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
131화.
피그말리온
“으아아아아! 이, 인간 따위가 올림포스의 신들에게 감히이이!!”
겁에 질린 하데스 석상은 손에서 작은 구체들을 연속적으로 발사하며, 자신이 소환해 낸 지옥의 망자들을 모두 끌여들여 세현에게 쏟아부었다.
“어디 마사지 방 온 것 같고 좋네.”
세현은 여유 가득한 얼굴로 조금의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온몸으로 하데스의 검은 구체들을 받아 냈다.
꽤 많은 데미지가 들어왔지만, 두 룩이 세현 대신 데미지를 흡수하는 패시브 스킬 ‘충신’을 발동시킨 덕에 아무런 피해도 없이 서 있을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두 소환수의 HP가 대신 쭉쭉 줄어들고 있었지만, 화이트 비숍이 쉴 새 없이 힐을 퍼붓는 덕분에 별문제는 없었다.
게다가 불사신이라도 되는 양 서 있는 세현의 모습에 하데스 석상은 공포를 넘어 좌절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죽어! 죽으라고! 인간 따위가 감히 신에게!!”
지옥의 망자들이 허세현을 덮쳤지만, 애초에 개체 하나 하나가 강하지 않은 잡졸 수준의 소환수들일 뿐.
세현은 놈들을 사복검조차 쓰지 않고 손으로 잡아 일일히 찢어죽이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히이이익!”
그 괴기스러운 모습에 하데스 석상이 경악하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세현은 계속 검은 구체를 받아 내며, 망자들을 최대한 잔인하게 찢어 대며 놈의 바로 앞까지 다가가 목을 한 손으로 잡아 올렸다.
하데스가 몸을 버둥거리며 벗어나려 했지만, 퀸의 스테이터스를 온전히 흡수한 허세현의 악력은 그의 힘으론 벗어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너희들 신 아니야 멍청아. 그냥 조금 단단한 석상이지.”
“그게 무슨 헛소리냐…. 그런 말도 안 되는….”
“너, 신이 저렇게 돌처럼 변해서 박살 난다는 얘기 들어 본 적 있냐?”
세현은 박살 나 흩어져 있는 석상들의 파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석상들이 석공 피그말리온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그저 이곳의 기운을 빨아들여 의지를 가지게 된 존재라는 말을 전해줬다.
“그럴리가…… 그럴리가 없다!”
하데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치며 이를 부정했지만, 딱히 세현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어찌보면 꽤 잔인한 처사지만, 세현은 자신들의 창조주들에게 농락당한 석상들에게 진실을 알려 주고 싶었다.
물론 순수하게 그런 의도만 있다고 하기에는, 자신을 애먹인 덕에 빅엿을 한 번 먹여 주고 싶은 마음도 꽤 컸다.
“자, 이제 끝내자.”
모든 설명을 끝낸 후, 세현은 하데스의 몸을 벽에 처박은 후 주먹으로 명치 부분을 강하게 두세 번 두드렸다.
그것으로 석상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고, 퀘스트 종료를 알리는 팝업이 추가로 출력됐다.
[‘올림포스 박물관 파괴’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보상: 올스탯+2
(특정 클래스 한정) 카리스마+1
잠시 후, 석상들의 돌가루가 스르르 녹아내리더니 그 자리에 딱 구슬만 한 크기의 반짝이는 보석이 석상 하나당 한 개씩 자리에 남았다.
[#. 보석 / 제우스 석상의 토파즈]
-피그말리온이 제우스의 형상을 흉내 내 만든 석상에서 나온 시트린 보석. 이를 아이템의 소켓에 착용하게 되면 추가 능력을 얻을 수 있다.
(#시즌5 ‘못생긴 헤파이토스’ 퀘스트 클리어 이후 사용 가능.)
희귀도: 에픽(B)
능력:
무기 장착 시 ? 전격 능력 부여, 적 타격시 경직 발생.
방어구 장착 시 ? 전격 내성 부여.
각 보석은 각 석상의 콘셉트에 맞는 옵션이 달려있었다.
예컨데 제우스는 전격 속성, 포세이돈은 수 속성, 하데스는 암흑 속성들을 부여해 추가로 데미지를 주거나 그에 상응하는 다른 옵션을 주는 방식이었고, 다른 기타 신들은 전투보다는 채집, 생산 등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유틸리티성이 주로 강조된 보석들이었다.
보석들을 보고 있던 세현은 미간을 살짝 구겼다.
‘뭐야, 이 정도 난이도 퀘스트에 겨우 이 정도 보상이라고?’
