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
136화.
왕의 시련
쩌저저적-!
바위에 서서히 금이 가면서 박혀 있던 검이 서서히 뽑혀 나왔다.
“히이이익! 검이 뽑힌다!”
“사제를 불러와, 빨리!”
“아, 알겠습니다. 행님!”
이를 지켜보고 있던 장성들은 호들갑을 떨며 우왕좌왕했다.
잠시 후, 바위에 거의 매달리다시피 했던 세현의 몸뚱이가 뒤로 날아가 버렸다.
검이 한순간에 쑥 빠져 버린 탓이었다.
“아우우우우! 뭔 놈의 검 하나 뽑는 게 이리 힘들어!”
세현은 허리를 손으로 문지르고,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검을 뽑긴 했지만, 땀이 흐른 몸에 흙과 풀이 덕지덕지 들러붙어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 검이 뭔데?”
정신을 차린 후, 손에 들린 검을 쳐다보자 그 위로 반투명한 팝업창이 떠올랐다.
[#. 무기 / 약속된 승리의 검 엑스칼리버]
-왕으로 선택된, 고귀한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전설의 성검. 그 칼집인 아발론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는 불사에 가까운 회복 능력을 선사한다. 칼리번, 혹은 엑스칼리부스라고도 불린다.
레벨: 1
등급: SSS(신화)
공격력: 1티어 F에서 시작, 레벨에 따라 성장.
착용 제한: 착용자의 클래스가 ‘킹’일 경우에만 착용 가능.
▶추가 옵션
-승리를 위한 성장: 엑스칼리버는 전장의 경험을 통해 무한히 성장할 수 있습니다. (패시브 / 적을 제거할 시 무기 레벨 증가)
-(세트 발동 효과) 아발론: 엑스칼리버의 검집은 사용자에게 무한에 가까운 생명력 회복을 제공합니다. (패시브 / 초당 HP 10% 회복 / 검집 ‘아발론’ 보유 시에만 사용 가능)
-성령개방: 엑스칼리버가 빛을 내뿜으며 공격력을 극단적으로 증가시킵니다. 이 빛은 여러 형태로 활용할 수 있읏빈다. (액티브 / 쿨타임 없음 / 발동 시 초당 MP 3% 감소)
- 왕의 자격: 왕이 보유한 군대가 성령의 가호를 받아 보호막을 지니게 됩니다. (액티브 / 쿨타임 5분 / MP 1당 10의 보호막으로 전환되며 왕이 지정한 자에게 부여합니다.)
-약속된 승리: S급(전설)이상의 적을 적수로 지정할 경우 상대의 스테이터스 20%를 흡수해 자신의 것으로 만듭니다. (액티브 / 쿨타임 1시간 / 지속 시간 10분 / MP 1000 소모)
“미친… 이거 뭔데?”
옵션을 두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하나만 달려도 사기급이라 불릴 만한 미칠 듯한 옵션이 동시에 4개나 달려 있으며, 최대 SSS+급의 공격력을 발휘하는 양손검.
말 그대로 신화급이라는 등급에 걸맞은 수준의 아이템이었다.
엑스칼리버를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는 사이, 앞쪽 성당에서 사제복을 입은 흰 수염의 노인이 지팡이를 들고 허겁지겁 달려왔다.
“오오, 오오오오! 내 살아생전에 이런 광경을 볼 줄이야!”
그는 감격한 얼굴로 엑스칼리버를 지긋이 바라보더니 갑자기 세현을 향해 무릎을 꿇고 인사를 건넸다.
“영광입니다, 고귀한 자이시여! 제 이름은 멀린, 이곳에서 오랜 시간 주인을 기다리고 있던 마법사입니다.”
“멀린? 엑스칼리버?”
그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는 순간, 세현은 과거에 그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 클래스를 받을 때 봤던 환상에서 봤던 할배군.’
헬시안에게 처음 클래스를 받을 때, 세현이 잠시 꾸었던 꿈.
이 노인은 그 꿈에서 각종 언데드와 마수들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적들을 박살 냈던 네크로맨서로 등장했었다.
“그렇습니다! 당신이 뽑으신 그 검은 엑스칼리버, 브리튼의 왕이 될 운명을 가진 자만이 그 검을 바위에서 뽑을 수 있는 저주가 걸려 있었습니다.”
“브리튼의 왕? 운명?”
도무지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지 알 길이 없기에 세현이 할 수 있는 것은 어색한 얼굴을 한 채 뺨을 손가락으로 긁는 것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을 멀린이라 밝힌 노인은 더더욱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을 줄줄 늘어놓았다.
