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132화 (132/180)

# 132

132화.

잠시 쉬어 가자.

‘오, 관리자에 대해 알고 있어?’

별 기대 없이 던진 질문이었는데, 피그말리온이 그에 대해 안다는 듯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럼 그놈에 대해서 알고 있는 대로 좀 알려 줘 봐.”

“아, 리베르 님은 저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만드신…….”

그 순간, 피그말리온의 몸이 갑자기 굳었다.

스스로의 의지로 몸을 멈춘 것이 아닌, 표현 그대로 돌처럼 굳어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시스템 오류가 발견됐습니다……]

[오류 픽스 중입니다……]

[거주자 ‘피그말리온’ 재가동합니다.]

그리고 잠시 후, 굳었던 피그말리온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라, 저희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죠?”

“……아니다. 그냥 가자.”

세현은 그냥 적당히 얼버무리는 것으로 얘기를 끝냈다.

관리자들은 아무래도 세현에게 자신들의 정보를 노출시키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모양이었다.

한 10분쯤을 걸어가니 통로가 어느 기점에서 커다란 두 갈래로 나뉘었다.

“왼쪽으로 가면 절벽 위로 올라갈 수 있고, 오른쪽으로 가면 영웅의 협곡으로 가실 수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슬슬 돌아가 볼까 합니다.”

“아 그래, 기왕 가는 김에 이 촌장 아저씨도 같이 데려가라.”

세현은 더 이상 쓸모없어진 촌장도 피그말리온에게 딸려 보냈다. 괜히 데리고 다니다가 귀찮은 일만 많아질게 뻔했기에 내린 판단이었다.

오른쪽 길을 따라 또 몇십 분을 걷자, 동굴의 끝에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와, 뭐야 여긴?”

“분위기 진짜 묘하네.”

영웅의 협곡이 모습을 보이자, 길드원들은 놀란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위에서 봤을 때는 당연히 어두컴컴한 무저갱의 공간일 것이라 생각했던 이곳에 푸른 하늘과 구름이 있고, 푸른 벌판과 숲에 동물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니 당황할 법도 했다.

이 영웅의 협곡은 올림포스의 신들이 세상의 일에 직접 간섭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아바타가 될 영웅들에게 힘을 내리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공간이었다.

영웅들은 이곳에서 신탁을 받거나, 신물이나 그들의 힘을 직접적으로 하사받아 자신의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공간이니 만큼, 이곳은 올림포스의 여러 신들의 권능이 동원돼 만들어진 장소였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는 자신들이 직접 작은 태양과 달을 만들어 설치했고, 그 두 존재는 이곳으로 빨려 들어오는 막대한 에너지를 증폭시켜 협곡 곳곳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그 영향으로 이곳은 생명체가 살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 형성됐고, 그로 인해 아름다운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던 것이다.

위에서 내려 봤을 때 이곳이 그저 검게 보이는 것은, 협곡의 깊이가 인간의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을 뿐 아니라, 이 아름다운 세계를 탐욕 가득한 인간들에게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신들이 결계를 쳐 놓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자, 그럼 빨리빨리 가자고.”

사카린은 지금의 풍경이 상쾌한 듯 기지개를 켜며 앞으로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하지만 세현은 오른쪽 어깨를 잡아채 그녀가 앞으로 나서는 것을 말렸다.

“길드장, 좀 쉬었다 가죠. 조금 전에도 바로 싸워서 다들 녹초 상태인데.”

그 말대로 길드원들의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좁은 동굴에 한참이나 갇혀 있었던 데다가, 피그말리온의 조각상들과 혈전을 벌였기에 여기서 한 타임 쉬고 가는 게 맞았다.

사카린도 그제야 이런 상황을 인지했는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상황을 수긍했다.

세현은 소환수들과 함께, 길드원들이 쉴 수 있을 공간을 급조했다.

인벤토리에 입주자 전용 텐트가 있긴 하지만 수용 인원이 3~4인 정도기에, 어쩔 수 없이 직접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주변에서 길고 튼튼한 나뭇가지들을 잘라 와 몬스터들에게서 채집한 재료용 가죽에 구멍을 뚫어 간이용 천막을 만들어 빛이 쏟아지는 것을 막았다.

천막 바닥에는 재료용 가죽 중에서 털이 풍성한 것들로 골라 이를 겹겹이 쌓자 나름 근사한 매트리스가 됐다.

소환수들이 다 함께 일을 처리해 주니 이를 완성하는 데는 채 20분도 걸리지 않았다.

“자, 다들 여기서 쉬시면 됩니다.”

세현이 외치자 녹초가 된 길드원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위로 뛰어들어 수학여행 온 고등학생이라도 되는 양 뒹굴거리며 장난을 쳤다.

“오올, 우리 길드 막내 센스~!”

