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
147화.
헤파이토스(2)
[현재 45층의 보스 레이드 생중계가 신호 문제로 인해 잠시 중단됐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추가 소식을 전해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현재 20분째 던전 내부의 상황이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45층 보스 헤파이토스가 예측하지 못한 공격을 해 온 것으로 추정되며…….]
팔콘유니온이 45층 공략에 들어간 지 불과 몇 시간 후, 헤파이토스가 거대한 용광로를 엎어 버리자 영상 중계가 끊겨 버렸다.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언론사들은 당황해서 어찌 할 줄 몰라 하는 분위기였다.
‘역시 이렇게 흘러가는군.’
이를 길드원들과 함께 회의실에서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던 세현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세현의 기억대로면 헤파이토스는 @크로노스를 제외하면 시즌5에서 가장 어려운 보스중 하나다.
전생에서도 몇몇 대형 길드가 자신 있게 출사표를 던졌다가 저 용광로를 엎어 버린 후, 헤파이토스가 갑옷과 도끼를 들고 싸우게 되는 패턴의 등장 이후 철저히 무너졌다.
세현의 기억이 맞는다면 헤파이토스 공략에 걸린 시간은 123일, 민들레 씨앗이 1회 날아온 후에 3주나 더 걸려 잡아냈다.
그런 무지막지한 놈을 고작 정찰대 몇 번 보내서 만든 허접한 공략 따위로 간단히 잡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허둥대고 있던 뉴스 아나운서들이 새로운 소식을 전해 왔다.
[속보입니다! 팔콘 유니온이 45층 공략에 실패했다는 소식입니다!!]
[공략에 투입됐던 인원 중 213명의 사상자가 나왔으며, 연합장인 ‘그로기’ 입주자는 전략적인 판단으로 공략을 포기하고 보스룸을 탈출했습니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던 영상은 현재 연결이 되지 않는 상태이며, 추가 보도가 들어오면 바로 중계하도록 하겠습니다.]
세현은 말없이 자리에서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며 길드원들에게 진지한 목소리로 작게 읊조렸다.
“갑시다.”
† † †
“아파! 아프다고!”
“죽고 싶지 않아, 누가 좀…… 살려…….”
비명과 신음 소리, 피와 살 타는 냄새가 넘쳐 나는 45층의 평원 한가운데.
이곳은 팔콘유니온이 만약을 대비해 공략에 실패했을 시, 텔레포트 스크롤을 이용해 탈출하게 되는 장소의 좌표였다.
여기저기에 정부 직속의 조사단원들이나 다른 길드 소속의 입주자들이 급파되어 환자들에게 응급 처치를 하고 의료 시설로 이송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상황.
“제기랄! 제기라아아알! 정찰대 새끼들은 대체 뭘 조사한 거야! 저런, 저런 패턴이 있으면 알아 놔야 할 거 아니야!!”
그런 도중, 공격대의 총지휘관 역할을 도맡았던 정요셉이 신경질적으로 이번 임무의 정찰대를 맡았던 인원들을 질타하고 있었다.
이번 전투에서 팔콘유니온은 총 2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나왔고, 결과적으로 헤파이토스 공략에 실패했다.
HP가 반 이하로 떨어졌을 때, 놈이 용광로에서 꺼낸 갑옷과 도끼를 장착한 이후 난이도가 수직으로 상승하며 처참한 패배를 맛보게 된 것이다.
‘제기랄…… 일이 이렇게 꼬여 버릴 줄이야.’
자신만만하게 출사표를 던진 와중에 맞이한 결과.
그렇기에 이번 공략의 결과는 분명 팔콘유니온의 명성과 전력에 큰 타격을 줄 게 분명했다.
다른 게 아니라, 한성 그룹 회장 최진형에게 그동안 쌓아 왔던 신뢰가 이번 일로 와르르 무너질 것이 가장 두려웠다.
“부길드장님! 크, 큰일입니다!”
그때, 현재 요셉의 참모 역활을 하고 있던 과거 인사팀 시절 부하가 헐레벌떡 달려오더니 대뜸 눈앞에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이건 무슨……?”
화면 안에는 조금 전까지 팔콘유니온이 전투를 벌였던 헤파이토스가 보였다.
그리고 익숙한 얼굴의 입주자들이 그들과 한창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서큐버스 군단? 이것들은 뭐야.”
“조금 알아보니 저희가 메인 던전을 탈출하고 조금 지나서 바로 전투에 돌입했다고 합니다.”