“그렇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아서 펜드래건! 위대한 브리튼의 왕 우서 펜드래건과 이그레인 사이에서 태어난 고귀한 자이십니다! 저와 함께 캐멀롯으로 돌아가 성배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실 운명을 지니신 자이기도 하죠.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아따, 이 할배 엄청 투 머치 토커네.’
멀린은 프리스타일 랩이라도 하듯 이야기들을 쏟아 냈다.
세현은 그걸 들으면서 자신이 어떤 처지인지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이거, 아서 왕 신화인데?’
원탁의 기사들과 함께 성배를 찾아 나서는 위대하고 용맹한 영웅 아서 왕의 신화.
세현은 본인 스스로가 아서 왕이 되어 그의 기억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 저와 함께 캐멀롯으로 행차하시지요. 진정한 왕의 귀환이 될 것입니다!”
장장 30여 분에 걸친 설명 끝에 멀린의 설명이 모두 끝이 났다.
몇 분만 더 있으면 귀에서 피가 날 것 같았기에 세현은 살았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메모리얼 던전 PART1 - ‘왕의 탄생’을 종료합니다.]
[새로운 스킬 ‘원탁의 기사들’을 획득했습니다. 기존 스킬 ‘작위 수여’가 원탁의 기사들과 통합됩니다.]
[스킬 ‘원탁의 기사들’에 다음 항목이 추가됩니다.]
- 대현자 멀린
그러자 음성 메시지가 출력되며 세현의 시야가 어둠으로 물들더니 또 다른 음성이 추가로 들려왔다.
[메모리얼 던전 PART2 - ‘왕비 기네비어’를 시작합니다.]
잠시 후, 시야가 돌아왔다.
주변 풍경이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는데, 이번에는 화려한 왕성의 내부였다.
“오오……”
그 광경에 압도된 세현이 자신의 몸을 둘러보자, 누가 보기에도 왕이 입을 법한 화려한 복식이 몸에 덧씌워져 있었다.
“아서 왕이시여.”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세현은 순간 숨이 턱 막혀 왔다.
화려한 금발 롤 웨이브에 하늘하늘하면서도 품격이 느껴지는 붉은 드레스를 입은 백인 여성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 아니 아무 일도 없어.”
“응? 왜 갑자기 그런 말투를 사용하시는 겁니까?”
“말투라니?”
“평민들이나 쓸 법한 언어를 쓰고 계시지 않습니까.”
“어……”
세현은 말문이 턱 막혔다가 간신히 변명거리를 생각해 급하게 뱉어냈다.
“배, 백성들의 생각을 알고 다스리려면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이해해야 하니까!”
“과연 그렇군요. 폐하의 깊은 생각을 살피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무 말 대잔치로 내뱉은 말에 아마도 왕비로 추측되는 금발의 미인이 미소를 머금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런 미녀가 자신을 보며 웃어 주는 것을 보자니 오히려 세현 쪽이 황송한 기분이 들 지경이었다.
“그럼 슬슬 함께 가시지요, 곧 연회가 시작될 겁니다.”
“연회라?”
“폐하께서 야만족과의 전투에서 승전하신 것을 축하하는 축하연이 있지 않습니까. 혹시 잊으신 겁니까?”
“아아 맞다! 그랬지 그랬어!”
고개를 옆으로 갸우뚱하는 기네비어 왕비의 모습에 세현은 괜히 헛기침하며 적당히 대꾸했다.
“그럼 제 손을 잡아 주시지요.”
세현은 왕비의 손을 가볍게 맞잡고 붉은 카펫이 깔린 통로를 따라 앞으로 터벅터벅 걸었다.
“폐하!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위대한 브리튼에 영광이!”
그때마다 근처에 서 있던 귀족이나 하인들이 세현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건네 왔다.
‘이거 영 부담스럽구만.’
아무 이유도 없이 계속 인사를 받고 있자니 약간 기가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복도의 끝을 지나자 그곳에는 거대한 원형의 홀이 세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풍스러운 샹들리에,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악사들과 보는 것만으로도 침이 꿀꺽 넘어가는 산해진미들까지….
세현은 입을 벌린 채 멍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폐하, 모처럼의 승전 기념 연회이니 건배 제의를 하시지요.”
“거… 건배 제의! 그래, 그거 좋지.”
기네비어 왕비가 세현에게 주석으로 만들어진 잔을 건네더니 시종이 가져온 포도주 병을 조심스레 기울여 잔을 3분의 2쯤 채워 줬다.
그러자 연회장을 가득 메운 귀족과 기사들의 시선이 세현에게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건배사는 뭐로 해야 하나…….’