에픽 등급의 보석이 가격이 꽤 되긴 하지만, 애초에 에픽급 보석도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 석상이 떨군 세 개뿐. 나머지는 유니크(C)급의 보석들이 즐비했다.
헤라클레스 보스전을 앞두고 중요한 카드인 ‘작위 수여’를 쓴데다가 퀸은 한동안 소환이 불가능해진 상황.
이만큼 자원을 썼으면 그에 상응하는, 아니 그 이상의 보상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에픽 보석 3개에 유니크급 17개, 이는 세현의 욕망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하아…….”
노골적으로 실망한 기색을 보이자, 설희가 걱정스러운 듯 질문을 던졌다.
“갑자기 왜 그러세요, 세현 씨. 무슨 일이라도?”
“아아. 아뇨 아뇨, 신경 쓰지 마세요.”
씁쓸한 마음을 떨쳐 내려, 세현은 서둘러 보석을 주워 담은 후 사카린에게 건넸다. 이는 헤라클레스 보스전까지 끝낸 후에 한꺼번에 정산해 길드원들에게 균등하게 배분하게 될 터였다.
상황이 정리되고, 촌장과 함께 다시 이 공간을 빠져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주군, 여기 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세이메이가 조금 전까지 리베르가 서 있던 중심부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뭔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현이 그곳으로 걸어가 함께 내려다보자, 수십 개의 홈이 바닥에 새겨져 있었고, 그 아래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음각으로 적혀 있었다.
[전설의 조각가 피그말리온, 최후의 걸작 ‘올림포스’를 남기고 이곳에 잠들다. 이 걸작들의 힘이 다시 그에게 모아 진다면, 그 또한 신과 같이 생명을 얻어 다시 부활하리라.]
“……이게 뭔 생뚱맞은 소리야?”
혹시 잘못 읽었나 싶어 몇 번이고 문장을 다시 읽었지만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렇게 한참 낑낑대고 있을 때, 뒤에서 사카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허세현. 여기다가 보석 끼우면 되는 거 아니냐?”
고개를 돌리자 사카린이 보석을 한 줌 내밀었고, 이에 세현은 건성건성 대꾸했다.
“에이~ 설마 그럴려고요.”
“아 피해 봐, 피해 봐.”
그러자 사카린이 세현을 옆으로 밀어내고 보석을 그 위에 하나둘씩 끼워 넣기 시작했다.
거짓말 같게도 보석들은 바닥에 새겨진 각각의 홈에 딱 맞춰 만든 듯 들어맞았다.
사카린이 신이 난 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모든 보석을 박아 넣자, 갑자기 이 공간 전체가 흔들리더니 원형 기둥이 서서히 위로 솟구치며 온 사방으로 형형색색의 빛을 뿜어냈다.
“거봐, 내말 맞지?”
“젠장.......”
“너 뭐랬냐?”
“아니에요.”
그 빛은 공간의 벽면에 붙은 다른 보석들에 반사되어 마치 꿈을 꾸는 듯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냈다.
“뭐, 뭐야 이건?”
잠시 후, 기둥이 멈추고 빚도 사그라들었다. 이에 모든 길드원들이 일제히 기둥을 향해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보냈다.
덜컹-!
갑자기 원형 기둥의 앞부분이 자동문처럼 스르륵 옆으로 밀려나더니 그 안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창백한 피부에 마른 체형을 가진 곱슬머리의 서구형 미남자, 그는 마치 죽은 듯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아, 저놈이 혹시 피그말리온인가?’
세현은 이번 히든 퀘스트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에 기뻐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근데 이거…. 어떻게 해야 더 진행되는 거지?”
피그말리온으로 추정되는 남자는 시간이 지나도 도통 눈을 뜰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세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원 기둥의 주변을 꼼꼼히 살폈지만, 별다른 장치를 찾을 수는 없었다.
“와아~ 꽃미남이다 꽃미남!”
사카린은 뭐가 그리 신났는지 피그말리온의 두 뺨을 잡아 옆으로 쭈욱 늘렸다.
“길드장, 아무거나 막 만지지 말아요.”
“괜찮아 괜찮아~ 만진다고 닳는 것도 아닌데 뭘 그래.”
그걸 옆에서 보던 허세현이 잔소리를 했지만, 사카린은 별 신경조차 쓰지 않고 피그말리온의 몸 이곳저곳을 만졌다.
“으으으……”
“오! 일어났다!”
그러자 그가 신음 소리를 흘리며 서서히 눈을 떴다.
“당신들은 누구십니까?”
