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
139화.
팔콘 유니온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가 끓어오르며 세현의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백설희가 새로 얻게 된 각성기가 얼마나 대단한 위력을 가졌는지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엄청난 스킬을 가져오셨네.”
“네, 그, 그래요?”
“이거 한 방이면 전세를 완전히 뒤집어 놓을 수 있겠어요.”
세현의 말은 조금도 과장이 없었다.
순식간에 아군 전체의 HP를 회복시키고, 모든 능력을 50%나 뻥튀기시키는 각성기.
이는 다대다 전투에서 분명 전투를 뒤집어 버릴 수준의 큰 위력을 발휘할 게 분명했다.
“세현 씨 각성기는 어떻게 됐어요?”
“아… 그게 말이에요.”
세현은 천천히 ‘원탁의 기사’에 대해 설명하며, 에D츄와 세이메이가 얻은 능력을 선보였다.
“어, 엄청나네요. 완전히 다른 클래스가 돼 버렸어요.”
이를 본 백설희가 놀란 눈으로 말하는 중, 세현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설희 씨. 혹시 화이트 비숍의 능력을 가져보실 생각 없어요?”
“화, 화이트 비숍이요?”
“네, 기본적으로 힐러다 보니까 설희 씨 서포트 능력이랑 합쳐지면 시너지가 좋을 것 같아서요. 아. 물론 거절하셔도 되요,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라…….”
세현은 권유를 던지면서도 설희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줬다.
이 원탁의 기사를 보유하게 되면 전투력이야 비약적으로 상승하지만, 소환수로 판정이 되기에 ‘왕의 명령’을 통해 세현에게 자율 의지를 통제 당할 위험이 컸다.
딱히 이를 이용해 일을 벌일 생각은 없었지만, 보통의 입주자라면 아무리 힘이 탐난다 해도 꺼림칙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세현은 일단 그 부분을 정확히 설명해 줬고, 설희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세현 씨만 괜찮으시다면 그 능력, 저도 가지고 싶어요. 저 같은 게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설희 씨니까 괜찮죠.”
“네?”
설희가 우물쭈물 하고 있는 사이, 세현이 어깨에 손을 턱하고 걸치며 대꾸했다.
“믿을 수 있으니까.”
마치 고백이라도 하는 양 진지한 분위기에 설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지만, 세현은 말을 하는데 정신이 팔렸는지 이를 전혀 캐치하지 못했다.
“생각이 그러시다면… 감사히 받을게요.”
설희는 수줍게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긍정의 뜻을 대신했다.
세현은 곧장 원탁의 기사를 발동시켰고 잠시 후, 성스러운 빛이 내리쬐며 설희의 몸 위에 화이트 비숍의 형상을 재가공한 듯한 갑옷이 덧씌워졌다.
등 쪽이 살짝 파인 드레스 위로는 두 갈래로 나뉘어 길게 뻗은 시스루 풍 망토가 날개처럼 하늘하늘 흩날렸고, 다리 라인과 허리 라인이 유려하게 드러난 것이 설희의 시원시원한 인상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드는 복식이었다.
“우와-.”
설희는 그런 자신의 모습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돌려 등 쪽을 바라보며 몸을 빙글 돌려 보였다.
등에 달린 두 갈래의 망토가 함께 살랑살랑 따라 돌며, 우아한 백조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주군, 왜 설희 공의 모습만 저리 아름답게 변한 것입니까. 왜 저는…….”
그를 옆에서 지켜보던 세이메이가 뭔가가 섭섭한 듯 맥 빠진 얼굴로 되물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입은, 다소 컬트적인 느낌의 의상과 설희의 아름다운 의상이 대비되는 것이 불만인 모양이었다.
“난들 알겠냐…….”
이에 세현은 어깨를 으쓱하는 것으로 얘기를 끝냈다.
† † †
“체력 빠진 사람은 뒤로 빠져! 앞뒤로 교대하면서 천천히 피를 뺀다!”
“A급 이상 빨리빨리 움직여! 첫 번째 촉수 먼저 무력화시킨다!”
붉은 하늘 아래 깔려 있는, 흡사 지옥을 연상하게 하는 40층의 필드 위에 수백 명의 입주자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들의 한가운데에는 시즌4의 최종 보스인 아자토스의 촉수 4개가 높게 치솟아 다양한 패턴의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촉수는 7개였겠지만, 이미 서큐버스 군단이 이곳을 클리어하고 지나간 덕에 난이도가 하락해 4개의 촉수만 상대하면 되는 상황.
하지만 그럼에도 난이도는 간단하지 않았다.
