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아파트-130화 (130/180)

# 130

130화.

“뭐, 뭐야 이거!”

세현의 몸에서 뿜어진 빛은 공중으로 산개하더니 도깨비불처럼 여러 개로 흩어져, 이곳에 세워진 석상들에 하나 둘씩 달라붙기 시작했다.

그를 본 관리자 ‘리베르’는 놀란 듯 침음을 흘리며 혼잣말을 읊조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당신은?>

그는 한참을 중얼거리다 뭔가를 깨달았는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랬군요, 그분께서 어디로 사라지셨나 했더니 이런 곳에 계셨군요!>

이 공간에 있는 사람 중, 그의 중얼거림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듣는 것은 오직 세현뿐이었다.

‘눈치챈 모양인데.’

아마 저 리베르라는 놈이 지칭한 ‘그분’은 세현의 몸속에 ‘크로노스’를 지칭하는 것이리라.

<뭐 좋습니다. 그분께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힘을 흔쾌히 빌려주겠다면 퀘스트를 계속 진행해도 되겠지요.>

리베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바닥을 탁탁 부딪쳤다.

그러자 모두의 눈앞에 퀘스트 발생을 알리는 팝업창이 출력됐다.

[#. 히든 퀘스트 / 피그말리온의 석상]

- 최고의 조각가 피그말리온이 올림포스 신들의 모습을 따서 만든 조각상들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이 최고의 조각상들은 이 기묘한 미궁과 영웅의 협곡에서 흘러나오는 힘에 오래 노출되어 자아를 얻었고, 스스로가 올림포스의 신과 동등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들이 세상 밖으로 풀려나 대혼란이 일어나기 전에 이곳을 석상들의 무덤으로 만들어 주자.

적정 레벨: 210

클리어 조건: 모든 석상 파괴

[수락하기] [거절하기]

길드원들은 빠르게 시선을 교환한 후,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락하기 버튼을 망설임 없이 눌렀다.

<재미있군요. 커플러와 헬시안이 당신에게 집착하던 이유를 알겠어요, 이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꾸준히 지켜보겠습니다.>

그사이 리베르는 재미있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짓더니 순식간에 연기로 변해 흩어졌다.

그러자 이곳을 가득 메운 석상들이 동시에 몸을 부르르 떨더니 두 눈에서 푸른빛을 뿜어내며 길드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곧 전투가 일어나리라 직감한 세현이 소환수들을 일제히 꺼내 산개시켰다.

가장 앞쪽에 두 룩이 서고, 양 날개에 나이츠들과 블랙 폰이, 후방에 화이트 폰과 비숍들이 서는 형태의 진형이었다.

길드원들이 이에 맞춰 빠르게 각자의 포지션을 찾아갔다.

“뭐야 인간들이 아니냐? 호오…… 예쁜 것들이 많이 보이는군. 다들 나와 돌아가며 한 번씩 잠자리를 보내는 건 어떻겠느냐?”

노란 머리에 느끼한 인상을 가진 석상이 성희롱을 프리스타일 랩처럼 내뱉으며 아무 말 대잔치를 이어갔다.

“존나 좀 닥쳐라, 돌덩이 새끼야. 내가 아무리 밝혀도 석상이랑 그 짓하는 취향은 없거든? 그리고 너 생긴 것도 너~무 느끼해서 완전 내 스타일 아니야. 그리고 나 임자 있거든?”

그 말을 듣고 있던 사카린이 짜증이 났는지 울컥한 목소리로 대꾸하며 세현 쪽으로 잠시 고개를 돌렸다.

세현은 사카린이 왜 쳐다보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서 두 눈을 잠시 끔뻑거렸다.

“나를 원하지 않는다고? 그럴 리가 있나! 나는 올림포스의 최고신 제우스다! 여자라면 그 어떤 자라도 나를 원하는 게 당연…….”

타앙-!

제우스 동상이 또다시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고 있는 사이, 사카린이 날린 사슬낫이 벼락같이 내리쳐 놈의 가슴팍을 때렸다. 놈의 몸뚱이가 뒤로 크게 날아가 벽에 볼품없이 처박혔다.

“아하하하! 뭐야 제우스! 꼴사납게 인간 따위에게 쓰러진 거냐!”

그러자 주변에 서 있던 다른 석상들이 그를 비웃었다. 분위기로 보아 여기 있는 석상들은 자신들이 진짜 올림포스의 신들이라고 믿는 듯했다.

“이이이이익, 건방진 계집년이 바락바락 대드는구나! 고분고분하게 만들어 주마!”

스스로를 제우스라 믿는 듯한 석상이 손에 노란빛을 뿜어내는 전기 형태의 무언가를 소환해 전방으로 힘껏 집어 던졌다.

쿠르릉-!

순간 공간이 번쩍하더니, 잠시 후에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사카린의 얼굴이 그을린 채 전신에서 연기가 뿜어지는 것으로 보아, 제우스 석상이 날린 벼락 공격이 이미 그녀를 덮친 것 같았다.

