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
133화.
헤라클레스
“화이트 나이츠, 블링크!”
헤라클레스가 사카린을 향해 몽둥이를 내리찍기 직전, 화이트 나이츠의 몸이 번쩍이며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세현의 속도로는 헤라클레스를 따라잡을 수 없기에 공간을 도약하는 스킬 블링크를 이용해 급한 대로 사카린을 구해 내기 위함이었다.
퍼걱-!
몽둥이가 화이트 나이츠의 투구를 때리며 세차게 바닥에 처박혔다.
단 한 번의 공격을 허용하는 것만으로 HP가 20%도 남지 않은 상황. 하지만 사카린을 구하기 위해서는 대안이 없었다.
세현은 그사이 사카린의 몸을 부축해 일으킨 후, 재빨리 거리를 벌리며 그녀의 입으로 포션을 밀어 넣었다.
원거리에서 화이트 비숍의 치료 마법을 때려 부으며, 반대편으로 꺾여 피를 줄줄 흘리던 다리도 서서히 제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젠장. 쪽팔리게……”
사카린은 이런 자신의 모습이 치욕스럽다는 듯 이를 빠득 갈며 전투태세를 취했다.
“죽인다! 죽인다아아!!”
헤라클레스는 이런 상황 따위 봐주지 않겠다는 듯 제멋대로 날뛰었다.
세현은 재빨리 화이트, 블랙 룩을 붙여 놈의 움직임을 최대한 저지했지만, 메인 탱커인 에D츄가 부재한 탓에 두 룩만으로 헤라클레스를 막아 낼 수 없었다.
‘젠장, 포 떼고 장 떼고 하는 기분이구만!’
퀸, 작위 수여, 에D츄라는 세 개의 카드가 없는 상황.
거기다 헤라클레스는 세현이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한다.’
세현은 일단 아자토스의 눈으로 ‘다크니스 리턴’을 발동시켜 소환수들의 무기를 모두 강화했다.
이를 통해 단순히 공격력을 강화시키는 것뿐 아니라 놈의 몸뚱이에 어둠의 상처를 남기고, 이를 폭발시켜 추가 데미지를 노리려는 것이었다.
“최대한 피해! 방법을 찾을 때까지 시간을 끄는 거다!”
사카린 또한 별다른 수가 나지 않았기에 최대한 정면 승부를 피하며 헤라클레스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저건…….’
그렇게 헤라클레스와 한창 숨바꼭질을 하던 중, 세현은 판테온 계단 끝자락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붉은색의 긴 생머리를 한 흰 피부의 미남자, 피그말리온의 동굴에서 마주쳤던 관리자 ‘리베르’이었다.
그가 서 있는 위치는 역광이 비춰 모습이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어렴풋이 미소를 띠고 있는 그의 입꼬리는 세현에게 한 가지 직감이 들게 했다.
‘이거, 저 새끼가 한 짓이구나.’
눈앞에 있는 괴물 같은 헤라클레스가 리베르의 농간이라 해도, 현재 세현이 할 수 있는 건 언젠간 저 재수 없는 빨간 머리를 찢어 버리겠다고 생각하며 눈앞의 전투에 집중하는 것뿐이었다.
“길드장, 내가 소환수들로 어떻게든 저놈 발을 묶어 볼 테니까 그때 그 잘난 궁극기 때려 박아요!”
“그, 그래도 괜찮냐? 너 소환수들 해제되면 다시 키우기 힘들다며.”
“아 쫌! 지금 그런 거 따질 때냐고요!”
한참의 숙고 끝에 세현의 내린 결정은 소환수들을 방패로 내세워 놈의 발을 묶고 딜을 때려 박는 전술이었다.
자칫 잘못했다간 소환수들까지 공격에 휘말릴 수 있지만, 소환수를 잃는 것이 차라리 길드원들을 잃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세이메이, 시키가미랑 오니로 저놈 어그로 끌고, 포박술로 최대한 저지해 봐! 설희 씨는 저한테 방어력 올려 주는 버프 걸어 주세요!”
“네, 주군!”
“넵 세현 씨!”
빠른 오더를 내린 후, 세현은 근접전에 특화된 소환수들과 함께 헤라클레스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 나갔다.
가장 앞에 세현과 두 룩, 양 날개에 두 나이츠와 블랙 폰들이 함께했다.
‘충신 패시브로 내가 공격을 받아 낸다!’
세현은 붉은 뱀의 검을 최대한 늘어뜨린 후,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그것을 정면에서 있는 힘껏 후려쳤다.
“하찮은 공격. 날파리. 가소롭다.”