‘서큐버스 군단, 그 미친 새끼들은 이걸 겨우 10명 조금 넘는 인원으로 클리어했다 그거지?’
큰 덩치에 작은 실눈을 가진 남자, 그는 이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바위 언덕 위에서 전황을 보며 핸즈프리 헤드폰을 이용해 쉴 새 없이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정요셉. 얼마 전까지 팔콘의 인사팀장이었으나, 길드장의 실종 이후 부길드장으로 승진한 남자였다.
물론 그가 이 자리에 오기에는 많은 고난이 있었다.
전 길드장 최은철의 최측근이자 대학 동창이던 ‘김현’을 따르던 계파와 벌였던 치열한 정치 싸움은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릴 정도였다.
싸움 끝에 길드를 장악한 요셉. 그는 팔콘의 메인 스폰서였던 한성 그룹 회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부길드장으로 유례없는 초고속 승진을 하며 팔콘 길드의 재건을 진두지휘했다.
요셉은 S급 수준의 전투력은 없었지만, 그에 준하는 판을 보는 능력이 있었다. 실제로 몰락을 거듭하던 팔콘 길드는 그가 길드장을 맡은 후 다시 반등하기 시작했고, SS급 능력자 ‘그로기’를 영입한 후, 예전만은 못하지만 어느 정도 위상을 되찾은 것은 사실이었다.
거대 길드 연합체인 ‘팔콘 유니온’의 결합 또한, 정요셉이 정재계 사이에서 끊임없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통해 만들어 낸 결과였다.
대외적으로 크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최은철의 실종이라는 기회는 정요셉을 거물로 만드는 발판이 되었다.
[길드장, 영상한 편 따야 하니까 지금 앞으로 나서서 큰 거 한 방 먹여!]
[오, 오케이!]
전황을 지켜보던 요셉이 현 길드장인 그로기에게 오더를 내렸다.
한창 촉수 사이를 누비며 전투 중이던 그로기가 순순히 요셉의 말에 긍정의 뜻을 보내며, 주력 스킬인 아이스 오브를 준비했다.
“워우, 동료들! 촉수에 이거 한 방 먹일 거니까 길을 열어 줘 맨!”
그의 손 위에 푸른빛의 구체가 나타나더니 급격하게 커졌다.
그사이 팔콘 유니온의 입주자들은 제각기 촉수를 커버함과 동시에 전방의 공생충들을 제거하는 것으로 그가 촉수로 향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 또한 정요셉이 내린 오더에 따라 각 길드 길드장들이 체계적으로 움직여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다.
<자, 드론 붙이고 캠코더도 정신 차리고 똑바로 찍어. 이번에 한 방 먹이는 모습이 이번 전투 하이라이트니까.>
그사이, 은철은 영상 촬영을 담당하는 인원들에게 다시 한 번 오더를 내렸다.
허공에 떠 있는 수십 대의 드론들.
몸에 액션캠을 달고 있는 입주자들이 그로기의 일격이 가장 멋지게 연출될 수 있는 위치를 찾아 빠르게 움직였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난 후, 정요셉은 큐 사인을 보냈다.
[길드장, 한 방 먹여 버려!]
“오케이!”
그로기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가장 정면에 있는 촉수를 향해 내달렸다.
공생충이나 보라색 구체가 쉴 새 없이 날아들었지만 바로 옆에 따라붙은 탱커, 근거리 딜러들이 이를 안전하게 쳐 내며 그를 안전하게 지켰다.
“우오오오오오오오!”
그로기는 촉수를 타고 빠르게 공중으로 치고 올라갔다.
그리고 몸을 위로 풀쩍 띄워 올려 거의 수백 미터 상공까지 올라간 후, 양팔 사이에서 회전하고 있는 구체를 전력으로 아래로 내리꽂았다.
“위에서 온다! 다들 전투 중지하고 피해!”
이에 한창 전투 중이던 입주자들이 빠르게 이곳을 이탈했다.
“파티 타임!”
촤아아아아아아악-!
그로기의 외침과 함께 아이스 오브가 네 개의 촉수가 있는 중심부로 떨어지며 사방으로 거대한 고드름을 발사했다.
그것이 촉수의 외벽에 충돌할 때마다 피부가 퍽퍽 소리를 내며 터져 나갈 뿐 아니라, 공생충들까지 이에 꿰뚫려 깡그리 죽어 나갔다.
잠시 후, 네 개의 촉수는 흡사 얼음 가시에 잔뜩 찔린 고슴도치처럼 변해 버렸다.
단 한 번의 공격에 각 촉수의 HP바 또한 20% 이상이 한 번에 감소했다.