“와, 이거 미치게 짜릿짜릿하네!”

HP가 단 한 번의 공격에 50% 이상이 날아가자 사카린은 곧장 포션을 꺼내 입으로 들이부었다.

그녀가 딜러 타입 클래스인 걸 고려해도 220레벨을 넘어가는 입주자에게 저 정도 데미지를 입힌다는 것은, 제우스 석상의 힘이 실제로 엄청나다는 뜻이었다.

‘젠장, 저건 보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세현은 전신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아직 다른 석상의 전투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은 못 했지만, 모두 제우스 석상과 비슷한 수준이라면 이번 히든 퀘스트는 냉정히 말해 현재의 스펙으로는 클리어가 불가능했다.

“다들 긴장해! 이것들 보통 아니다!”

세현과 마찬가지로 단 일격에 상황을 파악한 사카린이 외쳤다.

“여인들이여, 죽고 싶지 않다면 내게 순종해라!”

그사이 제우스가 다음 번개를 쏘아 내려는지 손에 노란빛의 스파크가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세현은 곧장 화이트 룩에게 놈을 향해 캐슬 차징을 사용해 돌진하도록 명령했다. 저게 날아가는 순간, 보고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사전에 이를 막으려는 것이었다.

콰르릉-!

화이트 룩의 돌진에 당황한 제우스는 벼락을 전방으로 날렸다.

다행히 마법 공격에 내성이 뛰어난 화이트 룩이었기에 HP는 고작 7~8%정도밖에 깎이지 않았고 잠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 직후, 다크니스 리턴을 발동시켜 소환수들의 무기를 동시에 강화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전투를 준비했다.

“올림포스의 형제들이여! 다 함께 건방진 인간들을 밟아 버려라!”

제우스가 주변을 둘러보며 호소하듯 외쳤다. 그러자 포세이돈이니, 하데스니, 아폴론이니 하는 다른 신들을 본떠 만든 석상들도 앞으로 나섰다.

“형님, 저것들 다 밟으면 그 대신 나한테 세 명은 주십쇼. 간만에 재미 좀 봐야지!”

“그럼 저는 제일 예쁜 년으로 하나만 주시면 됩니다.”

“하하, 하데스! 역시 양보다는 질이라 그거냐!”

그리스의 신화 속 남신들이 호색한에 난봉꾼, 개 쓰레기라는 설정을 철저히 지키려는 것인지, 한 놈도 빠짐없이 개소리들을 마구 뱉으며 공격에 가담했다.

포세이돈은 트라이던트와 그물 그리고 바닷물을 일으키는 능력으로 적을 공격했고, 하데스는 지옥의 망자들을 소환하거나 어둠 계열 마법들을 퍼부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만한 것은 제우스 3형제를 제외한 나머지 신들의 전투력은 그다지 대단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 하지만 3형제가 가진 공격력 자체는 각 층의 메인 보스급에 전혀 뒤지지 않는 수준이기에 이것만으로도 난이도는 경악스러웠다.

아마 조금만 더 어려웠다면 천하의 허세현과 서큐버스 군단이라도 깔끔히 포기하는 게 좋았을 것이다.

‘젠장, 저 패턴이 더럽게 짜증나는데.’

세 남신의 공격 패턴 중 가장 까다로운 것은 제우스와 포세이돈, 두 남신의 권능을 이용한 연계기였다.

“제우스 형님! 갑니다!”

“알았다!”

먼저 포세이돈이 트라이던트로 바닥을 내리쳐 광범위한 지역에 바닷물을 흩뿌리면, 제우스가 그 위로 벼락을 뿜어냈다.

촤아악-!

그러면 순식간에 전기가 바닷물을 타고 흐르며 방 전체에 전격 공격이 들어갔다.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걸 제외하면 이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기에 이 공격이 시도될 때마다 몇 명의 길드원이 전격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일격을 허용하는 것만으로도 HP가 거의 40~50%는 빠졌기에 그때마다 길드원들은 삼도천에 발목을 담갔다 돌아오곤 했다.

세현의 화이트 비숍이 힐을 하거나 하나에 몇백만 원은 족히 하는 최상급 HP 포션을 벌컥벌컥 들이켜며 겨우겨우 위기를 넘겨야 했다.

그나마 제우스와 포세이돈의 스킬 쿨 타임이 꽤 길기에 빈틈이 생길 때마다 공격을 시도했지만, 하데스가 소환한 망자들과 흑마법, 그리고 다른 석상들이 이를 방해했기에 파훼가 쉽지 않은 상태였다.

시간이 지나며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빠르게 간다!’

세현은 더 시간을 끌 수 없다는 생각에 작위 수여를 사용해 퀸을 흡수했다.

전신에 흰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고풍스러운 느낌의 갑옷이 덧씌워졌고, 붉은 뱀의 검의 형태도 칼날 부분에서 검붉은 기운이 뿜어지는 등 더욱 강한 느낌을 주도록 변형됐다.