그 말에 요셉은 턱을 쓰다듬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이것들, 무슨 생각이야….’
아무리 공략법이 완벽하지 않았다고 해도 상대는 애초에 1000명에 가까운 상위 랭커 입주자들을 쏟아부어도 공략이 불가능했던 보스다.
메인 던전이 입주자의 입장 인원수에 따라 보스의 스펙을 보정해 준다고는 하지만, 고작 10명 남짓한 인원이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요셉은 침을 꿀꺽 삼키며, 부하의 스마트폰을 건네받아 그들의 전투를 계속 지켜봤다.
‘이것들, 장비를 새로 맞춘 건가?’
서큐버스 군단 멤버들 전원이 이전에는 한 번도 선보이지 않았던 검은색, 흰색의 갑주들을 입고 있었다.
단순한 갑옷이라기보다는, 그것이 육체와 융화돼 마치 ‘체스말’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미친…….’
그리고 그 새로운 장비의 영향 때문인지 서큐버스 군단이 보여 주는 모습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눈으로 쫓기조차 힘든 순간속도와, 무기를 한 번 후려칠 때마다 굉음이 퍼지는 엄청난 근력.
그리고 이전에 본 적 없던 완전히 새로운 스킬들까지…….
41층 헤라클레스의 전투에서 봤던 인물들과 같은 인물들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새로운 모습의 그녀들은 헤파이토스에게 일방적으로 공격을 퍼부으며 HP를 퍽퍽 갉아 나갔다.
첫 번째 페이즈는 애초에 패턴 자체가 어렵지 않기에 HP를 50%까지 떨구는 데 채 1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는 팔콘유니온이 걸렸던 시간과 거의 비슷하거나 조금 빠른 수준으로, 서큐버스 군단의 입주자 규모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게 빠른 속도였다.
‘어차피 네놈들도 지금부터가 고역일 거다.’
HP가 50% 이하로 떨어진 직후, 헤파이토스는 조금 전과 다름없이 용광로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정요셉은 패색이 짙어질 즈음, 이 순간에 놈이 용광로 오르는 걸 못 막은 걸 뼈저리게 후회했다.
서큐버스 군단이 팔콘유니온의 전투 영상을 봤다면 당연히 놈이 올라가는 것을 막는 게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
히지만-.
‘뭐야, 이 새끼들…… 저걸 안 막아?’
서큐버스 군단은 헤파이토스의 등반을 막기는커녕, 속 편하게 제자리에서 포션이나 들이키며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후우-.”
요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그들이 팔콘유니온의 전투 영상을 보고 헤파이토스를 다른 방식으로 공략할까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놈이 용광로를 쏟고, 갑옷을 입게 만든다면 제아무리 서큐버스 군단이라 해도 절대 놈을 이길 수 없으리라 확신했다.
“멍청한 놈들.”
요셉은 입꼬리를 살짝 추켜올렸다.
불과 몇십 분 뒤,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 채 말이다.
† † †
“이제부터 본게임이니까 다들 조금만 긴장합시다.”
헤파이토스가 용광로를 열심히 올라가고 있는 와중, 세현은 여유로운 목소리로 길드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사카린이 그런 지시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허세현, 지금 용광로 올라갈 때 처리하는 게 편하지 않겠어?”
“지금 처리하면 모양 빠지잖아요. 팔콘유니온이 알아낸 패턴을 우리가 날름 받아먹는 그런 그림은 피해야죠.”
“그렇기야 하지만…….”
그때였다.
<개미 놈들, 모두 짓이겨 주마.>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용광로의 정상에 도달한 헤파이토스가 밸브를 열어 쇳물을 퍼부었다.
“피해!”
팔콘유니온이 그랬던 것처럼, 서큐버스 군단은 그것을 양쪽으로 흩어져 피해 냈다.
그 자리에는 조금 전과 같이 거대한 갑옷과 도끼가 남았고, 헤파이토스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걸 착용했다.
세현은 그 압도적인 위용에도 조금의 긴장감도 없이 나른한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힘 좀 써 봅시다.”
먼저 아자토스의 눈을 들어 올려 스킬 ‘다크니스 리턴’을 발동시키자 길드원들과 소환수들이 들고 있는 무기가 보랏빛 섬광을 펄펄 뿜어냈다.
세현에게 ‘원탁의 기사’로 힘을 부여받은 인원은 소환수로 판정이 되기에 이 다크니스 리턴 효과가 적용되는 것이었다.