“난 나중에 세현이한테 시집가련다.”

“야, 찬물도 위아래가 있지, 내가 먼저거든?”

“그런 게 어디 있어, 먼저 들이대면 그만이지!”

길드원들은 세현의 배려가 마음에 들었는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호감을 표했다.

세현은 이때다 싶어 길드원들의 회복을 도울 엘릭서를 하나씩 건넸다.

“으응? 이게 무슨 맛이야.”

“와~ 엄청 맛있잖아!”

이를 받아 마신 길드원들이 솔직한 심정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엘릭서에서 칵테일 같은 달곰쌉쌀한 감칠맛이 났기 때문이었다.

“직접 만든 특제 엘릭서에요. 피로 회복에도 좋고, 잠도 잘 올 테니까 한 병씩 마시고 얼른얼른 주무세요들.”

이 칵테일의 정체는 세현이 몇 개의 효과 좋은 엘릭서를 섞어 만든 것으로, F급이던 시절 한 병에도 몇백만 원을 우습게 넘는 엘릭서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때야 이 엘릭서 몇 병에도 손을 덜덜 떨면서 마셨지만, 아파트의 정상급 입주자가 된 현재야 이 정도쯤은 길드원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줄 수 있는 것이었다.

길드원들은 세현의 칵테일 엘릭서를 마시고 한 명도 빠짐없이 제자리에서 곯아떨어졌다.

‘으음, 뭐 또 해 줄 만한 게 없나.’

세현은 자신의 고집으로 길드원들이 고생했던 게 못내 미안해, 또 해 줄 수 있는 게 없을까 잠시 고민했다.

잠시 인벤토리를 뒤지던 중, 눈에 걸리는 것이 몇 개 나왔다.

‘오, 이거면 충분히 뭐가 나오겠는데?’

세현은 그 즉시 인벤토리에 몇 가지 아이템을 꺼냈다.

생활 콘텐츠인 요리 전용 재료 아이템인 야채, 소금, 후추 등이였다.

붉은 뱀의 검을 헝겊으로 깨끗하게 닦아 낸 후, 평평한 돌을 도마 삼아 이를 먹기 좋은 크기로 적당히 잘라 냈다.

‘이것만 있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리고 마지막 재료인 바실리스크의 고기를 한 덩이 꺼내 혀를 날름거렸다.

마을 사람들에게 건네주고 나중에 맛이나 보려고 남겨 뒀던 것으로, 그 크기가 꽤 크기에 길드원들이 다 같이 한 끼 먹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양이었다.

근육과 지방질이 적절히 섞인데다가 신선함이 눈으로도 느껴질 정도의 적당한 붉은 기를 띤 것이 절로 군침이 넘어가는 비주얼이었다.

세현은 도마 대용으로 썼던 돌 아래에 작은 돌 네 개를 받쳐 공간을 만든 후, 그 틈 사이에 마법 스크롤 하나를 찢어 집어넣었다.

화륵-!

그러자 푸른 불길이 위로 치솟아 돌을 서서히 달구기 시작했다.

세현은 붉은 뱀의 검으로 고기를 스테이크처럼 크게 뭉텅뭉텅 잘라 붉게 달궈진 돌 위에 얹었다.

치이이익-!

맛있는 소리와 함께 고기가 노릇노릇하게 익어 갔다.

세현은 주변에서 주워 온 나뭇가지를 집게 삼아 고기를 빠르게 뒤집어 육즙이 새지 않도록 빠르게 익혔다.

고기가 노릇노릇해질 때쯤, 소금과 후추를 솔솔 뿌려 주니 맛있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유튜브와 TV에서 하는 요리 방송을 눈대중으로 봐 뒀던 것이 나름 큰 도움이 됐다.

“아으으음, 이게 무슨 냄새야.”

한 1시간쯤 지났을까, 적당히 낮잠을 즐긴 길드원들이 하나둘씩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현은 거주자들의 호감도를 올릴 때 사용되는 선물용 접시들을 꺼내 그 위에 바실리스크 고기와 야채들을 먹기 좋게 플레이팅 해 한 명씩 건네줬다.

“와, 이거 무슨 고기야? 진짜 엄청 맛있는데?”

“아, 소고기에요. 그 뭐야, 드라이에이징인가? 그거 한 소고기.”

바실리스크 고기라는 것이 탄로 나면 괜히 비위 안 좋은 길드원이 먹고 체라도 할까 봐 세현은 이를 숙성시킨 소고기라고 적당히 둘러댔다.

“맛있습니다, 주군! 더 주세요!”

특히 세이메이는 고기를 몇 접시나 더 비워 대고 나서야 빵빵해진 배를 두드리며 만족했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허세현 너 저번에 놀러 갔을 때도 그렇고, 요리 꽤 할 줄 아나 보다?”