갖은 버프 효과로 어지간한 몬스터라면 단번에 갈려 나갔을 세현의 일격이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는 오른손의 몽둥이를 슬쩍 휘두르는 것만으로 이를 튕겨 내더니, 왼팔로 길게 늘어난 검신을 낚아채 세현을 낚시라도 하듯 당겨 왔다.
“으으으으!”
세현은 맥없이 끌려가면서도 이를 악물고 두 눈을 헤라클레스에게 고정했다.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고, 놈은 몽둥이를 다시 한 번 뒤로 가져가 앞으로 휘둘러 왔다.
저걸 정면으로 맞으면 아무리 충신 패시브가 있어도 생존을 확신할 수 없는 흉흉한 기세였다.
‘정면은 안 돼!’
세현은 끌려가던 와중, 검의 손잡이를 그대로 놔 버렸다.
순간 헤라클레스의 몸이 뒤로 살짝 흠칫 물러났고, 세현의 몸은 관성을 받아 계속 앞으로 날았다.
여전히 뭉둥이가 다가오고 있는 상황, 이대로라면 세현의 머리통은 산산조각이 날 터였다.
“아아아악!”
세현은 비명에 가까운 외침과 함께 쿠자이의 발로 공중을 반대편으로 걷어찼다.
펑-!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세현의 몸이 위로 튕겨 나갔다.
그 순간, 너무 강한 충격을 받은 탓에 허벅지 근육이 비명을 내질렀지만 이를 악물고 흐려지는 의식을 부여잡았다.
‘이 틈에…….’
몸뚱이가 공중을 날고 있는 사이, 나머지 소환수들은 세현이 만들어 준 일순간의 틈을 타고 헤라클레스에게 달려들었다.
가장 먼저 두 룩이 캐슬 차징을 사용해 정면으로 달려들어 힘 싸움을 벌였고, 두 나이츠와 블랙 폰들이 놈의 등에 사정없이 무기를 박아 넣었다.
그때마다 보랏빛을 내뿜는 흉터가 놈의 등짝에 남았다.
세현의 몸뚱이가 추락하기 직전, 세이메이가 날린 시키가미가 이를 가까스로 받아 냈다.
‘망할!’
세현은 속으로 욕지기를 내뱉으며, 포션과 엘릭서를 꺼내 벌컥벌컥 들이켜 최대한 빨리 상태를 회복시켰다.
화이트 비숍의 힐은 헤라클레스와 힘 싸움을 벌이는 두 룩에게 모두 퍼붓고 있기에, 회복은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들 궁극기 지금 때려 박아!”
세현이 신호하자 사카린을 비롯한 200레벨을 넘긴 길드원들이 다시 한 번 일제히 헤라클레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곤 순서대로 자신의 궁극기를 하나씩 때려 박기 시작했다.
세현은 헤라클레스를 끝까지 물고 늘어질 블랙 폰 두 마리를 남기고 나머지 소환수들을 흩어 버렸다.
회오리가 치고, 불벼락이 떨어지고, 수백 갈래의 벼락이 한 지점에 내려치는 무시무시한 궁극기.
“으어어! 아프다아아!!!”
헤라클레스는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몸부림쳤지만, 두 마리의 블랙 폰 그리고 세이메이가 날린 시키가미와 포박 사슬이 끈질기게 놈을 물고 늘어지며 궁극기의 공격 범위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았다.
“사신물기 간다! 꽉 붙잡아!!”
그런 폭풍의 한가운데, 사카린이 사슬낫을 검처럼 짧게 들고 헤라클레스의 등짝에 끝부분을 강하게 내리찍었다.
그러자 그녀의 등 뒤로 사신의 환영이 나타나더니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남기며 사라졌다.
촤좌좍-!
그 직후, 허공에서 검붉은 빛 무리가 여기저기 번쩍이더니 그 안에서 톱니처럼 생긴 수백 갈래의 사슬이 뻗어 나와 순식간에 헤라클레스의 몸을 꿰뚫었다.
“끄어어어억! 끄어어어어어억!”
헤라클레스가 절규에 가까운 비명을 내지르며 발버둥 쳤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톱니처럼 생긴 사슬은 검붉은 기운을 발산하며 놈의 살을 헤집어 놓을 뿐이었다.
“다들 이탈해!!”
사카린이 빠르게 헤라클레스의 몸을 발판 삼아 반대편으로 뛰어올랐다.
그러자 수백 갈래의 사슬이 흰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세현은 그 즉시 목에 걸린 아자토스의 눈을 붙잡고 ‘상처 폭발’을 발동시켰다.
“룩 뒤로 피해!!”
