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140화 (140/180)

# 140

140화.

기다림

초원과 높은 하늘이 광오하게 펼쳐진 42층의 필드. 그곳에서 조금은 이상한 모양새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코끼리만 한 크기의 거대 햄스터를 상대로 서큐버스 군단 길드원들 5명이 전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좌측, 우측, 후방 동시 들어가!”

길드원들의 움직임은 탑급 랭커들이라는 명성에 걸맞는 예리함이 있었다.

시간 차를 두고 연계되어 들어오는 페이크 공격, 마치 5명이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 듯한 연계기는 보통의 몬스터나 입주자였다면 잠시도 버텨 내지 못할 듯 보였다.

실제로 그녀들은 모두 A급 아니면 B급 클래스에다가 레벨도 이미 200중반대에 접어든 최정상의 전력.

이 정도라면 어지간한 필드 보스 따위는 쉽게 쓰러뜨릴 수 있다.

하지만……

“츄우우웃! 더 해 보라구요! 에D츄는 아직 만족 못했다구욧!”

거대 햄스터, 에D츄는 흰색 방패 하나로 그녀들의 공격을 어렵지 않게 막아 내고 있었다.

물론 파상 공세가 워낙 매서웠기에 어쩌다 한두 번씩 공격을 허락했지만, 그때 들어가는 데미지조차 미미한 수준이었다.

에D츄가 쓰러지기 전에 도리어 길드원 5명이 지쳐 쓰러질 것 같다고 해도 과장은 아니었다.

“허억…. 허억… 이게 뭐야.”

“이게 허세현 각성기라고?”

“이거 말이 돼? 이 멤버로 저 뚱땡이 햄스터 하나를 못 쓰러뜨린다고?”

결국, 시작한 지 15분 만에 길드원들은 항복을 선언했다.

전투를 벌이던 길드원들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이를 지켜보던 다른 길드원들은 경악했다.

좀 전의 전투는 허세현의 새로운 각성기가 어느 정도 위력인지 알아보기 위해 했던 실험이었지만, 그 결과가 예상했던 것을 한참을 뛰어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허세현 네 말은, 우리 길드원 전부한테 이 정도 수준의 힘을 줄 수 있다~ 이거지?”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리스크는 있지만.”

세현은 사카린이 팔짱을 낀 채 질문을 던진 질문에 어깨를 으쓱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 리스크가 뭔데?”

“그게 말이죠…….”

이 힘을 얻으면 그 대상은 세현에게 소환수로 판정받으며 ‘왕의 명령’을 통해 1일 1회 자유의지를 통제받을 수도 있다는 내용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뭐 이런 리스크가 있으니까 생각 있는 분만 말해 줘요.”

물론 문제는 이것뿐만은 아니었다.

모든 길드원들에게 ‘원탁의 기사’를 사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세현이 직접 조종할 수 있는 소환수의 숫자가 줄어든다는 것이고, 그러면 자연스레 길드원에 대한 의존도는 늘어난다.

여러모로 ‘원탁의 기사’라는 스킬은 강력한 만큼 동료 간에 상호 신뢰가 있어야만 제대로 활용이 가능한 스킬이었다.

세현의 제안에 길드원들이 삼삼오오 떠들며 의견을 나눴고, 잠시 후 사카린이 다시 입을 열었다.

“흐음… 뭐 나는 콜, 강해진다는데 마다할 건 없지.”

“괜찮아요? 제가 왕의 명령으로 이상한 짓 시키면 어쩌려고.”

“뭐, 너 같은 고자가 몹쓸 짓이라도 하겠냐?”

“고자? 그게 뭔 소리에요.”

“거봐, 지금 하는 말도 못알아 듣네.”

“늬예늬예.”

세현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왜 대뜸 자신을 고자라고 표현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괜히 말을 섞고 있으면 피곤해질 것 같아 더 묻진 않았다.

“뭐, 길드장한테는 퀸 능력 주면 되죠?”

“오~ 그렇게 좋은 걸 나한테 줘도 되냐?”

“어차피 이 길드에서 댁보다 센 사람 없잖아요.”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자 길드원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곧장 원탁의 기사를 사용해 퀸 ‘기네비어’를 사카린에게 발동시켰다.

“우어어어어!”

위에서 신성한 빛이 떨어지자 사카린이 즐겁다는 듯 환호성을 질렀다.

그녀의 몸 위로 검은색과 흰색이 반씩 뒤섞인 아름다운 드레스를 형상화한 것 같은 경갑옷이 덧씌워졌다.

심지어 투구는 왕관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만들어져 사카린 특유의 아름다운 보랏빛 머리카락과 결합됐다.

