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145화 (145/180)

# 145

145화.

탈출

“어…… 음…… 착하지.”

설희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 천천히 손을 뻗어 미노타우르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끝을 가볍게 스칠 때마다 흰색 머리칼이 부드럽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자 미노타우르스가 천천히 양팔을 뻗어 설희를 아기 다루듯 조심스럽게 끌어안고,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녀가 흘리는 눈물에 가슴 편이 축축하게 젖어 왔지만, 설희는 조금도 불쾌한 기색 없이 끌어안고 다독여 줬다.

“엄…… 어머니…….”

“괜찮아 괜찮아.”

신의 저주로 인간과 동물 사이에서 태어나 평생을 박해받으며, 이 미궁 속에 갖혀 지내야 했던 마물.

그런 마물의 감정이 그 눈물 속에 녹아들어 설희에게 전해지는 것 같았다.

모두가 숨죽여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와중, 설희의 눈앞에 팝업창 하나가 출력됐다.

[미노타우르스를 당신의 펫으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수락하기] [거절하기]

“……”

설희는 잠시 고민에 빠진 듯 침음을 흘리다 고개를 돌려 다이달로스와 눈을 마주쳤다.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설희는 조심스럽게 허공의 수락하기 버튼을 터치했다.

[미노타우르스가 백설희 님의 ‘펫’이 되었습니다.]

메시지가 출력되는 것으로 미노타우르스는 백설희의 펫이 되어 버렸다.

이것으로 미궁 ‘라비린토스’의 보스는 더 이상 적이 아니게 된 것이었다.

“후우…… 일이 생각대로 잘 풀려서 다행이군요. 이제 미노타우르스의 도움을 받아 라비린토스를 빠져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를 지켜보던 다이달로스가 이마의 땀을 닦아 내며 말했고, 이에 세현이 되물었다.

“도움을 받는다니?”

“미노타우르스에게 걸린 저주는, 이 라비린토스의 모든 기관 장치가 발동하지 않게 해 줍니다. 그녀와 함께 움직인다면 저희 또한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을 이해한 백설희가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고, 미노타우르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미노타우르스. 우리는 이 미궁을 빠져나가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겠니?”

“물론, 물론… 어머니!”

그녀는 기쁜 듯 헤벌쭉 웃어 보이며 고개를 크게 위아래로 저었다.

이후 설희를 비롯한 세현 일행을 손으로 붙잡아 자신의 어깨에 하나씩 올렸다.

그러곤 흰 머리카락을 밧줄처럼 땋더니 모두에게 한 가닥씩 나눠주며 말했다.

“내 위에 있으면 안전, 절대 떨어지지 마.”

어눌한 말투였지만 모두가 그녀의 말뜻을 이해했기에, 머리카락을 밧줄 삼아 붙잡고 몸을 바싹 웅크려 무게 중심을 최대한 낮췄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고 출발하려던 와중-.

“츄…… 저는 어떻게 합니까 쭈인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애달픈 얼굴로 세현을 쳐다보는 에D츄의 모습이 보였다.

그 덩치가 미노타우르스와 크게 다를 것이 없기에, 아니 오히려 더 컸기에 차마 그녀의 어깨에 올라타지 못한 것이었다.

“에D츄, 미안하다. 다음 생에는 행복하게 살아라….”

“쭈, 쭈인님 버리지 말아요! 에D츄, 치즈 타령 조금만 할게요! 저를 버리지 말아 주세요오오!”

농담을 던지자 에D츄가 눈물을 찡하게 흘리며 애걸복걸을 했다.

그 모습에 세현은 피식 입꼬리를 올렸고, 설희는 곤란한 얼굴로 미노타우르스에게 되물었다.

“저 아이도 같이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니?”

“돼지…… 함께 가는 법……”

미노타우르스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뒤로 물러나 양팔을 뻗어 에D츄를 끌어안았다.

“하아앗! 이렇게 꽉 끌어안으면 에D츄 이상해져 버려욧!”

헛소리를 뱉으나 마나, 미노타우르스는 에D츄를 양팔로 끌어안아 공주님 안기로 안았다.

“꽉…… 잡아라… 돼지.”

그 말을 끝으로 미노타우르스는 앞으로 발을 내디디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길이고 뭐고 상관없이 그저 눈앞에 보이는 유리들을 박살 내며 직선 경로로 움직였기에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세현 일행이 할 일은 그저 박살 난 거울 파편에 상처를 입지 않도록 그것들을 공중에서 쳐 내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수십 분을 달리자 거울들이 사라지더니 커다란 홀이 나타났고, 그 끝자락에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문이 보였다.