준비를 마친 후, 세현의 등 뒤에서 천사 같은 두 갈래의 날개가 뻗어 나왔다.
여태 대외적으로 숨겨 왔던 ‘다이달로스의 날개’를 착용한 것이었다.
그러곤 엑스칼리버를 양손으로 들고 천천히 읊조렸다.
“성령개방.”
먼저 성령개방을 시전하자, 엑스칼리버의 검신에서 금빛 섬광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약속된 승리.”
[엑스칼리버가 ‘헤파이토스’에게 약속된 승리를 시전합니다. 헤파이토스의 스테이터스 20%를 흡수합니다.]
‘약속된 승리’를 사용하자, 헤파이토스의 육체에서 붉은 기운이 뽑혀 나오더니 세현의 몸으로 흡수되며 스테이터스가 순식간에 폭증했다. 세현의 전신에 엄청난 충만감이 넘쳐흘렀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끝낸 후, 세현은 단호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한 마디를 보탰다.
“갑시다.”
그 직후, 헤파이토스가 있는 사이에 금빛 실선을 하나 남기고 세현의 몸뚱이가 사라져 버렸다.
잠시 후-.
퍼어어어엉엉-!
세현이 서 있던 자리에 바닥이 내려앉으며 엄청난 후폭풍이 몰아쳤고, 헤파이토스의 두꺼운 갑옷의 가슴이 찌그러지다 못해 뻥 뚫려 버렸다.
<으어어어어!!>
헤파이토스의 산만 한 몸뚱이가 뒤로 부웅 날아올랐다. 놈은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형편없이 내동댕이쳐졌다.
“이건 무슨…….”
“저게 말이 돼?”
너무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길드원들도 경악한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다.
“야, 다들 허세현이 한 말 까먹었냐! 빨리 달려들어!”
그때, 사카린이 빠르게 다음 명령을 내리자 서큐버스 군단 모두가 일제히 앞으로 달려들었다.
에D츄의 등에 올라탄 세이메이는 언데드 군단과 자신의 음양술 군대를 앞세웠고, 백설희는 자신의 펫인 미노타우르스의 어깨에 올라타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아군들에게 버프를 퍼부었다.
그렇게 모든 길드원들이 반쯤 몸을 일으킨 헤파이토스에게 거의 다 접근했을 때, 세현은 공중에 뜬 채로 함성을 내질렀다.
그러자 안 그래도 ‘원탁의 기사’로 한층 강해진 길드원들의 육체가 다시 한 번 가속하며 헤파이토스에게 순식간에 접근할 수 있었다.
세현이 머리에 쓴 ‘잊혀진 왕의 왕관’의 스킬인 ‘왕의 함성’으로 자신의 소환수 판정을 받는 길드원들의 이동속도를 가속시킨 것이었다.
“다들 궁극기 아낌없이 퍼부어!”
그 직후, 길드원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궁극기를 발동시켰다. 목표는 생각할 것도 없이 명확했다. 조금 전 허세현이 갑옷을 찢어 버린 헤파이토스의 가슴 부분이었다.
콰아아앙-!
직후,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개의 궁극기가 터져 나오며 헤파이토스의 HP가 끝을 모르고 쭉쭉 빠져나갔다.
공중에서 가만히 떠 있던 세현 또한 다시 헤파이토스에게 달려들어 놈의 무릎 뒤쪽을 엑스칼리버로 갈라내며 계속 무게중심을 무너뜨렸다.
이후 길드원들의 추가타가 계속 들어가며, 놈의 몸뚱이 위에는 보랏빛 상처가 무수히 새겨졌다.
아자토스의 눈으로 강화한 길드원들의 무기가 놈의 몸에 ‘어둠 상처’를 남기고 있는 것이었다.
<크아아아! 개, 개미 따위가! 개미들 따위가! 나는 올림포스의 신이시다!>
헤파이토스는 당황한 듯 주저앉은 그대로 도끼를 허공에 붕붕 휘둘렀다.
문제는 무게중심이 잡히지 않은 탓에 그 속도도, 정확도도, 위력도 조금 전 팔콘유니온을 무참히 짓밟았던 놈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었다는 것이었다.
충분히 놈의 몸에 상처를 남겼다고 생각할 즈음-.
“모두 물러나요!”
세현의 외침에 길드원 모두가 헤파이토스에게서 빠르게 이탈했다.
그 직후, 세현은 목에 걸린 아자토스의 눈을 한 손으로 붙잡고 다음 스킬을 발동시켰다.
“상처 폭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