드들은 아직도 46층 부근을 전전하고 있기에 50층에 돌입한 후, 서큐버스 군단은 근 90일의 시간을 50층에서 상주하며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냈다.

그리고 오늘, 서큐버스이 군단 전 인원은 50층의 최종 던전인 올림포스 앞에 모여 있었다.

“후우…… 벌써 시즌5 최종 보스라니 시간 참 빠르다.”

“빠르긴 뭘 빨라. 50층이라고 해 봐야 아파트 겨우 2분의 1 지점이잖아.”

“그만들 떠들고, 출발하기 전에 장비랑 소모 아이템 한 번 더 최종 점검해!”

그녀들의 얼굴에는 긴장감보다는 새로운 적에 대한 호기심과, 전투에 대한 설레임이 가득해 보였다.

곧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이런 모습이라니, 누가 보면 머리에 나사가 하나씩들 빠진 것처럼 보일 게 뻔했다.

이 상황에서 가장 긴장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허세현이었다.

‘결국 여기로 돌아왔군.’

이곳 50층은 전생의 세현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장소다.

이미 몇 년이나 지난 일일 뿐만 아니라 세현을 원수인 최은철도 이미 죽어 사라졌지만, 보스룸의 거대한 문 앞에 서자 그때의 끔찍한 기분이 순식간에 되살아나는 듯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싸움이다.’

치밀어 오르는 과거의 공포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의 세현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이 공포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뿐이었다.

“들어가죠.”

세현은 짧고 굵게 한 마디를 외친 후, 보스룸의 정문을 양팔로 크게 열어젖혔다.

철컥-!

문 너머엔 거대한 지하 공동이 펼쳐졌다.

모래시계처럼 생긴 기둥들이 천장을 받쳤고 거대한 괘종시계들이 빼곡히 벽면을 장식했다.

그리고 정 중앙엔 커다란 물시계가 높게 솟아 있었다.

세현이 전생에 봤던 50층의 최종 던전,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조금 있으면 저 물시계가 박살 나겠지.’

생각과 동시에 ‘쾅’ 하는 소리가 나며 등 뒤의 철문이 닫혔고, 중앙에 놓인 물시계가 와르르 무너지며 먼지가 뭉게뭉게 솟아올랐다.

잠시 후, 먼지가 걷히고 그 자리에는 한 손에는 낫을, 다른 손에는 모래시계를 든 거대한 석상이 서 있었다.

‘안 움직여?’

그 모습에 세현은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기억 속의 크로노스는 저 먼지에서 나오자마자 움직이며 뭔가의 말을 떠들어댔던 기억인데, 지금은 석상처럼 굳어져 미동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몇 분쯤이 지났을까.

“크아아아악!”

“뭐, 뭐야 허세현. 왜 그래!”

허세현이 비명을 내지르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나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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