애초에 본인이 어떤 전쟁에서 승리했는지도 모르는데다가 이런 걸 해 본 적이 없기에 당장 멘트가 떠오를 리가 없었다.
그래도 뭐라도 당장 뱉어내야 할 분위기였기에 세현은 최대한 머리를 쥐어 짜내 천천히 입술을 뗐다.
“제군들… 고생 많았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모두 뛰어난 제군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브리튼을 위하여!”
“브리튼을 위하여!”
손발과 시공간이 오그라드는 느낌을 가까스로 참아 내며 세현은 잔을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홀에 있던 모든 인원이 세현을 따라 잔을 들어 올리며 복창했고, 그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세현은 침을 꿀꺽 삼킨 후, 포도주를 입술에 가져다 댔다.
‘젠장…… 별일 없겠지?’
시즌2에서 연회를 즐기다 술탄에게 뒤통수를 맞은 기억이 있어 찝찝했지만, 다행히도 포도주의 맛은 평범했고 몸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자, 그럼 연회를 시작합시다.”
잠시 후, 기네비어 왕비가 다시 한 번 포도주잔을 들어 올리며 외치자 본격적인 승전 연회가 시작됐다.
“축하드립니다, 폐하! 폐하의 무공에 다시 한 번 감동했습니다!”
“브리튼 역사상 다시 없으실 최고의 선왕이십니다!”
그러자 귀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앞으로 몰려와 칭찬 세례를 퍼부었다.
세현은 별수 없이 마음에도 없는 인사치레를 하며 그들을 도와야 했고, 기네비어 왕비는 특유의 화려한 언변을 이용해 옆에서 이를 도왔다.
‘왕 노릇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만.’
거의 1시간 내내 귀족들의 인사 공세에 시달린 세현은, 음식 테이블 끝에 마련된 화려하다 못해 부담스러운 의자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숨 내쉬었다.
“피곤하십니까, 폐하?”
“아, 기네비어.”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기네비어 왕비가 입꼬리를 싱긋 올리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냐아냐, 괜찮아.”
피곤한 와중에도 그녀의 햇살 같은 미소를 보고 있자니 조금은 힘이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세현은 고개를 좌우로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자 그녀는 오른손을 천천히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그럼 같이 춤을 추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춤? 그런 건 잘 못하는데.”
“폐하가 춤을 못 추신다뇨, 오늘따라 겸손이 지나치시군요.”
“아니 그게 아니라 진짜로….”
말하고 있는 사이, 기네비어가 가볍게 손을 잡아끌어 세현을 일으켜 홀의 중앙 쪽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홀에 울려 퍼지던 악사들의 연주가 금세 다른 음악으로 변경되었다.
“폐하가 가장 좋아하시는 곡이군요, 잘 이끌어 주시길.”
‘미치겠네….’
여기까지 와서 춤추기 싫다고 팔을 뿌리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세현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무도회 춤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를 대충 흉내 내기로 결심하고 팔과 다리를 옆으로 쭉 밀었다.
‘어라?’
그러자 거짓말같이 다음 동작에 대한 그림이 머릿속에 선명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음악에 맞춰 몸이 물 흐르듯 움직였고, 세현은 누가 보기에도 꽤 그럴싸한 무도회 춤을 추고 있었다.
“역시 잘하시지 않습니까?”
“그… 그러게.”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음악에 녹아들어 춤을 이어 갔다.
악사들의 음악이 점차 빨라지며 춤도 격정을 더해 갔고, 그때마다 기네비어와 세현의 손과 발, 시선이 착착 맞아 들어가는 것이 묘한 쾌감을 더했다.
홀 안에 세현과 기네비어 왕비, 오직 두 사람만 남은 것 같은 묘한 감각이 전신을 감쌌고 세현은 귀신에라도 홀린 듯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춤을 이어 갔다.
그렇게 얼마나 더 시간이 지났을까.
악사들의 음악이 절정을 지나 끝에 다다른 순간, 세현은 마치 꿈에서 깬 듯한 기분과 함께 현실로 돌아왔다.
“하아… 하아… 아름다운 춤이었습니다. 폐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하게 맺힌 채 숨을 가쁘게 내쉬는 기네비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 그래.”
그 직후, 귀족들의 박수와 탄성 소리가 다시 한 번 홀을 가득 채웠다.
[메모리얼 던전 PART2 - ‘왕비 기네비어’를 종료합니다.]
[스킬 ‘원탁의 기사들’에 다음 항목이 추가됩니다.]
-왕비 기네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