미노타우르스는 에D츄를 그 문 앞에 내려다 줬고, 세현 일행 또한 하나둘씩 그녀의 어깨에서 뛰어내렸다.

“여기… 미궁의 출구…….”

“그럼 같이 나가자.”

미노타우르스가 손가락으로 빛이 쏟아지는 문을 가리키며 말했고, 설희가 대꾸했다. 이에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미궁의 저주… 못 나간다….”

그러곤 손가락으로 자신의 발목에 채워진 두 개의 족쇄를 가리켰다.

그것을 빛이 흘러 들어오는 출구 쪽으로 가까이 가져가자 스파크가 파직파직 일어나며 그녀의 몸을 뒤로 격렬히 밀어냈다.

그 모습을 본 세현이 인상을 쓰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다이달로스, 저 다리의 봉인은 풀 수 없는 거냐?”

“제가 만든 물건이기에 가능은 하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니 그녀를 두고 이곳을 빠져나감이 현명…….”

“이 새끼가 장난하나.”

순간 울컥한 세현이 붉은 뱀의 검을 앞으로 내뻗었다.

촤라라락-!

검신이 늘어나며 다이달로스의 어깻죽지를 훑고 지나갔다.

공중으로 붉은 피가 튀어 올랐고, 다이달로스는 비명을 내지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와, 이거 크레타 최고의 장인이라 그런지 아주 엿을 먹이는 방법도 창의적이네?”

세현은 엑스칼리버를 검집에서 뽑아내 그의 목전에 들이대고 위협적인 어투로 말했다.

굳이 미노타우르스를 사냥하지 않고 살리는 루트를 택했는데, 그마저도 밖으로 데리고 나갈 수 없다면 세현의 입장에서도 손해가 막심했기 때문이었다.

보통의 상황이었다면 호감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거주자의 비위를 어느 정도 맞춰 줬겠지만, 이번만큼은 자신을 제멋대로 이용한 다이달로스의 건방진 태도를 용인하고 싶지 않았다.

“여태 장단에 맞춰 줬더니 이제 와서 같이 못 나간다고? 그렇게 말하면 내가 예 어쩔 수 없네요 하하! 하고 넘어갈 것 같았냐?”

“죄, 죄송합니다.”

여태 유한 태도로 일관해 왔던 세현의 돌변에 그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저 발목에 족쇄, 네가 만들었다고 했잖아. 그럼 해제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지?”

“…….”

세현이 싱긋 웃으며 반 협박조로 말하자, 다이달로스는 잠시 침음을 흘리다 천천히 말을 이었다.

“워낙 강력한 저주가 걸린 물건이기에 그에 상응할 정도의 기운을 가진 재료를 제물로 써야 합니다. 그런 걸 이곳에서 구할 수 있을 리가….”

“이 대머리 할배가 또 약을 파네.”

세현은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인벤토리를 열어 자신의 아이템을 살펴봤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가 금빛을 내뿜는 액체가 담긴 플라스크를 하나 꺼내 다이달로스에게 내밀었다.

“이거면 되나.”

세현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노덴스의 엘릭서’. 죽어 가는 그 어떤 대상이라도 완벽히 회복시켜 되살려 낸다는 설명의 아이템이었다.

급한 상황에 쓰려고 쟁여 둔 물건이었지만, 딱히 이것밖에 다이달로스의 요구에 맞는 아이템이 없어 보였기에 선택한 물건이었다.

“오오오, 이 액체에서 엄청난 신성력이 느껴지는군요. 혹시 이걸 어떻게 얻으셨는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야, 지금 니가 나한테 그런 거 물어볼 상황이냐?”

노덴스의 엘릭서를 본 순간, 다이달로스의 얼굴은 공포가 걷히고 금세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 지어졌다.

이에 짜증이 난 세현은 복부에 주먹을 한 방 먹이는 것으로 그의 호기심을 순식간에 거둬 주었다.

“크으으윽, 죄, 죄송합니다.”

“빨리 저 족쇄 해제해.”

다이달로스는 몸을 추스른 후, 곧장 엘릭서를 들고 미노타우르스에게 다가가 금빛 액체를 손에 조금씩 덜어 손가락 끝으로 그걸 찍어 족쇄 위에 문양을 그려 넣기 시작했다.

양쪽의 족쇄에 문양이 빼곡히 그려지자 액체에서 연기가 뿜어지더니 족쇄가 빠르게 녹아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족쇄의 저주가 완전히 해제된 것이었다.