퀸의 힘을 흡수한 후, 세현은 제우스와 포세이돈을 응시한 채로 반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돌았다.

“하! 무슨 수작을 부린지는 모르겠다만 우리의 권능 앞에선 별 소용없을 거다!”

포세이돈이 호탕한 웃음을 내뱉으며 트라이던트를 바닥에 내리치자 다시 한 번 바닷물이 퍼붓듯 몰아쳤다. 직후 제우스의 벼락이 위로 떨어졌다.

세현은 빠르게 전방으로 뛰어올라 그대로 제우스의 빈틈을 치고 들어갔다.

“뭐, 뭣!”

총알 같은 속도에 제우스 석상이 당황한 듯 소리쳤다.

급히 하데스의 망자들과 다른 석상들이 세현이 날아드는 이동 동선으로 달려들었지만, 이미 따라잡기에는 늦은 상태였다.

콰앙-!

세현은 그대로 모든 걸 무시하고 날아가 제우스의 가슴팍에 쿠자이의 신발을 이용해 뻥-하는 소리가 날 정도의 강렬한 발차기를 한 방 먹였다.

놈은 그대로 뒤로 날아가기 시작했고, 세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놈이 착지할 지점에 먼저 도착한 후 사복검을 가로로 붙잡았다.

제우스의 목이 사복검에 닿는 순간, 검신이 뱀처럼 뒤로 늘어났고 세현은 그것을 순식간에 목에 칭칭 휘감았다.

“자, 돌도 잘 잘리나 보자고.”

세현은 사이코패스처럼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검의 손잡이를 잡아 사복검의 길이를 다시 줄어들도록 했다.

빠드드드득-!

“끄아아아악!”

검신이 줄어드며 제우스 석상의 목을 전기톱처럼 갈아 버렸다.

그렇게 놈의 목이 푹 파여 나갔을 때, 세현은 놈의 이마를 붙잡고 뒤로 힘차게 꺾어 버렸다.

콰드드득-!

그러자 푹 파여 나간 목 부분을 기점으로 쩌저적 금이 가더니 놈의 머리가 깔끔하게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머리를 잃은 몸뚱이가 비틀비틀 대며 주변으로 마구잡이로 전기를 쏘아 대기 시작했다. 얼굴을 뜯어낸 탓에 더 이상 피아 구별이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세현은 서큐버스 군단 멤버들을 화이트 폰의 뒤로 숨게 해 피해를 최소화시키며, 놈의 등을 붙잡아 몸을 돌려 전기가 뿜어지는 방향을 마음대로 조절했다.

제우스의 방향이 자신에게로 향할 때마다 다른 석상들은 기겁해서 도망치기에 바빴다.

‘이거 완전 재미있는데!’

세현은 제우스의 힘을 이용해 석상들을 하나 둘씩 요리해 나갔다.

“제, 제우스 형님! 미안하오!”

이런 상황이 한참 지속되며 석상들의 피해가 점차 커지자 포세이돈과 하데스가 뭔가를 결단한 듯 앞으로 달려들었다.

포세이돈은 바닷물을 토해 내며 트라이던트를 전방으로 뻗었고, 저 트라이던트 공격에 이에 제우스의 몸뚱이가 꿰뚫리며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크으으윽! 혀, 형님!”

형을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는 죄책감이 든 것일까, 포세이돈이 잠시 침음을 흘리며 움직임을 멈췄다.

“지금이 형님 찾을 때가 아닐 텐데?”

세현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사복검을 놈의 다리에 휘감았다.

“놔, 놔라! 인간 따위가!”

포세이돈은 그를 떼어 내려 몸부림쳤다. 하지만 작위 수여로 한층 더 강화된 붉은 뱀의 검은 놈의 다리 또한 전기톱으로 갉아 내듯 파고들었다.

“포세이돈 형님! 내가 바로 구해 드리겠소!”

그사이 바로 뒤로 하데스가 양팔에 검은 구체를 이글거리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까고 있네.”

세현은 사복검을 휘둘러 포세이돈 석상의 몸을 들어 올린 후, 그를 양팔로 껴안아 하데스 쪽으로 뛰어들었다.

“끄아아아악! 하, 하데스!”

그러자 포세이돈 석상의 등에 두 개의 검은 구체가 충돌하며 놈의 몸뚱이가 빠르게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하데스가 놀라 바로 손을 뗐지만, 이미 포세이돈 석상의 절반 이상은 보라색으로 오염되어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세현은 곧장 놈의 트라이던트를 빼앗은 후, 녹아내리고 있는 부위로 이를 찔러 댔다.

깡-! 깡-!

놈의 가슴팍을 겨우 두세 번을 두드리는 것만으로 전신에 균열이 가더니, 포세이돈의 몸뚱이가 유리처럼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이제 너만 남았네?”

허세현은 겁에 질린 얼굴로 서 있는 하데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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