“요리는 무슨, 그냥 고기 잘라서 대충 구운 거지…….”

사카린 또한 마음에 들었는지 어깨를 가볍게 주물러 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 작은 이벤트에 길드원들의 컨디션은 최상의 상태로 끌어올려졌으니, 겨우 1시간의 시간을 투자한 것치곤 나쁘진 않은 결과였다.

“그럼 보스전 하러 갑시다.”

세현은 천막과 매트리스에 사용된 재료 아이템을 꼼꼼히 정리한 후, 길드원들과 함께 협곡의 안쪽으로 이동했다.

현재로선 세현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인 작위 수여와 퀸, 두 개의 카드가 봉인 된 상태지만, 각성기가 있는 길드원들과 아자토스의 눈이 있으니 어떻게든 해볼 만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길드원들이 이동하는 동안 몬스터들은 따로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한 30~40분을 쭉 걸어가니 인공태양이 가장 강하게 내리쬐는 중심부에 커다란 판테온(신전)이 모두를 기다렸다는 듯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세현은 저곳에서 헤라클레스가 등장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반사적으로 전투 태세를 취하고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갔다.

[’시련을 이겨낸 신 헤라클레스’ 이벤트 컷씬이 출력됩니다.]

그러자 메시지 알림음과 함께, 이벤트 컷씬이 출력됐다.

판테온의 높은 계단 위로 사자 가죽을 둘러쓴 헤라클레스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나의 힘. 이제. 완벽하다. 신의 힘. 너희들 따위. 한. 주먹.”

그는 묵직한 건틀렛의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목을 슥- 긋는 시늉을 했다.

거기다 몸에서 묘한 금빛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는데, 이는 헤라클레스가 단순한 영웅을 넘어 헤라의 12시련을 클리어하고 진정한 신격을 얻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는 허리춤에 찬 커다란 몽둥이를 한 손으로 들어 올리더니 양팔을 벌려 크게 포효했다.

“헤라. 당신의 시련. 나를 성장케 했다!!”

그러곤 놈은 위로 크게 뛰어오르더니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높이 솟구쳤다.

[이벤트 컷씬이 종료됐습니다.]

컷씬 종료를 알리는 메시지와 함께 길드원들은 다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세현은 위를 잠시 쳐다보며,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림자를 보고 피해! 떨어진다!”

잠시 후-.

상공에서 커다란 그림자가 점차 커지더니 그 지점에 빠른 속도로 헤라클레스의 몸뚱이가 내리꽂혔다.

콰아앙-!

운석이라도 충돌한 듯 엄청난 폭음과 함께, 주변의 땅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 여파가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판테온에 미쳐 기둥이 몇 개 부러질 정도였으니, 그 충격의 위력을 알 만했다.

심지어 길드원 두 명이 이 충격에 휩쓸려 거의 빈사 상태에 가까운 수준의 데미지를 입었다.

세현은 재빨리 룩을 두 사람에 붙여 시간을 번 후, 화이트룩으로 힐을 때려 박아 회복을 도왔다.

“산개해! 이런 놈은 뭉쳐 있으면 다 같이 당한다!”

사카린은 곧장 상황을 파악하고 오더를 내렸다.

이런 거구의 괴물 같은 놈을 뭉친 상태에서 정면으로 상대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기에, 최대한 거리를 벌린 상태에서 놈을 싸 먹으려는 심산이었다.

“쿠오오오!”

헤라클레스가 몽둥이를 들고 곧장 정면에 서 있는 사카린에게 짓쳐 들었다.

까앙-!

사카린이 몽둥이를 피하며 사슬낫을 놈의 몸 쪽으로 예리하게 집어 던졌지만, 놈의 피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빛 아우라가 이를 튕겨 냈다.

놈의 몽둥이 연타는 계속됐고, 사카린은 거의 종이 한두 장 차이로 이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냈다. 3m가 넘는 거구의 덩치에서 나오는 속도라고 생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속도에, 몽둥이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후폭풍이 일어났다.

“아아아악!”

그러던 중, 사카린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날아가 형편없이 나자빠졌다.

20번이 넘도록 몽둥이를 피해 내던 와중 스텝이 엉키며 움직임이 조금 늦어져 왼쪽 정강이에 한 번 공격을 허용한 탓이었다.

사카린의 발은 관절 반대편으로 완전히 꺾여, 피를 줄줄 뿜어내고 있었다.

“날파리. 죽여서. 먹는다!”

이에 헤라클레스는 흡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혀를 날름대더니 사카린을 향해 힘차게 뛰어올랐다.

“제에에엔자아아앙! 저 새끼 갑자기 왜 이리 강해진 건데!”

세현과 화이트 나이츠가 이를 저지하기 위해 급하게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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