이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녀가 ‘퀸’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게 하고 있었다.

“오, 예쁜데?”

“사카린 언니도 하는데 괜찮지 않을까?”

“허세현은 그래도 믿을 만하잖아.”

그를 지켜보던 길드원들은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보내며 각자의 인상평가를 보냈는데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말이다.

“주군, 왜 제 모습만 이렇게…….”

“어, 음, 어… 미안하다.”

세이메이가 어깨와 고개를 축 늘어뜨린 채 한숨을 내뱉었다.

해골이 결합된 갑옷 자체가 나름의 멋이 있긴 했지만, 백설희나 사카린이 가지게 된 미형의 갑옷과 비교하자면 기괴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세현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어색한 미소와 함께 머리를 긁적이는 것뿐이었다.

“허세현. 나도 할래!”

“나도나도!”

그러던 중, 길드원 몇 명이 흔쾌히 다가와 원탁의 기사 스킬을 받는 것에 동의했다.

세현은 각자의 능력과 전투 스타일을 고려해 원탁의 기사를 사용했다.

정신없이 능력을 주고 이를 체크하다 보니 조금 더 고민해 보겠다는 3~4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원탁의 기사를 받게 됐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소환수 숫자가 팍 줄어들었구만.’

이제 세현에게 남은 것은 블랙 폰 2마리와 화이트 폰 2마리 뿐. 이마저도 남은 길드원들이 원탁의 기사를 받겠다고 생각을 바꾸면 모두 사라질 소환수들이다.

‘나 스스로의 전투력을 끌어올리는 수밖에.’

세현은 오히려 머리가 가벼워졌다.

너무 많은 소환수를 부리면서 그걸 일일이 컨트롤하다 보니 집중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오히려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지금이 낫겠다 싶기 때문이었다.

‘엑스칼리버를 성장시키고 마장기신의 연료를 채운다.’

앞으로 해야 하는 일 또한 간단해졌다. 50층에서 벌어질 대 크로노스전을 대비한 비장의 카드를 갈고닦는 것.

세현의 가슴이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상황이 정리되 가던 중, 허세현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서큐버스 군단에서 영상 편집과 행정 업무를 맡고 있는 신지영이었다.

“무슨 일이에요 신지영씨.”

[저, 저 세현 입주자님. 제가 지금 방금 헤라클레스 영상을 업데이트했는데요…….]

전화 너머의 신지영은 마치 죄라도 지은 듯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서두를 던졌다. 항상 발랄하다 못해 정신없기로 유명한 그녀였기에, 세현은 그런 지영의 모습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졌다.

“왜요? 영상에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아뇨. 그건 아닌데, 인터넷 뉴스들이랑 방송을 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상황이 좀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서 하, 하하…….]

신지영은 어색한 웃음을 남기며 전화를 끊었다.

‘문제 될 만한 건 없는데?’

세현은 고개를 옆으로 갸웃거리며 스마트폰을 이용해 포털사이트의 기사란에 접속했다.

[서큐버스 군단, 드디어 한계가 온 것인가? 41층 보스 헤라클레스에서 고전! 이대로 괜찮은가?]

[아파트 전문가, 자칫 잘못하다간 민들레 씨앗이 날아올 것이 우려된다고 의견 표명.]

[전투 중 2명의 사상자 발생. 공략 속도 늦추고 팔콘 유니온과 힘을 합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걱정의 목소리 쏟아져…….]

“이게 무슨 개소리야.”

기사들을 보는 순간, 세현은 기가 차서 저절로 욕지기가 튀어나왔다.

41층 헤라클레스의 난이도는 관리자의 개입으로 어지간한 시즌 보스 따윈 가소롭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려웠다.

그런데 언론은 서큐버스 군단이 이제 한물갔으며, 그들이 계속 선두로 치고 나갈 경우 어느 층에서 공략이 막혀 민들레 씨앗이 날아올 위협이 있다고 했다.

이 개 같은 논리는 거기서 더 나아가 공략을 멈추고 팔콘 유니온을 기다려야 한다는 수준까지 다다랐다.

“워~ 이거 물에 빠진 사람 구해 놨더니 이젠 보따리 내놓으라고 할 기세네.”

옆에서 세현의 스마트폰을 내려다본 사카린이 너스레를 떨었다.

세현은 이빨을 빠득 갈며 천천히 대꾸했다.

“안 봐도 비디오지, 이거 팔콘 놈들이 보도 자료 뿌린 걸 기레기 새끼들이 받아 적은 거예요.”

“으음…. 왜 그리 생각하는데?”

“이 정도 규모로 언론전을 할 수 있는 놈들이 그놈들 말고 또 있어요? 거기다가 얼마 전에 팔콘 유니온이니 뭐니 만들었으니 대대적인 홍보도 때리고 싶겠죠.”