“저, 저주…… 풀렸다!”

미노타우르스가 기쁜 듯 싱긋 웃으며 설희에게 머리를 부비적대며 애교를 부렸다.

세현은 그제야 성이 풀렸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며, 다이달로스가 쓰고 남은 ‘노덴스의 엘릭서’를 낚아채며 말했다.

“다 됐으면 빨리 나가자고.”

“네…….”

세현 일행은 미노타우르스와 함께 빛이 뿜어지는 반대편으로 빠져나갔다.

[히든 퀘스트 ‘라비린토스’를 클리어했습니다.]

[타이틀 ‘미궁의 왕’을 획득했습니다.]

보상: 올스탯+5

퀘스트 클리어를 알리는 메시지가 출력됨과 동시에 몸이 두둥실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몇 초가 지났을까?

풍덩-!

따가운 감각과 함께 온몸을 차가운 기운이 덮쳐 왔다.

미궁의 출구 아래에 놓인 커다란 물웅덩이에 빠진 것이었다.

함께 빠져나온 미노타우르스가 빠르게 모두를 물에서 건져내 근처에 있는 작은 섬으로 옮겨 놓았다.

“망할 놈의 미궁 같으니….”

세현은 더러운 기분에 짜증이 치밀어 올라 옆에서 짠맛이 나는 물을 토해 내며 쿨럭대는 다이달로스를 노려봤다.

기껏 힘들게 히든 퀘스트를 클리어했건만, 실질적으로 얻은 보상이라고는 타이틀 하나가 끝이었다.

거기다가 그 과정에서 ‘노덴스의 엘릭서’마저 써 버렸으니 이번 퀘스트에 쓴 시간과 에너지를 생각했을 때 이는 명백한 적자였다.

‘저 망할 놈의 대머리 영감 말을 듣는 게 아니었어.’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기억에는, 미노타우르스를 잡으면 꽤 괜찮은 수준의 아이템을 다량으로 획득할 수 있었다.

이제 와서 백설희의 펫이 되어 버린 그녀를 잡아 죽일 수도 없는 노릇. 그건 아무리 효율과 실용성을 따지는 허세현이라 해도 미노타우르스의 눈물까지 본 이상 하고 싶지 않은 선택이었다.

“후우…. 빨리 돌아가자.”

세현은 그동안 낭비한 시간이 아까워 빨리 원래의 사냥터로 복귀하고 싶은 마음에 동료들을 재촉했다.

그렇게 이곳을 떠나려던 와중-.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시지요.”

짜증나는 대머리 할배가 세현을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남은 머리카락을 몽땅 잡아 뜯어버리고 싶었지만, 세현은 애써 화를 참으며 천천히 대꾸했다.

“왜.”

“혹시…… 아까 저주를 해제할 때 사용했던 금빛 액체를 제게 주실 수 없겠습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에D츄와 설희, 세이메이가 동시에 세현을 쳐다봤다.

다이달로스의 말이 그들이 듣기에도 어처구니없기에, 세현의 반응을 곧장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하…….”

세현은 너무 어이가 없어 뭐라 대꾸할 말도 찾지 못한 체 두 눈으로 다이달로스를 노려볼 뿐이었다.

그 낌새를 눈치챘는지 다이달로스가 양손을 저으며 다급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 그냥 달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걸 주신다면 아주 진귀한 물건을 보상으로 드리겠습니다.”

“약 팔지 말고, 그 진귀한 물건이 뭔지부터 보여 줘.”

“아 네네! 따라오시지요.”

다이달로스는 근처 숲의 깊은 곳으로 타고 타고 들어가더니 크게 위로 솟은 고목나무 아래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여기에 분명 그게 있을 겁니다. 분명 이카로스에게 이곳에 그걸 묻어 두라고 했으니….”

“피해 봐. 거기에 네가 말한 그 대단한 뭔가가 묻혀 있다 그거잖아.”

그가 볼썽사납게 양손으로 흙을 파는 게 답답해진 세현은 폰을 소환해 그곳을 퍽퍽 파냈다.

잠시 후, 정말로 그 아래에서 사람만 한 크기의 목함 하나가 나왔다.

세현이 그를 땅으로 끄집어내자, 다이달로스는 목함의 뚜껑을 열어 안에 있던 물건을 크게 들어 올렸다.

“이, 이걸 드리겠습니다!”

다이달로스의 양팔에는 천사의 날개를 떠올리게 하는 물건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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