외침과 동시에 길드원들이 화이트 룩, 블랙 룩의 등 뒤로 빠르게 숨었다.
퍼어어어엉-!
헤라클레스의 몸에 남겨진 상처와 몸뚱이를 꿰뚫고 있는 수백 갈래의 사슬이 동시에 폭발했다.
비주얼만 봐서는 핵폭발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폭발에, 두 눈을 뜨고 있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거리를 꽤 벌렸음에도 두 룩의 HP가 쭉쭉 빠지는 게 실시간으로 보일 정도의 위력. 화이트 비숍을 이용해 회복을 하는 것으로 간신히 두 룩이 소환 해제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정도였다.
[블랙 폰-D이(가) 소환 해제됩니다!]
[블랙 폰-E이(가) 소환 해제됩니다!]
엄청난 폭풍이 휘몰아치며 끝까지 헤라클레스를 물고 늘어졌던 두 블랙 폰의 소환 해제를 알리는 메시지가 들려왔다.
‘젠장, 급해서 아이템 회수도 못 했다.’
세현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두 블랙 폰이 입고 있던 장비를 회수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둘 다 200레벨을 넘긴 소환수이기에 손해가 적다고 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게 몇 분이나 후폭풍이 몰아친 후 주변을 둘러보자 아름다웠던 영웅의 협곡은 온 데 간 데 없이 파괴되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 헤라클레스가 서 있던 자리에는 거대한 크레이터가 남았고, 연기와 흙먼지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설마…….’
세현에게 불안함이 엄습했다.
이렇게 엄청난 공격을 퍼부었음에도, 스테이지 클리어를 알리는 메시지가 출력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들려온 기괴한 목소리는 이런 불안함을 확신으로 바꿔 놨다.
“나는… 헤라의… 시련을… 이겨 내고… 신이 된 자….”
연기 사이로 보이는 거대한 그림자, 그것이 일렁이며 서서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길드원들은 등골에 소름이 오싹오싹 돋는 것을 느꼈다.
“이것 또한… 시련… 나는… 대영웅… 인간 따위에게….”
연기를 뚫고 나온 헤라클레스의 모습을 보는 순간, 반사적으로 침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놈은 온몸이 숯처럼 새까매지다 못해, 몸 곳곳에 근육과 뼈, 심지어는 내장까지 훤히 드러내 장기 자랑을 하고 있었다. 헤라클레스가 아닌, 좀비나 돌연변이라고 부르는 게 차라리 어울릴 정도였다.
놈은 근처에 너부러진 거대한 나무를 통째로 들고 비틀비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죽인다… 날파리… 나… 헤라클레스… 12시련을… 이겨 낸 자….”
흩어지는 연기를 뒤로하고 오로지 적을 죽이겠다는 본능만이 남은 헤라클레스의 모습은 단순히 공포를 넘어 경외감이 들 정도였다.
“길드장, 마무리합시다.”
“아아… 응, 그래.”
모두가 넋이 나간 얼굴로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와중, 세현이 먼저 나서서 해야 할 일을 지시했다.
지금의 비장한 분위기로는 헤라클레스의 명예로운 죽음을 선사해 줘야 할 것 같지만, 세현은 조금도 그럴 생각이 없었다.
‘아파트에서 자비는 개새끼나 주라고 해.’
세현은 모든 소환수들을 총동원해, 헤라클레스를 최대한 안전한 방법으로 공략했다.
근거리 소환수들이 치고 빠지며 놈의 움직임을 적당히 묶고, 원거리에서 화이트 폰과 블랙 비숍을 이용해 파상 공세를 퍼붓는 방식이었다.
헤라클레스는 나무 기둥을 휘두르며 허우적댔고, 소환수들은 조금의 감정도 없이 그런 상대를 철저히 농락했다.
“끄으으으… 나는… 대영웅… 헤라… 클레스….”
얼마 가지 않아 HP가 바닥을 드러냈고, 그는 제자리에 무릎을 꿇고, 두 눈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에선 헤라클레스의 힘겨웠던 삶과 회한이 느껴져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객관적으로 상황을 컨트롤하던 허세현조차 울컥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개 같은…….’
세현은 아자토스의 눈을 들어 ‘상처 폭발’을 다시 한 번 발동시켰다.
퍼버버벙-!
폭발과 함께, 그의 몸뚱이가 수백 개의 고깃덩이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이제는 자리에 남은 거대 사자의 가죽만이 이곳에 대영웅 헤라클레스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대영웅의 시련을 끝낸’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보상: 올 스탯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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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드럽구만.’
스테이지 클리어를 알리는 메시지가 흘러나오는 와중, 세현은 힘겨운 승리를 쟁취했음에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