세현이 이렇게 추측하는 것은 당연했다. 서큐버스 군단을 깎아내리는 기사 중간 중간에 새로 결성된 팔콘 유니온과 SS급 입주자 그로기를 띄워 주는 뉘앙스의 기사와 리플들이 종종 보였기 때문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속을 수도 있겠지만 세현이 보기엔 너무 티가 나서 토악질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 머저리 새끼들 뭘 올렸는지나 좀 보자.”

세현은 미간을 구기며 유튜브에서 팔콘의 채널을 찾았다.

[40층 아자토스의 눈 공략 / 팔콘 길드 길드장 / SS급능력자 그로기 ‘아이스 오브’ 대작렬!]

아니나 다를까, 유치찬란한 제목의 영상이 유튜브에 떡하니 30분 전에 업데이트돼 있었다.

아마도 이 영상 업데이트에 맞춰 언론들도 움직인 것이리라.

세현은 분노를 차갑게 억누르며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아자토스의 촉수를 상대하는 천여 명에 가까운 입주자들의 모습이 보였고, 그들과 힘을 합쳐 촉수들에 아이스 오브를 먹이는 그로기의 모습이 보였다.

카메라를 몇 대나 썼는지도 세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때깔 하나만큼은 대단한 영상이었다.

심지어는 CG를 덧씌운 것이 아닐까 싶은 장면들도 종종 목격됐다.

‘천 명 가까이 달려들어서 고작 촉수 4개 잡아 놓고 선동질을 해?’

서큐버스 군단이 상대했던 촉수의 개수는 7개였다.

게다가 촉수 하나하나의 위력도 팔콘 유니온이 상대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했다.

그런 주제에 이 따위 영상으로 서큐버스 군단을 뛰어넘네 뭐네 하는 것이 웃길 따름이었다.

[Jangbob: 에이~ 솔직히 그래도 서큐버스 군단이 더 강하지 않나? 던전은 한 번 클리어하면 난이도가 떨어지잖아.]

[FMdo: 으~ 서큐군단 빠돌이 개극혐이죠~ SS급 입주자 능력 인정 못 하죠~ 이중성 역겹죠~ 전문가 팩트에 헤롱헤롱하죠?]

[Kumtata: 말이 너무 심하시네, 솔직히 서큐버스 군단이 저는 그래도 낫다고 봄.]

[DIpo23: ㅋㅋㅋㅋ 피의 쉴드 보소, 누가 봐도 팔콘 유니온이 나음~ 정신승리 ㅇㅈ? 어 ㅇㅈ~]

리플에서도 유저들끼리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반복해서 보이는 몇몇 개 아이디가 서큐버스 군단을 계속 깎아내리고 있는 것이, 척 보기에도 한성 그룹의 돈이 이에 투입된 것이 훤히 보였다.

“뭐야, 이거 생각보다 분위기 심각해지네? 이거 어쩌냐?”

예상치 못한 흐름이 만들어지자 길드원들이 머리를 모아 각자의 생각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그 얘기는 금세 즉흥적인 토론이 되었고, 여러 의견이 오갔다.

세현은 그를 묵묵히 들으며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다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한동안 공략 속도를 좀 늦추도록 하죠.”

“이잉? 공략 속도를 늦춰, 그게 무슨 말이야?”

“쟤가 요즘 너무 바빠서 미쳤나…….”

황당한 제안에 길드원들이 당황해서 되물었다.

하지만 세현은 조금의 동요도 없이 차분히 말을 이었다.

“우리가 위기네 뭐네 떠들면 저놈들 먼저 보내 주면 그만이잖아요?”

“하지만 그러면 최초 클리어 타이틀이니 아이템이니 괜찮은 거 다 뺏기잖아.”

“그 정도는 포기해도 괜찮아요. 어차피 42층에서 44층까지는 별 대단한 보상은 없을 거니까. 그 대신 중요한 건 저희가 먹는 거죠.”

“중요한 거?”

“45층, 그리고 50층에서 그놈들은 분명히 첫 트라이에 공략 성공 못 할 거예요. 그러면 그때, 우리가 나서서 팔콘 유니온인지 뭔지 하는 듣보잡 놈들보다 훨씬 압도적으로 클리어해 버립시다.”

“하지만 저놈들이 클리어 못 한다는 보장이 없잖아? 괜히 최초 클리어 타이틀만 뺏기는 거 아닌…….”

부길드장 메디아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그러자 세현은 단호하고 확신에 가득 찬 어조로 한 마디를 보탰다.

“절대로 클리어 못 해요, 이건 제가 보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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