“아아, 우리들은 말이지. 저~ 밖에서 사는 서큐버스 군단이라고 하는데 이 동굴에 어쩌다가 왔는데! 아,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사카린은 막상 피그말리온이 눈을 뜨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횡설수설했다.
“아 좀 피해 봐요.”
그때 허세현이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어 사카린의 얼굴을 뒤로 밀어내며 말을 가로챘다.
“우리는 이 근처에 지나가던 입주자고, 네가 만든 석상들 전부 박살 내고 거기 있던 보석으로 당신 살려냈어. 더 긴 설명은 필요 없지?”
“과연, 그렇군요.”
피그말리온은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하더니, 갑자기 세현을 향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덕분에 저는 새로운 생명을 얻은 것이군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뭐 그렇게 고마우면 줄 수 있는 건 주는 게 서로 깔끔하지.”
세현은 사양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피그말리온에게 보상을 요구했다.
“이걸 드리겠습니다.”
피그말리온은 품속에서 플라스크에 든 물약 하나를 꺼내 들어 세현에게 건넸다.
[#. 포션 / 피그말리온 효과]
-간절히 바라는 것을 실체화시킨다는 전설 속의 포션. 아프로디테의 축복과 피그말리온의 강력한 염원이 뒤섞인 물건으로, 이 포션을 이용하면 조각상에게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
등급: 영웅(S)
효과: 형상을 가진 조각에 이 포션을 뿌리면 조각이 실체화한다. 실체화된 조각은 포션을 뿌린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조종이 가능하다. (#. 소환수 판정)
아이템 설명을 읽은 세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무려 영웅급 아이템이긴 하지만, 마냥 좋아하기에는 애~매한 능력을 가진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거 하나가 끝…?”
“네, 여러분의 은혜에 모두 보답할 순 없겠지만 제가 지금 가진 것이 이것뿐이라….”
“잘 아네, 은혜에 너무 보답 못하잖아. 네가 만든 석상들 진짜 어어어어엄~청 강했거든.”
“그, 그랬군요 저도 그런 부분까진 생각하지 못해서.”
“생각했어야지.”
그의 대답에 세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포션을 받아 들어 사카린에게 전달했다.
피그말리온 본인도 민망한지 머리를 긁적이며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피그말리온이라고 했나? 너, 여기서 어떻게 빠져 나갈거야?”
“아, 이곳에서 빨리 빠져나갈 수 있는 비밀 통로가 있습니다.”
“이잉?”
이 공간을 빠져나가려던 찰나, 세현이 던진 질문에 피그말리온이 벽면으로 다가가 거기에 달린 보석을 앞으로 밀어 넣었다.
그때마다 덜컥-하는 기계 장치음이 들렸는데, 그것을 몇 번 반복하자 벽면의 보석 전체가 벽 쪽으로 밀려들어가며 사라졌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여러 사람이 지나가는 데 전혀 지장 없을 커다란 동굴 하나가 나타났다.
“여러분은 어디로 가십니까?”
“영웅의 협곡으로 가는데.”
“그럼 절 따라오시지요.”
피그말리온이 안내한 길은 지나갈 때마다 벽면에 띄엄띄엄 설치된 보석이 빛을 뿜으며 길을 환하게 비췄다.
게다가 여태 지나왔던 동굴처럼 함정이 설치되어 있지도, 몬스터들이 등장하지도 않았다.
“너, 이런 통로는 왜 설치해 둔 건데?”
“이 동굴에는 강한 에너지가 흐르고 있지만, 워낙 위험한 장소기에 안전한 통로를 확보해 둘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까 그 공간에 박혀 있던 보석들도 제가 설치해 놨던 겁니다. 그 보석을 통해서 이 동굴과 영웅의 협곡 쪽의 에너지를 빨아들여 석상 안에 있는 보석에 모을 수 있게 만들었지요.”
세현은 걷는 동안 하나라도 정보를 더 빼먹으려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어떻게 이 동굴 내에 아까와 같은 공간을 설치했는지 줄줄 설명했다.
‘리베르라는 놈이 그래서 여기에 있었던 건가?’
설명을 듣자, 세현은 관리자 리베르가 왜 아까 그 공간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었는지 대강 이해가 갔다.
피그말리온이 보석을 이용해 만들어 낸 공간은, 이 기묘한 동굴과 협곡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를 끌어모으는 기능을 하고 있다.
확신할 순 없지만 아마 리베르는 그 기운을 이용하기 위해 이곳에서 있던 것이리라.
“아, 피그말리온. 너 혹시 리베르라는 놈에 대해 알아?”
“관리자 리베르 님 말입니까?”
세현이 질문을 던지자, 피그말리온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