이런 아이스 오브의 가공할 위력을 멀리서 지켜보던 정요셉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SS급이야. 저놈만 있으면 난다 긴다 하는 서큐버스 군단도 충분히 해볼 만하지.’
잠시 후, 입주자들은 다시 공격을 재개했고 아자토스의 촉수들은 끝끝내 힘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팔콘 유니온이 시즌4 공략에 성공한 것이었다.
중국, 러시아, 북한의 길드 연합체인 ‘공산연맹’이 아직 39층에서 지지부진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대외적으로 반공 코드를 자극하면서 팔콘 유니온의 입지를 굳힐 수 있는 성과였다.
‘이 기세면 석 달 내로 서큐버스 군단도 따라잡을 수 있겠는데.’
이에 정요셉은 곧장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회장님. 정요셉입니다. 방금 시즌4 공략 성공했습니다. 영상 촬영도 끝났고 잘 편집해서 언론사에 보도 자료 빠르게 돌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네네. 넵, 감사합니다. 그럼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요셉은 전화를 끊음과 동시에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조금 전 전화는 한성 그룹 회장 최진형에게 건 것으로, 그는 조금 전 보고에 꽤 만족한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최은철이 길드를 운영할 때보다도 오히려 지금의 체제를 더 마음에 들어 했다.
고집이 강하고 제멋대로였던 최은철보다, 고분고분하고 충실히 명령을 수행하는 정요셉이 더 다루기 쉽다는 판단이 있기 때문이었다.
정요셉 또한 이런 상황을 정확히 자각하고 있으며, 최진형 회장에게 그가 원하는 모습을 철저히 보여 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평생 최은철의 눈치를 보고 살았던 그였기에 이 정도 비위 맞추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혹여나 최은철 그 새끼가 다시 나타난다 해도 이 자리는 절대 내주지 않겠어.’
요셉은 천운으로 만들어진 지금의 자리를 호락호락 놓을 생각이 없었다.
혹시라도 실종된 최은철이 돌아온다 해도, 최진형 회장이 자신을 밀어줄 수 있도록 모든 그림을 만들 것이다.
은철은 찬란한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며, 헤드셋을 들어 다시 한 번 오더를 내렸다.
“영상팀은 영상 바로 편집팀에 제출하고, 각 길드장 및 임원들은 길드원 돌려보낸 후에 오늘 밤 8시까지 팔콘네스트에 모여 보상 관련 문제와 시즌5 플레이 관련해서 바로 회의 들어간다.”
[알겠수, 총장.]
[오케이~ 이따 보자구.]
[공략 고생했어!]
이에 연합에 포함된 길드 길드장들이 일제히 답신을 보내왔다.
예전이라면 요셉은 감히 눈도 마주치지 못했을 상위 입주자들이 이제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여태 느껴 본 적 없던 전능감이 은철의 몸을 휘감았다.
마치 세상이 자신의 것이 된 것 같았고, 시간이 지나면 우주조차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끝없는 자신감이 샘솟았다.
[부길드장님, 지금 유튜브에 서큐버스 군단 41층 보스전 편집본 떴습니다.]
“서큐버스 군단이라… 오케이, 바로 확인하지.”
그렇게 한참 자신의 권능감의 여운을 즐기던 중, 영상 쪽을 전담하는 입주자 한 명이 서큐버스 군단의 소식을 알려 왔다.
잠정적으로 가장 큰 경쟁자가 될 존재들이기에 요셉은 길드장이 된 이후로 이들의 움직임을 언제나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허세현, 백설희 그 년놈들은 언젠간 내 발아래서 개처럼 기게 해 주마.’
물론 여기엔 과거에 자신이 겪은 수모에 대한 복수의 감정도 다소 섞여 있었다.
요셉은 순간의 감정을 추스르며 곧장 유튜브 앱을 열어 영상을 재생했다.
41층의 보스 헤라클레스와의 전투를 편집한 영상이었다.
‘뭐야 이것들, 40층보다 훨씬 고전하고 있잖아?’
요셉은 미묘한 표정과 함께 침음을 흘렸다. 항상 어렵지 않게 매 층을 클리어했던 서큐버스 군단이 예상과 달리 꽤 고전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죽음 직전까지 가는 아슬아슬한 위기가 몇 번이나 있었고, 허세현은 자신이 자랑하는 소환수를 전투 도중 2마리나 잃었다.
‘호오, 이런 그림이라면 장난질 좀 해 볼 만하겠는데?’
요셉은 머릿속에 묘책을 떠올리며 한쪽 입꼬리를 추켜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